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는 연우에게 마지막 3교시의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앞으로는 오지 않겠다고 미리 민효연에게 말했다.원래는 민효연이 이유를 물어볼 줄 알았는데 최근 집안일 때문에 민효연도 이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그녀는 더 묻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민효연은 연우에게 피아노 선생님을 바꿔줘야 한다는 일을 도정원에게 말했다.도정원은 전화로 누가 먼저 제안했느냐고 물었고 송재이가 먼저 얘기했다는 것을 알고는 생각에 잠겼다.그는 지금 송재이와 설영준이 여전히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설을 전후해 다시 함께한 것 같았다.그래서 일부러 sns에 송재이가 연우의 손을 잡고 쇼핑하는 사진을 올린 거였다.지금 보니 이 일로 설영준이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가 어떤 식으로 송재이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했는지는 잘 몰랐다.송재이가 연우의 피아노 선생님 일을 그만둬야만 도정원과 그녀와 앞으로 만날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만약 그렇게 신경을 쓴다면 그녀와 결혼할 것이지 제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이런 사소한 복수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유치하고 하찮았다.그는 전화로 설영준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그는 설영준이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상업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매우 의지하는 편이었다.만난 후 두 사람은 먼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설영준은 도정원이 계속 그를 관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설영준은 진중한 느낌을 주는 기질을 타고났지만 속은 분명 선량한 사람은 아니었다.그는 진지할 때는 낯선 사람은 쉽게 다가가지 못할 분위기를 풍겼고 일거수일투족에서 박력과 매너가 넘쳤는데 이런 풍격은 여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그리고 설영준은 평소에도 헬스 습관이 있는데 이는 수년 전부터 시작된 거여서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보기만 해도 침대에서의 솜씨가 굉장히 좋을 것 같았다.이것들 모두가 여자들을 사로잡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도정원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는 당연히 굳이 도정원한테 말할 필요는 없었다.설영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도정원을 쳐다보며 동문서답을 했다.“재이가 제 여자친구라는 것도 아셨으니 앞으론 좀 조심해주세요. 세상에 여자가 많고도 많은데 꼭 재이한테 목을 맬 필요는 없으시잖아요.”그 말뜻인 즉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거였다.도정원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속으로 세상에 여자가 그리도 많은데 설영준은 왜 하필이면 송재이만을 고집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설영준 같은 남자는 어쩌면 여자들이 그에게 반해 정신을 잃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더러 한 여자에게만 몰두하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도정원이 송재이의 배다른 오빠라는 사실은 그와 도경욱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송재이 본인마저도 말이다. 그도 도경욱에게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설영준이 이렇게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날뛰는 모습이 너무 아니꼬웠다.도정원은 도저히 송재이가 이런 남자와 함께한다는 것이 안심되지 않았다.하지만 송재이 본인은 또 이 남자를 너무 좋아하니...“설 대표님, 제가 저희 아버지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죠?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셨어요...”설영준이 막 국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도정원이 자기 집안일을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설영준이 도정원에 대해 아는 거라곤 단지 그가 가문의 최하위층에서 천천히 지금의 자리까지 기어올랐다는 것밖에 없었다.그의 아버지에 대한 일은 당연히 큰 관심이 없었다.이 전에 도정원도 분명 누구한테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오늘 도정원은 도경욱과 서지원의 옛이야기에 대해 곧이곧대로 설영준에게 말해주었다.설영준은 조금은 의문스러웠지만 그 얘기를 끊지는 않았다.도정원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얘기를 꺼내진 않았을 거다. 비록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그래도 그는 조용히 그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제 아버지와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식당 앞에서 작별했다.떠나기 전 도정원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알다시피 연우가 조금 특별한 아이잖아요. 그래서 쉽게 선생님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연준 씨가 여자친구분한테 얘기해서 전처럼 수업하러 오시라고 해주세요.”말을 하고는 설영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살면서 처음 설영준이 밀린 대화였다.하지만 그는 거절할 수도 없었다....최근 송재이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설영준과 주현아가 같이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이후로 그녀는 저녁에 계속 같은 꿈을 꾸었다.방문으로 열고 들어서니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야릇한 자세를 하고 있는 그런 꿈 말이다.주현아는 설영준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송재이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봤지? 영준이는 아직도 날 놓지 못했다고!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영준이는 날 사랑하지 널 사랑하지 않아.”“재이야, 미안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현아였어... 얘가 내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 못 보겠더라...”핸드폰이 울렸고 송재이는 잠결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뒤척이다 하마터면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러다 침대 머리를 잡고 겨우 떨어지는 걸 막았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잡아 들었고 도정원이 온 전화라는 걸 발견했다.송재이는 통화버튼을 눌렀고 도정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 선생님, 오늘 저녁 레슨 말인데요. 계속 그 시간 맞죠?”“네?”송재이는 이미 정신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민 사장이 아직 선생님을 바꾼다는 말을 도정원이랑 말하지 않았다는 거에 놀랐다.“얼마 전에 저랑 선생님 남자친구분이 같이 저녁을 했는데요, 제가 그분보고 저를 도와 얘기 좀 해 달라고 했어요. 만약 계속하신다면 제가 두 배의 레슨비를 내도록 할게요.”도정원은 마치 아주 평범한 일을 말하는 듯 담담했는데 송재이는 오리무중에 빠졌다.그녀는 힘껏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꿈인지 생신지 구분을 하려 했다.“남자친구라뇨? 누구 남자친구요?”도정원은 피식
저녁에 송재이가 집에 도착하니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고 막 조명을 켜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림자에 의해 품에 안겨졌다.송재이는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고 하지만 이내 그의 익숙한 체온과 향기를 눈치챘다.그의 입술은 송재이의 볼에 닿을락 말락 했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나 안 보고 싶었어?”송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설영준과 주현아가 호텔 룸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그런데 어찌 그녀한테 보고 싶었는지 물어본단 말인가?설영준은 송재이의 얼굴을 손으로 잡더니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힘있게 덮었다.“대답이 없네? 그럼 묵인한 거로 칠게...”그는 키스하며 한편으론 그녀의 단추를 풀었다.그리고는 가볍게 그녀를 들어 올렸다.“할래?”그녀의 손은 가볍게 그의 목에 걸쳐졌다.“더러워.”설영준은 침실로 걸어가다가 그녀의 한마디에 주춤했다.하지만 냉소를 지을 뿐 뒤이어 침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리고 그녀는 가볍게 침대에 던져졌다.“더러워? 매번 할 때마다 좋아했잖아?”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의 모호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송재이는 오금이 저려왔다. 그가 벨트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가 덮쳐올 태세를 취하자 그녀의 마음속에 참아왔던 억울함과 짜증이 몰려왔다.그녀는 뒤로 물러섰지만 그는 단번에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너 주현아랄 잤어? 잤냐고!”그녀의 이 물음을 들으니 그는 과연 동작을 멈췄다.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 봤으면서 왜 안 들어왔어?”그의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서 울렸다.회억해보니 송재이는 그제야 1층 로비에서 여진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났다.그 뜻인즉 그는 이미 그녀가 그날 호텔에 갔었고 두 사람이 방을 잡은 걸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단 말이 아니겠는가?“안 잤어.”주변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 그녀는 그의 눈길을 보았다.말을 마치고 그의 입술은 그렇게 그녀
어두운 밤, 송재이의 졸음이 서서히 사라졌다.그녀는 눈을 뜨고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체온의 전달로 그녀의 마음도 따끈따끈해졌다.다음날 송재이는 늦게 일어났다.세수한 후 거실로 걸어가자 익숙한 밥 냄새가 났다.부엌에서 수도꼭지가 콸콸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내 물소리가 사라졌고 누군가 도마에서 채소를 썰고 도자기가 부딪치는 소리 찌개 끓이는 소리가 났다.이런 짙은 사람 사는 듯한 소리는 송재이에게 있어서 매우 감동적이었다.엄마가 살아계실 때만 이렇게 고즈넉한 삶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이 사치가 돼버렸다.“밥 먹자.”설영준은 부엌에서 나와 고개를 들어 한마디 했다.“그래.”앉아서 보니 오늘 아침 메뉴는 시금칫국이었다.그녀는 숟가락을 들고 국을 한 모금 마셨고 잠시 후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설영준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송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방이 너무 더워서 그래?”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고 그의 말투에 섞인 조롱을 알아챘다.“어, 아침에 햇빛이 너무 쨍쨍하네!”설영준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 송재이는 줄곧 머리를 숙이고 설영준을 감히 보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의 얇은 벽이 끝내 뚫리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마음은 한결 가까워진 듯했다.…그녀는 장하 별장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사를 나왔다.마지막 남은 옷도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수모를 그녀는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그가 여러 번 암시하였다 하더라도 그녀도 앞으로 자신의 집에서만 살기로 했다.한 번은 그녀가 감기에 걸려 목욕을 하고 일찍 이불에 들어가 잠을 자려 하는데 설영준이 왔었다.술을 마시고 그녀의 침실에 들어와 두말없이 뽀뽀를 하려 했다.그녀는 몸이 아픈 데다 그에게 이런 괴롭힘까지 당하니 당연히 화가 나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한 대 때렸다.그 뺨에 설영준도 술에서 깬듯했다.송재이는 조금 멈칫했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방문 앞을 가리키며 그를 향해 나지막
이튿날 송재이는 악단에 볼일이 있어서 점심에 나갔다.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가 넘었다.막 돌아오자마자 설영준이 거실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긴 다리가 매우 두드러졌다.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 끝을 팔꿈치에 아무렇게나 걷어 올렸는데 이런 옷차림은 송재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그는 등을 돌리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업무상의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는데 차분한 말투였다.송재이는 그가 주성 그룹 인수 후 몇 가지 일에 대해 말하는 것과 수십억의 계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민효연한테서 들어서 대략 알고 있었는데 주성 그룹의 오늘은 설영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엊그제 주정명이 이미 형을 선고받았고 그가 한 일은 중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설영준이 이 일을 성사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했다.그녀는 이런 설영준이 매우 무섭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후 설영준은 송재이를 보고 말했다.“왔어?”“응.”“만두 다 빚었어, 이제 쪄서 먹자.”말하고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40분 후에 식사를 시작했다.송재이와 설영준은 각각 식탁 양쪽에 앉았다.그녀는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지난번에 만두를 먹었을 때는 설 전날 설가에서 박윤찬과 설도영과 함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만두는 그녀와 박윤찬이 싼 것이었다.설영준은 시종일관 옆에 앉아 책을 읽으며 조금도 돕지 않았다.그때 그녀는 그가 요리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와 같은 거만한 도련님을 비웃었다.이제야 그녀는 진정한 고수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사람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맛이 어때?”설영준이 물었다.“맛있어.”“윤찬 씨의 요리 솜씨에 비하면?”그날은 확실히 그가 만든 소였다. 송재이는 도가 부자에게도 조금 보냈었다.그녀는 궁리 끝에 대답했다.“당신과 박 변호사님 요리 솜씨 모두 좋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모두
설영준은 등을 교체하는 동작에 매우 능숙했다.송재이는 냉장고에 재료를 넣은 후 돌아서서 허리를 짚고 그를 보며 웃었다.“좀 하는데?”“이 정도는 기본이지.”송재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설영준이 의자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설영준은 거절하려고 했다가 말을 도로 삼켰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자에서 벌떡 뛰어내렸는데 내려온 후에도 그녀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심지어 온몸을 송재이에게 기댄 다음 내친김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있는 머리카락 더미에 얼굴을 묻었다.“뭐 하는 거야?”“희롱?”설영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충분히 안은 후 얼굴을 옆으로 하여 송재이의 귀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송재이는 간지럼을 타 웃으며 줄곧 피했다.그러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가로챘고 이번에는 키스했는데 가볍게와 힘 있게를 넘나는 키스였다.그가 이렇게 애틋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키스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예전 같았으면 아마 그가 마음이 동한 줄 알았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짐승 적인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고 여자를 꼬시는 일종의 수단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꿀벌이 꽃에서 꿀을 추출하는 것은 그 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순전히 타고난 본능일 따름이다.추출하지 않으면 속이 불편할 뿐.송재이는 그에게 천천히 다 빨아 먹혔다.그녀는 그에게 힘없이 안겨 있다가 결국 다시 침대로 옮겨졌다.설영준은 송재이에게 자신의 몸에 엎드리라고 하였다.그리고 그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그녀는 오래 지속된 키스에 숨이 차 헐떡거렸는데 사슴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좀만 있어, 움직이지 말고.”말을 마치고는 그는 또 그녀를 끌어안았다.온몸을 그의 가슴에 기댄 그녀는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송재이는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한때 그녀는
송재이는 최근 상태가 매우 좋았다.예전에도 예뻤는데 요즘은 한층 더 화사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서유리마저도 그녀가 예뻐졌다고 난리도 아니었다.“피부가 너무 촉촉한 거 아녜요? 지금은 청순할 뿐만 아니라 여성스러움도 가지고 있어요.”서유리가 농담조로 말하자 송재이는 웃어 보였는데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연지수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송재이를 한 번 보고 얼굴에 웃음을 지었지만 눈빛은 오히려 차가웠다.요즘 연지수는 자주 이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저번에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송재이와 연지수가 잔을 부딪친 이후로 이 두 천적이 화해한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송재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연지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큰 수를 참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날 악단은 늦게 연습이 끝났다.송재이가 연습이 끝났을 때 리허설실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가버렸다.그녀가 휴게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줄이야.점검 기사님은 내일 아침 출근해야 수리하러 올 수 있다고 한다.늦은 시간이라 이 시간에는 층에 희미한 불빛만 있을 뿐이다.그녀는 당황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으로 향했다.구식 음성 등이라 발을 동동 굴러야 등이 들어오고 소리가 안 나면 자동으로 꺼졌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마음속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층 한 층 내려갔다.악단 작업실은 11층에 있었고 그녀는 4층까지 내려갔을 때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았다.그녀가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기분이 싸했다.송재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또 계속 내려갔다.그러다 갑자기 주위의 등이 한꺼번에 꺼졌고 그녀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 같았다.막 발을 동동 구르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엄청난 힘이 그녀를 밀었다.그녀는 팔걸이를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밀려서 비틀거렸다.그녀의 이마와 등에는 식은땀이 났고 그러다 위층에서 그대로 굴러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