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피디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주리 씨, 이번은 정말 사고야. 다음 스케줄부터는 모든 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계획할 것이며 게스트들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신주리는 전혀 자기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2부는 야외탐험이다 보니 1부보다 훨씬 더 위험할 거예요. 그러면 거의 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할 텐데 저희는 못 하겠어요.”신주리는 어떻게라도 설득해 보려고 노력하는 피디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냉랭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신주리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야외 탐험이기에 1부보다 위험계수가 훨씬 높다...“정말 하차하려고?”육경서가 묻자 신주리는 멈칫하더니 말했다. “속아서 온 거니까 지금 도망가기 제일 좋은 기회야. 인지도도 상승했고 우리만 제작진을 욕하지 않으면 무사하게 끝까지 촬영할 수 있어.”끝까지 무사히 촬영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지금의 인지도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필경 두 사람의 팬덤이 어마어마한 존재니까.“난 하차 안 할 거야. 그냥 하고 싶어.”육경서가 불만을 터뜨리며 반박하자 신주리는 살짝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그럼. 만일 피디가 다시 전화로 설득하려 하면 그렇게 전할게.”그러자 육경서가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안 돼. 너도 계속 해야 해. 나와 함께 출연해.”“내가 왜?”그 말에 육경서는 말문이 턱 막히면서 몇 초 동안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불쌍한 표정으로 자기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지금 환자인데 넌 내가 혼자서 촬영하는 게 걱정되지 않아? 넌 전혀 가슴이 아프지 않아? 조금 전에 말했던 내가 장애인이 되면 한평생 날 책임지겠다고 했던 말이 전부 가짜지?”“아니...”“넌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정한 여자야. 네가 이렇게 지독한 줄 알았더라면 널 구해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황산에 이 예쁜 얼굴이 다 녹아버려 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신주리를 만날 수 없게 된다...육경서는 절대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억지로라도 신주리를 이 프로에 출연시키고 싶었다.“넌 욕 먹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두려워. 오늘 내 사생팬이었다면 내일에는 네 사생팬이 달려들어 내 목숨을 따갈지도 몰라.”신주리가 매우 이성적으로 분석하자 육경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확률적으로 따지면 이번에 너를 덮쳤으면 다음에는 나야. 우리 둘의 팬덤이 비슷하잖아. 그러면 이런 일은 골고루 당하게 돼 있어.”육경서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신주리는 반박할 수 없었고 한참 생각하고 나서 배달통 뚜껑을 열더니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먼저 죽부터 먹어. 다른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고 나니 이미 새벽이 되었다. 해성은 주야 기온 차가 크고 게다가 오늘 기온이 워낙 낮았기에 밤이 되자 갑자기 추워졌다. 죽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불러일으켰지만 육경서는 숟가락을 받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는 다친 오른팔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안 먹을래.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누워서 큰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어. 비록 지금 배가 아주 고프지만 상처가 덧나면 입원 시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너한테 폐만 끼치게 되잖아.”신주리는 육경서의 말에 힘껏 노려보더니 죽을 한 숟가락 푹 떠서 그의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입을 벌린 채 한 손으로 부랴부랴 부채질하며 떠넣은 죽을 식히고는 어렵게 삼켰다.“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남편 죽일 거야?”죽이 그렇게 뜨거울 줄 생각 못했기에 신주리는 약간 미안했지만 육경서의 마지막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함부로 말하면 굶겨 죽일테야.”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얼른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 그의 멀쩡한 왼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찬물이야. 입에 물고 있어.”육경서는 신주리 말대
밤이 더 깊어졌고 신주리 매니저는 알콩달콩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 육경서의 상황을 확인하고 별일 없다고 하니 곧바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좀 지나 신주리는 품에 쿠션을 안고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 신주리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육경서는 조용히 일어나 한 손으로 담요를 잡아 힘겹게 덮어주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문자를 발송했다.육경서: [나 지금 병원이야.]그도 육경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내 답장이 도착했다.[하느님 맙소사. 끝내 연락이 닿았어. 방금 실시간 검색을 보고 제작진과 통화했는데 형이 괜찮다고 하길래 안 갔어.]육경서: [이렇게 태연하고 이렇게 냉혹하다고? 주리 매니저도 병원에 다녀갔는데 넌 얼굴도 안 보여줘?]그러자 매니저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육경서는 허둥대며 끊어버리고는 문자를 보냈다.[주리 자고 있어. 깨우지 마.]매니저: [...] 매니저: [주리 누나 매니저가 간다고 하기에 안 갔어.]그와 신주리가 만나기만 아웅다웅하고 다투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두 매니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가족인데 한 사람만 다녀가도 충분했고 더욱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한참 생각하더니 매니저가 물었다.[그 사생팬 말인데 목적이 뭐래? 사생팬 맞아? 아니면 보복하고 싶은 거야?]육경서: [안 그래도 이 일 때문에 연락했어. 그 자식이 무슨 목적이든 상관없이 장경선한테 전해. 절대 밖에 다시 못 나오게 하라고 해.]그러자 상대가 말했다.[알았어. 장 부장님도 이 일을 아주 중시하고 있어. 만일 보복이라면 이번에는 절대 가만두면 안 돼.]그들은 이미 상대방에서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JL빌리지에서 미행했을 때 그들은 죄를 추궁하지 않고 이틀 동안 교육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번에는 절대 쉽게 끝내지 못한다. 만일 그 배후에 누가 있다면 한 사람도 놓쳐서도 안 된다...매니저가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구척장신의 남자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성인이었고 체면도 차릴 줄 아는 신사다운 모습이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부끄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규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 표정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신주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둬 발짝 다가가 난폭하게 그의 환자복을 끌어내리며 말했다.“그럼 내가 처치해 줄게. 내가 하면 될 거 아니야?”그녀를 보호하려다 이렇게 됐으니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옷을 끌어당기면서 상처를 싸맨 붕대가 벗겨지는 바람에 신주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렇게 튼실했던 근육이 지금은 이상한 붉은 색을 띠었고 황산에 닿은 부위는 물집이 생겼고 지금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살갗이 뒤집어지면서 아주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신주리는 시선을 그의 어깨에 꽂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육경서는 한참 동안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녀의 복잡한 시선과 부딪혔다. 육경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부랴부랴 옷깃을 올려 윗몸을 꽁꽁 싸면서 말했다.“너도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내 알몸에 반했어? 너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 의사 오기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신주리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갑자기 물었다.“아프지?”“괜찮아. 남자가 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안 아프다면서 왜 의사가 처치해 주기를 고집하겠는가?전에는 줄곧 의사가 직접 처치했는데 오늘 수술이 있어 간호사가 대신 왔다.간호사가 인턴인지 솜씨가 서툴렀고 처치하면서 자꾸 육경서를 흘끔흘끔 훔쳐보는 바람에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 참았다.정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하지만 남자가 돼서 그것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아프다고 칭얼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이상한 핑계로 간호사가 처치 못 하게 했던 것이다.그는 신주리한테 살짝 기대했었지만 예상대로 난폭했고 다짜고짜 옷부터 끌어 내리는 바람에 상처가 드러나고 말았다. 신주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육경서는 지금 믿을 사람이 의사밖에 없었고 절대 다른 사람의 실험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 팬이 그의 계획을 깨버리며 말했다.“서 선생님 수술이 방금 시작되었고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요.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를 수 있어요.”그러자 육경서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이 간호사는 틀림없이 안티팬일 거야.’“그럼 다른 의사 선생님...”“내가 정말 조심스럽게 할게. 절대 안 아프게 할 수 있어.”신주리는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른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 육 도련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녀는 잘 알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황산을 막아준 그 순간만 용감했다. 그가 지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상처가 짓무른다고 해도 의사외에는 누구도 손을 못 대게 할 것이다.하지만 신주리는 남이 아니기에 육경서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함락되었다.“정말이지?”신주리는 자기 수법이 먹힌 것 같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날 믿어.”육경서는 그렇게 신주리의 꼬임에 들었고 좀 지나니 병실에서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는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처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육경서의 모습이 마치 능욕당한 소녀와도 같았다. 신주리는 그런 육경서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옷깃을 여며주고 침대 머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아팠어?”육경서는 반듯하게 누워 공허한 눈빛으로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절대 모를 거야.”신주리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이쪽으로 와 봐.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육경서는 곁눈질로 신주리를 힐끔거리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아마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을 가치가 있는 비밀인지 저울질하는 모양이다. “안 올 거야? 버스 가버리면 다시 안 와.”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자를 꾀자 끝내는 호기심
그런데 지금은...“방금 왜 갑자기 키스했어?”육경서의 예쁜 반달눈이 어리석은 지혜를 반짝이고 있었다. 신주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답했다.“하고 싶으면 하는 거 아니야? 커플 사이의 정상적인 행위잖아.”육경서가 공항에서 신주리를 품에 안을 때 커플 사이의 정상적인 스킨쉽이라고 했었기에 그 말 그대로 돌려주자 그는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나와 다시 사귀겠다는 거 맞지? 그렇다면 내가 전에 제기했던 요구를 들어줘야 해.”신주리는 바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육경서를 한참 바라보더니 겨우 두 글자를 뱉어냈다.“싫어.”그러고는 육경서가 하던 대로 가까이 다가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비록 지금 카메라는 없지만 밖에 관객이 있어. 관객이 있을 때는 커플 신분을 유지해야 해.”문 앞에서 자기 아이돌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던 간호사 팬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고 육경서의 아우성이 끝나고 신주리의 위안 소리가 들리면 그때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육경서의 팬이라면 다들 신주리를 싫어하지만 경서 오빠가 좋다고 하니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위안 소리가 몇 마디만 들리고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간호사 팬은 혹시라도 육경서가 까무러쳤을까 봐 완전히 닫히지 않은 병실 문을 빼꼼히 열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경서 오빠, 괜찮죠?”문 뒤로 살며시 나타난 간호사의 머리를 발견하고 육경서가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표정이 짜증으로 가득 찼다.육경서가 현재까지 솔로인 데는 팬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깊이 숨을 들이쉰 육경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강렬하게 치밀어오르는 불만을 참으며 물었다.“아직 안 갔어요?”그러자 어린 간호사가 정색해 말했다.“오빠가 아파서 까무러쳤을까 봐서요.”그러자 육경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죠?”그 말에 간호사는 연신 손사래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아직 인턴이라 할 일이 별로 없어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수시로 호출하세요.”그러자 육경
신주리와 육경서가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라이브는 계속되었다. 이어진 이틀 동안 나머지 게스트들은 골동품 시장에 갔고 그곳에서 주상현은 의외로 아주 희소한 골동품을 세 점 발견해 두 점은 정부의 감정 기구로 감정받으러 보냈고 한점의 유명한 고화는 훼손이 심한 관계로 복원작업을 해야 했다. 하여 주상현은 남은 프로그램 일정을 취소하고 고화 복원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그런 주상현의 모습에 댓글 창에서는 끝없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역시 우수한 사람은 일이 우선이야. 주 선생님이 짝을 찾으러 온 것 같아? 아니야. 주 선생님은 일감 찾으러 왔어.”“이게 바로 장인 정신이고 골동품 복원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야. 주 선생님이 본업으로 복귀하는 것을 응원합니다.”“엥?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차한다고요? 나의 ‘상원 커플’이 이로써 막을 내린단 말인가요?”“주 선생님, 이대로 지원 언니 버리고 가실 거예요?”“버린다는 표현은 좀... 단지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거지 죽는 건 아니잖아요? 사적으로 연락하겠죠.”“맞아요. 주 선생님이 호감이 있다면 사적으로 지원 씨와 연락할 거예요.”“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원 언니는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는 길에 육경서, 신주리 커플 얘기만 줄곧 하잖아요.”“맞아요. 이 커플은 언제 돌아와요?”댓글 창에서 여러 가지 댓글이 난무할 때 강미영이 빨리 끝내고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하자 제작진도 병문안 갈 예정이었다고 끝나면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자 팬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댓들 창에서 떠들어댔다.“라이브 끝내면 안 돼요. 우리도 보고 싶어요.”“맞아요. 라이브로 중계방송해 줘요. 저희도 오빠가 걱정돼요.”“입원을 해있으면서도 프로에 출연해야 한단 말이야?”“어떤 사람 팬들은 너무 한심해. 그건 단지 님들의 요구이고 제작진은 아직 허락하지 않았어.”스태프가 이런 댓글을 발견하고 곧바로 피디에게 전달하자 그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피디는 아픈 육경
피디는 문득 마음이 피곤해졌다. 협상 초기에 승낙했더라면 사기당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협의 시간이 길어지자 시청자들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댓글 창에서 아우성을 지를 때 피디는 육경서가 오늘 저녁 병원에서 병문안하는 과정을 촬영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알렸다.하지만 병원 측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촬영사를 반으로 줄이고 다른 게스트들의 출연 장면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런 건 작은 일이었기에 다들 의견이 없었다...오후 6시, VIP 병실 문 앞에 도착한 일행은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듣고 다들 발걸음을 멈췄다.“주리야. 물 따라줘.”“자기야. 물이 너무 뜨거워.”“자기야. 이모랑 좀 있다 오신다고 했는데 이 모습으로 괜찮겠어? 화장이라도 할까?”“여자 게스트도 있는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주리야. 마이크가 삐뚤어졌어. 바로 잡아줘.”“자기 오늘 너무 예쁘다. 사과 깎는 모습이 천사같아.”“...”촬영사와 문 앞에 선 게스트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찰영사: ‘대박! 이 커플이 사적으로는 이런 모습이야? 좀 더 듣고 싶어!’일행: ‘낯부끄러워.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없나?’맨 앞에서 걷던 피디는 한 손으로 패드를 잡고 댓글 창의 다양한 댓글을 확인하며 문 앞에 서서 전혀 노크할 생각이 없었다...“방금 오빠 목소리 맞아요?”“맞아요. 목소리를 들어서는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아요. 천만다행이네요. 이틀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요.”“경서 오빠 보고 싶었어요. 드디어 목소리를 듣게 되었네요.”“아니야. 오빠 목소리도 말투도 이상해.”“육경서 뭐야? 우리 주리를 하인처럼 부려 먹고 있어.”“저래도 되는 거야? 너무 심해.”“세상에. 저 커플 너무 달콤해.”“...”문 앞에 서 있던 강미영도 더는 들을 수 없는지 피디가 잡고 있던 패드를 힐끗 곁눈질해 보고 다시 피디를 째려보더니 손을 들어 노크했다.“똑똑똑.”“들어오세요.”아까부터 별로 말이 없던 신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