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왜 그래?”설영준의 얼굴색이 안 좋아 보였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위험했다.이런 눈빛으로 바라보니 송재이는 온몸이 굳어지면서 진짜로 자기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아 화가 났다.송재이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서면서 앉아 있는 설영준을 향해 말했다.“영준 씨,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우리가 재결합했지만 나는 당신 외의 이성 친구가 있으면 안 돼? 그리고 나와 서지석은 일반 동료 사이야. 공연이 끝나고 힘들게 연습했으니 식사하면서 간단하게 경축하는 게 보통 아니야?”송재이가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말하니 설영준은 도리어 배를 움켜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맞아. 호들갑을 떤 내가 이상한 거야. 비록 네가 남자 친구가 있지만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결혼하기 전에 다른 선택을 할 권리가 있어. 미안해.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게 아니었어.”설영준은 송재이를 이해한다는 뜻으로 말하긴 했지만 그의 얼굴과 말투는 비아냥거리는 게 틀림없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말을 어떻게 맞받아쳐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설영준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 지금 몸이 안 좋아, 아주 아파.’ 라는 표정으로 송재이를 바라보면서 안간힘을 쓰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느니 가는 게 낫겠다는 뜻인 것 같다.송재이가 다가가 잡으며 말리자 설영준이 두 번이나 손을 뿌리쳤지만 태도가 그다지 강경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강하게 잡으면 설영준이 마지못해 남을 것도 같았다. 송재이는 설영준이 자기와 ‘밀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만류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몸이 불편하면서도 억지부리는 설영준의 모습에 송재이는 어이가 없었다.당당한 그룹 대표가 이렇게 유치하게 행동할 줄 몰랐다. “설 대표님, 진짜 갈 거죠?”문 앞에 서서 문을 열고 한쪽 발을 밖으로 내디디면서 설영준은 송재이가 자신을 완강하게 만류하기를 기다렸지만 갑자기
설영준은 이를 악물더니 이젠 가기 싫어도 가야 했다.올 때는 송재이와 함께 귀국하려고 타산했지만 결국 혼자 경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것도 두 사람이 한 발짝 간격으로 비행기만 따로 타고 경주에 도착했다.기내에서 설영준은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송재이가 적어도 전화는 할 거로 생각했는데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10여 시간 동안 비행해야 했다.갈 때 얼마나 설렜으면 돌아올 때는 그만큼 비참했다.경주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고 곧바로 별장으로 돌아와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세상에서 설영준에게 이런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송재이뿐일 것이다.이튿날 설영준은 문예슬에게 전화를 걸었다.설영준의 이름이 휴대전화에 뜨자 문예슬은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휴대전화를 잡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가 물었다.“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문예슬은 현재 문정 그룹에서 자그마치 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어 일할 때는 퍼그나 카리스마가 넘쳤다.하지만 설영준의 앞에만 서면 마치 갑옷을 벗어버린 듯 소녀 감성으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문예슬이 급급히 약속 장소로 달려오면서 보니 설영준이 통창 옆자리에 앉아 넋이 나간 듯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었다.잘생긴 옆모습과 우뚝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문예슬은 입술을 깨물더니 웃으면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문예슬이 온 것을 보고 설영준은 살짝 고개를 까딱했고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문예슬은 수줍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전에 방현수가 남도에 갔을 때 문예슬 씨가 방현수보고 송재이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백화점 앞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고 먼 곳에서 사진 찍게 한 게 맞죠?”설영준은 문예슬과 인사치레도 없이 바로 주제로 돌입했다.설영준의 한마디 말에 빨간 홍조를 띠며 기대에 차 있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리면서 놀란 눈으로 앞에 앉아 있는 설영준을 보더니 반사적으로 부인했
속으로는 엄청나게 실망했지만 문예슬은 티를 내지 않고 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숙이더니 맞은편에 앉은 잘 생기고 귀티 나는 남자를 보면서 물었다.“제가 뭘 해주길 원해요?”그러자 설영준은 자신의 계획을 문예슬에게 알려줬다.설영준이 알아본 데 의하면 지민건이 요즘 어렵게 재기하여 큰 오더를 따냈다고 한다. 추세를 봐서는 크게 한바탕 해볼 타산인 것 같다.설영준이 문예슬에게 내린 주문은 아주 간단했다. 지민건의 계획을 깨버려 다시 주저앉히는 것이다.문예슬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지민건은 배경도 인맥도 없고 옥살이도 했던 사람으로서 단지 먹고살자고 하는 노릇인데 설영준의 지위와 신분으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설영준은 쉽게 지민건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단지 송재이 때문일까?송재이가 설영준에게 이토록 중요한 사람인가?워낙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예슬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눈빛이 어두워진 문예슬이 갑자기 물었다.“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설영준은 전혀 문예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뜻이 없었기에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마침 문예슬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설영준의 귀찮아하는 모습을 못 보고 입을 열었다.“지금 재이와 떨어져 지내는데 만일 송재이가 남도에서 진짜로 지민건과 함께 밖에 나갔거나 혹은 다른 남자와 그렇다고 해도 재이 가질 거예요?”말하고 나서 고개를 들자 차갑고 날카로운 설영준의 눈빛과 마주치면서 등골이 싸늘해졌다.“송재이예요.”차갑게 한마디만 하고는 더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마치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것처럼.그녀는 송재이이고 설영준의 여자이다.설영준이 송재이를 믿는다고 하기보다 자기 눈을 더 믿는 것 같았다.이 점에 대해서는 문예슬같은 외부인이 질의할 자격이 없었다.문예슬은 설영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를 느끼자 감히 더 깊이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이내 문예슬이 물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지민건의 계획을 깨버릴까요? 여색으로요?”
문예슬이 몇 번이나 지민건과 방현수를 이용해 송재이와 설영준의 사이를 이간질했다.방현수가 벨기에로 떠났기에 문예슬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지민건밖에 없었다. 설영준은 그들끼리 내란을 일으키는 기회를 타 지민건을 무너뜨리려고 했다.문예슬을 놓고 말하면 이 일은 유일하게 설영준에게 당당하게 연락할 수 있는 기회이다.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지만 그래도 문예슬은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설영준의 사무실로 오면서 문예슬은 치장에 퍼그나 신경을 썼다.문소리가 들리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든 설영준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솔직히 말하면 문예슬의 얼굴과 몸매는 아주 괜찮았으며 남자들이 좋아하는 글래머 스타일이다.문예슬도 자신의 강점을 알고 있었다.설영준의 눈빛은 차가웠고 공적인 태도였으나 문예슬은 기죽지 않고 입술을 깨물면서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어제 말씀하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할게요.”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설영준의 등 뒤로 다가갔다.설영준이 움직이지 않자 손을 내밀어 설영준의 어깨를 다치려는 순간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설영준은 키가 상당히 컸고 분위기가 날카로웠다.오랫동안 고위직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습관적으로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런 눈빛은 오히려 더 강하게 문예슬을 유혹했다.문예슬은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어릴 때부터 신분이 높은 남자들도 많이 봤지만 설영준처럼 치명적인 설렘을 느끼게 하는 남자는 없었다.설영준이 쌀쌀하게 대할수록 문예슬은 설영준에 대해 더욱 큰 흥미를 느꼈다.설영준이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미 동의했으니 그럼 계획을 다시 정리해 보죠. 지민건의 오더를 망가뜨리기만 하면 오더 금액의 30%를 보수로 줄게요. 어때요?”솔직히 상당히 많은 금액이었다.하지만 문예슬은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고 가지고 싶은 건 따로 있었지만 설영준이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팠다....이튿날 아침 문예슬은 서주
문예슬의 통곡 소리에 설영준은 귀가 따가워 급히 휴대전화를 멀리 잡았다. 문예슬이 서주에서 당한 봉변을 듣더니 설영준의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졌다.한낱 공장 대표가 문예슬에게 그런 일을 할 줄은 생각 못 했다.휴대전화를 잡고 문예슬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호텔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문예슬은 절망감과 동시에 이상한 흥분감을 느끼면서 조용히 호텔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호텔방 번호를 설영준에게 발송했다.하지만 밤이 되어 도착한 건 설영준이 파견한 두 명의 여의사와 생활을 보살펴줄 도우미 한 명이 도착했다.여의사가 도착해서 먼저 문예슬의 몸을 샅샅이 검사한 뒤 피임약을 복용하게 하였고 그리고서 심리치료를 시작했다.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문예슬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설 대표님은 안 오세요?”심리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녀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면서 말했다.“설 대표님은 일이 바빠 저희한테 부탁했어요.”그 말을 들은 문예슬은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설영준을 위해 이렇게 큰 봉변을 당했는데 정작 본인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설영준은 이런 방식으로 문예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도리는 다했고 상처받았다고 절대 감정으로 보상하지 않을 것이며 억지로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명확히 보여줬다.의사들이 가고 난 뒤 문예슬은 혼자 방에 앉아 있었다.하룻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 문예슬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잠결에 문예슬은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보니 지민건이 서 있었고 급히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문예슬은 지민건의 기세에 놀라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이내 잡혀버렸다.“문예슬,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얼마나 어렵게 따낸 오더인데 네가 왜 망가뜨려? 대체 왜?”지민건은 문예슬이 당한 봉변을 모르기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계약이 코앞까지 와서 이 여자 때문에서 엎어졌다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문예슬의 두손이 지민건에게 잡혀 꼼짝할 수가 없게 되자 그제야 자신이 두
앞에 서 있는 송재이를 보자 문예슬은 자리에서 일어나 울먹거리며 말했다.“재이야...”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그녀의 품으로 와락 안겼다.순간 깜짝 놀란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문예슬의 등을 토닥였다.비록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내 문예슬을 부축해서 들어갔고, 주방에 가서 물 한 잔을 따랐다.다시 걸어 나왔을 때 거실에 앉아 있는 문예슬은 마치 억울한 일이라도 당해서 크게 상처받은 듯 눈시울이 새빨갰다.송재이는 곁에 앉아 한참이 지나서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그제야 문예슬은 서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었고, 심지어 설영준의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대표님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더라면 그런 짓을 왜 했겠어? 이제 문제가 생기니까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돈으로 무마시키려는 작정인가 본데 날 너무 우습게 보고 있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그리고 세상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심신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건 사실인지라 결코 연기는 아니었다.설영준에게 틈만 나면 전화도 하고 카톡도 보냈지만 돈만 이체했을 뿐 감정적인 보상은 전혀 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사실 속으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스라이팅해서 설영준이 영원히 죄책감을 느끼게 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예전처럼 찬밥 신세가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하지만 어디까지나 큰 오산에 불과했다.그에게 자신은 고작 업무의 일종에 불과했다.당시만 해도 나중에 잘 마무리되면 커미션을 두둑이 챙겨주겠다고 분명히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돈으로 보상하는 것을 제외하고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결국 문예슬은 송재이를 붙잡고 고해성사했다.“대표님은 정녕 고작 돈 몇 푼으로 내 결백을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날 밤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남자가 너무 징그럽고 나 자신이 너무 역겨워. 재이야, 이제 어떡하지...?”송재이는 어리둥절했다.그녀가 성폭행당
기분이 울적한 와중에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곧이어 정신이 번쩍 들면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며 훌쩍거렸다.이내 박윤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윤찬은 송재이가 울먹이는 낌새를 단번에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요?”하지만 문예슬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말할 수 없는 법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지 않은가?“아니에요.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를 봤더니 감동해서 그만...”박윤찬은 반신반의했지만, 송재이의 태도를 보니 딱히 언급할 생각이 없는 듯해서 더는 캐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휴대폰으로 잠시 대화를 주고받았다.“영준 씨 요즘 무슨 일이 있어요? 계속 딴생각하는 것 같던데 둘이 또 싸운 건 아니죠?”그는 설영준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송재이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못 짚은 게 분명했다.송재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문예슬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설령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어쨌거나 성폭행을 당했으니 당사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기에 설영준도 미안하기 마련이다.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때, 어쩌면 이게 바로 문예슬의 진정한 목적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문예슬이 굳이 설영준 때문에 성폭행당했다는 일을 그녀에게 얘기해준 것도 동정심 유발 작전일 가능성이 컸다.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봉변을 듣고 한 귀로 흘러 내보내지는 않을 테니까.송재이는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이며,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그동안 설영준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연락을 안 했다.그녀도 전화는커녕 문자조차 보내지 않았다.행여나 한가할 때라도 있으면 문예슬 사건이 생각나서 일부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몰아쳤다.이로 인해 문예슬이 받은 상처와 간접적으로 그런 피해를 준 원흉을 생각하면...‘설영준.’송재이는 속으로 설영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되뇌었다. 게다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노트에 적기까지 했다.종이를 가
설영준은 입을 꾹 닫았다.그리고 한 걸음 다가가서 물었다.“너한테 얘기해줬어?”“뭘?”송재이는 알면서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게 뻔했다.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고의는 아니었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상처받은 건 사실이잖아.”“난 단지...”“이게 다 네 탓이야!”송재이는 이미 문예슬 사건 때문에 한바탕 울었다.그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떠올릴 때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때, 설영준이 한 걸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비록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의 손아귀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새빨개진 그녀의 눈시울을 보자 곧바로 품에 덥석 끌어안았다.설영준의 품에 안기는 순간 송재이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당신 때문에 그런 봉변을 당했는데 고작 돈으로 보상해주다니...”“아니면 뭘 해주길 바라는데?”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재이는 설영준을 확 밀어냈다.지금은 그와 단 한 순간이라도 같이 있기 싫었다.비록 이성적으로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설영준 때문에 문예슬이 봉변을 당한 것도 불변의 진실이었다.설영준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녀에게 밀려나 문밖에 서 있었다.그리고 문이 눈앞에서 닫혔다.이내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팔을 내려놓았다.결국 한참 동안 입구를 서성이다가 뒤돌아서 떠나갔다.송재이는 적어도 당분간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당일 점심, 밥 먹으러 내려갔던 송재이는 빌딩 입구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상대방은 누가 봐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빠르게 다가왔다.넋을 잃은 송재이는 잽싸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아버님?”그는 바로 유은정의 아버지 유중건이다.유은정이 여행을 떠난 이후로 어언 6개월이 넘도록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고 다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송재이는 가끔 카톡으로 유은정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기분 전환이 많이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