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의 눈길이 문예슬과 소연아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훑었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차분한 굳건함이 엿보였다.송재이는 침묵을 지키며 뭐든지 다 도전할 수 있는 확고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어떤 수를 쓰든 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 송재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문예슬과 소연아는 송재이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에서 흘러넘치던 자신만만한 미소가 얼어붙었고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복도의 공기가 갑자기 팽팽해졌다. 세 사람 사이에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지만 이미 불꽃이 튀는 듯 분위기가 긴장했다.송재이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물러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녀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했다.문예슬과 소연아는 송재이의 모습을 보고 서로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두 사람의 계획은 아무래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 듯했고 그로 인해 불안감이 밀려왔다.결국 문예슬이 참지 못하고 먼저 침묵을 깼다. 그녀는 억지로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재이야, 오늘 굉장히 기운이 넘치는 것 같네. 우린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 오늘 회의 잘 봐.”소연아도 문예슬을 따라 한마디 덧붙였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약간의 억지와 불만이 섞여 있었다.“맞아요, 재이 씨. 오늘은 재이 씨 소중한 시간 뺏지 않을게요.”송재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전히 굳건한 눈빛을 보이며 대응했다.“고마워요. 나도 진짜 오늘 회의가 기대되긴 해요.”말을 마치고 송재이는 더 이상 두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설영준의 사무실로 향했다.송재이가 설영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설영준은 테이블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설영준의 시선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잠시 송재이의 몸에 머물렀다.“재이야, 왔구나.” 설영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표정에는 미세하게나마 안도감이 스쳤다.“기운이 넘치는 걸 보니 준비가 잘된 것 같네.”송재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영준아, 난
소연아는 설영준이 결정을 발표한 후, 전례 없이 압도적인 위기감을 느꼈다.그녀는 자기가 뭔가 이 상황을 뒤집을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소연아는 주동적으로 송재이에게 다가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재이 씨, 따로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 좀 내줄래요?”송재이는 소연아를 힐끗 쳐다봤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 대신 확고함만이 가득했다.“그러죠, 연아 씨, 대화가 꼭 필요하다면 기꺼이 상대해 드릴게요.”두 사람은 함께 회의실을 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설영준은 회의실 문가에 서서 송재이와 소연아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설영준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슬슬 올라왔다.그래서 그는 송재이의 안전을 위해 몰래 따라가기로 했다.카페에서 소연아와 송재이는 한적한 구석에 앉았다.소연아는 커피를 시키며 교활한 눈빛을 보이며 선수를 치기 시작했다.“재이 씨 집안이 뛰어나지 않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재이 씨 실력으로 여기까지 오다니 참 감탄할 만한 일이에요.”송재이는 차갑게 소연아를 바라보았고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연아 씨, 제 집안이 어떻든 제 능력과는 상관없어요. 설한 그룹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제 업무 성과이지 제 출신이 아니니까요.”소연아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고 도발을 이어갔다.“맞아요, 능력은 출중하시겠죠. 하지만 재이 씨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 않나요?”송재이는 소연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채 가슴이 철렁했다.순간 송재이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연아 씨,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출산 능력만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죠.”소연아는 여전히 송재이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쌀쌀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재이 씨는 그럴지 몰라도 설영준은요? 영준 씨는 설씨 가문 외아들인데 과연 재이 씨 말대로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까요?”송재
송재이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그녀의 눈빛에는 설영준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내가 가장 놓치기 싫은 건 네가 나에게 보여준 이해와 지지야. 영준아, 넌 나에게 수없이 많은 용기를 줬어. 그 덕분에 난 모든 어려움과 도전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어.”송재이의 허심탄회한 말은 설영준의 마음에 큰 감명을 줬다. 그는 송재이를 꼭 끌어안고 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재이야, 나도 그래.”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설영준은 해외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 긴급하게 한 달 동안 출장을 떠나야 했다.송재이는 설영준과 갈라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야 했다.공항에서의 이별은 유난히 쓸쓸했다. 송재이는 설영준을 꼭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영준아, 네가 많이 그리울 거야. 꼭 무사히 돌아와.”설영준은 송재이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약속했다.“재이야, 한 달 뒤면 돌아올 거야.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은 항상 너와 함께야.”설영준이 떠난 후 송재이는 전에 없던 공허함을 느꼈다.그래서 생활의 초점을 딴 곳에 맞추려는 목적으로 송재이는 일에 몰두하려고 애썼지만 그 공허함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공허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을 때, 송재이의 친구 유은정이 송재이의 정서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식사에 초대해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말로 위로하려 했다.송재이는 유은정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아늑한 분위기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유은정의 따뜻한 배려와 이해는 송재이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었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송재이의 꿀꿀하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재이야, 너도 알다시피 설영준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야. 그래야 너에게 더 좋은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안 그래?” 유은정이 송재이의 손을 잡고 따스한 말로 격려했다.송재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따스한 배려가 그저 고맙기만 할 따름이었다.“은정아, 고마워. 나도 영준이 우리의 미래를
송재이는 설영준과의 관계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비록 설영준의 갑작스러운 출장 때문에 의도치 않은 외로움을 느끼긴 했지만 송재이는 두 사람의 감정이 시간과 거리가 주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바쁜 업무 속에서 설영준을 그리는 애타는 시간이 흘러 한 달이 지나자 마침내 설영준이 돌아오는 날이 다가왔다.설영준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송재이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설영준은 많이 피곤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집으로 돌아온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재이야, 나 돌아왔어. 근데 회사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해. 저녁에 같이 밥 먹자.”그 말에 송재이는 부드럽게 대답했다.“알았어, 영준아. 먼저 볼일 봐. 저녁에 보자.”전화를 끊은 후 송재이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설영준을 놀래주기로 결심하고 일찍 일을 마치고 회사로 향했다.송재이는 일부러 설영준에게 알리지 않고 꽃다발을 들고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설한 그룹의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사무실 빌딩은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 상태였고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송재이는 익숙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 설영준의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멈췄다.무심코 들린 대화 내용은 송재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무겁게 만들었다.“대표님, 정말 송재이와 결혼할 생각인 건가요? 송재이의 출신이 명문대가인 대표님 집안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이는 다름 아닌 문예슬의 목소리였다. 문예슬의 말 속에는 송재이에 대한 경멸과 도발이 담겨 있었다.문예슬은 설영준의 테이블 앞에 서 있었고 얼굴에는 얄미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녀의 눈에는 오래전부터 꾸며왔던 계획이 끝내 성공한 듯한 교활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그리고 문예슬의 손에는 송재이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담은 서류가 들려 있었다. 이 서류들을 얻기 위해 문예슬은 피타는 노력을 들였다.문예슬은
남자들은 28살이 넘으면 다들 그쪽으로 욕구가 강렬한 걸까?오늘 밤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송재이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됐다.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설영준을 잘 알기에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척추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툰 솜씨로 더듬거리며 끝내 그의 성감대를 찾았고 설영준의 무거운 신음과 함께 뜨거웠던 섹스도 마침내 끝났다.“나 다음 달이면 25살이야.”송재이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속옷과 원피스를 주워서 하나씩 챙겨입기 시작했다. 뒤에 달린 지퍼가 손이 닿지 않아 고개 돌려 침대 머리맡에 기댄 설영준을 힐긋 쳐다봤는데 그는 한창 담배에 불을 지피고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송재이는 우아한 자태로 자리에 앉아 긴 머리를 쓸어넘기고 새하얀 등을 훤히 드러냈다.설영준의 눈빛이 그녀의 몸에서 맴돌았다.잠시 후 그나마 신사답게 담배를 지그시 물고 몸을 일으키며 제법 자연스럽게 그녀의 지퍼를 올려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공기 속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나도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야. 나만의 가정을 차리고 싶어.”그녀가 답했다.설영준은 담뱃재를 톡톡 털었다.“우리가 처음 섹스할 때 내가 했던 말을 까맣게 잊었나 봐?”“안 잊었어. 나랑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송재이는 치맛자락을 꽉 잡고는 애써 담담한 척 웃어 보였다.“사실 이 3년 동안 너에게 무척 고마웠어. 내가 가장 힘들 때 나 대신 중병에 걸린 우리 엄마를 위해 신장을 찾아주고 병원비도 대줬잖아. 비록 살려내진 못했지만...”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목소리가 슬픔에 잠겼다.6개월 전, 그녀는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면서 설영준과 이별할 결심을 했지만 마음속에 줄곧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그가 조건이 비슷한 집안의 주현아 씨와 함께 반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완전히 단념했다.애초에 송재이가 설영준과의 이런 관계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 두 사람 다 솔로였다. 설영준은 의젓했고 그녀는 돈이 시급했기에
미행은 절대 아니다. 송재이는 자신이 그럴만한 매력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설영준을 본 순간 그녀는 왜 가슴이 찔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설영준의 눈에 담긴 웃을 듯 말 듯한 기운을 바로 알아챘고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났다.“아는 사이에요?”맞은편에 앉은 지민건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쪽을 바라봤다.하지만 그는 근시이고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하고 렌즈를 착용하지 못해서 눈앞이 희미할 뿐 아무것도 안 보였다.송재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끊었다.“아니요, 몰라요.”곧이어 저번에 쥬얼리샵에서 본 주현아 씨가 나타났다.이제 막 화장실을 다녀온 모양인지 하이힐을 신고 새하얀 롱 원피스를 하늘거리며 설영준의 옆으로 걸어갔다.설영준도 송재이한테서 시선을 거두고는 맞은편에 앉은 주현아만 쳐다볼 뿐 더는 곁눈질하지 않았다.방금 마신 커피가 입맛에 안 맞았던지 혹은 또 설영준을 마주쳐서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별안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지민건은 그녀의 안색이 안 좋은 걸 보더니 집으로 바래다주겠다고 했다.마침 그녀도 같은 생각인지라 가방을 챙기고 그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가게 문 앞까지 가려면 설영준과 주현아를 스쳐 지나야 하니 그녀는 무심코 두 사람을 힐긋 쳐다봤는데 주현아가 한창 수줍은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설영준의 손가락을 매만졌다.설영준도 거침없이 바로 주현아의 손을 꼭 잡았다....돌아가는 길에서 송재이는 유은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소개팅을 잘했냐고 물었다.“어때 재이야? 마음에 들어?”지민건은 옆에서 운전에만 집중했다.송재이는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입을 막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괜찮은 분 같아. 성실하고 착해 보여.”적어도 처음 봤을 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어차피 그녀도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지라 인연이 닿으면 지민건과 더 가깝게 지내볼 의향도 있었다.여기서 제일 뿌듯한 건 당연히 유은정이다. 그녀는 먼저 설영준의 험담을 잔뜩 늘려놓고
그 생각이 든 순간 송재이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지금 이 추측을 입증하기 위해 송재이는 당일 밤에 바로 약국에 가서 임테기를 샀다.빨간 줄 두 줄이라니!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몇 번이고 더 테스트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이제 막 힘겹게 설영준을 단념하고 그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왜 또 이런 치명타를 주는 걸까?임신한 몸으로 남자의 집까지 찾아가 결혼을 다그치는 파격적인 스토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녀는 늘 그런 방식이 존엄도 없고 멍청해 보였다.게다가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건 설씨 일가와 같은 재벌 가문이다.막강한 권력으로 서민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만약 설영준이 그녀가 임신한 걸 알면 기뻐할까?어휴, 당연히 아니겠지.그와 함께한 3년 동안 이 남자가 처음부터 섹스와 결혼을 철저하게 갈라놓는 인간이란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설영준의 아내가 될 사람은 오직 그와 조건이 대등한 정략결혼 상대일 것이다. 주현아와 같은 재벌가 따님이 제격이다.송재이처럼 바람이 불면 휙 쓰러지는 하찮은 존재는 가당치도 않다.그녀는 설영준에게 끌려가 낙태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녀의 가족은 단 한 명도 없다.배 속에 아이는 유일한 핏줄이니 그녀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설도영의 과외를 관둔 송재이는 친한 선배에게 또 다른 학생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선배는 아주 열성적으로 곧장 그녀에게 학생을 찾아줬다.이런 1대1 레슨은 시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낮에는 밴드에 가서 공연 리허설을 하고 밤에는 또 아르바이트를 한 건 할 수 있다.그녀는 배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요 녀석을 위해서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듯싶다.지민건은 송재이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하니 축하하는 의미로 밥 한 끼 사주겠다고 했다.송재이는 수업을 마친 후에야 그 문자를 확인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며 단답형으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송재이는 짜증이 확 밀려와 고개를 돌리고 거들떠보지 않았다.이에 설영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폰을 거둬들이고는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타!”전 애인을 마주할 때 누군들 화려하게 빛나고 싶지 않을까?하지만 오늘 밤 룸에서 그와 마주친 광경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하고 난감했다!송재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휴대폰 앱을 열어서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설영준이 차에서 내려와 긴 다리를 내뻗으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손에 검은색 큰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계단 위에 서 있는 송재이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압적인 포스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이때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말 안 들어?”거만하기 짝이 없고 뭐든 당연하다는 듯한 이 말투, 그녀는 순간 두 사람이 이별하지 않은 줄로 착각할 뻔했다.다만 송재이는 곧바로 사색을 가다듬고 말했다.“설영준 대표님, 고맙지만 나 혼자 할게...”“새 남친 별로던데.”설영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야유의 뜻이 살짝 담겨 있었다.그는 송재이의 다른 한 손을 잡아당겨 그녀를 더 가까이 다가오게 했지만 송재이는 여전히 머리를 높이 들었다.“나랑 헤어지고 결혼한다더니 고작 저딴 자식을 찾아? 재이 쌤, 누굴 엿 먹이는 거야?”설영준은 지금 그녀를 비웃기도 하고 방금 그녀의 처지를 비웃기도 했다.송재이의 얼굴이 처참할 정도로 벌게졌다.그녀는 발끈 화내며 설영준을 째려봤다.“내가 어떤 사람을 찾든 너랑 뭔 상관인데? 오늘 밤에 네가 여기 있단 걸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어.”그녀는 지민건에게 속아서 이리로 왔다.다만 이 점은 굳이 설영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을 확 잡고 두말없이 차 쪽으로 끌어갔다.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그에겐 전혀 소용이 없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설영준은 안으로 차 문을 잠가버렸다.설영준은 줄곧 차가운 표정이었다.매번 이런 표정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