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산의 피범벅인 머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지자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도, 다무도 전부 넋이 나갔다.윤구주가 기병 교위 한 명을 죽인 것은 중죄였기 때문이다.“우, 우리 원 통령님을 죽인 겁니까?”국경수비대 병사들은 그제야 반응했다. 그들은 들고 있던 총을 꽉 쥐면서 두려움에 찬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였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당당한 얼굴로 원호산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원호산 같은 매국노는 죽어 마땅하지 않아?”“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 원 통령님이 설국과 결탁했다고 하는 거죠?”한 병사가 물었다.“나 윤구주가 한 말이 바로 증빙이야!”윤구주가 이름을 대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당황했다.그러나 윤구주가 과거 천하무적이었던 구주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그들은 그저 윤구주의 이름에 어떠한 마력이 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왠지 모르게 윤구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무도 더는 묻지 못했다.“얘기해 봐. 지금 국경을 지키는 국경수비대의 지휘관은 이름이 뭐야?”윤구주가 갑자기 물었다.국경수비대 지휘관은 흑여산맥의 국경 지역을 지키는 최고 지휘관이었다.윤구주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자 병사들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우리 지휘관님 성함은 유기철입니다.”“그였다니.”그 이름을 들은 순간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10국과의 전재에서 유기철은 구주군 제6군단의 소대장이었다.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의 그가 국경수비대 지휘관이 된 것이다.과거를 떠올린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유기철에게 당장 날 만나러 오라고 해.”‘뭐?’“우, 우리 지휘관님에게 당신을 만나러 오라고 하라고요?”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모두 당황했다.“그래. 너희는 그에게 지인이 방문했으니 빨리 가보라고 하면 돼.”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병사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군영 안으로 돌아갔
병사의 말을 들은 유기철은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야?”“조금 전 연락을 받았는데 원호산 통령님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병사는 서둘러 말했다.‘뭐라고?’“원호산이 살해당했다고? 어서 얘기해. 누가 한 짓이야? 설마 빌어먹을 설국 놈들이 싸움을 건 거야?”유기철이 호된 목소리로 물었다.“지휘관님, 전보에 따르면 원 통령님을 죽인 건 설국인이 아니라 윤구주라는 남자랍니다.”병사가 말했다.“윤구주?”그 이름을 들은 순간 유기철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마치 그 이름 자체에 엄청난 위압감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유기철은 그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말해. 원호산을 죽인 그놈은 지금 어디 있어?”유기철이 매섭게 물었다.원호산은 그래도 국경수비대 기병 교위였는데 그런 그가 갑자기 살해당했다고 하니 유기철은 화가 났다.“지휘관님, 23번 진영의 병사들이 말하길 그 살인자는 지금 군영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병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뭐?”“그 살인자가 말하길, 지인이 방문을 했으니 지휘관님에게 빨리 그곳으로 오라고 했답니다.”그 말을 들은 유기철은 책상을 쾅 내리쳤다.“건방지구나! 내 병사를 죽였으면서 내게 명령까지 내려? 좋아. 어떤 미친놈이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건지 어디 한번 봐야겠어! 여봐라. 지금 당장 23번 진영으로 갈 테니 준비하도록 해.”유기철은 명령을 내리더니 곧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23번 진영으로 향했다.많은 차량이 기세등등하게 23번 진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유기철은 어두운 얼굴로 장갑차 안에 앉아 있었다.그의 곁에 있던 병사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지휘관님, 사실 아까 23번 진영에서는 전화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전했는데 제가 깜빡하고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뭐라고 했는데?”“그들이 말하길 그 살인자가 원 통령님의 머리를 벤 이유는 원 통령님이 설국과 내통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윤구주는 눈조차 뜨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잘 왔네요.”“은인님, 정말로 두렵지 않으신 겁니까? 잊지 마세요. 은인님은 국경수비대의 통령 한 명을 죽였습니다. 만약 지휘관님이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면... 일이 복잡하게 될 겁니다.”다무는 아직도 윤구주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 감히 내게 책임을 물을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그 말은 마치 우레와도 같았고 그 순간 다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밖에서 유기철은 200여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장갑차에서 내렸다.이 순간 군복을 입은 유기철은 가장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뒤에는 23번 진영의 병사 십여 명이 서 있었다.“얘기해 봐. 사람을 그 미친놈은 어디 있어?”유기철은 군영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사납게 물었다.“지휘관님, 그 살인자는 막사 안쪽에 있습니다.”유기철은 고개를 들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막사를 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오늘 어디서 온 놈이 이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한 번 보겠어! 이곳을 지금 당장 포위해!”유기철이 명령을 내리자 200여 명의 병사들이 곧바로 챙겨온 총을 들고 군영을 전부 포위했다.군영을 전부 포위한 뒤 유기철은 그제야 사람들을 데리고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커다란 군영 안, 유기철이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다무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윤구주를 보았다.“지휘관님, 저 자식이 우리 원 통령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원 통령님이 설국과 결탁했다고 모함했습니다. 지휘관님, 원 통령님을 위해 꼭 복수해 주십시오!”한 병사가 윤구주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유기철은 서늘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윤구주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국경수비대의 지휘관인 유기철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이 휘둥그레졌고,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진 채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천하무적의 최강자 윤구주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지휘관님, 왜 그러십니까?”곁에 있던 병사들은 전부 얼이 빠졌다.“다들 무릎 꿇어!”유기철은 갑자기 눈이 벌게져서 고함을 질렀고, 그의 곁에 있던 병사들은 비록 무슨 상황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유기철의 명령에 따라서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자 윤구주는 그제야 천천히 일어났다.천지를 뒤덮을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왕의 기운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피가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윤구주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서늘한 눈빛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유기철을 바라보았다.“얘기해 봐. 구주군의 10대 군율이 뭐지?”그 말을 들은 유기철은 순간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빠르게 대답했다.“저하, 구주군의 10대 군율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나라를 배신하지 않는다. 둘째,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셋째, 전우끼리 싸우지 않는다. 넷째, 백성을 갈취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규율을 어기지 않는다. 여섯째, 사리사욕을 취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다른 이들과 결탁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나태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청렴결백해야 한다. 열째, 나라를 지켜야 한다.”유기철이 구주군의 10대 군율을 읊자 다들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유기철이 10대 군율을 다 읊자 차갑게 말했다.“10대 군율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어겼을 때 어떤 벌이 내려질지도 알겠지?”“죽음... 입니다!”유기철이 덜덜 떨면서 말을 내뱉었다.“죽어 마땅하다는 걸 아는군. 그러면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윤구주의 싸늘한 말에 유기철은 덜덜 떨면서 말했다.“저하께서 죽으라고 하신다면 제 목숨으로 속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하, 저 유기철은 이번 생에 다시 저하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국경수비대의 지휘관인 유기철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그는 죽음이 두려워서 우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윤구주를 봐서 우는 것이었다.유기철은 눈물을 흘리면서 윤구주를 향해 세 번 머리를
병사들의 애원을 들은 유기철은 갑자기 말했다.“저하께서 내게 죽음을 하사하는 것은 나 유기철의 영광이다. 나는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구주군 소속이야. 오늘 내가 죽는 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야.”말을 마친 뒤 유기철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은 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저하,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저는 다음 생에도 저하의 병사가 될 겁니다. 저하를 따라서 세상을 정복하여 우리나라의 위엄을 지킬 겁니다.”그렇게 말한 뒤 유기철은 정말로 방아쇠를 당겼다.탕!발사된 총알이 그의 관자놀이에 닿았다.“지휘관님!”병사들은 유기철이 정말로 방아쇠를 당기자 모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그들이 보기에 유기철은 죽을 이유도, 자살을 할 이유도 없었다.그런데 국경수비대 지휘관인 유기철은 정말로 방아쇠를 당겼다.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주변 공기가 멈춘 듯했고 곧이어 금빛의 결계 공간이 유기철을 감쌌다.그것은 진역 결계였다.결계가 나타났다는 것은 윤구주가 이 공간을 전부 장악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발사된 총알은 유기철의 관자놀이에 닿았을 뿐, 그의 머리를 꿰뚫지는 않았다.그 광경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병사는 경악했다.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기철을 둘러싼 금빛의 결계를 보았다. 그들로서는 발사된 총알이 유기철의 관자놀이를 꿰뚫기 직전에 허공에서 멈췄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세상에, 내 눈이 잘못된 걸까? 저 총알... 정말로 멈췄어?”“아니, 우리 눈이 잘못된 게 아냐. 정말로 멈춘 거야!”“이, 이, 이건 뭐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총알이 멈추다니!”병사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진역 결계를 시전한 것은 화진의 구주왕이었다.병사들이 모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갑자기 진역 결계에 둘러싸인 유기철을 바라보며 말했다.“국경을 지키면서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해 오늘은 일단 살려주겠어.”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는 손을 들어서 움직였다.“사라져.”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유기철을 감쌌던
그 광경을 본 순간, 윤구주를 데리고 군영으로 왔던 다무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구주왕... 은인님, 그... 그... 혹시 정말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던 우리 구주군의 창시자입니까?”윤구주는 싱긋 웃었다.“그래요.”“세상에! 제가 저하를 뵙게 되다니, 이거 꿈은 아니겠죠?”다무는 윤구주가 바로 자신이 줄곧 우러러보던 구주왕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더욱 믿기 어려운 것은 그가 바로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점이었다.한쪽 다리가 불편한 다무는 20초간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뒤늦게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그러나 윤구주는 곧바로 다무를 일으켰다.“어르신, 얼른 일어나세요. 사실 어르신이 들고 있던 구주군의 무기를 본 순간부터 전 어르신께 제 정체를 얘기하고 싶었어요.”윤구주는 남은 말을 다 얘기하지는 않았다.다무는 흥분한 건지 온몸을 떨면서 말했다.“전 살면서 제가 저하를 만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우리 구주군 소속으로서 어르신은 설국 병사들과 싸웠고 부족을 지켰죠. 어르신은 우리 구주군의 자랑입니다. 그래서 전 지금 이 순간 어르신을 입영하고 싶습니다. 전 어르신이 다시 구주군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윤구주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윤구주가 자신을 정말로 구주군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자 다무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왈칵 쏟았다.그는 늘 나라를 지키고 적을 해치우는 구주군이 되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나이도 많았고 실력도 약해서 제74군단의 취사병밖에 할 수 없었다.게다가 마지막에는 다리 부상으로 인해 제대까지 강요당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윤구주는 그를 구주군의 정식 일원으로 임명했고 다무는 이로써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룰 수 있었다.“감사합니다, 저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드디어 진정한 구주군이 되었군요!”다무는 자부심
한때 제6군단 소속이었던 병사를 윤구주는 당연히 믿었다.윤구주는 유기철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설국 놈들이 우리 화진 땅을 침범했을 때 왜 국방부에 보고를 올리지 않은 거지?”“국방부요?”국방부가 언급되자 유기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대답했다.“저하, 저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빌어먹을 국방부 놈들은 저희 구주군 80군단을 전부 해산시켰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많은 형제들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저도 몇 번이나 국방부에 보고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했고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유기철의 말을 듣자 윤구주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과거 윤구주는 문씨 일가가 그를 해친 이유가 단지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보니 문아름은 화진의 이황왕이 되었으면서 정작 화진의 국경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것은 화진의 큰 재앙이었다.심지어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 화진을 지키던 구주군을 전부 해산시켰다.그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문아름, 언젠가는 내 손으로 직접 네 머리를 베어 내 형제들을 위해 복수하겠어!”윤구주는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그는 그렇게 말한 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왜 갑자기 흑여산맥의 국경 지역으로 왔는지 알아?”유기철은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오늘부터 설국은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가 예전에 한 번 살려줬었는데도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여전히 우리 화진의 땅을 침범하려고 했어. 그러니 이번에는 설국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화진의 땅은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이 땅을 넘보는 놈들에게는 죽음뿐이라는 걸 가슴 깊이 새겨주겠어.”윤구주가 패기 넘치게 말하자 유기철 또한 몸속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저 유기철은 기꺼이 저하를 위해 선두에 서서 설국 놈들을 죽이겠습니다!”윤구주
경위소대 대원들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지휘관님, 왜 갑자기 그분들을 체포하라는 겁니까?”대원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 망할 놈들이 화진을 배신하고 설국과 내통했거든!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뭐? 설국과 내통했다고?’비록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가끔 나태할 때가 있었지만 적과 내통했다는 말을 듣자 다들 견딜 수가 없었다.그들 모두 화진의 군인이었기 때문이다.“젠장!”“설국과 내통하다니, 죽일 놈들이군요!”“지휘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그 빌어먹을 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30여 명의 경위소대 대원들은 곧바로 출발했다....유기철은 설국과 내통한 장수들을 검거하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한 뒤 다시 막사로 돌아왔다.막사 안에서 윤구주는 작전 지도를 하나 보고 있었다.유기철은 감히 그를 방해할 수가 없어서 옆에 묵묵히 서 있었다.“얘기해 봐. 지금 국경 지역에 주둔해 있는 설국 놈들의 수는 얼마야?”윤구주는 작전 지도를 보면서 물었다.“저하,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설국 쪽에는 적어도 10만 명이 될 겁니다...”그 숫자를 들은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들을 이끄는 사람이 설마 설국의 세나스야?”“그렇습니다, 저하!”윤구주는 그 이름을 언급하더니 몸을 돌려서 차갑게 웃었다.“망할 노인네. 당시 10국과의 전쟁에서 나는 홀로 설국 수도까지 쳐들어가 단번에 검으로 그의 오른쪽 눈을 찔렀었지. 그런데 그 노인네가 아직도 우리 국경 지역에서 활개를 쳐? 나랑 같이 국경 지역으로 가보자!”윤구주는 우렁차게 말한 뒤 옆에 있던 유기철을 잡더니 금방 막사 안에서 사라졌다....흑여산맥의 국경지대.그곳은 일 년 내내 태양이 보이지 않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었다.설국은 아주 추운 나라였고 흑여산맥은 일 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끝없이 펼쳐진 국경지대에서는 흰 눈으로 뒤덮인 산꼭대기가 보였고 찬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쳤다.그들의 눈앞에 있는 산은 낭파산이라고 불렸다.그곳은 사
“얘야, 이 어미도 네 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울이 우리 화진의 수도란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대도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즐비했어. 다른 여자들이 구주를 채가지 않게 신경 좀 써야 할 거야.”천희수도 입을 열었다.이들의 재촉에도 소채은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아빠, 엄마, 너무 멀리 갔어요. 저와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너무 연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구주와 저 사이의 문제를 두 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부모로서 어떻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를 바다에서 구해준 사람은 너야. 어찌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냐.”소청하가 말했다.“네 아빠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면 안 되지.”부모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회사 갈 거니까 저와 구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소채은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채은아!”“채은아!”소청하와 천희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채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방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머리는 여전히 윙윙거렸다.사실 그녀도 윤구주를 원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윤구주가 강성과 같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을 리 만무하다고 소채은은 생각했다.“내가 그의 배필로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채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채은 씨, 오늘에 일찍 퇴근하셨네요.”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아한 각선미와 옥 같은 얼굴을 한 연규비가 보였다.길고 몸에 착 감긴 듯한 치마는 그녀의 S라인 몸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연규비의 목소리에 소채은은 재빨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일이 바쁘지 않아 일찍 돌아왔어요.”“아. 정말요?”연규비는 소채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발견했다.소채은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채은 씨, 또 구주를 생각한 거예요?”연규비는 소채은에게 다가가
따르릉!이때, 소채은의 가방 안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수신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천희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은아, 너 어디야?”“밖에 있는데 무슨 일이세요?”소채은이 물었다.“네 아빠가 조금 전 쓰러져서 빨리 집으로 와야겠다.”“뭐라고요?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소채은은 까망이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까망아, 어서 집에 가자.”…용인 빌리지, 회사에서 돌아온 소채은이 잰걸음으로 정원에 있던 천희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쓰러졌다면서요? 지금 어디 있나요?”소청하가 쓰러졌다고 말했던 것은 소채은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부부가 꾸민 자작극이었다.딸의 물음에 천희수가 답했다.“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심각한가요?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소채은은 다급히 물었다.“지금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얼른 가보자꾸나.”그녀들이 소청하를 보러 안방에 갔더니 소청하는 꾀병을 부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아빠! 괜찮으세요?”누워 있는 소청하를 본 소채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이 왔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소청하가 말했다.“쓰러졌는데 괜찮다니요. 제가 부축할 테니 지금 당장 병원 가요.”소채은은 소청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로 괜찮아.”아프지 않으니 당연히 병원 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쓰러지셨다면서요?”소채은이 말했다.“얘도 참, 내가 쓰러진 이유는 구주와 네 일 때문이야.”소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구주요?”소채은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봐. 구주가 서울에 간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네 아비인 내가 어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소청하의 말에 소채은은 그제야 그가 꾀병 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채은아, 네 생각을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소청하가 소채은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잘 생각해 봐. 구주는 화진의 왕이지만 우리는 무명 가문이야. 뭐가 부족하다고 우리랑 엮이려 들겠어. 게다가 구주 주변의 사람들도 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 연씨 성을 가진 여자도 TV에 나오는 톱스타보다 예쁘잖아. 구주가 구주왕이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있으니, 여자들이 줄을 선거지.”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천희수는 걱정이 앞섰다.‘천하무적 화진의 구주왕과 강성의 무명 가문이라… 천지 차이네.’이런 생각 하며 천희수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이제 어떡하면 될까요?”소청하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이 일은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해. 우리 딸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야.”“채은이가요?”천희수는 어리둥절했다.“그래. 구주를 구한 건 우리 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되지. 그나저나 지금 당장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 해!”“하지만 채은이 회사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당신 바보야? 회사 일보다 구주의 일이 더 중요해. 그가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자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구주가 우리 소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을 빛내는 일인데 뭔 얼어 죽을 회사야!”천희수는 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알았어요. 그러면 지금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요.”천희수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전화해서 당장 오라 해. 만약 오지 못하겠다면 서울로 가서 구주를 찾으라고 하고. 하늘이 두 쪽 나도 구주가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돼.”소청하가 말했다.…강성의 해변, 한 여자가 해변에 홀로 앉아 있었다.바닷바람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치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그 여자는 바로 이른 아침에 회의를 마치고 홀로 해변에 온 소채은이었다.이 해변은 그녀와 윤구주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그 당시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해변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발견했던 것이었다.그때의 생각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
주세호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자, 소청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네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마침 이 앞을 지나다가 들른 거야.”주세호가 말하면서 손을 휘젓자, 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선물 박스와 고급 영양제들을 꺼냈다.“뭘 또 이런 걸. 지난번에 보내주신 것들도 아직 남았는데.”말은 그렇게 해도 소청하는 주세호가 준 비싼 물품들을 챙기기에 급급했다.“제 사위가 서울로 떠난 이후로 우리 가족을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 회장님.”소청하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그는 윤구주를 외부인 취급하지 않고 사위라 불렀다.“별말을 다 하고 그래.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주세호가 말했다.“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맞다. 주 회장님, 최근에 제 사위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소청하가 물었다.윤구주가 서울로 간 후부터 소청하는 윤구주의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윤구주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윤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이렇게 좋은 신분을 가진 그를 소씨 가문의 사위로 삼는다면 우리 가문에 날개를 단 셈이지. 게다가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 거야.’소청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윤구주의 소식을 묻는 그의 질문에 주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미안해. 나도 통 연락이 안 되네.”“그럴 리가요. 주 회장님, 구주가 서울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여태 안 돌아오는 걸까요? 주 회장님은 친구도 많고 인맥도 넓으니까 제 사위가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 줄 수 있나요?”“조급해하지 마. 난 저하를 믿어.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너희들을 보러 올 거야.”소청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주세호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회사 쪽에 일이 있으니 먼저 갈게.”주세호가 핑계를 대고 떠난 후,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된 것을 강성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서 강성의 거리에는 등불 축제가 한창이었다.윤구주가 전에 설치했던 운산대진 때문에 안개와 구름이 용인 빌리지를 에워싸고 있었다.이 대진으로 인해 대가 경지에 도달 못 한 사람들은 빌리지의 내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빌리지 입구에서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 느슨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눈에 생기가 없어서 무기력 보이는 그가 바로 백경재였다.윤구주가 강성을 떠난 후부터 이 노인은 매일 빌리지의 입구에서 윤구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윤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이때, 언덕 아래에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경호원 몇 명과 함께 빌리지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백 대사님!”남자가 백경재를 향해 소리치자, 백경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군요.”방문객은 다름 아닌 강성 최고의 갑부이자 DH그룹 회장인 주세호였다.“조금 전 이사회를 마치고 우연히 이 앞을 지나다가 들렀어요.”주세호가 백경재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주 회장님, 저하의 소식은 들은 바 있나요?”백경재가 묻자, 주세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백경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휴! 저하가 서울에 간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우리를 찾지 않는 걸까요? 설마 저하가 우리 신하들을 버린 건 아니겠죠?”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저하가 의리를 매우 중요시해서 그럴 리 없어요. 게다가 채은 씨도 이곳 강성에 있잖아요.”주세호가 소채은을 언급하자, 백경재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그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채은이 이곳에 있으니, 우리를 버렸다고 섣불리 단정 지으면 안 되지.’“백 대사님, 걱정하지 말고 저만 믿으세요. 저하는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그나저나 채은 씨와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주세호가 백경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윤구주가 강성을 떠난 후 소채은의 가족은 집값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이곳 용인 빌리지로 이사 왔던 것이었다.소채은은 이
손형재가 정말로 동의하려고 하자, 도자가 속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구진철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현문에서 손형재의 입김이 워낙 센 터라 사람들은 그가 결정한 것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구 장로님, 이제 어떡하죠?”이상 징후를 포착한 현문의 한 제자가 참지 못하고 구진철에게 묻자, 구진철이 답했다.“뭘 어떡해? 지금 유일한 희망은 다른 종문이 와서 도자를 막아주기를 바랄 뿐이야.”다른 제자들이 이 말을 듣더니 침묵했다.…국경에 있는 흑여산맥,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된 이후로 윤구주는 이곳에서 마음 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박천후의 40만 북방군과 염수천의 10만 금위군도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흑여산맥의 지휘실 안에서 박천후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저하! 이제 어쩔 계획인지요? 서울로 돌아갈 건가요? 아니면 여기 흑여산맥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인가요?”박천후가 질문을 던지자, 옆에 있던 염수천도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올려다보았다.윤구주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당분간 서울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강성을 좀 돌아볼 생각이야.”“강성이요?”윤구주가 남부 도시인 강성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은 깜짝 놀랐다.“잘 생각하셨어요.”윤구주는 사색에 잠겼다.서울로 간 이후로 강성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니 갈 때도 된 것 같았다.강성에는 여전히 연규비, 박창용, 백경재, 주세호, 그리고 천하회의 원성일 등 친숙한 사람들이 있었다.물론 윤구주가 가장 사랑하는 소채은도 있었다.그녀를 생각하자, 한동안 강성으로 발걸음하지 않아서 윤구주는 죄책감이 몰려왔다.“저하, 어차피 우리 둘도 할 일이 없으니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창용 씨를 본지도 오래됐고 해서.”윤구주 휘하의 10대 장수인 박천후, 박창용, 염수천은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었다.윤구주가 강성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박창용이 그리워졌다.“그러자꾸나.”
“그 말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놈이 어떻게 저희 종문을 적으로 돌린단 말입니까?”손형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청난 한기를 내뿜었다.그 한기는 절정의 기운이었다.그리고 그 기운이 나타남과 함께 ‘역’의 공간이 생기며 지하 궁전 내에 아주 강한 ‘역’의 결계가 생겼다.현문 도자가 갑자기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자 다들 손형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심지어 만불종의 살심스님조차 손형재를 힐끗 보았다.“쯧쯧, 현문에 언제 이렇게 대단한 제자가 나온 겁니까? 정말 엄청나군요, 구진철 씨.”살심스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흥, 이쪽은 우리 현문의 도자입니다!”구진철이 사납게 대꾸했다.“도자요?”살심스님은 손형재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현문의 도자였군요. 어쩐지!”손형재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다.“선배님들, 저 손형재는 비록 후배라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우리 화진은 무력으로 세운 나라이며 무도 3대 서열은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사람 한 명 때문에 우리나라의 무도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선배님들은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저 손형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현문 도자가 그렇게 얘기하자 살심스님이 곧바로 입을 뗐다.그는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말했다.“옳은 말입니다. 저는 찬성합니다.”살심스님이 호응하자 구진철이 매섭게 다그쳤다.“살심스님, 우리 현문의 도자를 부추길 생각은 하지 마세요!”“제가 언제 도자를 부추겼단 말입니까? 전 사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살심스님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구진철은 단단히 화가 났다.구진철이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 손형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구진철 장로님, 살심스님께서도 제 의견에 동의하셨는데 왜 그렇게 날을 세우시는 겁니까?”“하지만 도자, 저 스님은...”구진철이 뭐라고 하려는데 손형재가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전 살심스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화진의 3대 무도
“진 건 진 것이고 이긴 건 이긴 것이지, 왜 인정을 못 하십니까?”살심스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헛소리하지 말라니까요! 살심스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더 싸워보겠습니까?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두고 보자고요!”구진철은 화가 나서 훌쩍 뛰어올랐다. 그가 뿜어대는 절정의 기운은 마치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현문의 장로인 구진철은 현문 전체를 대표했다.그리고 현문은 똑같이 6대종문 중 하나인 만불종과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래요. 어디 한번 싸워보죠. 제가 당신을 무서워할 것 같나요?”살심스님은 웃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살심스님과 현문의 구진철이 정말로 싸울 것 같자 문창정이 서둘러 나섰다.“두 분, 제 체면을 봐서라도 멈춰주시겠습니까?”문창정이 나오자 살심스님은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는 구진철 씨와 농담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죠?”구진철은 비록 화가 났지만 문창정이 나서자 그저 코웃음을 치면서 만불종의 살심스님을 무시했다.싸움이 멈추자 살심스님은 그제야 만불종의 제자들을 데리고 지하 궁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화진의 6대 종문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자운각, 천도궁으로 이루어졌다.이미 그중 세 종문이 모습을 드러냈다.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자운각, 천도궁과 가장 비밀스럽고 두려운 서요산 검종뿐이었다.“문창정 씨, 저희 만불종을 갑자기 초대하시다니 어떤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종문이 모습을 드러낸 건 문창정의 요청 때문이었다.살심스님의 질문에 문창정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살심스님, 솔직히 얘기하자면 3대 무도 서열의 질서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문벌과 세가 출신의 사람들을 일부러 도륙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종문의 여러분을 모신 겁니다.”“그래요?”살심스님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었다.“문창정 씨, 혹시 6년 전의 그 구주왕이 한 짓입니까?”살심스님이 곧바로 윤구주를 언급하자 문창정이 말했다
“세계 최강이라고요? 속세에서 살아가는 자가 어찌 감히 그런 칭호를 얻는단 말입니까?”구진철이 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옳은 말씀입니다. 그가 어떻게 감히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세계 최강이라면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종문이 뭐가 됩니까?”그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장포 차림의 문아름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아름다워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문아름이 오다니!절세 미녀 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내자 현문의 도자 손형재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누구시죠?”손형재가 물었다.“전 문아름이라고 합니다.”문아름은 싱긋 웃었다. 경국지색의 미모였다.눈앞의 여자가 문아름이라는 걸 안 순간 손형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문아름 씨였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별말씀을요.”문아름은 말을 마친 뒤 문창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할아버지,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왜 저한테 알리지 않은 거예요?”문창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바쁠까 봐 얘기하지 못한 거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문의 도자라니,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오셨는데 아무리 바빠도 제가 나서서 맞이해야죠!”문아름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손형재를 바라보았다.현문 도자인 손형재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설렜다.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웃음소리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울려 퍼졌다.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하 궁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문창정 씨, 구진철 씨, 이렇게 일찍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지하 궁전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곧이어 금빛 속에서 쿵 소리와 함께 금빛을 내뿜는 금색 선장이 지하 궁전에 갑자기 떨어졌다.그 선장은 무게가 몇백 킬로그램에 달했다.선장이 떨어지는 순간 차가운 지면에 금이 갔다.그리고 곧 가사를 입은 대머리 스님 십여 명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선두에 선 사람은 체구가 아주 건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