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넌 여기서 나한테 평생 나만 사랑할 거라고,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영원히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까만 눈동자 속에는 언뜻 조급함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그의 얼굴에 닿아있던 그녀의 손이 흠칫 떨렸다.그날 새벽 지독하게 외로운 얼굴로 홀로 이곳에 서 있던 그를 보며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그를 발견한 순간 모든 걸 내던져서라고 그를 지켜주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다.그가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그에게 사랑한다 속삭이고 강현수와의 기억을 떠올렸음에도 그가 불안해하는 것 같아 기억 안 나는 척, 모르는 척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강지혁이 전부였던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은...임유진은 강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뭐? 너도 그때는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사랑하기 싫다고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어. 약속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언제든지 번복할 수 있는 거지.”“만약 내가 그때 그런 말 한 걸 후회한다면? 그러면 너도 다시 생각해줄 수 있어?”“한번 엎질러진 물은 두 번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확정 짓지 마. 내가 주워 담지 못하는 물은 없어.”강지혁은 그녀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널 너무 사랑하게 될까 봐 겁이 났어. 아버지와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봐, 내가 내 목숨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났어...”그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공간에서 천천히 울려 퍼졌다.이건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줄곧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마음이다. 그는 지금 그 마음속 깊은 곳을 그녀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임유진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알겠더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이미 네가 없이는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헤어지고 나서 알았어. 유진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주면 안 돼?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임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잡혔던 손을 살짝 움직여 그의 눈썹을 매만졌다.이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지만 피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던 손도 서서히 느슨하게 풀렸다.임유진은 그의 눈썹을 매만지던 손을 천천히 내려 그의 눈 그리고 코 마지막으로 입술을 매만졌다.무척이나 예쁜 입술이었다. 무표정일 때는 섹시하고 매력적이지만 웃을 때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힐 만큼 사랑스러웠다.“아버지와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까 봐, 네 목숨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고 했지? 그 말은 내가 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너를 배신할 거라 생각했다는 거네?”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오히려 지극히 부드러웠고 마치 고요한 물길 같았다.하지만 그 고요함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일전 월세방에서도 그녀는 이런 얼굴로 그의 마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으니까.“너랑 사귈 때 내가 널 사랑한다고 했던 말도, 널 떠나지 않을 거라 했던 말도 너는 믿는다고 하고선 끝까지 믿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헤어지기로 한 거고, 내 말이 맞아?”강지혁의 동공이 흔들렸다.“네가 방금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 나한테 목숨도 내어줄 수 있다고 했었지? 그 말은 너는 아직도 내가 널 언젠가는 배신할 거라 생각한다는 거야. 너의 어머니가 너의 아버지를 배신했던 것처럼.”강지혁은 간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내가 널 확실히 믿으면... 그때는 날 사랑해 줄 거야? 내 곁으로 돌아와 줄 거야?”임유진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네 믿음이 뭐라고 내가 다시 널 사랑해야 해? 너는 지금은 날 믿으려고 해도 결국 또다시 믿지 못할 거야. 그리고...”그녀는 손을 거두어들이고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널 사랑했을 때 미칠 듯이 뛰던 심장이 이제는 안 뛰어.”그 말에 강지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
다음날, 퇴근한 후 한지영이 찾아와 임유진은 그녀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어제 강지혁이랑 그렇게 가고 나서 별일 없었어? 뭐라고 안 해?”한지영은 주문하고 나서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임유진은 잠깐 망설이더니 물을 한잔 들이키고 말했다.“다시 시작하재.”“뭐?”한지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다시 시작하자 했다고? 그러니까... 다시 사귀자고 했단 말이지?”“응.”한지영은 눈을 부릅뜨며 발끈했다.“이제 와서? 헤어지자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다시 사귀고 싶은 건데?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 안 한대?!”아무리 뒤에서라도 강지혁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한지영뿐일 것이다.임유진은 씩씩거리는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웃겨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우중충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그러게.”“그래서 너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임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시 시작할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거야.”그때 직원이 다가와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임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식사하기 시작했다.아까까지만 해도 화를 내던 한지영은 그녀의 대답을 들은 뒤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너 정말 강지혁 이제 안 좋아해?”강지혁과 막 헤어질 당시 임유진은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힘들어했었다.그런데 고작 몇 개월 사이에 그 감정을 다 내려놓았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응.”임유진은 대답하고는 다시 음식을 입에 넣었다.“그래서 강지혁은? 네가 거절한 거로 무슨 짓 하지는 않았어?”“응 일단은 아무 짓도 안 했어.”한지영은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노릇이었다.강지혁 같은 남자는 임유진이 싫다고 해도 분명히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그녀를 곁에 두려고 할 테니까.“내 걱정 안 해도 돼. 이제는 무슨 짓 당할 것도 없어.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말 그대로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그리고 잃을 게 없으
“알았어. 연신 씨한테 부탁해볼게. 그보다 유미 언니는 그 뒤로 괜찮았대? 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한지영의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오늘 아침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그 뒤로 깽판 치러 오는 사람은 없었고 단골손님들이 찾아와줘서 장사도 괜찮았대.”“다행이다!”임유진의 말에 한지영은 그제야 안심했다.저녁을 다 먹은 뒤 한지영은 임유진을 데려다주고 나서 백연신을 찾으러 갔다.“배 아픈 건 좀 어때?”서재에서 서류를 훑어보던 백연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지영의 곁으로 다가왔다.“괜찮아졌어요. 어제처럼 막 아프지는 않아요.”그 뜻은 오늘도 아프기는 하다는 건가?백연신은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언제쯤이면 안 아픈데?”아마 예전의 그였더라면 여자의 생리통 따위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그 상대가 한지영이라서 이런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아마 내일쯤이면 완전히 괜찮아 질 거예요. 대체로 그랬거든요.”“그럼... 내가 또 배 마사지해줄까?”한지영은 그의 손기술이 꽤 나쁘지 않아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서 얼른 소파에 누워 편한 자세를 취하더니 그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백연신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는 도우미에게 따뜻한 생강차와 초콜릿을 부탁하고 그제야 한지영의 곁으로 다가왔다.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배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연신 씨 마사지 배운 적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기분 좋게 할 수가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부려먹을 걸 그랬어.”한지영은 그의 앞에서 생리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백연신은 진작 부려먹지 못해 못내 아쉬운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기가 찬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오늘 유진 씨 만났어?”“네. 참, 강지혁이 유진이한테 다시 사귀자고 했대요.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백연신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왜 안 놀라요?”한지영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언젠가는 그럴 것 같았어.”강지혁이 임유진을 대하는 태
어제는 백연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춤을 보려고 했었는데 임신 소동과 생리가 오는 바람에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백연신은 그걸 아직 기억하냐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게 보고 싶어?”한지영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마사지 안 해줘도 괜찮겠어?”“다 추고 나서 또 해주면 되잖아요, 응?”한지영의 두 눈은 오늘따라 유독 더 반짝였다.백연신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춤춰주면 다른 남자한테는 신경 꺼. 앞으로는 나만 봐, 알겠어?”그 말에 한지영은 흠칫했다.티비를 틀면 나오는 게 남자 연예인들인데 어떻게 신경을 끌 수가 있을까. 하지만 너무나도 뜨거운 그의 시선에 그녀는 서둘러 약속했다.“약속할게요. 다른 남자들은 그저 순 감상용이고 연신 씨한테만 나쁜 마음먹을게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에 기가 차서 웃음이 다 터져 나왔다.하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듯 피식 웃더니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어가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그는 한지영의 시선이 오직 그에게만 향하기를 원하고 그녀가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해줄 각오가 되어 있다.그때 도우미가 생강차와 초콜릿을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내딛기 전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고야 말았다.백연신은 지금 셔츠 단추를 다 풀어헤친 채 단단한 가슴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들어 열렬히 호응해주는 한지영이 있었다.그러다 한지영과 눈이 마주친 도우미는 눈만 깜빡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든 생강차와 초콜릿을 내려놓고 후다닥 서재의 문을 닫고 나갔다.문이 닫힌 순간, 한지영은 백연신을 향해 조금 어색하게 말했다.“연신 씨, 다음에는 우리 문부터 잠가요...”“다음에 또 춰달라고?”“연신 씨 이런 재능을 썩히는 것도 안 좋아요. 나 지금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런지 배도 안 아픈 것 같아요.”한지영은 왼쪽 가슴에 손을 대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과는 많이 친한가 봐요?”가는 길,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강현수가 그런 작은 의원의 의사 선생님과 친하다는 것이 꽤 의외였다.“알고 지낸 지 오래됐어요. 여진이랑 산에서 내려올 때 다리가 골절됐었거든요.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봤지만 치료는 할 수 있어도 후유증이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엄마가 용한 의사가 있다고 해서 소 선생님께 치료받게 됐어요.”강현수의 말에 임유진은 옆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골절이요?”“네. 3개월 정도 치료하고 그제야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게 됐어요.”골절이 있었다고? 혹시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다쳤던 건가?임유진은 속으로 그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절벽에서 그를 끌어올리고 난 후부터 강현수는 확실히 걷지 못했었다. 그때는 곱게 자란 도련님이라 그저 엄살을 부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골절이었을 줄이야...산에서 내려올 때까지도 그는 한 번도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등에 업힌 채로 미안하다는 말만 줄곧 내뱉었었다.“그때... 많이 아팠어요?”임유진은 주먹을 꽉 말아주며 물었다.강현수는 그녀 쪽을 힐끔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예요?”임유진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그를 바라보았다.강현수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말했다.“엄청 많이 아팠어요. 그때는 그게 평생 겪을 고통 중에서 제일 큰 고통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그런데 뭐요?”임유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뒤에 말을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강현수는 말해주지 않았다.물리적 고통이 제일 큰 고통인 줄 알았지만 그 여자아이를 찾지 못한 것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이대로 찾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만큼 그렇게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그러나 막상 배여진을 만나고 나니 그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은 온데간데없었고 상상과는 많이 다른 그녀의 모습에 이유 모를 실망감만 남았다.그는 요즘 어쩌면 그저 그리움일 때가 더 나은 인연도 있다는
역시 그간 너무 많은 여자친구를 만났던 게 독이었을까? 그래서 모든 행동이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임유진은 그가 여자친구를 바꾸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누군가를 정말 그리워한다면 대체품들은 결국 소용이 없을 거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간의 행적을 그대로 돌려받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강현수는 이제껏 누군가를 이토록 원한 적이 없고 누군가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찬 적이 없다.전부 다 잊을 거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언제나 수포가 되고야 말았다.그는 임유진을 원하고 있다. 강지혁과 척을 지는 일이 있다고 한다 해도 말이다.그때 고통스러운 신음이 치료실 안에서 들려왔다.강현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로 세우더니 치료실 문을 활짝 열었다.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영훈이 손에 들린 침으로 임유진의 손등을 찌르고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강현수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임유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가 천천히 관자놀이 쪽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그녀의 다른 한쪽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강현수는 치료과정 전반이 다 고통스러울 거라는 소영훈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평소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그런 말은 되도록 하지 않는 소영훈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나게 아픈 것이 틀림없다.하지만 임유진은 아까의 신음을 끝으로 한 번도 소리 내지 않았다.강현수는 드라마 촬영이나 영화 촬영 중에 고통을 참는 여자의 얼굴은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조그마한 상처에도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연약한 척 안겨 왔었다.그 모습들을 다 보아왔음에도 임유진이 고통을 참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이 쿡쿡 찔리듯 아파 왔다.강현수는 소영훈이 이제 막 다른 침을 놓으려고 할 때 임유진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꽉 쥔 주먹을 자신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임유진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오늘은 여기서 끝이라는 소영훈의 말이 들려왔다.손등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도 한결 가라앉았다.임유진은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시선 바로 앞에 강현수의 팔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손이 여전히 그의 팔 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미안해요!”임유진을 손을 빠르게 거두어들이며 사과했다.“괜찮아요. 내가 잡으라고 했잖아요.”강현수는 아무렇지 않게 팔을 거두어들였다.“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소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말했다.“3시간 동안 물에 닿지 않지 않도록 조심하고 무거운 물건도 들지 마세요.”“네, 수고하셨습니다.”밖으로 나온 뒤 강현수가 그녀에게 말했다.“데려다줄게요.”“음...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임유진이 뒤돌아 떠나려고 하자 강현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그냥 데려다주려는 것뿐이에요. 나 받아달라고 안 할 테니까 너무 나 피할 필요 없어요.”“그게 아니라 이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임유진은 그의 팔을 밀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밀어낸 순간 그가 팔을 움찔하고 떨었다.방금 세게 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그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강현수의 팔 쪽을 바라보았다.오늘 그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손목 좀 더 윗부분에 언뜻 빨간색이 보였다.임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그의 셔츠 소매를 위로 확 걷어 올렸다. 그러자 자잘한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그의 팔에는 할퀸 자국도 있었고 손톱이 깊게 파고든 자국도 있었다. 그리고 상처마다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임유진은 아까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를 꽉 잡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기억은 안 나지만 할퀸 적도 있었던 것 같았다.“미... 미안해요.”“아까도 말했지만 먼저 잡으라고 한 건 나였어요. 그러니까 그런 미안한 표정 짓지 않아도 돼요.”강현수는 태연한 얼굴로 셔츠 소매를 내려 상처를 가렸다.“껍질 좀 까졌다고 안 죽어요.”그가 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