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육시준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 들어 강미영을 차갑게 쳐다보았다.“작은이모 말씀이 맞으세요. 한집안 식구끼리 숨기는 거 있으면 안 되죠. 제가 비밀로 하면 안 되었어요.”강미영은 한숨을 내뱉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변했다.“내 뜻을 알아줘서 고마워...”“그런데 저는 예전에는 이런 도리를 모르고 계실 줄 알았어요.”“...”강미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표정이 확 변했다.병원에서 싸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 순간 역할이 바뀐 듯했다.속은 사람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하지만 속은 사람은 언제나 불공평하다고 느꼈다.강유리는 우두커니 육시준을 바라보았다.육시준은 바론 공작을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이 일은 릴리가 피해를 보지 않게 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죠. 속였던 건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아버님께 곧 귀국해야 하는 어려움을 떠안겨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이해되시겠어요?”아주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다.바론 공작은 이해가 안 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귀국할지 말지든 더 자세히 고민해봐야 했다.‘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일부러 안 알려줄 일은 아니잖아?’바론 공작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뻥긋하자 육시준이 먼저 물었다.“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강철우는 겪을 만큼 겪어본 나이라 그의 말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그는 바로 반응하면서 늘 그랬듯이 어영부영 넘어갔다.“그럼! 다 너의 아버님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모든 걸 이해하실 거야!”바론 공작이 강미영과 강유리에게 설명할 때도 은근슬쩍 바론의 편을 들어준 그였다.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때 강유리를 도와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애써 좋은 할아버지로 남고 싶었다.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하지만 누구라도 바론을 도와줬을 것이다.바론은 이해하지 못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이해는 하는데 우리를 속인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날
“어디 말씀해 보세요. 뭐가 다른지.”육시준은 여유가 가득한 모습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바론 공작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불쾌해 있던 강유리는 육시준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비록 육시준은 늘 강유리의 편이었지만 지난번에 싸울 때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둘만 있을 때 위로할 뿐이었다.어른을 상대로 따지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와서 보니 기회를 기다렸던 것이다...체면을 중히 여기는 바론 공작이 한동안 아무 말도 없자 강유리가 말했다.“그만해. 약자는 원래부터 알 권력이 없었어. 절대적인 공평이라는 것도 없었고.”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는 다 먹었어요. 오후에 회사에 나가봐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요.”“잠깐만!”바론 공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강유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바론 공작은 난처한지 머뭇거리다 그제야 입을 열었다.“난 너희를 약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처음부터 숨기려고 했던 것도 아니야. 확실히 잘못된 선택이라는 거 인정해. 너한테도 상처를 준 것 같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잘 반성하고 고치도록 할게.”강유리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녀는 고집이 센 아버지가 아무리 자신의 불만을 느꼈다고 해도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다.기껏 해 잘해줘봤자 선물이나 주고, 묵묵히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잘못을 만회할 줄 알았다.그런데...강유리는 놀란 나머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그저 간단히 대답하고는 뒤돌아 2층으로 올라갔다.주방은 조용했고 오직 릴리만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었다.그러면서 눈알을 굴리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쩝쩝거리지 않고 먹으면 안 돼? 먹다죽은 귀신이 붙었어? 밥상머리 예절을 어떻게 배운 거야!”바론 공작은 온갖 불만을 릴리에게 토해냈다.릴리는 밥 먹다가 욕먹을 줄 몰랐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강철우가 먼저 분노했다.“잘못했으면 잘못한 거지. 우리 손녀딸
“응.”이라는 대답은 뒤끝이 긴 것이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바론 공작은 릴리를 째려보고는 시선을 육시준에게 돌렸다.“나 여기서 잘 건데 방 좀 하나 내줘.”육시준이 머뭇거렸다.“유리가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며칠만 있으면 갈 거야. 내가 방해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난 네가 우리 딸한테 잘하는지 지켜봐야겠어! 난 무조건 여기서 지낼 것이니 알아서 유리를 설득해 봐.”바론 공작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육시준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말해볼게요.”바론 공작이 위엄있는 말투로 말했다.“꼭 설득시켜야 해. 실패는 없어.”...오후가 되었을 때, 도씨 가문은 물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육시준의 부모도 함께 찾아왔다.세 집안은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펼쳤다.다 같이 육경원이 참여한 정도를 말해보기로 했다.엄숙한 분위기 속에 가끔 강유리의 상태도 물어보곤 했다...할 일이 없는 릴리는 자신이 입원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고성 그룹에 답장 주지 않은 것으로 암묵적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 기회에 좀 쉬려고 했다.저녁 식사 후, 간단히 짐 정리를 하고 월계만으로 향했다.여름 저녁은 습하고 무더운 것이 정신이 안 났다.릴리는 긴 원피스를 입고 얼굴을 가리려고 모자를 꾹 눌러썼다.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층수를 누르고는 벽에 기대 잠깐 휴식했다.어제저녁 너무 긴장했다가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맥을 추지 못했다.강유리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기쁜 한편 쓸쓸하기도 했다.갑자기 생각해 보니 늘 혼자였던 것이다.어제저녁에는 어차피 살지도 못할 바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기로 했다.심지어 정말 죽어버리면 슬퍼할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몸을 일으키고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꽃다운 나이에 어마어마한 재산도 물려받을 수 있겠다. 거기다 서울 4대 명문가까지. 인생 승리자와 다름없잖아!’그녀는 집 앞에 도착해
릴리는 깜짝 놀란 나머지 뒤로 물러났다.다시 자세히 쳐다보니 방금 샤워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는 벌거숭이 상체에 반바지만 입고 있었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신하균을 몰래 쳐다본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자세히 쳐다본 적은 없었다.이 몸매... 이 복근...릴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왜 옷을 안 걸치고 있어요! 저는 이런데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고요!”아까는 너무 긴장해서 잘 보지 못해 다시 힐끔 쳐다보았다.‘옷을 입었을 때는 약해 보였는데 근육이 장난 아니네...’“남자가 밖에서 자신을 잘 보호해야죠! 이렇게 쉽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거란 말이에요.”릴리는 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진지하게 나무랐다.그녀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던 신하균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저는 밖이 아니라 제 집에 있는 건데요?”릴리는 고개를 홱 돌려 눈을 크게 뜨고 째려보았다.“신하균 씨!”“왜요?”“왜 그렇게 염치가 없어요? 제 집이 왜 신하균 씨 집이 된 거예요? 아무리 제가 전에 신하균 씨한테 호감이 있었다고 해도 저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되죠! 그리고 그것도 옛날 일이라 지금은 다르다고요! 계속 이러는 거... 염치없는 짓이에요!”“...”릴리는 화가 나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거기다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분명 부끄러우면서 일부러 괜찮은 척 남을 가르치다니...신하균은 벽에 기대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말했다.“방 번호부터 확인해 보실래요?”릴리는 멈칫하면서 고개를 쳐들었다.“여긴 한 층에 한 가구만 있어 저희가 이웃일 일도 없어요. 같은 동일 수는 있겠는데 같은 층 이웃일 리는 없겠죠?”“...”릴리는 고개를 쳐든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집은 분명 14층인데 왜 13층에서 내린 거지?’신하균은 뻘쭘한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
“잠깐만요.”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자 릴리는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취소하고 고개 돌려 그를 보고 얘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신하균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불쾌한 말들은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기분 안 좋아요?”“하균 씨라면 금방 납치됐다가 풀려났는데 기분 좋겠어요? 트라우마가 안 생기겠어요?”릴리는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의 문에 기대있었다.“...”새벽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릴리를 보호하라는 명분으로 보낸 자신의 부하에게 일부러 물었었다. 수다쟁이인 그 부하는 신하균이 한마디 묻자 그때의 상황을 빠짐없이 다 말했다. 그 부하는 말하면서도 점점 흥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때까지 이 정도로 반전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금까지도 연약한 모습으로 있다가 바로 포위를 뚫는 작은 맹수처럼 돌변하였다. 녹이 슨 무딘 칼로 그녀는 최대의 공격치를 끌어냈고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겁먹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얕보는 것을 역이용하여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 빠르고 정확하고 잔인하게 반격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고 군더더기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그렇게 열세에 놓였다면 그 정도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못 내렸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다 듣고 난 신하균은 놀랍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소홀하지 않고 그녀가 고우신을 따라가게 두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이런 것들을 홀로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신하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트라우마 생기죠.”릴리는 눈을 깜빡이며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하균 씨 납치된 적 있어요?”신하균은 릴리를 보면서 말했다.“릴리 씨, 너무 이상한 쪽에 관심을 두는 거 아니에요?”“...”‘이상한 건가?’“식사했어요? 안 했으면 같이 할래요?”신하균은 다시 대화를 시도하며 화제를 돌렸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지금 나랑 데
‘이 남자 건망증이 있는 거 아니야? 지금 뭐라는 거야, 분명히 자기가 먼저 오라고 했으면서!’“중식을 주문할 거예요. 생선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매운 게 좋아요, 안 매운 게 좋아요?”신하균은 자연스레 식사했다는 그녀의 말을 건너뛰고 휴대폰을 보면서 또 물었다. 그를 보는 릴리의 시선이 더 미묘해졌다.“누구한테 들었어요?”신하균의 손가락이 살짝 멈칫하더니 그 자세 그대로 눈을 치켜뜨면서 그녀를 보았다. 깊은 눈동자는 시커멨고 그녀가 알수 없는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었다.“매운 거요! 매울수록 좋아요!”릴리가 대답했다.“날씨가 더운데 매운 거 많이 먹으면 탈 나요.”“...”릴리는 매운 걸 먹기도 전에 화끈거리는 느낌을 느꼈다. 쓸데없이 그의 말에 대답했고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쪼르르 그를 따라 들어왔다. 아마도 자신이 시끌벅적한 은하타운에서 나와 쓸쓸한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게 그에게는 불쌍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배달을 기다리면서 신하균은 과일을 깎으러 갔고 릴리는 1인용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은 많이 움직이지 않았고 시선은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마도 어떤 소식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신하균은 시선을 내려서 그녀를 보았다. 눈앞의 이 여자는 몸매가 아담하고 팔다리도 가녀린데 이렇게 연약한 여자가 부하의 얘기 속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마워요. 거기 두세요.”고개를 든 릴리는 그의 손에 들린 접시를 보고 친절하게 말했다. 신하균은 허리를 숙여 접시를 그녀의 앞에 놓았다. 소파에 책상다리하고 앉아있다가 살짝 움직이자 릴리의 치마가 살짝 위로 들렸다. 살짝 굳어진 신하균의 시선이 그녀의 오른쪽 무릎과 종아리에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멍이 크게 들어있었는데 매끄러운 종아리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그의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무른 탓인지 릴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다가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 아래로 숙였다. 이를 눈치챈 릴리는 아무렇지 않게 치마를 정리하면서 무릎에 난 멍을 가렸다.“저기요, 그렇게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넋이 나간 사이에 신하균은 그녀의 손을 내리고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갔을 때 마침 무릎과 종아리의 멍이 드러났고 어색한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신하균은 그녀의 종아리를 들어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고 약상자에서 약을 꺼냈다. 이 행동 때문에 릴리는 뒤로 살짝 넘어가 소파에 기대게 되었고 작은 손은 반사적으로 치마를 꼭 잡았다. 신하균은 릴리의 작은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약을 손바닥에 부어 살짝 문지른 후 조심스럽게 그녀의 무릎에 천천히 펴 발랐다.손바닥이 닿는 순간, 릴리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스읍!”“많이 아파요?”“당연히 아프죠! 상처가 났는데 안 아플 리가 있겠어요?”“그런데도 아까 별일 아니라고요?”“...”릴리는 아파서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 이 남자는 다 괜찮은데 유독 저 입이 문제였다. 신하균은 그녀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멍이 든 자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무릎에서부터 종아리까지 멍이 든 곳은 빠짐없이 다 문질렀다. 릴리는 종아리의 상처에 고통이 느껴지던 때로부터 뜨거운 느낌이 드는 걸 느끼면서 마음속에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다리를 빼내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세요. 잘 문질러야 내일 멍이 없어져요.”낮은 음성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였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문지르지 않아도 며칠 지나면 없어져요.”릴리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하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어젯밤에 얘기를 안 한 거예요?”릴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아니에요.”어젯밤에는 완전 긴장을 풀고 있었고 그녀한테는 전체 계획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였다. 몸에 느껴지는 이깟 아픔 따위는 진작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건 어젯밤에 신하균이 차에서 릴리의 손에 난 작은 상처들에 약을 발라줬을 때,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던 그녀가 사실은 아주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신하균은 이 일에 대해 더 얘기하지 않고 그녀의 상처를 문지르며 물었다.“또 어디 다쳤어요?”릴리가 고개를 저었다.“없어요.”신하균은 말없이 조용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깊은 두 눈동자에 검은 기운이 몰려있어 그녀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릴리는 자신을 쳐다보는 신하균에 어색해져서 불쑥 말을 꺼냈다.“진짜 없어요! 내가 옷이라도 벗어서 확인시켜줘요?”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거실에는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바닥에 한쪽 무릎만 꿇고 허리를 곧게 편 채 팔뚝의 근육 라인이 딱딱하게 갈라진 남자, 소파에 기대 가늘고 긴 다리를 남자의 팔에 올려놓은 채로 얼굴이 붉어지고 치마가 흐트러진 여자, 이 장면에 방금 그 멘트를 더하면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딱 좋았다...릴리는 이 분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다리를 빼냈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뭐라 말하려 했는데 신하균이 먼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릴리 씨만 동의한다면 안 될 것도 없죠.”릴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면서 두 손을 가슴 앞에 천천히 교차하여 방어하는 자세로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신하균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 채로 담담하게 릴리를 보고 있었다. 릴리를 훑어보는 그 눈빛은 정말로 옷을 벗기려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아니에요. 정말 더 다친 곳이 없어요! 무릎에 있는 건 상처도 아니에요. 어제는 그저 살짝 통증만 느껴지고 멍도 안 들었다가 오늘에야 나타난 거예요.”“...”이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에 릴리가 잠식될 때쯤, 현관문의 벨 소리가 울렸다. 릴리는 번뜩 고개를 돌려서 구세주라도 만난 듯 소리쳤다.“배달이 도착했어요!”신하균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보더니 현관으로 갔다. 릴리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고 자신을 질타하면서...신하균은 말을 괘씸하게 한다거나 남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호감을 느끼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