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하고 차문을 닫은 그녀가 옆에 앉은 고정남에게 바로 불만을 쏟아냈다.“아빠! 왜 세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LK그룹과의 관계를 제외하고서라도... 개인적으로 그 브랜드 좋아한단 말이에요.”“얘기가 잘 안 됐나봐?”눈을 슬쩍 감고 있던 고정남이 고개를 돌렸다.고성그룹이 세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려 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고주영은 펄쩍 뛰며 반대한 것도 모자라 자기가 직접 육시준과 담판을 짓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었다.자기가 나서면 LK그룹이 세마를 포기할 거라고 꽤 자신만만했었는데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시준 씨 회의 중이라 만나지도 못했어요.”고개를 홱 돌린 고주영이 아버지를 흘겨보았다.“아니, 성신영 하나 때문에 앞길 창창한 디자이너 앞길을 망친다는 게 말이 돼요?”하지만 이미 그녀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고정남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주영아. 솔직하게 말해. 너 솔직히 세마가 정말 표절을 했는지 안 했는지 관심없잖아. 그냥 LK가 그쪽과 콜라보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지.”“그런 거 아니거든요.”고주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네가 육시준 대표에게 마음 있는 거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쪽은 유부남이야. 불가능한 사이니 이제 마음 접어야지. 솔직히 네가 고집을 부리니 따라오긴 했다만 이렇게 될 거라는 거 아빠는 알고 있었어.”‘세마는 강유리가 키우고 있는 디자이너지. 육시준이 그런 세마를 포기할 리가 없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아니야.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마음을 접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진지한 표정의 고정남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신영이는 네 동생이야. 얼굴도 모르는 디자이너보다는 훨씬 더 소중한 존재란 말이지.”“전 그렇게 추잡한 여동생 둔 적 없거든요.”‘윽. 아빠가 또 한 마디 하시겠네.말을 뱉고나서 아차 싶은 고주영이 고정남의 눈치를 살폈다.하지만 호통이 내리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고정남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정남
고정남의 말에 고주영은 더 혼란에 빠졌다.‘뭐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또 성신영을 끔찍하게 아끼시는 것 같기도 하고...’과거 그녀가 처음 데뷔했을 때 쏟아지는 악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사람이 영상 하나에 플랫폼 전체를 통제할 정도로 큰 힘을 퍼붓다니.지잉.때마침 들리는 휴대폰 진동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렸다.“여보세요?”“대표님. 그게... 영상이 또 다시 업로드되었습니다. 게다가 무슨 수를 썼는지 아무리 내려도 끊임없이 다시 업로드되고 있어요.”워낙 조용한 차안이라 통화내용을 똑똑히 들은 고주영이 부리나케 휴대폰을 꺼냈다.역시 다시 업로드 된 영상 밑에는 어느새 댓글이 가득 차있었다.“와, 대박이다, 진짜.”“성신영 목소리 맞지? 임천강이 정말 바람 피운 거야?”“성신영이 빼앗은 거였어?”“재벌 아버지 물어서 탄탄대로이겠거니 했는데 완전 날벼락이네.”“호적 잉크 마르기도 전에 바로 파이게 생겼네.”“에이, 설마. 고정남 대표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딸인데 설마 이런 영상 하나로 딸을 버리기야 하겠어?”“그러니까. 이 영상 어젯밤에 올라왔다가 갑자기 다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딱 봐도 고성그룹이 힘쓴 거지 뭐.”“그럼 이 영상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거네? 그럼 일단 다운...”차안의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자 고주영은 눈치껏 창가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입을 삐죽거렸다.‘참나, 다음 번은 없다더니.’한편, 통화를 마친 고정남은 바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알아내. 감히 누가 우리 고성그룹에 반기를 드는 건지.”LK 그룹 사무실.음식이 배달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육시준은 사무실로 돌아왔다.인기척에 소파에 앉아 무료하게 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오래 기다렸어?”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유리도 환하게 웃어보였다.“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30분이면 끝난다더니 이게 뭐야.”‘이크.’괜히 불똥이 튈까 싶어 자연스레 사무실로 들어오려던 임강준은 바로 돌아섰다.“생각
육시준은 그녀의 발 연기를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사무실 기온은 그저 그래요.”강유리는 의자를 들고 육시준의 곁에 붙으면서 가엽게 손을 내밀었다.“그래도 추워요, 사무실 이렇게 큰데, 텅 비어있는데, 아니면 만져볼래요?”육시준은 이해가 안 되었다. ‘사무실이 큰 거랑 손이 차가운 거랑 무슨 관련이 있지?’하지만 그녀가 손을 내밀자 그는 냉큼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그의 미간은 자신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손은 얼음물에 담그듯이 차디찼다.‘오버는 아니네......’“왜 이리 차갑지?”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강유리는 자신이 마치 뜨거운 모닥불 옆으로 가까이 한 듯한 그 따뜻함은 손으로부터 온몸에 달아올라 몸 안의 혈액을 다시 돌게 하였다.그는 따뜻한 온도가 탐이 나 몸을 기울여 아예 육시준의 품에 안겨버렸다.“당신이 놀아주지 않으니 제 맘이 서러워요.”육시준은 한숨을 몇 번을 넘게 쉬었는지 모른다.‘이 여자는 뭐든 바로 배우네!’애교의 절정을 완전히 장악한 것 같았다.단지 머리가 안 좋은지 육시준을 잘 안 믿는다.글쎄 오늘 전화에서 그녀는 육시준이 성신영을 도울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그 순간이 떠오르자 그는 무표정으로 일어나더니 말했다.“가서 온도 올리고 올게요.”강유리는 그를 못 가도록 잡으면서 말했다.“아니 필요 없어요!그냥 당신이......”순간 그는 멈춰 섰다.육시준이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그를 잡던 그녀의 손은 허공을 헛잡아 몸 전체가 육시준한테 덮쳐져 턱은 마침 그의 몸에 부딪혔다..부딪친 건 둘째 치고 아프지 않으니 괜찮지만,당황스럽게도 두 사람 현재의 자세가 너무 애매해져 분위기가 묘했다.한 사람은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앉은 상태로 그녀가 부딪친 곳은 마침 상대방의 민감한 부위였다.그녀는 분명히 느껴졌다. 육시준은 몸이 굳어지더니, 바로 본능적으로 더 다치기 전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떠밀었다.“저, 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
그 익숙하고 청아한 숨결이 스프레이처럼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강유리는 동공이 흔들리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뜨거워졌다.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았다.이 과정 중 몰래 그 사람의 아랫배 이하의 방향을 힐끗 보다가 알아채지 못하게 얼른 시선을 비켜 모니터로 향했다.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육씨 그룹의 해외법인 쪽에 아마도 문제가 생겼는지 집에 돌아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계속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역시 우리 남편 짠돌이 아니었어. 그 정도 일로 삐쳐서 집을 안 들어가는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사진 사건 아니면 왜 그녀한테 이토록 냉담하게 굴었을까?’오후 전화를 끊은 다음부터 그녀에게 아무런 답신도 안 줬다.강유리도 종일 바빴는데 큰일은 아니지만 신경은 항상 곤두서 있었다. 이럴 땐 익숙하고 따뜻한 품에 기대며 그 사람의 차분한 심장 박동 소리와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곤히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는지 육시준의 팔뚝이 살짝 움직인 듯 느껴져 슬슬 눈꺼풀을 열어 그를 향해 바라보았다.육시준은 지금 물컵을 들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그녀의 각도에서 그를 보면 마침 그의 꿀꺽 삼키면서 움직이는 목젖이 보인다.그는 한참 바라보다가 망설인 듯 눈을 깜빡거렸다.그녀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육시준도 갑자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저 때문에 깬 건가요? 좀 더 자요, 저 금방 끝나가요.”육시준은 자신도 모르게 평소의 목소리와 달리 부드럽게 속삭이는 상냥한 말투가 나왔다.강유리는 가볍게 말했다.“저도 마실래요.”육시준은 물컵을 놓던 손을 멈추고 다시 그녀에게 내밀었다.강유리는 두 손으로 물컵을 껴안으며 한 모금 마셨다.그러다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그를 향해 투덜댔다.“왜 커피에요? 오밤중에 커피를 마시면, 어떻게 잠들려고?”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청량한 목소리로,“괜찮아요,안 졸리니까 당신이 다 쉬고 나면 우리 다른 일도 해야지”‘이 얘기를 꺼내면 졸
한참 동안 답이 없자 강유리는 어색한 마음을 정리하고 나서야 육시준이 이미 일에 빠져있음을 발견했다.기다랗게 눈썹을 그린 두 사람은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다.딴생각 중인 듯이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몇 분 후 그는 일을 끝내고 노트북을 닫아버렸다.“자세하게 말해봐요, 뭐가 미안한지?”강유리는 멍해서 물었다. “응?”그의 차분한 눈동자를 보며 강유리는 그제야 사색이 돌아왔다.이 남자 지금 조금 전 화제를 이어가는 것이었다.‘이 사람이 어떻게 수시로 근무 모드랑 생활 모드를 여유롭게 전환하지? 너무 잘하네......’“오후 있잖아요. 당신한테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고 내 일에 끼어들지 말게 해야 했어요.””그는 머리를 숙여 울적한 목소리를 내며 조금 전 기세가 당당했던 모습이 오간 데 없고 아주 얌전하게 있는다.육시준은 물었다.“단지 그것 때문에?”그녀는 고개를 흔들더니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당신 믿었어야 했어요. 전에도 나보고 하고 싶은 일이면 하라고 했는데 전 겨우 성신영을 돕지 못하게 하려고 너한테 전화를 걸었잖아.”육시준은 사과가 맘에 든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정확하게 반성을 하네, 양심은 아직 있군.”강유리는 고개를 기울여 그를 보면서 말했다.“그럼 화 풀었죠?”남자는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잘못한 구석이 있어요, 잔업 한다면 당신한테 말했어야 하는 잡생각 하는 모습 놔두는 게 아니라.”강유리는 조금 놀란 듯 불가사의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다.“당신 지금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육시준은 말했다. “나라고 사과하면 안 되나?”강유리는 대뜸 고개를 흔들다가 또다시 끄덕이면서 말했다.“당연히 되지, 그냥 안 한 짓 하길래......”분명히 그녀가 일으킨 사단인데 쉽게 용서를 구했고 게다가 남자의 진정어린 사과까지 받았다.예전 같았으면 임천강이랑 싸웠을 땐 부단히 선물 공세를 하고 돈을 줘야 화해가 이루어졌는데 말이다.‘퉤. 재수 없어. 그 새끼 생각은
강유리의 볼은 점점 달아올라 뜨거워졌다. 두 눈동자는 어색하게 흔들렸다.‘이런 분위기에서 물어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이토록 신사적인 면을 본 적 없었다!’그녀의 약간의 겁이 달리고 부끄러운 눈빛을 보며 육시준의 미소는 더욱 신비해졌다.몸을 더 기울여 가까이하며 섹시한 목소리로 말했다.“대답 안 하면 원하는 걸로 간주하겠어요?”강유리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덮고 말았다.이 키스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느릿하게 탐색하다가 점차 그녀의 의지를 매혹했다.강유리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남자의 목을 둘렀다.이미 새벽에 들었다.이 시각 육씨 그룹 사무실의 불빛이 점차 꺼지고 회장 사무실 방만 등불이 아주 밝았다. 점심.강유리는 JL 빌라 안방에서 깨어났다.그녀는 어젯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겉보기에는 시원시원하고 너그러워 보이는 남자만 기억났다.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부부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 남자와 그녀는 법적으로 부부 관계이지, 커플은 아니다. 지난번 금전으로 유지했던 커플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쯧, 쯧.”강유리는 투덜대며 침대에서 일어난다.그녀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기억 속에 그 남자는 질투쟁이였으나 며칠간 지내온 덕에 마음이 넓은 남자처럼 느껴졌다.세수하고 계단을 내리는 강유리의 동작은 느릿느릿했다.가운을 걸치고 앉아 나른하게 태블릿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그녀는 그를 보며 몹시 불쾌했다.“당신 왜 아직도 집에 있어요?”육시준은 눈을 거들어 뜨면서 그녀를 한 번 보다가 말했다.“오늘 토요일이에요.”강유리의 입은 삐죽 나와 말했다.“토요일이면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어젠 그렇게 바쁘더니, 오늘 다 해결된 거예요?”“어제 이미 처리 다 했어요.”남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녀를 향해 손짓하면서 말했다.“여기 와요, 보여 줄 게 있어요.”오주선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면서 강유리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사모님 일어
강유리는 스크린을 뚫어지게 보면서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게 바로 자본의 힘인가?”세력이 강한 자본 앞에서는 모든 책략과 배치는 보잘것없는 꼼수일 뿐이다.여론 전쟁이란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거물들한테는 심플하게 여론을 통제한다.어제 그녀의 처리 방식은 사실 완벽했다.아쉬운 점은 아마 그녀가 고정남이 성신영에 대한 중시도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 사건이 고씨 그룹 홍보팀까지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당신도 할 수 있어.”육시준은 차분한 목소리고 그녀를 일깨웠다.“당신이 마음만 먹으면…”강유리는 입꼬리가 올라가 웃으면서 말했다.“아니에요, 자본을 어떻게 이겨요, 이 판에서 지면 그만이죠.”육시준은 마음에 안 든 듯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여기서 물러나 가려고?”강유리는 얼른 자신만만하고 차분한 자세로 답했다.“당연히 물러 안 나지! 다만 모든 것을 걸로 싸울 정도는 아니어서 쉽게 비장의 카드를 내놓을 순 없죠?”육시준은 그녀의 답이 맘에 드는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내가 이 여자의 히든카드라고? 너무 좋네......’강유리는 소파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메시지를 보니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떠 있었다. 마치 이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된 듯이 말이다.그는 슈가의 대화창을 열어 그녀에게 답신을 줬다.【성신영 일 그만두고, 나 사무실 CCTV 동영상 내보내.】한꺼번에 처리 안 된다면 한 분 한 분씩 해결하면 되지.고씨 홍보팀은 성신영을 살리기 위해 추연화를 화제 몰이에 내놓았다.그녀가 이럴 때 증거를 방출하면 사건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대체 누가 표절한 지 명랑하게 될 것이다.대화창을 닫고 다시 밑으로 내리 보니 여한영 본부장 메시지가 보였다글자 하나하나가 그의 조급함이 넘쳐났다.마지막 메시지 내용은 인생 포기라도 한 듯 절망스러워 보였다.【나 모든 계정 열기를 내려놨어. 모든 걸 말이야. 유리야, 고씨 홍보팀이 나섰어. 우린 그 사람들과는 급이 안돼. 이 일은
강유리는 다급히 화면을 끄고 머리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아니, 남의 메시지를 왜 봐요! 무슨 습관이 그래?”육시준은 여전히 나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목소리도 나른하여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나도 보려고 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제 눈앞에 보여 줬잖아요.”“......”‘비겁하긴!’강유리는 내심 불만스러워 투덜대고는 휴대전화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갔다.육시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얇은 입술이 위로 올라갔다.이때 진동 소리가 느껴져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장경호가 답장했다. 【네, 알겠습니다】그 전 메시지에 육시준이 보낸 내용은,【Seema표절 사건이 좀 가라앉혀지면 공식 vlog 에 가서 성신영 계정을 폭로해, 내용은 공식으로 불성실한 연예인과는 영원히 합작을 안 한다고 올려】그는 생각하다가 또 한 마디 추가 했다.【강씨 엔터 쪽 동향을 파악하고 때를 봐서 적극 지원 해.】【네, 알겠습니다.】아침을 먹고 난 뒤 강유리는 위층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한창 뚫어지게 보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쳐다봤다.화면에는 고주영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셀카 사진이다.꾸안꾸 메이크업인데 포토샵 수정이 너무 심한지 어딜 봐서 같다는 지가 잘 모르겠는데…화면에서 나와 직접 전화를 걸었다.한참 후에야 건너편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유리! 넌 시간이란 개념 없어? 여긴 새벽 3시야!”강유리는 못 들은 척 말했다.“너 평소에도 새벽 3, 4시까지 버티잖아?”그쪽은 더욱 소리가 높아졌다.“나 방금 잠 들었어!”“아, 그래? 미안.”“......”성의가 없다.욕하고 싶다.하지만 강유리는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나 지난번 너 보고 조사해달라는 거, 어떻게 됐어?”전화 건너편은 긴 침묵이 흐르자, 머리띠를 올리던 강유리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자니?”“아니, 그냥 조금 좌절했을 뿐이야.”여자의 목소리는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