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단추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튕겨 오르더니 저멀리로 굴러갔다.육경서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숙이니 신주리가 파들거리는 눈초리로 눈앞의 탱탱한 가슴 근육을 뚫어져라 보면서 빨간 입술로 말했다.“만져봐도 돼?”육경서는 신들린 듯 천천히 다가오는 신주리의 두 손을 한 손으로 확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가려야 할 곳은 하나도 안 가리고 보일락말락 하는 것이 더 유혹적이었다.육경서는 짐짓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어때? 만족해?”신주리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족하면 나와 사귄다고 했어?”잇따른 물음에 고개를 들고 몽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신주리가 뭔가 말하려는데 다시 육경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더 만지면 안 돼. 만지고 나서 대답 안 하면 난 어떡해?”신주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몸이 더럽혀지면 누가 날 좋아하겠어?”신주리의 대답을 듣지 못해 실망했는지 육경서가 낮게 투덜거렸다.설령 술에 취했다 해도 신주리는 절대 손해 보지 않았고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마음 약한 신주리는 육경서의 모습이 불쌍했는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사귀어줄게. 그리고 내가 책임질게.”그러자 남자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물었다. “정말이지?”신주리는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네가 입방정 안 떨면 아주 괜찮은 남자야. 사실 나도 널...” 좋아해.기대에 잔뜩 찬 육경서의 눈을 보는 순간 신주리는 마지막 말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 잠재의식 속에 절대 먼저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너도 나를 뭐?”육경서가 끈질기게 묻자 신주리는 입을 삐죽이더니 그의 손을 밀쳐내며 말했다.“졸려. 잘 거야...”육경서는 도망치려는 그녀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자기야. 잠깐만.”“왜?”“사인이라도 받아야겠어. 내일 아침 일어나서 인정 안 하면 어떡해?”신주리가 몽롱한 눈빛으로 불쌍하
부재중 전화가 수두룩했다.릴리 계집애가 한 것도 있고 다른 친구들 것도 있었으며 매니저가 제일 많이 했다.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으며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메시지를 확인하려고 카톡을 터치하는 순간 액정에 매니저의 번호가 떴다...저도 모르게 수락 버튼을 누르며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자 매니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주리,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가짜라고 했잖아? 가짜라며? 나도 속일 거야? 이런 소식을 내가 실시간 검색을 통해서 알아야 해?”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포효로 짐작해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오랫동안 함께 일해오면서 매니저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다.신주리는 한참 침묵하더니 조용히 물었다. “진정해. 그리고 천천히 말해 봐. 대체 무슨 일이 생겼어?”신주리는 낮은 소리로 매니저를 진정시키려 했다.매니저는 심호흡하며 신주리를 한바탕 패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더니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어제저녁 육경서와 함께 있었어?”신주리는 어젯밤 육경서와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집으로 왔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다급히 물었다.“혹시 영화관에서 찍혔어?”어제 신주리는 확실히 도가 지나쳤다.즉석에서 티켓을 구매해 다른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면 다른 느낌일 것 같았다.사실 신주리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찍히는 것이 절대 두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원수지간으로 지내왔고 서로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설령 찍히더라도 헛소문인 줄 알고 다들 믿지 않겠지만 어제 영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나 친근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신주리는 긴장해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깨물었다.“영화관이면 좋기나 하지.”매니저의 목소리가 차갑게 들려오면서 만일 영화관에서 찍혔으면 소속사에서 손 쓸 방법이라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확실한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었다.그 말에 신주리는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찍혔어?”매니저
“아니. 너무 충격적이야. 내가 사는 곳이 몇 층인지 알아? 20 몇 층이라고. 그것도 강 옆인데 어떻게 도촬했지? 목숨 걸고 일해?”“각도로 봐서는 네 대각선 쪽 아파트 베란다에서 찍었어. 확실히 기술과 용기가 필요해.”자칫 잘못해서 떨어지는 날이면 이건 장난이 아니다.하지만 육경서와 신주리의 관계가 미묘한 건 사실이었다.많은 마케팅 계정에서 그들이 사귄다고 기사를 낸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만나면 서로 냉랭하게 대했고 촬영장에서 흘러나온 쿠키영상을 보면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었다.하여 전 세계 사람들은 두 사람을 원수지간으로 알고 있고 양측 팬들도 태도가 강경해 공식 발표가 아니면 절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럴 때 두 사람이 진짜로 사귄다면 이건 빅뉴스가 아닐 수가 없었다.그래. 끝내는 어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 의해 열애 사실이 폭로되었다.키스까지 한 마당에 가짜라고 우길 수도 없고 가짜라면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연예계의 두 탑이 원나잇이 말이 되냐고?신주리는 소파에 기대어 창문 쪽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기억을 띄엄띄엄 떠올렸다.“자기도 나를 좋아하는 거 맞지? 우리 진짜로 사귀어볼까?”“대답하면 복근 만지게 해줄게.”남자의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였다.육경서의 표정은 부드러웠고 그 여느 때보다 진지했다.“젠장.”신주리가 깜짝 놀라며 소파에서 튀어 일어나자 매니저가 급히 물었다.“왜? 무슨 일이야?”그러자 신주리가 갑자기 되물었다.“만일 우리가 진짜로 사귄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매니저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우리가 지금 사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니야? 다른 대처 방법이 없어. 두 사람은 반드시 사귀어야 해.”영상은 미치도록 뚜렷해 두 사람의 표정마저 선명하게 보였다.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저토록 친근한 행동을 했다...만일 열애 사실을 부인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두 사람의 팬심은 그대로
폭발적인 조회수를 자랑하는 몇 개 검색어를 본 육경서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차렸다.어제저녁 도촬된 것이 분명했다.두 사람이 함께 집에 가는 것이 찍혔나?검색어를 따라 내용을 확인하던 육경서는 자신이 파파라치를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촬된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촬영 각도를 상상해 보더니 용감한 파파라치에게 박수라도 보내고 싶었다.사실 연예계의 탑인 육경서는 어젯밤 창문 앞에 서 있을 때 도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순간 하긴 했었다.하지만 밖의 환경을 보고 나서 이 생각을 뇌리에서 떨쳐버렸는데 세상에나, 진짜로 목숨 걸고 일하는 파파라치가 있었다.육경서는 걱정할 것도 폭로되는 것도 겁나지 않기에 대수롭지 않게 앉아 영상을 감상하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영상이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다.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댓글을 밀어 올리며 읽어보기 시작했다.“대박! 이렇게 자극적이라고?”“원수라며? 원수라며? 나만 두 사람이 하는 헛소리를 그대로 믿은 거야?”“팬덤이 무너졌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더니 바로 나 자신이었어.”“언니 정신 차려요. 어떻게 육경서 같은 남자를 좋아해요?”“신주리 팬들 너무 심하게 하지 마. 경서 오빠를 봐서 그 여우 년을 살려두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는 건 절대 아니야.”“위층에서 뭔 개소리야? 누가 여우 년이야? 제기랄, 저건 우리 주리 오피스텔이야.”“맞아. 육경서가 들러붙은 게 확실한데 왜 우리 언니한테 뭐라고 해?“너희 공주님이 무슨 수법으로 우리 오빠를 유혹했는지 누가 알아? 영상에 나온 오빠의 표정이 너무 이상해.”“촬영 장면이 아니야?”“정신차려. 여긴 신주리 숙소야. 촬영 장면은 무슨.”“길 가던 사람인데 한마디만 할게. 두 사람 어울린다는 생각이 안 들어? 주리 너무 예뻐. 그리고 육경서는 너무 섹시해. 두 사람 사귀어요.”“썩 꺼지지 못해. CP 팬은 당장 꺼져.”“...”댓글 창은 아수라장이었고 양측 팬들이 모여 난타전을 벌리고 있는 중에 CP 팬까지 끼어
“오빠 이게 사실 아니죠? 혹시 협박당한 거라면 눈이라도 깜빡해 봐요.”“육경서 말투가 이상해. 절대 진짜 아니야.”“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소속사는 대체 뭐 하고 자빠져있어? 누가 우리 오빠 계정 훔쳤어?”“다들 봤지? 우리 주리는 피해자야.”“맞아. 육경서가 주리를 소비하고 있어.”“역시 그 기생오라비가 우리 주리를 유혹했어. 주리는 여전히 우아하고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어.”“자매님들 정신 차려요. 영상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누가 누구한테 대시하든 상관없이 예쁘고 착한 주리 언니가 육경서 그 자식한테 도둑 맞힌 건 사실이에요.”“이 형부 반대에요. 주리 언니, 예쁜 솔로가 안 좋아요?”“육경서 당장 연예계에서 꺼져.”“...”육경서가 SNS에 글을 올리고 새로 고치고 보니 댓글 창이 이미 점령되었고 전부 자기에 대한 욕설인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인터넷창을 닫았다.그러고나서 매니저에게 전화하려던 참에 옆에 앉아 구경하던 강 감독의 얼굴이 갑자기 다가오며 말했다.“다 봤어? 느낌이 어때? 내가 그랬지? 언젠가는 들통날 거라고. 내 말을 안 믿더니 지금 어떻게 할 거야? 팬들한테 뭐라고 설명할 거야? 솔로 캐릭터 어떻게 유지할 거냐고?”강 감독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연속 몇 개 작품을 이 두 사람과 함께 작업하면서 두 사람의 현장에서 모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가짜 커플이면서 스크린에서는 원수인 척하고 그러면서 사적으로는 또 불투명하고...‘아주 재밌단 말이야.’ 두 사람 모두 솔로 컨셉을 잡은 건 확실하다.강 감독은 주리가 솔로든 아니든 대폭지지하지만 육경서 이 자식은 아주 아니꼬웠다.자기가 먼저 커플 제의를 해놓고는 감히 공개도 하지 못하면서 은근슬쩍 주리에게 대시하고 있었다.‘팬도 유지하고 싶고 여자 친구도 가지고 싶단 말이지? 이제 모든 것이 들통났으니 어떻게 대처하는지 두고 볼 거야.’육경서는 뜨뜻미지근한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언제 솔로
신주리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바로 전화를 꺼버리고 싶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유리가 술 마신 다음날 필름이 끊기는 버릇이 부러웠다.‘나는 왜 그런 버릇이 없는 걸까?’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자 육경서가 먼저 침묵을 깨면서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맞다. 내가 방금 SNS에 올린 글 봤어?”신주리가 놀라며 물었다.“글 올렸어?”“당연하지. 한번 봐봐.”신주리는 어젯밤 부끄러운 장면이 자꾸 뇌리에 떠오르면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기회를 타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접속했다.짧디짧은 몇십 분 동안에 실시간 검색어가 더욱 풍성해졌다.#육경서 열애 인정##육경서 신주리 대시#이러한 검색어가 번듯하게 실시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육경서의 조금 전 대응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다.신주리가 클릭해 보니 소속사의 공식 해명이 아닌 간단명료한 몇 마디 말로 영상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몇 마디 말을 보면서 신주리는 심지어 육경서의 진지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신주리는 육경서의 글을 보면서 표정이 짐짓 엄숙해졌다.만일 육경서가 진심이라면, 진지하게 그녀와 공개 연애를 하려 한다면 신주리도 이 사건을 단지 일로만 생각해 매니저와 소속사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하여 자신의 SNS를 열고 문자를 편집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확인해 보니 육경서였다.잠깐 멈칫하고 수락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너무나도 익숙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봤어? 오빠 의리 있지? 대부분의 공격을 이 한 몸으로 막아 너의 고귀하고 냉철한 이미지를 지켜냈어.”그 말에 신주리는 얼굴을 씰룩이더니 물었다.“내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서야?”“당연하지. 아니면 무슨 이유일 것 같아?”육경서가 되묻자 신주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역시 오산이었다. 절대 육경서 이 바보한테 기대해서는 안 된다.‘그래. 이대로 다 끝내고 말자.’ 어젯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척하고 육경서를 목 졸라 죽이는 것이 나
“쳇, 급할 때만 오빠고 불리하면 전화기 꺼놓고 잠수타고. 누가 이딴 식으로 인간관계를 처리하라고 했어?”릴리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워낙 철면피인 육경서는 전혀 변함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사정이 있어. 주리가 널 만나기 싫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거역해? 그리고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총구를 밖으로 겨눠야지. 사적인 감정은 날 잡아서 풀도록...”“헛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이야?”입을 삐죽거리며 릴리가 물었다.“주리 오피스텔 앞에 기자와 팬들로 꽉 찼어. 우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안 갈 것 같은데 네가 다른 곳으로 좀 유인해 봐.”릴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전화를 끊고 문을 열고 나가려고 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신하균이 노크하려던 참이었다.“왜요?”릴리가 묻자 신하균이 답했다.“주리 찾으러 가려고?”릴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하균이 말했다.“함께 가.”검은색 SUV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곧장 신주리의 오피스텔로 향했다.오피스텔 주차장 입구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출구를 물샐틈없이 막고 있었다.차가 천천히 다가가면서 릴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쟁론 소리를 들었다.“몇 신데 아직도 안 나와? 아직 자고 있을까? 오늘 밖에 안 나오는 거 아니야?”“아니야. 육경서가 이미 대응했는데 숨길 게 뭐가 있어?”“그렇겠지? 육경서의 성격대로라면 대범하게 승인했으면 인터뷰 따위를 겁내겠어?”“비록 첫 기사는 아니지만 인터뷰만 따낼 수 있다면 가치가 있어.”“양측 팬덤이 무너졌는데 탈덕이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아직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그런데 왜 아직도 안 나오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았을까?”“아니야. 신주리 차가 아직 주차장에 있어. 주차장에도 동료가 지키고 있어.”그 옆을 지나면서 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확신에 차 있는 그 사람을 보았다.자그마한 키에 두 눈은 별처럼 빛났으면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젠장, 이렇게 잘 알고 있다고? 사생팬인가?
지하 주차장에서 망보고 있던 사람이 저쪽에서 전해 온 본인이 맞다는 확답을 듣고 이내 자기 차를 타고 쫓아갔다.오늘 반드시 두 사람을 붙잡고 철천지원수 컨셉으로 팬을 속인 기분이 어떤지 인터뷰하고 말리라고 결심했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확연하게 눈에 뜨이는 람보르기니 한 대가 담대하게 그들의 뒤를 따라 서서히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와 차량 행렬에 끼어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검은색 SUV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어떤 겁 없는 자가 차로 그들의 앞길을 막는 바람에 급정거하고 말았고 막는 자만 없다면 이대로 도망갈 예정이었다.그들은 두 사람의 허둥대는 모습으로 신주리, 육경서임을 더욱 확신했고 이내 차를 에워싸고 창문을 마구 두드리며 카메라를 들고 끝없이 입술을 팔락이었다.조수석에 앉았던 릴리는 이 광경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연예인도 극한 직업이었어.’곁눈으로 람보르기니가 이내 뒤따라 나와 도로 위의 차량에 합류되어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 것을 본 릴리는 허둥대는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곁에 앉은 신하균에게 말했다.“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그러자 신하균은 창문을 내리며 선글라스를 벗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제일 앞에 섰던 사람이 당장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었다.“누구세요? 육경서는요?”“무슨 육경서요? 어느 언론사 기자예요? 거주지역에 집거해 소란 피우고 사회 공공질서를 방해한 죄로 경찰에 신고할까요?”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지만 강력한 파워가 깃들어 있었다.제일 앞에 서 있던 기자의 얼굴빛이 변하면서 조수석과 뒷자리를 휙 쓸어보더니 대충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떠났다.그 사람이 떠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투덜대며 흩어졌다.“뭐 하는 짓이야?”“어떤 등신이 육경서라고 했어?”“여태까지 기다렸는데 도망간 거 아니야?”“조금 전에 차가 여러 대 빠져나갔어. 그중에 두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해.”“짜증 나!”“...”실망에 빠진 한 무리 사람을 보며 릴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