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에야 고시연은 정신을 차렸다.그녀가 기절했던 이유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린 지금은 별문제 없었다.“시연아!”“시연아!”옆에 있던 고준형과 고씨 일가의 두 형제는 고시연이 정신을 차리자 서둘러 걱정스럽게 그녀를 불렀다.고시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뒤 도우미에게 물을 한 컵 달라고 해서 물을 마셨다.그녀의 상태가 조금 호전된 것 같자 고준형은 그제야 걱정스레 물었다.“시연아, 괜찮니?”“괜찮아요.”고시연이 말했다.“아빠한테 얘기해 봐. 대체 고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듣기론 고도 4대 문파 사람들이 전부 죽임당했다면서?”고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그 말에 고준형은 곧바로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대체 어떤 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감히 우리 무도 연맹의 사람을 죽인 거야?”고시연은 윤구주라고 바로 말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 일은 제 탓이에요... 제가 먼저 그 사람을 건드려서는 안 됐어요.”“누군데?”그녀의 말에 고준형은 흠칫했다.“전 그의 성만 알아요. 이름은 몰라요.”고시연은 윤구주를 떠올리면서 중얼댔다.“성이 윤씨라고? 설마 안경언 씨가 말했던 그 젊은이니?”고준형이 계속해 물었다.고시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모든 걸 설명했다.“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네. 감히 우리 서남에서 그런 짓을 벌여? 심지어 내 딸까지 위협해?”분노에 찬 고준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맞아요. 그 자식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게 틀림없어요. 아버지, 명령만 내리시면 저랑 둘째가 지금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그 자식을 찾아가서 갈기갈기 찢어 죽일게요!”옆에 있던 고해진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다들 윤구주를 찾으려고 할 때 고시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빠, 오빠, 그 사람을 찾아갈 필요 없어요.”“왜?”고해진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갑자기 입을 뗀 고시연을 바라봤다.“그 사람이 내일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했
고준형은 의아한 얼굴로 자기 딸을 바라보았다.고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자신의 미간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빠, 이것 보세요.”그 말에 고준형과 고씨 일가 형제들은 고시연의 미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미간에 금빛 연꽃 낙인이 있었다. 그 낙인은 마치 불꽃 같아 보였는데 보일 듯 말 듯했다.“이게 뭐야?”화련 낙인을 본 고준형은 당황스러웠다.고시연의 입가에 비참한 미소가 걸렸다.“이건 그 사람이 제 몸에 남긴 생사 주술이에요.”“뭐? 생사 주술?”“네, 이제 그 사람 손에 제 목숨이 달려 있어요. 제가 살 건지, 죽을 건지는 그 사람 뜻에 달려 있죠.”고시연의 말을 들은 고준형은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빌어먹을 놈! 감히 나 고준형의 딸을 위협해? 내가 그놈은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옆에 있던 고씨 일가 형제들도 화를 내며 말했다.“맞아요. 정말 건방지고 악랄한 놈이네요. 감히 시연이를 협박하다뇨?”“시연아, 그 빌어먹을 자식 지금 어디 있니? 내가 지금 당장 널 위해 복수해 주마!”고준형은 화를 내며 말했다.고씨 일가의 현임 가주 고준형은 대가 8품 이상이었고, 육신을 단련한 무인이었다.대가 8품 이상이면 9품 태허 경지 법사를 상대할 수 있었다.고씨 일가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서남 무도 연맹 전체가 화를 내는 것과 다름없었다.고씨 일가가 서남 무도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누군가 고씨 일가에서 가장 아끼는 셋째 아가씨의 몸에 생사 주술을 걸었다고 하니 고준형은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따.“아빠, 아빠는 그 사람 상대가 안 돼요... 심지어 우리 서남 무도 연맹 전체가 그 사람 상대가 안 돼요. 유일하게 그 사람 사대가 될 수 있는 건 아마... 할아버지뿐일 거예요!”고시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시연이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고해식이 제일 처음 입을 열었다.“시연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는 대가 8품이야.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이야?”“맞
용호산 천암사의 대사가 도착한 뒤 고준형이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홍진후 정도 항렬이면 고씨 일가 어르신과 엇비슷했다.고진용의 팔순 잔치만 아니었어도 그가 직접 산에서 내려왔을 리는 없었다.“안녕하세요, 대사님. 대사님께서 직접 저희를 찾아주신 건 저희 고씨 일가의 영광입니다!”고준형은 나온 뒤 곧바로 정중하게 홍진후를 향해 예를 갖췄다.홍진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고 가주, 그럴 필요는 없어.”“아닙니다.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죠.”고준형이 정중하게 말했다.“천암사와 고씨 일가는 백 년 가까이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지. 이번에 갑자기 날 초대하시다니, 무슨 일이야?”홍진후가 물었다.“홍 대사님, 홍 대사님께서 제 딸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고준형이 말했다.“뭐? 고시연 말이야?”홍진후는 의아한 듯 말했다.홍진후가 산에서 내려온 적은 아주 드물었지만, 그는 고시연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리고 고시연이 고씨 일가 어르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고시연의 약혼자는 화진 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세가 출신이었다.그러니 누구라도 고씨 일가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다.“네, 시연이 맞습니다.”고준형이 한숨을 쉬었다.“고시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내게 도움을 청하시는 거지?”홍진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시연은 고씨 일가에서 애지중지 여기기로 유명한데, 어쩌다가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처지가 된 걸까?“대사님, 제 딸이... 제 딸이 생사 주술에 걸렸습니다.”‘응?’그 말을 들은 순간 용호산의 홍진후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생사 주술이라고?”“네! 그게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감히 대사님께 여기까지 와달라고 했겠습니까?”고준형은 탄식하면서 말했다.“그렇다면 얼른 들어가서 확인해 보지.”홍진후가 말했다.“대사님, 안쪽으로 드시죠.”고준형은 곧바로 용호산의 홍진후를 데리고 고씨 일가 안마당으로 걸어갔다.고씨 일가 안마당.그곳에는 고씨 일가 무인들이 많았다.태극문
“그러면 내가 한 번 봐도 되겠니?”홍진후가 물었다.고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미간을 가리키며 말했다.“대사님, 여기 보세요.”홍진후는 고시연의 미간을 살펴봤다.고시연의 미간에 화염 연꽃 낙인이 보일 듯 말 듯한 걸 발견한 용호산의 홍진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아주 포악한 술법이군.”“대사님, 이 생사 주술을 풀 수 있습니까?”고준형이 서둘러 물었다.홍진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동공에서 천둥과 번개가 미친 듯이 유영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벋어 고시연의 미간을 눌렀다.그 순간, 자색의 천둥 번개가 그의 손끝에서 고시연의 미간으로 흘러 들어갔다.그것은 용호산 천암사의 가장 강한 뇌법이었다.그 뇌법이 고시연의 미간으로 흘러드는 순간, 고시연은 온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의 미간을 살펴보니 화염 연꽃 낙인은 공격을 받은 것처럼 천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건곤감리, 뇌정오역!”황진후는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고 원형의 뇌법 낙인이 순식간에 고시연의 미간으로 쏘아졌다.그 뇌법이 출현하는 순간, 마치 뇌전을 온몸에 두른 것처럼 번개가 치지직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온몸을 유영했다.그 뇌전들은 서로 뒤엉켜서 고시연의 미간으로 흘러 들어갔다.마치 윤구주가 시전한 화련금안술을 제압하려는 듯 말이다.용호산의 홍진후가 고시연을 위해 생사 주술을 풀려고 할 때, 남릉의 금빛 찬란한 스위트룸 안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윤구주는 갑자기 뭔가를 감지하고 두 눈에 빛을 번뜩였다.“흥! 감히 내 화련금안술을 풀려고? 할 수 있겠어?”윤구주는 차갑게 말하더니 수인을 맺은 뒤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빛 한 줄기가 별똥별처럼 고씨 일가로 날아갔다.고씨 일가 쪽.용호산의 홍진후는 뇌법을 통해 고시연의 화련금안술을 풀려 했는데 그 순간 빛 한 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고시연의 체내로 들어갔다.그 빛줄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고시연은 처참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곧 그녀의 미간에서 뇌법에 제압당했던 호련금안 낙인이 갑자기 반짝였고
고신연의 온몸이 완전히 불타오르고 있을 때, 용호산의 홍진후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순간 쿠구궁 소리와 함께 뇌전들이 그의 몸에서 나타났다.그 뇌전들은 순식간에 고시연의 체내로 파고 들어가서 불꽃을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그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더욱 무시무시한 건 화염이 마치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고시연의 전신을 뒤덮었다는 것이다.“아빠... 살려주세요!”고지연의 입에서 고통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시연아!”고준형은 딸이 불타서 죽을 것 같자 겁을 먹고 서둘러 홍진후에게 말했다.“대사님, 어서 제 딸을 구해주세요!”그러나 안타깝게도 용호산의 홍진후도 화련금안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시연이 불타서 죽을 것 같을 때, 갑자기 펑 소리가 고시연의 몸에서 들려오더니 곧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던 금색 불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불꽃이 흩어진 뒤 고준형과 용호산의 홍진후는 순간 멍해졌다.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내 화련금안술을 풀려고? 죽고 싶어?”그 목소리는 마치 허무에서 온 것 같기도, 또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그러나 고시연은 그 목소리가 윤구주의 목소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 마귀였다!윤구주 말이다!윤구주의 목소리에 고준형은 당황했다.더욱 당황스러운 건 용호산의 홍진후였다.그는 눈을 부릅뜨고 그 목소리를 향해 말했다.“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어떻게 실전된 지 오래된 천리전음 같은 비술을 아는 겁니까?”“용호산 출신의 당신은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어. 고씨 일가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해. 내가 필요하다고 했던 걸 준비해 놓으라고. 내일 직접 가지러 갈 테니까 말이야.”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사라졌다.윤구주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불타 죽을 뻔했던 고시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용호산의 홍진후는 놀란 얼굴로 고준형을 바라보았다.“고 가주... 대체 얼마나 무
아침 일찍부터 고씨 일가에 수백 명의 무도 강자들이 모였다.그들은 전부 대무사 급이었고 심지어 수십 명은 무도 연맹 대가 급 강자였다.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 동시에 그들은 고씨 일가 정문 앞에 걸린 거대한 시계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그들은 그 마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씨 일가 정전 안쪽에는 수십 명의 무도 강자들이 있었다.태극문과 청성관의 장문인, 고씨 일가의 강자들, 용호산의 홍진후도 대전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씨 일가의 가주 고준형은 제일 위쪽에 앉아 있었다.그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주 빛나는 큰 총이 놓여 있었다.90kg쯤 되는 그 총은 강철로 만들어졌고, 그 총으로 고준형은 유명해졌었다.고준형의 곁에는 고씨 일가의 셋째 딸 고시연이 앉아 있었다.그러나 예전에는 아름답던 고시연이 지금은 아주 초췌해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몇 시야?”얼마나 지났을까, 고준형이 갑자기 입을 열어 물었다.한 종사 경지의 노인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가주님, 9시가 됐습니다.”그 말을 들은 고준형은 대꾸하지 않았다.그저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을 뿐이다.10시.윤구주와 고시연이 약속한 시각이었다.윤구주는 10시가 되면 직접 고씨 일가로 와서 봉안보리구슬을 가져갈 거라고 했다.이제 한 시간만 남았다.시간은 계속해 흘렀다.한 시간은 고씨 일가 사람들에게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만 바라봤다.9시 30분.9시 40분.9시 50분.시간이 1분 1초 흘러서 거의 10시가 될 때쯤, 태극문의 장문인 원이태가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고 가주님, 그 건방진 자식이 도착했는지 제가 나가보겠습니다.”태극문이 나서자 청성관의 양서호도 말했다.“저도 나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두 장문인은 윤구주가 도착했는지를 알아보려고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대전을 나섰다.고씨 일가 마당에는 수백 명의 무도
“내 얘기 하는 거야?”이때 엄청난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심지어 실력이 약한 편인 무인들은 입에서 피를 흘렸다.우레와도 같은 목소리와 함께 잘생긴 남자가 신처럼 허공에서 내려왔다.윤구주였다.쿵!그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견고한 청석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왕과 같은 기운에 주변 공기가 윙윙거렸다.윤구주의 출현에 고씨 일가 사람들과 태극문, 청성관의 장문인들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들은 훤칠한 윤구주와 그의 젊은 용모를 보았다.잠깐이지만 신을 만난 것만 같았다.윤구주는 고씨 일가의 마당에 도착한 뒤 시선을 들어 원이태와 청성관의 양서호를 힐끗 보았다.“조금 전에 당신들이 나더러 겁쟁이라고 했지?”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태극문의 원이태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오히려 청성관의 양서호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우리가 그랬다면?”“당신들 고씨 일가 사람이야?”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질문을 받은 청성관 양서호는 살짝 당황해서 말했다.“아니.”“고씨 일가 사람이 아니라면 비켜. 여기서 자꾸 시끄럽게 굴면 죽일 줄 알아.”윤구주가 무자비한 목소리로 말했다.윤구주가 그렇게 말하자 양서호는 고집을 꺾지 않고 말했다.“이 자식, 난 서남 무도 연맹 청성관의 장문인이야. 네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건방진지 내가 한 번 알아보겠어!”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다.눈앞의 청성관 장문인 양서호가 그랬다.그는 그렇게 말한 뒤 청성관에서 제일 유명한 연리환식을 선보이며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연리환식은 몸과 그림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청성관의 장문인인 양서호가 연리환식을 선보이자 몸과 그림자가 겹치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에서 윤구주를 공격했다.“역시 청성관 장문인답네. 아주 완벽한 연리환식이야!”“맞아!”“저 자식 재수도 없지. 하필 첫 상대가 양서호 장문인이니 말이야.”주변 무인들이 의논이 분분할 때 윤구주는 양서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손바
윤구주는 단숨에 청성관의 장문인을 죽인 뒤 고개를 돌려 다른 쪽에 서 있는 태극문의 원이태를 바라보았다.“당신은? 당신도 한 번 시험해 볼래?”원이태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뒤로 몸을 물리면서 서둘러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뇨... 아뇨...”“그러면 꺼져! 오늘 얘기해 두는데 난 고씨 일가 사람들을 찾아온 거야.”윤구주는 호기롭게 말한 뒤 곧바로 눈앞에 있는 고씨 일가 안쪽으로 향했다.“누가 감히 우리 고씨 일가에 제멋대로 쳐들어온 것이지?”윤구주가 고씨 일가의 내전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수십 개의 무도 강자들이 튀어나왔다.그들은 전부 종사 급의 강자들이었다.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반원 형태로 윤구주를 겹겹이 에워쌌다.그들의 얼굴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고씨 일가에서 많은 고수들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겨우 너희들로 날 막으려고?”한 종사 경지의 노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이 자식, 믿기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해봐!”“그래!”고씨 일가의 고수들이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내전에서 들려왔다.“그만!”그 목소리와 함께 고씨 일가의 가주 고준형이 내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그의 곁에는 아름다운 고시연과, 용호산의 홍진후가 있었다.고준형은 윤구주가 아주 젊고 잘생기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는 딸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 훤칠했다.윤구주를 본 고준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왜 갑자기 우리 고씨 일가의 영역에 쳐들어온 겁니까?”윤구주가 말했다.“내 이름은 알 필요 없어. 내가 묻지. 당신은 고씨 일가의 누구지?”“전 고씨 일가의 가주 고준형이에요.”상대방이 고씨 일가 가주라는 말을 듣자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고씨 일가 가주라면 일이 쉽게 풀리겠군. 내가 원한 물건을 내놔. 그러면 아무도 난처해지지 않고 편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야.”윤구주가 바로 물
“나 정도 실력이면 상대가 구오 지존이 아닌 이상 무적이야. 구주왕, 죽을 각오나 해! 당신을 죽이는 건 시작에 불과해. 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천도궁이야말로 화진의 주인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화진 사람들은 모두 우리 천도궁을 진짜 신으로 모셔야 해!”우렛소리가 울리며 핏빛의 벼락으로 이루어진 핏빛 용이 구름을 뚫고 윤구주를 향해 덮쳐 들었다.“흥, 악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자가 감히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해? 겨우 반폭 구오 지존이면서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는 거야?”윤구주가 다시 한 걸음 내밀었다. 그가 손을 들자 멈추었던 빗방울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하늘로 올라가는 빗방울들은 예리한 검들이 되었다. 빗방울에서 엄청난 검의 위력이 느껴졌다.솩, 솩!눈 깜짝할 사이에 핏빛 용은 빗방울에 꿰뚫려서 만신창이가 되었다.“뭐야? 구주왕! 이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이건 금지술이라고. 내가 백 년 동안 수련해서 겨우 시전한 것인데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없을 거야!”추현송은 크게 외치면서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응집하라!”핏빛 용이 다시 만들어졌고 그것의 혈기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붉은색 빛이 산 전체를 환히 밝혔고 붉게 물들어진 하늘은 충격적이었다.“약하면 약한 건지, 쓸데없는 말이 많네.”쿠구궁!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더니 손바닥이 핏빛 용과 붉은색의 구름을 내리쳐서 흩어지게 했다.곧 세계가 다시 조용해졌고 추현송은 넋이 나갔다.그의 금지술이 이렇게 사라지다니.이것이 바로 구주왕의 실력인 걸까?“하하하, 역시 구주왕은 남달라. 하지만 난 서울로 올 때 이미 너와 싸울 거라는 걸 알았어. 나는 너 때문에 서울로 온 거야.”추현송은 이를 악물고 법기를 하나 꺼내며 수인을 맺었고, 이내 핏빛 안개가 법기에서 뿜어져 나왔다.“이건 천도궁 서울 분문에서 추출한 정혈이야. 서남 재벌의 목숨을 연장하는 데 쓰려고 했던 것이지. 이 정혈은 무려 20조에 달하는 거래였다고. 하지만 내 상대가 구주왕이니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시간이 멈춘 것처럼 빗방울들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추현송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신의 경지였다.“당신이 진짜 배후였네. 견배영이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가 있었어. 말해! 너 정체가 뭐야?”추현송은 쓰레기를 버리듯 견배영을 내팽개친 뒤 온 신경을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집중했다.쿵!그 사람이 움직였다. 그는 구름 위를 거니는 듯했고 동시에 걸음걸음마다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강렬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가까워졌고 그의 그림자는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엄청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콱!추현송은 혀를 꽉 깨물었다. 그는 고통으로 정신을 붙잡으려고 했다.다시 상대방을 마주하게 된 추현송은 순간 표정이 심각해졌다.“저 자식 온몸에서 치명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어. 운이 좋지 않다면 오늘 이곳이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어. 너 이 자식! 네 정체가 뭐든 상관없어. 천도궁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냐. 내 배후에 있는 종문 동맹이 널 처참히 죽일 거다!”윙!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그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추현송을 죽이는 것이었다.협박해도 소용없자 추현송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더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를 죽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젠장, 날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난 팔부 동천 절정이니까! 구오와는 겨우 한 걸음 차이라고. 난 이미 천인합일의 도리를 깨쳤어. 천도술 뇌연, 천벌행주!”추현송은 정혈을 토했고 이마에는 핏발이 섰다. 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핏자국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핏자국에서 빛이 번쩍이자 하늘에 핏빛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 사이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면서 우렛소리가 들렸다.바닥에 쓰러진 견배영은 문득 머리털이 쭈뼛 서
상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본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견배영, 넌 은용위 지휘사이자 임정설 휘하의 유능한 부하라지? 사람들은 너의 현공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힘을 못 쓰는 거야? 나랑 두 시간 넘게 싸웠으면서 내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잖아.”맞은편의 노인이 웃으면서 비아냥댔다.“쳇!”견배영은 이를 꽉 깨물었다. 천도궁의 부궁주가 서울 분문에 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추현송은 백 년을 산 팔부 절정 강자였다.견배영은 이제 막 팔부 경지에 다다랐기에 추현송과 싸운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두 사람의 엄청난 실력 차이 때문에 빠르게 물러났을 것이다.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국방부 사람들이 아래서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은용위는 이젠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다. 국주는 그들의 충성심을 생각해서 그들이 한 짓을 못본 척해주었지만 구주왕은 달랐다. 그가 알고 있는 구주왕이라면 은용위가 저질렀던 짓 때문에 그들을 산 채로 찢어발길지 몰랐다.살고 싶다면 반드시 구주왕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이 악물고 싸울 수밖에 없겠어. 싸우다가 죽으면 적어도 명성은 챙길 수 있잖아. 만약 실력 차이 때문에 도망친다면 구주왕에게 바로 살해당할 거야!”구주왕의 수단을 떠올린 견배영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화진의 백성이 보기에 구주왕은 백성의 편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이자 화진의 평화를 지켜주는 영웅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마귀나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하하! 겁이 나서 그렇게 덜덜 떠는 거야? 싸우지 않는 건 어때? 이젠 임정설에게 충성하지 말라고. 대단한 분의 곁에 있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법이야. 임정설에게 충성해 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야. 차라리 우리 천도궁에 가입해. 실컷 즐기면서 살라고. 얼마나 좋아?”추현송이 웃으면서 말했다.그건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견배영을 영입하고 싶었다.은용위는 화진의 권세가들의
사람들을 구했다는 말에 윤구주는 뭔가를 떠올렸다.소문에 따르면 천도궁은 대외적으로 선인이 될 수 있다며 홍보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정혈을 빨아먹었다. 소녀의 정혈을 먹고 살았기에 천도궁 사람들은 모두 동안으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그 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도를 닦고 도술을 배우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속이며 돈을 뜯어냈다.“구출한 사람들은 어디 있어? 그곳으로 안내해 줘.”윤구주가 말했다.민규현이 윤구주를 데리고 조금 전 은용위에 구출된 소녀들을 찾으러 갔다.임시로 설치된 텐트 안에서는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소녀들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그들 모두 눈빛이 공허하고 몸이 여위었으며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다들 심각하게 학대를 당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피가 심각하게 부족해요. 그래서 조금 전에 군의관이 수혈해 주었어요.”민규현이 소개했다.그들을 치료하던 군의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검사해 봤는데 다들 몸 곳곳에 멍을 달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으로 할퀴거나 물어뜯은 것 같아요. 특히 하반신 상태가 심각해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평생 소변 주머니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돌봄 없이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몸의 상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다들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많이 망가졌다는 거예요.”텐트 안에 있던 군의관들은 고개를 저었고 간호사들은 소녀들의 안타까운 사정에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윤구주는 침묵했다. 그는 종문을 너무 얕보았다.화진을 분열시키려고 한 것만으로도 죽을죄인데 그들의 악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이때 정태웅이 마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정태웅은 무섭게 생긴 편이었기에 소녀들은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어떤 소녀들은 본능적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면서 온순하게 굴었다. 장기간 학대를 당한 탓인 듯했다.“어?”짝!정태웅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윤구주에게 뺨을 맞았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민규현, 네 사람들
“우리 서요산이 지우를 불러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었거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어. 문씨 일가는 네가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종문 동맹에 우선 서요산을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래야 우리에게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구주야. 우리 서요산은 이번에 윤씨 일가를 돕지 못할 것 같다. 홀로 종문 동맹과 싸울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다니!그 소식에 서요산 분문의 제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서요산 거자는 다음 검종 종주가 될 사람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요산의 거자를 공격했다니, 서요산의 명맥을 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종문 동맹! 이 자식들 정말 극악무도하네요!”분문의 제자가 화를 내면서 욕을 했다.갑작스러운 얘기에 윤구주도 더는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서요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나요? 서요산의 거자는 이미 죽었으니 함지우까지 죽게 할 수는 없죠. 정 어려우면 저한테 보내요.”“아주 심각해. 너도 알다시피 서요산 검탑에는 마귀가 봉인되어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화진에는 엄청난 재앙이 찾아올 거야. 그 때문에 나도 예정보다 일찍 출관했어. 곤륜 쪽도 평화롭지는 않아. 됐다. 너는 일단 종문 동맹을 평정해. 우리도 최대한 너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노력할게. 너는 마음 놓고 싸워. 종문 동맹은 화진의 질서를 삼천 년간 어지럽혔어.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지.”푸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이 산에서 벗어나며 산이 뒤흔들리는 광경이었다.“문씨 일가는 대체 얼마나 일을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거지? 내가 손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다니. 벌써 위협을 느낀 건가? 천도궁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윤구주는
피가 칼날을 적셨다. 국방부가 종문을 공격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각 종문의 서울에 있는 분문도 은용위의 공격을 받았다.은용위에게 내려진 명령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이었다.자운각과 칠수방 분문은 겨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칠수방의 분문 밖에는 윤구주 휘하의 한 장수가 수문장처럼 칠수방을 지키고 있었다.평화로운 칠수방과 달리 거리 너머 맞은편에 있는 자운각 분문의 상황은 처참했다.그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고 핏물이 빗물과 섞여 거리로 쓸려 나갔다.“은용위? 왕실에서 우리 종문을 공격하는 건가?”차비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리 너머 자운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면서 말했다.다른 칠수방의 제자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구주왕과 사이가 좋았고 그 덕분에 구주왕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칠수방 또한 자운각과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칠수방 사람들이 왕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그 의도를 짐작해 보고 있을 때 자운각 쪽이 조용해졌다.벼락은 계속 쳤고 비도 여전히 쏟아졌다.자운각 위로 벼락이 떨어졌을 때 그 불빛 때문에 자운각 마당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피바다를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칠수방의 제자들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자운각 서울 분문은 끝장났어요.”“은용위가 나섰으니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칠수방은 비록 다른 종문들과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자운각의 결말을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바로 이때,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사람들이 차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은 차비연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늑대 천현수! 저들이 왜 이곳에 온 거지?”차비연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종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은용위가 밖으로 나와 천현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차비연은 그 순간 이건 왕실의 뜻이 아니라 구주왕이 종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천현수는 구주왕을 대표하여
예전에 은용위는 윤구주의 휘하가 아니었고 국주의 사람이었기에 윤구주는 국주의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그러나 은용위의 군권이 윤구주의 손에 들어왔고 이제 그들은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윤구주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앞으로도 당연히 규칙을 지켜야 했고 예전에 저질렀던 짓들의 벌까지 받아야 했다.‘세상에!’옆에 있던 육도진은 깜짝 놀랐다. 은용위가 했던 짓들을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벌을 준다면 목을 베는 것으로는 부족했다.은용위는 이제 막 윤구주의 휘하가 되었는데 윤구주는 바로 은용위를 처벌하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저하, 그건...”“내가 내 사람을 교육하는 건데 우상은 끼어들지 마.”‘윽.’육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윤구주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말을 더 보탰다가는 그에게 불똥이 튈지도 몰랐다.“견배영, 기회를 줄게. 앞으로 잘해 봐. 만약 너희들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가볍게 처벌해 줄 수도 있어.”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견배영은 감히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윤구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윤구주는 단지 은용위를 이용하여 위상을 세우는 것뿐이었다.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랐고 대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갑자기 국방부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몰랐다.국주의 사람까지 전부 윤구주 앞에 납작 엎드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윤구주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손을 움직여 그들이 일어나게끔 했다.“그대들 중에는 우리가 왜 종문 동맹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야. 심지어 종문 동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 화진의 국방부가 무도를 홀로 이끌어가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오늘 똑똑히 설명할 테니
진동왕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구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해.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정도야.”진동왕이 감탄했다.“임성진 아저씨.”윤구주는 진동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동왕과 곤륜에서 알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 덕분에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여전히 국주를 신뢰했다.그렇지 않으면 당시 그 사건 때문에 윤구주는 국주까지 적으로 돌렸을 것이다.“진동왕을 뵙습니다.”윤구주의 부하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 진동왕을 향한 그들의 선망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구주왕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흥분했다.그들의 왕이 드디어 돌아왔고 또다시 그와 함께 싸울 수 있었다.착, 착.국방부의 다른 장수들은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 구주왕 휘하의 흥분한 장수들과 달리 그들은 두려움만 가득했다.그들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아름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그들은 문씨 일가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썼었다.켕기는 게 많아서 감히 구주왕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육도진이 말했다.“문벌, 세가, 종문, 국방부가 화진의 무도를 이루었죠. 문벌은 쇠퇴하고 세가도 물러나고 종문도 세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현재 진국왕 군대가 대권을 움켜쥐고 있기에 우리 화진의 질서를 다시 바로잡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육도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단함을 열어 용부를 꺼냈다.“진국왕, 국주님의 명령입니다. 종문 동맹은 우리 화진을 삼천 년 동안 혼란스럽게 했어요. 종문 동맹 때문에 그동안 백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진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을 보살폈기에 국주님께서는 진국왕께 용부를 하사했습니다. 진국왕께서는 이 용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항하고 종문 동맹을 처단하여 우리 화진의 평화를 이루도록 하세요.”“헉!”장수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심지어
세 사람의 모습이 진동왕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후배들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동왕이 말했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종문 동맹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했지만 당시 윤신우가 날 위해서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 그리고 내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구주왕이 나타났어. 덕분에 나는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 윤씨 일가가 아니라면 나는 구오 지존이 될 수 없었을 거야.”진동왕의 말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곤륜에 관한 소문을 조금 알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진동왕은 윤구주 덕분에 곤륜에서 진정한 강자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육도진은 민규현 등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구주왕의 부하가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복입니다.”“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하시네요.”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진동왕은 선배라서 존경했지만 육도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암부를 상대로 적지 않은 일을 했었고 그 때문에 정태웅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육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양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육도진은 비단함을 들고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진동왕을 지나치고 윤씨 일가 조당 계단을 올라 조당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멈춰 섰다. 곧이어 그는 몸을 돌려 장수들을 마주 보고 섰다.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가 국주 대신 왔다는 걸 알았다.다들 비단함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에 도착했다.그들은 전 사람들과 달리 날아서 들어왔다.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눈빛이 섬뜩했으며 허리춤에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차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고 적지 않은 장수들이 욕지거리를 했다.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왕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