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던 게스트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신주리가 팬들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사람무리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나오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돌진해 오자 미처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사처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나왔다.“손에 병을 들고 있어. 뭐 하려는 거야?”제일 안쪽에 서 있던 육경서도 그가 손에 뭔가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직감적으로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은 신주리의 얼굴을 향해 의문의 액체를 뿌렸고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피했지만 육경서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옆에 선 신주리를 와락 품으로 끌어들이고는 몸을 돌려 등으로 액체를 막았다.신주리는 그때까지 멍한 상태로 귓가에서 들려오는 힘 있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고 갑자기 남자의 몸이 흠칫하더니 ‘스읍’ 하고 호흡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주리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떨어진 액체를 바라보는 순간 동공이 배로 커졌고 바닥에 닿은 액체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부식성이 상당히 강한 액체다...“피해. 황산이야.”서진태가 바로 알아채고 고함을 질렀다.육경서가 옆으로 몸을 비키긴 했지만 장소가 제한되었기에 액체가 날리면서 그의 팔뚝과 어깨에 떨어졌다. 그걸 본 서진태는 재빨리 달려와 육경서의 상처를 응급처치했고 바로 그때 신주리가 황산에 맞지 않은 것을 본 남자는 이내 품에서 과도를 꺼내더니 다시 덮쳐왔다. “신주리 나쁜 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허영심에 빠진 뻔뻔한 년. 죽여버릴 거야.”사생팬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위협했다.“...”갑자기 발생한 일이라 다들 무의식적으로 멀리 피했고 제작진이 정신을 차리고 제지하려 할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다들 심장이 철렁했고 과도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신주리를 품에 안은 육경서는 미처 피할 길이 없었고 서진태도 제지할 방법이 없기에 할 수 없이 물러섰다...바로 이때 가녀린 손이 뻗어오더니 사생팬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비틀어버리자 우지직하는 소리와
“경서 씨 덕분에 우리 주리가 무사해서 정말 고마워요. 그 자식이 주리 얼굴을 노린 것 같은데 너무 화가 나요.”“너무 악랄하네요. 무슨 원한이 있다고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요?”“서 선생님의 신속한 응급구조에 찬사를 보냅니다. 고마워요.”“미영 언니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어. 제압하는 기술로 봐서는 보통내기가 아니야.”“미영 언니 눈에서 살기를 느꼈어요.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그 남자를 절대 쉽게 보내주지 않았을 것 같아요.”“미영 언니는 정당방위에요. 절대 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맞아요.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누구라도 당황했을 테고 아무리 유단자라고 해도 겁이 났을 거예요. 한꺼번에 제압 못 해서 반격당하는 날이면 큰일 나요.”“...”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병원 분위기도 긴장감이 고도로 달했다.유강 엔터의 여한영과 로얄 엔터의 장경선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와 응급실 밖에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고 피디의 얼굴빛이 상당히 흐려있었다. 지극히 일반적인 여행 예능프로가 모험 다큐가 되어버렸고 게스트뿐만 아니라 그도 덩달아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이 시각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 육경서가 아니라 자기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지 모른다.응급실 문이 드디어 열리고 의사 선생님이 걸어 나오더니 문 앞에 서 있는 한 무리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이내 경쾌한 말투로 말했다.“다행히 환자가 긴팔을 입은 덕분에, 그리고 현장에서 응급처치도 빠르게 했기에 화상 면적이 크지 않고 흉터도 남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피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직장에서 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도했다.그뿐만 아니라 유강과 로얄의 고위층 관리자도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직장을 잃을 위기에서 벗어났다. 현장에서 제일 차분한 사람은 서진태였고 그가 말했다.“제가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있는데 중상까지 가게 내버려두겠어요?”신주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안하던 강미영이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돌리며 버럭 화를 냈다.“오늘 길에
여러 사람의 설득으로 육경서는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고 정작 본인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모두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육경서는 솔직히 많이 놀란 상태였지만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 그제야 진정되었는데 또 갑자기 입원하라고 했다...VIP 병실. 육경서는 억지로 밝은 웃음을 지으며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바래고 나서보니 병상 옆에 신주리만 남았고 그러자 이내 울상이 되어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주리야. 솔직하게 말해 줘. 혹시 내가 곧 죽어?”신주리는 그때까지도 아까 전의 악몽에서 완전히 헤쳐나오지 못했기에 어정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육경서는 더욱 당황해하며 물었다.“주리야. 왜 그래? 네 눈빛이 무서워.”신주리는 입술을 깨물고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고 물었다.“왜 나를 막아줬어?”육경서가 흠칫하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야? 내가 너와 제일 가깝게 있었는데 나 말고 누가 널 막아주겠어?”신주리가 말했다.“만일 다른 사람이라도 막아줄 거야?”그 말에 육경서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갑자기 할 말을 잃었는지 침묵했다.그는 그녀가 왜 이렇게 묻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아무튼 정말 고마워. 다행히 경미한 화상이라고 하니 한시름 놨어. 그런데 장 부장님과 여 이사님이 걱정된다고 이틀 입원해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어.”신주리는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육경서의 물음에 대답했다. 신주리의 말투는 온화했고 차분했으며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해버리는 평소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하지만 육경서는 왠지지 이런 신주리가 낯설게 느껴졌고 그와 아웅다웅하며 다툴 때가 훨씬 진실되게 느껴졌다.육경서는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한마디 툭 뱉었다.“나도 모르겠어.”신주리는 실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육경서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다른 사람이라도 내가 그렇게 할지 모르겠어.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육경서가 신주리의 싸늘한 태도에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네가 그날 밤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 침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그날 일은 두 사람 모두 취한 상태였기에 술 깨고 나서 네가 혹시 후회했는데 내가 자꾸 끈질기게 물으면 내가 너무 자존심 상하잖아.”그러자 신주리는 눈이 휘둥그레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 나한테 물었어? 그리고 또 언제 끈질기게 물었어?’지나가는 말처럼 휘리릭 묻고 나서 신주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화제로 넘긴 사람이 누군데?그리고 신주리는 육경서가 두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바로 그 자리서 이별 통보를 내릴 줄 몰랐다.신주리가 입을 열고 뭐라고 말하려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침묵했다. 육경서도 더는 말이 없었고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병실 안은 순간 미묘한 정적이 흘렀고 병상에 앉은 신주리는 그가 다시 입을 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신주리는 육경서에게 할 말이 더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자기 속내를 여실히 보여줬으니 그도 그에 따른 태도 표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육경서가 먼저 이별 통보를 했고 오해인 것이 밝혀졌으면 그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육경서가 말이 없자 신주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옆에 놓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까이에 있으면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핸드폰을 보니 매니저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있었고 병원 문 앞까지 왔다고 했다.“뭐 먹고 싶어? 매니저가 오면서 사다 주겠대.”육경서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자기야, 나한테 한가지 생각이 있어.”그날 밤 육경서가 취해서 부른 호칭에 신주리는 갑자기 핸드폰을 쥔 손을 꽉 움켜쥐더니 눈까풀을 파르르 떨면서 이내 고개를 들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건 오해였으니 내가 그 말을 철회하면 안 될까?”육경서는
이 여자의 마음은 돌멩이처럼 단단했고 그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라곤 전혀 없었다.육경서는 화상을 입은 곳이 어깨가 아닌 구멍이 숭숭 난 자기 가슴인 것 같았다. 자기 속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상할까 바였지만 정작 용기 내 고백한 뒤 거절당하니 자존심이 상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헤어지자고 하지 말았을걸...이럴 줄 알았더라면 흥분하지 말았을걸...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존심을 버렸을걸...“협조해 주는 게 좋겠어. 그냥 소식은 뭐고 나쁜 소식이 뭔지 빨리 물어봐 줘.”신주리는 육경서의 기분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얻어낸 소식을 공유하려고 했다. 그러자 육경서는 마치 AI와도 같이 전혀 감정이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그냥 소식이 뭐야?”신주리가 답했다. “제작팀에서 네가 다친 것을 보상해 주기 위해 여행 경비를 올려주겠대.”육경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럼 나쁜 소식은 뭔데?”“나쁜 소식이라면 경비가 많든 적든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됐어. 촬영 접고 병원에서 살아야 해.”오랜 침묵 끝에 육경서는 가출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물었다.“요 며칠 동안의 예산만 올려준 거야?”신주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런 것 같아.”그러자 육경서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핸드폰 줘 봐.”갑작스러운 소식에 육경서는 자기가 다쳤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손을 뻗으려다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스읍’ 하고 호흡을 집어삼켰다.“조심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크게 움직이면 안 돼.”신주리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긴장한 눈빛으로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육경서는 눈앞에서 알른거리는 신주리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병원으로 이송할 때 그녀의 걱정스러워하던 표정이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물었다.“병원으로 오는 길에 줄곧 내 어깨를 바라보고 있던데 그때 무슨 생각 했어?”오는 길에 신주리가
상대방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의사는? 그래서 내가 아까 전면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잖아.”“그것과 상관없이 피디님이 이제부터의 스케줄은 예산을 올린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심장이 둔기에 맞은 것처럼 아파요.”피디는 갑작스러운 육경서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더니 육경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들어보니 첫 번째 스케줄만 경비를 올리고 그 뒤로는 없다면서요?”피디는 순간 육경서가 자기와 협상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경서 씨.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우리 프로의 최대 볼거리가 게스트들이 힘을 합쳐 곤란을 헤쳐 나가는 것인데 나도 사실 경비를 이렇게까지 타이트하게 할 생각은 없어. 그저 게스트들의 임기응변 능력을 단련시키고 싶을 뿐이야.”“전 단련 받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저 여자 친구와 재밌게 여행하고 싶어요. 만일 다음 스케줄도 이렇게 빡빡하게 굴 거라면 우리 둘은 하차할게요.”그 말에 신주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신주리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감히 피디를 협박해?’하긴 뭐 이 프로에 출연하게 된 것도 릴리한테 속아 온 것이다. 현재 이 프로의 인기 담당이 육경서와 신주리이니 충분히 제작진과 조건을 흥정할 자격이 있다.그리고 프로그램이 사고 난 시점에 두 사람이 하차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유언비어를 낳게 될 것이다.예를 들어 제작진이 안전한 촬영 환경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신주리와 육경서가 화가 나서 하차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면 다른 팬들도 자기 아이돌의 안전을 걱정할 것이다. 이건 뒷말이긴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제작진에게 책임을 추궁할까 봐 겁이 났다.“이건 프로그램을 위해서인데 왜 나를 입장이 난처하게 만들어?”피디는 울상이 된 얼굴로 회사에 책임을 떠넘겼다.육경서는 그런 피디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엄포를 놓았다.“제작자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만일 계속 이렇게 할 거라면 제가 퇴원하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피디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주리 씨, 이번은 정말 사고야. 다음 스케줄부터는 모든 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계획할 것이며 게스트들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신주리는 전혀 자기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2부는 야외탐험이다 보니 1부보다 훨씬 더 위험할 거예요. 그러면 거의 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할 텐데 저희는 못 하겠어요.”신주리는 어떻게라도 설득해 보려고 노력하는 피디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냉랭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신주리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야외 탐험이기에 1부보다 위험계수가 훨씬 높다...“정말 하차하려고?”육경서가 묻자 신주리는 멈칫하더니 말했다. “속아서 온 거니까 지금 도망가기 제일 좋은 기회야. 인지도도 상승했고 우리만 제작진을 욕하지 않으면 무사하게 끝까지 촬영할 수 있어.”끝까지 무사히 촬영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지금의 인지도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필경 두 사람의 팬덤이 어마어마한 존재니까.“난 하차 안 할 거야. 그냥 하고 싶어.”육경서가 불만을 터뜨리며 반박하자 신주리는 살짝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그럼. 만일 피디가 다시 전화로 설득하려 하면 그렇게 전할게.”그러자 육경서가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안 돼. 너도 계속 해야 해. 나와 함께 출연해.”“내가 왜?”그 말에 육경서는 말문이 턱 막히면서 몇 초 동안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불쌍한 표정으로 자기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지금 환자인데 넌 내가 혼자서 촬영하는 게 걱정되지 않아? 넌 전혀 가슴이 아프지 않아? 조금 전에 말했던 내가 장애인이 되면 한평생 날 책임지겠다고 했던 말이 전부 가짜지?”“아니...”“넌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정한 여자야. 네가 이렇게 지독한 줄 알았더라면 널 구해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황산에 이 예쁜 얼굴이 다 녹아버려 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신주리를 만날 수 없게 된다...육경서는 절대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억지로라도 신주리를 이 프로에 출연시키고 싶었다.“넌 욕 먹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두려워. 오늘 내 사생팬이었다면 내일에는 네 사생팬이 달려들어 내 목숨을 따갈지도 몰라.”신주리가 매우 이성적으로 분석하자 육경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확률적으로 따지면 이번에 너를 덮쳤으면 다음에는 나야. 우리 둘의 팬덤이 비슷하잖아. 그러면 이런 일은 골고루 당하게 돼 있어.”육경서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신주리는 반박할 수 없었고 한참 생각하고 나서 배달통 뚜껑을 열더니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먼저 죽부터 먹어. 다른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고 나니 이미 새벽이 되었다. 해성은 주야 기온 차가 크고 게다가 오늘 기온이 워낙 낮았기에 밤이 되자 갑자기 추워졌다. 죽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불러일으켰지만 육경서는 숟가락을 받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는 다친 오른팔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안 먹을래.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누워서 큰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어. 비록 지금 배가 아주 고프지만 상처가 덧나면 입원 시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너한테 폐만 끼치게 되잖아.”신주리는 육경서의 말에 힘껏 노려보더니 죽을 한 숟가락 푹 떠서 그의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입을 벌린 채 한 손으로 부랴부랴 부채질하며 떠넣은 죽을 식히고는 어렵게 삼켰다.“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남편 죽일 거야?”죽이 그렇게 뜨거울 줄 생각 못했기에 신주리는 약간 미안했지만 육경서의 마지막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함부로 말하면 굶겨 죽일테야.”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얼른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 그의 멀쩡한 왼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찬물이야. 입에 물고 있어.”육경서는 신주리 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