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연규비는 당황했다.“구주야, 어떡해야 이 빌어먹을 기린화독을 깨끗이 없앨 수 있는 거야? 나한테 얘기해 줘. 내가 도와줄게.”연규비가 말했다.그러나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넌 도와줄 수 없어. 내 체내의 기린화독을 없애기 위해서는 천년초 세 개를 전부 모아서 내 내공이 절정에 다르게 해야만 가능해.”“천년초 세 개?”윤구주의 말에 연규비는 흠칫했다.“맞아. 이런 엄청난 보물은 아마 화진의 보물 창고에도 없을 거야. 아주 찾기 어려운 것이지.”윤구주가 탄식했다.그의 말대로였다.기린화독에 당한 두 윤구주는 지금까지 계속 천년초 세 개를 찾아서 자신의 화독을 치료하려 했다.그러나 지금까지 그는 오직 천년 빙설화 하나만 찾았다.다른 두 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그 말을 들은 연규비가 말했다.“구주야, 걱정하지 마.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다른 천년초 두 개를 찾아줄게.”연규비의 말에 윤구주는 아주 감동했다.소채은은 그래도 잠깐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너무 허약한 탓에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소채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구주는 갑자기 백경재에게 말했다..“백 선생, 컵 하나 가져다줘.”‘응? 컵?’백경재는 당황했지만 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투명한 컵 하나를 들고 와서 윤구주에게 건넸다.윤구주는 그것을 건네받은 뒤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냈고, 그의 팔 위로 피가 흘렀다.윤구주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는 걸 보고 연규비는 깜짝 놀랐다.“구주야, 뭐 하는 거야?”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백경재 또한 당황한 얼굴이었다.윤구주만이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 요기로 인해 소채은이 잠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시독이 퍼지는 걸 막는 건 어렵다는 걸 말이다. 정말로 그 시독을 막으려면 윤구주 체내의 구양진용기를 이용해야 했다.“너희는 몰라서 그래. 내가 수련한 구양진용기 혈액으로만 채은이 체내의 시
소채은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비록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침대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것보다는 나았다.방 안에서 윤구주는 홀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내공을 회복하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체내 정혈로 고독을 억눌렀다. 그로 인해 윤구주의 소모가 엄청났기에 반드시 서둘러 회복해야 했다.밖에서 연규비는 문 앞에 서서 방 안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그녀는 윤구주를 사랑했다.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그러나 아쉽게도 윤구주는 달랐다.윤구주는 줄곧 연규비를 여동생처럼 여겻다.연규비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뭔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묵묵히 윤구주의 방을 바라보던 연규비가 중얼거렸다.“구주야, 걱정하지 마. 난 네 체내의 기린화독을 없앨 수 있게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널 위해 천년초를 찾아낼 거야.”그렇게 말한 뒤 연규비는 그제야 떠났다.눈 깜짝할 사이 이틀이 지났다.이틀 사이 소채은의 시독이 드디어 윤구주의 구양진용기에 의해 억눌러졌다.예상대로라면 앞으로 한두 달 동안, 소채은은 더는 시독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소채은이 깨어났다.정신을 차리니 목이 탔다.윤구주는 서둘러 그녀에게 물 한 컵을 건넸고 그걸 마신 뒤 소채은은 또 음식을 조금 먹었다.체력이 조금 회복된 것 같자 소채은은 그제야 윤구주에게 물었다.“구주야, 나 나가서 걷고 싶은데 나랑 같이 나가줄래?”“당연하지!”그렇게 윤구주는 소채은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게 그녀를 부축했다.방문을 열고 윤구주는 소채은을 데리고 백화궁 뒷마당으로 나왔다.뒷마당은 아주 컸고 그곳에는 정자도, 인공 산도, 강도 있어서 무릉도원과 다름없었다.게다가 주위에는 엄청난 미모의 백화궁 여자들이 서 있었다.백화궁이 미녀들은 윤구주가 나오자 다들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면서 작은 목소리로 의논했다.많은 예쁜 여자들이 마당에 있자 방금 정신을 차린 소채은은 무척 의아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예쁜 여자들을 바라보며 윤구주에게 물었다.“구주
그렇게 말하면서 소채은은 눈물을 흘렸다.“채은아, 슬퍼하지 마. 그 세 사람은 이미 대가를 치렀거든.”윤구주가 그녀를 위로했다.“하지만 우리 고모할머니가 죽었는걸. 그리고 우리 결혼식은 또 어떡해?”소채은은 눈이 벌게진 채로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봐다.“걱정하지 마. 널 다 치료하게 되면 결혼식을 치를 거야!”윤구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정말?”“그럼! 우리 결혼식은 치르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서 넌 이미 내 아내야!”윤구주가 아내라고 하자 소채은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누가 네 아내라는 거야?”말을 그렇게 했지만 사실 너무도 행복했다.윤구주와 소채은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세 명의 사람이 소채은의 시야에 들어왔다.연규비, 백경재, 시괴 동산 말이다.“왕비님, 드디어 깨셨군요!”백경재는 멀리서 아름다운 소채은이 정신을 차린 걸 보고 곧바로 달려오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네? 뭐라고요?”소채은은 처음으로 왕비님이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백경재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자신의 입을 때렸다.“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불렀군요. 소채은 씨라고 불렀어야 했는데 말입니다.”백경재는 윤구주의 신분을 쉽게 누설할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말을 바꿨다.“안녕하세요, 채은 씨.”이때 연규비가 웃으면서 다가왔다.흰 치마를 입은, 여신처럼 아름다운 연규비가 갑자기 앞에 나타나자 소채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엄청난 미인이었다.그것이 연규비의 첫 번째 인상이었다.연규비는 정말로 너무 아름다웠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외부로 발산되는 아름다움이었다.같은 여자지만 소채은은 저도 모르게 그녀가 부러웠다.“누구시죠?”소채은은 놀란 얼굴로 눈앞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연규비를 바라봤다.“전 연규비라고 해요.”연규비는 미소 띤 얼굴로 흰 손을 뻗었다.“전... 전 소채은이라고 해요!”소채은은 서둘러 손을 뻗어서 악수했다.“채은 씨는 이제 막 깨어났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요.”
삼계탕을 먹은 뒤 연규비는 소채은에게 예쁜 옷과 액세서리 등을 선물로 주었다.이렇게 비싼 선물을 많이 받아본 적이 없던 소채은은 점점 당황스러웠다.“구주야, 규비 씨는 대체 누구야?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소채은은 방으로 돌아온 뒤 참지 못하고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소채은에게 연규비가 예전에 자신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그는 코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음, 규비는 예전에 내가 알던 친구였어. 그래서 잘해주는 거야.”“예전에? 설마 그런 친구야?”소채은이 갑자기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면서 입을 열어 물었다.윤구주는 당연히 소채은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채은아, 이상한 생각하지 마.”“뭘 그렇게 긴장해? 난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말을 마친 뒤 소채은은 갑자기 미간을 구겼다.“그런데 규비 씨 정말 예쁘더라. TV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다 더 예뻐. 구주야, 네가 규비 씨를 좋아했었다고 해도 이해해. 규비 씨는 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걸.”“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살면서 아름다운 여자는 많이 봤어. 아름다운 여자면 다 좋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윤구주가 서둘러 말했다.“어머, 구주야. 너 이젠 거짓말도 잘한다? 대체 기억을 잃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미녀를 봤던 거야?”소채은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질투 나는 표정으로 윤구주에게 따져 물었다.윤구주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다.아무래도 구주왕이었던 시절 모든 여자가 그와 결혼하기를 바랐으니 말이다.심지어 10국 황실 친척이나 공주도 다들 윤구주와 아는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그러나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그가 구주왕이라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면 소채은이 죽이려고 들지도 몰랐다.소채은의 손을 잡은 윤구주가 서둘러 말했다.“거짓말이었어. 채은아, 신경 쓰지 마. 우리 둘은 곧 결혼할 사이인데 내가 왜 다른 여자를 좋아하겠어?”소채은
천시 고독에 당한 뒤 소채은은 줄곧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이제야 어렵사리 정신을 차렸으니 당연히 밖에 나가고 싶었다.윤구주는 비록 그녀의 몸이 걱정되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했다.“그래, 같이 가자.”“진짜?”“응!”“그러면 지금 당장 출발하자. 헤헤, 난 아직 서남을 둘러본 적이 없어. 여기가 재밌는지 모르겠어!”그렇게 윤구주는 소채은과 함께 쇼핑을 가려 했다.백화궁 입구를 나서자 밖에 검은색의 벤츠 G500이 보였다.그리고 연규비와 백경재, 동산이 서 있었다.윤구주는 아직 서남이 익숙지 않았기에 연규비에게 운전과 안내를 부탁했다.백경재와 동산은 꼭 같이 가야 한다면서 뻔뻔하게 굴었다.그렇게 그들은 차를 타고 기쁘게 놀러 나갔다.“채은 씨, 어디 둘러보고 싶어요? 백화점 아니면 특색 있는 민속 마을 가볼래요? 참, 요 이틀 그 마을에서 연등회를 한다던데 가보고 싶어요?”서남의 연등회는 아주 유명했다.마치 화진의 설날만큼 떠들썩했다.매년 연등회에 서남의 권세나 지위 높은 상류층 인사들이 참가하러 온다.그 밖에도 전국 각지에서 연등회를 보러 서남을 찾는 여행객들도 많았다.“좋아요, 그러면 부탁드릴게요!”소채은도 서남의 연등회가 유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연규비는 서남 민속 마을 방향으로 달렸다.민속 마을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서남에 있는 2,00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거리였다.차를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인파를 따라 민속 마을의 오래된 거리로 향했다.연등회는 역시나 번화하고 떠들썩했다.여기저기 알록달록한 크고 작은 연등이 가득했다.전통적인 것도, 현대적인 것도 있었으며 아주 다양했다.오래된 거리의 끝에는 서남의 유명한 제비강이 있었다. 강물은 세차게 흘렀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채은 씨,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니 우리 조용한 곳으로 가서 감상할래요?”연규비가 사람들 틈 사이에서 말했다.“네, 좋아요!”그렇게 연규비가 앞서 걸었
윤구주 일행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 비싼 차들이 줄지어 건물 앞에 멈춰 섰다.가장 앞에 있는 차는 자색의 맥라렌 스피드테일이었다. 문이 위로 올라가는 멋진 슈퍼카 뒤에는 검은색의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었다.차가 도착한 뒤 십여 명의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엄청난 미녀가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레이스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엄청난 미모와 비싸 보이는 옷차림에서 그녀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오만함이 넘쳤다.그녀의 곁에는 두 명의 노인이 있었다.한 명은 매서운 눈매를 한 대사급 고수가 있었다.그는 광대가 툭 튀어나왔고 두 손은 침팬지처럼 길었다.게다가 그에게서는 아주 짙은 무인의 기운이 느껴졌다.다른 한 노인은 키가 크지 않았지만 온 몸에서 짙은 현기를 뿜어댔기에 고수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그들이 차에서 내린 뒤 종사급 고수가 먼저 옆에 있는 오만한 여자에게 말했다.“아가씨, 도착했습니다.”아가씨라고 불린 여자는 아름다운 눈을 들어 건물을 바라봤다.“이번 파티에 몇 명이나 참가했죠?”노인이 말했다.“아가씨, 이번에 저희 서남의 다섯 개 도시에서 올 수 있는 무인들은 거의 다 왔습니다. 그중에는 단도문, 형의문, 금강사와 신씨 일가도 있습니다.”노인의 말에 오만한 여자는 그저 덤덤히 대꾸했다.“그러면 저희는 지금 들어갈까요?”옆에 있던 노인이 다시 물었다.“급하지 않아요. 전 아직 연등회를 잘 즐기지 못했으니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죠.”말을 마친 뒤 그녀는 건물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눈앞의 건물은 서남의 랜드마크였다.100층 넘는 건물에서 가장 매력 있는 건 바로 전망대였다.이때 건물 안 가장 호화로운 전망대 위치에서, 연규비는 윤구주 일행을 데리고 아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큰 창문 밖으로 제비강이 한눈에 들어왔다.게다가 연등회도 전부 보였다.이 전망대는 확실히 이 건물에서 가장 위치가 좋았다.“구주야, 여기 정말 아름다워!”
오만한 여자는 완전히 제멋대로였다.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윤구주 일행이 있자 그녀는 곧바로 사납게 말했다.옆에 있던 경호원들은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윤구주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저기요, 이 자리는 저희 아가씨께서 쓸 겁니다.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가까이 다가간 경호원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윤구주 일행에게 말했다.경치를 감상하고 있던 두 사람은 그 말을 들었고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오만한 여자를 힐끗 쳐다본 뒤 경호원들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고 계속해 소채은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저기요, 내 말 안 들려요? 이 위치는 우리 아가씨께서 쓰실 거라고요. 눈치 있으면 얼른 떠나요. 돈은 여기 있어요.”경호원은 말을 마친 뒤 지갑 안에서 40만 원 정도를 꺼내 윤구주에게 던졌다.그런데 경호원이 입을 열자마자 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꺼져!”그 말에 경호원들은 흠칫했다.“감히 우리한테 꺼지라고 한 거예요? 죽고 싶어요?”경호원은 화를 내면서 윤구주에게로 다가갔다.그런데 그가 걸음을 내딛자마자 갑자기 거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시괴 동산이었다.장군처럼 보이는 동산은 큰 손으로 경호원의 멱살을 잡고 마치 장난감을 던지듯 쿵 소리 나게 경호원을 멀리 던졌다. 재수가 없던 경호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다른 경호원들은 동산이 나서자 다들 화가 났다.“이 자식, 감히 우리 사람을 다치게 해? 죽으려고!”경호원들은 전부 무사 수준이었다.그들은 일제히 동산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동산의 상대가 되겠는가?단단한 몸을 가진 시괴 동산은 대가 경지였다.주먹이 동산의 몸에 부딪히면서 쾅쾅 소리를 냈다.“무슨 상황이지? 이 자식 왜 몸이 강철 같지?”경호원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무표정한 얼굴의 동산이 팔을 휘둘렀고, 마치 탱크에 부딪히듯 쾅쾅 소리와 함께 7, 8명의 경호원들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다. 다들 뼈가 부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그 광경에 뒤에
매서운 눈매의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톱을 세웠다. 그는 온몸에서 사나운 기운을 내뿜으며 윤구주를 공격했다.이때 동산이 갑자기 윤구주의 앞을 가로막았다.쾅 소리와 함께 사나운 눈매의 노인의 손톱이 동산의 몸을 가격했다.동산은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차가웠다.마치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응?”사나운 눈매의 노인은 그 광경을 보자 안색이 달라졌다.동산이 노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그의 단단한 주먹이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사나운 눈매의 노인은 감히 동산을 얕볼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비틀어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쿵!두 주먹이 한데 부딪히면서 충격파가 일어났고, 그중 한 명이 충격에 연달아 네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자세히 보니 충격으로 뒷걸음 질친 건 사나운 눈매의 노인이었다.반대로 동산은 두 다리가 바닥에 박힌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몸이 무쇠처럼 단단하군! 좋아, 다시 한번 붙어보자!”사나운 눈매의 노인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면서 소매 안에서 시커먼 칼날을 뽑았다.“경철 씨, 잠시만요!”이때 등 뒤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자세히 보니 고씨 성의 여자 옆에 있던 다른 여자였다.그 노인은 비록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몸에서 내뿜는 현기가 짙었다.그는 사나운 눈매의 노인을 멈춰 세운 뒤 윤구주를 향해 예를 갖췄다.“서남에서 이런 고수를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가 당돌했군요. 죄송합니다.”말을 마친 뒤 그는 사나운 눈매의 노인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떠나려고 준비했다.“멈춰요! 제가 언제 가라고 했죠?”윤구주가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때 윤구주가 드디어 서늘한 시선을 들었다.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자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당신은 이미 우리 쪽 사람들을 많이 다치게 했습니다. 뭘 더 어쩌고 싶은 거죠?”“무릎 꿇고 사과해요.”윤구주가 차갑게 말했다.‘뭐라고?’“나더러 무릎을 꿇으라고요? 죽고 싶어요?”윤구주의 말에
“우리 서요산이 지우를 불러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었거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어. 문씨 일가는 네가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종문 동맹에 우선 서요산을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래야 우리에게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구주야. 우리 서요산은 이번에 윤씨 일가를 돕지 못할 것 같다. 홀로 종문 동맹과 싸울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다니!그 소식에 서요산 분문의 제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서요산 거자는 다음 검종 종주가 될 사람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요산의 거자를 공격했다니, 서요산의 명맥을 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종문 동맹! 이 자식들 정말 극악무도하네요!”분문의 제자가 화를 내면서 욕을 했다.갑작스러운 얘기에 윤구주도 더는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서요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나요? 서요산의 거자는 이미 죽었으니 함지우까지 죽게 할 수는 없죠. 정 어려우면 저한테 보내요.”“아주 심각해. 너도 알다시피 서요산 검탑에는 마귀가 봉인되어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화진에는 엄청난 재앙이 찾아올 거야. 그 때문에 나도 예정보다 일찍 출관했어. 곤륜 쪽도 평화롭지는 않아. 됐다. 너는 일단 종문 동맹을 평정해. 우리도 최대한 너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노력할게. 너는 마음 놓고 싸워. 종문 동맹은 화진의 질서를 삼천 년간 어지럽혔어.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지.”푸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이 산에서 벗어나며 산이 뒤흔들리는 광경이었다.“문씨 일가는 대체 얼마나 일을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거지? 내가 손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다니. 벌써 위협을 느낀 건가? 천도궁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윤구주는
피가 칼날을 적셨다. 국방부가 종문을 공격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각 종문의 서울에 있는 분문도 은용위의 공격을 받았다.은용위에게 내려진 명령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이었다.자운각과 칠수방 분문은 겨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칠수방의 분문 밖에는 윤구주 휘하의 한 장수가 수문장처럼 칠수방을 지키고 있었다.평화로운 칠수방과 달리 거리 너머 맞은편에 있는 자운각 분문의 상황은 처참했다.그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고 핏물이 빗물과 섞여 거리로 쓸려 나갔다.“은용위? 왕실에서 우리 종문을 공격하는 건가?”차비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리 너머 자운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면서 말했다.다른 칠수방의 제자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구주왕과 사이가 좋았고 그 덕분에 구주왕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칠수방 또한 자운각과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칠수방 사람들이 왕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그 의도를 짐작해 보고 있을 때 자운각 쪽이 조용해졌다.벼락은 계속 쳤고 비도 여전히 쏟아졌다.자운각 위로 벼락이 떨어졌을 때 그 불빛 때문에 자운각 마당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피바다를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칠수방의 제자들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자운각 서울 분문은 끝장났어요.”“은용위가 나섰으니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칠수방은 비록 다른 종문들과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자운각의 결말을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바로 이때,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사람들이 차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은 차비연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늑대 천현수! 저들이 왜 이곳에 온 거지?”차비연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종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은용위가 밖으로 나와 천현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차비연은 그 순간 이건 왕실의 뜻이 아니라 구주왕이 종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천현수는 구주왕을 대표하여
예전에 은용위는 윤구주의 휘하가 아니었고 국주의 사람이었기에 윤구주는 국주의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그러나 은용위의 군권이 윤구주의 손에 들어왔고 이제 그들은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윤구주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앞으로도 당연히 규칙을 지켜야 했고 예전에 저질렀던 짓들의 벌까지 받아야 했다.‘세상에!’옆에 있던 육도진은 깜짝 놀랐다. 은용위가 했던 짓들을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벌을 준다면 목을 베는 것으로는 부족했다.은용위는 이제 막 윤구주의 휘하가 되었는데 윤구주는 바로 은용위를 처벌하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저하, 그건...”“내가 내 사람을 교육하는 건데 우상은 끼어들지 마.”‘윽.’육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윤구주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말을 더 보탰다가는 그에게 불똥이 튈지도 몰랐다.“견배영, 기회를 줄게. 앞으로 잘해 봐. 만약 너희들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가볍게 처벌해 줄 수도 있어.”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견배영은 감히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윤구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윤구주는 단지 은용위를 이용하여 위상을 세우는 것뿐이었다.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랐고 대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갑자기 국방부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몰랐다.국주의 사람까지 전부 윤구주 앞에 납작 엎드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윤구주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손을 움직여 그들이 일어나게끔 했다.“그대들 중에는 우리가 왜 종문 동맹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야. 심지어 종문 동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 화진의 국방부가 무도를 홀로 이끌어가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오늘 똑똑히 설명할 테니
진동왕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구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해.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정도야.”진동왕이 감탄했다.“임성진 아저씨.”윤구주는 진동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동왕과 곤륜에서 알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 덕분에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여전히 국주를 신뢰했다.그렇지 않으면 당시 그 사건 때문에 윤구주는 국주까지 적으로 돌렸을 것이다.“진동왕을 뵙습니다.”윤구주의 부하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 진동왕을 향한 그들의 선망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구주왕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흥분했다.그들의 왕이 드디어 돌아왔고 또다시 그와 함께 싸울 수 있었다.착, 착.국방부의 다른 장수들은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 구주왕 휘하의 흥분한 장수들과 달리 그들은 두려움만 가득했다.그들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아름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그들은 문씨 일가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썼었다.켕기는 게 많아서 감히 구주왕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육도진이 말했다.“문벌, 세가, 종문, 국방부가 화진의 무도를 이루었죠. 문벌은 쇠퇴하고 세가도 물러나고 종문도 세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현재 진국왕 군대가 대권을 움켜쥐고 있기에 우리 화진의 질서를 다시 바로잡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육도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단함을 열어 용부를 꺼냈다.“진국왕, 국주님의 명령입니다. 종문 동맹은 우리 화진을 삼천 년 동안 혼란스럽게 했어요. 종문 동맹 때문에 그동안 백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진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을 보살폈기에 국주님께서는 진국왕께 용부를 하사했습니다. 진국왕께서는 이 용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항하고 종문 동맹을 처단하여 우리 화진의 평화를 이루도록 하세요.”“헉!”장수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심지어
세 사람의 모습이 진동왕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후배들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동왕이 말했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종문 동맹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했지만 당시 윤신우가 날 위해서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 그리고 내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구주왕이 나타났어. 덕분에 나는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 윤씨 일가가 아니라면 나는 구오 지존이 될 수 없었을 거야.”진동왕의 말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곤륜에 관한 소문을 조금 알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진동왕은 윤구주 덕분에 곤륜에서 진정한 강자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육도진은 민규현 등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구주왕의 부하가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복입니다.”“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하시네요.”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진동왕은 선배라서 존경했지만 육도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암부를 상대로 적지 않은 일을 했었고 그 때문에 정태웅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육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양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육도진은 비단함을 들고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진동왕을 지나치고 윤씨 일가 조당 계단을 올라 조당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멈춰 섰다. 곧이어 그는 몸을 돌려 장수들을 마주 보고 섰다.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가 국주 대신 왔다는 걸 알았다.다들 비단함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에 도착했다.그들은 전 사람들과 달리 날아서 들어왔다.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눈빛이 섬뜩했으며 허리춤에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차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고 적지 않은 장수들이 욕지거리를 했다.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왕실을 위해
윤씨 일가 저택에는 고급 장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각 지역에서 이름을 떨친 거물급 인사들이었다.한 노장과 젊은 장교가 도착했다.노장은 서울을 수비하는 어느 군단의 군단장이었고, 30대 초반의 젊은 장교는 이제 막 승진한 동승 사령관이었다.둘 다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입구에서 본인들 지위보다 더 높은 거물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예의를 차려야 했다.서울 사령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지라 서로 지내던 사이었던 노장과 젊은 장군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어르신,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화진의 각 지역을 지키는 책임자들이에요. 대부분이 구주왕의 부하들이죠.”“그렇네. 안 사령관, 저 중장은 예전에 흑봉군의 군단장이었어. 구주왕 휘하의 장군이었지. 하지만 구주왕이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직후에 그가 새 왕에게 숙청당했다고 들었는데 왜 멀쩡해 보이지?”“그러게 말이에요.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새 왕이 구주왕의 부하들을 숙청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던데 다들 멀쩡하네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도착한 변방의 수장 중에는 예전 윤구주의 부하들이 많았다.반역을 저지르고 처형당했다고 군부가 공표까지 했는데 역시 멀쩡히 살아있었다.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리려는 듯 그들은 당당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장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을 때 원수도 몇 명 도착했다.원수들이 도착하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경례했다.구주왕 휘하의 장교들은 미리 소식을 들었던 터라 별 반응이 없었지만, 윤구주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화진의 군부 원로급 인사들이 도착한 것이었다.나이가 들어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왔다.“이 원로님이 도착했어요.”그때, 왕실 차 한 대가 도착하자, 화진의 봉왕이 차에서 내렸다.90세 가까운 노인이었지만 여전히 팔팔했다.“이분은 전 국방부 부장인 진동왕이 아니신가요? 국주의 친삼촌이 맞으시죠?”이 노인이 윤씨 일가에 도
윤구주를 조롱하고 있는데 육도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국주님, 윤구주가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하고 떠나던데 혹시 소통이 순조롭지 않았나요?”“아니야. 구주의 살기 가득한 눈빛은 종문 동맹 때문이야. 곧 그가 행동을 취할 것이니 넌 나를 대신해 조서를 내려.”국주가 미리 준비해 둔 금색 함을 꺼내 육도진에게 건네자, 함에 감겨있던 오조금룡을 본 육도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건 용부가 아닌가요?”“그래. 이 용부를 가진 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있어.”국주가 고개를 끄덕였다.“저… 국주님, 화진의 병권을 모두 내놓으시려고요? 이건 우리 이조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역대 왕조를 놓고 봐도 병권을 외인에게 넘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나가봐. 은용위 쪽은 이미 움직였겠지? 그리고 문제는 왕실 내부가 아니라 구주 휘하 네 명의 군신이야. 문씨 가문이 경계를 늦추려 하지 않을 것이니 상황 봐서 안 되면 구주에게 도움을 청해. 어차피 자기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기꺼이 나설 거야.”“빨리 가!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서둘러야 해. 이조의 후계자가 없으면 안 되지.”한편, 왕궁을 떠난 윤구주는 곧장 윤씨 일가로 돌아갔다.한때 화려했으나 이제 텅텅 비어 있던 윤씨 일가의 뜰을 걷고 있으니,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그 아픔은 오직 윤구주만의 몫이었다.자신이 윤씨 일가란 사실을 그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당시 부득이하게 어머니와 저를 내쫓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문제가 어머니에게 있다고 해도 아버지를 위해서 사망했으니, 아버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해요. 저 또한 마음의 장벽을 넘지 못하겠으나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종문 동맹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종문 동맹을 반드시 없애버릴 거예요.”말을 마치고 윤구주는 뒤에 있던 몇 명의 흑영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전투가 곧 시작되니 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이거야!’국주가 원한 것은 윤구주의 이 말이었다.“너도 암부를 통해 알다시피 우리 화진의 가장 큰 적은 종문이야. 더 정확히 말한다면 진짜 적은 종문 위에 있는 종문 동맹이지. 이를 논의하고자 너를 부른 것이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종문 동맹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 등 6대 종문으로 구성되었다.화진의 정세가 불안정할 때였던 3천 년 전에 종문 동맹이 설립되었다.화진은 당시 오랑캐에게 땅이 점령당했고 백성들이 많은 죽임을 당했다.이 때문에 종문은 나라를 보호하고 외구를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동맹을 설립하였다.애초에는 그 의도가 나쁘진 않았으나 이내 변질되고 말았다.“국주님,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문 동맹은 음지에서 분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조사해 보니 역대 왕조의 쇠락과 멸망을 종문 동맹은 늘 관여했더군요. 심지어 그들은 국주에게 압력을 가해 도를 닦거나 부처님을 모시게 하였지요.”윤구주가 말했다.“맞아. 이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역대 왕조들이 종문 동맹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 불교를 없앤 사건도 몇 번 있긴 했지. 하지만 어찌 됐든 역대 왕조는 종문 동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거나 다름없어. 종문 동맹이 3천 년 동안 화진 무술을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국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비록 역대 왕조들이 나름 노력은 했으나 종문 동맹의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종문 동맹이 왜 우리 화진에 큰 위험이 되는지 알아? 그들은 돈과 권력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화진을 여러 개로 쪼개서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이지. 역대 왕조들은 화진의 분열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만약 우리가 종문 동맹의 야욕을 두고만 본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종문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나라를 세운다면 화진이 완전히 분열되는 것은 물론 다시는 통일되지 못할 거야.”3천 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해결하지 못했던 이 중대한 문제를 국주가 털어놓
국주를 만났을 때는 자정이 훌쩍 넘은 뒤였다.입궁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윤구주의 귀에 들려왔다.“채은? 그가 언제 왔지?”윤구주는 의아했다.“저하, 아직도 모르겠어요? 국주가 비록 천하의 호걸이라고는 하나 마음만 먹는다면 국주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에요. 백만대군이 지킨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 경비원들은 모두 채은 아가씨를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니 국주가 채은 아가씨의 경호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하!”옆에 있던 육도진이 웃으며 말했다.국주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안전 때문이란 사실을 윤구주는 그제야 알았다.이들이 궁전에 들어섰을 때 국주는 소채은에게 차를 끓여주며 윤구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소채은이 넋을 잃고 듣고 있었지만, 그녀가 궁전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주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윤구주를 보고서야 소채은의 긴장이 풀렸다.“구주… 저하를 뵙니다.”윤구주에게 다가가려 했던 소채은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서둘러 윤구주에 대한 호칭을 바꾸었다.그 모습을 보고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국주도 눈치챘다.“국주님, 두 사람이 얘기 나눌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줄까요?”육도진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그럴 필요 없다. 그녀가 구주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란 사실을 온 천하가 다 알아. 이런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지.”국주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육도진에게 차를 권했다.“채은아…”“국주님과 중요한 일을 상의하러 오신 것 같으니, 국사에 전념하도록 하세요. 저는 무탈해요. 저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말아야죠.”소채은은 차분하게 말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다.“이쪽으로 와서 나와 이야기하자꾸나. 나랏일이든 집안일이든 나에게 물어보렴.”이때, 국주가 윤구주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소채은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불쑥 튀어나와 윤구주의 정신이 분산될까 봐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