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데려온 거고 마침 운 좋게 치료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인 거죠.”강현수는 임유진을 차에 태운 뒤 자신도 운전석에 올랐다. 그러고는 천천히 시동을 걸며 그녀에게 물었다.“손은 언제 다친 거예요?”“이렇게 된 지 한 4년 정도 되네요.”4년이라...그렇다는 건 이제 막 감방에 들어갈 때 생긴 일일 것이다.“감옥에 있을 때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건가요?”임유진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누가 그랬어요? 대체 누가 손을 그렇게 만들었어요?”강현수의 낮은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 있었다.대체 누가 그녀에게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질렀을까.임유진이 옥살이를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그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까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그러다 오늘 처음으로 그녀가 겪은 고통의 한 조각을 엿보게 되었다.임유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누가 그랬는지 물었어요.”강현수가 다시 한번 물었다.“그걸 지금 말해준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내가 겪은 고통을 그들에게 똑같이 갚아 주기라도 할 거예요?”“그래 줄까요?”강현수의 눈이 무섭게 가라앉았다.그는 그녀에게 이런 짓을 한 놈들을 전부 다 찾아내 그녀가 겪었던 고통 그 이상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임유진은 강현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차량이 신호등에 걸렸을 때 강현수는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난 진심이에요. 유진 씨가 원한다면 당신에게 고통을 준 인간들을 전부 다 찾아내 똑같이 갚아 줄 수 있어요.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어요. 유진 씨의 분이 풀린다면 기꺼이 해줄 수 있어요.”그는 진심이었다.그의 눈빛이 그의 입술이 전부 그녀에게 그는 진심이라고 얘기해 주고 있었다.임유진은 순간 어린 시절 자신의 등에 업힌 채로 얘기했던 남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
다만 그때는 강현수에 관한 기억이 없어 두 사람이 그런 약속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이곳에 와 돈가스를 먹었었다.임유진은 젓가락을 들어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한입 베어 물었다.‘오늘은 어릴 적 현수와 같이 밥 먹으러 온 셈 치지 뭐.’이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강현수가 어릴 적 했던 약속대로 두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 함께 돈가스를 먹고 있다....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마세라티 한 대가 서서히 단지 앞에 멈춰 섰다.집에 도착한 임유진이 차에서 내려 이제 막 두어 걸음 나아가려는데 등 뒤에서 강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 기다려요.”그는 뒷좌석에서 일식집 로고가 박힌 포장 봉투를 들고나오더니 임유진에게 건네주었다.“아까 돈가스 꽤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나오기 전에 일 인분 더 주문했어요.”임유진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결국 포장 봉투를 건네받았다.“고마워요.”안에 든 것이 돈가스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릴 적 현수가 떠올라서 그런 것인지 그녀는 예상외로 순순히 건네받았다.다만 손으로 건네받을 때 강현수가 그녀의 손을 꼭 잡더니 시선을 떨구고 얘기했다.“많이 아팠죠?”임유진은 순간 몸이 움찔 떨렸다.“이미 지난 일이에요.”“내가 유진 씨와 좀 더 빨리 만났으면, 그랬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이토록 한 여자가 안쓰러운 건 임유진이 처음이다. 강현수는 심지어 그녀의 고통을 전부 자신이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당시 진애령 사망 사건은 그에게 있어 그저 흔한 기사 한 줄일 뿐이었다. 죽은 사람이 강지혁의 약혼녀가 아니었다면 기억 속에서 벌써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그 사건에서 3년 형을 받은 여자를 이토록 좋아하고 또 사랑까지 하게 될 줄 그 역시 몰랐을 것이다.만약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녀를 지켜주고 힘든 일 하나 없게 해줬을 테니까.임유진은 강현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사실 두 사람은 이미 어릴 때 만난 적 있는 사이이고 다만 그녀가 그와 함께 한 시간을 잊어버린 것뿐이다.만약 그
임유진은 요 며칠 줄곧 혼자 돌아오다가 오늘 하필이면 강현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지금 강현수는 임유진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한 채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고이준은 두 사람이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길 바라고 또 바랐다....임유진은 강현수에게서 받은 돈가스 포장 봉투를 들고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의 큰손이 그녀보다 먼저 문을 확 열여 제쳤다.이에 임유진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강지혁이 어느샌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깜짝이야. 언제 왔어?”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오늘 강지혁은 얇은 베이지색 스웨터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귀공자 같은 그의 얼굴은 오늘도 역시 무척이나 잘생겼지만 어쩐지 임유진은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무섭게 느껴졌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지금의 강지혁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시한폭탄처럼 폭발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왜 들어가라고 안 해?”청량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오늘은 시간도 늦었고...”임유진이 거절하려 하자 강지혁이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여왔다.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강지혁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이윽고 그녀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쾅!문이 닫히자 방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임유진은 깊게 한번 숨을 들이켜고 물었다.“왜 왔어?”강지혁은 그녀가 들고 있던 포장 봉투 쪽을 보더니 물었다.“그거 강현수가 준거지? 오늘 둘이 같이 있었어?”임유진은 그 말에 흠칫했다가 곧바로 알아챘다. 방금 강현수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에게 들켰다는 것을.“둘이서 밥이라도 먹고 온 거야?”강지혁은 또다시 질문하며 그녀를 몰아세웠다.임유진은 뒤로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다가 이윽고 벽에 부딪혔고 이제는 갈 곳도 없었다.강지혁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 안에 그
강지혁은 흐르는 물에 그녀의 두 손을 넣고 옆에 있는 핸드 워시로 그녀의 손을 박박 문지르더니 거품이 잔뜩 나게 한 다음 물에 헹궜다.마치 강현수가 그녀의 손에 남겨놓은 무형의 흔적을, 온기를 전부 지워버리려는 듯 몇 번을 더 씻어내렸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고 싶었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그녀는 두 손의 자유를 빼앗긴 채 강지혁에 의해 몇 번이고 손을 씻게 되었고 이제는 슬슬 두 손이 아파 나기 시작했다.“강지혁, 그만해. 대체 왜 이러는 거야!”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 그제야 옆에 있던 타올을 들어 그녀의 손에 있는 물기를 닦아주었다.“앞으로는 강현수가 이손 못 잡게 해.”아까 단지 입구에서 두 사람이 손잡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강지혁은 순간 이성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질투하는 한편 무서웠다. 그녀가 정말 강현수를 좋아하게 될까 봐 너무나도 무서웠다.“그리고 앞으로는 날 화나게 하는 말도 하지 말고.”이에 임유진은 잠깐 벙쪄 있다가 곧바로 실소를 터트렸다.“그러면 헤어진 마당에 내가 널 계속 좋아하기라도 해야 해?”그 말에 강지혁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녀의 담담한 두 눈과 눈을 마주쳤다.예쁜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아까 현관문 앞에서 봤던 당황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저 태연함만이 자리 잡았다.그리고 그녀가 태연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더 마음이 불안해졌다.임유진은 천천히 입을 열어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강지혁, 우리는 이미 헤어졌고 나는 더 이상 너한테 설렐 일도, 너를 좋아하지도 일도 나아가서 널 사랑하는 일도 없을 거야. 그리고 너를 위해 뭔가를 하려 들지도 않을 거고. 만약 이런 내 말이 널 화나게 하는 거라면 나는 아마 계속 너를 화나게 할 수밖에 없을 거야.”강지혁은 입술을 꾹 닫은 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임유진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네가 누나 동생 놀이를 원하는 거면 원하는 대로 해줄게.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얘기해야겠어. 나는
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우리가 헤어진 것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잊으려고 하는 거라면, 그러면 다시 사귀어, 전처럼.”강지혁은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내렸던 결정을 번복하고 그녀와 다시 전처럼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상대가 사랑해 마지않는 임유진이라서.그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그녀에게 잊혀지는 것이 그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괴로워 미칠 지경이다.임유진은 그의 말에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그날, 그녀의 생일날 그는 너무나도 쉽게 헤어짐을 입에 올렸고 그녀를 한순간에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그랬던 사람이 이제 와서 다시 사귀자고, 다시 전처럼 돌아가자고 한다.전처럼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왜, 이제는 또 날 사랑하고 싶어졌어?”임유진의 질문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가 점점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사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한때는 사랑하지 않는 게 가능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쉽게 사랑을 끝낼 수 있는 건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만약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러면 다시 날 사랑해 줄래?”강지혁은 목이 멘듯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의 목숨, 그의 희로애락을 전부 다 그녀에게 쥐여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요 며칠 강지혁은 드디어 깨달았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하지만 그의 귓가에 그녀의 한마디가 들려왔다.“내가 널 다시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순간 강지혁은 온몸의 피가 멈춘 듯 몸이 굳어버렸다....강현수는 휴대폰으로 부하 직원이 보내준 자료를 바라보았다.만약 옆에 임유진이 있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가
억울하게 쓴 누명, 감방에서 받은 고통,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멘탈이 무너져 삶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임유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살기 위해, 다시 미래를 그리기 위해 지옥 속에서 발버둥 쳤다.억울하게 누명 쓴 것으로 창창한 미래를 잃었음에도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임유진이라는 여자는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으로 누구보다 더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강현수는 이런 그녀의 모습에 또다시 어릴 적 그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심지어 가끔은 그 여자아이가 배여진이 아닌 임유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여태 찾아 헤맸던 아이가 배여진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그는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상상과 현실은 결국 다른 범주의 것이고 사람은 변한다는 것이다.어릴 때의 그 여자아이는 정의감이 넘치고 타인을 위하는 그런 아이였지만 지금의 배여진은 돈을 밝히고 자신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그런 여자가 되어버렸다.하지만 상관은 없다.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를 구해준 건 사실이니 지금의 그녀가 그런 생활을 원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줄 수 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강현수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서재에서 나와 거실에 도착했다.배여진은 강현수를 보더니 할 말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현수 씨, 사실 현수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걸 얘기해야 하는 게 맞을지 조금 고민돼요.”강현수는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배여진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결국 얘기를 할 것이고 지금 잠깐 망설이는 건 그에게 그를 위해서 그런다는, 다른 뜻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이다.강현수는 배여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사실 그는 여자들이 자신의 앞에서 어떻게 머리를 굴리든 전까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헤어질 여자들이니 재미있는 구경거리 한다고 치부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하지만 줄곧 찾아 헤맸던 배여진마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
배여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버벅거렸다.“나는... 나는 그게...”“여진아,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고 네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나한테 당연한 일이야.”강현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임유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만약 임유진이 내가 가진 것을 탐내 나를 받아준다고 하면 나한테는 오히려 그게 임유진을 내 옆에 묶어둘 기회야.”배여진의 마음속에 질투의 감정이 불타올랐다.대체 임유진이 뭐라고, 대체 임유진의 뭐가 그렇게 좋아서 저런 말까지 하는 거지?!“하지만 유진이는 현수 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까 현수 씨도 녹음 들었잖아요!”배여진은 다급하게 그를 향해 외쳤다.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강현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발끝부터 서서히 몸을 감싸고 올라오는 한기에 몸이 움찔 떨렸다.강현수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경고 섞인 말을 내뱉었다.“배여진,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수 쓸 생각하지 마. 알겠어?”배여진은 그 말에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싸늘한 두 눈동자에 모든 걸 다 간파당한 듯했다....윤이가 새로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날, 임유진과 한지영은 마침 주말이라 탁유미네 집으로 왔다. 그리고 윤이에게 지난번 약속했던 선물을 건넸다.임유진이 준 선물은 크레파스 세트였고 한지영이 준 선물은 옷과 신발이었다.윤이는 선물을 받고는 활짝 웃더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한껏 쑥스러워하면서도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두 사람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고마워요. 이모들.”한지영은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듯한 기분이 들었다.“윤이 너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만약 이모가 딸을 낳으면 우리 윤이 사위로 데려가야지.”아이는 그녀가 말한 사위라는 단어가 뭔지 몰라 눈을 깜빡거리다 딸을 낳는다는 말은 알아듣고 한지영의 배를 바라보며 물었다.“지영이 이모 혹시 아가 생겼어요?”그러자 탁유미
탁유미가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자 얼마 안 가 윤이는 금방 단잠에 빠져들었다.“윤이가 유치원에서 괜한 괴롭힘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탁유미의 걱정에 한지영이 발끈하며 말했다.“윤이 건드리면 내가 가만 안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언니!”진지한 그녀의 얼굴에 탁유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끔 한지영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당당하고 겁 없는 것이 꼭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지금의 그녀는 이리저리 치여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유진 씨, 양육권 지킬 수 있게 잘 부탁해요.”“그 일은 차 변호사님한테도 얘기를 해뒀어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탁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이번 양육권 문제로 가장 의외인 점이 있다면 이경빈 쪽에서 해성시가 아닌 S 시에서 소송을 진행했다는 것이었다.이유가 뭐가 됐든 그 덕에 탁유미는 두 곳을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언니 G 시로 가려고 했을 때 가게 이미 처분했잖아요. 그럼 이제부터는 어쩔 생각이에요?”임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 그러고 보니 유진 씨한테도 얘기 안 했네요. 나 지금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팔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양육권 문제 때문에 며칠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포장마차요?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한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제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어요. 보통 해가 지기 전에 재료 준비 다 하고 영업시간은 6시쯤부터 해서 새벽 3시에 끝내는 거로 했어요. 맛있다고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이 많아서 수입은 꽤 괜찮은 편이에요. 윤이랑 엄마 먹여 살리는 것 정도는 충분해요.”“힘들지는 않아요?”한지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조금 힘들긴 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아, 떡볶이 말고도 김밥이랑 오뎅이랑 그리고 다른 것도 많이 팔아요. 식당 하기 전에 사실은 분식집을 할까도 생각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