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연예계에서 가장 신비롭고 사랑을 받는 톱스타조차 그의 여자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그의 눈은 빨개졌고, 강유리를 향해 울부짖었다.“이것도 네가 나한테 주는 벌이야? 그렇다면 감수해야지. 난 그저 제발 네가 다시 나한테 돌아왔으면 좋겠어……”그는 고통을 참으며 어렵게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유강 주얼리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거야. 전에 네가 좋아하던 게 생각나서 하나 샀어.”그의 행동은 어렵게 가라앉힌 분위기를 다시 얼어붙게 했다. 강유리는 차가운 눈빛의 육시준과 눈이 마주쳤고,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받아주고 싶어?”“아니.”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받아줄지 말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받아주겠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머리를 비틀어 버릴 것만 같았다. 육시준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조금의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았다.“착하지?” 강유리가 대답하려는데 육시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더니 머리를 숙여 차갑게 키스했다. 강유리는 그의 까만 눈동자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짙은 점유욕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져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더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그는 입술이 얼얼하고 피비린내를 풍기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줬다. 강유리는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녀를 보지 않았고, 임천강의 형편없이 짓눌린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봤어? 각자가 필요로 한다고 하더라도 난 어쨌든 쓸모 있는 사람이잖아. 넌? 이런 유행 지난 반지나 가져오고. 형편없는 미친놈. 오늘부로 유리한테서 떨어져. 다시 한번 매달리면 평생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줄 테니까 각오해.”“……”육시준의 목소리는 한없이 담담했지만 뼈 마디마디까지 서늘해질 정도로 쌀쌀했다.임천강은 상상하지 못할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육시준의 경고가 진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 두려웠다. 육시준은 더 이상 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기회조차
“그래, 넌 네 행동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번마다 내가 구걸하길 원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내가 달래주기만 기다리고! 네가 도도하고 항상 사람들이 네 말만 잘 들어줘서 그러는 건 알겠는데 적어도 날 존중해 줘야 하진 않겠어?”“내가 널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육시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그녀의 모든 생각을 존중하고 그녀가 자기 물건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결정도 존중했다.사람들이 자기가 하라던 대로 하는 거에 습관된 육시준은 맞지만, 그 또한 누군가를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존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야?’“넌 이게 존중이라고 생각해? 방금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날 어떻게 대했는데? 넌 날 뭐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고작 너의 승리를 자랑할 도구?”강유리의 눈가는 촉촉했다.육시준은 그녀의 울먹이는 말투에 마음 한편이 총에 맞은 것처럼 아팠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먼저 변명을 했다.“그런 뜻은 아니었어.”“하지만 그렇게 행동했잖아! 사과해!”“…”육시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강유리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고 조그만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나도 겁이 안 나는듯한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뾰로통해 있는 느낌이었다.육시준은 자신이 그녀의 애교에 저항력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이런 모습에 더욱더 어쩔 바를 모르겠다.그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막무가내로 말했다.“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네 감정을 미처 생각 못 했어.”하지만 그녀가 그를 거절하는 이유가 고작 그 남자랑 데이트하러 가기 위해서라는 걸 생각하면 육시준은 냉정하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게다가 어제 그녀는 또박또박 다른 일이 있어서 남는 거지 그를 위해 남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임천강 때문인 건가?강유리의 억울함과 분노는 그의 진지한 사과를 들은 찰나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많이 다퉈서 그녀 또한 뭔가를 터득해 낸 바가 있었다. 쌍방 모두가 자기의 잘못을
말은 끝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육시준을 보고 그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육 회장님?”육시준은 갑자기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되물었다.“첫사랑이 그렇게 잊기 어려워?”“네?”임강준은 잠깐 당황했다.육시준은 차분한 편이라 이번처럼 참을성 없이 누군가를 폭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전부터 임천강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고 자신이 강유리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사랑할 줄도 알지만 헤어지면 깔끔하게 잊을 줄도 알고 눈엔 온통 일밖에 없는 여자.저번에도 분명 나에게 설명했었어. 복수를 위해 나와 결혼한 게 아니라고.그리고 나와 임천강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지. 그러니 강유리 마음속에는 분명히 내가 있어.“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사랑은 여성분들한테 있어서 제일 아름답고 제일 순진했던 추억이니까요.” 임천강은 육시준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똑같이 진지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의 대답을 듣고 육시준의 안색은 어두워졌다.“위선적이고 탐욕이 끝도 없는 인간인데 뭐가 아름다워? 게다가 지금은 결혼도 했는데. 그럴 리가 없어!”임천강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사람이라면 모두 사심이 있는데 그렇다고 위선적이라고 평가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결혼했다고 해도 이혼할 수 있잖습니까!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결혼도 오래갈 수가 없다고 생각…”“넌 우리 사이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해?” 육시준은 위협적인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눈치챈 임강준은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육시준의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한 모습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본능적으로 자기가 육시준의 뜻을 왜곡했다고 느꼈다.“회장님, 영화 얘기 아니었습니까? 주영 씨가 평판도 좋으셔서 흥행성적도 목표에 도달했고 결말도 화제성이 높습니다!”영화의 결말은 엄청 현실적이었다.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여자주인공이 의미 없는 결혼 관계를 끝내고 용감하게 사랑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극소수의 사람만 전 남자 친구가 여자주인공한에게 상처를 줬었기에 용서하
강유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오전에는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육시준이 가끔 부리는 억지에 강유리는 어이가 없긴 했지만 솔직히 싫진 않았으며 그를 달래주는 것도 꽤 나쁘진 않았다.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강유리도 덩달아 즐거웠기 때문이다.“내 남편인데 당연히 달래줘야지!”강유리는 육시준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으려고 했지만 육시준이 굳은 표정으로 싸늘하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마음속에 켕기는 게 있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미안해서?”“내가 켕기는 게 뭐가 있어?”강유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건 전혀 없었지만 솔직히 미안한 마음은 조금 들었다.오전에 육시준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할 때 말투에 감정이 조금 들어있긴 했다. 데이트 신청을 하는 육시준의 태도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녀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러고 나서 임천강을 우연히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이상하게 육시준에게 미안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화 좀 풀어. 오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네가 바쁜 와중에 나랑 영화 보려고 했던 건데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이나 하고. 사과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에 내가 거하게 쏠게. 응?”익숙한 듯 다정한 말투에 애교 섞인 모습까지, 이 모든 건 강유리가 육시준을 달랠 때 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육시준은 그런 강유리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린 채 이마의 주름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알고 있는 그녀는 뭔가 켕기는 짓을 저질렀을 때만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강유리가 이런 모습을 하는 건 단지 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한 것이며 자기 잘못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강유리는 지금 자신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영화 막바지에 여자 주인공은 결국 자기 남편을 선택했어. 전 애인과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고 해도 그건 그저 추억일 뿐이야. 사람은 현재를 살아야 해.”말을 끝낸 육시준은 강유라의 손에서 팔을
프로젝트 담당자가 다급하게 전화하자 육시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계획을 앞당겨 실행하여 육경원을 확실하게 쫓아낼 생각이었다.“넷째 도련님께서 이 프로젝트를 손에 넣자마자 제일 먼저 공급업체를 바꿔버렸습니다. 원재료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임강준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자 육시준이 물었다.“사상자 상황은 어때?”“지금까지 13명이 중상을 입었고 경상을 입은 사람은 백 명 가까이 됩니다. 사망자는 없습니다.”임강준의 대답에 육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임강준은 그런 육시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사실 이럴 때 대표님이 상황을 수습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하시는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 자식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육시준이 싸늘하게 대답했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난 다른 전 애인과 달라. 가식 떠는 박애주의자가 아니란 말이야.”“아…”임강준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육시준을 바라보았다.“네가 말해봐. 내가 임천강 그 자식과 비교했을 때 어때?”화제가 너무 빨리 바뀐 탓에 임강준은 따라가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래도 진정성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런 사람은 대표님과 비교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고 확신이 서지 않는 육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이 여자는 나와 영화 보는 걸 거절하고 그 사람과 커피숍에서 추억을 들먹이고 있었어.”육시준의 말에 임강준이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내가 이 말을 들어도 되는 건가? 무섭네 무서워.’하지만 최고의 비서로서 사장님의 질문을 회피할 수는 없었기에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상대방이 추억에 빠진 거예요, 아니면 두 사람이 같이 추억에 빠진 거예요? 사모님이 그 사람과 몰래 만날 생각이었다면 대표님에게 들키지 않았겠죠? 전 사모님 눈이 높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급한 탓에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속은 거죠. 그렇다고 똑같은 속임수에 두 번이나 당할 사람은
화를 내려고 하던 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보고하지 않았다고? 어제 네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잡으러 오라고 전한 거 아니었어?”문기준은 강유리의 격한 표현에 입꼬리를 살짝 떨면서 대답했다.“전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아닙니다.”“그럼 누구야?”“저도 모릅니다.”아무 말 없던 강유리는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가 확신이 서는 듯했다. 육시준은 그녀가 거절했다는 거에 대해 화를 낸 게 아니라 거절을 한 것도 모자라 임천강을 만났다는 점에 화가 난 것이고 어젯밤에 했던 말들도 일부러 그녀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확실했다.전 애인과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고 해도 그건 그저 추억일 뿐이고 사람은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말…아름다운 추억은 개뿔, 임천강과 그녀의 추억 속에는 금전 거래밖에 없었다!화가 잔뜩 난 강유리는 다시는 육시준과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휴대폰이 들어있는 가방을 구석에 던져버렸는데 이내 가방을 힐끔 쳐다보던 그녀는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아당겼다.그를 달래주진 않아도 사실을 정확히 알려서 말도 안 하고 떠난 육시준이 자기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이런저런 생각에 장편 문자를 작성한 강유리가 전송을 눌렀지만 한참이 지나도 문자가 전송되지 않았다.눈살을 확 찌푸리던 강유리가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네 휴대폰은 통화 가능해? 신호 터져?”그녀가 고개를 든 채 문기준에게 묻자 문기준은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대답했다.“아니요.”억수로 쏟아지는 폭우에 빗방울이 여기저기 튀고 있었으며 빗속을 달리는 벤 안에서는 창밖의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호텔에서 배치해 준 운전기사는 두 사람의 대화에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이쪽은 개발 구역이라 경제 발전이 다른 곳에 비해 뒤떨어졌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항상 신호가 잘 안 터집니다. 이곳만 벗어나면 괜찮을 겁니다.”살짝 짜증이 난 강유리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문기준은 기사를 힐끔 쳐다보다가 눈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한편, 목적지
한편, 밴에 앉아있던 강유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주변의 풍경이 낯선 것도 모자라 점점 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묵고 있었던 반산 호텔 주변에는 산과 물을 등지고 있었으며 조금만 내려오면 산길을 지나긴 해야 하지만 그 산길은 평평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이런저런 가게들도 많았다.하지만 지금 그들이 가는 길은 한 시간이나 넘게 운전했는데도 점점 더 가파르기만 했다.“기사님, 서울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건가요? 내비게이션을 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당연히 잘 알고 있죠! 이 길은 제가 자주 가는 길입니다. 조금 외진 길이기는 해도 큰길보다 30분 정도 빨리 도착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기사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물었다.“날씨도 안 좋은데 안전한 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희가 시간이 급한 건 아니니까요.”“육 회장님께서 시간이 급하다고 하셨습니다.”기사가 말을 얼버무리자 강유리가 날카롭게 물었다.“어떤 육 회장님이요?”기사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지만 대신 운전 속도를 점점 더 올리기 시작했으며 밴은 곧 사고라도 날 듯이 빠르게 달렸다.두려운 마음에 입을 닫은 강유리는 백미러를 통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문기준과 눈이 마주쳤고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뒷좌석에 앉아있던 강유리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에서 마취 주사를 발사했고 그 주사는 정확하게 기사의 목에 꽂혔다.숨을 크게 들이마신 운전기사는 두 사람의 의도를 눈치채자마자 마지막 남은 힘으로 핸들을 확 꺾어버렸고 차는 빠르게 가드레일을 향해 달려갔다.이와 동시에 곁에 있던 문기준이 핸들을 빼앗은 뒤, 다른 한 손은 브레이크를 잡았다.절체절명의 순간, 까만색 밴은 외진 길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마지막 순간 벼랑 끝에서 멈추었고 앞바퀴는 그대로 길을 따라 굴러갔다.힘들게 차에서 내린 강유리는 곁에 놓여 있던 우산까지 들고 있었고 밖에 서서 긴장한 듯 그녀를 부축하려고 하던 문기
”여기서 그 사람들이 확인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상대방은 내가 목숨을 잃을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도 않을 거잖아?”“이건 도박입니다. 위험해요.”문기준은 강유리에게 경고하긴 했지만 눈빛은 어느새 반짝거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는 명문 가문들 사이의 싸움이 소꿉장난처럼 느껴졌으며 특히 여자를 상대하는 짓이 지겹기도 했다.육시준이 반드시 강유리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라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망가려고 했던 것일 뿐, 그 이유만 아니면 문기준의 특수한 신분, 전쟁에 최적화된 피가 흐르는 그는 절대 걸어오는 이 싸움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그의 생각을 눈치챈 강유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자극했다.“겁나면 너 먼저 가도 돼.”그녀의 자극이 먹히긴 했지만 문기준은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만약 상대방이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들통날까 봐 안 나타나면 어떡할 거예요?”“그럼 구세주를 기다리는 거라고 치지 뭐! 너희 육 회장님이 질투도 많고 쪼잔하긴 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 싸우더라도 부부 사이의 애정을 보여주는 것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거든.”점심시간이 됐으니 그는 평소대로 그녀에게 점심을 먹었는지 전화할 것이고 연결이 되지 않는 지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들을 찾으려고 갖은 방법을 쓸 것이다.문기준은 자신의 옛 보스를 보잘것없이 평가하는 강유리의 말에 백 번이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모시고 있는 현 대표님의 말과 행동에 무조건 찬성하는 건 보디가드로서의 직업적 도덕이었기 때문이다.벼랑 끝에 매달려 휘청거리는 차에는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우산을 쓴 채 길가에 서 있었다.한 시간 정도 지난 지금,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고 뚫어진 우산 안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어느새 강유리의 앞머리는 흥건히 젖어버렸고 축축하게 이마에 붙은 머리 탓에 그 모습은 유난히 비참해 보였지만 팔짱을 낀 채 허리를 쭉 펴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