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만약 우리의 골수와 심장이 어머니와 일치했다면 어머니는 분명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한테 이식을 요구하셨을 거야.”“내 앞에서 자신에게 이식조차 못 해주는 우리를 낳은 걸 후회한다고 하셨어. 그리고... 어머니는 너의 목숨조차 신경 쓰지 않으셨고 나한테 서유 씨의 심장을 꺼내오라고 하셨어.”그는 눈을 내리깔고 놀란 얼굴을 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육성아, 어머니는 분명히 심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알고 있었으면서도 너한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심장을 빼앗아 오라고 하신 거야.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자애로웠던 우리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없어. 그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육성아는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어.”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유는 참견을 하기 싫었지만 심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사실이에요. 당신 어머니께서는 두 사람이 자신에게 이식을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원망했었어요.”그녀의 단호한 말에 육성아는 벼락을 맞은 듯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서유와 육성재를 번갈아 보면서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믿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서유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이렇게 하죠. 피를 뽑아줄 테니까 다시 한번 검사해 봐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하는 말보다는 훨씬 믿음이 갈 테니까.”담담하게 말하는 서유를 쳐다보며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난 우리 오빠 믿어요.”지금까지 오빠는 그녀를 많이 아꼈었고 그녀를 속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게다가 오빠는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고 어머니의 심장 이식을 위해 조울증이 있는 몸을 이끌고 세계 각지를 찾아다녔다. 이런 효자가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면 모를까...서유의 골수와 심장이 일치했다면 오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유를 붙잡아 두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승
택이가 어떤 방법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는지 소지섭과 서유는 모르고 있었고 이승하만 알고 있었다. “지금 없어. 찾고 싶으면 직접 연락해.”“연락이 됐으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겠죠.”그녀는 들끓는 분노를 꾹 참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이승하의 앞으로 다가갔다.“그 사람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그녀보다 20cm나 키가 큰 이승하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차갑게 흘겨보았다.“몰라.”택이는 이번 임무를 완수하고 바로 S 조직의 본부로 돌아갔다. S 조직의 일을 대해 어떻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순식간에 안색이 변한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애써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당신이 그한테 날 접근하게 하고 날 유혹하게 하고 날 속이게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그의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택이가 그녀에게 접근한 방식이‘미남계’일 줄은 그조차도 몰랐다. 이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임무를 내린 사람이니 다소 책임을 져야 했다.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뭐라고? 이 대표가 사람을 보내 널 유혹했단 말이야?”오빠한테 들킨 이상 그녀도 숨길 것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깜짝 놀라던 육성재는 이내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택이라는 그자가 설마 너한테 못 할 짓을 한 건 아니겠지?”어렸을 때부터 그는 몸이 허약했지만 여동생은 건강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여동생을 태권도 학원에 보냈었다.태권도를 배우고 킥복싱을 배우면서 여동생이 그것에 푹 빠져버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나날이 늘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육씨 가문의 아가씨가 되어버렸다. 어른이 된 후, 다른 가문의 도련님들과 만남을 가졌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놀라서 다들 도망쳐 버렸다. 말로 표현이 서툴렀던 여동생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바로 주먹으로 해결하려 하였었다. 육성재는 여동생의 그런 점이 마음에
이승하 또한 이런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처음으로 반박하지 않고 오히려 제안을 했다.택이의 S 조직 팀원 신분을 해제하고 그가 안심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그가 루드웰로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면 택이가 S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한편, 육성아는 이승하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육성재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웃기는 소리. 내 동생이 평생 결혼하지 못하더라도 당신 부하한테 시집가는 일은 없을 거야. 경호원이 감히 우리 집안을 넘봐? 주제 파악이 안 되는군.”그 말에 소지섭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S 조직의 팀원이자 이승하의 오른팔인 택이가 어떻게 일반 경호원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육성재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나 없어서야...“여동생이 얼마나 사나운지는 잘 알고 계시잖아요. 우리 택이 씨나 되니까 개의치 않아 하는 거지. 뭐가 그리 대단한 여자라고...”누그러졌던 분위기는 소지섭의 한마디에 다시 달아올랐고 육성아의 왼쪽 주먹에 소지섭은 단번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주먹을 거두고 이승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 세상 남자들이 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여동생이 자신과 같은 편에 서자 육성재는 턱을 치켜세우며 이승하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이승하, 당신이 사람을 시켜 내 동생을 괴롭힌 일에 대해서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어디 한번 두고 봐.”“어떻게 할 건데?”“택이라는 그놈 당장 나오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블루리도를 짓밟아버릴 거야.”블루리도는 이승하가 서유한테 선물한 신혼집이었고 이 별장의 디자인은 서유가 직접 한 것이었다. 육성재가 그걸 건드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헛된 꿈이었다. “내가 한 말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게.”그 말을 마치고 이승하는 서유를 끌고 자리를 떴다. 육성재가 아무리 경호원을 가로질러 문을 발로 차도 그는 고개조
오빠가 자신을 위해 원수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더 크게 울었다. “오빠,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한테 여동생은 너 하나뿐이니까.”여동생이 오빠를 지켜준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이는 그러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늘 그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한 것도 그를 더 잘 지켜주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이다. 그녀도 그 뜻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후회하기는커녕 오빠를 지키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여동생이 그한테 해준 만큼 그도 당연히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그동안 동생이 훈련하면서 다친 상처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육성아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오빠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만큼 그녀도 오빠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난 그 사람이랑 결혼 안 해.”집안 배경도 다르고 자신을 속인 것도 모자라 그녀에 대해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저 이승하의 명만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도리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그 사람 만나면 복수할 거야. 완전히 선 그을 거고 아버지 뜻대로 정략결혼 할게. 그럼 오빠가 이승하를 상대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오빠는 여자한테 도움 같은 거 안 받아.”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그가 휴지를 건넸다.“얼굴 좀 닦아. 더러워죽겠네.”휴지를 받아 든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렇게 좋은 가족이 있는데 남자는 무슨 남자냐. 나쁜 놈들...얼마 후, 육성재의 차가 블루리도를 떠나자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마이바흐가 천천히 빠져나와 블루리도의 문 앞에 멈춰 섰다.회색 정장 차림을 하고 있는 강도윤은 운전자석에서 내려와 조수석의 문을 당겼고 이내 빨간색 타이트한 롱 드레스를 입은 강세은이 차에서 내렸다. 도로를
별장 안, 통화를 마친 이승하는 주태현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 돌려보내요. 할아버지랑 마주치지 않게.”주태현은 공손히 대답하고는 반대편으로 별장을 나섰다. 주태현이 그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그가 거실로 돌아갔다. 이태석과 하석준은 서유가 끊인 차를 마시고 있었다.“배운 적이 있었느냐?”그녀는 이태석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고개를 저었다.“특별히 배운 건 아니고요. 그저 인터넷 보면서 조금 배웠어요.”동아그룹에서 일할 때, 각 회사의 대표들을 접대하는 일을 했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차를 즐겨 마셨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아두었던 것이다. 영상을 보고 배웠다는 말을 듣고도 웬일인지 이태석은 한소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칭찬했다.“잘 끓였네.”하석준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재능이 있네요.”“아닙니다. 차가 일품이어서 그런 거예요.”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뚝 솟은 사내가 싸늘한 기운을 뽐내며 다가왔다.“아직도 왜 여기 계세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게요?”무례한 그의 말투에 하석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자 그가 한마디 더 보탰다.“하 박사님, 저녁 드시고 가시죠.”그 말을 듣고 하석진은 이태석을 향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요. 아직 이 대표님 집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 난 저녁까지 먹고 갈게요.”화가 난 이태석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세게 올려놓았다.“먹긴 뭘 먹어? 자네 집에는 밥 없나?”그가 소리를 지르더니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발 여기 남아서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부탁해도 절대 안 들어줄 기세였다. 그녀는 이태석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앞으로 다가가 그를 막았다.“어르신, 식사 하고 가세요.”이태석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면서 이승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무 표정이 없는 그의 모습에 이태석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섰다. 이태석이 자리를 뜬 마당에 하석진도 그곳에 남아 밥을 먹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유는 하인들에게 연이의 목욕을 맡기고는 서재 밖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면서 이승하와 택이를 전화를 엿듣고 있었다.“결혼하고 싶으면 내가 가서 육성재와 말해볼게.” 전화기 맞은편, 이 말을 듣고 택이는 무의식적으로 거절했다.이승하가 육성재를 찾아가면 그가 어떤 모습일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보스가 자신을 위해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고 육성재한테 부탁하는 건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육성아의 성격상 그가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절대 그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불가능한 일로 보스가 원수에게 허리를 굽힐 필요가 있겠는가?“네가 S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앞으로 신분에 구속받지 않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남은 인생 보내. 너의 안전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따뜻한 그의 말에 택이는 매우 감동했다. 구속을 받고 싶지는 않지만 5개월 후에 보스가 루드웰에 갈 때 그는 반드시 따라가야 했다. 보스가 위험에 처할 때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할 생각이다. 어려서부터 보스가 그를 도와주고 지켜주고 인정해 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아닙니다. 아직 저한테는 해야 할 일이 많아요...”심호흡하던 그가 핸드폰을 움켜쥐며 말을 이어갔다.“육성아가 다시 찾아오면 제가 어디 있는지 그 여자한테 알려주세요.”그녀와 잠자리까지 했었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목숨만은 가져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것만 아니면 마음대로 때려도 좋다. 몇 번을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이승하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는데 서유가 몰래 엿듣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남의 말을 엿듣는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네.”그한테 딱 걸린 그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기... 그래서 택이 씨는 육성아 씨와 결혼하겠다고 해요?”앞으로
남자는 그제야 그녀를 내려놓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 가드레일에 올려놓았다.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남자는 그녀의 옷을 풀어 헤치며 그녀의 등에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꼭 잡아.”말을 마친 그가 손을 뻗어 불을 끄자 방 안은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고 발밑의 은하수 등불만이 별빛을 띠고 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돌리는데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고는 다른 한 손을 은밀한 곳으로 집어넣었다. 꼭 잡고 있으라는 말이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가드레일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이 남자가 정말... 변태같이...“택이는 동의하지 않았어.”그녀의 의식이 무너져 내릴 무렵 귓가에 차갑고도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순간에 그런 말을 하고 싶을까? 날 더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밀어내려고 하자 남자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으며 손길은 점점 더 빨라졌다. “으음...” 저도 모르게 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그녀는 재빨리 한마디 보탰다.“왜 동의하지 않는데요?”앞뒤의 목소리가 많이 차이가 났다. 그걸 모를 리가 없던 그는 피식 웃었다.“알고 싶어?”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궁금하지 않아요.”남자는 그녀의 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덥석 안아 올렸다.“허리에 다리 올려.”지탱할 곳이 없었던 그녀는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쌌다. 남자는 그 자세로 그녀를 다시 한번 벽에 밀쳤다. “이 자세, 마음에 들어?”섹스 도중에 그의 말보다 더 야하고 부끄러운 건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말 좀 안 하면 안 돼요?”피식 웃던 그가 짧게 대답하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방 안에서 절정에 달한
남자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던 그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니.”전혀 납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아니라고요?”그녀는 손가락을 접으며 예전에 이승하가 했던 잘못에 대해 읊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연지유의 손도 잡았잖아요.”“그녀를 안고 병원에도 갔었고요.”“그리고...”그가 급히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잤냐고 물었잖아. 여자랑 잔 적도 없고 그런 생각 한 적도 없어. 그리고 예전의 그 일은 그저 쇼였을 뿐이야.”“그러니까 택이 씨도 그저 연기라는 거예요? 당신보다 조금 더 몰입한 것뿐이고요. 그래요?”“그 뜻이 아니잖아. 택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리고 나랑 택이를 비교하면 안 되지.”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침대 가장자리로 굴러가 자리를 잡았다.“잘 거예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뒤에 있던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도 뜨거웠던 두 사람 사이가 순식간에 이리 식을 줄이야.이게 다 택이 그놈 때문이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가 이불 채로 그녀를 덥석 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보통은 남자가 끝까지 쫓아다니며 여자에게 다가가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근데 그는 이불로 그녀를 감싼 채 머리만 내밀고 있는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로 앉혔다. 침대맡에 기댄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를 붙잡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유치했던 지난 내 행동에 대해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당신을 떠보는 일은 없을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거니까.”“예전의 일 때문에 화내지 마. 나 이미 개과천선한 거 안 보여? 다른 여자로 당신 화내게 하는 일 다시는 없어.”이불에 의해 얼굴 반쪽이 가려진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약속해요. 다시는 다른 여자를 이용해 날 화내게 하지 않겠다고요.”“약속할게.”“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