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찬은 아까보다도 어두운 설영준의 표정을 보면서 오늘 문예슬을 부른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설영준이 화가 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영준을 화나게 만든 결정적인 물건이 벨트라는 것을 몰랐다. 박윤찬에게 벨트를 선물해준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몰랐다. 설영준이 보는 앞에서 박윤찬은 벨트의 포장지를 뜯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박윤찬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맞은 편에 앉은 남자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박윤찬의 손에서 벨트를 뺏어 들고는 말아서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선물을 돌려보내고 윤찬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하세요.”설영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군더더기 없는 말을 뱉었다. 이에 어리둥절해진 박윤찬이 말했다.“저한테 왜 안 어울린다고 그래요? 저는 이 벨트가 마음에 드는데요...”“여자가 남자한테 벨트를 선물하는 건 남자를 자신에게 얽매이게 하겠다는 의미예요.”설영준은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들어 박윤찬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윤찬 씨는 저 여자의 남자입니까? 이미 그렇게 된 거예요, 아니면 그럴 예정인 거예요?”뒤에 따라온 두 마디의 물음은 박윤찬의 등골이 오싹하게 했다. 다행히 설영준은 그저 그를 한번 보기만 하고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아직 절반 남은 담배가 들려있었고 두어 번 빨더니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렸다.“돌려보내면서 무슨 뜻인지 물어봐요.”이는 설영준이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박윤찬이 대신해 말을 전하라고 했다. 어떤 말들과 일들에 대해서 설영준은 체면을 차리고 있었다. 박윤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설영준은 곁에 있던 정장 외투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설영준은 빌딩 꼭대기의 옥상으로 갔다. 바람이 불어오자 그는 머리가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 안에는 박윤찬 홀로 남아있었고 연초의 냄새가 아직 은은하게 풍겨왔다. 그는 깊게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송재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재이 씨가 준 선물은 정말 고마워요. 아주 마음
이튿날, 문예슬은 자기 회사에 있으면서 퀵 서비스로 보내온 택배를 하나 받았다. 열어보니 어제 그녀가 박윤찬에게 건넸던 벨트 두 개가 들어있었다. 이 상황은 그가 이미 송재이랑 연락을 했다는 건가? 문예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진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통날 줄 몰랐다.문예슬은 온종일 송재이가 자신에게 이 일에 대해 따지는 카톡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도 송재이에게서 온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했다. 결국, 문예슬은 참지 못하고 송재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송재이는 문예슬이 보낸 장문의 카톡을 보고 자신의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자신이 쇼핑 백을 착각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오해라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송재이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고는 문예슬이 스스로 광대 짓을 계속하게 놔두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송재이가 저번에 경주로 갔던 것은 입원해 있던 도경욱의 병문안을 하기 위해서였기에 일정이 촉박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예상치도 못하게 설영준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아무 의미 없던 원나잇일뿐이었지만 떨어뜨린 일정 노트가 그녀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작은 소란을 폭로하게 되었다. 송재이는 남도에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후에야 자신이 평소에 늘 갖고 다니던 A5 일정 노트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설영준은 마침 차를 몰고 송재이의 아파트를 지나게 되었고 예정에 없었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불쑥 거기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소파의 카펫 아래서 우연히 송재이의 일정 노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설영준은 송재이가 일정 노트에 끄적거리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그는 앉아서 무심코 노트를 펼쳤다. 노트의 페이지마다 일에 대한 주의사항과 그 일이 완성도가 쓰여있었다.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그는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송재이의 글씨체는 아주 깔끔했는데 휘갈겨 쓴 글씨가 아니라 오히려 초등학생이 또박또박 쓴 글씨처럼 예뻤다. 그 일정 노트
그 일정 노트를 송재이는 거의 일 년을 썼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녀는 미세한 강박증이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그녀는 노트에 그날의 스케줄을 적는 습관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적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매일 해야 할 업무와 일상생활을 기록했다. 지금 갑자기 노트가 곁에 없으니 아주 불편했다. 송재이는 일 년에 노트를 하나씩 썼는데 올해의 노트는 다 쓰기도 전에 잃어버려서 무척 속 시끄러웠다. 강박증이 말썽을 부렸다. 그녀는 자신이 일정 노트를 어디에다가 놓았는지 생각해내려고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때 경주로 갔을 때 아파트에서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노트를 경주에 놓고 온 건가?’송재이는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휴가를 또 내기가 어려웠다. 경주 아파트의 열쇠는 하나가 자신한테 있고 하나는 설영준이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열쇠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송재이는 휴대폰을 꺼내 설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지만, 이 메시지는 결국 보내지 못했다.송재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박윤찬과의 카톡 창을 열었다.「박 변호사님, 제가 갖고 다니던 일정 노트를 경주집에 놓고 온 것 같아요. 내일 제 열쇠를 보내드릴 테니 저의 집으로 가서 찾아봐 주실 수 있습니까?」30여 분 후, 박윤찬에게서 답장이 왔다.「알겠어요. 열쇠를 보내주세요. 영준 씨가 아파서 방금 입원 절차를 진행하느라 답장이 늦었어요.」뒤에 덧붙인 말은 무심코 하는 말 같아 보였다. 카톡을 보낸 후, 박윤찬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입원서류를 들고 병실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지금 설영준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기대서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박윤찬은 동정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웃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영준 씨, 오랜만에 병원 치레를 하네요. 왜 그러죠? 몸도 마음처럼 나약해진 거예요?”설영준은 박윤찬의 말에 불만
사실 송재이도 자신이 설영준의 상태에 관해 관심을 건네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더 큰 나비효과를 불러와서 수습이 안 될까 봐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그를 더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잠자리만 함께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송재이에게는 이런 기울어진 관계가 쉽사리 그에게 많은 것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녀 하나 정도는 없어도 됐다. 하지만 송재이는 곧 박윤찬이 보낸 카톡을 받게 되었다. 카톡 창을 열자 한마디가 보였다.「재이 씨, 경주에 한 번 오세요. 영준 씨가 보고 싶답니다.」보고 싶다.보고 싶다고 했다.“...”...독한 감기는 설영준을 평소보다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는 송재이가 자신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당연히 화가 났다. 설영준이 박윤찬한테 보내라고 했던 메시지 내용은 당장 이리로 튀어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박윤찬도 예의가 있고 알만한 사람이므로 당연히 송재이에게 그렇게 노골적이고 거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살짝 내용을 순화하여 여러 멘트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메시지를 보낸 후, 박윤찬은 웃음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재이 씨가 오든 말든 나는 더는 두 사람의 메신저를 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바빠요. 두 사람의 사랑놀이에 관여할 여유가 없습니다.”설영준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리고 시선은 창밖을 계속 보고 있었다....송재이는 자신이 정말 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경주로 가는 비행기에 앉는 순간까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설영준의 말 한마디에 만사를 제쳐두고 돌아가고 있는가, 그가 자신이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박윤찬이 그녀에게 전달한 것이고 설영준이 직접 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에게로 가고 있다. 마치도 돌아가서 그와 만날 수 있는 핑계가 생긴 것처럼 말이다. 그가 자신을 보고 싶어
‘이제 금방 왔는데 내쫓는다고?’박윤찬이 카톡에서 얘기한 내용은 설영준이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역시, 사실이 아니었어...’송재이의 마음속에서 서러운 기분이 몰려왔다. 그녀가 뒤돌아 병실을 나서려고 문을 열었는데 마침 노크를 하려던 박윤찬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박윤찬이 웃으며 말했다.“왔어요?”이윽고 그는 얼굴에 있던 웃음이 굳어지더니 물었다. “왜 울어요?”설영준 때문에 화가 난 송재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그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데 박윤찬이 눈치 없이 콕 집어 말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코를 킁킁거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감기인가 봐요. 대표님한테 옮길까 봐 저 먼저 갈게요...”박윤찬은 그녀를 불러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옆을 지나 빠르게 자리를 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였다. 잠시 후, 시선을 돌린 박윤찬은 설영준의 시선이 여전히 문 앞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박윤찬은 이미 다 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여기까지 온 사람 왜 또 쫓아내고 그래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내가 가라고 하면 바로 가잖아요. 다른 때에는 이렇게 말을 잘 듣지도 않으면서!”설영준은 굳은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설영준은 하루만 수액을 맞았다. 한편, 송재이는 병원을 떠나 바로 아파트로 왔다. 그녀는 아파트를 꼼꼼히 다 뒤졌지만, 자신의 일정 노트를 찾지 못했다. 집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허탕이었다.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휴식하면서 머릿속에는 노트를 어디에 잃어버렸을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하나 새로 바꿔야 했다. 밤에 송재이는 아파트에 묵었고 아무리 뒤적거렸고 잠이 오지 않았다. 전에 설영준과 함께 여기서 생활할 때 사소한 일상들, 불꽃이 튀던 날들을 생각하다가 낮에 병원에 갔을 때 이상하리만큼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던 그를 생각하면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지 못했다. 왜인지
설영준은 병이 완전히 완쾌된 건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퇴원을 고집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의 퇴원을 동의하지 않았었다.오후, 박윤찬이 또 사무실로 그를 찾아왔다.설영준은 창백한 안색으로 양복 차림을 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하게 서류를 정리했다.“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박윤찬이 그에게 말을 건네자, 설영준은 손에 들고 있던 필을 멈칫하더니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그쪽이 뭘 안다고 그래요?”“재이 씨는 갔어요?”박윤찬이 이어서 물었다.그 말에 설영준은 팔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현재의 그는 송재이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여긴 왜 왔어요?”설영준은 그녀의 일에 대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박윤찬이 그의 맞은편에 다리를 포개며 앉았다.“원래는 공적인 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왔어요. 근데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때마침 어떤 여자랑 부딪혔거든요. 그 여자가 저한테 어떤 일들을 털어놓았는데, 설영준 씨가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 일 듯하네요. 어떤 일인지 듣고 싶지 않아요?”현재 기분이 좋지 않은 설영준은 박윤찬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저한테 말해주려거든 얼른 하고, 아니면 그냥 가세요. 저 아직 할 일이 많거든요.”“송재이 씨 관련된 일입니다. 남도에서 누군가가 재이 씨를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때요? 듣고 싶지 않아요?”그 말에 설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박윤찬을 쳐다봤다.박윤찬은 그 모습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히 웃어 보였다.“누군가가 재이 씨 같은 분을 좋아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죠. 하지만 재이 씨를 좋아한다는 그 사람, 아마 설영준 씨가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박윤찬은 말을 마친 뒤 자신의 표현이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사실 그 누가 송재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설영준은 전부 다 싫다고 느껴질 것이니 말이다.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설영준의 모습을 보고 더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박윤찬은 조금 전 변호사 사무실 아래층에서 문예슬을 만났다고 직접적으
설영준은 문예슬의 그 속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그는 자신이 방현수가 송재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지 않았다.게다가 박윤찬도 문예슬이 셔츠를 전달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가 송재이와 방현수의 소식을 이야기 해줬다고 했었다.박윤찬과 설영준은 서로 관계가 좋은 친구라 할 수 있다.하여 박윤찬이 알고 있다면, 설영준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즉, 이건 문예슬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다.하지만 방현수와 송재이가 남도에서 만나 영화를 같이 본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비록 방현수가 올린 영화표 두 장 사진에 송재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설영준은 거기에 송재이도 있었을 거라 믿고 있다.그렇다, 그는 지금 질투하고 있다.누군가가 살짝만 도발해도 그 질투는 쉽게 폭발해 버릴 것이다.조금 전 박윤찬 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그것은 사실 폭풍우가 오기 전 고요함과도 같다.…송재이가 학교 쪽 주임에 의해 사무실로 불려 갔다.주임은 그녀에게 정교한 VIP 입장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학교 본부와 광고 투자자가 조직한 고급 무도회 입장권이었다.논리적으로 말하면, 막 입사한 신입 교사는 그런 곳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하지만 원래 초청을 받았던 선생님 중 한 분이 아이가 아파 참석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하여 그 기회는 송재이에게 주어지게 되었다.사실 송재이는 이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자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주임이 그녀를 생각해서 입장권을 준 이상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무도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의 선생님이었다.그중에서 세 명은 송재이 보다 조금 어렸다.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았으니,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가는 내내 기분이 좋은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송재이도 그녀들의 즐거운 분위기에 점차 물들어갔다.이때 그 여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꺼냈다.“이번 광고 투자자 중에 설한 그룹도 있대요. 설영준 대표님도 참석하시려
이왕 무도회장 파티에 초대된 거니, 송재이는 쭈뼛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누군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요청했고, 마침 시간도 맞아떨어진지라 자연스럽게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송재이는 이 모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다만 한 곡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그녀는 틈틈이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을 찾으려고 시도 때도 없이 옆을 두리번거렸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노래 한 곡이 다 끝나갈 때쯤, 맞은 편의 남자가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연락처 좀 줄 수 있을까요? 이제 시간 날 때 다시 데이트 신청하려 하는데…”“죄송하지만 이 사람 시간 없어요.”송재이가 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 뒤로 웬 남자가 걸어오며 그녀의 답을 가로챘다.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설영준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지난번, 방현수와 춤을 출 때도 설영준에게 들켰었다.이번에는 다른 남자와 춤을 추면서 또 그에게 들켜버린 것이다.송재이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그를 모르는 척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설영준이 한 발짝 다가서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손아귀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한편, 맞은편의 남자 또한 설영준이 경주에서 부자이자, 설한 그룹의 대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설영준과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고, 설영준의 아우라에 단번에 압도되었다.하여 그는 얼른 핑계를 대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그렇게 그 자리에는 설영준과 송재이 두 사람만 남았다.송재이는 멍하니 스테이지 쪽에 서 있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설영준을 바라봤다.“여긴 어떻게… 왜 또 당신인 거야?”그녀는 진심으로 놀랐지만, 설영준의 귀에는 그 말이 좋지 않게 들렸다. 경주에 있을 당시,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쫓아냈었다. 그녀는 그의 말대로 아직 입원 중인 그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순순히 떠났다.하여 설영준은 그녀가 그 말만 기다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그래야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