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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배준우는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마치 그 말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손에서 땀이 났다.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안지영에게 더 이상의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녀가 온몸에 힘이 다 풀려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배준우가 입을 열었다.

“무슨 알바지?”

“일러스트레이터요.”

“그림?”

배준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벽화 그리는 일이에요.”

회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대로 넘어가 주는 걸까?

배준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더니 차갑게 물었다.

“월급이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남자에게서 풍기는 냉기를 느낀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둘게요.”

입사할 때, 회사 인사부에서 명확히 안 된다고 했던 사항이었다.

아마 산업 스파이나 경쟁 업체에서 의도적으로 직원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해서였을 것이다.

한바탕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배준우는 의외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알았어, 나가 봐.”

고은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미 노트북에 시선을 돌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고은영은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배준우가 그날 밤 그녀의 알리바이를 꼬치꼬치 캐물었더라면 아마 그녀는 오늘 무사히 사무실을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은영은 창백한 얼굴로 안지영을 찾아갔다.

안지영은 그녀를 이끌고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30분이면 끝난다며? 왜 문자했는데 답장을 안 해?”

문자 이야기가 나오자 고은영은 다시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녀가 말이 없자 안지영은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안색은 또 왜 그래?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오늘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질문을 벌써 두 번이나 들었다.

아픈 게 아니라 너 때문에 간 떨어질 뻔했다고!

“그럼 도대체 왜 그래? 얼굴이 백지장 같아!”

“놀라서 그래!”

“왜 놀라?”

안지영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계약서 수정한다더니 놀랄 일이 뭐가 있을까?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 안지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대표님이….”

고은영은 순식간에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지영이 다급히 물었다.

“설마 눈치채신 거야?”

고은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보낸 문자 대표님이 봤어!”

안지영은 자신이 보낸 문자 내용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순간 차 안에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안지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은 뭐래?”

고은영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그날 밤 그 여자를 계속 찾고 있었어.”

안지영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

고은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앞으로 나 일하고 있을 때 급한 일이면 그냥 전화로 해.”

오늘 본 문자를 생각하면 누가 봐도 수상한 내용이었다.

이런 일이 몇번 더 있었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안지영도 미안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문자 안 할게.”

그런데 배 대표는 눈치 못 챈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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