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미는 윤구주를 설국으로 데려온 것이 후회됐다.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올 때까지 낙일성에 남아 있은 것이 후회됐다.만약 윤구주가 정말로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라면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당신은 계속 날 이용했던 거였어...”세나미는 덜덜 떨면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차갑게 피식 웃었다.“노예 따위 이용하는 게 뭐가 어때서?”윤구주의 말을 들은 세나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악마! 이 악마 같은 자식! 죽여버리겠어!”결국 참지 못한 세나미는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건지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윤구주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녀를 날려 보냈고 그녀는 먼 곳까지 날아가서 눈밭에 쓰러졌다.“딸!”딸이 윤구주로 인해 다치자 세나스는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부축하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세나스, 우리 사이의 원한은 오늘부로 다 해결하자고.”윤구주의 말을 들은 순간 애꾸눈인 세나스는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대,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거야?”“뭘 어쩌고 싶냐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그걸 모른단 말이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순간 세나스는 몸을 흠칫 떨었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모르겠다면 내가 알려주도록 하지. 6년 전 난 그렇게 말했어. 설국에서 또 한 번 우리 화진의 영토를 넘본다면 설국 서울까지 쳐들어가서 모든 이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고.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지? 설국 병사들은 공공연히 우리 땅을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화진인들의 물자를 강탈했어. 더욱 괘씸한 건 설국이 감히 우리 화진의 세가와 결탁해서 우리 화진의 무학 정수를 몰래 훔쳐 배우며 설국의 병력을 강화했다는 거야. 이 두 죄 중 하나만 저질렀어도 난 설국을 처단했을 거야. 그런데 설국은 이 두 죄 다 저질렀지. 그러니 나도 당연히 당신을 죽여야 하지 않겠어?”윤구주가 한 말은 마치 신의 말처럼 들렸다.오늘 일은 전부 설국이 자초한 일이었
윤구주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세나스는 정말로 두려웠다.“국제중재기구? 좋아. 그들이 날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주겠어.”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살기를 서슴없이 드러냈다.앞서 말했듯이 그가 설국에 온 이유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국인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그래서 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었다.그는 곧장 팔기지 중의 제5기 천주금술을 사용하였다.검결이 나타나자마자 어둑어둑하던 상공이 갑자기 보라색으로 변했다. 윤구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보라색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며 곧바로 검들이 하나둘 그의 주변에 나타났다.검은 총 999자루였다.“하!”윤구주가 소리를 지르자 999자루의 검들이 허공에 떠 있다가 순식간에 거대한 천주검 한 자루로 변했다.천주검이 나타나자 날이 어두워졌다.“베어라!”윤구주가 오른손을 움직이자 거대한 천주검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격에 설국 병사들은 겁을 먹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설국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이것은 구주왕의 팔기지야... 다들 물러나!”세나스는 윤구주가 천주금술을 시전하자 기겁하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다.윤구주의 검이 내려오자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눈앞의 설국 병사들 수백 명이 윤구주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뿐만 아니라 낙일성 뒤쪽의 거대한 성벽 또한 그 공격에 무너져 내릴 뻔했다.눈앞의 설국 병사들의 찢긴 시체들을 본 세나스는 눈이 벌게졌다.“구주왕, 적당히 해. 선 넘지 마!”윤구주는 웃었다.“왜?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검이 또 한 번 내려왔다.무시무시한 천주검은 마치 세상을 파멸로 이끌 검과 같았다.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수백 명의 설국 병사들이 피바다 위로 쓰러졌다.윤구주의 살육이 시작된 걸 본 세나스 곁의 신급 장수 6명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화진인! 오늘 우리 설국 장수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죽일 거다!”6명의 신급 장수는 일제히 윤구
처참한 비명과 애원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6명의 신급 장수 모두 맥 한 번 추리지 못하고 윤구주의 손에 죽어버리자 세나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남은 설국 병사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했다.이걸 과연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이건 전투가 아닌 살육이었다.윤구주는 홀로 군대 하나를 없앴다.윤구주가 팔기지 술현지를 시전하자 그의 온몸에 흰빛으로 둘리며 마치 신처럼 보였다.그가 지난 곳마다 시체가 즐비했다.눈앞의 이 군대는 세나스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군대였다.그리고 조금 전의 신급 강자 6명은 세나스가 가장 아끼고 믿는 설국의 인재들이었다.그러나 그런 존재들이 윤구주에게 전부 살해당했다.이 순간, 설국의 에이스라고 불리던 부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었다.다들 죽는 게 두려웠으니 말이다.이때 갑자기 어둡던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서 윤구주를 가렸다.“화진인! 참 건방지구나! 우리 설국에 정말로 아무도 없는 줄 안 것이냐?”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허공에 갑자기 검은색 우산이 하나 나타났다.그 우산은 아주 거대했고 겉면에는 보라색 문자가 적혀 있었다.문자가 반짝거리면서 무시무시한 힘을 싣고 윤구주를 덮쳐들었다.그 우산은 법기였다.검은 우산이 허공에서 내려오자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별 쓰레기 같은 게 날 상대하려고 하네. 당장 튀어나와!”윤구주는 갑자기 발을 힘껏 굴렀다.“뇌왕인!”쩌적.어둑어둑하던 하늘이 마치 무언가에 찢긴 것처럼 엄청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소용돌이가 나타나자 무시무시한 뇌전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얼핏 보였다.윤구주는 뇌왕인을 시전한 뒤 곧바로 손을 들어 수많은 뇌전들이 검은색 거대한 우산을 공격하게 했다. 펑펑 소리와 함께 검은 우산은 뇌전의 공격 때문에 그 자리에서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검은 우산이 폭발한 뒤 검은색 장포에 모자를 쓴 설국 제사장 세 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세 사람은 엄청난 술법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그중 중간에 있는 백발의 노
적야라고 불린 백발의 노인은 세나스를 향해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전 대신관의 명령을 받고 군신 각하를 도와드리러 온 겁니다.”“정, 정말 잘됐어요! 적야 대제사장님의 도움이 있다면 우리 설국은 무사할 거예요.”대신관의 수제자인 세나미는 빠르게 다가가서 적야 대제사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적야가 말했다.“나미 아가씨, 예의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관님께서 하루빨리 신전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하지만...”세나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의 생사인이 자신을 통제한다는 걸 안 뒤로 세나미는 이미 절망에 빠졌다.윤구주가 그녀를 죽일 생각이라면 그녀를 죽이겠다는 생각만 한번 하면 되었다.그래서 세나미는 두려웠다.백발이 성성한 적야 대제사장은 세나미가 두려워하는 것 같자 뭔가를 깨달았다.그는 고개를 들며 세나미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상대가 누가 됐든 우리 설국의 영토를 침범한 자는 모두 죽을 테니 말입니다.”그는 죽을 거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그러고 나서 천천히 시선을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아주 건방진 분이군요. 감히 홀로 설국 영토를 침범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다니, 벌을 받을까 두렵지 않으십니까?”“하하하하!”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당신 같은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신에 대해 논하는 거지?”윤구주는 우뚝 서서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말했다.“전 설국 광명 신전의 대제사장입니다. 오늘 전 대신관님의 명령을 받고 당신을 설득하러 왔습니다. 만약 지금 살육을 멈추고 저와 함께 광명 신전으로 돌아가서 3년간 벌을 받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신의 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육신이 죽고 영혼도 지옥으로 떨어질 겁니다.”적야 대제사장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갑자기 차갑게 웃었다.“광명 신전이라고 했나? 오늘 난 당신들의 신을 죽이고 광명 신전의 신화를 없앨 거야!”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손으로
구주왕이라는 세 글자가 적야 대제사장의 귀를 파고들었고 순간 적야는 안색이 달라졌다. 그의 뒤에 있던 다른 두 명의 대제사장도 마찬가지였다.“화진의 구주 군신 말인가요? 6년 전 홀로 우리 설국 수도까지 쳐들어와서 설국인들을 죽였던 그 사람이요?”적야는 깜짝 놀랐다.“네, 바로 그예요.”세나스가 말했다.“그럴 리가... 구주왕은 죽음의 바다에서 숨을 거뒀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적야가 다시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아뇨, 그는 죽지 않았어요. 살아있었어요. 화진이 우리를, 전 세계를 속인 거예요!”적야는 당연히 세나스의 말을 믿었다.과거 세나스의 눈 한쪽을 빼앗은 당사자가 바로 윤구주였기 때문이다.다시금 흰 옷을 입은 윤구주를 바라본 순간, 적야는 몸을 흠칫 떨었다.“화진의 군신이었다니. 그래서 제 진마탑을 쉽게 막을 수 있었던 거군요!”적야는 중얼거리며 말하더니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구주왕, 오랜만이군요. 구주왕은 화진의 최고 군신이며 최강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 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네요.”세 번 연달아 그들을 공격한 윤구주는 우뚝 서서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다.“아부 떨 필요는 없어. 오늘 당신들 모두 죽을 테니 말이야.”매정한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적야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구주왕께서는 오늘 저희 설국을 적으로 돌리려고 마음먹으셨나 보네요.”“일개 설국 따위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윤구주는 패기 넘치게 말했다.적야는 한숨을 쉬었다.“결심하신 모양이니 오늘 구주왕 홀로 저희 설국을 없앨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자, 여러분, 이곳에 진법을 만듭시다!”적야가 명령을 내리자 옆에 있던 두 명의 대제사장이 빠르게 움직여 삼각형 모양으로 윤구주를 둘러쌌다.세 명의 설국 대제사장은 모두 절정 강자였다.특히 적야는 사상 절정이었다.세 사람은 윤구주를 둘러쌌고 적야가 우선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곧바로 원형의 빛무리가 윤구주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그 빛무리
그 순간 번장대진 안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비록 흐릿했지만 모두 절정 수준의 살기를 띠고 있었다.그 그림자들은 윤구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윤구주는 그 순간 몸에 힘을 주며 엄청난 기세를 내뿜었다. 그가 손을 쓱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기운에 그림자들이 충격을 받고 멀어졌다.그러나 그림자들은 형태를 띠지 않고 있으므로 충격을 받고 멀어진 뒤에도 곧바로 다시 뭉쳐서 윤구주를 공격했다.“구주왕, 당신은 비록 실력이 대단하지만 우리 신전의 번장대진을 파괴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 광명 신전의 영살옥은 벌을 주려는 신의 뜻으로 뭉쳐진 것이라 형태가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 번장대진에서는 결국 힘이 빠져서 죽게 되죠.”적야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수많은 그림자들에 둘러싼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의 말대로 번장대진 안의 그림자들은 모두 허상이고 형체가 없었다.윤구주가 그림자들을 없애버리려고 할 때마다 그림자들은 다시 뭉쳤다.게다가 그림자들은 모두 절정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렇게 연달아 공격당한다면 정말로 적야의 말처럼 아무리 강한 실력자라도 결국엔 힘이 빠져서 죽을지도 몰랐다.“이런 보잘것없는 진법으로 날 죽이려고?”번장대진 속의 윤구주가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거만하군요! 당신이 과연 죽지 않을까요? 영살옥, 백영교살!”적야가 다시 한번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번장대진 안의 그림자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거의 백여 개 정도 되었다.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그것들 모두 절정 수준이라는 점이었다.그렇게 많은 그림자들이 미친 듯이 윤구주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이 순간 번장대진은 전장이 되어버렸다.“하하! 신전의 번장대진이 있다면 구주왕도 죽을 수밖에 없어!”세나스는 흥분해서 말했다.설국의 군신인 세나스는 광명 신전 번장대진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윤구주가 번장대진 안에 갇힌 모습을 보자 그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아버지! 저 악마의 실력을 얕보면 안 돼요!”세나미가 귀띔했다
윤구주가 수련한 팔기지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세상 사람들은 팔기지가 여덟 개의 신통뿐이라고 생각했다.그들은 윤구주가 팔기지를 넘어서 제9기 적선술까지 깨달은 줄은 몰랐다.이 순간, 적선의 기운이 나타나자 윤구주의 몸이 온통 투명하게 변했다.피부도, 머리카락도, 피도 전부 투명했다.적선술을 사용하자 윤구주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날 죽이고 싶어? 벌레만도 못한 설국인들이 무슨 수로?”그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적선기가 파도처럼 사방을 휩쓸었다.번장대진 밖에서 힘을 주입하고 있던 설국 강자들은 무시무시한 적선기에 휩쓸려서 멀리 날아갔다.그들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들은 윤구주의 엄청난 파워를 막을 수가 없었다.심지어 하늘도 윤구주의 분노를 느낀 건지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젠장, 저 자식 기운이 너무 강해요! 적야 대제사장님, 어서 번장대진으로 제압하세요!”세나스는 윤구주의 적선기가 점점 더 강해지자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백발이 성성한 적야 대제사장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서둘러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다들 구주왕을 제압합시다!”그가 명령을 내리자 근처에 있던 세 명의 설국 대제사장들이 수인을 맺어서 번장대진에 힘을 주입했다.윤구주는 번장대진 중심에 신처럼 서 있었다.그가 입은 흰옷은 펄럭대며 소리를 냈다.세 명의 설국 대제사장이 다시 한번 수인을 맺자 윤구주는 차갑게 피식 웃었다.“오늘 난 화진의 이름으로 설국인들을 모조리 벨 것이다! 검이여, 이리로 오라!”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검망이 나타났다.그 순간 윤구주의 손에 갑자기 검 하나가 생겼다.그것은 적선의 기운으로 뭉쳐진 흰색 비검이었다.비검이 나타나자 주우의 모든 것이 비검의 기세에 눌렸다.뒤에 있던 만여 명의 설국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화진 서요산의 비검술이라...”“젠장, 소문에 따르면 서요산 비검술의 명맥은 수백 년간 이어지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윤구주의 손에 나타난 비검과 하늘을 찌를 듯한 검
다른 대제사장은 덜컥 겁이 났다.적야도, 세나스도 모두 등골이 오싹했다.윤구주는 단칼에 번장대진을 파괴하더니 손을 움직여서 구양진기를 거대한 손으로 만들어 번장대진을 완전히 부서뜨렸다.“아! 아!”번장대진이 부서지는 순간 적야 대제사장과 다른 한 명의 대제사장은 코와 입에서 피를 뿜었고 몸 또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진법이 망가졌다.윤구주는 비검을 들고 허공에 우뚝 서 있었다.이 순간 그는 신이자 악마였다.“내가 얘기했을 텐데. 날 막는 자들은 전부 죽을 거라고. 이제 당신들 모두 저승으로 보내줘야겠어.”윤구주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갑자기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적선기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낙일성의 상공 위로 아주 거대한 어둠의 소용돌이가 생겼다. “이제 벌을 내릴 시간이야. 죽어!”윤구주의 무자비한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하늘과 땅이 어둠으로 물들었고 곧이어 꿈틀대는 외전이 소용돌이 속에서 나타났다.그 뇌전은 뇌왕인의 뇌전보다 더 무시무시했다.그 놔전은 윤구주의 적선기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뇌전 하나하나가 뇌검으로 변했다.“멸하라!”윤구주가 큰 손으로 바닥을 누르자 하늘 위 거대한 어둠의 소용돌이 속 무시무시한 뇌검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뇌검이 하늘에서 비처럼 낙일성의 땅 위로 쏟아졌다. 설국 병사들도 적야 등 사람도 뇌검을 피해 갈 수 없었다.쿵쿵쿵!끝없는 폭발음이 낙일성에서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낙일성은 마치 수많은 포탄 공격을 받은 것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반경 몇 킬로미터 모두 윤구주의 뇌검으로 뒤덮었다.뇌검이 떨어져서 모든 걸 없앴다.세나스의 뒤에 있던 설국 군대도, 낙일성도 모두 뇌검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끝장이야!”“우리 끝장났어!”자신이 데려온 만여 명의 병사들 모두 뇌검에 뒤덮이자 세나스는 비명을 질렀다.그들을 도와주러 왔던 두 제사장은 윤구주가 미친 듯이 사람들을 죽이자 눈이 벌게졌다.“구주왕,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두 명의 대제사장은 함께 윤구주
희미한 노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윤구주,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다! 내가 누군지 묻지 마. 너는 단지 곤륜 구역의 한 대신전에서 구오 지존 대원만 경지의 천신을 보내 너를 막으려 한다는 것만 알면 돼. 그의 목적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을 어지럽히려는 것이야. 어떻게 결정할지는 네가 정해. 우리 쪽에서는 이미 너를 위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것이 구오 경지가 아니었을 거야.” 투영은 급하게 왔다가 수옥인이 인사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신전이 너의 계획을 방해하려 해. 이것은 이미 누군가가 너를 위해 얻어낸 결과야. 원래 그들은 너를 죽이려 했었어. 아마 오려는 자는 극전 신경, 황자였을 거야.” 수옥인은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윤구주의 반응은 평범했다. 그는 수옥인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경멸하는 듯 말했다. “고작 신전 하나에 겁먹었어? 너도 여섯 신전 중 하나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마! 또한, 극전 신경은 하나의 경계고 황자는 또 다른 경계야. 모든 극전 신경이 황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이 둘의 관계는 진동왕이 왕이지만 왕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화전에서 현재 인정받는 왕은 윤구주 단 한 명뿐이다. 국주 임정설은 무계에서의 영향력이 부족해 겨우 절반 정도로 간주된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기세가 등등하니 가볍게 볼 수 없어.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너를 찾지 않고 네 부하 전사들을 노렸을 거야.” 수옥인은 분석했다.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옥인이 비록 겁이 많지만 머리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지금 너를 도와 전법을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계산했어. 그 천술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곤륜 구역의 그 자식이 여길 계속 주시하고 있어. 내가 나가면 그 사람은 전법을 조작할 거야. 그들이 현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계산했는지는 모르겠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는 현모를 바라보았다. 말이 이 정도까지 나왔는데도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윤구주는 의심이 들었다. ‘곤륜 구역이 정말 내 뜻대로 움직인다고? 귀신족을 노예로 여기고 귀신족의 음기를 받드는 ‘신’들이 귀신족이 자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왜 그래, 조상님? 문제라도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하신 거야?”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수옥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너는 저쪽 전장을 잘 지켜보고 어떤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려.”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집중해 다시 전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천옥, 끝없는 산악 지대 깊은 곳에 음침하고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산이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그 산은 마치 해골처럼 무섭게 보였다. 이 ‘해골' 모양의 산은 바로 귀신족의 대영이었고 이 종족의 마지막 거주지인 귀산이었다. “죽여라!” 산 위에서는 함성이 귀를 찢을 듯했다. 십만 대군이 각기 전장을 이끌며 산을 공격해 귀신족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귀신족 수련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간 전사들이 감히 신계로 들어왔다는 것, 특히 단독 군대가 이렇게나 강한 기세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옥인의 투영이 바로 이 귀산에 있었다. 그는 수백 미터 상공에 떠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이 인간 대군이 지닌 군대의 살벌한 기운은 그를 놀라게 했다. “천옥은 비록 곤륜 구역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신계로 간주한다.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다. 신조차도 인간계에 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이들은 어떻게 천지의 영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수옥인은 이곳의 격렬한 천지의 영기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불안정한 영기는 쉽게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훈련을 통해 이 군대가 이렇게 무적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일까?’ 수옥인은 이 순간 앞에 진정한 무서운 아수라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 인간 전사들은 두려움 없이
“할아버지, 이건 제가 자초한 거예요. 설령 오빠가 제가 오빠를 배신한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제가 오빠의 부하 장군과 병사들을 억울하게 해쳤다는 것만으로도 오빠는 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이런 말은 소용없어요.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가끔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추억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 오빠는 이미 천옥에 들어갔을 거예요. 이제쯤이면 선우진웅을 처단했겠죠. 잘됐네요. 선우진웅이 임세현을 죽였고 윤구주가 선우진웅을 죽였으니 임세현의 원수를 갚은 셈이에요. 이 화진을 어지럽힌 대적을 처단했으니 임세현도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예요.” 문아름의 눈에는 음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완벽한 계획 속에 있었다. 문창정은 할 말을 잃었다. ‘또 윤구주가 영웅이 되게 했구나.’ “얘야, 지금 귀신족은 진동왕 하나도 막기 힘들어하고 있어. 그 십만 대군은 귀신족을 개죽이듯 죽이고 있지. 설령 곤륜 구역에서 강자를 보낸다 해도 곤륜 구역의 성격상 칼이 목에 닿기 전에는 절대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깨닫지 못해. 보낸 사람은 윤구주에게 밥이 될 뿐일 거야.” 문창정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문아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계획을 준비했어요. 이미 한 명의 사사를 보냈어요. 이번에는 윤구주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천옥에 가둘 거예요. 일 년만 가두면 오빠가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일 거예요.” “오? 만약 가두지 못한다면? 만약 윤구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온다면?” 문창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더 좋아요. 나오려면 윤구주는 정원을 희생해야 할 거예요. 한 사람의 힘으로 천재를 이겨내야 하죠. 나와도 거의 폐인이 될 거예요. 그때 제가 다시 계획을 세워 오빠를 천인 오쇠로 만들고 종문 동맹이 나서 오빠를 몰락시키면 되죠! 저는 오빠가 몰락하는 장면을 기록해 모든 화진 사람에게 영웅이 되는 것의 결말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요!” 이 말을 들은 문창정은 손녀의 계획을 짐작했다. 윤
화진의 국경에는 광활한 산맥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산을 뒤덮었다. 문아름은 산꼭대기에 앉아 고대의 거문고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화진 제일의 교활한 여자라 불리며 음흉하고 독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문창정이 눈길을 밟으며 다가와 문아름에게 순백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날이 추워졌으니 몸을 따뜻하게 해.” 문창정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문아름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거문고를 한 번 보고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는구나.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했어.” 문창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문아름은 정신을 차렸다. “이 거문고는 그 사람이 저에게 준 거예요. 그때 저는 국방부 참모로 남부 왜구의 난을 담당했고 국주를 위해 계책을 내놓곤 했죠. 그 사람도 그때 막 중령으로 진급했을 때였어요. 고작 한 명의 단장에 불과했죠. 할아버지가 직접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문씨 가문의 딸을 얻으려면 최소한 장군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 후, 그 사람은 혼자 왜적의 대영으로 쳐들어가 화진 남부를 어지럽히던 왜적의 수뇌부를 전멸시켰어요. 그 공로로 소장으로 진급했고 화진에서 가장 젊은 장군이 되었죠. 하지만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이 장군이 된 후에도 국주가 준비한 경축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밤새도록 서울로 날아가 재상부에 잠입해 육도진의 가보인 이 거문고를 훔쳐 와 저를 만났어요.” 이 말을 하며 문아름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육도진은 화가 단단히 났어요. 그 늙은이도 고집이 세서 구주 오빠를 처벌하려고 했어요. 구주 오빠는 어떤 사람인데요. 저를 위해 훔치고 빼앗아도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육 우상을 쳐다보지 않았어. 이 일이 너무 커져 결국 국주가 직접 나서서 중재했죠.” 이 말을 듣고 문창정은 고개를 저었다. “국주가 나선 건 겉보
“그래, 내 부하인 네 명의 군신 중에서 현모가 왕실과 가장 가까운 관계야. 임세현 선배가 현모를 구한 것도 예상했던 일이지. 만약 사해에서의 전투에서 내가 정말로 죽었다면 왕실은 다른 세 명의 군신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현모를 대장으로 삼아 국주를 보필했을 거야.”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말하자면 네 부하인 현모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행운은 불행을 따라오는 법이지. 임세현이 현모를 가르쳐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르게 했고 이 천옥에서 평생의 철학을 전수했어. 그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까지 전해주어서 현모가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거야!”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을 나누는 사이에 천옥의 전법 중심에 도착했다. 전법은 수백 개의 법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만 개의 부적이 연결되어 대진을 이루고 있었다. 수옥인은 중심에 앉아 전법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윤구주는 도착하자마자 진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악한 기운이 침투한 것이 분명했다. 잠시 관찰한 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결국 문씨 가문이 무력으로 전법을 깨뜨려서 전법이 손상된 거로군. 곤륜 구역의 이 자식들, 이렇게 큰 전법을 만들어 놓고는 전법의 비밀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 같은 곤륜 구역 출신인데도 이렇게 경계하는 걸 보니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윤구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조상님,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위치에서는 그런 걸 알 자격도 없어. 어쨌든 곤륜 구역은 예전부터 그랬지. 아무도 진정으로 곤륜 구역을 통일할 수 없었어.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예전에 일이 너무 커졌었어. 천술을 남용하고 천지의 기운이 혼란에 빠져 모두가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해 봉신방을 만들어 인간계와 신계를 나눈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안 가.” 수옥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불쾌해졌다.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수옥인에
수옥인은 천옥 전법의 핵심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농담 식으로 말했다. “조상님, 아까 그 군신은 정말 인재 중의 인재네.” 윤구주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감옥 지기 녀석, 나를 빗대어 욕하는 건가?’ 수옥인은 재빨리 손을 저으며 말했다. “조상님을 욕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저 현모가 몸집은 커서 문신처럼 생겼는데 얼굴은 여자처럼 고와서 정말 이상하다는 뜻이었어.”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 곤륜 구역 출신들은 온실 속에서 자라 고생을 모르니 세상사에 대해 알 턱이 없지. 현모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가 착한 사람이 발견해 고아원으로 보냈지. 조금 자라서는 입양을 갔지만 노역을 시키거나 학대를 당하기 일쑤였어. 여러 가정을 전전했지만 어느 집에서도 사람대우를 받지 못했지. 결국 좋은 집에 입양되었는데 그 집은 장사를 해서 재산이 많았고 그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어. 하지만 그 집안은 지역의 문벌에게 모함을 받아 집안이 망했지. 현모는 그 집안의 딸을 데리고 도망쳐 방랑하다가 서로 정이 들었어. 하지만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문벌이 그들을 찾아냈고 그 집안의 아들이 현모의 눈앞에서 그의 유일한 가족을 능욕하고 죽였어. 현모도 폭행을 당하고 폐인이 되어 거리의 거지가 되었지.” 현모가 겪은 이런 고통은 윤구주도 겪어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걸 세속을 벗어난다고 하지. 곤륜 구역에서 신규를 어겨 가장 무거운 벌을 받으면 신격을 깨뜨려 인간으로 강등당하는 거야.” 윤구주는 어이없어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그럼 그 후는 어땠어? 거지가 어떻게 부하로 들어가 4대 군신까지 오를 수 있었지?” 현모는 비록 군신 중 가장 서열이 낮지만 우물 속의 용도 용이었다. 꿩이 아무리 귀해도 봉황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윤구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어떻게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을까?’ “이런
“현모, 진짜로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내가 처음에 너를 남부로 배정했을 때 군령을 내렸잖아. 누가 무슨 일이 생기든, 하늘이 무너져도 남부에 있어야 한다고.” 윤구주가 말했다. 수옥인은 곁에서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윤구주는 좋은 말로 달래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매우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윤구주가 사람을 달랠 줄도 알다니?’ 하지만 윤구주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현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윤구주는 엄격하게 꾸짖었다. “현모, 네 군직을 박탈하고 대장 계급을 빼앗을 테니 공을 세워 죄를 갚아!” 말을 마친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어쨌든 난 네 상관인데 내 체면을 좀 봐줘.” 이 말을 듣고서야 현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구주왕님, 이렇게 해야만 제가 국사를 내려놓고 구주왕님의 곁에 머물며 전심으로 구주왕님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군직을 잃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제 무슨 일이 생기면 현모가 윤구주를 해치려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알았어, 내가 너를 모르겠어?” 윤구주는 앞으로 나아가 현모를 토닥였다. 그리고 선우진웅을 가리켰다. “공을 세워 죄를 갚고 싶다면 선우진웅부터 처리해. 저놈의 목은 네게 맡길게. 어휴, 사해 사변으로 너까지 연루되어 억울하게 고생했구나.” 현모의 시선이 선우진웅에게 집중되자 얼음처럼 차가운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선우진웅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와우, 그런 생각을 했구나. 이 늙은 놈은 화진의 큰 원수야. 선우진웅을 처단한 공은 절대 작지 않을 거야. 이 늙은 놈은 그에게 맡길게. 조상님은 내가 할 일을 좀 찾아줄까?” 수옥인은 윤구주 앞을 떠다니며 약을 올렸다. 윤구주가 말하기 전에 수옥인이 먼저 말했다. “그 천옥 전법에 문제가 생겼어. 천옥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해. 내가 길을 안내해 준 걸 생각해서 좀
한 마리의 절세 살수가 깨어났다. 살기가 가득 찼고 천상의 이변이 일어났다. 천옥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밖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 먹구름은 네 발 달린 천수의 형상을 이루었고 네 발로 천지를 밟고 있어 꽤 무서웠다. “출관했군.” 윤구주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네.’ 키가 2미터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한 사람이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온몸이 푸른색이며 폭발적인 근육은 현철처럼 견고하고 부서지지 않을 듯했다. 이 사람은 단지 모습만 봐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다소 청초했다.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는 약간의 음기가 느껴졌다. 그 사람은 한 걸음 내디뎌 동굴을 빠져나오더니 ‘쿵’ 소리와 함께 백 미터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는 땅에 부딪혀 수 미터의 큰 구멍을 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살아있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덩이에서 세 걸음 만에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가 지나가며 일으킨 비린내 나는 바람과 그 살기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천옥 전법의 핵심에 있던 수옥인도 너무 놀라서 바지에 지릴 뻔했다. “젠장! 윤구주의 부하들은 다 살수야. 윤구주만이 이런 괴물들을 다룰 수 있어.” 수옥인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쿵!’ 그 사람은 윤구주 앞에 멈추었다. 이 거인과 비교하자면 윤구주는 키나 체형 모두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보였고 약해 보였다. 심지어 기세조차 윤구주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한 살수가 윤구주를 보자 주저 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했다. “구주왕님! 현모가 무능하여 왕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습니다. 제가 발목을 잡았어요.” 현모, 윤구주의 부하인 4대 군신. 전에 윤구주가 왕으로 봉해졌을 때 현모는 화진 남부 전역의 부총장으로 승진하여 대장 계급을 달았다. 그리고 남양 제국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윤구주가 사고를 당한 후 현모도 연
“네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오늘 나를 죽인다면 곤륜 구역이 너를 천옥에서 살려둘 것 같아?” 깨어난 선우진웅은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은 네가 욕할 대상이 아니야. 지금 당장 엎드려 반성해!” 윤구주는 손을 내리쳤다. 선우진웅은 전성기 때도 윤구주에게 제압을 당했던 터라 지금 같은 상태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쿵 소리와 함께 땅에 얼굴을 박았다. “날 죽이진 말아줘! 복수를 원하는 거 아니었어? 난 문씨 가문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있어. 저 빌어먹을 문씨 가문이 너를 죽인 후 우리 부성국이 화진에 진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 이제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어! 문아름은 이미 우리 부성국 군사 정권의 절반을 장악했어. 그 여자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지. 너를 죽이고 나를 제거해 우리 부성국의 국운을 빼앗으려는 거야. 내 목숨만 살려줘. 나도 어느 정도 막강한 실력을 갖췄으니 내가 너의 복수를 도울 수 있어.” 선우진웅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윤구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 말을 듣고 윤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부성국은 무사도를 숭상한다며? 항복을 수치로 여기지 않아? 왜 네놈의 의지는 이렇게 약해? 아직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겁을 먹었네? 이미 없는 목숨인 주제에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넌 원래부터 겁쟁이였어. 약한 자를 괴롭히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바로 너희 부성국의 상류층이다. 게다가 부성국은 백 년 전에 전패한 이후로 국운이 남아있기나 해? 온 세상이 너희 부성국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있어. 화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너희를 용납하지 않을 거야. 한 나라가 이 지경까지 몰려 세상의 멸시를 받는 건 너희 부성국뿐일 거야.” 선우진웅은 치욕스러웠지만 목숨을 걸고 분노를 억눌렀다. 하지만 윤구주가 말을 마치고 검의 기운을 거두며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흥, 말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