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안.홍보팀 직원 십여 명이 단정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양율의 해고 소식은 순식간에 그룹 내에 퍼졌다. 모두들 자신도 이 일에 참여했기에 간담이 서늘했다.문이 열리자 몇 명은 자신도 모르게 더욱 똑바로 앉았다.그런데 들어온 사람을 보고 그들은 의문이 가득했다.“???”여한영은 강유리의 부탁을 받고 왔다. 그는 릴리가 강유리의 여동생이고 둘이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성그룹에 들어오면서 왠지 친딸의 뒤를 받쳐주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연세가 있어 겸손할 것도 없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앞자리에 앉았다.다른 한쪽의 홍보팀 본부장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홍보팀 본부장은 이 상황을 보고 오싹해났고 더욱 긴장했다...미묘한 침묵이 흐른 뒤 문이 다시 열렸다.릴리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고 임강준은 그녀의 옆에 반 발짝 뒤처져 따라 들어왔다.“여 아저씨, 오셨습니까?”릴리는 여한영을 보고 활짝 웃었다.여한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임강준을 쳐다보았지만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그래. 내가 늦지는 않았겠지?”회의 테이블 상단에는 한 자리만 남았다.임강준은 갑자기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이번에는 그들이 일부러 그를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임강준의 자리를 남겨 놓았으나 그 자리를 여한영이 차지했을 뿐이다...“의자를 하나 더 가져오세요.”임강준은 고개를 돌려 침착하게 비서에게 분부했다.방금 회의를 통지했던 비서는 이 상황을 보고 멍해 있다가 그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의자가 배치된 후 임강준은 릴리의 옆에 앉았다. 홍보팀 본부장은 어쩔 수 없이 한 자리 뒤로 옮겨야 했다.그래서 임강준과 여한영이 대등한 자리에 앉고 홍보팀 사람들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는 형국이 되었다.“다음 회의 때는 인원수를 잘 파악해서 이런 실수는 없도록 하세요.”임강준은 덤덤한 목소리로 상사의 포스를 풍기며 당부했다.어린 비서는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회의
여한영은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들의 방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 때문이다.임강준의 말과 같이 그들은 릴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룹 입장만 고려했다.고성그룹에 오래 있은 사람이었다면 그 역시 그룹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런 방안을 선호했을 것이다. 과거의 그는 확실히 그런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그는 뚜렷한 친소 관계 편향을 가지고 있다.심지어 이런 방안을 들었을 때 그는 은근히 화까지 났다. 그들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아니면 과거의 자신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지만...“간단한 일을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요?”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턱을 살짝 쳐들고 도도하게 입을 열었다.“루머를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아요.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지금 강 이사님의 지지율이 훨씬 높아요. 고성그룹보다 강 이사님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하지만 강 이사님은 고성그룹 사람이기 때문에 양자가 반대편에 서면 안 되죠.”홍보 담당자가 참지 못하고 귀띔했다.여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양자가 반대편에 서면 안 되니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왜 꼭 강 이사님이 고성그룹에 맞춰야 하죠? 고성그룹이 강 이사님에게 맞추면 안 되나요?”“다 같은 것이 아닌가요? 꼭 그렇게 분명하게 나눠야 하나요?”홍보 담당자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같은 것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은 고성그룹보다 강 이사님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기어코 그룹을 위해 머리를 숙이라고 하는데, 이건 대중들이 보길 원하는 그림이 아니에요.”“이, 이건 궤변이에요! 고성그룹은 당신들 연예계와 달라요. 팬들의 환심을 사고 관객에게 알랑거려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홍보 담당자의 당당한 말투에는 경멸도 섞여 있었다.그는 여한영의 명성을 익히 들었고 방금 만나자마자 알아봤다.하지만 그는 연예 홍보를 우습게 봤다. 게다가 작은
홍보 담당자는 여한영의 입에서 ‘인재 채용’과 ‘직무 경쟁 제도’라는 말이 나오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이 계집애가 이번에는 진짜네. 먼저 CEO를 교체하고, 그다음 회장 비서를 바꾸고. 마지막에 홍보팀과 기타 위치로부터...’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를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강 이사님!”그는 일어선 릴리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릴리는 그 자리에 선 채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이렇게 무모하게 추진하다가 정말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릴리는 우스워하며 말했다.“제가 전에 했던 말을 설마 농담으로 들은 건 아니죠? 고성그룹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누구의 이익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는 거예요. 당신들이 협조하지 않는 것도 두렵지 않은데, 뭐가 두렵겠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재빨리 회의실을 나섰다.여한영이 멈칫하더니 일어나 급히 쫓아갔다.홍보 담당자 옆을 지나갈 때 친절하게 귀띔도 해주었다.“똑똑한 사람은 자기 위치를 확실히 알고 추세를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이 사람이 그걸 깨닫고 업무에 잘 협조해야 그는 최대한 빨리 자기의 작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하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다시 물어봐야 한다.그는 빠르게 릴리를 쫓아갔고, 낮은 소리로 열심히 보고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긴장하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릴리야, 난 이직하고 승진할 생각이 없어. 저 홍보 담당자가 좀 어리석지만 아직 구제 불능은 아닌 것 같으니 놀라 도망가지 않게 천천히 추진해.”“저 사람이 도망가면 아저씨가 그 자리에 앉으시면 되죠. 제가 아저씨를 푸대접하지 않을 텐데.”릴리의 목소리는 달콤했다.“싫어. 이제 나이도 많은데 새로운 걸 배우고 싶지 않아. 기업 홍보와 연예 홍보는 전혀 다르거든.”여한영의 말에 릴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방법을 대서 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봐요. 성공하길 바랄게요.”
댓글 창에는 공감부터 의심까지, 릴리가 고성그룹과 무슨 합의를 이룬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솔직담백’ 컨셉은 이미 철저히 무너졌다.스토리를 삭제한 것에 대해 처음에는 분노했을지 모르지만, 적당한 이익을 챙긴 후에는 이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여론이 점차 바뀌고 어떤 사람들은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그러게. 개인이 어떻게 그렇게 큰 그룹과 싸우겠어? 이전에 공주였다고 지금도 공주인 줄 아나?][이게 진실이야. 정말 이렇게 함부로 하면 고성그룹이 망하지 않겠어?][고성그룹 임원들이 밥그릇이나 축내는 사람들이겠어?][이게 현실이지만 너무 실망이야.][...]원래는 이렇게 나오면 여론이 천천히 잠잠해진다.이는 고성그룹 홍보팀의 최초 의도이기도 했다. 내부 문제는 내부적으로 소화하고 외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이다.하지만 임강준과 여한영은 여론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이 불길이 더 거세지기만 바랐다.더 많은 시선을 끌어야만 내부의 인원 교체가 더 순조롭게 진행되고, 고성그룹의 늙다리들이 방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이 릴리의 그 스토리가 언제 삭제될지에 관심을 집중했다.삭제되기만 하면 이 일이 끝날 것 같았다.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스토리는 삭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또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가 올라왔다.[상륙 후 첫 작전, 면종복배 처단하기!]댓글 창에는 면종복배가 뭐냐고 궁금해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이 스토리는 무슨 뜻일까?누군가가 고성그룹에 들어가기 전의 인터뷰를 언급했다. 그녀는 고성그룹에서 매우 존중해 주었고, 어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면종복배하는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오늘 그룹에 돌아온 후 첫 번째로 할 일은 물갈이, 즉 그녀가 말한 면종복배하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다.[죄송해요, 공주님. 방금 제 목소리가 너무 컸죠.][하하하! 공주는 어디서나 공주야. 지금 왜 공주가 될 수 없는데? 제 딴엔 상황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잘 봐!][싹 다
“바론 공작님? 지금 모두 빌붙지 못해 안달일 텐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이전에 감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시원하게 다 쏟아내.”여한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듣고 보니 좀 일리가 있네요. 제가 맨 처음 삭제한 세 개 스토리도 풀어주세요.”“...”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만 들렸다.몇 초 후, 여한영은 놀란 가슴을 달래며 숨을 들이마셨다.“이건 됐어. 너 정말 대담하구나. 아무 말이나 해! 끊을게. 심사하느라 바빠!”전화를 끊은 후 릴리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하나하나 심사한다고?정말 그렇게 대담한 줄 알았더니.그런데 정말 자기 편이라야 이렇게 꼼꼼하게 일을 처리한다...릴리는 정식 출근한 첫날 어쩔 수 없이 야근했다.어둠이 내리고, 그녀는 창가에 앉아 차가 줄지어 달리는 도로를 내려보면서 갑자기 감회가 새로웠다.‘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편하고 자유롭지는 않구나.’특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다.그녀는 기지개를 켠 후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와 가방을 들고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마디가 뚜렷한 손이 엘리베이터 문을 막았다.“잠깐만요.”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고 익숙한 키 큰 남자가 앞에 나타났다.릴리는 약간 의아해하며 입을 열었다.“켈슨 씨도 지금까지 있었어요?”“선임자가 남겨 놓은 문제가 많아서요. 최대한 빨리 일을 시작하려면 프로젝트를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부 문제도 해결해야 해요.”켈슨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 설명했다.“입사 첫날부터 야근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켈슨이 웃었다.“저는 직장인이잖아요. 회사에서 고액 연봉을 주고 저를 채용한 목적이 이런 걸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야근해야 밥벌이하죠.”릴리도 따라 웃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멈춰 섰다.릴리가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켈
“하균 씨, 무슨 일이에요?”“새로운 목표인가요?”신하균도 시선을 거두고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말하면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내 존재를 알게 될까 봐 그리 급하게 보냈어요?”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돼요?”켈슨과 아무 사이도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좋아서 쫓아다닐 생각이라고 해도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다.두 사람이 떳떳하지 못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다.“저를 무슨 일로 찾아왔어요? 별일 없으면 가볼게요.”릴리는 말하면서 차 키를 눌렀다.신하균은 잠시 침묵하더니 화제를 바꾸었다.“형부가 집에 밥 먹으러 오래요. 마침 제가 근처에 있으니 데리고 오라던데요.”“네?”육시준이 그렇게 한가하다고? 심지어 이 사람까지?“업무 계획에 관해 물어볼 게 있대요. 고한빈 건이 세부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위험할 수 있으니 데려다줄게요.”신하균은 그녀의 의문스러운 마음을 알아챈 듯 차가운 목소리로 설명했다.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이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신하균도 더 길게 말할 생각이 없는 듯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다시 집어넣고 차에서 내리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적막이 흐르는 차 안에서 릴리는 이것저것 오만가지 생각을 했지만 상대방이 계속 침묵을 지키니 그녀도 혼란하던 마음이 진정됐다.그녀는 머리를 차창에 기대고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천천히 머리를 비웠다.“켈슨 같은 사람을 좋아해요?”뜬금없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네?”“목소리가 듣기 좋고 잘생겼고 몸매도 완벽하고, 완전히 릴리 씨의 이상형이잖아요.”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한마디 덧붙였다.“젠틀해서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고.”“...”사실 처음에 알렉스가 이렇게 놀릴 때 그녀는 다
신하균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이전처럼 폭주하지 않았고 그녀가 상상한 것처럼 기회를 틈타 마음을 털어놓지도 않았다.그는 단지 가볍게 한마디 했다.“네, 조카딸이죠. 삼촌이라고 부르잖아요?”릴리는 이 아저씨가 오늘 저녁에 가짜 술이라도 마신 게 아닌지 의심했다.하던 대로 하지 않으니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주아언니는 신하균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그녀에게 피드백을 주려 한다고 했는데?그 피드백이 고백은 아니더라도 친척관계를 맺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차가 은하타운에 도착했다.릴리는 천천히 안전 벨트를 풀고 운적석의 남자를 보면서 눈알을 굴리다가 무심하게 물었다.“삼촌,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실래요?”“네, 내려요.”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릴리는 손해 본 것 같은데 화를 낼 수도 없었다.‘와! 이 아저씨가 미친 거 아니야? 그래, 정말 삼촌이 되고 싶다, 이거지?’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입씨름 소리가 들려왔다.“이 계집애가 들어오기만 해 봐.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 이게 다 뭐야? 어떻게 이런 걸 올릴 수 있어?”바론 공작의 목소리는 무시무시하고 불만으로 가득했다.하지만 강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왜 못 올리는데요? 아버지 위치에 영향이라도 있어요?”바론 공작은 딸이 이렇게 말하자 조금 누그러든 목소리로 설명했다.“나한테는 영향이 없지만 그 계집애한테 영향이 있잖아. 지금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삼고 있어.”“누가 웃음거리인데요? 릴리가요? 솔직담백하고 용감하고 책임지는 사람을 웃을 일이 뭐가 있어요?”“아니, 걔가 지금은 고성그룹 일원인데 이렇게 가문의 명예를 고려하지 않으니...”“목숨도 위태로운데 가문의 명예까지 고려해야 해요?”“그렇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 고정철이 이미 체포됐는데, 또 뭐가 불만이래?”“네, 아버지는 성홍주가 체포되니 만족스럽던가
“맞선다는 말은 좀 심하지만, 이 일로 말다툼이 일어난 건 확실히 문제 있어요. 결국 릴리가 그날 아버지에게 썼던 표현이 정확한 것 같네요.”“무슨 표현?”“이중잣대!”문밖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릴리가 스스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고치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뭘 고쳤는데요? 맨날 싸우고. 형부가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둘이 싸웠을 거잖아요?”“위아래도 없어? 누구한테 말해? 어른을 보고 인사도 안 해?”바론이 못마땅한 듯 흠부터 잡았다.릴리는 그와 다투지 않고 착하게 그의 말에 따라 인사했다.“아버지, 안녕하세요.”바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이분은...”“아, 이분은 제 삼촌이에요.”“...”공기가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신하균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돌아서서 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이 계집애가.’그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농담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릴리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뭐라고 반박하려 할 때 옆에서 협박의 뜻이 담긴, 차가운 시선이 날아왔다.“어른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마세요.”릴리는 말없이 입을 삐죽거렸다.‘아까는 자연스럽게 대답하지 않았어? 겁쟁이!’속으로는 비난했지만 겉으로는 더 이상 맞서지 않고, 계속해서 아버지 트집을 잡았다.“아버지, 이중잣대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또다시 그 화제로 돌아가자 바론은 잠시 침묵했다.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그 표현을 그런 맥락에서 썼으니 어쨌든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리고 후에 특별히 알아봤었다.“이중잣대는 분명 같은 일인데 자기 취향, 이익 등 요인 때문에 다르게 요구하는 것을 말해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비슷한 말인데 이해되세요? 말 그대로인데...”“됐어. 나도 알아. 누가 설명하래?”바론은 화가 나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릴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렸다.“아세요? 저는 또 몰라서 번번이 고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