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여기저기 경쟁자를 찾아다니는 걸 강유리는 아나요?""당연하죠.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까봐요?""..."신하균은 할 말이 없었다. 사랑속에서 자란 소녀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정상인 것 같았다.퇴근 시간이 다가와 차들이 점점 많아졌다.도로 위에 차가 줄을 지어 막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릴리는 차창을 내리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너무 많이 막히는 거 아니야? 이래서 언제 집에 도착할 수 있어? 돌아가서 방 정리도 해야 하는데!"신하균은 줄곧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릴리가 멀어지는 것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위험 행동을 보았다.머리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신하균은 릴리의 팔을 잡아당겼다."아!"릴리의 머리가 부딪쳤다. "왜 그래요! 머리 부딪혔잖아요! 제가 멍청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신하균은 릴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머리를 창밖으로 내밀면 어떡해요. 어린이예요?""그럼 누가 잡아당기래요? 말로 하면 되잖아요!"동작이 거칠어서 부딪힌 릴리는 머리가 핑핑 돌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릴리는 신하균에게 악마의 손을 뻗었다. 앞의 차가 조금 움직였다. 신하균은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앞으로 조금 움직였다.채 멈추기도 전에 언뜻 릴리가 덮치는게 보였다.신하균은 한 손으로 릴리를 막았다. "운전 중이잖아요!""당신이 뭘 하고 있든 간에 이 아가씨의 화를 받아들여야 할거에요!""..."상대방이 기세등등하게 덮쳐오자 신하균은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릴리가 품에 안겼다.그의 품에 몸을 반쯤 기대고 있는 소녀의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게다가 움직임이 커서 옷 속이 보일 듯 말 듯했다.신하균은 반항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해 있었다. 한참 뒤에 옆 차가 움직이는 걸 보고서야 릴리는 제자리로 돌아갔다.조수석에 앉아있는 소녀는 신하균의 머리 스타일이 헝크러진걸 보고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흐뭇하게 웃었다...너무 오래 멈춰 있었는지 뒤 차가 짜증스럽게 경적을 울렸다.
신한문이 입꼬리를 움직였다. 그는 욕설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억지로 삼켰다.그는 이 여자가 고의로 이러는 것이라고 의심했다.그녀의 새로운 수법인가? 그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어서?그의 감정 조절 능력이 그녀 앞에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그녀의 얄미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내려요, 알아서 가요.”릴리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그래요.”안전벨트를 풀고 차 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오빠, 아니, 삼촌, 이거 제 차 아니에요?”신한문은 삼촌 소리를 듣고는 숨을 삼켰다.그는 릴리를 목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차 문을 잡아당기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쾅!문 닫는 소리에 릴리의 심장이 떨렸다.어른 남자들은 원래 다 이렇게 감정적이야?예전에는 대체 어떻게 그가 차갑고 강인하고 한결 같다고 생각했던거지?아 맞다, 신한문은 그녀가 그를 꼬시기 위해 했던 온갖 수단을 모두 냉담하게 바라보았다.한결같이 무뚝뚝하긴 했었다.긴 다리를 넘겨 천천히 조수석에서 운전석까지 넘어간 그녀는 시동을 걸고 은하타운으로 향했다.그날 이후.릴리는 다시는 신한문을 본 적이 없다.월계만의 새 집은 빨리 정리되었고 릴리는 얼마 안 되는 짐을 가지고 들어갔다.고성 그룹의 대표 위임 기자회견이 월말로 정해졌다.소식이 전해지자 각지의 매체들은 손꼽아 기다렸다.그들은 이 기자회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는지 보고 싶어했다.어쨌든 새로 알아본 고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는 자기 세력이랄게 없었고 그저 고정남이 강제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고씨 가문의 장남과 장녀의 발언권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고한빈 또한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어둠이 드리운 시간.JL빌라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한여름의 밤바람은 뜨거운 기운을 띠고 있어 사람을 심란하게 했다.그 시각, 어느 외진 구석의 별장에는 등불이 환하다.여자는 베란다에 서서 휴대전화를
바론이 안으로 들어오며 그녀의 얼굴에서 아직 감춰지지 않은 독기를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들은 한국에서 그동안 쉬고 있었기에 강미영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지 오래였다.“무슨 일?”강미영이 그를 보더니 말했다. “방금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그러자 바론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그쪽에 무슨 일 있대?”“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데, 그냥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왕소영이 성한일을 데리고 Y국으로 갔대요. 그리고 그녀의 명의로 된 은행 카드에 최근 큰 돈이 입금되었다고 하고요.”“...”바론 공작이 다시 권력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신망이 두텁고 인맥도 탄탄했다.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았다.그는 한국에서도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주시했고, 강씨 집안의 상황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소영이 Y국에 나타나자마자 클래런스 후작 부인에게서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그에게서 대답이 없자 일부러 전화를 걸어 자세한 상황을 알리기까지 했다.“성신영이 Y국으로 도망치려 한다고 의심하는 거야? 이미 준비하고 있는건가?”바론이 조용히 말했다.강미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지금 성신영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하지만 유리가 그들을 다 죽이지 않았다는 건, 그들에겐 언제든지 떠날 기회가 있다는 뜻일 텐데.”하지만 도망가지 않았다.그리고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뭔가 꾸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심지어 그 지경에 이르렀고 뒷배경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거액의 입금을 받다니?“당장 사람 시켜서 알아봐야겠어.”바론 공작이 얼굴을 굳혔다.강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씨 가문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정철 쪽에서 이렇게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바론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정철 쪽 일은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아직도 더 발버둥칠 게 남아있어?”강미영이 대답했다.“당신이라면 쉽게
문이 열리고 강학도가 들어오며 말했다.“아니, 왜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어? 퇴원하는 거 아니야?”강학도까지 오다니, 강미영의 퇴원에 찾아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강미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얼굴을 찌푸리며 불쾌하게 말했다.“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입구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아버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죠?”“손녀가 있는데 누가 감히 나를 곤란하게 하겠어?”강학도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옆으로 비켜섰다.“...”강미영과 바론 공작은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릴리는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오더니 두 사람의 눈을 힐끗 훑어보고는 가볍게 물었다.“어머, 다들 실망하는 것 같네요.”“약간. 그래도 썩 괜찮은 것 같긴 하구나.”강미영이 입을 열었다.그녀는 확실히 바론에게 말한 것처럼 딸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서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하지만 필요 없다고 하면 그녀도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살 생각이었다.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았기에 그녀는 더 이상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고, 걱정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모녀가 입을 열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부가 신경써줬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직원 통로로 안내했어요.”강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통로를 빠져 나왔다.차가 입구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직원 통로에도 기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차가 오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차로 달려들었다.기사는 사람을 칠까 봐 걱정하며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여기도 막힐 줄이야.바로 이때 제복을 입은 여러 사람이 그들을 가로막고 차갑게 말했다."병원 입구에 이렇게 있으시면 안됩니다.”릴리는 차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를 보고는 눈밑에 경악이 스쳐지나갔다.강미영은 이미 포위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일이 쉽게 풀렸다.
“마지막으로, 내 말 잘 들어주실래요? 내가 말했잖아요, 전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저 사람 찾아갈 생각하지 마세요!”“...”차 안은 몇 초간 침묵에 잠겼다.릴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드디어 이 일이 일단락 된 줄 알았다.고집이 세고 독재적인 줄만 알았던 남자가 마침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게 된 것이다.그런데 그 다음 한마디에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섣불렀다는 걸 인정해야했다.“못 꼬신다고 포기하는 게 네 성격에 맞아? 저 사람이 너한테 뭐 미안한 일을 한 거 아니야?”릴리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왜 여기에 왔을까?말이 안 통하는 줄 깨달은 그녀는 그들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바론의 추측을 더욱 뒷받침했다.아버지가 화나셨다.이렇게 오랫동안 딸을 애지중지 키웠더니, 다른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이게 무슨 일이지?그가 고개를 돌려 운전기사에게 눈짓을 했다.운전기사는 바론의 경호원으로, 그의 눈빛과 몸짓 하나까지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혹시 저 사람을 방해한다면 언니가 평생 아버지를 무시하게 만들 거예요.”릴리는 눈을 감은 채 침묵이 가득한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바론은 면전에서 의도가 들통나자 기분이 좋지 않아져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너도 이제 다 컸다고 나를 협박 해?”릴리는 눈 한 번 뜨지 않은 채 계속 침묵을 지켰다.바론 공작은 불만이 있었지만 운전기사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지시를 취소했다.은하타운.강유리는 릴리의 소식을 듣고 강미영이 무사히 퇴원하고 집에 잘 들어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요즘 기자들은 점점 더 대단해져서 기사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주저앉을 수 있었다.Y국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그쪽에서 그녀의 성질 더러운 아버지가 기자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했으면 당장 총을 들려고 했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나서 서재로 향했다.저녁 무렵.마당에서
릴리는 생각하다가 끝내는 말을 하고 말았다.그녀는 요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고씨 집안 일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고정철의 집안은 겉보기에는 조용한 듯 싶었지만 암암리에 뭔가 꾸미는 게 있는 것 같았다.얼마 전에 큰 지출이 있었고, 빌라를 샀고, 공장을 계약하고, 또 해외로 거액을 송금했다.그녀는 줄곧 그들이 회복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재산을 빼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그까짓 돈, 그녀도 별로 아깝지 않았기에 말리지 않았다.그러나 지난번에 그들이 또 거액의 돈을 썼는데, 그녀는 그 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거기까지 말한 릴리가 차로 돌아가 노트북을 들고 와서는 강유리에게 주었다.“이 회사는 Y국의 회사야. 근데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도 뭘 하는 곳인지 못 알아냈어.”강유리는 눈썹을 몇 번 찡그렸다. 보기에는 매우 평범한 무역회사 같다.그런데 왜 이렇게 숨기는걸까?“알렉스를 시켜볼까?”상대의 내부 네트워크에 침투하면 대충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름 돋는 게 뭐냐면, 알렉스의 말로는 내부 네트워크에 아무것도 없대. 마치 사람이 일부러 지운 것처럼. 적어도 몇달 안에는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 같다던데.”대화를 들은 육시준은 식기를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은 뒤 강유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강유리가 컴퓨터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스크린에 닿는 순간 잠시 멈추는 것을 발견했다.“왜? 이 회사 알아?”“아니 몰라.”육시준은 담담하게 부정하며 말했다.“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더 이상 조사하지 마.”그 말은 릴리에게 한 말이었고, 목소리는 엄격했다.두 자매 모두 멍해졌다.모른다고 했는데, 반응을 보니 모르는 것 같지 않았다...어둠이 내린 밤.은하타운의 안방은 불이 환했다.강유리는 이불 속에 앉아 태블릿을 들고 그 회사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지며 정보 하나 놓치지 않았다.그러나 여러 번 훑어보았지만 의문점이
강유리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물었다.“이 회사, 네가 벌인 사업이야? 고씨 집안의 돈을 받고? 고씨 집안과 무슨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있었는데 릴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거야?”육시준의 입가가 씰룩씰룩 올라갔다. 보아하니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귀찮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한지철 기억해?”그가 갑자기 말했다.강유리는 눈동자를 약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하지만 결혼식 이후로 다시는 본 적 없어.”육시준은 다시 태블릿을 가져와 옆에 두고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올랐다“내가 그 후에 찾아갔었어.”강유리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눈을 찌푸렸다.“고한빈이랑 관련이 있는거야?”“고한빈은 해외와 계속 연락을 했어. 그리고 해외로 송금도 자주 했지. 그중 몇 번은 이 회사 계좌로 이체한 거였어. 한지철이 고한빈을 대신해서 보낸 메시지 주소가 바로 이 회사야.”“이 회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거야? 도씨 가문의 설경구와도 관련이 있는거고?”“맞아.”“...”이 소식은 정말 강유리의 예상을 뒤엎었다.어쩐지, 알렉스가 내부 네트워크에 지난 몇 달 동안의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니. 게다가 앞부분은 인위적으로 삭제했다고 했었다.몇 달 전 윌리엄 왕자가 사고를 당하면서 그 파벌이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때문에 이 회사도 발각됐기 때문이다.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발각됐는데도 계속 이 회사를 통해 연락한다고?”육시준이 대답했다. “발각됐지만 압류되지 않았다는 건 그들이 일찍이 빠져나갔다는 증거야. 정보도 지우고 과거도 모두 지운 뒤에야 겨우 숙청을 피해갈 수 있었겠지.”사실 지금은 왕권을 공고히 할 때였고, 때문에 바렌 공작은 될수록 일찍 돌아가야 했다.가서 이런 남겨진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그러나 그는 강유리 때문에 이 곳을 떠나기 아쉬워했고, 그 때문에 잔당들에게 꼼수를 부릴 기회를 주었다.강유리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반평생을 고생하고, 아내랑 자식이랑 흩어져 지낸 결
“알겠어요, 알겠어. 그건 이따가 신경 쓰면 되잖아요? 진행 순서는요? 진행 순서 좀 보죠.”그녀는 고한빈 부자가 어느 순서에 함정을 깔아놨을 지 알아봐야 했다.“...”보좌관은 못마땅한 듯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는데, 상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 포기했다.릴리가 진지하게 진행 순서를 보았다.순서는 간단했다.이사회 대표가 몇 마디 하고 나면, 고정남이 이어서 발언한다.그의 발언에는 릴리의 소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소개가 끝난 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명을 하고, 양도 계약서를 들고 같이 사진을 찍으면 된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형식일 뿐이다. 양도 계약서와 과반 주주의 동의서 모두 작성되었고, 양도도 이미 완료되었다. 지금은 그저 공개만 남은 상황이었다.릴리는 진행 순서들을 주시하며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모든 순서에는 고정철이 등장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녀는 약간 조마조마하고 궁금하기도 한 마음으로 3시 정각에 기자회견에 나타났다.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매우 질서 정연했다. 평소 길을 막고 인터뷰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릴리는 고정남의 옆자리에 앉아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노출되었다.고정남은 릴리가 왈가닥하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이런 진지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그녀는 몸가짐이 우아했고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예전과 비교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고,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으려고 태어난 듯 했다.그는 만족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여러분에게 제 막내딸을 소개하고 한 가지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현장은 조용하고 이따금 셔터 소리가 찰칵찰칵 났다.고정남의 발언이 끝나자 이사회 대표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모두 형식적인 인사말들이었다.그동안 함께 지내 본 입장에서 릴리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산다는 등의 인사치레였다.릴리는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