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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목련청
“서준아, 설아 씨가 너랑 얘기하고 싶다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마.”

서유라는 배서준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억울함을 꾹 눌러 담은 눈빛을 보냈지만, 여전히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본 배서준은 살짝 불만스러워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도 모를 만큼, 둘만의 시간이 이렇게 주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설아는 한동안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배서준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에게는 이미 남설아에게 쏟을 인내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데? 애를 데리고 이런 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엄마라는 사람이 이래도 돼?”

그녀가 과거에 자신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는 생각에 심지어 그 수단으로 자기 아이까지 이용한다고 느껴져서 배서준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당신이 나은이랑 한 달만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한 달 동안, 제발 서유라 씨는 나은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남설아는 이제 배서준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저 딸이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길 바랄 뿐이었다.

“난 나은이랑 한 달 같이 있겠다고 했지, 네가 뭘 요구하든 더 들어줄 생각은 없어. 넌 참 한결같다. 예전에도 더럽고 비열한 수법으로 내 침대에 기어들더니... 너만 아니었어도 난 누구의 아빠도 되지 않았을 거야!”

배서준의 눈빛이 점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나은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만 떠올려도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역시나 몇 년이 흘러도 그는 끝내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날 밤은 정말 의도치 않은 사고였고 남설아조차 왜 그 방에 있었는지, 왜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만에 나은을 품에 안게 되었을 때, 남설아는 그저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나은의 병약한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세상이 너무 싫어서 그냥 잠깐 들렀다가 떠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서준 씨, 그때의 일이 그렇게도 싫어서 자신의 아이까지도 싫은 거예요?”

남설아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자신에 대한 증오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은에게까지 그렇게 매몰찬 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은이는 아빠를 그렇게나 사랑하는 데 그 사랑이 그에게는 정말 안 보이는 걸까?

“그 아이는 내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야. 네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했어?”

배서준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그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고 항상 특별한 존재로 떠받들어져 왔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당한 함정이 바로 이 여자 때문이라 생각하니 분노가 멈추질 않았다.

“엄마!”

나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옆에서 있던 유라 이모가 나은이를 데려왔는데 아이는 아빠가 엄마에게 던지는 차가운 말을 모두 듣고 말았다.

나은이는 늘 아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빠는 바빠서 그런 거라고 그래도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지금, 아빠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말은 너무 잔인했다.

“나은아?’

남설아는 아이의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배서준 역시 당황한 듯했다.

방금 한 말이 아이에게 닿을 줄은 몰랐고 그는 일부러 아이를 상처 주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었다.

“두 분... 얘기 계속하세요.”

“나은아, 우리 먼저 돌아가자. 엄마 아빠 방해하지 말고.”

서유라는 당황한 모습을 하며 휠체어에 앉은 채 나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하지만 나은은 이 아줌마가 싫었다.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아줌마가 자꾸만 엄마랑 떨어뜨리려 했다.

“놔요! 엄마한테 갈 거예요!”

“아야!”

서유라가 비명을 질렀다.

나은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손톱이 서유라의 뺨을 스치며 작은 상처를 냈다.

“나은아!”

“유라야!”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소중한 사람에게 달려갔다.

남설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급하게 살펴봤다.

“나은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피났어?”

한편, 배서준은 서유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상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뺨에 맺힌 피 한 방울이 그를 폭발하게 했다.

그는 한걸음에 나은에게 다가가 아이를 잡아당겼다.

“사과해!”

나은은 커다란 손에 휘청였지만, 끝까지 울음을 참았다.

“아줌마가 저를 일부러 여기로 데리고 온 거예요. 저는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엄마 찾고 싶었어요.”

“서준아, 아이를 탓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 제발 그만해.”

서유라는 뺨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배서준의 팔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아이한테 화내지 마.”

그녀가 이렇게 나올수록 배서준의 분노는 더욱 치솟았다.

나은이는 남설아와 닮은 데다 지금의 고집스러운 표정은 마치 남설아를 그대로 빼닮은 듯했다.

그 모습이 배서준을 더욱 화나게 했다.

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경멸 어린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를 노려봤다.

“넌 정말 너희 엄마랑 똑같구나. 어린 것 치고는 참 독하네.”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배나은은 작은 몸으로 남설아 앞을 가로막았다.

그 또랑또랑한 눈망울에는 아빠에 대한 깊은 실망이 가득했다.

작은 몸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버텼다. 엄마를 지켜야 했으니까.

그동안 아빠의 사랑을 원했던 나은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빠는 자신을 싫어하고 엄마도 싫어했다. 그렇다면 아빠가 없어도 괜찮았다. 나은이는 엄마만 있으면 됐다.

“흥.”

배서준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나은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유라의 휠체어를 밀며 그대로 돌아섰다.

“나은아, 미안해.”

남설아는 천천히 다가가, 나은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딸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너무 약한 엄마였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상처를 겪게 만들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아빠는 저를 싫어하는 거 알아요. 제 이름, 배나은도 그냥 대충 지은 거잖아요. 그래도 난 아빠랑 있고 싶었는데 아빠는 엄마도 싫어하고 저도 싫어하잖아요. 엄마, 저 떠나기 싫어요. 엄마 곁에 있고 싶어요. 엄마 혼자 남으면 어떡해요?”

나은이는 울음을 삼키면서도 남설아를 꼭 껴안았다.

아이의 눈에는 마냥 천진난만해야 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슬픔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은의 작은 몸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입술 끝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더니 아이는 그대로 작게 몸을 웅크렸다. 고통스럽고 절망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나은아! 의사 선생님, 제발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나은아, 제발 엄마를 놀라게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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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떠보니 또다시 눈물로 젖어 있는 베개가 보였다.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남설아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켰다.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싶어 전원을 꺼둔 상태였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장례식장에서 보내온 절차 진행 요청 문자였다.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배나은의 유골은 이미 안치했지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절차와 서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그래, 이걸 다 끝내면... 나도 여길 떠날 수 있겠지.”“나은아,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남설아는 가슴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꼭 쥐었다.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그동안 노력했다.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 애썼다.마지막 순간까지도 배나은은 엄마가 슬퍼할까 봐 걱정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아이를 생각하는 순간, 배나은을 떠올리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작고 여린 아이가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남설아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서류에 사인하고 도장을 찍는 모든 과정이 기계적으로 진행됐다.“부모라는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네.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인데 신경 좀 써줄 수도 없나?”“책임질 각오도 안 됐으면 애초에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지. 아빠야 그렇다 쳐도 엄마까지 이러면 어쩌라는 거야?”장례식장 직원이 옆에서 툭툭 내뱉었다.며칠 동안 보호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안 받거나 아예 끊어버리기 일쑤였다.심지어 한 번은 한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미친 듯이 화를 내고 막말을 퍼붓기까지 했다.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뭘 잘못했나?왜 부모라는 사람들이 아이 일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거야?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사랑받았을까?어쩌면 평소에도 방치됐던 게 아닐까?그래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떠난 거 아닐까?여러 비난이 난무했지만 남설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대신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아이 아빠한테도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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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의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너무 많이 울어서일까 남설아의 눈이 쓰리고 아팠다.장례식장을 나서자 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온몸을 비췄다.그 순간에서야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다.하늘을 올려다보았다.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그런데도 결국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나은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우리 나은이... 내 딸...”가슴에 걸린 펜던트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쥔 채 남설아는 길가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아무리 스스로 다짐해도, 아무리 아이가 바라던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다그쳐도, 버틸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울다 지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질 즈음에서야 겨우 일어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녀가 향한 곳은 오래된 본가였다.고작 20평도 안 되는 작은 집, 이것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었다.배씨 가문 저택의 화장실보다도 작은 공간이지만 여기가 그녀의 집이었다.유일한 ‘집’ 이었다.하지만 가까스로 도착한 집 앞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그녀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배서준은 이미 반나절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발밑에는 꺼진 담배꽁초들이 흩어져 있었다.그녀가 나타나자 그는 거칠게 걸어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팔을 움켜잡았다.“너한테 돈을 얼마나 줬는데 내 딸을 이런 데서 살게 해?”“남설아, 대체 이게 엄마란 인간이 할 짓이냐? 너 같은 게 엄마 자격이나 있긴 해?”예전이라면 이런 질책은 두 사람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였다.그를 사랑했기에, 남설아는 언제나 참고 또 참았다.하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아이도 없고 사랑도 없고 남은 것도 없는데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그녀는 그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그러고는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차갑게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엄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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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바이 쓰레기   제40화

    남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나 원래 이쪽 일 했잖아. 이런 정보 찾는 건 어렵지 않아.”강연찬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외식용 도시락을 열었다.이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남설아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이제는 제법 성숙하고 듬직해졌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린애 같은 면이 남아 있었다.“하늘이 무너져도 밥은 먹어야지. 일단 먹자.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그는 젓가락을 내밀며 웃었다.이 며칠 동안 강연찬은 늘 남설아 곁을 지켰다. 그의 배려는 마치 스며드는 이슬처럼 조용하고 은은했지만 남설아는 그 섬세한 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가 건네는 젓가락을 바라보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을 보며, 남설아의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예전엔 자신이 집에서 배서준을 기다리고 그를 챙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배서준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사랑과 무관심은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심지어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고마워.”남설아는 살짝 미소를 짓고 젓가락을 받아들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한 입 먹자마자 그녀는 이 음식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코끝이 살짝 시큰해지며 조용히 물었다.“이거... 학교 식당 밥이야?”“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네?”강연찬이 웃으며 말했다.“역시 넌 똑똑해.”남설아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솔직히 말했다.“이렇게 맛없는 걸 어떻게 잊어?”학교 식당 음식이 원래 맛있을 리 없었고 그들이 다녔던 대학은 특히나 더 심했다. 솔직히 말해 그땐 하루에도 몇 번씩 불평했었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먹어보니 음식 맛은 그대로인데 정작 변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어느새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심지어 이 맛마저 익숙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그러나 몇 입을 더 먹던 남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음식을 뱉고

  • 굿바이 쓰레기   제39화

    서유라는 배서준과 결혼하면 그야말로 평생 안락한 삶이 보장될 줄 알았다.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뜻밖의 변수가 등장할 줄이야!‘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서유라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처음부터 배건 그룹이 배서준 손에 없는 줄 알았다면 그를 유혹할 게 아니라 남설아를 꼬셨을 것이었다.‘그토록 애써 손에 넣은 결과가 고작 빈 껍데기라니.’배서준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라야, 지금 기분은 어때?”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눈빛 속엔 질문이 섞여 있었다.서유라는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늘 그래왔듯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서준아, 난 괜찮아. 제발... 제발 더 이상 설아 씨랑 싸우지 마.”“설아 씨는 항상 말한 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잖아. 네가 날 위해 너무 많은 걸 잃게 될까 봐 걱정돼.”그 말이 떨어지자 배서준의 표정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바로 이거였다.그는 여자가 자신의 말에 따르고 의존하는 걸 좋아했다.그가 원하는 건 강한 여자가 아니라 순종적인 여자였다.배서준은 곧장 서유라를 품에 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깟 주식 몇 개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회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지금까지 빨래하고 밥하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여자가 회사에서 뭘 할 수 있겠어?”그에게 남설아는 집안일을 해주는 기계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이제 와서 무슨 능력이 있다고 주식 운운하는지 우스울 뿐이었다.이상한 점을 느껴왔기에 배서준은 오래전부터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었다.그 말에 서유라는 안심하며 더욱 그의 품에 매달렸다.“서준아,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냥 이렇게 너랑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바보야, 우린 이미 함께 있잖아.”배서준은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병원을 나선 남설아의 눈빛은 전보다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그냥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그렇게 한다면 나은이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배서준이 이미

  • 굿바이 쓰레기   제38화

    남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예전엔 부부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상황에서 모든 걸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배서준은 눈앞의 여자가 낯설게만 느껴졌다.예전에는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들고 한 장 한 장 살펴보자 그의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이럴 리가 없어!”“돈에 눈이 멀더니 결국 이런 짓까지 서슴지 않는 거야? 감히 서류를 위조하다니!”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손을 뻗어 남설아의 목을 움켜잡았다.눈빛에는 분노와 위협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배건 그룹 법무팀의 수준이 어떤지는 서준 씨가 더 잘 알 텐데요?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당신이랑 부부로 지낸 세월이 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생각은 없지만 받아야 할 건 확실히 받아야겠어요.”남설아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쳐냈다.한때는 그가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잘생기고 키 크고 능력까지 뛰어난 남자였으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보니 그 모든 겉모습 아래에는 썩어 문드러진 정신이 도사리고 있었다.진절머리가 났다.‘어떻게 이런 인간을 사랑했던 걸까?’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역시 사랑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남설아, 이런 짓을 한다고 내가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비웃음을 터트린 배서준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던졌다.“설령 이 서류가 진짜라고 해도 그게 뭐?”“이 꼴을 하고서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날 이기겠다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지분을 운운하다니, 꿈도 참 크다.”새장 속의 새인, 자신이 가둬둔 여자가 감히 하늘을 날겠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처럼 보였다.경멸하는 듯한 뻔뻔한 태도가 확실했다.그리고 그제야 남설아는 완전히 깨달았다.이 남자의 눈에 자신은 그저 배씨 가문의 온실 속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힘없는

  • 굿바이 쓰레기   제37화

    서유라는 배서준의 목에 팔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이게 다 서준이 너를 위해서야. 만약 그 여자가 꼼수를 부려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안 찍으면 어쩌려고?”“서준아, 우리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 내가 너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정말 싫어.”말을 하던 서유라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사실 나도 알아.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떳떳한 건 아니라는 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널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도 없어.”울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경련까지 일어났다.배서준은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긴장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병원으로 향했다.곧바로 그는 최고의 전문의를 불러 서유라를 진찰하게 했다.“대표님, 서유라 씨의 정서가 최근에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우울증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이미 신체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이대로 두면 예전처럼 악화될 겁니다. 서유라 씨가 안정될 수 있도록 대표님께서 방법을 찾아보셔야 합니다.”의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말을 듣자 배서준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서유라의 감정이 왜 이렇게 불안정한지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고 있었다.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남설아를 반드시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하지만 이미 이혼한 상태였으니 당연히 남설아가 협조할 리 없었다.비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성격 잘 아시잖아요. 안 가시면 또 난리가 날 겁니다.”그렇다. 배서준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오직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뿐 타인의 감정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남설아는 처음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떠오르는 그 계약서가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았다.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그렇게까지 보고 싶다면 가 줘야죠. 다만 나중에 후회만 하지 않으면 좋겠네요.”더 이상 이런 일로 감정이 흔들릴 줄 몰랐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니 예상보다 더 쓰라렸다.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서유라 한 사람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리고 배

  • 굿바이 쓰레기   제36화

    서유라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남설아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고 가까이 다가섰다.“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나랑 비교해? 도대체 네가 뭐라고!”“나랑 서준이는 천생연분이야. 그쪽은 그냥 침대에 기어오른 천한 년일 뿐이야. 그쪽이 낳은 딸도 마찬가지고!”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참을 필요조차 없었다.남설아는 온몸의 힘을 담아 서유라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서 머리카락을 거칠게 틀어쥐고 그녀의 머리를 배나은의 사진 앞에 힘껏 박아버렸다.“아악! 남설아, 감히 날 때려?”“놔! 당장 놔!”서유라는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남설아는 그녀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엄마가 분노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서유라는 끝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남설아는 머리채를 세차게 잡아당긴 채 서유라의 무릎을 걷어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뒷목을 단단히 눌러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뭐든 말할 수 있지만 나은이만큼은 절대 입에 올려선 안 된다.“미쳤어? 미친년!”서유라는 세 번이나 이마를 바닥에 세게 부딪친 끝에야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대로 되갚아주려 했지만 남설아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내가 떠났다고 해서 네가 배서준의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과연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몰랐나 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산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알아? 배건 그룹의 51% 지분이 아직도 내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니?”이건 결혼 당시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남긴 보장이었다. 남설아는 배서준을 사랑했기에 한 번도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원래라면 배씨 가문의 재산 따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은이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서유라는 배서준을 믿고 남의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었다.참을 수 없고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이 파렴치한 남녀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한 명은 위기에

  • 굿바이 쓰레기   제35화

    강연찬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그저 잠시 해외로 연수를 다녀온 것뿐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줄 말이다.외국에 있을 때, 남설아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고 그는 정말 한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애초에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이어갈 때가 아니었다.“일단은 쉬어. 지금 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어. 며칠 푹 쉬고 컨디션이 좀 나아지면 나 찾아와. 그때 내가 직접 회사로 데려가서 입사 절차 밟게 해줄게.”강연찬은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손길은 따뜻했고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남설아는 그 모습에 가슴 깊숙이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희망이라는 불씨 말이다.하지만 그 불씨는 금세 사그라졌다.‘나에게 그런 걸 꿈꿀 자격이 있을까?’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 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돌아서서 낡은 집으로 들어가며 남설아는 스스로를 다독였다.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문득 생각했다.애초에 자신은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배서준과도 같은 세계에서 살아온 적 없었고 강연찬과는 더더욱 아니었다.우연한 계기로 배서준과 결혼하고 배나은을 낳았지만 결국 모든 걸 잃었다.이제 모든 게 끝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가슴 한쪽이 시큰거렸다.남설아는 손을 뻗어 고쳐 붙인 사진을 꺼냈다.그러고는 부모님의 영정 옆에 조심스럽게 배나은의 사진을 놓았다.사진 속 나은이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를 짓는 작은 생명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조금이라도 쉬려 했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가 찾아올 리 없는데.’남설아는 짜증 섞인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그리고 곧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마주했다.서유라였다.그녀는 허락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더니

  • 굿바이 쓰레기   제34화

    강연찬은 문 앞에 서서 남설아의 초라하고 불안한 모습을 바라보았다.주먹을 꽉 쥔 손끝이 하얗게 변했고 얼굴은 한없이 어두웠다.그때, 단 한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 줄은 몰랐다.그저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을 겪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국내에 남아도 충분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세상에 후회에 해당되는 약은 없었다.강연찬은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 장례식장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배나은의 마지막 길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남설아는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아이의 장례를 직접 준비하고 싶었다.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방 한가득 놓여 있는 종이로 만든 장난감들을 보고 남설아는 멍해졌다.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연찬을 바라보았다.“이건?”“나은이가 핑크색 좋아하잖아. 그래서 준비했어.”“이렇게 함께 있으면 나은이도 덜 외롭고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강연찬은 그녀 곁에 서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하고 조용했다.퇴원하기 전, 남설아는 배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배나은을 위해서라도 그가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와주길 바랐다.하지만 해가 지고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가 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마지막까지 확인되고서야 남설아의 가슴은 깊이 가라앉았다.사진 속 나은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입을 뗐다.“나은아... 미안해. 다음 생에는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 부디 이런 사람을 아빠로 고르지 마.”“엄마는 열심히 살아볼게. 그러니까, 나은아... 천천히 가.”목소리는 끝내 떨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 자리에 주저앉아 남설아는 끝없이 눈물을 쏟아냈다.오늘이 지나면 정말로 이 세상에 배나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작 세 살, 너무나 짧았던 생이었다.하지만 그 짧은 시간조차 나은이는 온전히 행복하지 못

  • 굿바이 쓰레기   제33화

    “나 괜찮아!”남설아는 다급하게 말했다.‘고작 뼈에 금이 간 것뿐인데 무슨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야?’하지만 강연찬은 그녀의 말을 단숨에 무시하고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몸조리 잘해.”강압적인 듯하면서도 따뜻한 태도였다. 몇 년 전과 다르지 않은 듯했지만 또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몇 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서로의 호흡은 여전히 척척 맞았다.“잠깐 쉬고 있어. 뭐 좀 먹을 걸 가져올게.”강연찬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는 방을 나섰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설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따뜻함이 스며들었다.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서도현이 들어왔다.그는 남설아를 내려다보며 얼굴에 역겨움을 숨기지도 않았다.“남설아, 넌 진짜 천하에 둘도 없는 천박한 여자야. 그렇게까지 남자가 필요해? 솔직히 말해줄까? 형은 네가 낳은 그 계집애가 병에 걸린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근데 그 애가 나약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신경도 안 쓴 거야. 그런 쓰레기 같은 애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서도현의 말이 가시처럼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심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산산조각이 난 기분이었다.남설아는 이를 악물며 깊이 숨을 들이켰다.“헛소리하지 마!”“헛소리? 현실을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한 가지 확실히 해줄까? 형은 네가 낳은 그 더러운 애한테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어.”“그 애가 쓴 일기며 남긴 물건들? 다 쓰레기통에 버렸어.”“그래도 우리 누나가 착해서 네 편 들어준다고 그걸 주워왔지. 너도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 누나한테서 떨어져.”이 말과 함께 서도현은 메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남설아에게 던졌다.충격이 전해졌지만 아픔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급히 가방을 열어 확인하자 정말로 그 안에는 나은이의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표지는 잉크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쓰레기통에서 건져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굿바이 쓰레기   제32화

    이건 노골적인 협박이었다.남설아는 배서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인간이었다.그렇기에 바로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서며 강연찬 앞을 가로막았다.“그만해요! 이 사람한테 손대지 마요!”“명령하는 거야? 남설아, 네가?”배서준이 비웃듯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이 여자가 자기 앞에서 다른 남자를 감싸고 도는 모습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배서준 씨, 우리 문제예요. 제발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요!”“우리 문제라는 거 알면 됐어.”배서준은 냉소를 지으며 강연찬과 남설아를 훑어보았다.날카로운 눈빛이 두 사람을 베듯 스쳐 가더니 그는 갑자기 강연찬의 어깨를 세게 밀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남설아는 곧장 강연찬을 돌아보며 다급하게 말했다.“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선배가 위험해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난 저 사람 안 무서워.”강연찬이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그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다.하지만 외국에서 연구하며 여러 개의 특허를 획득했고 이미 자기만의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였다.배서준이 원하는 걸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그가 가진 특허까지 뺏을 수는 없었다.“아니야, 선배. 배서준은 냉혈한이야. 자기 친자식조차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라고. 난... 선배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그러니까 우린...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남설아는 고개를 떨구고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그러나 강연찬은 마치 듣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 삼촌, 손가락 하나 잘리고 감옥에 갔어. 3, 5년은 못 나올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장례식장 쪽에서 연락이 왔어. 나은이 장례 일정 정해야 한다고. 날짜 정하면 내가 준비할게.”남설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단 하루, 단 하룻밤 잤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거지?’“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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