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석은 백미러를 통해 차갑고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승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한참 망설인 그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형, 언제 연지유랑 결혼할 거야?”이연석은 이승하와 연지유가 결혼하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 더 이상 걱정되고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이승하는 웃고 있는 듯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니었다.“너도 내가 그 여자랑 결혼하길 바라는 거야?”이연석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바라지 않아. 하지만...”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이연석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이승하가 갑자기 담담하게 말했다.“결혼할 거야.”그의 목소리는 몹시 냉담했고 마치 로봇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연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둘째 형은 한 번도 기뻐했던 적이 없었다...김시후는 서유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에게 연고를 건네줬다.“부기를 빠지게 하는 거예요.”서유는 감사 인사를 하고는 거절했다.“집에 가서 얼음찜질하면 돼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 김시후는 그녀의 작고 가녀린 뒷모습을 응시하며 눈에는 다시 쓸쓸함이 드리웠다.김시후는 서유가 자신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심지어 약간의 적개심까지 품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기자, 김태진이 그에게 주의를 줬다.“김 대표님, 서유 씨는 지금 밀당을 하는 거예요.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김시후는 기억을 잃은 뒤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밀당이 뭔지 잘 몰랐고 김태진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반박했다.“그냥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데 무슨 밀당이야.”“서유 씨가 일부러 미워하는 척하는 것은 대표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예요. 대표님이 안절부절못할 때면 다시 멀어지는 척했다가 일단 대표님이 서유 씨에게 마음을 다 내어주면 그렇게 그녀의 손에 잡히게 되는 거죠. 게다가...”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게다가 아까 서유 씨가 잔꾀를 부린 것을 발견하지
꿈에서 깨어난 순간, 서유는 너무 황당했다. 어떻게 이런 꿈을 꾸었을까?그녀는 손을 뻗어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과 따뜻한 붉은 입술을 만졌다.분명 어제 실수로 그의 얼굴에 뽀뽀해서 이런 창피한 꿈을 꿨을 것이다.지난 5년 동안 이미 그와의 스킨십에 익숙해졌으니 아직 몸이 적응이 안 됐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을 때, 갑자기 김시후의 전화가 걸려 왔다.“김 대표님,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김시후는 그녀의 공적인 말투를 듣고 좀 불편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대답했다.“서유 씨, 오늘 김 비서가 없으니 저와 함께 프로젝트 입찰에 가주셔야겠어요.”‘김시후의 그림자 같은 존재인 김 비서가 없다고?’서유는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입찰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이 생각에 살짝 기뻐진 그녀는 한마디 보탰다.“그럼 기다리세요!”‘이렇게 기뻐한다고?’김시후는 그녀의 감정 변화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급하지 않아요. 입찰은 열 시에 시작하니 아직 일러요.”서유가 시간을 보니 이제 아침 7시였다. ‘설마 그 꿈 때문에 이렇게 빨리 일어난 것일까?’그 꿈을 생각하자 서유는 얼굴이 다시 붉어졌고, 얼른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어젯밤에 기절하다시피 잠이든 후로 줄곧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정가혜가 자신을 찾았을까 봐 급히 카톡을 확인했다.정가혜는 그녀에게 풍경 사진 몇 장과 짧은 동영상을 보냈다.서유는 일일이 확인하고는 답장했다.답장을 마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업무 채팅방에 밀려 아래로 내려간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공백으로 된 그의 프로필 사진은 마치 베일에 싸인 김씨의 신분처럼 추측하기 어려웠다.그녀는 그와의 채팅 기록을 열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답장한 그 메시지에 머물러 있었다.그날 이후로 김씨는 그녀에게 그 어떤 메시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좀 이상했다. 분명 그날에는 미친 듯이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오더니, 그
그녀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멍하니 보고 있자 김시후가 그녀를 가볍게 밀었다.“서유 씨, 저 따라오세요.”서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시후의 뒤를 따라 현대식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로 들어섰다.JS 그룹의 보안 시스템은 아주 엄격했다. 외부인은 반드시 신원을 확인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았다.그들이 하나씩 신원을 확인하고 있을 때, 연지유가 임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그녀는 김시후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그의 뒤를 따라오는 서유를 발견했다.“김 대표님, 제가 서유 씨와 몇 마디 해도 괜찮을까요?”“연 대표님 회사 사람인데 당연히 괜찮죠.”김시후는 연지유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기에는 예의 바르나, 사실 비꼬는 듯한 말투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는 서유에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화진 그룹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김시후가 들어가자, 연지유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했다.“서유 씨, 보아하니 김 대표를 잘 모시고 있나 봐?”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더니, 또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서유를 보았다.“화진 그룹의 입찰은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김 대표가 서유 씨를 데려온 걸 보면 분명 서유 씨를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좋게 보고 있다는 말을 그녀는 일부러 끝소리를 잡아당겨 말했다. 마치 업무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유혹하는 능력을 인정하고 좋게 보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녀의 말에서 비아냥거림을 알아챘지만, 그녀와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지유는 서유가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표정이 차가워졌지만 곧 온화하고 대범한 미소를 지었다.“아주 잘하고 있으니 나중에 월급 인상해 줄게.”“월급 인상보다는 사직 신청서만 승인해 주시면 돼요.”서유의 단호한 거절에 연지유는 좀 난처해졌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턱을 치켜올리고는 서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서유 씨, 김
원래는 소 이사가 입찰 발표를 할 예정이었지만 이승하가 온 이상 김시후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이승하는 항상 엄격한 사람이었다. 설명 과정에서 한 마디라도 잘못 말하면 입찰권을 잃을 수 있었다.김시후는 절대 이런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고 임시로 소 이사의 직책을 맡았다.그는 한 시간 안에 모든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서유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늦지 않겠죠?”김시후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우리 순서는 열 번째이니까 늦지 않을 거예요.”서유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묻지 않고 허리를 굽혀 일어나 회의장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녀는 JS 그룹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전부 첨단 기술 제품이었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이 빌딩을 위아래로 여러 군데 찾아다녔지만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탕비실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곳은 곳곳마다 카드를 긁어야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카드가 없었던 그녀는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 JS 그룹의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막 돌아서려는데 이연석이 문밖에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가 입구에서 얼굴을 스캔하자 문이 열렸다.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틈을 비집고 나갈 뻔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이연석은 그녀가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상대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연석, 연석 씨, 잠시만요...”서유는 용기를 내어 그를 불러세웠다.그녀가 감히 자신을 막을 줄 몰랐던 이연석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서유 씨, 뭐죠?”그녀가 이곳에 있는 건 놀랍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막을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목적인지도 알지 못했다.“혹시 어디 커피가 있는지 아세요?”서유는 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자 급히 말을 바꿨다. 커피가
그녀의 눈은 티 한 점 없이 맑았다. 마치 호수 안의 물처럼 차마 해를 끼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이연석은 안색이 약간 굳어져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문 닫고 가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서유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커피를 들고 회의장으로 걸어갔다.입찰은 이미 시작되었고, 대형 스크린만 켜진 상태로 회의장 불은 꺼져 있었다.회의장은 작은 스튜디오처럼 후문 쪽에서 앞으로 가려면 백여 개의 계단을 거쳐야 했다.지금 불이 꺼진 상태로 캄캄해서 더듬거리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의자를 잡으며 천천히 내려갔다.오랫동안 대표 비서를 해온 그녀에게 이정도 작은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그녀는 곧 김시후의 옆에 도착했고 허리를 굽혀 커피를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대표님, 여기 커피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김시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건넨 커피를 받고 웃으며 말했다.“수고했어요.”서유는 고개를 젓고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앞에 앉아 있던 이승하가 갑자기 고개를 젖혔다.서유가 그의 좌석을 잡으면서 부주의로 그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건드렸던 것이다.그녀는 화들짝 놀라 손을 움츠렸지만, 남자는 오히려 고개를 돌려 차갑게 힐끗 쳐다보았다.어두운 빛 아래에서 깊고 진한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치 맹수와 눈이 마주친 듯 두렵기 그지없었다.그런 이승하를 바라보며 그녀는 송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죄, 죄송합니다.”이승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시선을 스크린에 옮겼다.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나른해진 몸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녀의 가슴이 여전히 쿵쾅쿵쾅 뛰고 있을 때 김시후가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유유, 겁먹지 마.”서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김시후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요?”말을 마친 김시후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방금 서유가 이승하와 눈이 마주치고 놀라서 온몸을 떠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
김시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자 미간까지 저절로 올라갔다.그는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마시더니 사회자가 화진 그룹을 부를 때에야 아쉬워하며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김시후가 자신에게 커피를 건네고 바로 무대에 오르려 하자 서유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자료 다 보셨어요?”그녀는 조금 의아했다. 김시후는 자료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이대로 무대에 올라간단 말인가?김시후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자신만만해서 말했다.“한 번 보고 여기에 기억해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그렇다. 한 번 본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그가 어떻게 기억을 잃을 수 있는가?그의 한마디에 서유는 김시후에 대한 얼마 남지 않은 호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김시후는 그저 연기하는 것뿐이다.방금 하마터면 그를 송사월로 여길 뻔했다.서유의 굳어진 얼굴에 김시후는 약간 걱정되어 물었다.“왜 그래요?”서유는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무대 올라가세요.”입찰이 끝나면 앞으로 더 이상 김시후와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김시후는 그런 서유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사회자가 두 번째로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랐다.그가 떠나자 서유는 의자에 푹 쓰러져 무표정한 얼굴로 무대 앞에서 반짝이는 그를 바라보았다.역시나 수재는 남달랐다. 한 번 보고 모든 사로를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소 이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보충했다.‘그래, 이런 남자니까 날 버린 거야. 학력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잖아.’그는 일류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녀는 그저 평범한 대학이었으니 타고난 지력적으로도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오늘 받은 충격은 이승하의 탄탄한 배경뿐만 아니라, 자신과 송사월의 차이도 똑똑히 알게 되었다.서유는 만약 살 수 있다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안타깝게도 세상에 만약이란 없었다. 그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그녀가 죽은 후에 한 줌의 재로 될 것이다.그녀는
서유는 휴게실을 나가면 이승하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김시후는 어이 없어하며 그녀를 보았다.“가서 먹을 것 좀 갖다 줄게요.”말을 마친 김시후는 서유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김시후는 높은 신분이었으니 이씨 가문에서는 그를 수준급으로 대접했다.그가 향한 다이닝룸은 바로 이승하가 있는 곳이었다.각양각색의 음식을 보면서 김시후는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몰랐다.아예 휴대폰을 꺼내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떤 음식 좋아해요?”서유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김시후가 고집했다.“안 돼요. 조금이라도 먹어야 오후에 저를 돌봐주죠.”이에 서유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면 돼요.”김시후는 부드럽게 물었다.“그럼 생선이랑, 야채, 요구르트 조금씩 갖다 줄게요. 주식은 뭐로 가져갈까요?”“필요 없어요. 이미 충분해요.”“그래요, 기다리세요.”김시후는 그녀가 고분고분 말을 듣자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음식을 가지러 가려는데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김 대표님 아주 바쁘네요. 입찰에 참여하랴, 여자친구도 챙기랴.”김시후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승하가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자신과 비슷한 큰 키를 가졌지만 늘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는 이승하였다.분명 막상막하인데 자신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 김시후는 마음이 불편했다.김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이 대표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제가 어떻게 여자친구를 데리고 입찰에 나오겠어요?”이승하는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더니 물었다.“서유 씨가 김 대표님 여자친구 아닌가요?”김시후는 그의 거만한 말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내성 있게 말했다.“저희는 아무 사이 아닙니다. 다만...”“다만 뭐요?”이승하가 다급하게 묻자 김시후는 조금 의아했다.“이 대표님 저희 사이 일에 관심이 많은 신 것 같네요.”이승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임태진이 놀던 여자를 김
이승하의 눈에서 갑자기 독기가 차오르더니,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은 마치 사람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처럼 온몸을 오싹하게 했다.그는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또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지만 연지유가 밖에서 걸어들어왔다.“승하야, 역시 여기 있었네!”김시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더니 또 이승하를 보고 말했다.“이 대표님, 저는 물러갈 테니 여자친구와 식사 맛있게 하세요.”그의 말은 조롱하는 뜻이 다분했다. 방금 이승하가 그에게 여자친구를 데리고 입찰에 참여했다고 비아냥거렸으니 갚아줘야 했다.비록 이 프로젝트의 갑은 이씨 가문이지만, 김시후는 개발권을 따낼 능력이 충분했으니 당연히 이승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김시후는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음식을 담으러 갔다.연지유는 막 이승하에게 다가와 식사를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차갑디차가운 그의 얼굴을 보고는 다이닝룸을 나갔다.그녀도 상황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승하 대체 왜 저러지? 나 귀국하고 나서 왜 점점 날 싫어하는 것 같지?’김시후가 점심을 들고 돌아왔을 때 서유는 1인용 소파에 앉아 자고 있었다.그녀는 손에 쿠션을 끌어안고 손바닥만 한 얼굴은 베개 위에 기대었다. 긴 속눈썹으로 깨끗하고 맑은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김시후는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앉아 자는 것이 불편할까 봐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그녀를 안은 순간, 김시후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그녀를 이렇게 안았던 여러 개의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유가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졌다.다만 서유를 기억하지 못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깊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마치 무수한 벌레들이 그의 머릿속을 미친 듯이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그는 산산조각이 난 퍼즐들을 맞추려 했지만, 벌레들에게 조금씩 먹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는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상기 되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