“뭐라고요?”임유라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강지혁은…….“임유진에게 무릎 꿇으라고요?”“안 될 게 있나요?”강지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되물었다.임유라는 너무 화가 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한편 임유진은 임유라의 억울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지혁은 자신의 화풀이를 해주는 걸까?아니면 그녀에게 임유라처럼 강현수라는 의지할 곳이 있는 사람도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일까?바로 이때 촬영장 입구에서 또 한바탕의 소란이 벌어졌다.감독이 고개를 돌려보자 긴장해야 할지, 아니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좋을지 몰랐다.오늘 뜻밖에도 두 도련님이 모두 촬영팀에 왔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날인 걸까!그 순간 훨칠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으며 준수하고 덤덤한 얼굴이 강현수가 아니면 누구일까.임유진은 강현수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해 멍때렸다.강지혁은 강현수가 나타나자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하지만 강현수는 강지혁과 임유진을 보고도 오히려 평온한 표정을 지었고 마치 그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그 시각 임유라는 강현수를 보자마자 의지할 곳을 찾은 것처럼 얼른 강현수에게 달려가 그의 팔을 잡고 불쌍하게 말했다.“현수 씨, 강 대표님에게 얘기 좀 해줘요. 자꾸 저한테 단역들의 무릎을 꿇는 동작을 재연하래요. 제가 그의 뜻을 따라 한번 시범 보였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않아요. 제가 단역도 아닌데 자꾸 그런 시범을 보이면 그렇잖아요.”임유라는 억울한 척하며 일러 바쳤다.한편 강현수는 임유라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천천히 강지혁에게 다가가 짙은 눈동자로 상대를 훑어보았다.“넌 왜 온 거야?”“친구 만나러 왔어. 마침 유진이가 오늘 여기에서 단역배우를 한다고 하길래. 그리고 네 여자친구가 유진이의 동작이 표준적이지 않다고 여러 번 무릎 꿇게 했다고 해서 네 여자친구에게 도대체 표준적인 동작이 어떤지 시범
만약 정말 물러난다면, 전에 들인 공든 탑이 다 헛수고가 아니겠는가?그녀는 단역 배우가 되고 싶지 않다. 그녀는 빨리 흥행하여 톱스타가 될 것이며 심지어 칸 영화제에 참석할 생각까지 한다.강현수는 임유라를 힐끗 보더니 다시 강지혁에게 물었다.“유라가 눈에 거슬려?”“맞아.”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무심코 말했다. 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순식간에 평소 임유라를 거슬려 하던 사람들은 비웃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S시의 대 BOSS가 눈에 거슬리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그럼 그냥 이 작품에서 나가.”강현수는 아주 평범한 일이라 상관없는 것처럼 말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임유라는 마치 벼락에 맞은 것 같았다.‘나가? 진짜 이 작품에서 나가야 하는 걸까? 단지 그 말 몇 마디에 나가야 하는 걸까? 그게 말이 돼?’임유라는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현수 씨, 정말 나더러 이 작품에서 물러나라는 거예요?”“네가 한 말이잖아. 지혁이 널 거슬려한다면 나가겠다며. 지혁이가 네가 거슬린다잖아. 그럼 나가는 게 잘못된 거야?”임유라는 정말 스스로 뺨을 때리고 싶은 지경이다. 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그런 말장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결국 이렇게 됐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공간도 없어졌다.임유라는 순간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으며 주위의 그 눈빛이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그녀는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그럼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저는 먼저 갈게요. 강 대표님의 눈에 더 거슬리면 안 되니까.”지금 그녀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냉정하게 다음 대책을 잘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그러나 그녀가 몸을 돌리려던 순간 강지혁이 다시 말했다.“아직 무릎도 꿇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가요?”임유라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뭐라고요?”“지난번에 몇 번 무릎을 꿇게 했으면 이번에 당신도 똑같이 무릎을 꿇어요. 그쪽은 얼마나 표준적인 동작으로 무릎을 꿇는지 보고
지금, 이 순간 임유라는 모든 원한을 임유진에게 둘 수밖에 없었다. 임유진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오늘 이런 굴욕을 당했을까!모든 것이 임유진의 잘못이다! 조만간 그녀는 임유진에게 받은 모든 걸 두 배로 돌려줄 것이다.임유라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원망하며 말했지만, 현실에서는 억울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강지혁의 미움을 살 수 없었고, 강현수는 그녀의 스폰서이니, 강현수와 사이가 틀어질 수도 없었다.그녀는 심지어 강현수의 마지막 여자친구가 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그녀가 임유진에게 무릎을 꿇는 순간, 임유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두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불안한 모습으로 감독에게 말했다.“감독님, 죄송합니다, 오늘 연극은 못 할 것 같아요. 월급도 안 줘도 돼요. 먼저 갈게요.”“네…….”감독님이 부들부들 떨며 대꾸했다.임유진은 탈의실 쪽으로 걸어가 의상을 갈아입으려 했고, 강지혁은 그녀를 따라갔다.강지혁과 임유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강현수의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임유라는 두 사람이 떠나자 얼른 일어나 무릎을 꿇고 절하는 동작을 끝내려 했다.그러자 강현수가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계속 연기해, 끝내라고 안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해.”임유라는 멍하니 강현수를 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정말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지난번 임유진이 연기한 그 숫자만큼 연기하라는 것이었다.강지혁이 임유진의 화풀이를 위해 그런 거라면 현수 씨는 왜? 그도 임유진의 화풀이를 해주려는 건가?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면 임유라의 가슴에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강지혁을 마주했던 그 두려움보다 더 큰 공포였다.주위의 수많은 눈이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고, 임유라는 강현수가 마음을 바꾸려는 기색도 없자 다시 무릎을 꿇었다.그녀가 그나마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적어도 임유진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강현수는 팔찌를 꺼내더니 고개를 숙이고 만지작거렸다. 마치 지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임유라가 공기인
예전에 그녀가 소민준과 함께 있을 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소민준이 항상 그녀를 도와줬다.결국, 그녀는 그 남자에게 평생 의지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정말 나서야 할 일이 생겼을 때야, 감정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회수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모든 것이 이미 습관이 되었을 때, 갑자기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절망은 목숨을 앗아갈 만큼 힘들었다.그녀는 감옥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몇 번이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다.만약…… 그때 지영이가 자주 찾아와서 위로를 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그녀는 정말 죽었을 것이다.친구를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속은 많은 고마움으로 가득 차 있다.임유진이 한숨을 내쉬며 단추를 풀고 촬영 의상을 벗으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깜짝 놀라 갑자기 돌아보니, 강지혁이 탈의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지금 앞에서 촬영 중이라 탈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여긴 여자 탈의실이야, 너…… 나가.”그녀는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 말했다.그러나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뭘 두려워하는 거야?”‘두렵다고?’그녀는 멍해져서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그녀가 물러설수록, 그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그녀는 등이 탈의실 옷장에 닿을 때까지 물러서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그는 두 손을 캐비닛 문에 대고 그녀를 그와 캐비닛 문 사이에 가두었다.“왜, 내가 누나를 대신해 화풀이하는 게 두려운 거야?”이 점에 대해 그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다른 여자였다면, 그가 대신 화풀이해주는 거에 대해 기뻐 죽을 것인데 그녀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았다.임유진은 두 손을 무의식적으로 강지혁의 가슴에 대었다.“너 먼저 나가 있어, 곧 사람이 들어올 거야.”“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거야.”그는 더 없이 확고하게 말했다.“무슨 근거로 아무도 안 들어온다고 그래?”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도 못 들어오니까.”그가 대답했다.“이
“습관이 될까 봐.”임유진은 좀 난감하게 말했다.“횟수가 많아지면 습관이 될 거야. 그러나 습관이 되고 나서 언젠가 그렇지 않으면 또 절망하게 될 거야.”“왜, 절망했던 적이 있어?”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그래, 절망했었어.”그의 눈빛이 살짝 굳어지더니 얼굴에 있던 옅은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그만 나가 줄래?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임유진이 말했다.하지만 강지혁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잠시 후, 강지혁이 중얼거렸다.“만약 습관이 된 후에도, 영원히 그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 누나 그래도 두려워?”임유진은 가까이에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지금, 이 순간 매우 심하게 뛰는 것 같았다.————라커룸에서 임유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강지혁이 밖으로 나갔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그의 손가락이 닿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그가 묻는 그 말에 그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습관이 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면……. 그의 이 말의 뜻은 그가 평생 그녀를 위해 나서 준다는 것인가?강지혁 같은 사람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하지만 앞으로는? 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그는 지금까지 그녀가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습관은…… 없는 게 낫겠다고, 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탈의실 입구에서 강지혁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뒤에 서 있었다.갑자기 경호원이 흠칫하더니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림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경호원도 당연히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그는 연예계 태자 강현수였다. 강 대표님의 친
“그렇다면 좋아, 난 그녀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강현수가 말했다.“어차피 그녀는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어.”그녀의 외모에 그가 찾는 사람의 그림자가 많고, 때때로 그녀를 보면 마치 그 사람이 어른이 된 후의 모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하지만 결국, 닮았을 뿐이지 그 사람이 아니다.“만약 그녀가 네가 찾는 사람이라면? 너 가만히 있을 거야?”강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강현수의 얼굴빛은 변함이 없지만 눈동자에는 잔물결이 겹치는 것 같아 잘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내가 찾는 사람이라면, 너랑 맞서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강지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래서, 아니길 잘했다. 그렇지?”“그렇지, 아니길 잘했어.”강현수는 말하고 나서 돌아섰다.다행히 아니다. 만약 정말이었다면, 정말 난처했을 것이다!강현수는 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속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더 있어야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그녀를 찾은 것은 거의 그의 집착이 되었다.————임유진이 탈의실을 나왔을 때 밖에는 아무도 없이, 강지혁과 경호원 한 명만 문 앞에 있었다.“다 갈아입었어?”강지혁은 임유진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화장도 지운 채 머리 모양도 포니테일로 했다는 걸 발견했다.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 보기에도 한결 마음에 들었다.“응.”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럼 가자.”강지혁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임유진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고 그는 눈썹을 치켜들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싫어?”“나…… 혼자 가도 돼.”“하지만 난 누나와 손잡고 가는 게 더 좋아.”강지혁은 말하며 손을 한 번 더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렇게 잡으면 누나는 아무 데도 못 가겠지.”그의 잡담 같은 말투는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문득 놀라게 했다.마치 그가 그녀의 온몸에 촘촘한 그물을 쳐서 그녀의 인생을 장악하려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자신의 인생이 강지혁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손을 더 가까이 끌어당겨 그녀의 손등에 아직 남아 있는 옅은 멍을 내려다보았다.그리고 그녀의 손등을 그의 입술에 가까이 대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임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눈앞의 강지혁이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불어주고 있는 걸 보았다.“불면 덜 아플 거야.”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손가락 마디로 그녀의 손등 멍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불면서 문지르는 모습이 마치 정중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 같았고, 목구멍에 뭔가 막힌 것 같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만약 혁이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녀는 자상하고 좋은 동생을 가졌다고 느꼈을 것이지만, 강지혁이라면……. 그녀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리고 지금 강지혁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강 대표님이 한 여자를 이렇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가!아마 멀지 않아 이 여자는 곧 S시에서 유명해질 것이다!“좀 나아졌어?”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좀 나아졌어.”임유진은 세 번째로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당기고 그녀의 손등의 멍든 곳을 조심스럽게 피했다.“아픈 줄 알면 착하게 있어야지. 안 그러면 내가 또 조심하지 않고 누나를 아프게 할지도 몰라.”임유진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었다. 그는 애매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그의 손에 이끌려 그의 벤틀리 차 앞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운전기사가 공손하게 문을 열자 강지혁과 임유진이 차에 올랐다.“시간이 남았는데, 그렇게 일찍 돌아갈 필요는 없어. 누나 어디 구경하고 싶은 곳 있어?”강지혁이 물었다.임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그녀가 어디 구경하고 싶은 곳이 있겠는가?“그럼 근처 어디 좀 둘러보자. 예전에 누나가 나를 데리고 야시장이나 쇼핑몰을 구경할 때가 그리웠어.”강지혁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그것은 그녀가 한
그의 눈에는 잔잔한 물결이 겹쳐져 있었는데 마치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녀를 감쌀 수 있는 것 같은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그 눈동자는 그의 입술 모서리에 띤 미소와 아울러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멋졌다.임유진은 갑자기 자신이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메뉴에 있는 모든 요리를 주문해도 강지혁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그녀는 왜 그랬을까? 음식 주문이라는 바보 같은 방식으로 화풀이 하려고 했다니.임유진은 맥이 빠진 듯 손에 들고 있던 메뉴를 돌려주며 말했다.“됐어요.”“이 정도면 됐어?”강지혁이 웃으며 말했다.임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한참 만에 대답했다.“됐어.”“정말 다 드실 수 있겠어요? 이 음식들은 7, 8명이 먹기에도 충분한데, 두 분이서는 조금 많지 않을까요?”종업원이 귀띔했다.강지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일단 그걸로 해요.”종업원은 그 말에 메뉴를 들고 돌아섰다.강지혁은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가 부족하면 나중에 더 주문해도 돼.”그의 그런 말투는 그녀의 가슴을 또 갑자기 뛰게 했다.“방금 내가 억지를 부렸어. 다시 불러서 요리 몇 가지는 빼자.”임유진은 망설이다가 조금 전에 주문한 웨이터를 찾으러 일어나려 했다.강지혁이 갑자기 임유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누나가 좋아하는 음식을 왜 빼.”“낭비하고 싶지 않아.”임유진이 말했다.강지혁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너에게는 이 음식값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주문하고 못 먹을 낭비야.”임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예전에 그녀도 한 끼에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주문했지만, 각각 조금씩만 맛보고,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거나, 살을 빼야 한다거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하지만 생활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난 후에야 그녀는 배불리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감옥에서 끼니마다 그녀는 다 먹어치웠다. 먹는 것만이 살아가는 기반이기 때문이다.때로는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