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의 생각을 이해한 고시연은 예쁜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절 위해 이렇게까지 해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 말했잖아. 넌 내 하인이라고.”하인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 듣게 되자 고시연의 마음은 괜히 씁쓸한 기분으로 물들었다. ‘그저 하인일 뿐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의 여자가 되겠어?’“난 곧 여길 떠날 거야. 그러니 앞으로 서남연맹은 모든 권한을 너에게 일임할게.”윤구주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뭐?’“남릉을 떠나신다고요?”윤구주의 말에 고시연이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응.”“이미 이곳에 오래 있었어. 그러니 이제 가야지.”윤구주가 말했다. 그가 남릉을 떠난다는 말에 고시윤의 마음은 갑자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해졌다. “여길 떠나시면 제가 앞으론 어떻게 연락을 드리죠?”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고시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예쁜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윤구주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하자. 내가 너에게 전화번호를 줄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연락해.”그렇게 윤구주는 자기 하나뿐인 전화번호를 고시윤에게 남겼다. 유일한 전화번호를 고시윤에게 주고 나서야 윤구주는 입을 열었다. “이젠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이만 돌아가라는 윤구주의 말에 고시윤은 괜스레 쓸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시윤은 윤구주의 입에서 그 한마디 말이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오늘 밤 내 곁에 있어.”하지만 끝내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시윤은 또다시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그날 밤, 고시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난 고시윤은 윤구주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마당을 몇 번이나 찾아봤지만 여전히 윤구주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고시윤은 그대로 바
윤구주가 자기를 창밖으로 내다 버리려 하자 정태웅은 순간 입을 틀어막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남궁 서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말이라면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라고 해도 이 괴물 같은 녀석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것이다. 정태웅이 입을 꾹 다물자 윤구주는 봉안보리구슬 팔찌를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그 팔찌엔 음산한 기운이 들어있어 팔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기차 안의 온도가 살이 떨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역시 보물이야.”“이젠 한 그루의 천년초만 남았어. 그것만 있으면 기린화독에 벗어날 수 있어.”윤구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세 그루의 천년초를 모이기만 한다면 윤구주는 최고의 경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윤구주는 전에 버렸던 모든 것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군왕님, 우리 지금 어디 가요?”정태웅이 갑작스레 질문했다. 윤구주는 봉안보리구슬 팔찌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채은이 찾으러 갈 거야.”“형수님요?”“군왕님, 형수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셨어요?”정태웅이 얼른 물었다. “채은이 병은 당장 치료가 될 수 없어. 내가 최고의 경지를 회복한 후에야 치료할 수 있어.”윤구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군요.”말을 마친 정태웅이 갑자기 남궁서준을 향해 말했다. “야, 넌 우리 군완님께서 얼마나 좋은 여자친구를 만났는지 알아?”뜬금없는 질문에 멍해졌던 남궁서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하!”“우리 형수님은 말이야, 엄청 아름다우신 분이야. 마음씨는 더 말 할 것도 없지.”“그리고 말이야, 우리 군왕님과 하마터면 결혼까지 할 뻔했었다고.”“하지만 그 군형 삼마 개자식들 때문에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어.”군형 삼마를 거론한 정태웅의 눈빛에 순간 살의가 흘러넘쳤다. 남궁서준은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쳐다보았다. “형님, 저에게 정말 형수님이 있어요?”윤구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형수가 있지.”그 말에 웃음이라고는
고대 도시 기차역. 소채은이 소청하, 천희수와 통화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정태웅, 남궁서준 그리고 시괴 동산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렸다. “드디어 형수님을 만날 수 있다니 너무 흥분되잖아.”기차에서 내린 정태웅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 맞다. 군왕님, 규비 여신님도 백화궁도 서남 고대 도시에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만나신 적 있으세요?”정태웅은 갑자기 절세 미녀인 연규비를 떠올렸다. “만났어.”윤구주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와아아, 규비 여신님께서 형수님을 질투하진 않았어요? 군왕님의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 났던 사람이잖아요.”정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가 그를 노려보았다. 깜짝 놀란 정태웅이 얼른 입을 닫았다. 기차역을 나선 윤구주는 세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출입구를 도착하자 새까맣게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팬클럽인 듯했다. 손에 커다란 사진과 플래카드는 물론 저마다 짐을 한가득 들고 잔뜩 흥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한 여자의 섹시 컨셉의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대스타 은설아, 서남 고대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연예인이 오나 보네.”쓱 훑어보던 윤구주가 덤덤하게 얘기했다. “빠순이들, 덕질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정태웅이 욕설을 지껄였다. “은설아라는 연예인이 최근 뜨고 있긴 해요. 영화, 예능 심지어 할리우드 진출까지 노리고 있어요. 심지어 제 휴대폰에도 비키니 사진이 몇 장 있는걸요.”정태웅에 낯짝도 두껍게 말을 이었다. “뚱땡이, 역겹게 굴지 마.”윤구주가 참지 못하고 장난스레 욕설을 흘렸다. “군왕님, 전 진심으로 하는 얘기예요. 은설아가 정말 예쁘긴 해요. 나올 덴 나오고 들어갈 덴 들어간 몸매라 규비 여신님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아요.”정태웅이 변태 같은 멘트를 계속 내뱉었다. 윤구주는 더 이상 뻔뻔한 정태웅을 대꾸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제일 측면에 있는 문으로 나
총소리 때문에 기차역 출구 쪽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중에서도 열광하던 팬들은 총소리를 듣더니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은설아 또한 겁을 먹었다.그녀의 옆에 있던 십여 명의 경호원들은 그녀를 경호하며 크게 외쳤다.“어서, 어서 은설아 씨를 경호해서 옆으로 빠져!”경호원 여러 명이 은설아를 지키며 옆으로 빠져나갔고 나머지는 남아서 싸웠다.그 킬러들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듯했다.게다가 모두 무사 이상의 무인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설아 곁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대스타 은설아는 경호원 세 명의 경호를 받으며 허둥지둥 도망쳤다.그 광경을 바라보던 정태웅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저하, 저희가 좀 도와줄까요?”윤구주는 덤덤히 현장을 쓱 둘러보았다.“도와주고 싶으면 돕든가.”“네!”정태웅은 그렇게 대답한 뒤 곧바로 사람들 틈 사이로 돌진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대스타 은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경호원 세 명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의 맞은편에 갑자기 무인 십여 명의 기운이 나타났다.그 기운을 느낀 윤구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꽤 많이 왔네.”은설아를 지키던 세 명의 경호원은 사력을 다해 겁먹은 은설아를 지키려고 했다.“은설아 씨, 이쪽으로 도망치세요!”한 경호원이 말을 마치자마자 슉 소리와 함께 은빛 화살이 어둠을 뚫고 나와 그의 목을 꿰뚫었다.가엽게도 그 경호원은 목을 움켜쥔 채로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다른 두 명이 손을 쓰려는 데 또 화살 두 개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었고 곧 그 두 사람도 바닥에 쓰러져서 더는 일어나질 못했다.세 명의 경호원들이 모두 죽자 대스타 은설아는 겁을 먹고 크게 울면서 비명을 질렀다.심지어 신고 있던 유리 구두 한 쪽이 벗겨졌다.그녀는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킥킥! 은설아, 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하다니 너무 늦은 거 아냐?”그 말과 함께 복면을 쓴 사람 십여 명의 은
마르고 키가 큰 킬러는 뒤에서 비명이 들리자 서둘러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조금 전까지 그의 뒤에 있던 십여 명의 킬러 중 반이 쓰러지고 반만 남아 있었다.몇 명은 어느샌가 몸이 반으로 갈라져서 피바다 위에 쓰러져 있었다.더욱 충격적인 건 어느샌가 사람 세 명이 그의 등 뒤에 귀신같이 나타나 서 있다는 점이었다.윤구주와 남궁서준, 시괴 동산이었다.갑자기 나타난 윤구주 일행 때문에 마르고 키가 큰 킬러는 본능적으로 눈가가 떨렸다.옆에 있던 은설아도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갑자기 나타난 윤구주 일행을 바라보았다.“젠장, 너희는 누구야? 감히 우리 일을 망치려고 들어?”마르고 키가 큰 킬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 들더니 윤구주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그가 총을 꺼내 들자 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오늘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뭔 소리야? 감히 나한테 꺼지라고 해?”마르고 키가 큰 남자는 윤구주의 말을 듣더니 헛웃음을 쳤다.“그래. 꺼지지 않으면 죽을 거야.”윤구주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빌어먹을, 죽으려고!”마르고 키가 큰 남자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아주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윤구주의 말을 들은 그는 곧바로 총을 쐈다.탕!총알이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총소리를 들은 대스타 은설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런데 총알이 날아드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거인이 윤구주의 앞을 막아섰다.시괴 동산이었다.동산이 나서는 순간, 날아들던 총알이 그의 몸에 부딪히며 팅 소리를 냈고, 총알은 곧 바닥에 떨어졌다.바닥에 떨어진 총알과 다친 곳 없이 멀쩡한 동산을 본 마르코 키가 큰 킬러는 얼이 빠졌다.“세상에! 저 거인, 몸으로 총알을 막은 거야?”주위에 있던 킬러들은 깜짝 놀랐다.마르고 키가 큰 킬러가 총을 쏜 뒤 윤구주는 차갑게 말했다.“동산아, 찢어 죽여.”윤구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산은 곧바로
윤구주가 동산과 남궁서준, 정태웅을 데리고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건장한 체격의 암부 구성원들은 정중한 태도로 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비싼 차들이 길게 늘어져 서 있었다.암부 구성원들을 본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정태용, 서남의 암부 부하들에게 연락한 거야?”정태웅은 서둘러 달려가서 대답했다.“네! 저하께서 친히 서남까지 오셨는데 당연히 암부 구성원들이 저하를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멍청하긴, 이러면 너무 눈에 띄잖아! 내 신분이 공개되면 안 된다는 걸 깜빡한 거야?”윤구주는 정태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정태웅은 억울한 얼굴이었지만 감히 대꾸하지는 못했다.“정태웅, 명심해. 절대 사람들 앞에서 내 정체를 알려서는 안 돼. 알겠어?”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정태웅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하. 절대 티 내지 않겠습니다!”정태웅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윤구주는 아직 정체를 드러낼 수 없었다.암부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체를 알릴 수 없었다.그의 신분이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화진 전체가 순간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암부 쪽.윤구주와 정태웅, 남궁서준, 시괴 동산이 도착하자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 빠르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서남 암부, 제 39여단 여단장 원건우, 지휘사님을 뵙습니다.”자신을 사단장이라고 칭한 건장한 남자는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정태웅을 향해 예를 갖췄다.다른 서남 암부 구성원들도 서둘러 경례했다.화진 암부에는 40만 명 가까이 되는 정예병들이 있었다.40만 명의 정예병 중 3대 지휘사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를 제외하고 68개의 사단으로 나뉜다.각 사단의 사단장들은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된 자들로 모두 대가 이상의 수준이었다.눈앞의 우람한 남자는 서남 39사단의 사단장이었다.“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건장한 남자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원건
...백화궁 입구.누런색의 긴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문 앞의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그 노인은 다름 아닌 백경재였다.윤구주가 백화궁을 떠난 뒤로 백경재는 온종일 문 앞에서 윤구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오늘로 벌써 7일째였다.이때 위풍당당한 차량 행렬이 백화궁 앞에 멈춰 섰다.차량 행렬을 본 백경재는 서둘러 일어나 긴장한 얼굴로 차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무슨 상황이지?”차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암부 구성원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곧 거인만큼 우람진 남자가 백경재의 앞에 나타났다.시괴 동산이었다.“어? 동산이잖아... 저하께서 돌아온 건가?”백경재가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에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하하, 저하! 정말로 저하네요!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백경재는 윤구주를 보자 곧바로 기쁜 얼굴로 그에게 달려갔다.그리고 곧 윤구주를 따라 정태웅과 남궁서준도 차에서 내렸다.“정태웅 지휘사님도 계셨어요?”정태웅을 본 백경재는 깜짝 놀랐다.정태웅은 눈을 접어 웃으면서 말했다.“네! 전 저하를 보러 왔어요!”윤구주는 백경재를 보고 물었다.“백 선생, 채은이는?”“저하, 채은 씨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저하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어요!”“그래, 얼른 채은이를 보러 가야겠어. 안내해.”“네!”백경재는 서둘러 윤구주를 소채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윤구주가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오자 백화궁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었다.풍만한 엉덩이에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인해민은 푸른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주 섹시하고 요염했다.그녀는 밖으로 나온 뒤 곧바로 윤구주에게 말했다.“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거 알아요? 구주 오빠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우리 궁주님과 채은 씨가 구주 오빠를 아주 보고 싶어 했어요.”윤구주는 인해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지금 왔잖아.”“돌아왔으니 얼른 가서 채은 씨를 달
소채은의 방 안. 소채은은 여전히 윤구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그녀는 매일 윤구주가 당부했던 대로 먼저 윤구주가 그녀를 위해 제작했던 경체단을 먹은 뒤 홀로 묵묵히 그를 그리워했다.이때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누구예요?”소채은이 물었다.“나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채은은 흠칫했다.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윤구주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구주야?”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문 앞에 준수한 외모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채은아, 나 돌아왔어!”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소채은은 곧바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포옹에 윤구주는 웃는 얼굴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았다.“구주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한 줄 알아?”소채은은 윤구주를 꼭 안은 채 원망스레 말했다.윤구주는 그녀를 위로했다.“미안해. 일이 좀 있어서 시간이 좀 지체됐어.”“그래? 앞으로는 절대 날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둬서는 안 돼. 널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면 난 어떡해?”소채은의 바보 같은 말에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니, 그럴 리가 있겠어?”“그럴 수도 있지! 우리 구주,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다른 여자들이 분명 눈독을 들일 거란 말이야!”소채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잃을까 봐 두렵다는 얼굴로 윤구주의 팔짱을 꼈다.소채은의 모습에 윤구주는 웃었다.“구주야, 얼른 얘기해 봐. 그동안 뭘 했던 거야?”소채은은 윤구주를 잡고서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물었다.윤구주는 그녀에게 간단히 봉안보리구슬을 찾은 과정을 얘기했다.그리고 어떻게 고씨 일가를 상대했는지, 어떻게 서남을 주름잡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소채은은 그의 얘기를 듣더니 의아해하면서 말했다.“응? 그 봉안보리구슬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주 중요해.”소채은은 그렇냐고 짧게 대꾸했다.“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대도시든 작은 도시든 거리에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 광경은 설날보다도 더 떠들썩했다.그 순간, 흑여산맥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한 작은 마을에서도 축하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정말 좋아. 그 위풍당당하던 설국이 우리 화진의 속국이 되었다니. 하하, 얼마 전에 내 아내가 설국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나한테 여권을 만들라고 했거든? 이젠 여권을 발급받을 필요도 없이 바로 가면 되겠어!”“그러게 말이야.”“내 동료들도 스키 타러 설국에 갈 거래.”“설국 국주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설국이 갑자기 우리 속국이 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변경 지역의 취사병인 우리 친척 형이 그러던데 설국이 우리 속국이 된 건 한 사람 때문이래.”“한 사람?”“그래. 우리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우리 화진의 왕이었대. 이름이 무엇인지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혼자 설국으로 가서 많은 설국 병사들을 죽이고 심지어 설국의 국주까지 단칼에 죽였대.”“그... 그게 가능해? 혼자서 한 나라를 굴복시킨다고? 오버가 너무 심한 거 아냐?”“오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설국은 이제 우리 속국이 되었잖아. 그렇지?”“응,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긴 해.”“그만해. 우리 같은 백성들은 나라의 큰일에는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는 우리나라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돼.”“하하, 맞는 말이야. 자, 건배하자고!”음식점 안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그들이 기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옆에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그 두 사람의 앞에는 풍성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온갖 산해진미가 다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아주 뚱뚱하고, 다른 한 명은 대머리 스님이었다.자세히 보니 그 두 사람은 흑여산맥 접경지대로 향하던 정태웅과 공수이였다.“수이 동생, 들었지? 저 사람들 우리 저하 얘기를 하고 있어!”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옆 테이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게
차비연이 떠난 뒤 박천후와 염수천이 빠르게 달려왔다.“저하, 화진 무도의 최강이라 불리는 종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마 종문에서 저하를 상대하려고 하는 걸까요?”염수천은 윤구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멍청하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당시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많은 종문들이 우리 저하가 왕이 되는 걸 반대했어. 그런데 지금 종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당연히 우리 저하를 노린 거 아니겠어? 저하,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 당장 북방군을 이끌고 가서 그놈들을 토벌하겠습니다!”박천후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박천후처럼 용맹한 사람은 무서운 게 없었다.그에게 있어 윤구주를 공격하려는 사람은 모두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그러니 대군을 이끌고 종문을 휩쓰는 일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뜻밖의 얘기를 했다.“무도의 일은 당연히 무도로 해결해야지. 박천후, 이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하지만...”박천후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를 제지했다.“6년 전 난 이미 종문을 혼쭐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들이 지금 다시 자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오히려 좋아.”윤구주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당시 화진이 금방 평화를 되찾고 10개국과의 전쟁 때문에 휴식해야 하지 않았다면 윤구주는 그 당시 종문과 싸웠을 것이다.그러니 오히려 이것이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저하, 조금 전 칠수방의 그 여자가 종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염수천이 물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아니. 서울에는 공수이와 민규현 등이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네? 공수이요?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요?”염수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염수천은 당시 구주군 소속이었던 사람들을 전부 기억했다.그러나 조금 전 윤구주가 말한 공수이라는 이름
종문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는데 그것은 화진에서 관행 같은 것이었다.칠수방이 나섰다면 아마 다른 종문에서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윤구주의 질문에 차비연이 대답했다.“칠수방에서는 총 6명이 나섰어요. 저희 사숙조께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죠. 다른 종문이라면... 아는 게 많지 않아요.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밖에 몰라요.”현문?그 두 글자에 윤구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화진의 6대종문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으로 이루어졌다.6대종문 중 하나인 현문은 당시 윤구주가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사력을 다해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당시 국주령이 있었고 윤구주가 홀로 10국을 물리친 위대한 업적을 세워서 결국 윤구주는 곤륜에서 왕이 되었다.그러고 보면 현문과 윤구주는 그야말로 숙적이었다.그래서 현문의 사람이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차비연의 말에 윤구주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이다.“얘기해. 현문을 제외하고 모습을 드러낸 다른 종문은 없어?”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차비연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몰라요. 사숙조의 말을 들어 보니 당신이 예전에 노룡산에서 많은 세가의 강자들을 죽였고 종문에서는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하려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요.”“복수?”윤구주는 큰 목소리로 웃었다.“종문이 드디어 나섰네. 좋아, 아주 좋아!”윤구주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웃자 차비연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윤구주에게 말했다.“전 해야 할 말은 다 했어요. 흑흑, 이래도 절 죽여야겠다면 그냥 죽여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정말로 눈을 감고 가슴을 내밀었다. 마치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말이다.윤구주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오른손을 움직여서 거대한 손을 사라지게 했다.쿵!차비연은 허공에서 뚝 떨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윤구주는 더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어.“어라?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차비연은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지자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끝장이야!”여자는 천주검이 지닌 영혼을 갉아먹는 힘을 느꼈다.그 정도 힘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줄은 몰랐는데.”요염한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절망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거대한 천주검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것은 엄청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베려고 했다.요염한 여자가 천주검에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쿵쿵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리면서 날뛰는 검기가 요염한 여자의 몸을 지나쳐 바닥에 꽂혔다.차가운 바닥에는 윤구주의 천주검에 의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지면이 잘린 것만 같았다.“어... 절 죽이지 않는 건가요?”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던 요염한 여자는 땅의 흔들림과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검기를 느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눈보라 속 윤구주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말해. 누가 날 잡으라고 지시한 거야? 그리고 넌 칠수방 삼절칠금채 중 몇 번째야?”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자신을 죽이지 않자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미안하지만 제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전 삼절칠금채 중 셋째인 차비연이라고 해요. 하지만 누가 당신을 잡아 오라고 지시한 건지는 알려줄 수 없어요.”“얘기하지 않겠다는 거야?”윤구주는 싸늘하게 말하더니 허공에 대고 손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 차비연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요염한 여자를 허공에서 움켜쥐었다.“날 죽인다고 해도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허공에 들린 차비연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죽여주지.”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정말로 차비연을 죽이려고 했다.거대한 손은 조금씩 차비연의 몸을 움켜쥐기 시작했고 차비연은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윤구주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 같자 허공에 들린 차비연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잘못했어요. 죽이지 말아줘요... 제발 살려줘요...”차비연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윤구주는 그제야 힘을 뺐다.“
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검으로 자신의 주사기법을 파괴할 줄은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단번에 제 주사기법을 파괴하다니,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그러면 이번에도 한 번 막아봐요!”요염한 여자는 두 손을 움직였다. 곧 그녀의 미간에 있는 기호는 점점 더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 주변을 둘러싼 핑크색 기운도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검은색의 사슬이 나타났다.그 사슬은 아주 강렬한 살기 파동을 뿜어댔는데 나타나자마자 음기가 물씬 느껴졌다.“멋진 오빠, 조심해요!”요염한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손목을 움직였다. 검은색 사슬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눈보라 속에 서 있는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꿈쩍하지 않았다.촤라락!살기가 넘실대는 사슬이 윤구주를 묶었다.“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요? 제 거혼사슬에 묶인다면 3품 절정 강자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거든요!”요염한 여자는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맨 뒤 키득거리며 웃었다.옆에 있던 박천후는 요염한 여자가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매는 걸 보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여자를 공격하려고 했다.“바보야, 뭘 하려는 거야?”염수천이 박천후를 말렸다.“뭘 하긴? 저하를 도와야지!”박천후가 대답했다.염수천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말했다.“멍청하긴. 넌 가만히 있어. 저하가 어떤 분이신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하지만...”“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넌 그냥 얌전히 있어!”염수천은 욕을 한 뒤 박천후를 무시했다.다른 한편, 요염한 여자는 거혼사슬로 윤구주를 속박한 뒤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이제 순순히 따라오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공격할 거니까요.”거혼사슬에 묶인 윤구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딴 걸로 날 잡으려고?”“흥,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요! 이젠 절 탓하지 말아요!”요염한 여자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어 거혼사슬을 가리켰다.“금법, 개시!”촤악!
윤구주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이라니!윤구주가 칠수방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화진은 무공으로 나라를 세웠다.무도의 3대 서열은 화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었는데 3대 서열은 각기 문벌, 세가, 가장 강력한 종문이었다. 전에 윤구주는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처단했고 종문의 자제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소문에 따르면 종문의 자제들은 아주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기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한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동설한에 종문 출신의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게다가 다름 아닌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 출신이라니.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종문을 알아맞히자 요염한 여자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맞아요. 단번에 제 무공을 알아보고 제 신분을 알아맞히다니, 제가 기다리던 사람은 역시 당신이 맞네요!”윤구주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소문에 따르면 칠수방은 아름다운 여자만 제자로 삼는다고 하지. 그리고 종문 중에 삼절칠금채가 있다고 하던데 넌 그중 누구지?”윤구주가 칠수방의 상황을 읊자 요염한 여자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대답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칠수방에 대해 이렇게나 상세히 알고 있다니, 놀라워요. 저랑 같이 지금 바로 칠수방으로 가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제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고 당신도 다칠 필요도 없으니까요.”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잡으려고?”요염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말해봐. 누가 날 잡으라고 시킨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요염한 여자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대신 순순히 절 따라온다면 무사할 거라고 장담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툭툭 쳤다.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칠수방 따위가
지면에 균열이 생겼고 곧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청색을 띤 무홍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박천후의 두 주먹은 마치 용과 같았고 그의 주먹에 권의가 모이기 시작했다.“노용권!”마치 푸른 용 같은 권의가 나타나는 순간, 박천후는 마치 하늘까지 부술 듯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응?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싸우려 하네요? 그렇다면 저도 제대로 놀아주죠!”요염한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미간에 붉은색의 룬 문자가 나타났다.그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하자 여자의 몸 주변에 옅은 핑크색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곧이어 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거미줄 같아 보이는 기운으로 이루어진 실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주 많은 양의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박천후를 뒤덮었다.박천후는 비록 권법은 대단했지만 요염한 여자의 기괴한 공법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지만 무시무시한 실들이 그의 두 팔을 꽁꽁 감쌌다.박천후는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그 실들은 마치 금강석처럼 더없이 단단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박천후가 여자에게 당하자 검을 빼 드는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박천후, 조심해!”검을 빼든 사람은 다름 아닌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마찬가지로 절정 삼중천의 실력을 갖춘 염수천이 검을 빼 들고 나서면서 박천후의 팔을 묶은 실을 베려고 했다.챙강!실은 염수천에 의해 잘리자 핑크빛 기운이 되어 요염한 여자의 곁으로 돌아갔다.“박천후, 괜찮아?”박천후가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염수천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박천후를 바라보았다.박천후는 코웃음을 쳤다.“괜찮아. 조금 전에는 내가 적을 얕봤어.”그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요염한 여자를 노려보았다.“거기 너, 다시 한번 붙어 보자!”맨발인 요염한 여자는 염수천이 나서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쯧쯧, 절정 실력의 두 사내들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을 괴롭히려고 했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창피하
귀청을 찢는 듯한 목소리에도 맨발로 서 있는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매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전 이곳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안 되나요?”‘뭐?’“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박천후는 점점 더 이상함을 느꼈다.맨발의 여성은 계속 웃으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요. 그거 알아요? 제가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웅이에요! 게다가 우리 화진의 왕이라고 해요.”그 말에 박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누가 봐도 윤구주였기 때문이다.“당신은 대체 누구지? 어떤 저의로 이곳에서 우리 저하를 기다린 거야?”박천후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았다.강한 현기가 음파를 통해 맨발의 여자에게 전해졌다.그러나 여자는 박천후의 음파 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킥킥 웃으며 말했다.“저의라뇨? 솔직하게 얘기해도 믿지를 않네요. 연약한 제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무슨 저의가 있겠어요? 전 그저 단순히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헛소리! 마지막으로 물을게. 당신은 대체 누구야?”박천후는 화가 난 상태였다.요염한 여자가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싶은 건가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 이름을 알 자격이 없죠!”“건방지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봐야겠어!”박천후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윤구주가 아끼는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던 박천후는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그는 무려 절정 삼중천이었다.박천후는 여자를 향해 다가가며 주먹을 쥐었다.무시무시한 권의가 강렬한 강풍을 띤 채 여자를 습격했다.박천후의 권법을 본 요염한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마치 연기 같았다.“제가 당신을 두려워할 것 같나요?”말하는 사이, 요염한 여자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손을 움직였고 곧 그녀의 부드러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세상에... 정말 여자가 있는데요? 이렇게 추운 곳에 왜 여자가 있는 걸까요?”옆에 있던 염수천은 호기심이 들었다.윤구주는 사실 일찌감치 눈보라 속 그녀를 발견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그는 덤덤히 고개를 들어 눈보라 속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계속 행군해.”“네, 저하!”그렇게 병사들은 계속해 움직였다.대군이 앞에 있는 여자와 점점 가까워지자 드디어 여자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여자는 청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예스러운 느낌이 났다.그녀는 폭포수와도 같은 머리를 높이 묶고 있었는데 이목구비는 정교했고 피부는 눈처럼 하얬다. 그녀는 비록 긴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몸 선이 예뻐서 아주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녀가 눈으로 뒤덮인 이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서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점이었다.예스러운 느낌의 옷을 입고 있는 미녀가 맨발로 인적 드문 곳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대군은 여자의 곁을 지나치면서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박천후, 염수천도 마찬가지였다.얼굴을 보니 화진 사람 같아 보였다.그런데 왜 이 추운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이곳은 화진과 설국의 접경지역으로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기괴한 여자는 위풍당당한 대군이 지나가는데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계속해 눈사람을 높이 쌓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화진의 대군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저 여자 정말 너무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추운 날에 맨발로 이곳에서 눈사람을 만들다니.”박천후는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게. 어디서 온 여자지? 왜 이곳에 잇는 걸까?염수천 또한 궁금했다.오직 윤구주만이 덤덤한 눈빛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손님이면 대접해 주고 적이라면 내쫓으면 그만이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움직이도록 해.”윤구주의 말에 염수천과 박천후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