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강학도가 들어오며 말했다.“아니, 왜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어? 퇴원하는 거 아니야?”강학도까지 오다니, 강미영의 퇴원에 찾아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강미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얼굴을 찌푸리며 불쾌하게 말했다.“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입구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아버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죠?”“손녀가 있는데 누가 감히 나를 곤란하게 하겠어?”강학도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옆으로 비켜섰다.“...”강미영과 바론 공작은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릴리는 천천히 밖에서 걸어 들어오더니 두 사람의 눈을 힐끗 훑어보고는 가볍게 물었다.“어머, 다들 실망하는 것 같네요.”“약간. 그래도 썩 괜찮은 것 같긴 하구나.”강미영이 입을 열었다.그녀는 확실히 바론에게 말한 것처럼 딸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서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하지만 필요 없다고 하면 그녀도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살 생각이었다.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았기에 그녀는 더 이상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고, 걱정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모녀가 입을 열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부가 신경써줬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직원 통로로 안내했어요.”강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통로를 빠져 나왔다.차가 입구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직원 통로에도 기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차가 오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차로 달려들었다.기사는 사람을 칠까 봐 걱정하며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여기도 막힐 줄이야.바로 이때 제복을 입은 여러 사람이 그들을 가로막고 차갑게 말했다."병원 입구에 이렇게 있으시면 안됩니다.”릴리는 차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를 보고는 눈밑에 경악이 스쳐지나갔다.강미영은 이미 포위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일이 쉽게 풀렸다.
“마지막으로, 내 말 잘 들어주실래요? 내가 말했잖아요, 전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저 사람 찾아갈 생각하지 마세요!”“...”차 안은 몇 초간 침묵에 잠겼다.릴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드디어 이 일이 일단락 된 줄 알았다.고집이 세고 독재적인 줄만 알았던 남자가 마침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게 된 것이다.그런데 그 다음 한마디에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섣불렀다는 걸 인정해야했다.“못 꼬신다고 포기하는 게 네 성격에 맞아? 저 사람이 너한테 뭐 미안한 일을 한 거 아니야?”릴리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왜 여기에 왔을까?말이 안 통하는 줄 깨달은 그녀는 그들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바론의 추측을 더욱 뒷받침했다.아버지가 화나셨다.이렇게 오랫동안 딸을 애지중지 키웠더니, 다른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이게 무슨 일이지?그가 고개를 돌려 운전기사에게 눈짓을 했다.운전기사는 바론의 경호원으로, 그의 눈빛과 몸짓 하나까지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혹시 저 사람을 방해한다면 언니가 평생 아버지를 무시하게 만들 거예요.”릴리는 눈을 감은 채 침묵이 가득한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바론은 면전에서 의도가 들통나자 기분이 좋지 않아져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너도 이제 다 컸다고 나를 협박 해?”릴리는 눈 한 번 뜨지 않은 채 계속 침묵을 지켰다.바론 공작은 불만이 있었지만 운전기사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지시를 취소했다.은하타운.강유리는 릴리의 소식을 듣고 강미영이 무사히 퇴원하고 집에 잘 들어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요즘 기자들은 점점 더 대단해져서 기사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주저앉을 수 있었다.Y국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그쪽에서 그녀의 성질 더러운 아버지가 기자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했으면 당장 총을 들려고 했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나서 서재로 향했다.저녁 무렵.마당에서
릴리는 생각하다가 끝내는 말을 하고 말았다.그녀는 요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고씨 집안 일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고정철의 집안은 겉보기에는 조용한 듯 싶었지만 암암리에 뭔가 꾸미는 게 있는 것 같았다.얼마 전에 큰 지출이 있었고, 빌라를 샀고, 공장을 계약하고, 또 해외로 거액을 송금했다.그녀는 줄곧 그들이 회복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재산을 빼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그까짓 돈, 그녀도 별로 아깝지 않았기에 말리지 않았다.그러나 지난번에 그들이 또 거액의 돈을 썼는데, 그녀는 그 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거기까지 말한 릴리가 차로 돌아가 노트북을 들고 와서는 강유리에게 주었다.“이 회사는 Y국의 회사야. 근데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도 뭘 하는 곳인지 못 알아냈어.”강유리는 눈썹을 몇 번 찡그렸다. 보기에는 매우 평범한 무역회사 같다.그런데 왜 이렇게 숨기는걸까?“알렉스를 시켜볼까?”상대의 내부 네트워크에 침투하면 대충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름 돋는 게 뭐냐면, 알렉스의 말로는 내부 네트워크에 아무것도 없대. 마치 사람이 일부러 지운 것처럼. 적어도 몇달 안에는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 같다던데.”대화를 들은 육시준은 식기를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은 뒤 강유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강유리가 컴퓨터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스크린에 닿는 순간 잠시 멈추는 것을 발견했다.“왜? 이 회사 알아?”“아니 몰라.”육시준은 담담하게 부정하며 말했다.“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더 이상 조사하지 마.”그 말은 릴리에게 한 말이었고, 목소리는 엄격했다.두 자매 모두 멍해졌다.모른다고 했는데, 반응을 보니 모르는 것 같지 않았다...어둠이 내린 밤.은하타운의 안방은 불이 환했다.강유리는 이불 속에 앉아 태블릿을 들고 그 회사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지며 정보 하나 놓치지 않았다.그러나 여러 번 훑어보았지만 의문점이
강유리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물었다.“이 회사, 네가 벌인 사업이야? 고씨 집안의 돈을 받고? 고씨 집안과 무슨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있었는데 릴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거야?”육시준의 입가가 씰룩씰룩 올라갔다. 보아하니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귀찮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한지철 기억해?”그가 갑자기 말했다.강유리는 눈동자를 약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하지만 결혼식 이후로 다시는 본 적 없어.”육시준은 다시 태블릿을 가져와 옆에 두고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올랐다“내가 그 후에 찾아갔었어.”강유리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눈을 찌푸렸다.“고한빈이랑 관련이 있는거야?”“고한빈은 해외와 계속 연락을 했어. 그리고 해외로 송금도 자주 했지. 그중 몇 번은 이 회사 계좌로 이체한 거였어. 한지철이 고한빈을 대신해서 보낸 메시지 주소가 바로 이 회사야.”“이 회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거야? 도씨 가문의 설경구와도 관련이 있는거고?”“맞아.”“...”이 소식은 정말 강유리의 예상을 뒤엎었다.어쩐지, 알렉스가 내부 네트워크에 지난 몇 달 동안의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니. 게다가 앞부분은 인위적으로 삭제했다고 했었다.몇 달 전 윌리엄 왕자가 사고를 당하면서 그 파벌이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때문에 이 회사도 발각됐기 때문이다.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발각됐는데도 계속 이 회사를 통해 연락한다고?”육시준이 대답했다. “발각됐지만 압류되지 않았다는 건 그들이 일찍이 빠져나갔다는 증거야. 정보도 지우고 과거도 모두 지운 뒤에야 겨우 숙청을 피해갈 수 있었겠지.”사실 지금은 왕권을 공고히 할 때였고, 때문에 바렌 공작은 될수록 일찍 돌아가야 했다.가서 이런 남겨진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그러나 그는 강유리 때문에 이 곳을 떠나기 아쉬워했고, 그 때문에 잔당들에게 꼼수를 부릴 기회를 주었다.강유리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반평생을 고생하고, 아내랑 자식이랑 흩어져 지낸 결
“알겠어요, 알겠어. 그건 이따가 신경 쓰면 되잖아요? 진행 순서는요? 진행 순서 좀 보죠.”그녀는 고한빈 부자가 어느 순서에 함정을 깔아놨을 지 알아봐야 했다.“...”보좌관은 못마땅한 듯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는데, 상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 포기했다.릴리가 진지하게 진행 순서를 보았다.순서는 간단했다.이사회 대표가 몇 마디 하고 나면, 고정남이 이어서 발언한다.그의 발언에는 릴리의 소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소개가 끝난 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명을 하고, 양도 계약서를 들고 같이 사진을 찍으면 된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형식일 뿐이다. 양도 계약서와 과반 주주의 동의서 모두 작성되었고, 양도도 이미 완료되었다. 지금은 그저 공개만 남은 상황이었다.릴리는 진행 순서들을 주시하며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모든 순서에는 고정철이 등장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녀는 약간 조마조마하고 궁금하기도 한 마음으로 3시 정각에 기자회견에 나타났다.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매우 질서 정연했다. 평소 길을 막고 인터뷰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릴리는 고정남의 옆자리에 앉아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노출되었다.고정남은 릴리가 왈가닥하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이런 진지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그녀는 몸가짐이 우아했고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예전과 비교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고,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으려고 태어난 듯 했다.그는 만족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여러분에게 제 막내딸을 소개하고 한 가지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현장은 조용하고 이따금 셔터 소리가 찰칵찰칵 났다.고정남의 발언이 끝나자 이사회 대표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모두 형식적인 인사말들이었다.그동안 함께 지내 본 입장에서 릴리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산다는 등의 인사치레였다.릴리는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먼저 릴리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 다음 대중들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두 릴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자기가 지금 릴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 셈이다. ‘나는 이미 할 만큼 했어...’그래도 겉으로 드러내는 견제가 뒤에서 몰래 부리는 수작보다 나은 편이다.고정철의 말은 듣기에 꽤나 거북했다. 하지만 릴리는 옆에 있던 고정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발견했다.‘설마 자기 동생이 이 정도로 끝낼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더 이상 어떤 수도 쓰지 않을 거라고?’‘허, 나는 안 믿어.’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자기 몫에 손을 댄다면 릴리는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독설 몇 마디로 끝낼 리가 없다. 릴리는 얌전한 척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 자리에 계속 있으려면 지금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겁니다.”고정철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터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랫사람이 가진 그릇에 달렸다.”“...”‘이 늙은이가 기어코 시비를 걸겠다 이거지.’고정철은 릴리는 그릇이 안 되어 이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다고 돌려 까는 것이다.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예요. 그럼, 모두 다 불편해지자고요.’“셋째 삼촌은 제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어쩐지. 그럼 얼마 전에 아드님이 했던 행동들은 혹시 새로운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 인가요?”릴리의 말투는 여전히 고분고분했지만 내용은 허를 찔렀다.고정철은 안색이 약간 변하며 목소리를 깔고 야단을 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고정남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내 릴리를 제지했다. 설령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런 자리에서 말하면 안 된다.“그만하거라! 지금이 어떤 자린지 주의해라. 더 이상 네 셋째 삼촌의 화를 돋구지 마라!”릴리
기자회견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무도 이 계집애가 이렇게 또라이일 줄은 몰랐다.고성그룹의 체면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처음 등장했을 때의 조신하고 우아한 모습은 전부 다 가짜였다.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는 아무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고정남은 망연자실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수없이 후회했다. 애당초 릴리가 찾아와서 자기를 아버지라고 인정하려 했을 때 밀어내지 말걸. 지금의 릴리는 부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기자들은 질문을 제대로 준비할 겨를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앞으로 몰려가 꼬치꼬치 캐물었다.“릴리씨, 고성그룹 예전의 일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릴리씨, 아까의 발언은 고성그룹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는 말씀입니까?”“지금 고성그룹에 닥친 위기를 만회할 자신이 있으십니까?”“...”릴리는 자기 태도를 밝힌 후 입을 다물었다.사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릴리도 고성그룹이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그녀는 단지 제부가 고성그룹이 그녀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온 것뿐이다...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성그룹 별장. 고씨 어르신은 이 장면을 보고 화가 치밀어 기절할 뻔했다.떨리는 손으로 TV 화면을 가리키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이 미친 계집애가 빚을 받으러 돌아온 게 분명해! 고성그룹을 망치러 온 거라고! 이 년은 애초에 죽였어야 했어. 그리고 이 년의 그 뻔뻔한 어미도 같이 죽였어야 했어!”“진정하세요, 어르신. 의사가 너무 흥분하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집사가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왔다.고태규가 손을 세차게 흔드는 바람에 물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다 꺼져버려! 다! 이렇게 내 속을 태워서 내가 죽으면 만족하겠지!”기자회견은 결국 참담하게 끝났다. 경호원들이 와서 모두가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했다.대기실 안.
연회는 호텔 꼭대기 층에서 열렸다. 강유리가 도착했을 때 릴리는 지루해서 고정남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기자회견장에서 릴리가 파격적인 행동을 보인 바람에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쏠려 있다. 그들은 때때로 와서 술을 권하며 떠보듯 얘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물론, 릴리도 아무 때나 소동을 벌이는 건 아니다. 이렇게 한가할 때는 릴리도 굳이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고정남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람을 기억할 뿐이다.어쩔 수 없이 비위를 맞추고 있는데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릴리는 두 눈이 반짝했다. “우리 언니가 왔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고정남은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슬쩍 쳐다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릴리는 달아나 버렸다.릴리가 이 말을 한 것은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기자회견이 끝났고 고정남은 이사회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또 어르신의 전화를 받아 혼났었다. 그는 릴리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고정남은 릴리가 또 사고를 칠까 봐 주변에 먼저 실례한다고 말하고 릴리를 따라갔다.온 사람은 강유리와 육시준뿐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고 아저씨.”고정남은 허세를 부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 둘만 왔느냐?”육시준이 대답했다. “외할아버님은 소란스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으셔서요.”“...”육시준은 그가 묻는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고정남은 계속 물어보지 않았고 육시준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미적지근했다. 어차피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연기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 언니랑 얘기를 좀 나누어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릴리는 고정남이 따라온 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고정남은 릴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직 소개시켜 줄 분들이 더 남아있다. 그러니 맘대로 돌아다니지 말거라!”그러자 릴리가 강유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 걱정마세요. 곧 돌아올게요.”고정남은 막았지만 소용이 없자 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