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서가 신주리의 싸늘한 태도에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네가 그날 밤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 침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그날 일은 두 사람 모두 취한 상태였기에 술 깨고 나서 네가 혹시 후회했는데 내가 자꾸 끈질기게 물으면 내가 너무 자존심 상하잖아.”그러자 신주리는 눈이 휘둥그레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 나한테 물었어? 그리고 또 언제 끈질기게 물었어?’지나가는 말처럼 휘리릭 묻고 나서 신주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화제로 넘긴 사람이 누군데?그리고 신주리는 육경서가 두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바로 그 자리서 이별 통보를 내릴 줄 몰랐다.신주리가 입을 열고 뭐라고 말하려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침묵했다. 육경서도 더는 말이 없었고 오랫동안 침묵하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병실 안은 순간 미묘한 정적이 흘렀고 병상에 앉은 신주리는 그가 다시 입을 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신주리는 육경서에게 할 말이 더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자기 속내를 여실히 보여줬으니 그도 그에 따른 태도 표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육경서가 먼저 이별 통보를 했고 오해인 것이 밝혀졌으면 그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육경서가 말이 없자 신주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옆에 놓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까이에 있으면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핸드폰을 보니 매니저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있었고 병원 문 앞까지 왔다고 했다.“뭐 먹고 싶어? 매니저가 오면서 사다 주겠대.”육경서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자기야, 나한테 한가지 생각이 있어.”그날 밤 육경서가 취해서 부른 호칭에 신주리는 갑자기 핸드폰을 쥔 손을 꽉 움켜쥐더니 눈까풀을 파르르 떨면서 이내 고개를 들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건 오해였으니 내가 그 말을 철회하면 안 될까?”육경서는
이 여자의 마음은 돌멩이처럼 단단했고 그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라곤 전혀 없었다.육경서는 화상을 입은 곳이 어깨가 아닌 구멍이 숭숭 난 자기 가슴인 것 같았다. 자기 속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상할까 바였지만 정작 용기 내 고백한 뒤 거절당하니 자존심이 상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헤어지자고 하지 말았을걸...이럴 줄 알았더라면 흥분하지 말았을걸...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존심을 버렸을걸...“협조해 주는 게 좋겠어. 그냥 소식은 뭐고 나쁜 소식이 뭔지 빨리 물어봐 줘.”신주리는 육경서의 기분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얻어낸 소식을 공유하려고 했다. 그러자 육경서는 마치 AI와도 같이 전혀 감정이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그냥 소식이 뭐야?”신주리가 답했다. “제작팀에서 네가 다친 것을 보상해 주기 위해 여행 경비를 올려주겠대.”육경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럼 나쁜 소식은 뭔데?”“나쁜 소식이라면 경비가 많든 적든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됐어. 촬영 접고 병원에서 살아야 해.”오랜 침묵 끝에 육경서는 가출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물었다.“요 며칠 동안의 예산만 올려준 거야?”신주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런 것 같아.”그러자 육경서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핸드폰 줘 봐.”갑작스러운 소식에 육경서는 자기가 다쳤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손을 뻗으려다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스읍’ 하고 호흡을 집어삼켰다.“조심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크게 움직이면 안 돼.”신주리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긴장한 눈빛으로 그의 팔을 바라보았다. 육경서는 눈앞에서 알른거리는 신주리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병원으로 이송할 때 그녀의 걱정스러워하던 표정이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물었다.“병원으로 오는 길에 줄곧 내 어깨를 바라보고 있던데 그때 무슨 생각 했어?”오는 길에 신주리가
상대방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의사는? 그래서 내가 아까 전면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잖아.”“그것과 상관없이 피디님이 이제부터의 스케줄은 예산을 올린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심장이 둔기에 맞은 것처럼 아파요.”피디는 갑작스러운 육경서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더니 육경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들어보니 첫 번째 스케줄만 경비를 올리고 그 뒤로는 없다면서요?”피디는 순간 육경서가 자기와 협상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경서 씨.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우리 프로의 최대 볼거리가 게스트들이 힘을 합쳐 곤란을 헤쳐 나가는 것인데 나도 사실 경비를 이렇게까지 타이트하게 할 생각은 없어. 그저 게스트들의 임기응변 능력을 단련시키고 싶을 뿐이야.”“전 단련 받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저 여자 친구와 재밌게 여행하고 싶어요. 만일 다음 스케줄도 이렇게 빡빡하게 굴 거라면 우리 둘은 하차할게요.”그 말에 신주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신주리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감히 피디를 협박해?’하긴 뭐 이 프로에 출연하게 된 것도 릴리한테 속아 온 것이다. 현재 이 프로의 인기 담당이 육경서와 신주리이니 충분히 제작진과 조건을 흥정할 자격이 있다.그리고 프로그램이 사고 난 시점에 두 사람이 하차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유언비어를 낳게 될 것이다.예를 들어 제작진이 안전한 촬영 환경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신주리와 육경서가 화가 나서 하차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면 다른 팬들도 자기 아이돌의 안전을 걱정할 것이다. 이건 뒷말이긴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제작진에게 책임을 추궁할까 봐 겁이 났다.“이건 프로그램을 위해서인데 왜 나를 입장이 난처하게 만들어?”피디는 울상이 된 얼굴로 회사에 책임을 떠넘겼다.육경서는 그런 피디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엄포를 놓았다.“제작자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만일 계속 이렇게 할 거라면 제가 퇴원하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피디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주리 씨, 이번은 정말 사고야. 다음 스케줄부터는 모든 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계획할 것이며 게스트들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신주리는 전혀 자기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2부는 야외탐험이다 보니 1부보다 훨씬 더 위험할 거예요. 그러면 거의 매일 사건 사고가 발생할 텐데 저희는 못 하겠어요.”신주리는 어떻게라도 설득해 보려고 노력하는 피디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냉랭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신주리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야외 탐험이기에 1부보다 위험계수가 훨씬 높다...“정말 하차하려고?”육경서가 묻자 신주리는 멈칫하더니 말했다. “속아서 온 거니까 지금 도망가기 제일 좋은 기회야. 인지도도 상승했고 우리만 제작진을 욕하지 않으면 무사하게 끝까지 촬영할 수 있어.”끝까지 무사히 촬영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지금의 인지도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필경 두 사람의 팬덤이 어마어마한 존재니까.“난 하차 안 할 거야. 그냥 하고 싶어.”육경서가 불만을 터뜨리며 반박하자 신주리는 살짝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그럼. 만일 피디가 다시 전화로 설득하려 하면 그렇게 전할게.”그러자 육경서가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안 돼. 너도 계속 해야 해. 나와 함께 출연해.”“내가 왜?”그 말에 육경서는 말문이 턱 막히면서 몇 초 동안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불쌍한 표정으로 자기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지금 환자인데 넌 내가 혼자서 촬영하는 게 걱정되지 않아? 넌 전혀 가슴이 아프지 않아? 조금 전에 말했던 내가 장애인이 되면 한평생 날 책임지겠다고 했던 말이 전부 가짜지?”“아니...”“넌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정한 여자야. 네가 이렇게 지독한 줄 알았더라면 널 구해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황산에 이 예쁜 얼굴이 다 녹아버려 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신주리를 만날 수 없게 된다...육경서는 절대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억지로라도 신주리를 이 프로에 출연시키고 싶었다.“넌 욕 먹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두려워. 오늘 내 사생팬이었다면 내일에는 네 사생팬이 달려들어 내 목숨을 따갈지도 몰라.”신주리가 매우 이성적으로 분석하자 육경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확률적으로 따지면 이번에 너를 덮쳤으면 다음에는 나야. 우리 둘의 팬덤이 비슷하잖아. 그러면 이런 일은 골고루 당하게 돼 있어.”육경서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신주리는 반박할 수 없었고 한참 생각하고 나서 배달통 뚜껑을 열더니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먼저 죽부터 먹어. 다른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고 나니 이미 새벽이 되었다. 해성은 주야 기온 차가 크고 게다가 오늘 기온이 워낙 낮았기에 밤이 되자 갑자기 추워졌다. 죽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불러일으켰지만 육경서는 숟가락을 받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는 다친 오른팔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안 먹을래.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누워서 큰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어. 비록 지금 배가 아주 고프지만 상처가 덧나면 입원 시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너한테 폐만 끼치게 되잖아.”신주리는 육경서의 말에 힘껏 노려보더니 죽을 한 숟가락 푹 떠서 그의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육경서가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입을 벌린 채 한 손으로 부랴부랴 부채질하며 떠넣은 죽을 식히고는 어렵게 삼켰다.“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남편 죽일 거야?”죽이 그렇게 뜨거울 줄 생각 못했기에 신주리는 약간 미안했지만 육경서의 마지막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함부로 말하면 굶겨 죽일테야.”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얼른 일어나 컵에 물을 따라 그의 멀쩡한 왼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찬물이야. 입에 물고 있어.”육경서는 신주리 말대
밤이 더 깊어졌고 신주리 매니저는 알콩달콩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 육경서의 상황을 확인하고 별일 없다고 하니 곧바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좀 지나 신주리는 품에 쿠션을 안고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 신주리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육경서는 조용히 일어나 한 손으로 담요를 잡아 힘겹게 덮어주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문자를 발송했다.육경서: [나 지금 병원이야.]그도 육경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내 답장이 도착했다.[하느님 맙소사. 끝내 연락이 닿았어. 방금 실시간 검색을 보고 제작진과 통화했는데 형이 괜찮다고 하길래 안 갔어.]육경서: [이렇게 태연하고 이렇게 냉혹하다고? 주리 매니저도 병원에 다녀갔는데 넌 얼굴도 안 보여줘?]그러자 매니저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육경서는 허둥대며 끊어버리고는 문자를 보냈다.[주리 자고 있어. 깨우지 마.]매니저: [...] 매니저: [주리 누나 매니저가 간다고 하기에 안 갔어.]그와 신주리가 만나기만 아웅다웅하고 다투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두 매니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가족인데 한 사람만 다녀가도 충분했고 더욱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한참 생각하더니 매니저가 물었다.[그 사생팬 말인데 목적이 뭐래? 사생팬 맞아? 아니면 보복하고 싶은 거야?]육경서: [안 그래도 이 일 때문에 연락했어. 그 자식이 무슨 목적이든 상관없이 장경선한테 전해. 절대 밖에 다시 못 나오게 하라고 해.]그러자 상대가 말했다.[알았어. 장 부장님도 이 일을 아주 중시하고 있어. 만일 보복이라면 이번에는 절대 가만두면 안 돼.]그들은 이미 상대방에서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JL빌리지에서 미행했을 때 그들은 죄를 추궁하지 않고 이틀 동안 교육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번에는 절대 쉽게 끝내지 못한다. 만일 그 배후에 누가 있다면 한 사람도 놓쳐서도 안 된다...매니저가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구척장신의 남자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성인이었고 체면도 차릴 줄 아는 신사다운 모습이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부끄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규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 표정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신주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둬 발짝 다가가 난폭하게 그의 환자복을 끌어내리며 말했다.“그럼 내가 처치해 줄게. 내가 하면 될 거 아니야?”그녀를 보호하려다 이렇게 됐으니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옷을 끌어당기면서 상처를 싸맨 붕대가 벗겨지는 바람에 신주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렇게 튼실했던 근육이 지금은 이상한 붉은 색을 띠었고 황산에 닿은 부위는 물집이 생겼고 지금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살갗이 뒤집어지면서 아주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신주리는 시선을 그의 어깨에 꽂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육경서는 한참 동안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녀의 복잡한 시선과 부딪혔다. 육경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부랴부랴 옷깃을 올려 윗몸을 꽁꽁 싸면서 말했다.“너도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내 알몸에 반했어? 너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 의사 오기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신주리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갑자기 물었다.“아프지?”“괜찮아. 남자가 돼서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안 아프다면서 왜 의사가 처치해 주기를 고집하겠는가?전에는 줄곧 의사가 직접 처치했는데 오늘 수술이 있어 간호사가 대신 왔다.간호사가 인턴인지 솜씨가 서툴렀고 처치하면서 자꾸 육경서를 흘끔흘끔 훔쳐보는 바람에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 참았다.정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하지만 남자가 돼서 그것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아프다고 칭얼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이상한 핑계로 간호사가 처치 못 하게 했던 것이다.그는 신주리한테 살짝 기대했었지만 예상대로 난폭했고 다짜고짜 옷부터 끌어 내리는 바람에 상처가 드러나고 말았다. 신주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육경서는 지금 믿을 사람이 의사밖에 없었고 절대 다른 사람의 실험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 팬이 그의 계획을 깨버리며 말했다.“서 선생님 수술이 방금 시작되었고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요.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를 수 있어요.”그러자 육경서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이 간호사는 틀림없이 안티팬일 거야.’“그럼 다른 의사 선생님...”“내가 정말 조심스럽게 할게. 절대 안 아프게 할 수 있어.”신주리는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상처가 짓무른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 육 도련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녀는 잘 알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황산을 막아준 그 순간만 용감했다. 그가 지금 이 상황에서 진짜로 상처가 짓무른다고 해도 의사외에는 누구도 손을 못 대게 할 것이다.하지만 신주리는 남이 아니기에 육경서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함락되었다.“정말이지?”신주리는 자기 수법이 먹힌 것 같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날 믿어.”육경서는 그렇게 신주리의 꼬임에 들었고 좀 지나니 병실에서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문 앞에 서 있던 간호사는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처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육경서의 모습이 마치 능욕당한 소녀와도 같았다. 신주리는 그런 육경서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옷깃을 여며주고 침대 머리에 앉아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아팠어?”육경서는 반듯하게 누워 공허한 눈빛으로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절대 모를 거야.”신주리는 지그시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이쪽으로 와 봐.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육경서는 곁눈질로 신주리를 힐끔거리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아마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을 가치가 있는 비밀인지 저울질하는 모양이다. “안 올 거야? 버스 가버리면 다시 안 와.”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자를 꾀자 끝내는 호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