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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목련청
이 피드는 그녀를 차단하는 걸 잊은 게 분명했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보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오늘은 서유라의 손에 쥐어진 걸 보니 그 빠른 처리 속도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서유라는 배서준이 마음속에 가장 아끼는 사람이니까.

남설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막 휴대폰을 끄려던 찰나,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설아야, 나 열흘 후에 귀국해.]

프로필 사진은 새까맸고 이니셜 ‘kyc'가 적혀있었다..

오랫동안 연락처 목록에 잠들어 있던 사람, 계산해보면 둘이 연락하지 않은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남설아는 가라앉은 숨을 내쉬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4시 20분, 배서준은 무거운 회의에서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장우진의 알림이 없었더라면 배나은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걸 잊을 뻔했다.

곧장 차량에 올라타 유치원으로 향했다.

배서준은 피곤한 이마를 문지르며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가.”

운전기사는 그 눈빛을 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배서준은 아이를 데려다 남설아에게 맡긴 후 서유라의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침묵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선명하게 ‘서유라'라는 세 글자가 떠 있었다.

배서준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유라는 울먹이며 말했다.

“서준아, 짱아가 너무 아파. 지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번엔 정말 힘들 수 있다고...”

짱아는 서유라가 키우는 강아지로 한때 배서준이 생일 선물로 준 아이였다.

둘이 헤어진 뒤로도 짱아는 줄곧 서유라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큰 위안이 되어줬다.

서유라에게 짱아는 둘 사이의 아이 같은 존재였다.

배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목소리는 평온했다.

“걱정하지 마. 이따가 금방 갈게.”

“아니야... 지금 빨리 와줘...”

서유라의 목소리는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떨림이 심했고 이제는 거의 오열하는 듯했다.

“짱아가 버티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서워...”

그 순간, 배서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서유라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누군가의 기대 어린 눈빛이 스쳤다. 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목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배서준의 선택은 배나은이 아니라 서유라였다.

서유라는 지금 그가 필요했다.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뒤, 배서준은 운전기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방향 돌려. 러브펫 병원으로 가.”

운전기사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배서준은 핸드폰을 들어 장우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배나은을 대신 데리러 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잠시 옆에 놓인 딸기를 올린 작은 케이크에 머물렀다. 장우진이 일부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눈을 감아버렸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

배나은은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는 걸 바라봤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그녀를 계속해서 스쳤고 작은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반 친구들은 모두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여자아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나은아, 오늘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다른 남자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쟤 거짓말쟁이야. 무슨 아빠야, 그 말을 속냐?”

배나은의 눈에서 자신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작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정말 아빠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의 아빠는 학부모 모임에도 운동회에도 참석했지만, 그녀의 아빠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아이가 말을 끝내자 그의 아버지가 머리를 툭 치며 혼냈다.

“뭐라는 거야?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은아, 오늘 아빠 안 오시니?”

배나은은 정말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올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아빠를 곤란하게 만든 건 아닐까 걱정됐다. 아빠를 귀찮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씩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엄마가 오실 거예요.”

“그래? 그럼 엄마한테 전화해 볼까?”

선생님은 다정하게 물었다.

배나은은 조금의 서운함을 꾹 눌러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남설아가 전화를 받고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빗방울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어려웠다.

헐레벌떡 달려온 남설아의 눈에 구석에 작게 웅크리고 떨고 있는 배나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 마치 누군가 가슴 깊숙이 칼을 꽂아 피가 쏟아지는 듯했다.

아빠가 오늘 데리러 온다며 기뻐하던 딸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남설아는 온몸에 피가 역류하는 듯했고 목구멍에는 금세 피비린내가 차올랐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나은아.”

배나은은 얼굴을 들어 엄마를 보자 그동안의 서러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녹아내렸다. 아이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렇게 작은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그저 얌전히 엄마라고 부를 뿐이었다.

남설아는 그 순간 후회했다. 만약 자신이 끝까지 배서준과의 관계를 고집하지 않았다면, 나은은 사랑받는 가정에서 태어났을까. 아빠가 아껴주고 엄마가 보살피는 따뜻한 집에서 자랐을까.

그녀는 배나은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 왔어. 이제 집에 가자. 울지 마, 우리 아가.”

배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은은 몸이 너무 약해서 바로 고열에 시달렸다. 남설아는 뜨거운 아이의 얼굴을 만지며 심장이 저릿하게 아팠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장우진이었다.

남설아는 배나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오늘 대표님께서 급한 일이 생겨서 저보고 나은 양을 데리러 가라고 하셨는데... 서류 처리에 바빠서 늦게야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유치원에 도착하니 이미 모시고 가셨다고 하더군요...”

남설아는 이런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물었다.

“서준 씨는 어디에 갔나요?”

평온하게 들렸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장우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남설아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진 씨, 저는 배건 그룹의 사모님으로서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장우진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서유라 씨의 강아지가 위독해져서 울면서 사장님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서...”

남설아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는 서유라의 한 마리 강아지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참으로 우스웠다.

그녀는 목구멍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엄마...”

그 순간, 배나은이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창백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마, 아빠한테 화내지 마요, 네...? 아빠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아빠도 정말 바쁠 거예요. 저 다 이해해요.”

그 순간, 남설아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배나은은 심하게 기침하더니, 힘겹게 엄마에게 다가와 꼭 안아주었다.

“엄마, 저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남설아는 코끝이 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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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배서준은 그 단어들을 듣자마자 아무 생각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요즘 사기 전화가 이렇게까지 뻔뻔해졌나? 장례식장 직원인 척까지 하다니, 진짜 끝도 없군! 나은이는 멀쩡한데 장례식장은 무슨 장례식장이야?’하지만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배나은 보호자님, 장례식장에서 연락 드립니다. 아이의 사망진단서와 화장 절차를 빨리 진행해 주시길 바랍니다.”상대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서준이 폭발하기 직전,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마지막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었다.‘남설아, 그 여자는 진짜 미쳤어!’‘유혹하고 싶어서 뭐든 할 수 있는 건가? 제 딸이 죽었다고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대체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지?’“서준아.”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유라가 서 있었다.막 분노로 눈이 붉어질 정도였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그 눈빛 속 불길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라는 배서준의 화난 기색을 단번에 알아챘다. 한숨을 쉬며 다가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또 설아 씨가 장난친 거야? 내가 대신 설명해줄까?”“그럴 필요 없어.”배서준은 냉소를 터트렸다.“방금 장례식장에서 전화가 왔어. 나은이가 죽었다고. 당장 와서 절차 밟으래.”그는 핸드폰을 대충 옆으로 던지며 눈빛에 조소를 가득 담았다.‘진짜 별의별 수를 다 쓰는군. 날 유혹하려고, 관심을 끌려고, 이제는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지어낸다? 심지어 집을 나간 것도 계획적인 연출이라니.’처음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사람 취급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다.“뭐라고?”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충격이 가득했다.“설아 씨가 그런 장난을 쳤다고? 너무 심하잖아! 아이가 얼마나 어린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서준아, 설아 씨랑 제대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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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준아, 그래도 설아 씨한테 가서 한 번 봐. 정말로 무슨 일이 난 거면 어쩌려고?”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배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마치 참고 또 참는 듯한, 억울하지만 인내하는 표정이었다.배서준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게 바로 그녀가 억울해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말을 듣자 마음속 분노가 더욱 치솟았다.“내가 거기 가는 순간,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거야. 한번 두고 볼 거야. 내가 없으면 그 연극을 어떻게 끝낼 건지.”차갑게 비웃은 뒤 그는 바로 서유라를 끌어안았다.“그 여자도 너처럼 착하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말을 들었지만 서유라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그저 겉으로만 얌전히 배서준의 가슴에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너무 화내지 마. 어쨌든 설아 씨도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자리를 너무 아끼니까 그래. 조금은 이해해줘야지.”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하지만 너희는 이미 이혼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는 걸까?”이혼.그 단어가 배서준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얼굴빛이 순간적으로 변하더니 그는 팔을 거두고 한 손으로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유라는 평소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알고 있었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던 남자였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이렇게 냉랭한 얼굴을 한 채 침묵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대체 왜 이렇게까지 감정이 흔들리는 거지? 심지어 나조차 모르게 이 감정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서준아... 괜찮아?”“별거 아니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순식간에 배서준은 다시 다정한 얼굴로 돌아왔다.속에서 꿈틀대던 모든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말이다.‘그 여자는 사라졌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 아닌가?’이제야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기분 좋게 한 끼 정도는 먹으면서 축하해야 마땅했다.‘근데 왜지?’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텅 빈 집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그리고 설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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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바이 쓰레기   제40화

    남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나 원래 이쪽 일 했잖아. 이런 정보 찾는 건 어렵지 않아.”강연찬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외식용 도시락을 열었다.이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남설아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이제는 제법 성숙하고 듬직해졌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린애 같은 면이 남아 있었다.“하늘이 무너져도 밥은 먹어야지. 일단 먹자.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그는 젓가락을 내밀며 웃었다.이 며칠 동안 강연찬은 늘 남설아 곁을 지켰다. 그의 배려는 마치 스며드는 이슬처럼 조용하고 은은했지만 남설아는 그 섬세한 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가 건네는 젓가락을 바라보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을 보며, 남설아의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예전엔 자신이 집에서 배서준을 기다리고 그를 챙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배서준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사랑과 무관심은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심지어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고마워.”남설아는 살짝 미소를 짓고 젓가락을 받아들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한 입 먹자마자 그녀는 이 음식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코끝이 살짝 시큰해지며 조용히 물었다.“이거... 학교 식당 밥이야?”“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네?”강연찬이 웃으며 말했다.“역시 넌 똑똑해.”남설아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솔직히 말했다.“이렇게 맛없는 걸 어떻게 잊어?”학교 식당 음식이 원래 맛있을 리 없었고 그들이 다녔던 대학은 특히나 더 심했다. 솔직히 말해 그땐 하루에도 몇 번씩 불평했었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먹어보니 음식 맛은 그대로인데 정작 변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어느새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심지어 이 맛마저 익숙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그러나 몇 입을 더 먹던 남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음식을 뱉고

  • 굿바이 쓰레기   제39화

    서유라는 배서준과 결혼하면 그야말로 평생 안락한 삶이 보장될 줄 알았다.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뜻밖의 변수가 등장할 줄이야!‘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서유라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처음부터 배건 그룹이 배서준 손에 없는 줄 알았다면 그를 유혹할 게 아니라 남설아를 꼬셨을 것이었다.‘그토록 애써 손에 넣은 결과가 고작 빈 껍데기라니.’배서준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라야, 지금 기분은 어때?”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눈빛 속엔 질문이 섞여 있었다.서유라는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늘 그래왔듯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서준아, 난 괜찮아. 제발... 제발 더 이상 설아 씨랑 싸우지 마.”“설아 씨는 항상 말한 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잖아. 네가 날 위해 너무 많은 걸 잃게 될까 봐 걱정돼.”그 말이 떨어지자 배서준의 표정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바로 이거였다.그는 여자가 자신의 말에 따르고 의존하는 걸 좋아했다.그가 원하는 건 강한 여자가 아니라 순종적인 여자였다.배서준은 곧장 서유라를 품에 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깟 주식 몇 개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회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지금까지 빨래하고 밥하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여자가 회사에서 뭘 할 수 있겠어?”그에게 남설아는 집안일을 해주는 기계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이제 와서 무슨 능력이 있다고 주식 운운하는지 우스울 뿐이었다.이상한 점을 느껴왔기에 배서준은 오래전부터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었다.그 말에 서유라는 안심하며 더욱 그의 품에 매달렸다.“서준아,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냥 이렇게 너랑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바보야, 우린 이미 함께 있잖아.”배서준은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병원을 나선 남설아의 눈빛은 전보다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그냥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그렇게 한다면 나은이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배서준이 이미

  • 굿바이 쓰레기   제38화

    남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예전엔 부부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상황에서 모든 걸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배서준은 눈앞의 여자가 낯설게만 느껴졌다.예전에는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들고 한 장 한 장 살펴보자 그의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이럴 리가 없어!”“돈에 눈이 멀더니 결국 이런 짓까지 서슴지 않는 거야? 감히 서류를 위조하다니!”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손을 뻗어 남설아의 목을 움켜잡았다.눈빛에는 분노와 위협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배건 그룹 법무팀의 수준이 어떤지는 서준 씨가 더 잘 알 텐데요?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당신이랑 부부로 지낸 세월이 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생각은 없지만 받아야 할 건 확실히 받아야겠어요.”남설아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쳐냈다.한때는 그가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잘생기고 키 크고 능력까지 뛰어난 남자였으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보니 그 모든 겉모습 아래에는 썩어 문드러진 정신이 도사리고 있었다.진절머리가 났다.‘어떻게 이런 인간을 사랑했던 걸까?’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역시 사랑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남설아, 이런 짓을 한다고 내가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비웃음을 터트린 배서준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던졌다.“설령 이 서류가 진짜라고 해도 그게 뭐?”“이 꼴을 하고서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날 이기겠다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지분을 운운하다니, 꿈도 참 크다.”새장 속의 새인, 자신이 가둬둔 여자가 감히 하늘을 날겠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보였다.경멸하는 듯한 뻔뻔한 태도가 확실했다.그리고 그제야 남설아는 완전히 깨달았다.이 남자의 눈에 자신은 그저 배씨 가문의 온실 속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힘없는

  • 굿바이 쓰레기   제37화

    서유라는 배서준의 목에 팔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이게 다 서준이 너를 위해서야. 만약 그 여자가 꼼수를 부려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안 찍으면 어쩌려고?”“서준아, 우리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 내가 너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정말 싫어.”말을 하던 서유라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사실 나도 알아.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떳떳한 건 아니라는 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널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도 없어.”울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경련까지 일어났다.배서준은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긴장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병원으로 향했다.곧바로 그는 최고의 전문의를 불러 서유라를 진찰하게 했다.“대표님, 서유라 씨의 정서가 최근에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우울증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이미 신체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이대로 두면 예전처럼 악화될 겁니다. 서유라 씨가 안정될 수 있도록 대표님께서 방법을 찾아보셔야 합니다.”의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말을 듣자 배서준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서유라의 감정이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고 있었다.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남설아를 반드시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하지만 이미 이혼한 상태였으니 당연히 남설아가 협조할 리 없었다.비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성격 잘 아시잖아요. 안 가시면 또 난리가 날 겁니다.”그렇다. 배서준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오직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뿐 타인의 감정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남설아는 처음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떠오르는 그 계약서가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았다.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그렇게까지 보고 싶다면 가 줘야죠. 다만 나중에 후회만 하지 않으면 좋겠네요.”더 이상 이런 일로 감정이 흔들릴 줄 몰랐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니 예상보다 더 쓰라렸다.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서유라 한 사람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리고 배

  • 굿바이 쓰레기   제36화

    서유라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남설아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고 가까이 다가섰다.“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나랑 비교해? 도대체 네가 뭐라고!”“나랑 서준이는 천생연분이야. 그쪽은 그냥 침대에 기어오른 천한 년일 뿐이야. 그쪽이 낳은 딸도 마찬가지고!”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참을 필요조차 없었다.남설아는 온몸의 힘을 담아 서유라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서 머리카락을 거칠게 틀어쥐고 그녀의 머리를 배나은의 사진 앞에 힘껏 박아버렸다.“아악! 남설아, 감히 날 때려?”“놔! 당장 놔!”서유라는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남설아는 그녀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엄마가 분노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서유라는 끝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남설아는 머리채를 세차게 잡아당긴 채 서유라의 무릎을 걷어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뒷목을 단단히 눌러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뭐든 말할 수 있지만 나은이만큼은 절대 입에 올려선 안 된다.“미쳤어? 미친년!”서유라는 세 번이나 이마를 바닥에 세게 부딪친 끝에야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대로 되갚아주려 했지만 남설아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내가 떠났다고 해서 네가 배서준의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과연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몰랐나 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산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알아? 배건 그룹의 51% 지분이 아직도 내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니?”이건 결혼 당시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남긴 보장이었다. 남설아는 배서준을 사랑했기에 한 번도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원래라면 배씨 가문의 재산 따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은이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서유라는 배서준을 믿고 남의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참을 수 없고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이 파렴치한 남녀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한 명은 위기에

  • 굿바이 쓰레기   제35화

    강연찬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그저 잠시 해외로 연수를 다녀온 것뿐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줄 말이다.외국에 있을 때, 남설아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고 그는 정말 한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애초에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이어갈 때가 아니었다.“일단은 쉬어. 지금 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어. 며칠 푹 쉬고 컨디션이 좀 나아지면 나 찾아와. 그때 내가 직접 회사로 데려가서 입사 절차 밟게 해줄게.”강연찬은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손길은 따뜻했고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남설아는 그 모습에 가슴 깊숙이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희망이라는 불씨 말이다.하지만 그 불씨는 금세 사그라졌다.‘나에게 그런 걸 꿈꿀 자격이 있을까?’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 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돌아서서 낡은 집으로 들어가며 남설아는 스스로를 다독였다.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문득 생각했다.애초에 자신은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배서준과도 같은 세계에서 살아온 적 없었고 강연찬과는 더더욱 아니었다.우연한 계기로 배서준과 결혼하고 배나은을 낳았지만 결국 모든 걸 잃었다.이제 모든 게 끝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가슴 한쪽이 시큰거렸다.남설아는 손을 뻗어 고쳐 붙인 사진을 꺼냈다.그러고는 부모님의 영정 옆에 조심스럽게 배나은의 사진을 놓았다.사진 속 나은이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를 짓는 작은 생명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조금이라도 쉬려 했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가 찾아올 리 없는데.’남설아는 짜증 섞인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그리고 곧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마주했다.서유라였다.그녀는 허락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 굿바이 쓰레기   제34화

    강연찬은 문 앞에 서서 남설아의 초라하고 불안한 모습을 바라보았다.주먹을 꽉 쥔 손끝이 하얗게 변했고 얼굴은 한없이 어두웠다.그때, 단 한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 줄은 몰랐다.그저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을 겪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국내에 남아도 충분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세상에 후회에 해당되는 약은 없었다.강연찬은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 장례식장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배나은의 마지막 길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남설아는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아이의 장례를 직접 준비하고 싶었다.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방 한가득 놓여 있는 종이로 만든 장난감들을 보고 남설아는 멍해졌다.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연찬을 바라보았다.“이건?”“나은이가 핑크색 좋아하잖아. 그래서 준비했어.”“이렇게 함께 있으면 나은이도 덜 외롭고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강연찬은 그녀 곁에 서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하고 조용했다.퇴원하기 전, 남설아는 배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배나은을 위해서라도 그가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와주길 바랐다.하지만 해가 지고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가 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마지막까지 확인되고서야 남설아의 가슴은 깊이 가라앉았다.사진 속 나은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입을 뗐다.“나은아... 미안해. 다음 생에는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 부디 이런 사람을 아빠로 고르지 마.”“엄마는 열심히 살아볼게. 그러니까, 나은아... 천천히 가.”목소리는 끝내 떨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 자리에 주저앉아 남설아는 끝없이 눈물을 쏟아냈다.오늘이 지나면 정말로 이 세상에 배나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작 세 살, 너무나 짧았던 생이었다.하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 나은이는 온전히 행복하지 못

  • 굿바이 쓰레기   제33화

    “나 괜찮아!”남설아는 다급하게 말했다.‘고작 뼈에 금이 간 것뿐인데 무슨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야?’하지만 강연찬은 그녀의 말을 단숨에 무시하고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몸조리 잘해.”강압적인 듯하면서도 따뜻한 태도였다. 몇 년 전과 다르지 않은 듯했지만 또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몇 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서로의 호흡은 여전히 척척 맞았다.“잠깐 쉬고 있어. 뭐 좀 먹을 걸 가져올게.”강연찬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는 방을 나섰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설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따뜻함이 스며들었다.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서도현이 들어왔다.그는 남설아를 내려다보며 얼굴에 역겨움을 숨기지도 않았다.“남설아, 넌 진짜 천하에 둘도 없는 천박한 여자야. 그렇게까지 남자가 필요해? 솔직히 말해줄까? 형은 네가 낳은 그 계집애가 병에 걸린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근데 그 애가 나약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신경도 안 쓴 거야. 그런 쓰레기 같은 애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서도현의 말이 가시처럼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심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산산조각이 난 기분이었다.남설아는 이를 악물며 깊이 숨을 들이켰다.“헛소리하지 마!”“헛소리? 현실을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한 가지 확실히 해줄까? 형은 네가 낳은 그 더러운 애한테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어.”“그 애가 쓴 일기며 남긴 물건들? 다 쓰레기통에 버렸어.”“그래도 우리 누나가 착해서 네 편 들어준다고 그걸 주워왔지. 너도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 누나한테서 떨어져.”이 말과 함께 서도현은 메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남설아에게 던졌다.충격이 전해졌지만 아픔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급히 가방을 열어 확인하자 정말로 그 안에는 나은이의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표지는 잉크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쓰레기통에서 건져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굿바이 쓰레기   제32화

    이건 노골적인 협박이었다.남설아는 배서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인간이었다.그렇기에 바로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서며 강연찬 앞을 가로막았다.“그만해요! 이 사람한테 손대지 마요!”“명령하는 거야? 남설아, 네가?”배서준이 비웃듯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이 여자가 자기 앞에서 다른 남자를 감싸고 도는 모습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배서준 씨, 우리 문제예요. 제발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요!”“우리 문제라는 거 알면 됐어.”배서준은 냉소를 지으며 강연찬과 남설아를 훑어보았다.날카로운 눈빛이 두 사람을 베듯 스쳐 가더니 그는 갑자기 강연찬의 어깨를 세게 밀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남설아는 곧장 강연찬을 돌아보며 다급하게 말했다.“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선배가 위험해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난 저 사람 안 무서워.”강연찬이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그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다.하지만 외국에서 연구하며 여러 개의 특허를 획득했고 이미 자기만의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였다.배서준이 원하는 걸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그가 가진 특허까지 뺏을 수는 없었다.“아니야, 선배. 배서준은 냉혈한이야. 자기 친자식조차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라고. 난... 선배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그러니까 우린...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남설아는 고개를 떨구고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그러나 강연찬은 마치 듣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 삼촌, 손가락 하나 잘리고 감옥에 갔어. 3, 5년은 못 나올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장례식장 쪽에서 연락이 왔어. 나은이 장례 일정 정해야 한다고. 날짜 정하면 내가 준비할게.”남설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단 하루, 단 하룻밤 잤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거지?’“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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