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6군단 소속이었던 병사를 윤구주는 당연히 믿었다.윤구주는 유기철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설국 놈들이 우리 화진 땅을 침범했을 때 왜 국방부에 보고를 올리지 않은 거지?”“국방부요?”국방부가 언급되자 유기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대답했다.“저하, 저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빌어먹을 국방부 놈들은 저희 구주군 80군단을 전부 해산시켰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많은 형제들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저도 몇 번이나 국방부에 보고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했고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유기철의 말을 듣자 윤구주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과거 윤구주는 문씨 일가가 그를 해친 이유가 단지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보니 문아름은 화진의 이황왕이 되었으면서 정작 화진의 국경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것은 화진의 큰 재앙이었다.심지어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 화진을 지키던 구주군을 전부 해산시켰다.그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문아름, 언젠가는 내 손으로 직접 네 머리를 베어 내 형제들을 위해 복수하겠어!”윤구주는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그는 그렇게 말한 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왜 갑자기 흑여산맥의 국경 지역으로 왔는지 알아?”유기철은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오늘부터 설국은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가 예전에 한 번 살려줬었는데도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여전히 우리 화진의 땅을 침범하려고 했어. 그러니 이번에는 설국을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화진의 땅은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이 땅을 넘보는 놈들에게는 죽음뿐이라는 걸 가슴 깊이 새겨주겠어.”윤구주가 패기 넘치게 말하자 유기철 또한 몸속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저 유기철은 기꺼이 저하를 위해 선두에 서서 설국 놈들을 죽이겠습니다!”윤구주
경위소대 대원들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지휘관님, 왜 갑자기 그분들을 체포하라는 겁니까?”대원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 망할 놈들이 화진을 배신하고 설국과 내통했거든!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뭐? 설국과 내통했다고?’비록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가끔 나태할 때가 있었지만 적과 내통했다는 말을 듣자 다들 견딜 수가 없었다.그들 모두 화진의 군인이었기 때문이다.“젠장!”“설국과 내통하다니, 죽일 놈들이군요!”“지휘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그 빌어먹을 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30여 명의 경위소대 대원들은 곧바로 출발했다....유기철은 설국과 내통한 장수들을 검거하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한 뒤 다시 막사로 돌아왔다.막사 안에서 윤구주는 작전 지도를 하나 보고 있었다.유기철은 감히 그를 방해할 수가 없어서 옆에 묵묵히 서 있었다.“얘기해 봐. 지금 국경 지역에 주둔해 있는 설국 놈들의 수는 얼마야?”윤구주는 작전 지도를 보면서 물었다.“저하,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설국 쪽에는 적어도 10만 명이 될 겁니다...”그 숫자를 들은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들을 이끄는 사람이 설마 설국의 세나스야?”“그렇습니다, 저하!”윤구주는 그 이름을 언급하더니 몸을 돌려서 차갑게 웃었다.“망할 노인네. 당시 10국과의 전쟁에서 나는 홀로 설국 수도까지 쳐들어가 단번에 검으로 그의 오른쪽 눈을 찔렀었지. 그런데 그 노인네가 아직도 우리 국경 지역에서 활개를 쳐? 나랑 같이 국경 지역으로 가보자!”윤구주는 우렁차게 말한 뒤 옆에 있던 유기철을 잡더니 금방 막사 안에서 사라졌다....흑여산맥의 국경지대.그곳은 일 년 내내 태양이 보이지 않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었다.설국은 아주 추운 나라였고 흑여산맥은 일 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끝없이 펼쳐진 국경지대에서는 흰 눈으로 뒤덮인 산꼭대기가 보였고 찬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쳤다.그들의 눈앞에 있는 산은 낭파산이라고 불렸다.그곳은 사
“저하, 당시 바로 저하께서 지휘하신 덕분에 우리 구주군이 이곳에서 설국의 백만 정예를 학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는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치열했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지요!” “그리고 그 전투로 인해 우리는 설국을 물리쳐 국력을 50년이나 퇴보하게 했고 결국 설국은 영토를 내주며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기철은 과거 전쟁터를 떠올리며 여전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여기는 낭파산이다! 한때 십 국 대전의 주요 전장 중 하나였던 이곳! 그리고 설국에 가장 큰 패배를 안겨준 장소이기도 하다! 윤구주는 낭파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산 아래에 세워진 충천석비로 걸음을 옮겼다. 그 석비는 열 장이 넘는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 윤구주는 석비를 올려다보며 문득 물었다. “이 영웅비를 해마다 달마다 꾸준히 참배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유기철은 급히 대답했다. “저하께 보고드립니다! 저희는 해마다 달마다 빠짐없이 참배해 드리고 있습니다.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말이 끝나자 윤구주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현기가 영웅비를 덮고 있던 두터운 눈 위에 떨어졌다. 휙! 눈과 바람은 현기가 지나가자 흩날리며 사라졌고 영웅비 하나가 두 사람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열 장이 넘는 높이의 영웅비에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 이름들은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였으나 영웅비 전체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이름 하나하나가 곧 하나의 영혼이었다. 그 수는 무려 7만. 이는 과거 낭파산에서 목숨을 바친 화진 군사들의 숫자였다. 그리고 바로 이 7만 군사의 희생이 설국 백만 정예를 궤멸시키고 그들을 이곳에서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전투! 세상을 뒤흔든 그 한판의 전투가 설국을 철저히 붕괴시켰다. 윤구주는 영웅비를 바라보며 눈에 깊은 슬픔이 떠올랐다. 영웅
이 설국의 병사들은 나미 아가씨를 언급할 때마다 모두 깊은 존경과 경외의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이 설국의 나미 아가씨는 단지 군신 세나스의 유일한 딸일 뿐만 아니라 설국에서 가장 유명한 광명 신전 대사제의 문하 제자였다. 비록 나이는 스무 살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이미 설국의 미래 여전사로 불리고 있었다.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지난해 설국과 판인국은 유리섬을 두고 전쟁을 벌였고 이 여전사는 오직 5,000명의 광전사만을 이끌고 판인국의 3만 명의 중장갑 정예 부대를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녀의 여전사로서의 명성은 급속히 퍼져 나갔다. 그들 나라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여전사가 나타났다는 것을 설국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 여전사는 설국의 현 국주와 약혼하여 연말이 지나면 진정한 설국의 황후가 될 것이라고 한다.“정말이야? 나미 아가씨가 정말 우리 변방에 오시게 되는 거야?” 한 설국 병사가 기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와! 너무 좋아! 드디어 우리가 이 아름다운 여전사를 직접 볼 기회가 생겼구나!” 그 말을 들은 설국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나미 아가씨가 곧 오실 텐데 화진 목민들한테서 빼앗아 온 물건들 빨리 숨겨! 이 멍청한 바보들아.” “잊었어? 우리의 여전사는 상벌이 분명하고 군율이 엄격하다고! 전쟁터는 전쟁터일 뿐 백성들을 해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어!” “너희들 작년 일 기억 안 나냐? 나미 아가씨가 직접 본인 곁에 있던 친위 근위병들을 처치한 이유가 그들이 판인국의 몇몇 여인들을 납치해 와 짓밟으려 했기 때문이잖아.” 한 설국 병사가 갑자기 모두에게 상기시켰다. “맞아!” “나미 아가씨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백성을 압박하는 거야! 어느 나라 백성이든 모두 똑같이 대한다고! 너희들. 빨리 화진에서 빼앗은 물건들 다 지하실에 숨겨! 절대로 나미 아가씨에게 들키면 안 돼.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뭐야?” 설국 병사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멀리 폭설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저하! 아래가 바로 설국 전초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진영입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화진의 국경 총병 유기철이었다! 그는 비록 대가 경지에 불과했지만 몸 앞에는 윤구주가 준 금빛 방패가 있었다. 유기철은 한 손으로 아래의 설국 진영을 가리키며 윤구주에게 말했다. 순백의 옷을 걸친 윤구주는 하늘 위에서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박과 눈송이가 온 하늘을 뒤덮었지만 단 한 점도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아래의 진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설국 오랑캐들. 몇 번이고 우리 화진의 분계선을 침범했으니 이번엔 화진을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해줄게!” 말을 마친 그는 마치 유성이 떨어지듯 아래쪽 설국 진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설국 진영 쪽! 윤구주가 유성처럼 날아오는 것을 본 설국 병사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저거 봐! 저 자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어!” 다른 설국 병사들도 날아오는 형체가 급속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전부 얼어붙은 채 당황하며 서둘러 각자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집어 들었다. 쿵! 단 두 호흡 만에 윤구주의 두 발은 이미 설국의 국경 진영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하얀 옷을 걸친 윤구주를 바라보며 설국 병사들은 전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진짜 사람이야?” “이 사람은 누구지? 날 수 있다니? 우리 설국 진영까지 어떻게 온 거지?” 설국 병사들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단단히 붙잡고 윤구주와 날아 내려오는 유기철에게 조준하며 긴장했다. 마침내! 한 명의 설국 병사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너는 누구냐? 감히 우리 설국의 진영에
“화진 사람들이 우리 진영을 침략했다!” “빨리! 빨리 가서 확인해 봐!” 눈앞에 보이는 이 진영은 설국의 최전방에 위치한 진영이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모두 설국의 선봉 병사이며 대략 300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지금, 윤구주의 천둥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자 진영 내 모든 설국 병사는 일제히 이 소리를 들었다. 순간 사방에서 수많은 설국 병사가 몰려들었다. 병사들 중 일부는 중무장 갑옷을 입고 있었고 일부는 기관총이나 긴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윤구주와 유기철이었다. 그리고 그들 발아래에 쓰러져 있는 20여 명의 처참하게 죽은 설국 전우들의 참혹한 시신이었다. “으악!” “진짜로 화진 사람들이 우리 군영을 침략했어!” “빌어먹을! 저 두 놈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 20여 명의 순찰대원을 죽일 수 있었지?” “그딴 건 알 게 뭐야! 일단 이 두 화진 놈들을 먼저 처치하자!” 설국 병사들이 일제히 공격 태세를 갖추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거친 목소리와 함께 하얀 갑옷을 입은 설국의 한 장군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이 장군은 몸집이 크고 우람했다.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의 무게는 족히 150kg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가 걸어 나오자 주변의 설국 병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사크 장군님!” 이 설국 장수가 등장하면서 그의 파란 눈동자는 먼저 윤구주와 유기철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다음에야 땅에 쓰러진 설국 병사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스무 명이 넘는 설국 병사들이 모두 허리가 잘린 채 죽어 있는 광경을 보자 사크 장군의 얼굴에는 섬뜩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서서히 차가운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화진 사람 두 분께 감히 묻겠다. 무슨 이유로 아무 연고도 없이 우리 설국 진영에 쳐들어와 우리 병사들을 죽인 거지?” 윤구주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담담하게 말
사크 장군은 유기철이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자 입가에 독기를 띤 웃음을 지었다. 비록 부하 20여 명이 죽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유기철과 윤구주 단 두 명뿐이었다. 만약 화진 국경 지휘관인 유기철을 생포할 수 있다면 설국에 엄청난 공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유기철이 먼저 설국의 군영에 침입해 학살을 벌였으니 어찌 됐든 설국이 명분에서 앞선다고 여겼다. 사크는 유기철을 차갑게 쏘아보며 비웃듯 말했다. “유 지휘관, 정말 대단하시군요. 고작 한 사람만 데리고 감히 우리 설국 군영에 침입해 무고한 자들을 학살하다니. 그렇다면 우리 설국과 화진 간 전쟁을 촉발해도 괜찮다는 건가?” 유기철은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유기철의 웃음에 사크는 날카롭게 물었다. “네놈 같은 멍청이가 감히 전쟁을 입에 올리는데 우습지 않겠냐?” “예전에 우리 화진 철기군이 설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거 기억 안 나냐? 너희 같은 개미만도 못한 나라가 감히 화진과 전쟁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유기철의 이 한마디에 사크와 그 뒤에 있던 설국 병사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예전에 있었던 십 국 전쟁은 설국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설국에서는 아무도 그 전쟁을 입 밖에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 설국의 전 국주가 화진의 일인 왕 구주왕에게 단칼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설국은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 리에 달하는 영토를 할양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며 겨우 멸망을 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설국은 수년간 전력을 다해 병력을 키워가며 과거의 치욕을 잊으려 애써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유기철이 가차 없이 그 상처를 다시 들추어냈다. “감히!” “유기철! 네가 화진의 지휘관이라 하여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냐? 오늘 네놈이 우리 설국 군영에 무단으로 침입해 병사들을 학살한 죄는 국제중재기구에 넘어
우르릉 쾅쾅!윤구주가 오른손을 하늘로 뻗자, 캄캄했던 하늘에는 그릇을 엎은 듯한 번개의 소용돌이가 나타 나더니 점점 더 많은 번개가 순식간에 그 속으로 모였다.팔기지 뇌왕인!윤구주는 뇌왕인 신통과 함께 큰 손으로 아래를 향해 냅다 눌렀다.“파멸하라!”우르릉 쾅쾅!이때 팔뚝 굵기만 한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순식간에 삼백여 명의 설국 전사들을 폭발시켜 잿더미로 만들었고 군사 진영 전체가 무너져 버렸다.이 순간의 윤구주는 사람이 아닌 천둥의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했다.이 사람이 바로 한 번에 천지를 파멸하고 대해를 뒤흔들었던 화진의 제일 구주 왕이었다.옆에 있던 유기철은 까맣게 타버린 설국 전사들의 시체와 천둥번개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군사 진영을 바라보며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버젓한 설국의 부대는 이렇게 윤구주의 손에 깔끔하게 학살당했다.“저하, 참으로 위풍당당하십니다.”유기철은 감격을 금할 수 없었고 그런 윤구주랑 함께 다시 예전의 의기양양했던 때로 돌아간 듯 하여 매우 기뻤다.“하찮은 설국 망나니들을 우리가 언급할 가치가 있겠느냐. 이놈들을 죽이는 건 나한텐 식은 죽 먹기지.”윤구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때 당시 윤구주는 혼자 설국의 황도로 들이닥쳐 단칼에 설국의 전임 국왕을 죽였었다.그 패기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유기철도 눈앞에 있는 이 신왕의 위력을 잘 알고 다시 입을 열었다.“저하, 여기 있는 설국 병사들은 이미 다 죽였으니 우린 이제 무엇을 하면 됩니까?”윤구주는 설국의 진영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속하여 죽여라!”“네?”윤구주의 한마디에 유기철은 어리둥절해졌다.“설국의 망나니들이 감히 우리 화진의 땅으로 쳐들어오다니! 오늘 내가 이 망나니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화진의 땅은 반 치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줄 것이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재빨리 설국의 변경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윤구주는 화진의 구주 왕으로서 강산을 호위하고 화진의 국토를 보호해
이 생각에 다다르자, 세나미는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왜? 내가 엄청 늙었어야 했나?”윤구주는 냉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그 말에 붉은 머리칼과 굴곡진 몸매를 가진 세나미는 잠시 얼어붙었다.사실이다.세나미는 윤구주 같은 전설적인 존재는 분명 늙은 괴물 수준의 외모일 거라 생각해왔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로 눈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자신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이건...그녀를 한순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네가 살아 있다고 해도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내 스승님은 신전의 제1대사관이셔! 네가 감히 날 붙잡기라도 한다면, 스승님께서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게다가 우리 설국의 수만 전사들이 반드시 너희 화진과 전쟁을 벌일 거라고!”세나미는 단호하게 외쳤다.그러나 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전쟁?”“너희 설국 따위가 그럴 용기가 있을 것 같아?”“옛날에 내가 혼자 한 자루 검만 들고 너희 설국 황도를 휘저었던 거 기억 못 하나? 이번에는 네 눈앞에서, 내가 설국을 어떻게 멸망시키는지 직접 보여주겠다!”세나미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외쳤다.“너, 네가 대체 뭘 하려는 거야?”윤구주는 두 손을 뒤로 짚으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설국이 과거 열국의 치욕을 씻어내고 싶어 하던데... 좋아. 내가 그 기회를 주지.”“지금부터 넌 내 노예가 될 거야!”그 말이 끝나자마자, 윤구주는 손가락으로 복잡한 결계를 그리더니, 세나미의 미간에 손을 댔다. 그 순간, 뜨거운 인장이 세나미의 정신 세계 깊숙한 곳에 새겨졌다.눈앞의 설국 여전사는 미간에 인장이 새겨지면서 온몸이 강하게 떨렸다. 그녀의 모든 정신력이 마치 강제로 묶인 듯 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마치...그녀의 혼이 완전히 그 인장에 의해 지배당한 듯했다.“너... 너 이 악마,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세나미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외쳤다.“그저 네 정신 세계에 생사인을 새긴 것뿐이
유기철이 세나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던 중,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염수천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세나스? 그놈이 뭔데 대단하다고 떠들어대는 거지?”“무례하다! 감히 내 아버지를 모욕하다니!”세나미는 자신의 아버지를 조롱하는 염수천의 말에 분노하며 외쳤다.그러나 염수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뭐 어쩔 건데? 옛날 낭파산 전투 때, 우리 왕께서 너희 설국의 정예 병력 백만을 도륙 내셨지! 그리고 네 아버지 눈 하나를 꿰뚫어버린 일, 기억 못 할 리 없을 텐데? 네 아버지한테 물어봐라.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이야.”이 말에 세나미는 한순간 침묵했다.6년 전, 열국 전쟁.그때 세나미는 겨우 14살이었다. 그녀는 광명 신전에서 수련 중이었고,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하지만 그 전투로 인해 설국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고, 그녀의 아버지 세나스는 설국의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나섰다가 낭파산에서 전멸당했다.설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으며, 세나스 일생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았다.설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일을 알고 있다. 세나미 역시 그 진실을 모를 리 없었다.그러나 이내, 세나미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천하무적이라는 화진의 구주왕이 대단하면 뭐 하냐? 결국엔 죽어버렸잖아!”윤구주가 죽음의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 이후, 모두가 그가 죽었다고 믿었다.세나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수천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유기철도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웃긴 거지?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세나미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화진에서 구주왕은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염수천과 유기철이 그의 죽음을 듣고도 웃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너희 설국의 오랑캐 놈들은 내가 죽었다고 진짜로 믿은 건가?”벼락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세나미의 귀를 때렸다.세나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국경 수비대원들이 물러나자,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세나미의 불타는 시선이 윤구주를 향했다.“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이 악마!”“날 풀어줘! 어서 날 풀어달란 말이야!”“네가 진짜 대단하다면, 차라리 날 죽여! 왜 이렇게 감금해 두고 있는 거지?”세나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구주는 차가운 코웃음을 내뱉으며 단숨에 강력한 현기를 뿜어내 그녀의 몸과 목을 단단히 속박했다.이 순간, 설국의 여전사로 명성을 떨치던 그녀는 마치 종이 인형처럼 무력해졌다. 윤구주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그녀를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널 죽이는 게 어려울 것 같아?”순간 세나미는 숨이 막혀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해 갔다. 죽기 일보 직전, 윤구주가 속박을 거두며 그녀를 놓아주었다.쿵!세나미는 바닥에 쓰러지며 기침을 쏟아냈다.“죽을 줄도 모르고, 너 따위가 우리 왕 앞에서 함부로 지껄여?”염수천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한편, 세나미는 오랜 시간 기침을 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윤구주와 염수천, 그리고 유기철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넌 대체 누구지? 왜 우리 설국을 적으로 돌리는 거야?”염수천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네 주제에 우리 왕의 이름을 물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유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염 장군 말이 백번 맞다. 너희 설국 놈들은 우리 화진의 국경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왔다. 당연히 죽어 마땅하지!”유기철과 염수천의 말에 세나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누군지나 알고 날 죽이려는 거야? 설마 설국과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한 건가?”그녀의 말에 염수천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누구인지 한번 들어보자. 겁 좀 먹게 해봐.”세나미는 당당히 가슴을 펴고 외쳤다.“내 이름은 세나미다! 내 아버지는 설국의 군신 세나스지!”그녀의 이름이 떨어지자 염수천은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유기철의 표정은 한순간 굳어졌다.“세나미? 설마 네가 그 설
염수천이 거침없이 외쳤다.이에 윤구주는 담담히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지 않은가? 그까짓 야만국 하나에 그리 호들갑을 떨 필요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 소문이 퍼져 다른 구국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염수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럼, 왕께서는 어떤 뜻을 갖고 계십니까?”윤구주는 당당히 일어서서 창밖 설국의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6년 전, 나 홀로 한 자루 검만 들고 설국 황도를 베어버린 적이 있다. 6년 후, 또 한 번 그렇게 한다 해도 문제없겠지.”윤구주의 이 패기 넘치는 말을 들은 염수천은 감탄하며 외쳤다.“무적이십니다! 왕께서는 천하무적이십니다!”이후 윤구주와 염수천은 황도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특히 문씨 세가와 제자백가에 관해 나누기 시작했다.지난번 윤구주는 노룡산에서 제자백가의 수많은 절정 강자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문씨 세가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번 설국 문제만 아니었다면 윤구주는 반드시 서울로 돌아가 문씨 세가를 샅샅이 뒤졌을 것이다.윤구주가 염수천, 유기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국경 수비대원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보고합니다, 군왕! 감금 중이던 설국 여자가 깨어났습니다! 게다가 우리 국경 수비대원 한 명을 다치게 했습니다!”“지금은 감시실에서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반면, 성질 급한 염수천은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대담한 야만족이군! 붙잡힌 주제에 우리 화진 군인을 다치게 하다니, 당장 처형시켜라! 흑기 금위군, 명령을 듣거라! 지금 즉시 총살하라!”염수천이 성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윤구주가 차분히 제지했다.“총살은 필요 없다.”윤구주의 만류에 염수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왕께서는 왜 그 설국 여자를 살려두려 하십니까?”윤구주는 문득 떠올랐다. 이전에 그 여자가 아무 죄 없는 목동들을 풀어주던 모습을. 그는 천천히 말했다.“그 여자가 설국 사람이긴 하지만 심성은 꽤 선하더군.
거대한 북극 늑대가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다니.윤구주는 신인 걸까?그렇게 국경수비대 병사 두 명이 북극 늑대를 데리고 왼쪽에 있는 빈집으로 향했다.그들이 몇 미터 걸어가자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잠깐!”“저하, 무슨 분부 있으십니까?”국경수비대 병사 두 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공에 대고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북극 늑대 위에 기절해 있던 여자가 떠 올랐다.‘응?’“설국 여자?”주변 사람들은 윤구주가 설국 여자를 데리고 온 걸 보고 전부 당황했다. 그녀가 누군지, 윤구주가 무엇 때문에 그녀를 잡아 온 건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염수천도 마찬가지였다.윤구주는 기절한 세나미를 잡더니 손을 폈고, 쿵 소리와 함께 세나미의 몸이 바닥에 세게 던져졌다.“이 설국 여자도 가두도록 해!”윤구주는 덤덤히 말한 뒤 세나미를 뒤로 하고 몸을 돌려 병영 안쪽으로 향했다.병사들은 비록 세나미가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황급히 윤구주의 명령에 따랐다.널따란 지휘실 안.윤구주가 안으로 들어간 뒤 염수천은 서둘러 그의 곁에 섰다.흑기 금위군 병사들은 모두 꼿꼿이 양쪽으로 서 있었다.운이 좋지 않았던 유기철은 여전히 두 팔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서 한쪽에 서 있었다.“쟤는 왜 저래?”윤구주는 유기철의 손에 수갑이 채워진 걸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염수천은 유기철을 노려보면서 말했다.“저하, 유기철은 국경 지역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벌을 주고 있습니다.”“됐어. 국경 지역 일은 유기철만의 잘못은 아니니까. 이 일은 문씨 일가의 탓이야.”윤구주는 구주군을 해산시킨 장본인이 문아름이라는 걸 알았다.이곳에 힘없는 병사들 2,000명을 남겨서 국경 지역을 지키게 한 것도 문아름이었다.그러니 유기철이 국경 지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전부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염수천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돌려 유기철을 향해 매섭게 말했다.“운 좋은 줄 알아. 저하께서
한때 구주군의 10대 장수였던 사람들은 모두 만만치 않았다.염수천이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그들의 무자비함은 모두 윤구주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그들은 다짜고짜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었다.염수천은 흑기 금위군을 이끌고 설국으로 향하려고 했다.흑기 금위군이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고 할 때, 갑자기 우레 같은 소리가 병영에 울려 퍼졌다.“그럴 필요 없어. 나 돌아왔어.”그 말을 들은 순간 염수천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었다.그 목소리는 누가 봐도 윤구주의 목소리였다.“저하, 돌아오셨군요!”염수천은 흥분해서 병영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리고 그의 뒤에 있던 흑기 금위군과 다무, 묶인 유기철까지 전부 들뜬 얼굴로 뛰쳐나갔다.거대한 체구의 흰색 북극 늑대가 눈보라를 뚫고 풀이 잔뜩 죽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북극 늑대 위에는 윤구주가 올라타 있었고 그의 뒤에는 정신을 잃은,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가 있었다.“세상에나! 저렇게 큰 북극 늑대라니.”“저것좀 봐. 북극 늑대를 타고 있는 게 우리 저하야!”국경수비대 병사들과 흑기 금위군은 윤구주가 북극 늑대를 타고 눈보라를 헤치며 돌아온 순간, 다들 깜짝 놀랐다.염수천은 거대한 북극 늑대를 타고 돌아온 윤구주를 본 순간 빠르게 앞으로 향했다.“염수천, 저하의 귀환을 축하드립니다!”그의 뒤에 있던 흑기 금위군도 일제히 윤구주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윤구주는 염수천 등 사람들이 온 걸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너희는 여기 왜 왔어?”“저하, 전 국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저하를 돕기 위해 5만 금위군을 데리고 왔습니다.”염수천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국주님?”윤구주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그렇습니다! 국주님께서는 벌레만도 못한 설국은 저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하께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설국을 평정하여 우리 화진의 속국으로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그렇게 국경수비대 지휘관 유기철은 지휘실로 끌려갔다.커다란 지휘실 안.안팎으로 염수천의 흑기 금위군이 쫙 깔렸다.황성을 지키는 3대 금위군 중 하나인 흑기 금위군 병사들은 모두 최소 대무사 급이었고 어떤 이들은 무대 대가 경지였다.통령인 염수천은 절정 삼중천 실력으로 민규현과 막상막하였다.지휘실 안쪽에는 염수천이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었고 유기철은 마치 범죄자처럼 두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다무와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기철, 네 죄를 알아?”염수천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염수천은 과거 구주군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기에 살기도 강했고 또 난폭하기로 유명했다.질문을 받은 유기철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네... 알고 있습니다.”“안다면 죽어야지! 여봐라, 이 자식을 끌고 가서 죽여!”염수천이 말했다.‘뭐?’염수천이 유기철을 죽이려고 하자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전부 당황했다. 다무도 마찬가지였다.“염수천 장군님,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저하를 뵙게 해주십시오!”유기철이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염수천은 싸늘한 눈빛으로 유기철을 노려보았다.“구주군이면서 이토록 쓸모없는 놈이 감히 무슨 낯짝으로 저하를 뵙는다는 거야?”“전... 전...”부끄러움을 느낀 유기철은 두 눈이 빨개졌다.그가 평생 가장 숭배하던 우상은 바로 윤구주였다.그런데 윤구주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겨우 그와 하루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어야 한다니 억울했다.“장군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 그동안 줄곧 저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바랐습니다. 드디어 어렵게 저하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뵙게 해주세요... 저하를 뵙는다면 지금 당장 죽으라고 해도 저는 기꺼이 죽을 겁니다.”유기철은 눈이 벌게진 채 염순천을 향해 애원했다.염수천은 정말로 유기철을 죽일 생각인 걸까?당연히 아니다. 그는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당당한 화진 국경수비대의 지휘관이 설
“세상에, 전투기가 왜 저렇게 많이 왔지?”“지휘관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늘 위 헬리콥터들을 본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지휘관인 유기철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서 헬리콥터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대단한 분이 오셨나 봐. 어서 모든 병사에게 나와서 대열을 맞추어 맞이하라고 해!”“네!”곧이어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서 줄을 섰다.하늘에 있는 헬리콥터들은 전부 화진의 헬리콥터들이었고 대충 봐도 백여 대는 될 것 같았다.거대한 프로펠러가 요란하게 돌아가면서 천천히 평원에 착륙하기 시작했다.잠시 뒤, 백여 대쯤 되는 헬리콥터들이 하나둘 착륙했다.그리고 곧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세가 남다른 병사들이 허리춤에 검은색 검을 차고 헬리콥터에서 일제히 내려왔다.그들이 갑옷을 입고 나타나자 유기철은 당황했다.“세상에, 저 사람들은 우리 서울 황성의 흑기 금위군들인데!”유기철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뭐라고?’“흑기 금위군이요?”옆에 있던 병사도 외쳤다.“그래! 황성 3대 금위군은 흑기, 홍기, 황기 금위군으로 이루어져 있지. 3대 금위군은 우리 국주님을 보호하는 가장 강한 금위군이야!”“세상에, 우리 황성 금위군이 왜 국경 지역으로 온 걸까요?”다들 놀라워하는 사이 천여 명 가까이 되는 흑기 금위군이 질서정연하게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선두에 선 사람은 우람한 몸집에 차가운 표정을 가진 남자였다.남자는 얼굴이 넓은 편이었고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그가 바로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금위군 통령 염수천은 홀로 10만 금위군을 장악하고 있으며 3군 통령이라고 불렸다.그가 바로 과거 윤구주의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다.유기철은 구주군 제6군단에 있을 때 이미 염수천을 알고 있었다.이 순간, 염수천이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본 유기철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염수천 장군님! 염수천 장군님이 오시다니! 구주군 제6군단의 유기철 염수천 장군님께 인사드립니다.”유기철은 멀리서 염수천
흑여산맥, 화진 병영.다무는 윤구주에게 임명받아 진정한 구주군의 멤버가 된 뒤로는 자긍심을 느꼈다.비록 그는 나이도 많고 다리도 불편했지만 다시금 화진의 군복을 입게 되자 70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풍당당했다.주변에 있던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이미 모두 윤구주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그들은 흥분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다.한때 화진의 왕이었던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흥분되었고, 군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은 나태한 태도 때문에 벌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아저씨, 혹시 우리 구주왕이랑 아주 친한 사이인가요?”이때 국경수비대 병사 몇 명이 다무의 곁으로 다가갔다.다무는 그 말을 듣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당연하지. 우리 저하는 이 늙은이를 구해준 적이 있다고!”“정말 대단하시네요! 아저씨, 만약 저하께서 저희를 벌하겠다고 하시면 꼭 저희 대신 말 좀 해주세요!”국경수비대 병사 몇 명이 다무에게 말했다.다무는 웃으며 대꾸했다.“걱정하지 마! 법을 잘 준수하며 우리 화진의 국경을 지킨다면 저하께서는 절대 너희를 벌하지 않을 테니까!”“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목숨 걸고 화진의 영토를 지킬 거예요!”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군용차량 한 대가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군용차량이 멈춰서자 군복을 입은 유기철이 차에서 내렸다.“지휘관님께서 돌아오셨어!”“지휘관님을 뵙습니다.”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유기철을 보더니 곧바로 경례를 했다.유기철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저하께서 잡으라고 했던 놈들은 전부 잡은 거야?”“지휘관님, 전부 잡았습니다. 그들 모두 지금 구금실에 구금되어 있습니다.”“좋아! 빌어먹을 배신자들,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그놈들 목을 전부 베어버려야지!”다무는 이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지휘관님, 저하는요?”다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윤구주였다.유기철과 윤구주는 함께 떠났는데 유기철만 돌아왔기에 다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유기철은 웃는 얼굴로 설국 방향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