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가 “왜?”하고 묻자 신주리가 말했다.“내가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네가 와서 친구 하라는 거야.”그 말을 듣고 릴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바로 갈게.”신주리는 알았다고 하고는 인터넷에 접속해 프로필 정보를 확인했다. 미나, 데뷔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작품도 많지 않았다. 인기작이 육경서와 함께 찍은 그 한 부였다. 이런 삼류가 신주리와 라이벌 구도를 펼친다고? 살짝 흥미가 생겼다...저녁 6시가 되자 흰색 페라리가 신씨 가문 별장에 들어섰고 차를 주차하자마자 릴리는 신하균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신하균: [저녁에 같이 밥 먹을까?]릴리: [저녁에 약속 있어요.]신하균은 바쁘지 않은지 이내 답장했다. [오늘 토요일이야. 스케줄 없다며?]저번에 결혼 이야기를 꺼내 이유 모르게 차에서 쫓겨난 뒤로부터 릴리는 줄곧 뜨뜻미지근한 태도였고 신하균은 이번에도 자기와 만나기 싫어 만들어낸 핑계라고 생각했다.대화 창에‘입력 중...’이라고 뜨는 것을 보면서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덧붙였다.신하균: [나한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잠깐 만나.]릴리는 이 문자를 보더니 타자를 잠깐 멈추고 무슨 오해가 있는지 생각했다. 아, 전에 확실히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신하균은 워낙 직진남이고 생각하는 방식도 간단명료했다. 하여 릴리는 이 일을 재빨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요즘 비록 많이 바빴지만 매일 강표 사진을 찍어서 신하균에게 발송했기에 오해가 풀린 줄로 알았다.릴리는 이 메시지를 보고 저 멀리 있는 별장 대문을 보더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처음 남자 친구 집으로 부모님 만나러 왔는데 당사자에게 말도 없이 혼자 달려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릴리는 자기 이마를 ‘탁’ 치면서 정신을 놓아버린 자기 자신이 한스러웠다. 다시 자동차 엔진을 틀고 소리 없이 도망가 신하균과 함께 오려고 생각했지만 상상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었다.차 엔진을 틀자마자 한영숙이 문을 열고 나오며 반갑게 맞아줬다.“릴리
계단을 내려오면서 신주리는 오빠한테 메시지를 발송했다.신주리: [언제 와? 좀 있다 릴리가 집에 오기로 했어. 올 때 엄마, 아빠한테 드릴 선물 준비해서 와. 왜냐고 하면 내 친구 릴리는 예의 바른 아이이니까.]신하균은 이 메시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오늘 저녁? 릴리가 오늘 저녁 약속 있다 했는데?’바로 이때 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릴리: [다음에 얘기해요. 오늘 저녁 하균 씨 부모님이 집으로 식사 초대했어요. 몇 시에 돌아와요?]신하균의 찌푸려졌던 눈살이 저도 모르게 펴지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기분이 제법 좋아져 릴리의 ‘돌아와요’ 도 눈치채지 못했다.신하균: [지금 데리러 갈게.]그러자 릴리가 이내 답장을 보냈다.[내가 갈게요. 여기서 가까워요.]신씨 가문 별장은 월계만과 그의 직장 사이에 있는데 왜 가깝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신하균이 거절할 틈도 없이 릴리가 바로 또 문자를 보냈다.[출발했어요. 기다려요.]...릴리가 너무 일찍 도착해 신하균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집에서 오는 거 아니었어?”릴리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밖에 있었어요.”신하균은 더 묻지 않고 준비한 선물을 릴리의 차에 실으니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집에 자주 안 가요? 아니면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요?”자기 집에 가면서 선물을 들고 가는 건 또 의외였다. 신하균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처음 우리 집에 가는데 선물 준비해야잖아. 내가 준비했으니 누구 선물인지만 기억하고 있어.”신하균을 바라보는 릴리의 눈빛이 반짝이면서 살짝 놀란 표정으로 표현 방식이 서툴러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세심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하균이 선물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동안에 릴리가 아무 대꾸도 없자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신하균은 잠깐 멈칫하더니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 갑자기 하균 씨가 아주 멋있어 보여서요. 사실 나도 선물을 준비했거든요.”남자의 눈빛이
신하균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면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신중하게 반문했다.“내가 화날만한 무슨 일이라도 했어?”그러자 릴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귀찮은 듯 말했다.“반문하지 말고 Yes or No로만 대답해요. 대답하기 싫으면 관두고 그냥 냉전하죠 뭐.”그러자 신하균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릴리의 손을 잡더니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화 안 낼게.”릴리는 그 말에 오만하게 고개를 잔뜩 쳐들며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죠. 빨리 가요. 출발.”“잠깐만.”신하균은 꼼짝하지 않고 자기 가슴팍에 놓인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차를 짚고 서서는 그녀를 품으로 가뒀다. 릴리는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향해 물었다. “왜요?”“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용서해 줬으니 나한테 감사의 뜻을 표시해야 하는 거 아니야?”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언제 조건을 제시했어요? 그리고 내가 용서해달라고 말한 적 있어요?”신하균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렇기도 해.”“맞죠? 남자가 왜 이렇게 옴니암니 따져요. 그러면 여자 친구가...”마지막 말을 하기도 전에 따뜻한 입술이 입을 막아버리자 릴리의 눈동자가 갑자기 확 커지면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신하...”신하균은 이내 입술을 떼고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맞대니 코끝이 닿아버렸고 입술과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면서 두 사람이 내뿜는 열기가 서로의 얼굴을 간지럽혔다.“감사의 뜻을 나는 전했어. 이번에는 자기 차례야.”신하균의 마법과도 목소리는 싸늘했지만 흡입하는 힘이 있어 릴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개를 쳐들어 신하균을 바라보는 릴리의 눈빛은 물결이 찰랑이었고 눈꼬리가 살짝 상기되었다.“반드시 해야 해요?”“며칠 동안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해야 하지 않겠어?”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잠겨있었고 억울한 듯 말했다.릴리는 이런 남자의 표정에 마음이 동해 두 팔로 그
가는 길에 신하균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고 이유도 모른 채 용서해준 것에 대해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릴리의 성격대로라면 신하균을 엄청나게 화나게 할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남자로서 여자와 옴니암니 따지지 않기로 했다. 지나치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릴리와 화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신하균은 그녀를 과소평가했다. 별장에 들어서자마자 한영숙은 열성스레 릴리를 반기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방금 왜 도망갔어? 가족끼리 선물이 뭔 대수라고 다시 돌아가기까지 해?”엄마의 말에 신하균은 흠칫하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무슨 뜻이야? 방금 왔다 갔어?”“하하, 선물이 중요하죠. 당연히 가지러 가야죠.”릴리는 제 발이 저려 감히 신하균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자 듣고 있던 신주리가 한마디 끼어들었다.“당연하죠. 릴리가 일찍부터 선물을 준비했는데 빈손으로 안 오려고 하죠.”한영숙은 고개를 돌리더니 신주리를 나무라며 말했다.“가족끼리 무슨 선물이야.”릴리는 그제야 이 사람들이 자기가 선물 가지러 돌아간 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그래. 아까 이 핑계를 댔더라면 좋았을 텐데.’뒤통수로 꽂히는 싸늘한 시선에 릴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릴리가 트렁크에서 선물을 꺼내는 것을 본 신하균은 이건 그녀가 일찍부터 준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만일 잊어버리고 다시 집에 갔다가 신하균을 마중하러 왔다면 절대 그 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그렇다면 릴리는 신씨네 별장에서 바로 온 게 분명하다.만일 신씨 가문에서 바로 신하균을 마중하러 갔고 선물도 챙겼는데 잔뜩 미안한 표정이라면 한 가지 일밖에 없었다.그건 바로 신하균을 잊어버리고 혼자 갔던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신하균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였다. 처음 남자 친구 집으로 부모님 뵈러 가면서 남자 친구한테 연락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건 릴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이놈의 계집애가...“문 앞에 서 있지 말고 빨리 들어와 앉아.”한영숙의 말이 난처해서 어쩔 바를 모르
신명진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마누라가 못 가게 하기 때문이다. 예비 며느리가 주량이 괜찮고 같은 상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간만에 기분 좋게 한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맞죠? 나도 우리 릴리가 술을 못 마신다고 들었는데 네 아빠가 기어코 아니라고 하시잖아. 술병 치워버려.”한명숙이 덩달아 말하자 신명진은 작은 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오래전부터 소장해 온 거야. 나도 아까워서 안 마셨는데...”그 말에 릴리의 눈이 반짝이면서 시선을 술병에 고정했지만 귓가에서 또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이틀 전에 위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마시면 안 돼.”릴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어떻게 알아요?”사실 릴리는 그날 위가 아픈 것이 아니라 생리 때문에 배가 아팠다.그리고 더욱 의아했던 것은 양율이 1초 전까지만 해도 무뚝뚝한 얼굴로 사업 보고하더니 30분도 안 돼 릴리에게 위약을 건네주었다. ‘누가 생리통에 위약을 먹는단 말인가?’상남자라 이해는 되지만 고맙다고 아무 약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릴리는 그때 예쁜 여비서를 한 명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와서 보니 그 상남자는 양율이 아니라 곁에 앉은 이분이었다.“쳇, 하균 씨가 우리 회사에 간첩을 심어놨어요?”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릴리의 목소리를 들어서는 그녀의 기분을 알 수 없었지만 신하균은 당당하게 말했다.“간첩이라고 하긴 그렇고 저번에 자기가 사고 난 뒤로부터 양 비서와 연락을 자주 할 뿐이야.”릴리는 눈을 깜빡이며 신하균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치 빠르게 귀를 갖다 댔다. 그러자 릴리의 느릿느릿한 말소리가 들려왔다.“그런데 위가 아팠던 것이 아니라 복통이었어요.”의문스러운 눈빛으로 힐끗 쳐다보자 릴리는 웃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는 귓속말로 뭐라 했는지 신하균은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정색해 앉아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고 엄숙했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귀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
한편, 육시준 역시 갑자기 나타나 계약 결혼이네 한달에 천만 원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유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내민 곳은 뒤쪽이었다.“자료 좀 주실래요?”어젯밤 차에 남긴 정보에 따라 비서가 이미 강유리의 뒷조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무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넘기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1000만원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0 하나는 더 붙여야지. 그래야 육씨 집안 사모님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테니까.”목소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유리는 0 하나는 더 붙여야 한다는 말에 꽂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하이고? 요즘 호스트는 가격 흥정을 이렇게 하나? 하긴,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부잣집 사모님 한 명 제대로 잡으면 월에 억은 쉽게 받겠어. 하지만...’“5000만원, 이 정도에서 끝내지. 적당히 해.”해외에서 매달 임천강에게 용돈 명목을 부쳐준 돈이 겨우 2000만원 남짓, 강유리가 부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호구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데... 5000만이든 1억이든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지?”“내가 그쪽을 고용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주는 거지.”이에 육시준은 다시 강유리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얼핏 얼핏 보이는 요염함이 매력적인 정교한 얼굴, 지금까지 그의 돈에 빠져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만함을 넘어 어딘가 고고하기까지 한 눈빛...‘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좋아.”잠시 후 얘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선다.하지만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강유리는 우뚝 멈춰서더니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꽂힌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가 저 차 주인한테 빚을 좀 진 게 있거든.”강유리를 보는 육시준의 눈이 또 묘하게 변하고...비서 역시 상황이 묘하게 변하고 있다 싶지만 육시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