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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송언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9-26 17:36:04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배준우는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마치 그 말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손에서 땀이 났다.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안지영에게 더 이상의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녀가 온몸에 힘이 다 풀려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배준우가 입을 열었다.

“무슨 알바지?”

“일러스트레이터요.”

“그림?”

배준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벽화 그리는 일이에요.”

회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대로 넘어가 주는 걸까?

배준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더니 차갑게 물었다.

“월급이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남자에게서 풍기는 냉기를 느낀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둘게요.”

입사할 때, 회사 인사부에서 명확히 안 된다고 했던 사항이었다.

아마 산업 스파이나 경쟁 업체에서 의도적으로 직원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해서였을 것이다.

한바탕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배준우는 의외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알았어, 나가 봐.”

고은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미 노트북에 시선을 돌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고은영은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배준우가 그날 밤 그녀의 알리바이를 꼬치꼬치 캐물었더라면 아마 그녀는 오늘 무사히 사무실을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은영은 창백한 얼굴로 안지영을 찾아갔다.

안지영은 그녀를 이끌고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30분이면 끝난다며? 왜 문자했는데 답장을 안 해?”

문자 이야기가 나오자 고은영은 다시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녀가 말이 없자 안지영은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안색은 또 왜 그래?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오늘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질문을 벌써 두 번이나 들었다.

아픈 게 아니라 너 때문에 간 떨어질 뻔했다고!

“그럼 도대체 왜 그래? 얼굴이 백지장 같아!”

“놀라서 그래!”

“왜 놀라?”

안지영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계약서 수정한다더니 놀랄 일이 뭐가 있을까?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 안지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대표님이….”

고은영은 순식간에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지영이 다급히 물었다.

“설마 눈치채신 거야?”

고은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보낸 문자 대표님이 봤어!”

안지영은 자신이 보낸 문자 내용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순간 차 안에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안지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은 뭐래?”

고은영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그날 밤 그 여자를 계속 찾고 있었어.”

안지영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

고은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앞으로 나 일하고 있을 때 급한 일이면 그냥 전화로 해.”

오늘 본 문자를 생각하면 누가 봐도 수상한 내용이었다.

이런 일이 몇번 더 있었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안지영도 미안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문자 안 할게.”

그런데 배 대표는 눈치 못 챈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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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7화

    한편, 하늘 그룹에서는 안지영이 진이훈을 차단한 후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안지영의 세계는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나오자 비서부의 작은 비서가 다가왔다. “안 대표님, 접대실에 하주원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하주원?”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머릿속에서 그녀와 관련된 사람을 검색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서가 말했다. “나 회장님의 여동생의 딸입니다.” “나태웅의 사촌?” “네, 맞습니다.” ‘이런!’ 그제야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언제나 따라왔다. 안지영은 머리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금발의 긴 파마머리로 화려하게 꾸민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본래의 단아함을 가리고 풍만한 매력을 풍기며 섹시한 기운을 뽐냈다. 특히 짧은 청바지와 상의가 안지영의 머릿속에 두 글자를 떠오르게 했다. ‘불량소녀!’ 안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나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지만 그 순간 하주원의 화려한 화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린 아이섀도와 은색이 박힌 네일이 그녀에게서 여유보다는 떠도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주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안지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안지영 씨?” 하주원은 적대적인 어조로 물었다. 안지영은 그녀가 왜 왔는지 감을 잡았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를 찾으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나요?” 하주원은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대화는 금세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주원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안지영에게 다가갔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6화

    “안지영 씨가 오면 분명히 대표님을 때릴 거예요!” ‘때린다’는 말을 진이훈은 아주 세게 강조했다. 나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진이훈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보스가 정말 아픈 거였다. 병이 심각해 보였고 이런 상태로 가면 안지영까지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파서 안지영 씨까지 미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진이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태웅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아리 박사님이 이미 왔어요. 큰 도련님께서 의사와 협력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어요.”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이훈을 노려보았다. 진이훈은 그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말했다. “몸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진이훈도 답답했다. 나태웅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결국 나태웅과 함께 병원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니. 나태웅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는 마음속으로 더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웅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며 진이훈은 다시 물었다. “그럼 안지영 씨가 여전히 안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유골함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 돼.” ‘유골함을 열다니! 안지영 씨에게 유골함을 보여준다고?’ 나태웅이 그런 말을 하자 진이훈은 급히 인터넷에서 유골함을 열어본 사진을 찾았다. 그가 캠퍼스를 떠나 처음 일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지만 지금은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하다니. 안지영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서둘러 그 사진을 안지영에게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고 떴을 때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안지영 씨가 저를 차단했어요. 이제 귀찮아서 오지 않을 거예요.” 진이훈은 힘없이 말했다. 나태웅은 책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5화

    안열은 처음엔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안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태웅이 말하길 제가 아침에 음식을 가져가지 않으면 화장 증명서를 받게 될 거라던데 지금 아침 시간이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났잖아요?” ‘한 시간 만에 죽었다고? 화장 증명서까지 나왔다고?’ 안지영은 결국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 나태웅, 진짜 못돼 먹었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도덕적으로 옭아매려고 하다니.’ 안지영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열은 뒤늦게 납득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럼 결국 장난친 거잖아요?” “화장 증명서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어요.” “설령 진짜 죽었다고 해도 병원에서 절차를 다 마쳐야 화장터로 갈 수 있잖아요.” 안지영은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 충격에 휩싸여 허둥대던 그녀는 이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바로 나태웅을 정말 죽여버려도 돼요?” 안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나태웅 이 자식, 미친 거 아니에요?” 안지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정신과 의사도 예약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이 진심으로 죽으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지영은 안열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초조해했죠?”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그걸 내가 잘못 볼 리가 있냐고?’ 아까 안열이 보였던 반응은 분명 초조함이었다. 안열은 더 이상 안지영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나태웅을 찾아가 따질 생각뿐이었다. 안열은 안지영의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회의하러 가세요.” “그럼 안열 씨는요?” “저는 마음을 좀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해요!” 안지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다니,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 나태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너무 지쳤다. 회의실로 올라간 안지영은 이제 겨우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4화

    ‘진짜 너무 악랄해.’ 진이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 보스가 안지영 씨에게 얼마나 진심인데 그 마음을 완전히 짓밟아버렸어.’ 그는 나태웅의 손을 꼭 붙잡으며 혹시라도 그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훈의 끝없는 잔소리에 나태웅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러나 진이훈은 더 꽉 붙들며 간절하게 말했다. “우린 안지영 씨 생각하지 말자고요, 네?” 심지어 말 끝에 ‘말 잘 들어요’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나태웅의 눈빛이 점점 더 위험해지더니 낮게 물었다. “우리?” ‘뭐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잠시 멍해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우리가 아니라 대표님이 안지영 씨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이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으면 말조차도 안지영 씨와 관련되면 불편한 거야?’ “손 놔.” 진이훈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으며 강하게 말했다. “안지영 씨는 별로예요. 게다가 지금은 장선명 씨와 이미 사귄다는 소문도 있잖아요. 그런 여자를 정말 원하시겠어요?” “내가 손 놓으라고 했지.” 나태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힘을 주어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진이훈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웠다. 진이훈은 나태웅의 그 눈빛에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나태웅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안지영을 헐뜯어봐.” ‘이제 안지영 씨에 대해 나쁜 말도 못 하게 해?’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여자한테 얼마나 깊이 빠진 거야... 병이 이렇게 심한데도 안지영 씨를 지키려 하다니.’ 한편, 안지영은 진이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곧바로 메시지 창에서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 시도했지만 나태웅 쪽에서 받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지며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3화

    안지영이 여전히 나태웅을 미친놈, 변태라고 욕하는 걸 보며 장선명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고 물었다. “그럼 돈을 나태웅에게 주면 이 일은 끝나는 거예요?” 안지영은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마도요?” 만약 이걸로도 끝나지 않는다면 정말 나태웅의 머리를 깨서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건 제가 처리할게요.” “뭘 하려고요?” 안지영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한 상태였지만 장선명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말하자 즉시 조용해졌다. ‘선명 씨가 처리한다고? 항상 유흥가를 드나들던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거지?’ 그녀는 이 순간 깨달았다. 장선명과 나태웅은 원래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이 둘이 얽히게 되었고 나태웅은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집요한 수법을 쓰는 반면 장선명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왠지 모르게 건달 같은 느낌이 있었다. ‘건달 대 신경질적인 사람? 이 조합은 대체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까?’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모른 채 장선명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하겠어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게 가장 좋은 거죠.” ‘아니, 뭐야 이 사람...’ 다음 날 아침. 나태웅은 병원에서 안지영이 만두와 인절미를 들고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고 대신 그의 은행 계좌에는 무려 600억이 입금되었다. 하지만 돈을 보낸 계좌는 안지영이 아니라 장선명의 것이었다. 이 돈을 확인한 나태웅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그 순간, 아침 식사를 들고 들어오던 진이훈이 그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 대표님, 진정하세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만 하시면 돼요!” 원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진이훈의 그 말에 더 화가 치밀었다. 이를 악물고 물었다. “안지영은 안 왔나?” “네, 안 왔어요. 왜요? 안지영 씨가 오늘 온다고 했나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2화

    ‘손자가 한심하다고 할아버지가 나서서 사람까지 뺏으려 한다고? 이게 과연 체면이 서는 행동인가?’ 이 생각에 장선명은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안지영이 들어왔을 때 그는 마침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장선명은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네, 나태범 쪽에서 지영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때가 되면 할아버지가 나서 주셔야 해요!” 평소에 절대 어른들을 끌어들이지 않던 장선명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는 즉각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선명의 할아버지는 안지영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므로 이 말을 듣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나씨 가문 둘째 녀석이 정말로 지영이 때문에 자살 소동을 벌였단 말이냐?” “그럼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먼저 지영이와 연애를 시작했거든요.” “야, 이놈아. 네가 언제 이렇게 도덕 따지는 놈이었냐?” 심지어 먼저 사귀었다고 설명까지 덧붙이다니. 그의 할아버지조차 손자의 변명이 웃길 따름이었다. “아무튼요. 상황을 미리 알려드렸으니 종대 아저씨에게 나씨 가문 쪽 상황을 살펴보라고 해 주세요.” “알겠다!” 한편, 옆에서 이 전화를 듣고 있던 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그녀는 황당함을 느꼈다. 결국 나태범이 나태웅 때문에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 가족 제정신인가? 나태웅이 나를 협박했던 것도 모자라 이제 할아버지까지 협박에 나선다고? 힘으로 어린 사람을 억누르겠다는 건가? 내가 보호받을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잠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만약 안진섭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 상황에서도 안지영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안열이 말했듯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착하고 온화했으니까. 장선명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안지영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가가 물었다. “언제 왔어요? 다 들은 거예요?” 안지영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1화

    배준우는 조용히 장선명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가 한 말은 생생하게 상황을 묘사했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나태범이 화가 나서 이 일에 개입한다면 장선명은 진짜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선명이 더 기막힌 소리를 했다. “진짜 그렇게 된다면 나도 우리 집 어른을 불러야지!” 마치 누구네 집에만 어른이 있는 건 아니라는 태도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장선명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저도 할아버지를 부르죠.” 나태웅이 할아버지를 부르면 자기는 할아버지를 불러 대결 구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배준우는 고개를 감싸 쥐며 말했다. “너 아직도 이 상황이 충분히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장선명의 할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배준우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도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면 이 일은 완전히 우스갯소리가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런 소동은 나태웅이 자살 소동을 벌였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게 뻔했다. “그쪽이 먼저 일을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 나랑 지영이는 곧 결혼할 사이인데요.”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배준우는 다시금 이 일이 얼마나 촉박한 상황인지 깨달았다. 장선명과 안지영의 결혼식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태웅 쪽 상황을 보면 그 결혼식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이미 그는 이 일로 정신적 문제가 생겼고 만약 결혼식을 본다면 그의 상태는 더 나빠질 게 뻔했다. 배준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결국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혼식 날짜를 조금만 미룰 수는 없겠니?” 장선명은 바로 반발하며 말했다. “왜 미뤄야 하죠? 형님, 설마...” “나태웅은 지금 심리 치료를 받고 있어. 네가 결혼하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니?” 장선명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형님, 성인군자라도 되려는 거예요?” “뭐라고?” 배준우의 얼굴이 단번에 검게 변했다. “아니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0화

    스스로 병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의사를 대면할 때 거부 반응이 덜하다. 배준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너도 참...” 원래는 나태웅에게 몇 마디 더 하려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고은영의 얼굴이었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나태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나태웅을 안심시키려는 배준우의 독백에 가까웠다. 나태웅은 무기력해 보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건 정말 모든 걸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병이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배준우는 병원을 떠났다. 병원에서 나온 배준우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먼저 장선명을 찾아갔다. 장선명은 배준우가 근무 시간에 자신을 찾아온 걸 보고 놀라며 말했다. “형, 웬일이에요? 근무를 빼먹다니!” 배준우가 얼마나 일에 철저한지 강성은 물론이고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근무 시간 중에는 그 누구도 그를 밖으로 불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근무 중임에도 장선명을 찾아온 것이다. 배준우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말이 많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어.” 장선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업 관련된 일이에요?” 중요한 일이라면 사업 관련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배준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태웅 때문이야. 너 알고 있어? 걔 죽을 뻔했어.” 이 말에 장선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형도 소문을 믿는 거예요?” 사실 나태웅의 손목 부상은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나태웅도 자신의 부상이 안지영 때문이라고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강성에서는 이 일이 마치 사랑에 상처받아 생긴 일이라는 소문으로 부풀려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이제 배준우의 입에서 더 과장된 형태로 나왔다. 죽을 뻔했다는 말은 거의 나태웅이 안지영과 장선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로 들렸다. 장선명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말했다. “형이 이런 일까지 신경 쓰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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