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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작가: 송언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9-26 17:36:04
지금으로서는 그 직원이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태웅은 뭘 알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고은영은 그가 무슨 생각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태웅은 담배 재를 털며 다시 물었다.

“대표님이 방에서 발견했다면서 팬던트 하나 주지 않았어? 그거 지금 어디 있어?”

팬던트?

그건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주신 유품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고은영은 항상 그걸 목에 걸고 다녔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서랍에 깊이 보관하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고은영은 손에 땀을 쥐고 대답했다.

“예전 투숙객이 두고 간 거라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어디 버렸는데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녀는 안내데스크에 맡겼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배준우가 지금도 그 여자를 찾고 있는데 호텔에 맡겼다고 하면 바로 그쪽으로 연락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태웅의 말은 가히 청천벽력이었다.

“그럼 수고스럽지만 잘 찾아봐. 그거 진짜 중요한 물건이야!”

고은영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착각인지는 모르나, 나태웅은 지금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날카로웠다.

배준우에 준하는 압박감에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슨 정신으로 그의 사무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애써 정신을 추스르려고 했지만 자신을 심문하듯이 빤히 바라보던 나태웅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나태웅의 태도로 보아 배준우는 그날 밤 그 여자를 무조건 색출해 내려고 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안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영아, 우리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안지영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우리가 아니라 너야. 나까지 엮지 마.]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안지영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잠시 후, 안지영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명심해. 그날 밤 그 일과 너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이것만 기억하면 돼. 그리고 이 문자는 보고 바로 삭제해.]

고은영은 한숨이 나왔다.

그날 그녀는 애써 업무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멘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똥 씹은 표정을 한 배준우가 회의실에서 나와서야 고은영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대표님, 재무제표는 책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배준우는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고은영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기 싫어서 바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호출을 받은 재무부 부장이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고 안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한바탕 욕설이 울려퍼졌다.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꽉 닫힌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재무 부장의 처지도 안쓰러웠지만 지금은 자신이 더 안쓰러웠다.

잠시 후, 재무 부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밖으로 나왔다. 고은영은 곧바로 시선을 돌려 일에 집중했다.

그녀에게 다가온 재무 부장이 말했다.

“고 비서님, 대표님이 들어오라고 하시네요.”

“네, 알겠습니다.”

고은영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삭막했다.

고은영은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물었다.

“찾으셨어요, 대표님?”

“나 실장이 따로 불렀다면서?”

고은영은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날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했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제 끝인 건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조금 전에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앞으로 고 비서는 나 실장이랑 협조해서 그날 밤 일에 대해 낱낱이 조사해. 나 실장 옆에서 일도 좀 배우고.”

고은영은 정신이 아찔했다.

도대체 뭘 배우라는 건가? 그냥 지금 자백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바라보았다.

뭘 알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배준우 성격에 범인을 알았으면 진작 그녀를 내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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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70화

    진이훈은 왕 비서가 장선명에게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안지영의 회사는 분명 장선명을 사위로 인정한 모양이다.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이훈은 나태웅이 얼마나 억울할지 마음이 아팠다. 이 기간 동안 나태웅은 무엇을 했던 걸까? 장선명은 비밀스럽게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안지영과 하주원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주원은 나태웅이 오자 억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왔네, 사촌 오빠! 이 여자가 나를 죽여버릴 뻔했어!”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비웃고 싶었다. ‘이 여자가 먼저 고자질이라니!’ 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았다. ‘저 눈빛은 뭐지? 내가 하주원에게 손을 댔다고 저러나? 나태웅은 진짜로 하주원의 말을 믿는 건가?’ 하주원은 여전히 울면서 말했다. 안지영은 장선명을 보자 화가 올라와 자신도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왔네요. 저 짐승이 갑자기 쳐들어 오더니 날 때리고 할퀴었다니까요.” ‘고자질? 누군 못하는 줄 알고?’ 그녀들은 마치 학교에서 싸운 초등학생 같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 부모님을 불러오는 초등학생 말이다. 나태웅은 안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선명에게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주원은 계속해서 울며 얘기했다. “정말 너무 잔인했어! 내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갔어!” 안지영도 대꾸했다. “제 얼굴도 할퀴어서 흉터 생긴 것 같아요!” 진이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선명의 비서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아가씨들이 이렇게 서로 고발하는 걸 보니 혹시 두 대표가 직접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태웅의 기운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위험해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9화

    안열은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이전에 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의식을 잃었을 때 회사는 안팎으로 위기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안진섭의 결혼식 때는 하늘 그룹을 삼키려 했다. 그때도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왕 비서가 말했다. “하주원이라는 여자와 싸웠습니다.” “하주원, 그게 누구예요?” 안열은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하주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 비서는 조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고 보니 그 여자가 바로 나태웅의 사촌 여동생이라니, 안열은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안 대표님 다치지 않게 해요. 제가 바로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안열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태웅이 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열이 돌아보았을 때 나태웅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는 나태웅이 안열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던 차였는데 상황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안열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 대표님, 이제 당신은 제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셔야겠죠? 왜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 안 대표님에게 손을 댔죠?” 그런데 나태웅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병원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안열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는 해명을 해줘야 할 차례 아닐까? 그런데 딱 이 시점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버리다니. 대체 이 사람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그때 진이훈이 뒤따라 나섰다. 안열이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8화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7화

    한편, 하늘 그룹에서는 안지영이 진이훈을 차단한 후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안지영의 세계는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나오자 비서부의 작은 비서가 다가왔다. “안 대표님, 접대실에 하주원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하주원?”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머릿속에서 그녀와 관련된 사람을 검색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서가 말했다. “나 회장님의 여동생의 딸입니다.” “나태웅의 사촌?” “네, 맞습니다.” ‘이런!’ 그제야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언제나 따라왔다. 안지영은 머리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금발의 긴 파마머리로 화려하게 꾸민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본래의 단아함을 가리고 풍만한 매력을 풍기며 섹시한 기운을 뽐냈다. 특히 짧은 청바지와 상의가 안지영의 머릿속에 두 글자를 떠오르게 했다. ‘불량소녀!’ 안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나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지만 그 순간 하주원의 화려한 화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린 아이섀도와 은색이 박힌 네일이 그녀에게서 여유보다는 떠도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주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안지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안지영 씨?” 하주원은 적대적인 어조로 물었다. 안지영은 그녀가 왜 왔는지 감을 잡았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를 찾으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나요?” 하주원은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대화는 금세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주원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안지영에게 다가갔다.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6화

    “안지영 씨가 오면 분명히 대표님을 때릴 거예요!” ‘때린다’는 말을 진이훈은 아주 세게 강조했다. 나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진이훈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보스가 정말 아픈 거였다. 병이 심각해 보였고 이런 상태로 가면 안지영까지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파서 안지영 씨까지 미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진이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태웅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아리 박사님이 이미 왔어요. 큰 도련님께서 의사와 협력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어요.”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이훈을 노려보았다. 진이훈은 그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말했다. “몸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진이훈도 답답했다. 나태웅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결국 나태웅과 함께 병원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니. 나태웅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는 마음속으로 더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웅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며 진이훈은 다시 물었다. “그럼 안지영 씨가 여전히 안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유골함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 돼.” ‘유골함을 열다니! 안지영 씨에게 유골함을 보여준다고?’ 나태웅이 그런 말을 하자 진이훈은 급히 인터넷에서 유골함을 열어본 사진을 찾았다. 그가 캠퍼스를 떠나 처음 일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지만 지금은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하다니. 안지영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서둘러 그 사진을 안지영에게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고 떴을 때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안지영 씨가 저를 차단했어요. 이제 귀찮아서 오지 않을 거예요.” 진이훈은 힘없이 말했다. 나태웅은 책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5화

    안열은 처음엔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안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태웅이 말하길 제가 아침에 음식을 가져가지 않으면 화장 증명서를 받게 될 거라던데 지금 아침 시간이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났잖아요?” ‘한 시간 만에 죽었다고? 화장 증명서까지 나왔다고?’ 안지영은 결국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 나태웅, 진짜 못돼 먹었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도덕적으로 옭아매려고 하다니.’ 안지영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열은 뒤늦게 납득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럼 결국 장난친 거잖아요?” “화장 증명서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어요.” “설령 진짜 죽었다고 해도 병원에서 절차를 다 마쳐야 화장터로 갈 수 있잖아요.” 안지영은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 충격에 휩싸여 허둥대던 그녀는 이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바로 나태웅을 정말 죽여버려도 돼요?” 안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나태웅 이 자식, 미친 거 아니에요?” 안지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정신과 의사도 예약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이 진심으로 죽으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지영은 안열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초조해했죠?”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그걸 내가 잘못 볼 리가 있냐고?’ 아까 안열이 보였던 반응은 분명 초조함이었다. 안열은 더 이상 안지영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나태웅을 찾아가 따질 생각뿐이었다. 안열은 안지영의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회의하러 가세요.” “그럼 안열 씨는요?” “저는 마음을 좀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해요!” 안지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다니,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 나태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너무 지쳤다. 회의실로 올라간 안지영은 이제 겨우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4화

    ‘진짜 너무 악랄해.’ 진이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 보스가 안지영 씨에게 얼마나 진심인데 그 마음을 완전히 짓밟아버렸어.’ 그는 나태웅의 손을 꼭 붙잡으며 혹시라도 그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훈의 끝없는 잔소리에 나태웅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러나 진이훈은 더 꽉 붙들며 간절하게 말했다. “우린 안지영 씨 생각하지 말자고요, 네?” 심지어 말 끝에 ‘말 잘 들어요’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나태웅의 눈빛이 점점 더 위험해지더니 낮게 물었다. “우리?” ‘뭐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잠시 멍해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우리가 아니라 대표님이 안지영 씨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이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으면 말조차도 안지영 씨와 관련되면 불편한 거야?’ “손 놔.” 진이훈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으며 강하게 말했다. “안지영 씨는 별로예요. 게다가 지금은 장선명 씨와 이미 사귄다는 소문도 있잖아요. 그런 여자를 정말 원하시겠어요?” “내가 손 놓으라고 했지.” 나태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힘을 주어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진이훈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웠다. 진이훈은 나태웅의 그 눈빛에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나태웅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안지영을 헐뜯어봐.” ‘이제 안지영 씨에 대해 나쁜 말도 못 하게 해?’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여자한테 얼마나 깊이 빠진 거야... 병이 이렇게 심한데도 안지영 씨를 지키려 하다니.’ 한편, 안지영은 진이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곧바로 메시지 창에서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 시도했지만 나태웅 쪽에서 받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지며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3화

    안지영이 여전히 나태웅을 미친놈, 변태라고 욕하는 걸 보며 장선명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고 물었다. “그럼 돈을 나태웅에게 주면 이 일은 끝나는 거예요?” 안지영은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마도요?” 만약 이걸로도 끝나지 않는다면 정말 나태웅의 머리를 깨서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건 제가 처리할게요.” “뭘 하려고요?” 안지영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한 상태였지만 장선명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말하자 즉시 조용해졌다. ‘선명 씨가 처리한다고? 항상 유흥가를 드나들던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거지?’ 그녀는 이 순간 깨달았다. 장선명과 나태웅은 원래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이 둘이 얽히게 되었고 나태웅은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집요한 수법을 쓰는 반면 장선명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왠지 모르게 건달 같은 느낌이 있었다. ‘건달 대 신경질적인 사람? 이 조합은 대체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까?’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모른 채 장선명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하겠어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게 가장 좋은 거죠.” ‘아니, 뭐야 이 사람...’ 다음 날 아침. 나태웅은 병원에서 안지영이 만두와 인절미를 들고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고 대신 그의 은행 계좌에는 무려 600억이 입금되었다. 하지만 돈을 보낸 계좌는 안지영이 아니라 장선명의 것이었다. 이 돈을 확인한 나태웅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그 순간, 아침 식사를 들고 들어오던 진이훈이 그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 대표님, 진정하세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만 하시면 돼요!” 원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진이훈의 그 말에 더 화가 치밀었다. 이를 악물고 물었다. “안지영은 안 왔나?” “네, 안 왔어요. 왜요? 안지영 씨가 오늘 온다고 했나

  •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제1162화

    ‘손자가 한심하다고 할아버지가 나서서 사람까지 뺏으려 한다고? 이게 과연 체면이 서는 행동인가?’ 이 생각에 장선명은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안지영이 들어왔을 때 그는 마침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장선명은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네, 나태범 쪽에서 지영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때가 되면 할아버지가 나서 주셔야 해요!” 평소에 절대 어른들을 끌어들이지 않던 장선명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는 즉각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선명의 할아버지는 안지영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므로 이 말을 듣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나씨 가문 둘째 녀석이 정말로 지영이 때문에 자살 소동을 벌였단 말이냐?” “그럼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먼저 지영이와 연애를 시작했거든요.” “야, 이놈아. 네가 언제 이렇게 도덕 따지는 놈이었냐?” 심지어 먼저 사귀었다고 설명까지 덧붙이다니. 그의 할아버지조차 손자의 변명이 웃길 따름이었다. “아무튼요. 상황을 미리 알려드렸으니 종대 아저씨에게 나씨 가문 쪽 상황을 살펴보라고 해 주세요.” “알겠다!” 한편, 옆에서 이 전화를 듣고 있던 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그녀는 황당함을 느꼈다. 결국 나태범이 나태웅 때문에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 가족 제정신인가? 나태웅이 나를 협박했던 것도 모자라 이제 할아버지까지 협박에 나선다고? 힘으로 어린 사람을 억누르겠다는 건가? 내가 보호받을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잠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만약 안진섭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 상황에서도 안지영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안열이 말했듯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착하고 온화했으니까. 장선명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안지영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가가 물었다. “언제 왔어요? 다 들은 거예요?” 안지영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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