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는 호텔 꼭대기 층에서 열렸다. 강유리가 도착했을 때 릴리는 지루해서 고정남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기자회견장에서 릴리가 파격적인 행동을 보인 바람에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쏠려 있다. 그들은 때때로 와서 술을 권하며 떠보듯 얘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물론, 릴리도 아무 때나 소동을 벌이는 건 아니다. 이렇게 한가할 때는 릴리도 굳이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고정남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람을 기억할 뿐이다.어쩔 수 없이 비위를 맞추고 있는데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릴리는 두 눈이 반짝했다. “우리 언니가 왔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고정남은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슬쩍 쳐다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릴리는 달아나 버렸다.릴리가 이 말을 한 것은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기자회견이 끝났고 고정남은 이사회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또 어르신의 전화를 받아 혼났었다. 그는 릴리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고정남은 릴리가 또 사고를 칠까 봐 주변에 먼저 실례한다고 말하고 릴리를 따라갔다.온 사람은 강유리와 육시준뿐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고 아저씨.”고정남은 허세를 부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 둘만 왔느냐?”육시준이 대답했다. “외할아버님은 소란스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으셔서요.”“...”육시준은 그가 묻는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고정남은 계속 물어보지 않았고 육시준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미적지근했다. 어차피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연기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 언니랑 얘기를 좀 나누어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릴리는 고정남이 따라온 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고정남은 릴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직 소개시켜 줄 분들이 더 남아있다. 그러니 맘대로 돌아다니지 말거라!”그러자 릴리가 강유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 걱정마세요. 곧 돌아올게요.”고정남은 막았지만 소용이 없자 릴
한편 이쪽. 릴리는 강유리를 끌고 다른 구석으로 왔다.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걸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야 릴리는 비로소 신비롭게 말을 꺼냈다.“드디어 왔네요! 언니랑 제부가 없으니까 연회의 물 한 잔도 못 마시겠는 거 있죠.”강유리는 이런 릴리의 모습을 보고 장난스레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네가 고정철을 한 방 먹이는 걸 봤어. 꽤나 배짱이 있던데.”그러자 릴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이 제 면전에다 대고 비난을 하는데 참을 수는 없잖아요.”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리 있어. 잘했어.”릴리는 멈칫했다. 그녀는 칭찬을 바란 것이 아니다.릴리는 연회장을 힐끗 쳐다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고정철 집안 사람은 한 명도 안 왔어요. 뭔가 큰 수를 꾸미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네 제부가 다 준비했대. 걱정하지 마.”강유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들이 대체 뭘 하려는 건데요?”강유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나도 몰라.”“...”만약 릴리가 언니의 성격을 몰랐더라면 귀찮아서 그러는 줄 오해했을 것이다.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릴리는 왠지 실망했다.그래도 제부가 손을 써놨다는 것을 알고 릴리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신하균도 온다던데, 혹시 봤어?”강유리는 로비를 훑어보며 낯익은 모습을 찾았다.릴리는 관심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봤어요. 오늘 새로운 분들을 너무 많이 기억해서 이제는 알던 사람도 까먹을 지경이에요.”두 자매는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모두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이었다.처음엔 강유리도 릴리를 위로하고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하지만 곧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경계심이 있는 것도 나쁠 건 없다. 만약 육시준이 눈치채지 못한 게 있더라도 릴리가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7시가 거의 되었다.하객들이 거의 다 도착했다.고성그룹의 손님들 외에 릴리와 강유리의 친구들도 왔다. 육경서와 신주리, 소안영과
“네가 그럴 수나 있고?”신하균이 되물었다.“...”신주리도 사실 육경서와 비슷하다.연예계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지라 가문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다.오늘같이 많은 매체가 온 자리에서 자기가 신안그룹의 아가씨라는 것을 공개하면 지난 몇 년 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다들 그녀가 백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리고 내가 오늘 온 것은 부탁 때문도 있다.”이 말을 할 때 그는 릴리쪽을 슬쩍 훑어보았다.“고맙습니다, 오빠!”신하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주리와 육경서가 되려 반박했다. “뭐야, 언제부터 오빠가 된 거야?”“아니, 넌 도대체 오빠가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보는 사람마다 어째 다 오빠야?”“...”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저도 사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너무 친절하시잖아요. 그런 사람한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어요! 그럼 삼촌이라고 부를까요?”신주리와 육경서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그럴 필요는 없고!”그들은 촌수가 낮아지기는 싫은 것이다.신하균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왠지 릴리가 선을 그은 것처럼 느껴졌다...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태규는 엄숙한 표정으로 릴리를 매섭고 노려보았다. 하필이면 소개말이 상냥하고 자상한 대사라 그는 이를 갈며 사람들에게 앞으로 그의 어린 손녀를 잘 보살펴 달라고 했다...그의 어린 손녀딸은 조용히 몸서리를 쳤다. ‘이 늙은이는 고정남보다도 연기를 못하시네. 이렇게 나를 쳐다보니까 정말 소름 끼쳐!’“오빠, 여기 누구 있어요? 제가 여기 앉아도 방해되지 않겠죠?”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여러 사람 사이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디너쇼는 뷔페 모드다.셰프가 즉석에서 요리해서 음식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고 친한 사람과 함께 앉았다.릴리가 있는 테이블은 연회의 주인공이자 자체적인 팀이다.다들 잘 알고 있다.그래서 옆에 빈자리가 있더라도 눈치 없이 오는 사람은 없다.이 목소리가 간드
김솔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대헌그룹 회장 집에 입양되어 김옥과 함께 자랐다.김옥과 김솔은 성격이 정반대다. 한 명은 과묵하고 한 명은 외향적이고 열정적이다.이런 정보들은 모두 대헌그룹 측이 말한 것이다. 김옥은 아주 잘 보호를 받고 있어 연회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그리고 김솔은 일찍이 출국해서 올해에야 국내로 돌아왔다.김솔이 이름을 밝히자 사람들은 인차 그녀의 신분을 알아차렸다...자기소개를 마치고 그녀는 의도가 뻔히 보이게 신하균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오빠는 이름이 뭐예요?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신하균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거리를 주의하시죠.”김솔은 신하균과 불과 몇 센티 떨어진 곳에서 보조개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부끄러워하시는 거예요? 저한테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떨어져 있을게요.”“...”원래는 편안하던 분위기가 김솔이 오고 나서는 꽁꽁 얼어붙었다.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그녀를 바라보는 릴리의 표정이 묘했다.릴리는 강유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곤댔다. “언니, 왜 저 사람한테서 내 그림자가 보이는 거죠?”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나도 방금 그렇게 느꼈어.”어떤 면에서 김솔과 릴리는 많이 닮았다. 둘 다 열정적이고 목표가 명확한 사람이다.자신이 원하는 것이 생기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제가 예전에 저랬었나요?”릴리는 김솔이 신하균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과일을 거의 입에까지 건네는 걸 바라보며 물었다.강유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한테 이걸 깨닫게 하다니. 김솔도 괜히 오진 않았네.”두 사람이 계속 붙어있는 모습에 소안영이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두 분, 옆에 있는 사람들도 좀 신경 쓰시죠? 아니면 둘이 다른 테이블로 가던가.”김솔은 마음에 쏙 든다는 표정으로 말했
육경서의 말은 릴리를 더 화나게 했다. 릴리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런 여자? 용감하게 자기 호감을 표시한 게 어때서? 너 그거 엄청난 편견이야!”“???”그는 편견은 없다. 그저 릴리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다. 그런데 역효과를 낳다니!육경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가장 말이 많던 소안영과 도희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저 이따금씩 이쪽을 흘끗 쳐다보았다.누군가가 갑자기 급발진을 할까 봐 다들 조심스러웠다.정말 예상외의 상황은 누구라도 속수무책인가 보다.릴리는 연회에 오고부터 쭉 경계를 했다. 음료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마시더라도 샴페인 탑의 중간에 있던 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던 것을 마셨다.그런데 지금과 같은 자극을 받고 릴리는 경계심도 잊은 채 샴페인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툭!술잔을 테이블 위에 세게 내려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신하균 씨 제정신인 거예요?”가장 가깝던 강유리가 재빨리 맞장구 쳤다. “제정신 아니고말고!”신주리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미친 게 분명해!"릴리는 말문이 막혔다...“제가 못생기기를 했나요. 아니면 유혹하는 기술이 서툴렀나요? 왜 저는 그렇게 오래 노력해도 안 되던 게 저 여자는 팔짱 몇 번으로 되는 거죠?”지금은 질투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다.모두들 얼떨떨해서 안색이 제각각이었다.하지만 연애 쪽으로는 또래 여자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곧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육시준이 왔을 때 그들은 모여서 열기 나게 토론하고 있었다. 육시준이 육경서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육경서가 아까 있었던 일을 그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전 과정을 들은 육시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차갑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신하균을 바라보았다.그는 열기 나게 토론하고 있는 여인들을 내려보며 말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나?”그의 냉철한 목소리가 사람들을 일깨웠다.“...
“릴리를 좋아하시는군요? 하지만 릴리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여자는 여자가 제일 잘 알아요. 릴리가 당신을 보는 눈빛에는 숭배와 사랑이 없어요. 당신이 저와 함께 가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한다면...”제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릴리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감히 그렇게 확신할 수 없다.저도 모르게 지난번 차 안에서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지금 너무 좋아요. 이제 더 이상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편해요!”“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어쨌든 김솔이 저보다 예뻐서는 아닐 테니까!”릴리는 스스로 눈치껏 이 화제를 끝냈다.듣기 싫은 대답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있다.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신하균이 릴리를 붙잡았다. “네가 싫다고 한 적은 없다.”순간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구경꾼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설마 고백인 건가?가장 충격 받은 것은 신주리였다.신주리는 갑자기 자신이 친오빠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었나?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수수께끼도 아니고 저게 뭐야?’‘정말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부모님이 자꾸 결혼을 재촉해서 변명을 만든건가?’다들 각자 그의 뜻을 추측하며 릴리가 이‘고백’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했다.“네, 네. 체면을 세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여린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으셔서요!”릴리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말투였다.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도 모두 주의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어떤 말이든 연애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릴리가 지금 딱 그렇다.이 말을 남기고 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을 가지러 갔다.릴리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고 흥미도 없어 보였다.테이블에 남은 사람들은 멍하니 서로만 쳐다봤다. 그리고 착잡한 눈빛으로 신하균을 바라봤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나니 정신이 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릴리는 거울 속에 비친 동그스름한 얼굴을 바라봤다.전통적인 의미의 세련된 미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여운 얼굴이다. 화장이 좀 지워졌지만 피부는 여전히 하얗고 섬세하고 탄력 있다. 김솔과는 각자의 매력이 있고 막상막하인 미모다. 굳이 김솔보다 못한 부분을 찾자면 릴리의 말투는 그녀만큼이나 애교 섞이지 않았다. 릴리는 늘 자기가 애교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기꺼이 패배를 인정했다. 너무 오글거리는 말투다! 김솔은 신하균과 밤새도록 함께 있었고 계속 대화를 나눴다.릴리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게 언니가 말한 죽이 맞는 건가? 그럼, 그 두 사람은 소울메이트인 거야? 릴리는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리를 더 흔들었다.‘됐어. 그만 생각하자.’그들이 소울메이트여도 릴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밖으로 나와 유리문을 열자마자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릴리는 놀라서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서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깜짝 놀랐잖아요!”릴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불만을 토로했다.남자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눈살을 찌푸렸다.온 사람은 다름아닌 고우신 이였다. 연회 내내 그림자도 안 보이더니 연회가 끝나자 만났다.캐주얼한 티셔츠, 반바지, 운동화 차림이 연회에 참석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좀 비키세요.”릴리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밀어젖히고 떠날 준비를 했다.손목이 커다란 남자에게 잡혔다. “오늘 같은 결과에 만족하냐?”릴리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 사람은 확실히 연회에 참석하러 온 것이 아니라 트집을 잡으러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만족해요. 당신은 만족하지 않나 보네요?”“...”고우신은 말문이 막히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가 너희들 목적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고성그룹이 지금 육시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걸로 협박해서는 안 되지! 어쨌든 너는 우리 가문 사람이야. 그러니 당연히 가문의 이익을 최우
릴리는 방금 신하균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데려다주겠다 하고 얼마 전에 언니가 제부가 자기를 팔아버렸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릴리는 뭔가 깨달았다. 제부는 지금 자기와 신하균을 맺어주는 거다. ‘어쩐지. 오늘 자발적으로 배웅해 주겠다고 하더라니!’“그래요. 그럼 저희도 이만 가자고요. 언니한테는 이따가 메시지 보낼게요.”‘내가 가면 신하균도 김솔이랑 더 편하게 있겠지?’고우신이 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곧 빠른 걸음으로 릴리를 따라가서 가까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람보르기니의 굉음이 조용한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이내 먼지를 일으키며 차고를 떠났다...릴리는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귀가 아파와서 고개를 돌려 그를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술 취한 사람한테는 잘난 척 좀 그만하시죠.”그리고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그가 릴리 마음속에서 루저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우신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흥이 난 것 같았다.“너도 카레이서라면서?”“왜요? 저번에 진 거에 만족하지 않아요? 저랑 한 판 더 붙을래요?”릴리는 가시가 돋친 말을 계속 내뱉었다. 고우신은 패배를 인정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판 붙어보고 싶다.”릴리는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평소에 바보 같던 오빠가 화도 내지 않고 차분해서 릴리는 약간 적응이 안 됐다.이러면 놀리는 재미가 없다. 릴리는 흥미를 잃고 입을 다물었다.차 속도가 매우 빨랐다. 릴리는 약간 취한 상태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는 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아예 눈을 감고 그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얼마가 지났는지 잠이 들었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릴리는 경계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우신의 얄미운 얼굴을 힐끗 본 후에야 마음을 천천히 놓았다.고우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그저 이 멍청한 사람은 머릿속이 온통 가족뿐이라 릴리의 신분을 받아들인 이상 엉뚱한 짓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