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송재이가 집에 도착하니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고 막 조명을 켜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림자에 의해 품에 안겨졌다.송재이는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고 하지만 이내 그의 익숙한 체온과 향기를 눈치챘다.그의 입술은 송재이의 볼에 닿을락 말락 했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나 안 보고 싶었어?”송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설영준과 주현아가 호텔 룸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그런데 어찌 그녀한테 보고 싶었는지 물어본단 말인가?설영준은 송재이의 얼굴을 손으로 잡더니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힘있게 덮었다.“대답이 없네? 그럼 묵인한 거로 칠게...”그는 키스하며 한편으론 그녀의 단추를 풀었다.그리고는 가볍게 그녀를 들어 올렸다.“할래?”그녀의 손은 가볍게 그의 목에 걸쳐졌다.“더러워.”설영준은 침실로 걸어가다가 그녀의 한마디에 주춤했다.하지만 냉소를 지을 뿐 뒤이어 침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리고 그녀는 가볍게 침대에 던져졌다.“더러워? 매번 할 때마다 좋아했잖아?”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의 모호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송재이는 오금이 저려왔다. 그가 벨트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가 덮쳐올 태세를 취하자 그녀의 마음속에 참아왔던 억울함과 짜증이 몰려왔다.그녀는 뒤로 물러섰지만 그는 단번에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너 주현아랄 잤어? 잤냐고!”그녀의 이 물음을 들으니 그는 과연 동작을 멈췄다.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 봤으면서 왜 안 들어왔어?”그의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서 울렸다.회억해보니 송재이는 그제야 1층 로비에서 여진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났다.그 뜻인즉 그는 이미 그녀가 그날 호텔에 갔었고 두 사람이 방을 잡은 걸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단 말이 아니겠는가?“안 잤어.”주변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 그녀는 그의 눈길을 보았다.말을 마치고 그의 입술은 그렇게 그녀
어두운 밤, 송재이의 졸음이 서서히 사라졌다.그녀는 눈을 뜨고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체온의 전달로 그녀의 마음도 따끈따끈해졌다.다음날 송재이는 늦게 일어났다.세수한 후 거실로 걸어가자 익숙한 밥 냄새가 났다.부엌에서 수도꼭지가 콸콸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내 물소리가 사라졌고 누군가 도마에서 채소를 썰고 도자기가 부딪치는 소리 찌개 끓이는 소리가 났다.이런 짙은 사람 사는 듯한 소리는 송재이에게 있어서 매우 감동적이었다.엄마가 살아계실 때만 이렇게 고즈넉한 삶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이 사치가 돼버렸다.“밥 먹자.”설영준은 부엌에서 나와 고개를 들어 한마디 했다.“그래.”앉아서 보니 오늘 아침 메뉴는 시금칫국이었다.그녀는 숟가락을 들고 국을 한 모금 마셨고 잠시 후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설영준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송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방이 너무 더워서 그래?”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고 그의 말투에 섞인 조롱을 알아챘다.“어, 아침에 햇빛이 너무 쨍쨍하네!”설영준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 송재이는 줄곧 머리를 숙이고 설영준을 감히 보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의 얇은 벽이 끝내 뚫리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마음은 한결 가까워진 듯했다.…그녀는 장하 별장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사를 나왔다.마지막 남은 옷도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수모를 그녀는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그가 여러 번 암시하였다 하더라도 그녀도 앞으로 자신의 집에서만 살기로 했다.한 번은 그녀가 감기에 걸려 목욕을 하고 일찍 이불에 들어가 잠을 자려 하는데 설영준이 왔었다.술을 마시고 그녀의 침실에 들어와 두말없이 뽀뽀를 하려 했다.그녀는 몸이 아픈 데다 그에게 이런 괴롭힘까지 당하니 당연히 화가 나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한 대 때렸다.그 뺨에 설영준도 술에서 깬듯했다.송재이는 조금 멈칫했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방문 앞을 가리키며 그를 향해 나지막
이튿날 송재이는 악단에 볼일이 있어서 점심에 나갔다.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가 넘었다.막 돌아오자마자 설영준이 거실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긴 다리가 매우 두드러졌다.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 끝을 팔꿈치에 아무렇게나 걷어 올렸는데 이런 옷차림은 송재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그는 등을 돌리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업무상의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는데 차분한 말투였다.송재이는 그가 주성 그룹 인수 후 몇 가지 일에 대해 말하는 것과 수십억의 계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민효연한테서 들어서 대략 알고 있었는데 주성 그룹의 오늘은 설영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엊그제 주정명이 이미 형을 선고받았고 그가 한 일은 중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설영준이 이 일을 성사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했다.그녀는 이런 설영준이 매우 무섭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후 설영준은 송재이를 보고 말했다.“왔어?”“응.”“만두 다 빚었어, 이제 쪄서 먹자.”말하고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40분 후에 식사를 시작했다.송재이와 설영준은 각각 식탁 양쪽에 앉았다.그녀는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지난번에 만두를 먹었을 때는 설 전날 설가에서 박윤찬과 설도영과 함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만두는 그녀와 박윤찬이 싼 것이었다.설영준은 시종일관 옆에 앉아 책을 읽으며 조금도 돕지 않았다.그때 그녀는 그가 요리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와 같은 거만한 도련님을 비웃었다.이제야 그녀는 진정한 고수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사람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맛이 어때?”설영준이 물었다.“맛있어.”“윤찬 씨의 요리 솜씨에 비하면?”그날은 확실히 그가 만든 소였다. 송재이는 도가 부자에게도 조금 보냈었다.그녀는 궁리 끝에 대답했다.“당신과 박 변호사님 요리 솜씨 모두 좋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모두
설영준은 등을 교체하는 동작에 매우 능숙했다.송재이는 냉장고에 재료를 넣은 후 돌아서서 허리를 짚고 그를 보며 웃었다.“좀 하는데?”“이 정도는 기본이지.”송재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설영준이 의자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설영준은 거절하려고 했다가 말을 도로 삼켰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자에서 벌떡 뛰어내렸는데 내려온 후에도 그녀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심지어 온몸을 송재이에게 기댄 다음 내친김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있는 머리카락 더미에 얼굴을 묻었다.“뭐 하는 거야?”“희롱?”설영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충분히 안은 후 얼굴을 옆으로 하여 송재이의 귀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송재이는 간지럼을 타 웃으며 줄곧 피했다.그러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가로챘고 이번에는 키스했는데 가볍게와 힘 있게를 넘나는 키스였다.그가 이렇게 애틋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키스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예전 같았으면 아마 그가 마음이 동한 줄 알았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짐승 적인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고 여자를 꼬시는 일종의 수단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꿀벌이 꽃에서 꿀을 추출하는 것은 그 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순전히 타고난 본능일 따름이다.추출하지 않으면 속이 불편할 뿐.송재이는 그에게 천천히 다 빨아 먹혔다.그녀는 그에게 힘없이 안겨 있다가 결국 다시 침대로 옮겨졌다.설영준은 송재이에게 자신의 몸에 엎드리라고 하였다.그리고 그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그녀는 오래 지속된 키스에 숨이 차 헐떡거렸는데 사슴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좀만 있어, 움직이지 말고.”말을 마치고는 그는 또 그녀를 끌어안았다.온몸을 그의 가슴에 기댄 그녀는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송재이는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한때 그녀는
송재이는 최근 상태가 매우 좋았다.예전에도 예뻤는데 요즘은 한층 더 화사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서유리마저도 그녀가 예뻐졌다고 난리도 아니었다.“피부가 너무 촉촉한 거 아녜요? 지금은 청순할 뿐만 아니라 여성스러움도 가지고 있어요.”서유리가 농담조로 말하자 송재이는 웃어 보였는데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연지수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송재이를 한 번 보고 얼굴에 웃음을 지었지만 눈빛은 오히려 차가웠다.요즘 연지수는 자주 이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저번에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송재이와 연지수가 잔을 부딪친 이후로 이 두 천적이 화해한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송재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연지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큰 수를 참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날 악단은 늦게 연습이 끝났다.송재이가 연습이 끝났을 때 리허설실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가버렸다.그녀가 휴게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줄이야.점검 기사님은 내일 아침 출근해야 수리하러 올 수 있다고 한다.늦은 시간이라 이 시간에는 층에 희미한 불빛만 있을 뿐이다.그녀는 당황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으로 향했다.구식 음성 등이라 발을 동동 굴러야 등이 들어오고 소리가 안 나면 자동으로 꺼졌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마음속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층 한 층 내려갔다.악단 작업실은 11층에 있었고 그녀는 4층까지 내려갔을 때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았다.그녀가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기분이 싸했다.송재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또 계속 내려갔다.그러다 갑자기 주위의 등이 한꺼번에 꺼졌고 그녀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 같았다.막 발을 동동 구르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엄청난 힘이 그녀를 밀었다.그녀는 팔걸이를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밀려서 비틀거렸다.그녀의 이마와 등에는 식은땀이 났고 그러다 위층에서 그대로 굴러떨어
병원 입구에서 내릴 때 마침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 박윤찬을 만났다.그는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서 며칠째 목이 아파서 병원에 왔던 터였다.뜻밖에도 송재이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정말 처참했는데 발이 두 배로 부어 있어서 걸음걸이는 거의 옆에 있는 여자한테 지탱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여자도 말라서 몇 걸음 못 걷고는 둘 다 땀에 흠뻑 젖었다.“재이 씨.”그녀는 고개를 들자마자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박윤찬을 보았다.박윤찬은 더 묻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잠깐만요. 휠체어를 빌려 올게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잠시 후에 그는 휠체어를 밀고 돌아왔다.이제 훨씬 편해졌다.“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서유리예요.”서유리는 자발적으로 박윤찬에게 자기소개했다.박윤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안녕하세요.”지금 그의 주의력은 모두 송재이의 발에 있었는데 보아하니 골절된 것 같았다.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틀림없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그는 휠체어를 밀고 병원에 들어갔다.서유리는 계속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의사가 검사해보니 확실히 골절되어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송재이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이 기간에 박윤찬은 돈을 내고 입원 절차를 밟으며 바쁘게 돌아쳤다.질서 정연하고 시종일관 침착했다.서유리는 복도 밖에 서서 안에서 수술을 받는 송재이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박윤찬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중에 결혼하면 집 안팎에서 아내는 걱정할 필요 없이 혼자 도맡아 할 거 아닌가.그럼 그의 아내는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한 시간 후에 송재이가 수술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일주일 동안 입원해서 편히 안정을 취해야 했다.송재이는 괜찮아 보였는데 발만 다쳤을 뿐 상태가 허약하지는 않았다.“설 대표님은 재이 씨 입원한 거 아세요?”송재이는 고개를 흔들었다.“그럼 제가 지금 연락할게요.”송재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
앞으로 사흘 동안, 설영준은 여 비서에게 식사 배달을 시켰다.하루 세 끼 다양한 메뉴로, 특히 국이 많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이 만든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어 그가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식사할 때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설영준을 떠올렸고 마음도 덩달아 달달해졌다....사흘째 되는 날 두 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연지수가 서도재를 데리고 왔는데, 명목은 병문안이었다.서도재는 꽃다발과 골절 회복에 좋은 영양제를 들고 걸어왔고 연지수는 그의 뒤에서 순한 모습으로 따라왔다.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연지수는 송재이를 한번 훑어보며 물었다. “송재이 씨, 괜찮아요?”송재이는 팔을 들어 올리며 연지수가 더 잘 볼 수 있게 한 후 미소를 지었다. “뭐 보다시피 괜찮아요.”약간의 비꼬는 느낌이 담겨 있는 말투를 듣자, 연지수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송재이는 이 일이 연지수의 짓임을 더욱 확신했다.“송 선생님, 빠른 쾌유를 빕니다.”서도재의 눈은 병실에 들어온 이후 줄곧 송재이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비록 그녀는 환자복을 입은 채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 헤쳤지만 부서질 것 같은 아름다움이 담겨 있어서 더욱 사랑스러웠다.송재이에겐 이것이 그녀와 서도재가 처음 정식으로 만난 자리였다.상대방이 꽤 음흉해 보였지만 그래도 송재이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서 전무님.”“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요.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송재이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으나 금방 미소를 지었다. “전무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존중하는 것 같아요.”서도재는 히죽거리며 웃었다.지난번에 연지수에게 송재이를 손에 넣고 싶다고 말한 이후, 연지수는 눈치 있게 기회를 기다리라고 하며 둘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원래 레스토랑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병실에서 처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그래도 괜찮았다. 사람이 아플 때는 더 약해지기 마련이라, 자신이 더 친절하게 다가가면 손에 넣기 쉬울 거라 믿었
돌아가는 길에 서도재는 줄곧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옆에 앉아 있던 연지수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어쨌든 지금 그녀는 여전히 그의 여자였다.그의 변태적인 취향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임무는 약속대로 완수했지만 서도재는 설영준의 존재 때문에 더 이상 행동할 엄두를 못 냈다.겁먹은 건 서도재였는데 왜 그녀가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연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직도 마음이 있다면 송재이의 연락처를 넘겨줄 수 있어요. 방금도 서로 인사했으니 적당한 핑계를 대서 만나자고 해보는 건 어떨까요?”“그 여자는 설영준의 사람이에요. 내가 어떻게 만나겠어요?”서도재는 평소와 다르게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그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연지수도 화가 났지만 서도재와 정면으로 맞설 용기는 없어서 그저 차갑게 웃으며 비꼬았다. “난 당신이 송재이를 많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용기는 없고 마음만 있는 거였네요. 진짜 배짱이 있었다면 그게 누구의 여자건 상관없이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파악!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도재는 연지수의 뺨을 때렸다.그는 병실에서부터 화가 나 있었지만 여 비서가 있어서 참았던 것이다.이제 연지수가 경솔하게 그를 자극하자 그는 그 화를 그녀에게 풀었다.“누구한테 함부로 말하고 있는지 알아?” 서도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이 클럽에서 함부로 고르던 남자가 아니야. 누가 당신을 이 자리에 올려놨는지, 당신이 논란의 중심에 있을 때 누가 구해줬는지 잘 생각해봐. 이제 와서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 당신이 제정신이야?”클럽의 남자들...어떻게 알았지?연지수는 얼굴을 감쌌다.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얼굴에는 당황과 두려움이 더 컸다.그녀는 단 한 번밖에 그런 적이 없었다!그때는 서도재의 휴대폰에서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