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신주리를 만날 수 없게 된다...육경서는 절대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억지로라도 신주리를 이 프로에 출연시키고 싶었다.“넌 욕 먹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두려워. 오늘 내 사생팬이었다면 내일에는 네 사생팬이 달려들어 내 목숨을 따갈지도 몰라.”신주리가 매우 이성적으로 분석하자 육경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확률적으로 따지면 이번에 너를 덮쳤으면 다음에는 나야. 우리 둘의 팬덤이 비슷하잖아. 그러면 이런 일은 골고루 당하게 돼 있어.”육경서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신주리는 반박할 수 없었고 한참 생각하고 나서 배달통 뚜껑을 열더니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먼저 죽부터 먹어. 다른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고 나니 이미 새벽이 되었다. 해성은 주야 기온 차가 크고 게다가 오늘 기온이 워낙 낮았기에 밤이 되자 갑자기 추워졌다. 죽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불러일으켰지만 육경서는 숟가락을 받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는 다친 오른팔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안 먹을래.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누워서 큰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어. 비록 지금 배가 아주 고프지만 상처가 덧나면 입원 시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너한테 폐만 끼치게 되잖아.”신주리는 육경서의 말에 힘껏 노려보더니 죽을 한 숟가락 푹 떠서 그의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입을 벌린 채 한 손으로 부랴부랴 부채질하며 떠넣은 죽을 식히고는 어렵게 삼켰다.“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남편 죽일 거야?”죽이 그렇게 뜨거울 줄 생각 못했기에 신주리는 약간 미안했지만 육경서의 마지막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함부로 말하면 굶겨 죽일테야.”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얼른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 그의 멀쩡한 왼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찬물이야. 입에 물고 있어.”육경서는 신주리 말대
밤이 더 깊어졌고 신주리 매니저는 알콩달콩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 육경서의 상황을 확인하고 별일 없다고 하니 곧바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좀 지나 신주리는 품에 쿠션을 안고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 신주리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육경서는 조용히 일어나 한 손으로 담요를 잡아 힘겹게 덮어주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문자를 발송했다.육경서: [나 지금 병원이야.]그도 육경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내 답장이 도착했다.[하느님 맙소사. 끝내 연락이 닿았어. 방금 실시간 검색을 보고 제작진과 통화했는데 형이 괜찮다고 하길래 안 갔어.]육경서: [이렇게 태연하고 이렇게 냉혹하다고? 주리 매니저도 병원에 다녀갔는데 넌 얼굴도 안 보여줘?]그러자 매니저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육경서는 허둥대며 끊어버리고는 문자를 보냈다.[주리 자고 있어. 깨우지 마.]매니저: [...] 매니저: [주리 누나 매니저가 간다고 하기에 안 갔어.]그와 신주리가 만나기만 아웅다웅하고 다투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두 매니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가족인데 한 사람만 다녀가도 충분했고 더욱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한참 생각하더니 매니저가 물었다.[그 사생팬 말인데 목적이 뭐래? 사생팬 맞아? 아니면 보복하고 싶은 거야?]육경서: [안 그래도 이 일 때문에 연락했어. 그 자식이 무슨 목적이든 상관없이 장경선한테 전해. 절대 밖에 다시 못 나오게 하라고 해.]그러자 상대가 말했다.[알았어. 장 부장님도 이 일을 아주 중시하고 있어. 만일 보복이라면 이번에는 절대 가만두면 안 돼.]그들은 이미 상대방에서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JL빌리지에서 미행했을 때 그들은 죄를 추궁하지 않고 이틀 동안 교육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번에는 절대 쉽게 끝내지 못한다. 만일 그 배후에 누가 있다면 한 사람도 놓쳐서도 안 된다...매니저가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구척장신의 남자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성인이었고 체면도 차릴 줄 아는 신사다운 모습이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부끄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규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 표정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신주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둬 발짝 다가가 난폭하게 그의 환자복을 끌어내리며 말했다.“그럼 내가 처치해 줄게. 내가 하면 될 거 아니야?”그녀를 보호하려다 이렇게 됐으니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옷을 끌어당기면서 상처를 싸맨 붕대가 벗겨지는 바람에 신주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렇게 튼실했던 근육이 지금은 이상한 붉은 색을 띠었고 황산에 닿은 부위는 물집이 생겼고 지금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살갗이 뒤집어지면서 아주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신주리는 시선을 그의 어깨에 꽂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육경서는 한참 동안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녀의 복잡한 시선과 부딪혔다. 육경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부랴부랴 옷깃을 올려 윗몸을 꽁꽁 싸면서 말했다.“너도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내 알몸에 반했어? 너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 의사 오기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신주리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갑자기 물었다.“아프지?”“괜찮아. 남자가 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안 아프다면서 왜 의사가 처치해 주기를 고집하겠는가?전에는 줄곧 의사가 직접 처치했는데 오늘 수술이 있어 간호사가 대신 왔다.간호사가 인턴인지 솜씨가 서툴렀고 처치하면서 자꾸 육경서를 흘끔흘끔 훔쳐보는 바람에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 참았다.정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하지만 남자가 돼서 그것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아프다고 칭얼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이상한 핑계로 간호사가 처치 못 하게 했던 것이다.그는 신주리한테 살짝 기대했었지만 예상대로 난폭했고 다짜고짜 옷부터 끌어 내리는 바람에 상처가 드러나고 말았다. 신주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육경서는 지금 믿을 사람이 의사밖에 없었고 절대 다른 사람의 실험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 팬이 그의 계획을 깨버리며 말했다.“서 선생님 수술이 방금 시작되었고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요.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를 수 있어요.”그러자 육경서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이 간호사는 틀림없이 안티팬일 거야.’“그럼 다른 의사 선생님...”“내가 정말 조심스럽게 할게. 절대 안 아프게 할 수 있어.”신주리는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른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 육 도련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녀는 잘 알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황산을 막아준 그 순간만 용감했다. 그가 지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상처가 짓무른다고 해도 의사외에는 누구도 손을 못 대게 할 것이다.하지만 신주리는 남이 아니기에 육경서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함락되었다.“정말이지?”신주리는 자기 수법이 먹힌 것 같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날 믿어.”육경서는 그렇게 신주리의 꼬임에 들었고 좀 지나니 병실에서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는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처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육경서의 모습이 마치 능욕당한 소녀와도 같았다. 신주리는 그런 육경서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옷깃을 여며주고 침대 머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아팠어?”육경서는 반듯하게 누워 공허한 눈빛으로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절대 모를 거야.”신주리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이쪽으로 와 봐.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육경서는 곁눈질로 신주리를 힐끔거리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아마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을 가치가 있는 비밀인지 저울질하는 모양이다. “안 올 거야? 버스 가버리면 다시 안 와.”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자를 꾀자 끝내는 호기심
그런데 지금은...“방금 왜 갑자기 키스했어?”육경서의 예쁜 반달눈이 어리석은 지혜를 반짝이고 있었다. 신주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답했다.“하고 싶으면 하는 거 아니야? 커플 사이의 정상적인 행위잖아.”육경서가 공항에서 신주리를 품에 안을 때 커플 사이의 정상적인 스킨쉽이라고 했었기에 그 말 그대로 돌려주자 그는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나와 다시 사귀겠다는 거 맞지? 그렇다면 내가 전에 제기했던 요구를 들어줘야 해.”신주리는 바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육경서를 한참 바라보더니 겨우 두 글자를 뱉어냈다.“싫어.”그러고는 육경서가 하던 대로 가까이 다가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비록 지금 카메라는 없지만 밖에 관객이 있어. 관객이 있을 때는 커플 신분을 유지해야 해.”문 앞에서 자기 아이돌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던 간호사 팬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고 육경서의 아우성이 끝나고 신주리의 위안 소리가 들리면 그때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육경서의 팬이라면 다들 신주리를 싫어하지만 경서 오빠가 좋다고 하니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위안 소리가 몇 마디만 들리고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간호사 팬은 혹시라도 육경서가 까무러쳤을까 봐 완전히 닫히지 않은 병실 문을 빼꼼히 열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경서 오빠, 괜찮죠?”문 뒤로 살며시 나타난 간호사의 머리를 발견하고 육경서가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표정이 짜증으로 가득 찼다.육경서가 현재까지 솔로인 데는 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깊이 숨을 들이쉰 육경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강렬하게 치밀어오르는 불만을 참으며 물었다.“아직 안 갔어요?”그러자 어린 간호사가 정색해 말했다.“오빠가 아파서 까무러쳤을까 봐서요.”그러자 육경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죠?”그 말에 간호사는 연신 손사래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아직 인턴이라 할 일이 별로 없어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수시로 호출하세요.”그러자 육경
신주리와 육경서가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라이브는 계속되었다. 이어진 이틀 동안 나머지 게스트들은 골동품 시장에 갔고 그곳에서 주상현은 의외로 아주 희소한 골동품을 세 점 발견해 두 점은 정부의 감정 기구로 감정받으러 보냈고 한점의 유명한 고화는 훼손이 심한 관계로 복원작업을 해야 했다. 하여 주상현은 남은 프로그램 일정을 취소하고 고화 복원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그런 주상현의 모습에 댓글 창에서는 끝없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역시 우수한 사람은 일이 우선이야. 주 선생님이 짝을 찾으러 온 것 같아? 아니야. 주 선생님은 일감 찾으러 왔어.”“이게 바로 장인 정신이고 골동품 복원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야. 주 선생님이 본업으로 복귀하는 것을 응원합니다.”“엥?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차한다고요? 나의 ‘상원 커플’이 이로써 막을 내린단 말인가요?”“주 선생님, 이대로 지원 언니 버리고 가실 거예요?”“버린다는 표현은 좀... 단지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거지 죽는 건 아니잖아요? 사적으로 연락하겠죠.”“맞아요. 주 선생님이 호감이 있다면 사적으로 지원 씨와 연락할 거예요.”“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원 언니는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는 길에 육경서, 신주리 커플 얘기만 줄곧 하잖아요.”“맞아요. 이 커플은 언제 돌아와요?”댓글 창에서 여러 가지 댓글이 난무할 때 강미영이 빨리 끝내고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하자 제작진도 병문안 갈 예정이었다고 끝나면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자 팬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댓들 창에서 떠들어댔다.“라이브 끝내면 안 돼요. 우리도 보고 싶어요.”“맞아요. 라이브로 중계방송해 줘요. 저희도 오빠가 걱정돼요.”“입원을 해있으면서도 프로에 출연해야 한단 말이야?”“어떤 사람 팬들은 너무 한심해. 그건 단지 님들의 요구이고 제작진은 아직 허락하지 않았어.”스태프가 이런 댓글을 발견하고 곧바로 피디에게 전달하자 그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피디는 아픈 육경
피디는 문득 마음이 피곤해졌다. 협상 초기에 승낙했더라면 사기당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협의 시간이 길어지자 시청자들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댓글 창에서 아우성을 지를 때 피디는 육경서가 오늘 저녁 병원에서 병문안하는 과정을 촬영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알렸다.하지만 병원 측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촬영사를 반으로 줄이고 다른 게스트들의 출연 장면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런 건 작은 일이었기에 다들 의견이 없었다...오후 6시, VIP 병실 문 앞에 도착한 일행은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듣고 다들 발걸음을 멈췄다.“주리야. 물 따라줘.”“자기야. 물이 너무 뜨거워.”“자기야. 이모랑 좀 있다 오신다고 했는데 이 모습으로 괜찮겠어? 화장이라도 할까?”“여자 게스트도 있는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주리야. 마이크가 삐뚤어졌어. 바로 잡아줘.”“자기 오늘 너무 예쁘다. 사과 깎는 모습이 천사같아.”“...”촬영사와 문 앞에 선 게스트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찰영사: ‘대박! 이 커플이 사적으로는 이런 모습이야? 좀 더 듣고 싶어!’일행: ‘낯부끄러워.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없나?’맨 앞에서 걷던 피디는 한 손으로 패드를 잡고 댓글 창의 다양한 댓글을 확인하며 문 앞에 서서 전혀 노크할 생각이 없었다...“방금 오빠 목소리 맞아요?”“맞아요. 목소리를 들어서는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아요. 천만다행이네요. 이틀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요.”“경서 오빠 보고 싶었어요. 드디어 목소리를 듣게 되었네요.”“아니야. 오빠 목소리도 말투도 이상해.”“육경서 뭐야? 우리 주리를 하인처럼 부려 먹고 있어.”“저래도 되는 거야? 너무 심해.”“세상에. 저 커플 너무 달콤해.”“...”문 앞에 서 있던 강미영도 더는 들을 수 없는지 피디가 잡고 있던 패드를 힐끗 곁눈질해 보고 다시 피디를 째려보더니 손을 들어 노크했다.“똑똑똑.”“들어오세요.”아까부터 별로 말이 없던 신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