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서의 시선이 세 여자의 얼굴을 차례로 훑었다.‘아니야. 자세히 살펴보면 소안영 저 여자가 문제네. 순진한 우리 주리랑 형수님을 완전 휘두르고 있잖아. 형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여자 너무 위험해.’육경서가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어떻게든 저 여자한테도 남자를 붙여주는 게 맞는 것 같아. 주태규라고 했나?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또 그런 스타일이 한번 제대로 빠지면 순정파지. 그리고 소안영도 주태규한테 어느 정도 호감은 있는 것 같단 말이지...’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육경서가 조용히 룸을 나섰다.잠시 후, 저녁 12시.강유리의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알코올에 잠식되었던 뇌가 번쩍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이런, 젠장!”“왜 그래?”수다를 떨며 깔깔대던 신주리, 소안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에 강유리가 휴대폰 액정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어떡하지? 12시 전에 무조건 집에 들어오라고 했는데.”“하.”초조한 강유리의 표정에도 소안영은 피식 웃어보였다.“12시가 통금? 하이고, 신데렐라세요? 아주 말끝마다 남편, 남편. 솔로 속 뒤집을 일 있냐?”“육시준에 대해 이것저것 물은 건 너였잖아. 대답해 줘도 난리야.”강유리가 소안영을 노려보았다.“그래. 친구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라면 내가 희생해야지.”소안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잠시 후, 밖을 나오니 차가운 겨울바람에 소안영도 강유리도 술 기운이 확 가시는 기분이었다.“남편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 거야 아니면 내가 택시 불러줄까?”“음...”“강유리!”이때 어딘가 불쾌함이 묻어있는 목소리에 강유리와 소안영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깔끔한 패션 센스까지 나무랄 데 없는 남자였지만 강유리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고우신?’이때 성큼성큼 다가온 고우신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신영이 그쪽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어요. 과거의 오해에 대해서는 그쪽한
한편, 꽤 취해서인지, 애초에 얘기를 비밀로 할 생각이 없어서인지 두 사람의 귓속말은 고우신의 귓가에 그대로 흘러들어갔다.“강유리 씨!”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고우신이 목소리를 높였다.“뭔데요?”강유리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얘는 진짜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거지?’순간 말문이 막혔던 고우신이 대답했다.“신영이가 연예계 은퇴하는 거, 네. 좋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은퇴하는 거여야 해요. 이딴 식으로 쫓겨나는 게 아니라. 장경호 대표더러 그 기사 당장 내리라고 하세요.”인성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과는 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발표와 함께 행여나 사람들이 그게 누구인지 모를까 걱정이라도 되었던 건지 성신영에 대한 폭로글을 올렸던 계정을 팔로우까지 한 로열 엔터에 대한 얘기였다.가뜩이나 정신 상태가 아슬아슬한 성신영에게 일방적인 계약 해지란 소식은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고우신은 생각했다.그랬으니 긴 문자와 함께 자살기도까지 한 것일 테니까. 뭐, 다행히 그가 제때에 달려간 덕분에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내가 살아있는 한, 유리 언니는 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고우신은 성신영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솔직히 신영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애초에 바람을 핀 임천강이 문제지. 신영이도 그냥 피해자일 뿐이잖아?’집안에서 제대로 인정도 못 받고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들의 악플을 받아냈을 성신영을 생각하니 고우신은 오빠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하지만 고우신의 당당한 태도는 강유리의 반골기질을 그대로 불러일으켰다.“싫다면요?”이에 고우신이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유부녀가 이런 유흥업소에 드나든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괜찮겠어요? 육시준은 물론이고 그쪽 집안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요?”“아니, 잠깐만요.”이때 소안여이 끼어들었다.“애초에 유리 남편이 우리더러 여기서 놀라고 한 거거든요. 뭐 알지도 못하면서.”소안영의 대답에 고우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이 세상 어느 남자
‘허, 정말... 육시준 대표님 와이프였어?’겉으로는 덤덤한 척하는 고준상의 속마음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였다.“아, 그럼 저기 저분은...”고준상이 잔뜩 굳은 표정의 고우신을 돌아보았다.“우리 유리를 짝사랑하는 분이신데. 뭐, 어떻게 처리할지는 알고 있겠죠?”짝사랑이라니.고우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게 지금 무슨...”“고객님!”한 발 앞으로 다가선 고준상이 그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자중하시죠.”“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 좀...”“밖으로 모시겠습니다.”고우신이 해명을 하려 버둥거렸지만 결국 다른 경호원들의 손에 이끌려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그리고 소안영은 이미 몸에 힘을 쫙 푼 강유리를 겨우 부축해 차 앞까지 다가갔다.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안영을 향해 고준상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죄송합니다. 사모님께서 모르는 이성과의 스킨십은 싫어한다고 들어서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허, 뭐 얼굴은 처음 보는 걸 텐데. 그쪽들 사이에서 나름 메뉴얼이라도 돌았나 봐요.”잠시 후, 강유리를 태운 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고...그제야 빼꼼 눈을 뜬 강유리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뭐야. 집까지 데려다주는 줄 알았는데. 하여간 의리없긴.”고개를 들어 운전석을 힐끗 바라본 소은정은 어딘가 육시준과 닮은 뒤통수를 발견하곤 무의식적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흥, 남자들은 다 똑같아. 짜증 나게.”그녀의 말에 뭔가 불쾌한 건지 핸들을 잡은 긴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던 그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뭔가 떠올린 듯 휴대폰을 꺼내들었다.“로열 엔터, 성신영과의 전속 계약 해지”“연예계 성신영 지우기 시작, 광고 위약금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돼...”그 아래로 티즌들의 남긴 댓글들 역시 기사 타이틀 못지 않게 자극적이었다.“바로 손절하는 거 보소. 이제 성신영은 끝이네.”“인성 안 좋은 애 데리고 가봤자 손해라는 거 아는 거지.”“이게 친딸과 사생아의 차이인 건가. 고성그룹 쪽도 왠지 조용하다?”“우리
몇 초 후.지잉지잉.연결음과 함께 휴대폰 진동소리가 차 안에서 울려 퍼지고 흠칫하던 강유리는 운전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이만 퇴근해 보세요. 전 남편이 데리러 나올 거라.”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기사는 말없이 수락 버튼을 누를 뿐이었다.그리고 육시준이 전화를 받은 것을 발견한 강유리가 바로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나 취한 것 같아...”“그래. 많이 취한 것 같네. 남편 뒤통수도 못 알아보고.”‘뭐지?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것 같기도...?’“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환청인가 싶어 강유리는 운전석 쪽으로 목을 내밀었다.“...”기나긴 침묵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강유리가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좌석을 뒤로 이동한 육시준이 강유리의 얼굴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으악!”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익숙한 품속에 안긴 강유리는 한참 뒤에야 상황을 인지하고 가볍게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뭐야. 진짜 당신이었어? 그런데 오는 내내 왜 한 마디도 안 했어?”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육시준이 어딘가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나도 곁에 없는데 그렇게 마음 놓고 자고 있었단 말이야?이에 그의 목을 끌어안은 강유리가 꺄르르 웃어보였다.“에이, 다 연기지. 나 한숨도 안 잤어.”“...”“여보, 다들 우리더러 부부 안 같고 연인 같대. 우리 진짜 연애 해보면 안 돼?”갑작스러운 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엥?’육시준이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리는 오히려 얼떨떨할 따름이었다.평소 같았으면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우린 연인 아니고 부부잖아”라고 말하며 찬물을 확 끼얹었을 텐데 말이다.“뭐야? 훨씬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육시준이 강유리의 코트를 벗겨주고 강유리도 온순히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나 지금 안 취했어. 내일 돼도 똑똑히 기억할 거야.”“그래, 알아. 누가 뭐래?”“그러니까 대충 달래는 식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나 진지해. 나 진지하게 당신이랑
한편 어딘가 이상해진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강유리는 여전히 순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응. 우리 오늘 은밀한 얘기도 많이 나누었지롱.”“예를 들면 어떤 얘기?”자연스레 대답하려다 정신이 번쩍 든 강유리가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여자들끼리 한 비밀이야기야. 남자는 안 돼요!”“주태규... 생각보다 매력이 떨어지네.”나지막한 육시준의 목소리에 강유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뭐?”“그럼 우린 부부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볼까?”그리고 강유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턱이 붙잡힌 그녀를 향해 뜨거운 키스가 쏟아졌다.잠깐 멈칫하던 강유리 역시 어느새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긴 채 천천히 응하기 시작했다.알코올 향이 깃든 달콤한 숨결에 육시준은 이곳이 아직 차안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내일 일어나도 정말 다 기억할 수 있겠어?”어느새 섹시하게 젖은 목소리로 육시준이 물었다.“응.”“그럼 똑똑히 기억해. 이 모든 걸.”차가운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 날씨와 달리 차 안의 온도는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야릇한 숨결로 뜨겁게 데워진 차안에서 강유리의 이성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었다.몽롱해진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강유리가 입을 열었다.“육시준...”“여보라고 불러.”‘정말 여기서 하는 게 괜찮은 건가?’이성과 욕망이 서로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잠시 후, 강유리는 소안영의 질문을 떠올렸다.“흠, 시간 보는 걸 깜박했네.”강유리가 어딘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이때 어디선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 강유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뭐야? 에에컨 끈 거야?”“추워?”잠깐 멈칫하던 육시준이 질문과는 다른 대답을 던졌다.“그럼... 다시 뜨겁게 달궈주면 될 거 아니야.”...다음 날 아침.강유리는 해가 중천에 뜰 때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어정쩡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 강유리는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있는 육시준을 발견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차라리... 취해서 필름 끊기는
식사를 마친 강유리는 태블릿으로 기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여한영 본부장 역시 발빠르게 앞으로 유강엔터 역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연예인과는 영원히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란 강경 대응을 내세웠다.“그래도 가족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그럼 의붓언니 남자친구 빼앗은 건 괜찮고?”“어차피 이제 고성그룹과의 연도 끊어졌겠다 바로 꼬리 자르는 거지 뭐.”“난 유강그룹 편이야. 굳이 문제있는 연예인이랑 함께 일하는 리스크를 가질 필요는 없잖아?”“솔직히 처음에 영상이 유출됐을 땐 강유리는 아무 말도 안 했었잖아? 세마가 모든 억울함을 벗은 뒤에야 이런 발표를 하는 걸 보면 설마... 전에 협박이라도 받고 있었나?”“로열 엔터에서 먼저 입장을 발표한 것도 와이프 편 들어주려고 그런 거였어? 뭐야. 스윗해.”“...”육시준과 그녀의 사이를 응원하는 댓글을 발견한 강유리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이 댓글들 당신이 푼 알바들이야?”그녀의 맞은 편에 앉은 육시준이 되물었다.“무슨 댓글?”강유리가 태블릿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이것 봐. 이번 일로 우리 사이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되게 많이 늘었다? 그래서 당신이 푼 건가 해서. 이럼 우리 결혼식 기사 나도 악플은 덜 받을 수 있겠다.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에 딱히 신경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비난보다는 축복속에서 진행하고 싶었다.“장 대표가 왜 그렇게 발 빠르게 입장 발표를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태블릿을 내려놓은 육시준이 물었다.“그게 뭐가 궁금해. 딱 봐도 우리 남편이 시킨 거겠지. 그리고 어젯밤에 이미...”자연스레 말을 이어가려던 강유리가 아차 싶은 생각에 육시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이에 육시준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오버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아, 어젯밤에 벌써 봤던 거야? 어젠 취했다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취, 취하기 전에 본 거지 뭐.”강유리가 부자연스럽게 웃었다.“술 기운이 확 올라왔나 봐.
‘이건 위험하다.’강유리의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웃음기가 서린 육시준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이미 뭔가 눈치챘음에도 일부러 묻는 게 분명한데 도대체 어떻게 넘어가면 좋을까 난처했다.“큼, 뭐 못 알려줄 거야 없지.”강유리가 최대한 호탕하게 웃어보였다.“그냥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지 뭐. 우리가 사이좋게 잘 지내나... 뭐 그런 질문?”“그래서 어떻게 대답...”“윽.”이때 강유리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어딘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에 육시준이 당황하며 물었다.“왜 그래?”일부러 허리를 만지작거리던 강유리는 일부러 더 오버스럽게 물었다.“나 어제... 술 먹고 시비라도 붙었나? 왜 이렇게 삭신이 쑤시지?”“...”“허벅지는 또 왜 이렇게 아파. 나 혼자 집에 왔었어?”강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아니, 당신이 안 온 건 그렇다 치고 기준 씨는?”어이없다는 듯 웃던 육시준이 물었다.“병원이라도 가볼래?”“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이리 와봐.”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었지만 강유리는 급격히 경계하기 시작했다.“왜 나더러 가라고 그래?”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육시준은 너무나 쉽게 그녀를 번쩍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그리고 그의 큰 손으로 강유리의 허리를 어루만졌다.잔뜩 긴장한 채 뻣뻣하게 앉아있던 강유리는 한참 뒤에야 육시준이 마사지를 해주고 있음을 인지했다.“힘 빼. 어때? 지금은 좀 괜찮아?”그제야 안심한 강유리는 자연스레 육시준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윽.”육시준의 마사지는 충분히 편했지만 가끔씩 그녀가 간지러움을 타는 부분을 건드리는 통에 이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금 어색해졌다.“음, 미안.”“아, 괜찮아. 내가 간지러움을 너무 많이 타서.”“아니, 그거 말고. 어젯밤에 내가 너무... 몰아붙인 거 같아서.”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던 강유리가 대답했다.“괜찮아. 뭐 그런 걸로 사과까지 해.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러지
어차피 다 밝혀진 거 강유리는 연기 같은 걸 집어치우기로 결정했다.육시준의 목을 끌어안은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그럼 어젯밤에 했던 대답... 그 대답도 그대로인 거지?”“그럼.”시원한 대답에 만족스러워진 강유리는 방금 전까지 여기저기 쑤셔대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육시준의 입술에 살짝 흔적을 남긴 그녀가 폴짝 뛰어내려 안방으로 향했다.저녁 식사 후.육시준은 평소처럼 서재로 들어가 낮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그런데 서재에 앉은 지 2분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서재 문을 똑똑 두드렸다.“들어와.”문틈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고 강유리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저기요, 옆에 자리 있나요?”그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육시준이 멈칫했다.평소에 집에선 항상 편한 차림으로 있던 강유리가 오늘은 흰 원피스에 살짝 메이크업까지 한 모습이었으니까.화려한 이목구비에 곁들인 청순한 메이크업이 그녀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자리 비었데요.” 어느새 서재로 들어온 강유리가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아, 오늘 너무 늦게 왔는지 도서관에 여기 말고 빈 자리가 없네요. 앉아도 괜찮죠?”‘연애하는 것처럼 살자더니.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로망이었나?’육시준이 픽 웃었다.“괜찮습니다. 여긴 저만 앉는 자리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오세요.”서재를 둘러보던 강유리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솔직히 저도 이런 공간이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이젠 좀 질려버렸어요.”“그럴 리가요. 가장 아늑한 공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내일부터 확장 공사라도 할까 봐요.”“그럼 제가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요.”“...”어색한 침묵 끝에 강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NG! NG! 우리 지금 첫눈에 반한 연기 중이거든? 그런데 왜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방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낸 건 너잖아?”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거기서 포인트를 어떻게 그렇게 잡아? 왜 질렸는지 이유를 물어야지. 그래야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