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현은 더 길게 말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어! 3일 전에 홍월 경매사에서 주최한 경매에 참가했지?”백경재는 흠칫 놀라면서 대답했다.“그래! 그게 뭐 어때서?”“참가했으면 바로 너일 거야!”민규현은 첩보원을 죽인 사람을 백경재로 착각했다. 백경재는 민규현을 쳐다보고 또 그 뒤에 있던 암부원들을 훑어봤다.“어이, 너희들은 도대체 뭐 하는 자식들이야? 왜 우리 용인 빌리지에 함부로 들어와?”민규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리가 누군지 당신은 알 필요가 없어! 지금 우리랑 같이 본부로 가자. 물어볼 것이 있거든.”따라오라는 말을 듣고 백경재는 피식 웃었다.“씨발, 정말 웃기는 새끼네. 함부로 우리 구역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나더러 너희 따라 어딜 가라고? 지금 내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백경재는 코웃음을 치더니 부적 세 개를 내던졌다. 그러자 그 부적들은 갑자기 폭발하면서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가 주문 두 개를 외우자 검은 안개 속에서 귀신이 울부짖으며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고 해골 두 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민규현을 향해 돌진했다!민규현은 백경재의 술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모든 내력을 왼손으로 모아 손바닥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엄청난 기파가 일면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골 두 개가 허공에서 폭발했다.“어허! 이렇게 강하다고? 그럴 리가!”백경재는 민규현이 손쉽게 자기의 술법을 풀자 이를 악물며 다시 내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선 경지에 들어서고 난 후 백경재는 처음으로 진정한 강자를 만났다. 그는 두 손을 움켜쥐고 주문을 외우자 음기가 온몸을 뒤덮었다.백경재의 두 손은 빠르게 허공에 기괴한 주문을 그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검은 안개를 누르는 듯했다!“눌러!”분노의 외침과 함께 검은 안개는 거대한 귀신의 손으로 변했다. 귀신의 손은 무서운 기세로 민규현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자 민규현은 기파를 모으더니 두 주먹으로 귀신의 손을 깨부쉈다. 막을 수 없는 막강한 기세를
민규현이 기화도에 상처 입은 것을 바라보고, 모든 암부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상대가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고 당당한 호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휘사 님!”놀란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민규현이 손을 뻗어 그들을 막았다.그러고는 어두운 안색으로 뒷산 쪽을 바라보았다.“퉤!”선혈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이곳에 고수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그래, 어디 한번 해보지. 네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보겠다 이거야! 모두 제자리에서 대기해!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제멋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민규현을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두 발을 땅에 내려놓고 비장하게 뒷산 쪽으로 날아갔다.뒷산에서!날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 민규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왕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괜한 압박감이 들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경계태세를 보이며 온몸에 내력을 돌리기 시작했다.뒤이어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을 등지고, 미동 없이 청석 위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그 모습을 바라보며 암부의 3대 광인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이 호존은 눈썹을 심하게 씰룩거렸다!이와 동시에 엄청난 압박감이 앞에 있는 남자의 그림자로부터 몰려왔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쩐지 이 그림자가 민규현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빌어먹을 젠장!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강한 포스를 풍기는 거지?민규현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덧없이 놀라웠다.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대가의 경지에 이른 암부 지휘사이다!곧이어 민규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감히 여쭙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그쪽이 손을 쓰신 겁니까?”청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윤구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상대방이 침묵하자 민규현은 다시 말했다.“조금 전의 기화도는 거의 만물을 베실 정도였습니다. 이 민규현이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수년 동안 이런 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구십
“그래, 바로 나다!”윤구주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민규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저하! 정말 저하십니까? 저... 저하... 저하께서는 이미 죽음의 바다에 빠져 순국한 것이 아니었나요? 세간에는 저하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그러자 윤구주가 패기 있게 말했다.“내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 세상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어!”이 말에 민규현은 갑자기 머리를 땅에 박았다.“저하!!!”왕이 살아있다는 기쁨에, 민규현은 울부짖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쪽으로 저하를 부르며, 한쪽으로는 연신 펑펑 울어댔다!천하의 사람들 모두 윤구주가 죽은 줄 알았다!물론 암부를 포함해서 말이다!그날, 죽음의 바다 1차 대전에서 윤구주의 순국 소식이 서울 암부에 전해지자, 암부의 상하 10만 정예부대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더군다나 당시, 3대 지휘사는 10만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꼬박 3일 밤낮을 기산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그 3일 밤낮 동안, 누구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그들은 당시 윤구주가 직접 창설한 “암부”의 일원으로, 윤구주의 친위군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각각 “호랑이”, “곰”, “늑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3대 지휘사는 윤구주가 직접 뽑아 배양한 인재들이었다.이 세 사람의 실력은 윤구주 주변의 4대 살신에 필적할 만했는데, 모두 윤구주 수하의 칠살광인이라 불리기도 했다!그러나 민규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늘 뜻밖에도 다시 자신이 섬기던 옛 왕을 만나게 될 줄 말이다!그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기쁨과 흥분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됐어, 인제 그만 울게! 어쨌든 자네도 암부 3대 지휘사 중의 하나인데, 이런 모습을 부하에게 보이면 창피하지 않겠어?”민규현은 콧물과 눈물을 훔치며 감격했다.“창피하긴요! 저하가 살아있는 한, 저는 이깟 체면 하나쯤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지금 자네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한번 보게!”윤구주는 경멸하듯 한마디 했지만,
“네? 이 파렴치한 자식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저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즉시 사람을 데리고 판인국으로 쳐들어가 그 망할 블랙 조직을 잡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세요!”민규현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자 윤구주가 손사래를 쳤다.“이 일은 그다지 급한 일이 아니야! 작디작은 판인국은, 도저히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는 거네!”“저하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당시 저하께서 거의 판인국의 씨를 말려버릴 뻔했는데... 개미 같은 놈들이 감히 저희의 국경을 넘을 줄은 생각지 못했네요!”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습니까?”민규현이 물었다.“물어봐!”“이리 멀쩡히 살아계신 데, 저하는 왜 서울 군부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형제들에게 저하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야죠! 그거 아십니까? 저하의 비보가 서울에 전해진 후, 우리 암부원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심지어 둘째는 죽을 각오로 기산 밑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민규현은 말을 하면서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민규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그래!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는 것만 알아둬!”민규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마음속으로 윤구주가 이렇게 한 이상 틀림없이 그 자신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번에 강성에 암부원들이 몇 명이나 왔어? 정태웅이랑 천현수는?”윤구주가 물었다.“저하께 아뢰옵니다. 둘째와 셋째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암부에는 별 변화 없지?”“암부는 아직 괜찮습니다만 저하가 순국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 군부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저하의 밑에 있던 4대 살신, 청용, 백호, 주작, 현무 중에서 현무 형님 혼자 군부에 남아있고 나머지 세 분은 이미 떠났다고 해요! 저하의 자리조차도 문아름 아가씨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민규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윤구주의 자신의 왕위가 대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코 많은 분노를 표
그러자 민규현은 손사래를 쳤다.“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 모두 저하의 부하들이니 서로 예의 차리지는 맙시다!”“네, 그럼 그러도록 하죠!”두 사람이 서로에게 아부하는 것을 눈치챈 윤구주가 말했다.“자, 그럼 이제 두 사람 서로 예의 차리지 않는 거야, 알았지? 민규현, 자네한테 물을 게 있어. 이번에는 자네 혼자 나를 찾아온 건가?”“저하께 아뢰옵니다. 저는 암부에서 10명의 형제들을 거느리고 왔습니다!”민규현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래? 그럼 먼저 그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게.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절대 알리지 말고!”민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자리에서 물러났다.한편, 용인 빌리지 앞.오소룡은 한 무리의 암부 사람들과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오 대장님, 이제 어떡할까요? 지휘사 님이 들어가신 지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한 암부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선두에 선 소대장 오소룡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역력했다.곧이어 그는 손목시계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마지막으로 5분만 기다리겠다. 그 뒤에서 지휘사 님이 나오지 않으시면 들어가도록 하자!”“네!”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러 어느새 5분이 지났다. 오소룡이 암부원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갑자기 한 그림자가 그곳에서 날아왔다.그 모습을 본 암부원들은 순간 즉시 “지휘사 님!!!”이라고 외쳤다.그는 바로 민규현이었다!“지휘사 님, 괜찮으십니까?”오소룡은 민규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달려와 물었다.그러자 민규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지휘사 님, 그럼 그 술법에 능한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뒷산에 조금 전 지휘사 님께 손댄 놈도 있습니까?”오소룡이 다시 물었다.“이 일에 대해 너희들은 더 이상 관여하지 마라! 오소룡, 지금 명령을 내리니라. 모든 형제들을 데리고 잠시 먼저 본부로 돌아가!”“네? 본부로 돌아가라고요? 지휘사 님을
천하회의 사람들이 떠난 후, 민규현은 그제서야 재빨리 다시 윤구주의 곁으로 돌아왔다.윤구주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민규현은 매우 흥분했다.뱃속 가득 있던 그리움과 정을 그는 하나도 빠짐없이 윤구주에게 말했고, 동시에 암부 전체가 구주왕을 무척 그리워한다는 사실도 전했다!윤구주는 감개무량했지만, 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만천하에 알릴 수는 없었기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저하! 지금 복귀할 수 없다면, 저 민규현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하께 차를 내오는 일을 하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저하의 곁에 남고 싶어요!”민규현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자네는 암부의 3대 지휘사가 아닌가, 그런 대인물이 내 곁에 있으면 암부는 어떡하고?”윤구주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상관없습니다! 저는 저하가 키운 사람이에요! 저하가 없으시면 저 민규현도 없습니다! 저하가 저를 때리신다 해도, 저는 저하를 모시겠습니다!”‘이 자식 참 답답하군.’“그래! 그럼 당분간은 내 곁에 있어 봐! 암부에 관해서는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고!”“저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그렇게 당당한 암부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민규현은 윤구주의 곁에 남는 것에 성공했다.얼마 뒤, 그는 윤구주를 따라 별장 거실에 도착했다.그때, 포니테일을 하고 입에 사탕을 물고 있는 작은 그림자가 거실에 나타났다.아이는 윤구주의 곁에 갑자기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민규현이 나타나자 두 눈을 굴리며 말했다.“어? 구주 오빠, 이 사람은 누구예요?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데?”윤구주는 두씨 가문의 두나희를 상대하기 싫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흥! 나를 무시해? 됐어. 어차피 나만 구주 오빠를 좋아해도 상관없으니까!”말을 마치자 그녀는 히히 하며 웃기 시작했다.“어이, 거기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는 누구예요? 왜 우리 구주 오빠 옆에 있어요? 혹시 아저씨도 우리 구주 오빠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예요?”계집애가 이렇게 묻자 민규현은 하하 웃으며 물었다.“이 계집애
...소씨 저택!소채은이 병에 걸린 사실을 윤구주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는데 현재 그녀는 병에 걸린 지 닷새가 다 되어가고 있다.이 닷새 안에, 처음 3일 동안 소채은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넷째 날, 다섯째 날이 되어서야 서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무기력했고,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듯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소청하와 천희수는 매우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전혀 소채은을 말릴 수 없었다. 그녀는 석화마냥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허약하게 누워있을 뿐이었다.“여보, 이제 어떡해요? 우리 딸 이제 폐인이 다 되어가요... 얘 꼴을 좀 봐봐요!”천희수는 한쪽으로는 이렇게 말하며 한쪽으로는 눈물을 훔쳤다.소청하도 끊임없이 한숨을 쉬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이게 다 그 윤씨 자식 때문이야! 그 자식이 우리 채은이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우리 딸이 이렇게 됐겠어?!”그러자 천희수가 말했다.“지금 욕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리는 그 윤씨 자식 주소도 모르는데...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잖아요!”“알아, 안다고!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중이잖아 나도!”소청하는 담배를 피우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잠시 후, 그가 갑자기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맞네! 여보 그 서울에서 일한다는 친조카가 우리 강성에 왔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에 연락해 보지 그래?”소청하는 문득 오소룡을 떠올렸다.“며칠 전에 몇 번 전화를 해봤는데, 매번 연결이 안 됐어요!”“연결이 안 됐다고? 그럴 리가 있나? 친이모인데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니면, 한 번 더 걸어볼래?”소청하의 말에 천희수도 곰곰이 생각했다.‘내가 친이모인데, 그래도 한번은 전화 받겠지!’이렇게 생각한 후, 천희수는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뚜뚜뚜...”몇 초 후, 핸드폰 너머로 한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이모?”천희수는 전화가 연결된 것을 보고 순간 감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
시간이 빠르게 흘러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즈음, 검은색 카니발 한 대가 소씨 저택 대문 앞에 멈췄다.곧이어 차 문이 쾅쾅 열리더니 양복을 입은 오소령이 차 안에서 걸어 내려왔다.뒤에는 네 명의 우람한 암부원들이 뒤따랐고 손에는 소정의 선물도 들려있었다.“오 대장님, 여깁니까?”한 암부원이 물었다.그러자 오소룡은 고개를 들어 소씨 저택 대문을 바라보며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그래! 나는 4살부터 10살 때까지 줄곧 우리 이모 집에 맡겨졌었어! 그래서 말하자면 우리 이모는 내 친부모와 다름없는 존재지! 아참, 사촌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 녀석이 나를 정말 잘 따랐었지.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군!”어린 시절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떠올리니 오소룡은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씩 올라갔다.“들어가자!”곧이어 오소룡과 네 암부원들은 소씨 저택 대문에 들어섰다!소씨 저택 안에서!천희수, 소청하는 멀리서 오소룡이 네 명의 암부원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본 후, 곧장 달려오며 환영했다!“아이고, 내 조카 왔구나! 이모가 너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알아?!”천희수가 달려오더니 오소룡을 끌어안았다! 오소룡도 즐거워하면 “이모!”라고 크게 외쳤다.“이게 얼마 만이야, 그래? 우리 조카 아주 점점 잘생겨지네, 이리와, 이모가 자세히 한번 봐보자!”천희수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자신의 친조카를 살펴보았다.“그래! 소룡아, 네 이모가 매일 너를 얼마나 염려하는지 아니? 가끔 밤에 잠꼬대로도 네 이름을 부른다니까!”옆에 있던 소청하도 맞장구를 쳤다.“이모, 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못났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일이 너무 바빠서 보러 올 시간도 없었어요.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멍청한 녀석, 그걸 말이라고 해? 나도 네 엄마한테 들었다. 너 최근 어떤 비밀스러운 부서에 들어갔다며? 게다가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고 말이야. 다른 것도 아니고 바빠서 그런 것이니 우리도 당연히 이해하지!”“네, 일이 그렇게 됐네요. 감사
“미친놈. 이 가짜 스님아, 당장 꺼져.”공수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혈액을 인으로 새겼다.그의 피는 놀랍게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십장 금불인이 발동되었다.공수이가 모든 힘을 다해 불러낸 공격은 보도자항이 소환한 금불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네 놈이 고작 불법 몇 년 수련했다고 대단한 줄 아느냐? 서방여래는 만불지존이다. 네가 감히 뭐로 나와 겨룬단 말이냐. 깨져라.”보도자항은 냉소를 띠며 금불상의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번개 같은 금뢰가 튀어나와 공수이의 금강불인을 산산이 부수었다.그 충격에 공수이는 완전히 쓰러졌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공수이는 이것이 정말 여래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찮은 요귀가 어찌하여 참불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세상 이치인가? 내가 배운 불법은 전부 거짓인가? 아니면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건가?”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천지의 정기를 품은 무지갯빛 호연정기가 짙은 기운을 가르며 쏟아졌다.“금강인 불문을 열어라. ”거대한 메아리 같은 음성이 하늘을 울렸고 곧이어 백장 금인이 칠색 구름을 타고 서울 상공에 강림했다.“뭐라고?”보도자항의 표정이 굳었다.그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숨조차 막히게 했다.“불.”백장 금인이 왕부로 내려오자마자 뱉은 한마디에 보도자항이 펼쳤던 모든 사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안돼...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이 세상에 아직도 대승 불법을 익힌 자가 남아 있었다니.”보도자항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그는 질투에 사로잡혔다.왜 자신은 만불종 종주임에도 이런 참된 불법의 정수를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불본무도 심성위령. 일념으로 도를 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희 같은 자들은 마음을 그르쳐 불을 왜곡하고 형상 없는 불을 우상화해 신처럼 떠받들었다. 만불종은 불타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했고 종교를 가장해 세상을 속였으며 그 어떤 정의로운 종
“너 혹시 내 금강인을 노리는 거야? 이 썩을 놈아. 이 빌어먹을 스님아. 금강인은 불문의 최고 금의인데 너 같은 가짜 스님한테 줘봤자 쓸모없어. 멍청이야.”공수이가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보도자항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네 이놈. 네놈 같은 자는 죽여야 해.”보도자항이 눈을 부릅뜨며 불문의 비기를 펼쳤다.하지만 그의 동작은 도저히 정통 도술로 보이지 않았다.몸 전체에서는 사악한 기운과 요기가 넘실대고 있었다.“요승아, 내 공격을 받아라.”공수이는 다시 한번 금강인을 펼쳤다.그를 감싼 금강불인은 보도자항의 사기를 완전히 차단했고 강렬한 공격이 연속으로 날아들어 보도자항을 계속해서 밀어냈다.보도자항은 억울함을 느꼈다.그의 눈에 공수이는 그저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공수이는 물론 공씨 가문 전체가 나서더라도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임 씨 초대 국주 임세현이 돌아와도 자신 앞에 무릎 꿇을 것이라 확신했다.하지만 금강인만은 보도자항의 모든 사기 무공을 정면으로 제압하는 천적이었다.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보도자항은 속이 타들어 갔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수이는 보도자항을 몰아붙이며 집요하게 공격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동왕은 속이 다 시원했다.“공수이, 본때를 보여줘. 더 세게 패.”공수이는 보도자항의 머리 위로 올라가 정통으로 내리쳤고 보도자항이 머리를 감싸자마자 바로 아래로 파고들어 극한의 회음부 공격을 퍼부었다.퍽! 퍽! 빗발치는 주먹이 급소에 꽂히자 아무리 경지 높은 보도자항이라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이 썩을 놈 물러가라.”보도자항은 사기를 폭발시키며 공수이를 멀리 내던졌다.하지만 공수이는 금강인의 보호를 받고 있어 공격을 맞아도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보도자항은 양손을 합장하더니 눈동자가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전신에 흑기가 치솟았다.“요승아, 너 또 그 짓거리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그런 사술은 통하지 않아
“우습군. 이런 조잡한 칼 한 자루로 어쩌겠다고? 설령 임세현이 직접 나타나도, 내가 제압할 방법은 있다. 하물며 너 같은 놈은? 애초에 수련 자질도 없으면서 평소엔 그저 인생을 낭비하다가 위기에 처하니 발버둥 치는 거야. 정말 한심하군.”“너 같은 놈은 그냥 처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해. 부처님 말씀에 이르길, 부처는 인연 없는 자는 구하지 않느니라. 너는 불문과 인연이 없으니, 지옥에서 고통이나 받는 게 어울리지.”“고해무변. 네가 돌아갈 곳은 지옥뿐이다.”“하하하!”보도자항은 한 손으로 불인을 그리며 마력을 응축해 진동왕의 명문을 향해 내리찍었다.“젠장! 이제 끝이군.”진동왕 임성진의 눈에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그 말이 맞았던 거다.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막상 상황이 닥치자 그는 평화롭게 죽지 못할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안 돼!”임성진의 절규는 하늘을 갈라놓을 만큼 강렬했다.“뭐, 뭐야?”보도자항은 진동왕이 그런 힘을 낼 리 없다며 비웃었지만, 그때였다.하늘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곤두박질쳤다.“뭐야, 이놈은?”보도자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그 검은 그림자가 땅에 내리꽂히자 바닥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진동왕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내가 소리쳤다고 사람이 떨어진다고? 혹시 구주왕이 돌아온 건가?’하지만 그건 아니었다.구주왕은 저리 허접하게 등장할 인물이 아니었다.임성진이 눈을 부릅뜨고 확인한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갔다.떨어진 이는 바로 공씨 가문의 세자 공수이였다.“네... 네가 왜 여기에... 공씨 가문에서 보낸 게 고작 이 하찮은 놈이라고?”진동왕은 절규했다.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 순간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던 공수이는 허접하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허접?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야, 이 늙은이야!”“내 이름은 공수이! 공씨 가문의 세자지. 법호는 널 죽여주마다!
구주군이 진동왕을 따라 돌격하려는 순간 진동왕은 단호하게 외쳤다.“물러서! 전원 후퇴하라. 저자는 만불종의 종주다. 너희가 가다간 전멸할 것이다.”진동왕은 자신의 권한으로 구주군의 진격을 막았고 홀로 왕부 안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진동왕, 네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오늘 네 목숨은 내 것이고 왕궁 밖 구주군의 국운 또한 내 차지다.”보도자항은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였고 진동왕은 이를 악물고 금도를 휘둘러 필사적으로 맞섰다.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실로 용맹했지만 사실상 그의 목숨을 스스로 갈아내는 싸움이었다.온 힘을 다했지만 그의 어떤 공격도 보도자항의 몸에 미치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시간을 끄는 것뿐이었다. 한편 다른 전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청의 검객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제자였다. 그의 검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고 곤륜 구역의 수련자들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청해는 지금 자신의 음혼을 불태우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서울 상공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고 그 먹구름은 서서히 거대한 해골의 형상으로 변해갔다.마치 서울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였고 땅에는 귀기 어린 안개가 스며들었다.서울 전역이 거대한 안개에 휩싸였고 그 안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악몽에 갇혔다.그 누구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꿈속임을 인지한 이들조차 가위에 눌린 듯 깨어나지 못했다.깨어 있던 이들마저 갑자기 정신이 붕괴된 듯 헛소리를 내뱉으며 광기에 휩싸였다.서요산 검종의 산속 검각에는 종주의 폐관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피처럼 붉은 달이 떠오르고 동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무겁게 몰려 있었다. 그 위로는 거대한 형체가 아득히 떠다니고 아래로는 온갖 귀물이 들끓고 있었다.“마기가 짙어지고 있군. 누군가 화진의 국운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성이 재빠르게 날아와 무릎을 꿇고 보고했
“신령의 기운이 너무 약해졌어. 안 돼. 저놈은 백호 대수령을 노리고 온 거야.”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은용위는 즉시 서울 본부에 상황을 보고했다.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울 본부와의 모든 통신이 완전히 끊기었다는 점이었다.서울 본부 빌딩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천 명의 왕실 금위군 역시 모두 피 웅덩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해당 지역은 거대한 결계로 봉쇄되어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더욱 충격적인 문제는 왕궁 내부 고수들이 전멸했다는 것이다.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왕궁 바로 아래 거주하던 왕실 직계 가족들은 무사했다.왕궁 외곽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견배영은 교외에서 급히 돌아와 지휘권을 인계받았다.그는 원래 용맥 경계에서 방어 임무 중이었지만 사태가 긴급해지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역시 너무나 무력했다.진동왕과 신령도 그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사태를 수습한다는 건 불가능했다.“어쩌지... 현모와 주작은 해외에 있고 구주왕은 곤륜 구역에 갔는데. 서요산 검종도 내부 사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당장은 도움을 받을 수 없어.”견배영은 고심 끝에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은용위와 구주군, 금위군을 총동원해 대규모 군사력으로 밀고 나갈 작정이었다.즉시 대군이 소집되었고 동시에 진동왕부와 수비영을 향해 출동했다.그중 백 명의 은용위 선봉대가 가장 먼저 진동왕부에 도착했다.이들이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진동왕을 고문 중이던 보도자항이 눈을 가늘게 떴다.“호오... 역시 임씨 가문의 국운이 약해졌다고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군. 하지만 이번에 막아냈다고 해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지.”보도자항은 싸늘하게 웃었다.“전원 돌격!”백 명의 은용위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그들은 하사받은 금도를 뽑아 들었고 검날에서는 은은한 광휘가 번쩍였다.금도는 왕실의 보검이자 정식 법기였다.평소엔 집안 제단에 모
푹!수비영에 있던 청해는 피를 토하며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은 끔찍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천술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청해의 천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상대방의 검술은 신들린 듯 너무나 강력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서요산 검법이라니... 말도 안 돼. 서요산 검종은 우리 왕과 우호 관계가 아니었나?”청해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청의 검객을 노려보았다. 그가 청해를 쓰러뜨린 검술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법이었다. 서요산은 예부터 곤륜 구역과 깊은 원수지간이었다.수천 년간 요마를 베어온 그 검법은 곤륜 수련자들에게 두려운 천적 같은 존재였다.“윤구주 따위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너 같은 곤륜 출신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단 말이냐.”“맞아. 난 서요산 검종의 검객이었다. 하지만 백 년 전 파문당했지.”“스승은 내가 심성이 삐뚤었다고 했어. 웃기지 않아? 나는 요마를 베어 악을 처단하며 칼을 들었다. 내 검 아래 쓰러진 마인이 백 명이 넘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마음이 삐뚤었다는 거냐. 청해 네놈 역시 죄가 크니 죽여 마땅하다.”청의 검객은 말을 이었다.“백호 또한 살기가 너무 강하다. 그는 화진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윤구주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 또한 죽어야만 한다. 구주왕도 마찬가지. 전공을 세웠다 한들 그가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 내 눈엔 그놈 역시 마인일 뿐. 그가 서울에 있다면 나 청현의 칼은 그를 반드시 베어버릴 것이다.”검객의 말은 너무나도 오만했다. 심지어 윤구주까지 죽이려고 했다.“미친놈. 네놈이 감히 구주왕을 입에 담다니. 곤륜 구역에서조차 그 살신의 명성을 말할 때면 존경심을 담는 법이다. 내가 보니 너야말로 혈기가 머리에 치솟아 미쳐버린 게 틀림없군. 너야말로 진정한 마인이야. 현빙신장.”청해는 피를 불러일으켜 하늘의 정기를 끌어모아 한 손에 강대한 기운을 응축했다.그리고 그것을 청의 검객을 향해 내질렀다.쾅!천지를 흔드는 엄
노승이 불경을 읊자마자 근위병들은 갑자기 무기를 내려놓고 경건한 표정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한편 연회장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서울의 유명 인사들은 술과 향락에 깊이 빠져 있었고 누구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노승은 아무런 방해 없이 왕부 안으로 들어섰다.곳곳에 중무장한 근위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목을 졸라 기이한 모습으로 죽어버렸다.스윽.호화로운 연회장 한가운데 붉은 승복을 걸친 노승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취기에 절은 귀족들은 이를 왕부에서 준비한 공연으로 오해했다.“어이쿠 스님이 오셨네. 어떤 재주를 보여주실지 기대되네요.”배를 내밀고 있는 한 재벌이 술기운에 취해 비웃듯 말했다.“재주라... 나는 만불종의 종주다. 요란한 묘기는 없고 다만 함께 한 구절의 경을 읊고 싶을 뿐이다.”노승은 조소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우리 만불종을 사종으로 정하고 화진의 사술이라 낙인찍은 그대들이 과연 바르고 올곧은 정인군자인가? 아미타불!”노승의 입에서 다시 섬뜩한 불경이 흘러나왔다.그 순간 연회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어떤 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통곡을 터뜨렸고 또 어떤 이는 이마를 바닥에 박아 찢어지도록 하며 자신의 죄를 외쳤다.이내 그들은 서로를 미치도록 죽이기 시작했고 화려했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피로 물든 지옥으로 변했다.음산한 살기에 술에 취해 있던 진동왕 임성진도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목격한 그는 불경의 정체를 듣자마자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진짜로 누군가가 습격해 왔구나. 네놈이 만불종 종주냐. 이 노마가 감히 서울까지 와서 날뛰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진동왕 임성진은 급히 금도를 찾았지만 곧 그것이 수비영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만의 구주군 또한 외곽에 주둔 중이었기에 왕부에는 겨우 백 명 남짓의 친위병만 있었고 그마저 모두 당한 모양이었다.눈앞에 서 있는 이는 만불종 종주였다.임성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이런 수백 년
화진 서울에 있는 진동왕부에서, 오늘 진동왕 임성진이 서울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연회장 한가운데 자리한 임성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한때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명목상 왕위에 올랐던 그였지만 인생 막바지에 뜻밖의 행운을 만나 구주왕과 함께 천옥 청관 북라국의 3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다시 왕위에 오를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임세현이 천하를 통치하는 동안에도 임성진은 여전히 왕실의 친왕으로 남아 있었다.앞으로 그가 정치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화진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임은 분명했다.만약 구주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때야말로 임성진은 진정한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있다.연회석에서 임성진은 시원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그야말로 호사다마의 절정이었다.“여러분 인생의 전성기는 짧습니다. 이 기쁨이 있을 때 마음껏 즐깁시다!”...한편 서울 방위군 주둔지에서는 이 중대한 순간에 직접 지휘를 맡아야 할 진동왕이 연회에 빠져 있었다.빙신전 부전주 청해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하지만 그는 병권도 없었고 빙신전 역시 이미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칠흑같이 어둡고 살기 가득한 밤이었다.새벽이 되자 갑자기 서울 전역에 혹독한 한파가 몰아쳤다. 기온은 순식간에 영하로 뚝 떨어졌고 온 서울은 순식간에 하얀 서리로 뒤덮였다.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은 핏빛으로 변했다.얼어붙은 백호 곁을 지키던 청해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살기다! 백호를 노리는 건가. 백호야 내가 할 수 있는 한 너를 지켜주마. 네가 이 죽음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네 운명에 달렸어.”청해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고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발은 몇 분 만에 땅을 새하얗게 뒤덮었다.살기가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갑자기 위협적인 기운이 사라졌다.“
“흥! 내 주인님께서 너 같은 개자식을 쓰실 줄이야.”옆에 서 있던 청해가 경멸 어린 눈길로 말했다.“하하! 빙신전 부전주라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구주왕의 개가 됐네.”“나는 지금 구주왕의 수하일 뿐만 아니라 구주왕과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고 게다가 현 왕의 숙부다. 앞으로 구주왕이 왕실에 인사드리러 올 때도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거야.”진동왕이 으스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 진짜 답 없네. 일이나 제대로 해. 현모와 주작도 말했잖아. 문씨 가문이 분명히 뭔가를 꾸민다고.”청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문씨 가문이 언급되자 진동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갑게 비웃었다.“문씨 가문이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굴겠다는 거야? 안 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겠다. 내 손에는 지금 삼만의 구주군이 있어. 서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진동왕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청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늙은이 정말 끝도 없이 잘난 척하네.’삼만의 구주군이 서울로 돌아와 기존의 금위군과 주변 수비군까지 합치면 무려 이십만의 정예 병력이 서울을 지키고 있었다.진동왕에게 이 정도 병력은 철벽같은 방어였다.한편, 빙신전 전주와 주작 현모는 이미 10국 영토에 도착했다.그들은 이제 백만 대군의 지휘 천막에 들어섰다.장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빙신전 전주를 향한 장군들의 태도는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말했잖아.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이놈들은 날 인정하지 않는다니까.”빙신전 전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조용히 해. 너를 서울에 두고 싶어도 못 믿어서 여기 데려온 거야. 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 망할 계략에 다시 빠지면 어쩌려고?”주작은 빙신전 전주를 째려보며 쏘아붙였다.주작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 빙신전 전주도 그와 다투는 것이 귀찮았다.현모는 장군들에게 빙신전 전주가 화진에 투항했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