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다쳤어?”“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셋째 형.”흑풍은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서 대답했다.그는 항상 이런 태도여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곤 했었다.노인은 화제를 돌리며 손바닥을 내밀었다.“괜찮다면 다행이야. 내게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내 돈을 갚을 때가 되었어.”노인의 이름은 황계웅, 뼛속까지 장사꾼이었다.그는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고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물론 무공 실력도 반보천인 고수라 만만치 않았다.“그게… 셋째 형, 원래 일이 순조롭게 되었는데 중도에 변고가 생겨서 망했어.”흑풍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약속했다.“근데 걱정 마. 내가 약속한 물건과 빌린 돈은 일 푼도 떼먹지 않고 다 갚을게.”이런 말은 다른 사람을 속일지 몰라도 황계웅 같은 능구렁이 앞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황계웅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그럼 여기 남아 일을 하면서 이자라도 갚아.”전에 흑풍이 만능 전당포에서 사람을 고용할 때 모든 월급을 황계웅이 대신 지불했었다.돈을 목숨처럼 여기는 그에게 한 푼도 갚지 않아서 몹시 불쾌했던 것이었다.“그래. 형 말대로 할게.”마침 흑풍은 상처를 치료할 곳이 필요해서 흔쾌히 대답했다.본래 주둔지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기도 하고 지금 가기에 위험했다.“왜, 더 할 말이 있어?”황계웅은 쳐다보지 않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물었다.“형, 그럼 염구준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흑풍은 다음 계획을 알고 싶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미리 알게 된다면 거기서 작은 이익이라도 얻어 꿍꿍이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황계웅은 대답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상관하지 않아도 돼. 장사꾼은 장사꾼들만의 수단이 있는 법이야.”그가 바라는 것도 염구준의 옥패였지 무공은 아니었다.옥패는 생각보다 값이 꽤 나갔기 때문이었다.만약 흑풍이 염구준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는다면 자신의 손에 있는 옥패까지 함께 바치
휴대폰 너머로 마 대표는 미안한 마음에 계속 사과만 했다.“손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위약금은 전부 배상하겠습니다.”마 대표는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휴.”손가을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속상한 얼굴로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큰 고초를 겪은 사람이라도 속상한 일이 생기면 안절부절하는 것은 당연했다.“우리 여보, 오늘 기분이 안 좋네?”염구준이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묻자 그녀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띄었다.“그럴 리가. 구준 씨가 있는데 기분 안 좋을 게 뭐가 있겠어.”손가을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다.염구준만 곁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서 무슨 일이든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여보, 무슨 일이 있어? 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염구준은 아내에게 따뜻한 물을 따라 건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그런데… 당신이 돌아온 지 며칠밖에 안 돼서 괜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손가을의 애틋하고 다정한 눈빛만 보아도 남편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회사에 처리할 일들이 많지 않았다면 며칠 쉬면서 남편과 함께 지냈을 것이다.“난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얼른 말해 봐.”염구준은 곁으로 다가가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아내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염구준에게 아주 기쁜 일이나 마찬가지었다.부부사이에 감출 것도 없으니 손가을은 우물쭈물하지 않고 일의 자초지종을 말했다.손중석이 연구한 광열 신에너지는 특수한 태양전지패털이 필요해서 자체적으로 제조해야 했다.그 과정에 한 가지 희귀한 원재료가 필요하여 원청광산의 마 대표에게서 구매하려고 계약을 체결했다.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마 대표가 거액의 위약금도 배상하겠다면서 갑자기 말을 번복하는 것이었다.이렇게 되면 손씨 그룹에서 필요한 원재료 공급이 중단되게 된다.“먼저 마 대표를 찾아가서 얘기해 보자.”염구준은 그녀의 얘기를 듣고 대책을 세웠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당신도 같이 가자.”손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의 팔짱을 끼고 놓지 않았다.원재료가 없다면 신에너
“손… 손 대표님이 어떻게 오셨어요? 위약금은 방금 보내드렸습니다.”마 대표는 생전 처음으로 위약금을 물어준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다들 사업하는 게 쉽지 않죠. 마 대표님의 원재료는 저희가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그 정도 위약금은 숫자에 불과해요.”손가을은 엄숙하게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원재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하루만 시간을 끌어도 손씨 그룹에서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하에서 중시하는 프로젝트라 국주가 특별히 승인한 것이니 더욱 지체할 수 없었다.책임을 추궁하자 마 대표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개를 더 숙였다.“손 대표님, 사업을 하면서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제가 손 대표님한테 큰 죄를 졌습니다.”원청광산의 대표라는 신분은 위풍당당해 보이겠지만 용하 상업계에서 중소기업에 속했다.손가을은 풀이 죽은 마 대표를 설득하려다 관두었다.그때 검정색 정장을 입은 젊은이가 점잖게 걸어서 다가왔다.그의 걸음걸이나 뒤에 따른 경호원을 보니 무술인이었다.“저는 원청광산에서 새로 부임한 대표 문성입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문성의 수려한 외모를 보면 아직 서른도 안 된 것 같은데 태도가 조금은 오만했다.이 나이에 벌써 몇 조짜리 광산 회사를 인수하다니 배후 세력이 꽤 돈이 많은 모양이었다.“당신이 뭔데 내 아내가 말하는데 끼어들어?”염구준이 힐끗 노려보며 불쾌하다는 듯 한마디 던졌다.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바보라도 문성이라는 젊은이가 중간에서 방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남편이 나서서 얘기하자 손가을은 더는 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에게 맡겼다.첫마디부터 박대를 당하자 문성은 화가 치밀어올라 이를 악물었다.오늘 자정 12시가 넘어 원청광산을 손에 넣으면 상류층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고 앞날이 창창해질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에 누구에게 꾸중을 들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끌어내! 광산에서 당신들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쿵!염구준은 갑자기 기운을 폭발시켜 순식간에 단진 무성의 무술인을 바닥에 꿇리고 꼼짝달싹 못하게 제압했다.‘반보천인이야!’그제야 눈치를 챈 무술인은 머릿속이 하얘졌다.신출귀몰하는 존재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재수가 없었다.“이게 무슨…”무술인에 대해 1도 모르는 문성은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말을 삼켰다.“선… 배님, 제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무술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한마디 했다.염구준이 팔에 힘을 주더니 그의 몸에 기운을 주입해서 쓰러트렸다.한 줄기 기운을 주입했어도 최소 1년 반이 지나야 회복할 수 있고 평생 불치병에 시달려 무술을 더는 연마할 수 없게 될 것이다.“또 불만 있는 사람 있어요?”염구준은 무술인을 처리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누구도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마 대표는 손씨 그룹의 세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손 대표님, 염 선생님, 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 제가 회사를 매각해서 용하 상업계에서 퇴출할 겁니다. 손씨 그룹에 원재료를 제공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달갑게 벌을 받을 테니까 가족들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손씨 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그를 소리 없이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물론 문성의 배후도 대항할 수 없다.염구준은 말하지 않고 손가을을 쳐다보았다.그가 나쁜 사람이 되어 현장을 통제했으니 이젠 아내가 나서서 일을 처리할 차례였다.손가을이 앞으로 나서서 엄숙하게 말했다.“마 대표님, 일어나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 손씨 그룹에서 괴롭히는 줄 알겠어요. 저는 계속 마 대표님과 계약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런데 상황을 보니 한 발 늦은 거 같네요.”원재료 공급이 중단되었으니 다시 광산 회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마 대표와는 비즈니스 파트너라서 사적인 일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었다.게다가 문성은 딱 봐도 바지사장이라 상의를 해도 소
염구준 부부는 본래 마 대표를 설득하러 왔는데 이미 회사를 매각한 이상 더는 상의할 것도 없었다.두 사람이 행사장에서 나가려고 할 때 마 대표가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두 분, 잠시만요.”“사과라면 됐어요. 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염구준이 돌아서서 나지막하게 말했다.마 대표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제 손에 원재료가 조금 있습니다. 많지는 않고 1톤밖에 없는데 괜찮으시다면 손씨 그룹에 드리고 싶습니다.”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선이었다.“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은 시가에 따라 계산해 드릴게요.”마 대표의 성의 가득한 말에 손가을의 얼굴에 화색이 띄었다.그렇다고 공짜로 가질 그녀가 아니었다.광열 신에너지 프로젝트는 워낙 방대해서 원재료 1톤이라도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손 대표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제가 아랫것들에게 시켜서 청해에 보내 드리겠습니다.”마 대표는 사양하지 않았다.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원재료이니 작은 돈에 전혀 신경 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옆에 있던 문성은 큰 손해를 본 것처럼 당황했다.“안 돼요. 1그램도 줄 수 없어요.”마 대표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문 대표님, 이것은 내 개인 소유입니다. 당신은 간섭할 권리도 없어요. 게다가 이 원재료는 계약상에서 언급하지 않았어요.”“그 따위 몰라요. 마 대표는 회사를 내게 매매했으니 1톤 원재료도 당연히 내 몫이에요.”문성은 억지를 부리며 손씨 그룹에 원재료를 주는 것을 막았다.그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문성이 계약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장악하기 쉬운 법이었다.하지만 염구준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원재료에 대해 말하면 예민하게 구네. 설마 손씨 그룹을 겨냥하려고 원청광산을 매수한 건가?”그 말에 주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감히 손씨 그룹을 겨냥하는 사람은 멍
지금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아도 해서 피할 문제는 아니었다.“원재료 공급사들이 시가 2배 되는 가격으로 다른 그룹에 싹 다 팔았어요.”“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공급사들 돌아다니면서 끌어 모았는데 60킬로그램밖에 안 됩니다.”“원래 계획대로라면 3일 후에 신형 태양전지패널을 생산해야 하는데 1톤으로 어림도 없습니다.”…열 명이 넘는 담당자가 연달아 보고하는데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이렇게 가다면 어렵게 시작한 신에너지 프로젝트가 무산될 것이다.그동안 염구준의 친분으로 국주는 한 번도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재촉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이 일은 용하의 국민과 연결된 일이라 더는 미루면 안 되었다.손가을은 정 안 되면 능력 있는 기업에게 넘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휴. 좋은 대안이라도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 보세요.”그녀가 주변을 둘려보며 물었다.지금 당장 좋은 대책이 떠오르지 않고 염구준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담당자들은 고개만 푹 숙일 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재료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그렇다고 해서 마술을 부려서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끼익!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염구준이 만면에 미소를 띄고 노트북을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가을아, 원재료 독점에 대해 내가 알아냈어.”“고생했어. 어떻게 된 일이야?”그제야 손가을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이것이 돌파구가 되길 바라며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염구준이 곁에 다가가 홀로그램을 켜더니 사진들을 가리키며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저희가 필요한 원재료를 천맹그룹에서 전부 매수했어요. 저들은 창고에 쌓아 놓기만 하고 외부에 어떤 용도로 사들였는지 밝히지 않았어요. 이러는 이유는 저희 회사 혹은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겨냥하기 위해서일 겁니다.”그 말에 누군가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천맹그룹의 정체가 뭡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염구준은 사진을 바꿔서 계속 설명했다.“천맹그룹의 법인 대표는 진천
“아가씨, 몇 살이야? 건강한지 내가 건강검진 해줄까?”“예쁘게도 생겼네.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이만큼 예쁘지 않은데.”“오늘 저녁에 나랑 호텔 가자. 가격은 얼마든지 불러도 돼.”일행은 비싼 양복을 입어서 어엿한 신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부패하고 더러운 피가 흐르는 깡패들이었다.깡패들에게 권력이 생기면 이렇게 제멋대로 생동했다.“자중하세요!”접대 직원은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벌개졌다.그래도 바로 폭발하지 않고 꾹 참았다.상대방이 천맹그룹에서 높은 분이라 괜히 찍힐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여기서 왜 미친개들이 짖고 있어?”마침 염구준이 대기실에 들어오며 일행을 힐끗 노려봤다.그들의 꼬락서니만 봐도 진정한 배후처럼 보이지 않았다.“들어올 때는 사람 얼굴이었는데.”뒤에서 경호원 부대를 데리고 온 용필이 맞장구를 쳤다.깡패들은 자신을 비웃는 것을 알고 불쾌함을 토로했다.“손가을은 어디 있어? 왜 접대하러 오지 않아? 원재료 갖기 싫어?”그들은 꼭두각시 주제에 서슴없이 입을 놀렸다.아마도 배후는 용하의 상업계에 잘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는 놈들의 이런 점을 노리고 보낸 것 같았다.“죽지 않을 정도로만 처리하세요.”염구준은 이런 쓰레기들과 말도 섞기 싫어서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깡패들을 상대하려면 그들 수준에 맞게 주먹으로 정복할 것이다.“하하하, 졸개들 주제에 감히 우리한테 덤벼?”몇몇 ‘깡패’들은 피식 웃으면서 휴대용 막대기를 꺼내 들고 맞섰다.백전백승을 거둔 그들은 주먹 싸움에서 누구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썩은 주둥이를 나불대지 말고 얼마든지 덤벼.”용필이 조롱을 날리더니 제일 먼저 달려들어 단번에 몇 사람을 쓰러트렸다.깡패들은 자랑스럽게 여기던 싸움 실력을 발휘하기 전에 꼴 좋게 당하고 말았다.퍽퍽!이어서 용필과 염구준, 접대 직원은 옆에서 구경하고 경호원들이 나서서 그들을 제압했다.“손씨 그룹에서 폭행하는 거야?”“그만 때려. 아프잖아! 우리 좋게 얘기로 하자고!”“그만해. 내가 돈 줄게.”경호원들은
대기실에 오는 길에 손가을은 도중에 볼일이 생겨서 처리하러 갔고, 염구준이 먼저 온 것이었다.패거리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시비를 걸지 않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조훈이라 합니다. 저는 천맹그룹 부대표이자 청해 지사 총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정말 손씨 그룹과 계약하러 왔어요. 방금은 오해였습니다.”중요한 사업을 위해서 왔는데 접대 직원이 너무 예뻐서 그만 본성을 드러내고 말았다.조훈 패거리는 한바탕 얻어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계약하러 왔다고요?”염구준은 코웃음을 쳤다.이것은 손씨 그룹을 경계하면서 거짓 호의를 베푸는 짓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조훈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손씨 그룹에서 원재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저희가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쌍방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예요. 방금 그쪽이 오해하고 사람을 잘못 때린 겁니다.”손씨 그룹의 경호원들은 진짜인 줄 알고 미안한 표정까지 지었다.그런데 염구준은 피식 웃으면서 그 말을 믿지 않았다.“잘못 때리지 않았어요. 우린 무상으로 공급하는 원재료 따위 필요 없어요.”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게다가 천맹그룹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원재료를 독점했는데 이제 와서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이런 허접한 수법에 넘어갈 염구준이 아니었다.상대방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조훈은 조급한 마음에 계속 설명했다.“정말 진심입니다. 손씨 그룹과 손을 잡고 상업계를 이끌어가고 싶습니다.”본인이 말하고도 이런 임기응변 능력이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도 염구준은 손을 내저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됐어요. 내가 모를 줄 알아요?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당신들 말에 넘어갔다가 나중에 중요한 시기에 공급을 중단하면 당신들이 좌지우지할 텐데, 아닌가요?”조훈 패거리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작전이 빈틈없이 흘러갔는데 상대방이 단번에 속셈을 간파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그래도 계속 설명해야
“맞아. 내가 바로 문필이야.”문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험상궂게 다친 오른쪽 눈을 드러냈다.그 바람에 분위기는 한층 더 살벌해졌다.평범한 사람들이 이 얼굴을 본다면 기겁해서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너 해외에서 사고 쳐서 감옥에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나왔어?”염진은 무언가 수상해서 물었다.몇 년 전에 문필이 해외에서 금은방에 쳐들어가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결국 체포되었다.해외의 일부 국가에 아무리 사형 제도가 없더라도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정상인데, 지금 문필이라는 놈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교도관들을 싹 다 죽이면 나올 수 있지. 게다가 양국간에 인수인계 법적절차도 없어서 돈을 갖고 용하에 돌아오면 여전히 활개치면서 살 수 있거든.”문필은 시가에 불을 붙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거만한 표정은 변태 같기도 했다.그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염구준 부자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저놈은 건드리면 안 돼.’염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그래도 아내의 무덤을 보호하려면 이 사람들이 멋대로 파게 둘 수 없었다. “이 부지는 염씨의 것이다. 그만 물러가.”“영감이나 물러가. 여기는 북쪽 변경에서 가장 번영한 지대야. 산을 밀고 건물을 지어야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문필은 상대방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더 날뛰었다.일단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하면 거침없이 삼키려 들었다.“너…”염진은 계속 도리를 따지려고 했지만 아들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당장 꺼지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이따가 가고 싶어도 못 가.”염구준은 난폭한 놈들에게 도리를 따지는 것보다 그들의 기를 꺾는 것이 더 간단하다고 생각했다.상대방이 미치고 날뛴다면 그는 더 미치고 날뛰고 더 독하게 굴었다.“이봐, 잘 생각하고 말해. 그러다 다쳐.”문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협박했다.용하에 온 지 며칠밖에 안 되어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무술인이 강호에 발길을 끊어도 몇 년 전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네 말이 맞아. 말은
김 비서는 호주머니에서 메모리카드를 꺼내 염진에게 건넸다.‘설마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건가?’그럴 리가 없었다.염진을 배신한 김 비서는 양심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 길을 도모할 뿐이었다.안기현이 잘 나갈 때는 그에게 붙었다가 지금 염진이 이겼다고 바로 나 몰라라 팽개치고 공짜로 20억을 챙기려 했다.김 비서가 기회주의자에게 손해는 없다고 생각한 찰나.퍽!분노한 염진이 발로 그의 어깨를 힘껏 차버리는 바람에 바닥에서 여러 바퀴나 뒹굴었다.“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내 앞에서 꺼져.”지금 너무 열받아서 개떡 같은 사업비밀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았다.그에게 출세한 아들과 며느리가 있으니 가진 것이 없어도 노후를 책임져줄 사람이 있었다.“퉷! 염 회장님, 화를 푸셔야 복이 들어옵니다.”김 비서는 입안에 맺힌 피를 뱉으며 계속 설득했다.이렇게 비열하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안기현이 보는 앞에서 다시 배신을 했으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오로지 염진만이 살길이었다.퍽!김 비서가 일어서자마자 복부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동시에 뒤로 날아가버렸다.이번에는 염구준이 나섰다.“난 배신자들이 제일 싫어. 어머니가 주무시는 곳이 아니었다면 넌 진작에 내 손에 죽었어.”돈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니 이 정도 협박으로 통하지 않았다.“쿨럭!”김 비서는 바닥에 누워 격렬한 기침을 해댔다.이미 중상을 입어서 일어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염진, 그동안 내가 개처럼 열심히 일했는데 끝까지 매몰차게 이럴 거야?”정말 뻔뻔하기 그지없었다.자신이 사업비밀을 빼돌린 것이 아주 정당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파렴치한 놈! 내가 너를 믿고 노트북 비밀번호까지 알려줬어. 근데 넌 나한테 무슨 짓을 했지?”염진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예전에 김 비서가 이런 인간인지 몰랐다.결국 따져보면 자신이 사람을 잘못 선택해서 이런 결말을 초래한 것이었다.“아버지, 진정하세요. 이런 인간들한테 화낼 가치도 없어요.”염구준의 입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굴복하지 않고 되려 무전기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저 무덤을 파버려!”웅웅웅!산 아래에서 요란한 굴착기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퍽!염구준은 허공에서 주먹을 날려 굴착기 한 대를 산 아래로 떨어트렸다.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굴착기에 탄 조종사는 살아남을 가망은 없을 것이다.“아랫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면 당신을 남겨도 소용없지.”염구준이 손에 힘을 더 주자 안기현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지금 이 순간 생존 욕구만이 그를 지배했다.“저 새끼들… 멈추라고 해! 당장… 당장 철수해!”그는 목이 조여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부하들은 바로 산 아래에 있는 굴착기를 멈추라 지시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만약 안기현이 죽는다면 그에게 충성하는 부하들은 모두 굶어 죽게 될 것이다.퍽!염구준은 안기현을 어머니의 무덤 앞에 던지면서 싸늘하게 말했다.“무덤 앞에서 3일을 꿇고 사과해. 아니면 이 산의 어딘가에 묻힐 줄 알아.”그리고 양도 계약서는 손에 들자마자 불에 태워서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염구준은 이렇게 잔인한 수법으로 모두에게 무엇이 진정한 횡포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솔직히 지금까지 인간 쓰레기에게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잔인하게 대했었다.“사과할게.”안기현은 죽어가는 소리로 대답하면서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더는 협박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모든 원한을 가슴속에 삭였다.워낙 상대방의 기세가 살벌해서 조금만 잘못해도 죽여버릴 것 같았다.“아직도 꺼지지 못해?”염구준은 체내에서 기운을 뿜으며 분노를 터트렸다.“빨리 철수해!”대장도 겁을 먹은 상황에서 쫄따구들이 저항할 용기는 없었다.그들이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평범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다.하나둘씩 철수하자 시끄럽던 산꼭대기가 드디어 조용해졌다.안기현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속에는 굴욕과 억울함으로 가득했다.하지만 방금 겪었던 고통을 떠올리면 참을 수밖에 없었다.심지어 고개를
“훔치다뇨?”“회장님 비서한테 사기 좀 치고, 천만원 주니까 알아서 회장님 컴퓨터 자료를 전부 주던 걸요.”안기현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며 자신의 꼼수를 만족스럽게 여겼다.이런 수법은 그가 예전부터 자주 써먹던 것이었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안기현 뒤에서 한 청년이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바로 염진의 비서인 김 비서였다. “회장님이라고 부르지마. 내 아래엔 너같은 직원 없으니까.”염진은 배신자를 바라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기밀 파일 유출로 인해 이제 염씨 가문의 사업이 위태로워질 상황인데, 이제와서 사과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하. 회장님, 화내지 마세요.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안기현은 포악한 웃음을 터뜨리며 상대방의 희망을 짓밟았다.염진이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할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흡족해졌다. 오래전에 벌였던 일이 모두의 원망을 살만큼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아닌 남의 탓을 하며 지내왔었다.“후. 내 친필 사인이 없으면 이건 겨우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염진은 가쁜 숨을 내쉬며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하하. 이 위에 적힌 사인이 회장님 필체랑 비슷하니까 회장님이 사인했다 해도 문제 없죠. 제일 중요한 건 위에 찍힌 회장님 개인도장이니까요.” 안기현이 서류를 넘기자 선홍색 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사인 필체도 염진의 것과 완전히 일체했다.김 비서가 한 짓임이 분명했다.“너...”염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십 년동안 사업을 해왔으나 지금만큼은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만약 이 수법을 계속 쓴다면 염씨 가문의 모든 재산이 상대방의 손에 들어갈 게 너무나도 뻔했다.소송을 걸 수 있지만 이런 건 건다 해도 이길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우리 북방의 가문들이 다시 널 추방할 거다.”염진은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해결책을 찾아냈다. “하하하!”그러나 이 말을 들은 안기현은 미친듯이
“어이, 귀 먹었어?”이때, 사람들을 내쫓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계속 소리를 지르며 염구준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십여 명의 경호원들을 상대로 계속 미친 듯이 도발을 하는 걸 보면 그가 정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저 사람 제압해!”남자가 일정 범위 안에 들어서자 경호대장이 바로 명령했고, 이에 두 명의 경호원이 빠르게 돌진해 남자를 바닥에 눌렀다.염진 곁의 경호원들은 모두 염구준이 직접 선발한 이들이며, 일부는 그가 직접 훈련시킨 정예 중의 정예였다. 특히 경호대장은 전신 경지의 강자로, 예전에 염구준의 오른팔이던 인물이었다. “여기 반항하는 놈들이 있다, 얼른 와!”남자는 제압당한 채로도 발버둥치며 난동을 부렸다. 그가 이렇게 겁이 없는 이유는 자신 쪽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였다. 산 아래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아이가 놀랄 수도 있으니까 저희 먼저 내려가요.”손가을이 어른들을 향해 말했지만, 염희주는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오히려 작은 몸을 앞으로 내밀며 구경하려고 안달이 났다. “그래, 그래.”그녀의 말에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경호원들의 경호하에 다른 길로 산을 내려갔다.지금 현장에 남은 건 오직 염구준과 염진 뿐이었다. 염진이 남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아무도 그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곧이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산정상에 올라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방금 제압당했던 남자는 화가 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질렀다.“가서 손 좀 봐줘. 우리한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공격해!”적수가 단 두 명뿐이라 사람들은 쇠파이프와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인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더군다나 염구준이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그들은 상대방이 겁에 질려 멍해졌다고 생각해 기뻐하며 더 자신 있게 덤벼들었다.콰아앙!그들이 염구준의 코앞까지 달려간 후, 손에 쥔 무기를
오랫동안 남북을 뒤져서 겨우 친엄마를 찾았는데, 같이 산지 2년도 안 되어 다시 생이별을 해야 하니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180센치가 넘는 건장한 남성인 장대선도 이 소식을 듣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소식을 들은 염진 역시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장천수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에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돕고 싶었다.“구준아, 너 신의 이제마 씨랑 친하잖니.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될까?”염구준과 이제마의 친분이라면 한마디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는 망설였다. 염진은 아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는 당시의 일을 얘기해주기 위해 아들을 한쪽으로 불러냈다.아들이 자기와 성격이 똑같기 때문에 강제로 명령해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설득할 제일 좋은 방법은 전부 털어놓고 혼자 생각하게 하는 거라는 것도 말이다. 시간이 긴박하기 때문에 염진은 길게 이야기 하지 않고 당시 장천수와 있었던 일만 짧게 설명해주었다.염구준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라더니 바로 승낙했다. “천수 아저씨를 봐서 이제마 씨한테 도와달라고 할게.”빚을 계속 지고 있어선 안 되었다.“고마워, 형!”장씨 삼형제는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계속 감사인사를 했다.“됐어. 별일 없으면 난 먼저 들어가서 쉴게.”염구준이 방으로 돌아갈 때쯤, 하늘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아침 여섯시라 잠시 누웠다가 곧 다시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이불 속을 따끈따끈하게 덥히고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염구준은 생각했다. 휴식을 취한 후, 염구준은 직접 블렌과 백리를 심문했으나 유용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영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 가능성은 더욱 없었다. 결국 현상금 사냥꾼인 두 사람은 여러 인명 사건에 연루되어 전신전으로 넘겨졌고, 조사 끝에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한편, 장씨 삼형제는 병원에 도착한 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마가 타이밍 좋
북방 변경의 한적한 별장.서재에서 누군가 벽에 걸린 초상화를 멍하니 응시하다 갑자기 손길을 뻗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초상화에 그려진 건 다름아닌 염구준이었다.이정도로 그를 증오하는 건 오직 흑풍존주밖에 없었다.“존주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꽉 닫힌 문 밖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흑풍존주는 문을 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차갑게 대답했다. 상대방이 대충 뭘 보고하려는 건지 감이 왔기 때문에 그는 상대방을 방에 들여 자세하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작전이 실패했습니다. 영은 죽었고 의뢰를 맡긴 블렌은 잡혔어요.”문 밖의 사람은 계속 말을 이어갔으나 혹여나 흑풍존주가 화를 내기라도 할까 봐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영은 황계웅이 만들어낸 암, 영, 쌍, 생 4대 고수 중의 한 명으로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네 명이 손을 잡고 싸워 초입 반보천인의 강자도 죽여본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알았다. 가봐.”그러나 흑풍존주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보고를 한 사람은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더 묻지 못하고 눈치있게 자리를 비켰다.한편, 서재 안.작전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흑풍존주는 별로 실망하지 않고 자리에 돌아가 와인 한 병을 땄다.이때까지 너무 많이 실패한 탓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을 계획할 때부터 그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었지만 그럼에도 실행한 건 황계웅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그는 언제나 염구준을 상대하는 데 진심이었다.“이번에는 마주치지 말자, 염구준.”흑풍존주는 아무도 없는 창밖을 향해 잔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같은 시각에 염구준은 이미 염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한 상태였다. 염구준은 한밤의 습격 사태가 누군가 염진을 노리고 벌인 거라는 걸 알았으나 단서가 부족한 탓에 흑풍존주가 범인이라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염씨 가문 저택의 앞에 있는 빈 공터에 장씨 가문의 삼형제는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이고 어제밤에 벌인 일에 대해 사과했다.그
그는 조금 전에 방에 들어가 아내에게 늦을 것 같다고 말을 한 뒤, 그들의 뒤를 따라왔었다.부자지간에 말다툼 하는 게 얼마나 정상인가. 겨우 이런 일로 서로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구준아, 너...”방금 전에 자신이 말을 좀 심하게 했다는 생각에 염진은 미안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염구준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손을 저었다. “다른 건 이따 돌아가서 말해요. 전 일단 저 녀석부터 처리할게요.”“그래. 이번엔 네 말 들을게.”조금 전에 함부로 말을 한 것에 사죄하기 위해 염진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는 아들에게 미안하단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염구준은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마음껏 기운을 풀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만능 전당포에 현상금을 건 것도 너지? 양동작전을 하려 했던 거겠지.”염구준은 한마디로 상대방의 계획을 간추렸다.장씨 가문의 삼형제와 블렌, 그리고 백리가 거의 동시에 덤벼든 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유일하게 합리한 추리는 영이 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거였다. 일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그는 모두를 각자 다른 방법으로 모은 것이었다.“그래, 맞아.”“하지만 날 놓아주는 게 좋을 거야. 내 뒤에 있는 세력이 좀 크거든. 너 따위는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영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상대방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려 상대방이 놀라서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이건 모두 염구준을 잘 알지 못해 그런 거였다. 만약 알았다면 이렇게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어디 세력인데? 리아성전? 천맹그룹? 아님 흑풍조직?”염구준은 상대방의 협박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이렇게 큰 세력들도 신경 쓰지 않는 그가 영의 배후에 있는 세력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뭐해? 죽여!”영은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두 명의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영의 명령에 두 부하는 자신이 적수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염구준을
“죽든지, 말든지.”염구준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평소 같으면 수십 명은 죽여버렸을 테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염진이 떠난 후, 그는 심문할 마음이 사라져 아랫사람에게 블렌과 백리를 데려가라고 명령하고 혼자 조용히 밀실 밖으로 나섰다. 염구준은 밖을 밝게 비추는 달빛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한편, 북룡강 변두리.강물이 세차게 몰아치며 물보라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염진은 장씨 가문의 삼형제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북룡강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강변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상대방은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영,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상대방을 보자마자 장대선은 재빨리 걸어가 물었고 자리에 남겨진 둘째와 셋째는 염진의 옆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오기 전에 그들은 어머니만 만나면 바로 염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협상을 했었었다.“염구준은 같이 안 왔지?”조금 전에 염구준이 북방의 염씨 가문의 저택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영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구준이 너무 강해서 무서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만능 전당포에서 의뢰한 강자가 연락이 끊긴 상황에 미끼들이 정말 염진을 데리고 왔으니 무서워하는 거였다.“아니, 부자끼리 한 번 싸워서 안 따라올 거야.”“좋네. 데리고 와.”장대선이 사실대로 말하자 영은 만족스럽게 옆에 있는 승합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이윽고 차에서 두 사람이 내리며 어깨에 둘러업고 있던 포대를 쓰레기 버리듯이 멋대로 내팽개쳤다.“어머니!”장대선이 소리 지르며 달려가 포대를 풀자 안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의식불명인 상태로 옅게 숨을 쉬고 있었다.“어머니를 완치시켜준다 했잖아?”장삼우가 분노하며 외쳤다. “하하. 바보야? 도구 따위를 내가 왜 치료해줘야 해?”“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알려줄게. 이 아줌마 이미 병이 심각해져서 이제 치료 못해.”영은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