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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Author: 라오
“표세연 씨! 당신 아들이 연씨 가문의 재산을 전부 털어가고 있어요. 요양 자금을 다 날리고 싶지 않으면 빨리 물건이나 가져가세요!”

양씨 가문의 양지원이 처음으로 전화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그 반대편 표세연은 거실에 앉아 무표정하게 전화를 들고 있었다.

표세연이 원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연정훈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말릴 수 없었다.

거기에 세운의 그 여자는 문제가 터졌을 때 누구보다 신이 나더니 이제 와서 자기 차례가 되자 세운에서 나오지도 않고 양시연의 신분을 의심하며 양씨 가문과의 관계를 꺼리기까지 했다.

‘문제가 있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

표씨 가문은 이렇게 복잡한 일이 없었는데, 연정훈은 미친 짓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연정훈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격 때문이었다.

“지원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듣고 싶지 않아요! 당장 물건이나 가져가세요!”

표세연은 차분히 침묵했다.

“...”

그는 큰 잔에 차를 가득 따르며 천천히 말했다.

“예전에는 내 잘못이 있었지만, 그게 연정훈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정훈이는 절대 시연이가 출신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을 깔본 건 나였지 내 아들은 아니에요.”

양지원은 비웃듯 되물었다.

“...연정훈이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고요? 연정훈은 단지 예쁜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마음이 흔들린 것뿐이죠!”

“아니에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표세연은 서둘러 아들을 변호하며 급히 덧붙였다.

“소현주 일도 제 잘못입니다.”

양지원은 조용히 쏘아붙였다.

“소현주랑 표세연 씨가 사귀었어요?”

양지원이 비꼬듯 말했다.

“그건 아니죠...”

표세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비위를 맞췄다.

“당시 내가 사람을 보냈었어요...”

...

아래층에서 들리던 양지원의 목소리는 점차 부드러워졌다.

한편 양시연은 침대에 엎드려 나비와 함께 과자 한 봉지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연정훈 씨랑 같이 지내면서 그동안 참 힘들었을 거야.”

나비는 과자를 천천히 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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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07화

    “엄마.”“응?”양시연은 진지한 얼굴로 다가와 정색하며 물었다.“연정훈 씨, 혹시 무슨 숨겨진 병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요?”양지원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딸과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양시연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쉬며 말했다.“연정훈,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그러게 말이다.”양지원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제정신이 아니니까 미친 듯이 너와 결혼하려고 하는 거겠지.”양시연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손끝은 나비를 만지작거렸고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으로 어지러웠다.감동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단순한 허영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양시연은 스스로 생각했다.연정훈이 아니라도 권력 있고 우수한 누군가가 이렇게 간절히 다가왔다면 양시연은 비슷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양지원은 케이크 한 조각을 집어 딸의 입에 가져다주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래서 네 마음은 어떠니?”양시연은 눈길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했다.“결혼하고 싶지 않아요.”“진심이니?”“그 사람 요즘 너무 성가셔요.”양지원은 한동안 말없이 양시연을 바라보았다.“...그래도 결국은 네 선택이지.”양시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양시연에게 자기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거울을 하나 건네주고 싶었다. 그녀가 성가신 건지 아니면 부끄럽고 화가 난 건지 스스로 확인해 보라는 뜻에서였다.양지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혁수는 아마 희망이 없겠구나.’양시연은 옆으로 다가가 양지원을 살며시 껴안으며 작게 말했다.“저 정말 지금 결혼할 생각 없어요. 집에 온 건 뭔가 제대로 해보려고 결심한 거예요.”양지원은 딸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위로했다.“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아니에요.”양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딸이 아니라면 연정훈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아예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야.”“...”양지원은 단호히 말했다.“‘만약’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08화

    정인 그룹에서.연정훈은 방금 부승원을 배웅하고 돌아왔다.부승원은 초안을 훑어본 뒤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안 되겠다. 너희 엄마한테 부탁해서 무당이라도 불러야겠어. 넌 귀신 들린 게 틀림없어.”정인 그룹의 규모를 생각하면, 최대 주주의 변경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연씨 가문이 몇 대에 걸쳐 상업에서 쌓아온 자산을 고작‘혼수’로 내놓는다니 이건 완전히 풋내기나 할 법한 무모한 짓이었다.게다가 상대방이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굴욕적이었다.비서실장은 연정훈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감히 충고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속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춘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연정훈은 무거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서랍 깊숙한 곳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한 쌍의 반지가 들어 있었다.이 반지는 예전에 양시연이 그에게 돌려보낸 것이었다.연정훈은 반지를 들고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조심스레 반지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연정훈은 미친 게 아니고 단지 처음으로 자신감이 부족했을 뿐이었다.그래서 서둘러 승부수를 던졌다. 양시연을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고 싶었다.양시연은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 있었다.양혁수는 양시연을 좋아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비교하면 연정훈은 자신에게 뚜렷한 강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양시연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을 품을 때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 후에는 매일 그녀와 함께하며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기회가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며 연정훈은 책상으로 돌아와 만약 양시연이 거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하기 시작했다.양시연은 늘 그에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지적했지만, 정작 연정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시연이 거절할 때마다 연정훈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고, 그는 그저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09화

    “반우희는 주스를 마시며 물었다.“부승희 씨, 연 대표님 편을 안 들어주시나요?”부승희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저는 항상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에요. 이치에 맞는 걸 도울 뿐 가족 편은 들지 않죠.”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역시 부승희 씨다!’“그런데 말이에요.”부승희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양시연에게 시선을 돌렸다.“네가 연정훈의 청혼을 거절한 이유가 이제 연정훈을 안 좋아해서야? 아니면 연정훈에 대한 앙금 때문이야?”양시연은 잠시 망설였다.그때 반우희가 손목시계를 흘끗 보며 재빨리 끼어들었다.“2초 이상 망설였어요!”부승희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양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승희는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양시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멈췄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생각 중이었어요.”“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양시연은 고기를 한 입 먹으며 천천히 말했다.“너무 오랫동안 연애 문제를 멀리하다 보니 조금 서툴러졌나 봐요.”부승희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렇군요.”양시연은 헛기침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반우희는 털털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상황을 정리했다.“아직 조금은 좋아하지만, 그렇게 많이 좋아하진 않는 거죠. 앙금도 조금은 있지만, 굳이 앙갚음할 마음은 없어요.”그렇게 말하고 나서 반우희는 자신만만하게 양시연에게 물었다.“제 말이 맞죠. 양시연 언니?”양시연은 말없이 달콤한 수프를 그녀 앞에 밀어놓았다.“많이 먹어. 이거 맛있어.”“네.”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음식을 맛보았다.“사실 이해는 가요. 전 애인이 쫓아오면 누구라도 망설이겠죠.”양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물었다.“이승우가 승희 씨한테 다시 대시하면 받아줄 거예요?”부승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요.”양시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10화

    “됐거든요.”양시연이 숟가락을 쥐고 낮게 중얼거렸다.“돈이 많으니까 돈으로 날 사려는 것 같아요. 누가 누구를 잡아두는 건지도 모를 일이죠.”“오늘 아침이었어요.”그녀는 말하다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우리 집에 선물 잔뜩 들고 와서 청혼한다고 하더니 내 앞에서는 여전히 뻔뻔하게 굴더라니까요.”부승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반박했다.“뻔뻔하다고 해서 초조하지 않다는 건 아니죠!”양시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초조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요.”부승희는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안 초조했으면 천천히 시연 씨를 설득했겠죠. 이렇게 대대적으로 단기전으로 나설 이유가 없잖아요?”양시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연정훈의 행동이 분명 평소의 그와는 달랐다.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그녀는 부승희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잠깐만! 부승희 씨, 너 뭔가 스파이 같은 느낌이 있어요.”반우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뭔가 수상해요.”부승희는 어이없었다.“...”양시연은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연정훈 씨한테 뭔 얘기 듣고 날 부른 거 아니죠?”부승희는 의자를 바짝 당기며 허리를 곧게 펴더니 말했다.“무슨 소리예요. 난 그냥 옛 친구가 그리워서 온 거라고요!”부승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생각이 너무 많아졌네요. 역시 신분이 달라지더니 우리 같은 가난한 친구들은 다 의심부터 하네요.”양시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부승희는 양시연이 믿지 않는 걸 보자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잠금을 해제하며 말했다.“봐요. 직접 확인해요. 나랑 연정훈이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정말 한참 전이었어요.”부승희는 양시연이 굳이 확인하지 않을 거라 속으로 확신했다.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막역하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뜻밖에도 양시연은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단호히 말했다.“그러면 연정훈과의 카톡 채팅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11화

    “그건 모르는 일이죠. 너무 심심해서 사서 고생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그러니까요. 고생하는 건 그 사람인데 뭘 그렇게 고민해요?”양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시연 씨는 쉽게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고 국내 최고 갑부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다가 오빠가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굴면 뻥 차버리면 되잖아요. 침대 밖으로 내쫓는 것처럼 간단한 일 아니에요?”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그런데 부승희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을 이었다.“이런 프러포즈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 시연 씨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 엄마한테 이 사실을 알리면 당장 비행기 타고 와서 시연 씨를 설득할 거예요.”양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엄마는 결혼과 사랑은 다른 거라고 했어요.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사랑만 해서는 결혼이 안된대요. 부부는 파트너 같기도 해서 사랑도 하고 손발도 척척 맞아야 해요. 두 가지가 다 되는 인연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죠.”부승희가 말을 마치고 양시연의 어깨를 다독였다.“정훈 오빠를 놓치면 더 좋은 사람 없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애틋한 사랑이라고 해도 결국 끝은 똑같아요.”양시연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부승희를 바라봤다.“부승희 씨답지 않은 얘기인걸요.”경인시에서 사랑에 파이팅넘치는 사람 하면 부승희였다.부승희는 손을 휘휘 저었다.“이제 어리지도 않은데 어떻게 예전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어요?”그리고 부승희가 반우희를 향해 물었다.“우희 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돼요?”“스물둘이요.”그 말에 양시연과 부승희가 서로를 바라봤다.‘젊고 참 좋다.’‘부러워.’부승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어쨌든 정훈 오빠랑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도 시연 씨 뭐라고 못해요. 다들 과하게 프러포즈한 정훈 오빠를 미친 사람 취급 할 걸요.”반우희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시연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양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날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12화

    부승희는 반우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렸다.그러자 반우희가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놨다.“과일 도시락이에요. 부승원 변호사님이 다른 변호사한테 나눠주시고 마지막으로 저한테 주셨는데 저는 그냥 평범한 도시락인 줄 알고 그냥 가지고 있었어요.”부승희가 빠르게 질문을 이어갔다.“무슨 과일이었는데요?”“딸기요!”“또 거짓말! 우리 오빤 딸기 안 먹어요. 엄마가 딸기를 싸주셨을 리가 없어요!”“...”반우희는 또 제 발등을 찍었다.양시연은 그 옆에서 웃음이 터졌다.부승희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부승원은 딸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반우희가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양시연은 제 코가 석 자였으니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간섭할 겨를이 없었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처 노래방에서 한 곡 하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 10시가 넘었다.“우리 3차 가요!”부승희가 말을 꺼냈다.그러나 양시연과 반우희는 체력이 바닥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두 사람 정말 체력 키워야겠어요.”부승희는 두 사람을 이끌고 신호등 앞에 섰다.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길가에 서 있는데 버스가 지나치고 맞은편의 한 무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양시연은 경인시가 참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이렇게 좁을 수가 없었다.경인시로 막 돌아온 양시연이 우연히 연정훈을 만나고, 먼 해외에서 돌아온 부승희가 길가에서 이승우를 마주칠 확률은 대체 얼마나 높을까?차 한 대가 지나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부승희의 긴 머릿결을 흩트렸다. 그렇게 시야가 조금 가려지고 부승희는 눈앞의 사람이 흐릿하게 보였다.이승우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소매를 반쯤 접어 올렸으며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있었다. 손목에 걸린 시계가 훤히 드러났고, 웃으면 고개가 뒤로 살짝 젖혀지는 습관까지 기억 속과 다를 게 없었다.양시연은 바로 부승희를 살폈다. 부승희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승우를 향해 미소 지었다.이승우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13화

    부승희의 말이 끝나고 양시연은 왠지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이승우가 깜짝 놀라더니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정말? 그렇게 벌써 남자 친구가 생겼어?”“덕분에.”부승희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오늘은 짧게만 얘기하고 다음에 자리 한번 마련할게.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인데 오빠랑 얘기가 통할 거야.”“그래...”“이만 가요.”양시연과 반우희를 향해 말했다.부승희가 먼저 앞장을 서고 두 사람은 조용히 이승우의 앞을 지나쳤다.그렇게 그들은 또 큰길 하나 사이 두고 멀어졌다.부승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나 양시연은 이승우를 몰래 살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부승희가 멀어지고 나서야 이승우는 몰래 그곳을 슬쩍 살피다가 몸을 돌렸다.반우희가 작게 중얼거렸다.“승희 씨 정말 멋있지 않아요?”양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세 사람은 앞쪽 사거리에서 헤어져 각자 차에 올랐다.양시연은 본가로 향했고 정원에 양석진이 자주 타던 차량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제저녁부터 양혁수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집안으로 들어선 양시연은 양지원과 양석진을 찾았다. 인기척을 느낀 여 아주머니가 내려와 양시연에게 말했다.“시연 씨, 어르신이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양홍두가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 연정훈이 그렇게 많은 걸 내주었으니 양홍두의 마음이 흔들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양지원과 양석진의 얼굴을 보아 섣불리 말을 꺼내지는 못할 것이다.똑똑똑.양시연이 문을 두드렸다.“들어오거라.”양시연이 안으로 들어섰다.양홍두의 방은 본가에서도 가장 큰 방이었고 인테리어에 많은 신경을 썼었다. 방 안의 공기는 아주 쾌적했으며 잘 정돈이 된 것 같았다.“할아버지, 저 찾으셨어요?”양홍두는 어항의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양시연을 확인한 양홍두는 양시연을 옆으로 부르더니 물고기 밥을 넘겨주었다.“오늘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614화

    양시연은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양홍두의 방에서 나왔다. 마음속에는 또 걱정이 늘었다.거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오자 양시연이 고개를 들어 그곳을 확인했다. 양지원과 양석진이 함께 있었다.양시연은 너무 기쁜 나머지 깡충깡충 뛰며 외쳤다.“엄마!”양지원이 고개를 들어 양시연을 향해 미소 지었다.“빨리 와. 엄마 쿠키 구웠어!”고개를 끄덕인 양시연이 폴짝폴짝 내려갔다.양지원은 이런 양시연이 익숙했지만 양석진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양시연은 늘 양석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양시연이 양석진에게 다가가 물었다.“오늘은 다른 일정 없어요?”예전처럼 호칭은 생략되었다.양석진은 소파 등받이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응. 그래서 집에 들렀어.”“그렇군요.”양지원은 쿠키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신경을 써서 만들어도 쿠키가 자꾸 부서졌다.양시연이 말했다.“설탕을 많이 넣어서 그래요.”“정말?”양지원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다시 주방으로 걸어가 다음 쿠키를 체크했다.양석진은 테이블 위로 올려 둔 조각난 쿠키를 대수롭지 않게 입에 넣었다.한 입만 먹어도 너무 단데 양석진은 그 쿠키가 별미라도 된 것처럼 자꾸 입에 넣었다.양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한 조각 다시 맛보았다.“...”‘음... 내 미각이 잘못된 건 아니군.’양시연은 몰래 물을 반 컵이나 들이켰다.양석진은 이런 양시연을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음식은 한 번도 차려본 적이 없던 네 엄마가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성장인 거야.”“...”‘네네. 당연히 그렇겠죠.’“엄마가 만든 쿠키가 맛은 좋은데 시간이 많이 늦어 당이 올라갈 수 있으니 오늘 밤엔 적당히 드시는 게 좋겠어요.”양석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부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양석진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정훈이가 프러포즈했다면서?”양시연은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정확히 말하면 프러포즈는 아니죠.”“그래. 혼사 얘기를 꺼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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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204화

    오성호가 죽자 양혁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모든 걸 혼자 감당할 거로 생각했다.누군가 그에게 ‘네가 악몽 꿀까 봐 걱정돼’, ‘슬플까 봐 걱정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자신 안에서 일어난 미세한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그날 밤 변여름은 마치 작은 수호신처럼 조용히 그의 곁을 지켰다.그는 처음으로 마음속 어딘가에 기대어도 된다는 감정을 느꼈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품에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미세한 소리를 들으며 전보다 훨씬 평온한 마음으로 잠들었다.해가 막 떠오르려는 새벽에 오성호는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양혁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장 간단한 절차로 화장을 준비했다.며칠 전 한강시에서 오래된 집사가 찾아왔다. 겉으로는 인사차 왔다고 했지만 양혁수는 양지원이 그를 대신해 장례를 챙기도록 보낸 거로 생각했다.이틀 만에 모든 절차가 끝났고 그는 유골함을 집에 임시로 안치한 뒤 며칠 후 한강시로 옮길 준비를 했다.설날이 다가오자 양지원이 전화를 걸어 어디서 보낼지 물었다.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는 북적이는 곳을 즐겼지만 요즘은 성격이 한층 차분해져 설날에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꺼렸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한강시로 모셔 함께 명절을 보내거나 그가 경인으로 가는 편이 가장 편하고 좋았다.하지만 올해는 곁에 변여름이 있었다.그녀는 설날을 특별히 챙기지 않는 집안 출신이라 굳이 집에 갈 필요도 없었다.양혁수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지 결정하지 못했고 일단 양지원에게 말을 돌렸다.그는 변여름이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때 노지혜가 끼어들었다.“그쪽에서는 설날이 큰 행사예요. 진짜 사귀는 여자 친구라면 데려가야죠.”변여름이 알아본 바로는 그 말이 꼭 들어맞는 건 아니었다. 여자 친구들도 대부분 설날에는 자기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가는 게 귀찮았고 이번만큼은 양혁수가 자신을 데려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203화

    변여름의 한마디에 양혁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이 가슴에 가득 찼다.그가 이를 악물자 변여름은 진심 어린 아쉬움이 스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70점은 너무 적어요. 내가 오빠한테 키스 몇 번 더 할 테니 80점으로 올려줄 수 있어요?”양혁수는 어이없었다.“...”그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끝내 시선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변여름은 그의 등 뒤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끈적하게 달라붙는 상큼한 레몬 맛 엿처럼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양혁수는 도무지 그녀를 떼어낼 수 없어 결국 그녀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들어 올렸다.변여름은 놀란 숨을 삼키며 그를 꼭 껴안았고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그의 얼굴에 바싹 닿아 있었다.그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변여름을 흘겨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지금은 59점이야.”‘푸. 80점을 바라다니.’변여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잽싸게 다가가 양혁수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60점이면 좋아요. 80점까지는 욕심내지 않을게요.”양혁수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코웃음을 흘렸다.그녀를 안은 채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변여름은 그의 옆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심장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크고 작은 사고도 잦았다. 하지만 어떤 성취보다 지금 이 남자의 마음을 얻는 일이 더 벅차고 소중했다.그가 몇 점을 주든 그녀는 그저 기뻤다.양혁수는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곁눈질로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그녀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품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목에 닿는 그녀의 힘은 마치 목줄 같았다. 양혁수는 속으로 생각했다.‘이제 이 골칫덩이를 정말 떼어낼 수 없겠어.’하지만 떼어내고 싶지도 않았다.그가 화서시에 온 이유는 오성호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지만 오성호가 바로 죽지 않아 그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며칠은 우울했지만 그 뒤로는 일주일 넘게 변여름에게 꼼짝없이 붙잡혀 있었다.함께 먹고 함께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202화

    양혁수는 목을 가다듬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얼굴을 지었다.“...조금?”‘응?’변여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이내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실험실의 연구자처럼 엄정한 표정을 지었다.“조금이면 몇 퍼센트쯤 되는 건가요?”양혁수는 잠시 생각했다.변여름은 계속해서 추궁했다.“만점이 백 점이면 조금은 몇 점쯤 될까요?”양혁수는 침묵했다.“...”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고 방금의 말이 너무 경솔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너무 높게 말하면 선을 넘을 것 같고 너무 낮게 말하면...’양혁수는 변여름의 얼굴에 스친 심각한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을 떨쳐냈다. 너무 낮게 말했다간 변여름이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그는 조심스럽게 그래도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점수를 입에 올렸다.“60점.”‘60점밖에?’변여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양혁수는 순간 멈칫했다.‘너무 낮았나?’그가 서둘러 말을 수습하려던 찰나 변여름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잠시 이를 악문 채 감정을 눌러 담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빠, 60점은 좀 적어요. 다시 말해줄 수 있어요?”‘네?’그녀는 가볍게 말했지만 양혁수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머릿속이 지끈거리는 동시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변여름은 예전에 연기를 참 잘했는데 요즘은 점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에든베타에 있을 때부터 그를 부려 먹더니 이제는 그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마음대로 휘두르려 드는 것이다.‘하하. 말도 안 돼.’지금 그녀는 감히 그의 머리 위에서 놀아보겠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고 앞으로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60점이면 많아.”그는 눈빛을 바꾸며 마지못해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50점 정도인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변여름은 한 발짝 다가와 그의 발끝에 그녀의 발끝을 겹쳤다.양혁수는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201화

    키스는 쉽지만 그것이 끝나자마자 머리가 아파졌다.입술을 떼자 양혁수는 웃고 있는 변여름의 눈과 마주쳤고 그 순간 그는 망했다고 느꼈다. 그녀에게 완전히 휘둘릴 것 같았다.역시 변여름은 그에게 물었다.“오빠, 이번에는 오빠가 먼저 키스한 거죠?”“...”“사실 처음이 아니잖아요. 에든베타에서도 오빠가 갑자기 나를 안고 키스했잖아요.”“...”“왜 일어나요?”‘왜? 너를 피하려고.’양혁수는 도망치고 싶었다.변여름은 그를 따라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양손을 느긋하게 등 뒤로 모은 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오빠, 인정 안 할 거예요?”양혁수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핥고는 억지로 말했다.“네가 몇 번이나 키스했는데 내가 따지기라도 했어?”변여름이 말했다.“따져요. 난 인정할게요.”양혁수는 어이없었다.“...”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갑자기 틈을 찾아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다.변여름은 재빨리 움직여 그의 품에 안기며 꽉 껴안았다.양혁수는 그녀의 턱에 부딪혔다. 세게 부딪힌 것은 아니었지만 아픔보다는 놀란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그는 침을 삼키고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오빠, 그러면 안 돼요. 내가 키스하게 했잖아요...”양혁수의 얼굴이 빨개졌고 오랫동안 바른 사람으로 살아온 그에게 악당 역할은 서툴렀다.갑자기 키스해 놓고 인정하지 않으려니 좀 어색했다.양혁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폼을 잡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물었다.“내가 인정 안 한다고 했어?”변여름은 1초 만에 고개를 들었다.“응?”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키스 한 번에 이렇게 큰 진전이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양혁수는 전에 변여름을 꼬마 변태라고 부르며 지능이 뛰어나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그 말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자신에게 이득을 보게 했는데 오늘에서야 그에게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변여름은 그에게 물었다.“오빠, 진짜 인정할 거예요?”양혁수는 마음속으로 변여름이 어디까지 나아가려는지 알 수 없어 불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200화

    집사가 창문을 여는 순간 계단에 앉아 있는 양혁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쯧쯧.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엉덩이가 안 차가운지 몰라.’아래층에서 변여름은 스스로 제안한 낭만을 즐기려 분위기를 내보려 했지만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후회했다.“오빠, 우리 들어가요.”양혁수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낭만은 벌써 끝난 거야?”변여름이 말했다.“...엉덩이 안 차가워요?”양혁수는 물론 알고 있었다. 앉자마자 속으로 거친 말이 먼저 떠올랐다.그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절대 앉지 않았겠지만 정원 풍경이 제법 괜찮아 기분이 좋아진 그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차고에 들러 방석 두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하나를 변여름이게 건넸다.엉덩이는 보호했지만 변여름은 다시 양혁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핫초코를 마셨고 그녀 역시 말없이 그와 함께 따뜻한 시간을 나눴다.잠시 후 온몸이 데워진 양혁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소리를 들은 변여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오빠, 기분 좀 나아졌어요?”양혁수는 그녀가 죽어가는 친아버지를 보고 마음이 복잡할까 봐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것임을 알아챘다.‘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진심을 받을 수 있을까.’그는 속으로 꽤 흐뭇했지만 양지원을 제외하고도 어떻게 누군가가 그것도 여자가 자신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그는 변여름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이렇게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거 힘들지 않아?”“힘들지 않아요.”변여름은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마치 오래 준비했던 듯 담담히 말했다.“내가 오빠 좋아하잖아요.”양혁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내가 뭐가 좋아?”변여름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오빠가 양혁수여서요.”순간 양혁수의 마음은 멍해졌다.변여름은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오빠가 양혁수인 이상 전 계속 좋아할 거예요.”흔들리는 마음을 숨기려 그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정원은 고요했고 언제부터인가 그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9화

    변여름은 남자를 유혹할 때 감정을 자극하는 전략에 집중했다.그녀의 이해력과 용기를 보면 오토바이를 배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양혁수는 각 부분의 기능만 설명해 주면 그녀는 곧바로 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변여름은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설명을 다 들은 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어려워요.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이것도 다 알고… 그래도 오빠가 태워줘요. 안 그러면 저, 넘어질까 봐 무서워요.”양혁수는 침묵했다.“...”그는 변여름이 순진하고 귀여운 척 연기할 때마다 마치 덩치 큰 남자가 억지로 애교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능숙하긴 한데 그런 애교는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변여름은 작은 가방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며 그의 주머니에서 털실 장갑을 꺼냈다.“난 오빠가 장갑 안 낄 줄 알았어요.”변여름은 한숨을 쉬며 끈 장갑을 목에 걸고 장갑을 낀 뒤 손뼉을 쳐가며 그 따뜻함을 느꼈다.양혁수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은 걸 알아차렸다.목도리가 높게 올라와 작은 코를 가렸고 머리에는 털실 모자를 썼으며 짧은 울 코트와 스커트 세트에 검은색 이너와 롱부츠까지 갖춰 입은 모습은 멍청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순진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지닌 그녀를 보며 그는 듬직한 남자가 애교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했다.“모자 벗고 헬멧 써.”그가 말하자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 끝에 달린 털 방울을 잡아당겼다.양혁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날리는 머리카락을 눌러주고 그녀의 손을 잡아 천천히 모자를 벗겼다.변여름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역시나 양혁수는 직접 그녀에게 헬멧을 씌워줬다.마스크 너머로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마스크를 위로 올렸다.그러자 양혁수는 다시 그녀의 마스크를 아래로 내려주며 말했다.“나중에 차 타고 가면 얼어 죽을 거야. 함부로 벗지 마.”‘네.’그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8화

    오성호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양혁수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지 않았다. 하물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죽음을 앞두고 짧게 마주한 이 순간엔 더욱 그랬다.묘지 이야기가 끝나자 부자 사이에는 말 한마디조차 스며들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오성호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는 지금 자신의 아이를 보고 있는 건지 단지 피를 나눈 존재를 바라보는 건지 아니면 양혁수를 통해 잊힌 과거를 떠올리며 전혀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른다.양혁수는 그것을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오성호가 양지원을 만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고 오성호는 한참 뒤 남아 있는 힘을 다 짜내 그에게 물었다.“네 엄마는...잘 지내니?”양혁수는 사실대로 말했다.“말씀하신 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오성호가 웃자 산소마스크에 김이 서렸고 그는 눈을 감은 채 다시 조용해졌다.양혁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다른 부탁은 없어요?”오성호는 양혁수가 떠나려는 기척을 느끼고 다시 눈을 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날씨가 추워...빨리... 집에 가...”양혁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 익숙했지만 지금 이 사람의 마지막 두 마디가 진심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성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본 뒤 돌아섰다.서로 30년 넘게 부자로 살아왔지만 결국 남은 건 몇 마디 말뿐이었다.문을 닫으려던 순간 양혁수는 침대에 누운 이가 힘겹게 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올 때와는 달리 밖으로 나서자 마치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달빛 아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답답함이 뻥 뚫리는 듯했다.양혁수는 계단에 멈춰 서서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7화

    “나 혼자 가면 돼.”양혁수가 말했다.변여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끈 달린 장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알아요. 그냥 장갑 가져다주려고요.”양혁수는 장갑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고 침잠했던 기분이 조금씩 풀렸다.“나가서 끼면 돼.”“분명히 거짓말이에요.”변여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끝내 그를 다그치지 않고 장갑을 조용히 그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그를 배웅하며 갑자기 물었다.“주차장에 오토바이 있던데 내가 타도 돼요?”“오토바이 탈 줄 알아?”변여름은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하지만 배울 수 있어요.”“배울 필요 없어.”양혁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이며 말했다.“추운 날 오토바이 타면 귀 얼어서 떨어질지도 몰라.”변여름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나중에 오빠가 가르쳐줘요.”“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양혁수는 계단을 내려갔다.차에 타기 전 창밖 너머로 변여름이 손을 흔들며 목에 무언가를 거는 시늉을 하자 양혁수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오성호가 입원한 곳은 조용한 곳에 자리한 개인 병원이었고 밤 9시가 넘자 주변은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았다.저택에서 병원까지는 잠깐이었지만 병원 밖에서 병실까지는 20분이나 걸렸다.양혁수는 정원을 지나 사람 하나 없는 긴 복도를 걸었고 부드러운 조명이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개인 정원에 도착했다. 그 사이 그는 오성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는 오성호의 모습을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린 데다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양쪽 볼은 부어 있었으며 눈은 천장의 형광등을 멍하니 응시한 채 공허했다.소리를 들은 오성호는 낡은 자루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여 문 쪽을 바라보았다.양혁수가 들어서는 걸 보자 그의 눈에 희미한 빛이 스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이 곧 사그라졌고 낯선 이를 보는 듯한 평온만이 남았다.“왔구나...”그가 입을 열었지만 그 목소리는 듣는 이를 거슬리게 할 만큼 거칠고 불쾌한 소리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6화

    변여름은 스웨터와 목도리 장갑 한 켤레를 챙겨 왔다.양혁수가 스웨터를 걸쳐보니 몸에 맞았고 목도리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하지만 그는 끈 장갑을 들어 올리며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여름아, 이런 장갑은 아이들이 잃어버릴까 봐 쓰는 거잖아.”변여름은 말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장갑 끈을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오빠, 평생 오빠를 위해 장갑을 떠줄 거지만 내가 뜬 장갑은 소중하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요.”“...”양혁수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착용은 할 수 있겠지만 끈만큼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털실 장갑은 별로 따뜻하지 않아. 보온성은 가죽 장갑이 훨씬 낫지.”그가 넌지시 말하자 변여름이 고개를 들었다.“그러면 끈을 가죽끈으로 바꿔줄게요.”양혁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됐어. 됐어.’두 사람은 한참을 고집스럽게 맞서다가 결국 다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기분이 좋았던 그는 결국 변여름의 달콤한 설득에 넘어가 담요 뜨는 법까지 배우게 되었지만 이내 장난스럽게 시범을 보여달라며 매우 긴 부분은 늘 여름이 대신 떠주곤 했다.“곧 설날이네요.”조용하던 틈에 변여름이 말을 꺼내자 양혁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잠시 정적이 흘렀고 변여름은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오빠, 저희 화서시에 가요.”양혁수의 손이 멈췄다....양혁수는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오성호에게 호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다른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부성애가 필요할 나이였지만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양지원이 준 사랑이 넘쳐흘렀기에 ‘아버지’라는 감정의 빈칸조차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그러나 혈연이란 참으로 기묘하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오성호가 아무리 끔찍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분명 양혁수의 친아버지였다.그리고 생사의 경계 앞에서 누구도 완전히 무심할 수는 없었다.결국 양지원은 오성호를 죽이지 못했다. 대신 화서시에 가둬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했다.양혁수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오성호를 찾아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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