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는 그제야 얼굴을 돌려 머리가 새집처럼 헝클어진 남자, 아니 소년을 보았다.소년의 귀에는 다이아몬드 같은 귀걸이가 반짝였는데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송재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물었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AIDS? 미쳤어요?”주변이 시끄러웠다.송재이는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하지만 소년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손가락으로 건너편의 유은정을 가리켰다. “제대로 못 들었어? 그럼 저 여자한테 물어봐.”문예슬과 송재이는 동시에 유은정을 바라보았다.유은정은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고, 불안한 듯 천천히 쪼그려 앉아 몸을 꼭 끌어안았다....유은정은 송재이에게 메시지로 단지 기분이 나쁘다고만 했었고, 송재이는 그저 남자친구와 다투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술을 마시며 유은정의 감정은 서서히 진정되었다.그녀는 최근의 일을 이야기했는데 그녀의 기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지난달, 유은정은 약혼자 하지현에게 이별을 고했다.하지현은 결사반대했고, 유은정 본인 또한 감정에서 단호하지 못해 그의 끈질긴 애원에 반달 정도 더 끌고 말았다.그러다 우연히 하지현이 밖에서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끔씩 레진 호텔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유은정은 하지현을 몰래 따라갔었다. 최악의 경우는 하지현이 바람을 피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문을 열었을 때, 상반신은 벌거벗은 채 아래엔 수건만 두른 남자가 문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유은정과 하지현은 7-8년 동안 연애해 왔는데, 캠퍼스 커플로 시작한 그가 이런 취향을 가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방으로 돌진해 하지현과 싸우기 시작했다!이별에 대해 망설였던 그녀는 이런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결심을 굳혔다.유은정은 수치심 때문에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마음이 진정된 후에야 하지현과의 이별 소식을 알리려 했다.그러나 3일 전, 하지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송재이가 유은정을 위로할 때 누군가가 그녀들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줄곧 눈치채지 못했다.결국 방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송재이 쪽으로 걸어왔다.“송재이 씨...”송재이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나타난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를 바라보더니 잠시 멍해졌다.“누구세요?”방현수는 가볍게 웃었다.‘역시 날 잊었네.’다만 그는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방현수에요. 몇 달 전 연지수 씨가 주최한 축하 파티에서 우리 함께 춤췄었죠.”방현수?그녀는 이 이름이 매우 익숙했다.곧이어 송재이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났다.그러니까 그때 주현아가 그녀를 속여서 호텔로 데려간 후 찾아준 남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고?“저 생각났어요.”송재이도 가볍게 웃었다.“오랜만이에요 방현수 씨.”못 본 사이로 송재이가 또 더 예뻐진 것 같았다.바 안의 불빛은 흐릿하고 어두웠다.주위의 음악도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이토록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홀로 피어난 꽃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웠다.그날 방현수는 송재이와 호텔에서 함께할 기회를 설영준에게 양보했다.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조금 남아 있었다.그녀는 왜 하필 설영준의 여자일까?올해 27살인 방현수는 학교 다닐 때부터 대시하는 여자가 많았고 연애할 때도 대부분 상대가 그를 더 많이 좋아했었다.한편 그가 항상 먼저 이별 통보를 내리는 쪽이었다.그러다 보니 멀리 바라볼 뿐 갖지 못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겪어본 적이 없다.그는 같은 테이블 친구에게 얘기했다.곧이어 송재이네 테이블에 찾아와 그녀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유은정은 한참 울고 나니 눈물이 거의 메말랐고 송재이가 친구를 마주치자 서서히 마음을 추슬렀다. 다만 그녀는 밤새 동안 그다지 말이 없었다.문예슬은 방현수의 옆에 앉았다.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방현수가 테크놀로지 회사의 재무팀이란 걸 알게 됐다.사실 일반인들 가운데 그의 직급은 너무 낮은 축이 아니었다.방현수는 꽤 잘생겼다. 물론 설영준과 비하면 훨씬 뒤
유은정은 전날 과음하여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서야 송재이를 따라 병원에 갔다.문예슬은 송재이에게 전화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다고 했다.송재이도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유은정에게 말했다.유은정은 안색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한참 후에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걔 지금 내가 싫어서 그래. 내가 병 옮길까 봐 두려운 거야...”송재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얼른 그녀를 위로했다.“아니야. 예슬이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친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문예슬이 몸을 사릴 리가 있을까?송재이가 알고 있는 문예슬은 비록 돈 많은 재벌 2세이지만 다른 흔한 재벌가 따님들처럼 교태를 부리고 오만한 게 아니라 온화하고 털털한 사람이다.본인이 좋아하는 남자가 절친과 함께한 걸 알았을 때도 화낸 건 맞지만 얼굴까지 붉히진 않았다.두 사람은 그저 며칠 동안 어색하게 지내다가 지금은 여전히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낸다.바로 이 일 때문에 송재이는 문예슬을 다시 보게 됐다. 그녀가 참 너그러운 사람인 것 같았다.하지만 유은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지금은 그녀가 제일 나약하고 예민한 시기이다.문예슬이 진짜 병이 전염될까 봐 꺼린다 해도 유은정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실망스러운 마음을 추스를 뿐이다.채혈은 금방 끝났고 의사가 말하길 사흘 뒤에 결과를 조회하러 오라고 했다.유은정은 줄곧 넋이 나간 상태였고 의기소침해져서 말수도 훨씬 줄어들었다.송재이는 그녀에게 아래층 식당에 가서 뭐라도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이에 유은정은 입맛이 없다고 했다. 보다시피 그녀는 요 며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만약 진짜 감염됐다고 결과가 나오면 무조건 하지현 그 새끼 고소할 거야. 망할 자식이 내 인생을 망쳤어!”유은정은 지금 그를 언급하기만 해도 치가 떨리고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송재이는 그런 그녀가 너무 이해됐다.유은정은 끝내 송재이의 고집에 못 이겨 병원 식당으로 끌려갔다.송재이는 그녀를 창가 쪽에 앉힌 후
박윤찬도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고 엄마를 힐끗 바라봤다.송재이는 표정이 굳고 난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성수연은 자신이 실례를 범한 걸 바로 알아챘다.그녀도 나름대로 학업에 조예가 깊은 고학력자였다. 남편 따라 이민하고 나서 전업주부로 지낸 게 아니라 학술계에서 꽤 훌륭한 직업에 종사했고 짬짬이 공부하여 박사 과정까지 수료했다.“죄송해요, 재이 씨. 초면에 제가 너무 사적인 질문만 했네요.”성수연은 미안함을 표하며 머쓱하게 웃었다.그녀는 이 여자아이가 첫눈에 마음에 들어서 어느새 며느리로 삼고 싶은 욕심까지 생겨났다.세 사람은 제 차례가 될 때까지 담소를 나눴다.송재이는 자신과 유은정의 밥을 챙겼고 박윤찬은 엄마와 함께 먹을 밥을 챙겼다.이어서 네 사람이 한 테이블에 합석했다.유은정은 박윤찬과 그의 엄마까지 함께 밥 먹는 걸 딱히 개의치 않았다.다만 지금 마음이 심란하고 건강검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될 뿐이다. 만약 진짜 감염됐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게 민폐는 아닐지, 본인들에게 옮길까 봐 꺼리는 건 아닌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꼭 마치 문예슬처럼 말이다.그녀는 오늘 아침 유은정이 병원에 검진받으러 오는 걸 뻔히 알면서 아직도 전화나 문자 한 통이 없다.“은정아, 왜 안 먹어?”송재이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유은정을 발견했다.유은정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젓고는 억지로 음식을 한 점 집었다....식사를 마치고 성수연은 또다시 두통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방금 박윤찬과 수다를 떨 때 사실 송재이는 그녀의 엄마도 생전에 두통을 앓고 계시다가 나중에 고향 마을 한 이웃의 소개로 엄마를 모시고 집에 가서 아주 유명한 한의사에게 병을 보이고 한약을 지어드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그녀의 엄마는 이 처방대로 3개월 동안 한약을 먹었더니 기적처럼 두통이 싹 사라졌다.“아주머니, 내일 제가 시간 내서 그 약 처방을 찾아드릴게요. 우선 한의사분께 참고해드릴 수도 있잖아요.”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 엄마에게 맞는 약이 다른 사
유은정의 검진 결과는 사흘 뒤에야 나온다.이 세 날이 그녀에겐 3년처럼 느껴졌다.송재이는 유은정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저녁에 또 카톡을 보내 밥을 잘 챙겨 먹고 허튼 생각 말고 푹 휴식하라고 당부했다.한참 후 유은정으로부터 장문의 답장이 왔다.[이전에는 항상 내가 젊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중에 천천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 인제 보니 사람 목숨이 이토록 나약하고 별 거 없더라. 만약 진짜 감염됐다면 병으로 죽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난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망가지는 내 몸을 마주 하고 싶지도 않고 딴사람들 경멸의 눈빛과 삿대질을 받고 싶지도 않아. 여긴 결국 강자만 추구하는 사회야. 정말 무슨 일 생긴다면 과연 몇 명이나 우리 옆에 의롭게 서 있겠어?]유은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라는 문자를 본 순간 화면을 사이에 두고도 그녀의 비통한 심정을 가히 느낄 수 있었다.송재이는 카톡으로 여러 번 글을 수정하며 적절한 말로 유은정을 다독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만약 그녀였어도 지금 온 세상이 망할 것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유은정을 진정 무너뜨리는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과 압력이 더 클 것이다.어쨌거나 모두가 AIDS라는 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전염 경로도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유은정이 분명 아무것도 안 했지만 외부인들은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악의적인 해석을 만들어낼 게 뻔하다.이는 한낱 젊은 여자아이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송재이는 마음이 심란해졌다.그녀는 카톡을 보내려다가 결국 손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송재이는 방안에 앉아서 잠시 울다가 저녁에 하필 또 생리가 와버렸다.유산한 후 그녀는 생리가 올 때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설영준이 돌아오고 문밖의 인기척 소리를 들었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그렇게 방안에서 움츠리고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설영준은 현관에
송재이는 비몽사몽 한 채 두 눈을 비볐다.설영준은 그녀를 보지 않고 곧게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밖에서 들리는 기척으로 보아 업무상의 일인 듯싶었다. 그의 말투가 매우 엄숙했으니까.송재이는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탁자 위에 놓인 생강차를 발견했다.그녀는 미간을 구기다가 설영준이 나간 방향을 다시 응시했다.‘그러니까 방금 생강차 우리려고 나간 거야?’이런 일은 설영준에게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송재이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마음이 은근 따뜻해졌다.설영준의 이토록 자상하고 다정한 행동은 그녀에게 꽤 큰 시너지 효과를 준다.그녀는 애초에 이 남자에게 어떠한 기대도 안 품었다.0부터 시작하는 단계라 그의 모든 섬세한 행동이 그녀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한겨울의 따스한 햇살을 누가 마다할까?송재이는 왜 항상 설영준 앞에만 서면 마음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건지?처음엔 그저 이 남자와 함께 눈앞에 닥친 하루하루를 살아갈 생각이었지만 이젠 저도 몰래 그와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송재이는 생강차를 손에 들고 멍하니 넋을 놓아 버렸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설영준은 생각에 잠긴 그녀를 발견했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서 송재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안 마셔?”송재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생강차를 마셨다.설영준은 뭔가 생각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넌 왜 이렇게 탈이 많아?”송재이는 차를 다 마시고 입을 닦으며 무고한 표정을 지었다.“뭐?”설영준은 더 말하지 않고 손을 흔들더니 생강차를 건네받고 자리를 떠났다.본인이 키우는 못난 여자아이니까 꾸짖기도 귀찮다는 식이었다.송재이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제 막 그에게 잔잔한 감동을 받았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확 잡쳤다.그녀는 괜히 의미심장한 척하며 말을 하다 마는 사람이 제일 싫었다. 그녀에게 끝까지 다 말하는 건 본인 지능만 떨어트리는 격이라고 비꼬는 것 같았다....그날 밤 송재이의 생리량이 어마어마했
송재이는 어느덧 설영준이 해주는 요리에 적응됐다.처음엔 놀랍고 어쩔 바를 몰랐지만 이젠 습관이 돼버렸다.두 사람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송재이는 비록 일반 가정 출신이지만 엄마가 밥상 예절을 잘 가르쳐줘서 항상 예의 바르고 다소곳하게 임한다.밥 먹을 때 쩝쩝거리는 법이 없고 국물을 마실 때도 매우 조용하게 마신다.그녀는 설영준이 해준 미트볼을 유독 좋아한다.한 그릇 다 먹고 모자라서 또 더 먹으려 했다.이때 마침 설영준이 젓가락을 들고 그녀가 집은 미트볼을 채갔다.송재이는 그가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란 걸 알아채고 더 말하지 않았다.설영준은 방금 집은 미트볼을 그녀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괜찮아. 너 먹어!”“누가 먹든 다 똑같아.”설영준이 답했다.이건 마치 두 사람이 하나가 될 정도로 친밀해져서 미트볼도 누가 먹든 차이가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송재이는 머리를 더 푹 숙였다.설영준은 시선을 올리고 그녀를 쳐다봤다.그녀 또한 이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오늘 아침 침대 시트에 피를 묻힌 건 너무 창피한 일이라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설영준이 하필 발견해버렸다.송재이는 치부를 들킨 것처럼 한순간 그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그녀가 줄곧 피하기만 하니 설영준도 분노가 슬슬 차올랐다.그는 이젠 둘 사이가 달라진 줄 알았다. 적어도 연애의 느낌이 조금은 난다고 여겼다.송재이가 그를 더 믿어주고 기대게 될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건 설영준의 착각이었다.그녀는 결국 이 남자를 남처럼 대하고 있다!오늘 원래 집에서 그녀와 함께 있어 주려 했는데 문득 기분이 잡쳤다.마침 여 비서가 기업 인수 건으로 보고드릴 내용이 있다고 하니 설영준은 회사에 다녀왔다.그가 떠난 후 송재이도 한숨을 돌렸다....그제야 어제 박윤찬 엄마에게 두통을 치료하는 약 처방을 찾아드리겠다고 약속한 일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까마득히 잊을 뻔했다.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침실에 돌아가서 물건을 한바탕 뒤졌다.무릇 엄마의 물건이라면
요즘 오케스트라 동료들은 다들 연지수와 대화하길 꺼린다.연지수는 아예 입을 꾹 틀어막거나 말만 꺼냈다 하면 화약을 삼킨 듯 닥치는 대로 상대를 저격한다.다들 몇 번 당한 후 그녀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연지수가 지나간 후에야 서유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있잖아요. 연지수 씨가 글쎄 수석으로 참석한 연주회에서 연속 몇 번이나 음정을 틀린 거 있죠. 오늘 오전에 단장님 사무실로 불려 가서 호되게 혼났대요. 서 전무님 면을 봐서 수석 자리를 겨우 지켜내는 거예요...”송재이는 알겠다며 답했다.다른 사람들은 연지수가 지금 잠시 컨디션이 저조하다고 여길 테지만 송재이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건 분명 서도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애초에 서도재의 등장은 연지수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과 같았고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지만 지금은 되레 발목을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또 혹은 두 남녀가 서로 물어뜯고 서로를 지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송재이는 이런 일에 일절 평가하지 않는다!...유은정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송재이는 매일 틈만 나면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유은정이 우울감에 빠져들어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할까 봐 짬짬이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다.유은정도 처음엔 정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송재이가 보낸 카톡을 일일이 읽으며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렸다.점심시간, 1층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송재이는 유은정이 보낸 카톡을 받았다.[내일 오전이면 병원에 검진 결과 받으러 갈 수 있겠네. 죽을 만큼 긴장할 줄 알았는데, 감히 현실을 마주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거 알아 재이야? 나 지금은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아. 왜냐하면 너라는 소중한 친구가 항상 날 신경 써주고 있으니까. 인간의 운명은 다 정해져 있어. 결과가 어떻든 하늘이 내려준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래.]말미에 하트 이모티콘까지 추가했다.유은정의 말투와 컨디션 모두 전과 훨씬 다른 모습이었다.송재이는 너무 감격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