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아직도 김시후가 자신에게 정의를 되찾아 주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 있었다. 그러나 온희수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모함하며 뒤집어씌우려고 하자 더 이상 따지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가 치밀었다. 서유가 막 온희수에게 자신이 뭐라고 욕했는지 물으려 할 때 갑자기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온희수 씨는 몇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옳고 그름을 뒤집는 능력만 배웠나 보군요.”등 뒤에 있는 남자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불빛 아래에 서있는 모습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서유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가 자신을 위해 나서줬단 사실에 감격했지만,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승하의 시선이 슬그머니 서유와 김시우가 잡은 손을 흘기며 어둡고 흐릿한 기색을 내비쳤다.그는 계단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 온희수의 앞에 다가와 멈춰 섰다.“조금 전 온희수 씨가 사람을 모욕할 때 제가 마침 그곳을 지나갔거든요.” 이승하가 인정사정없이 온희수를 까발리자, 그녀의 얼굴은 삽시에 사색이 되어 계속 변명하려 애썼다. 이승하는 차디찬 요염한 눈으로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봤다.온희수는 이렇게 무서운 눈길은 생전 처음 마주했다. 그의 눈은 정말 예뻤지만, 그 속에 비친 기색은 사람을 얼려 죽일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겁을 먹고 즉시 입을 다물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때 온재빈은 그제야 자기 여동생에게 일이 닥친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인파를 헤치고 뛰어왔다.온희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이승하가 싸늘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온씨 가문 가정 교육은 실로 봐줄 만하군요.”이승하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한 무리의 경호원을 데리고 온씨 저택을 떠났다.계속 옆에서 쇼를 구경하고 있던 이연석은 사색에 잠겨 둘째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둘째 형의 차갑고 덤덤한 성격상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서서 온씨 가문 아가
하지만 온희수는 당연히 서유의 생각을 알 길이 없었고 그저 그녀를 자기 얼굴을 깎아내린 장본인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연회가 끝나자 온희수는 온기태와 온재빈에게 불만을 쏟아냈다.“아빠, 오빠, 날 위해 정의 구현을 해줘야 해요!”온기태는 온희수의 칭얼대며 우는 소리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자기의 화도 다스리지 못하고 이승하에게 밉보이고는 뭘 잘했다고 울어!”온희수는 순간 울음을 뚝 그치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온기태를 바라보았다.“아빠, 지금 절 때린 거예요?”“넌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이승하에게 밉보이고 김시후가 데리고 온 여자에게 감히 함부로 손찌검해? 한 사람은 서울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부산에서 비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넌 그런 두 사람에게 다 밉보인 거고!”온기태는 화가나 얼굴이 푸르뎅뎅해서 온몸을 떨었다. 만약 온재빈이 말리지 않았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또 한 번 온희수에게 지독한 교훈을 줬을 것이다.온희수는 항상 자신을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며 지켜주던 아버지가 외부인 때문에 저에게 손찌검했다는 사실에 화가나 얼굴을 감싸쥐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온재빈은 자기 여동생이 토라져서 나가자, 애를 태우며 뒤를 쫓아갔다.온씨 가문의 맞선 연회가 난장판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서유는 김시후의 손에 이끌려 저택을 나갔다.김태진이 차를 가지러 가고 김시후는 서유의 손을 잡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서유는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보며 자연스럽게 빼냈다.부드러운 작은 손이 손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김시후의 눈에는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서유는 방금 그가 자신을 도와준 일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김 대표님, 아까는 고마웠어요.”그녀의 낯설고 예의 바른 목소리에 김시후의 실망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서유의 부어오른 얼굴을 보며 자책했다.“제가 미안하죠. 저만 아니었다면 서유 씨가 다칠 일은 없었을 거잖아요.”서유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괜찮아요.”
이연석은 백미러를 통해 차갑고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승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한참 망설인 그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형, 언제 연지유랑 결혼할 거야?”이연석은 이승하와 연지유가 결혼하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 더 이상 걱정되고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이승하는 웃고 있는 듯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니었다.“너도 내가 그 여자랑 결혼하길 바라는 거야?”이연석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바라지 않아. 하지만...”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이연석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이승하가 갑자기 담담하게 말했다.“결혼할 거야.”그의 목소리는 몹시 냉담했고 마치 로봇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연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둘째 형은 한 번도 기뻐했던 적이 없었다...김시후는 서유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에게 연고를 건네줬다.“부기를 빠지게 하는 거예요.”서유는 감사 인사를 하고는 거절했다.“집에 가서 얼음찜질하면 돼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 김시후는 그녀의 작고 가녀린 뒷모습을 응시하며 눈에는 다시 쓸쓸함이 드리웠다.김시후는 서유가 자신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심지어 약간의 적개심까지 품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기자, 김태진이 그에게 주의를 줬다.“김 대표님, 서유 씨는 지금 밀당을 하는 거예요.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김시후는 기억을 잃은 뒤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밀당이 뭔지 잘 몰랐고 김태진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반박했다.“그냥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데 무슨 밀당이야.”“서유 씨가 일부러 미워하는 척하는 것은 대표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예요. 대표님이 안절부절못할 때면 다시 멀어지는 척했다가 일단 대표님이 서유 씨에게 마음을 다 내어주면 그렇게 그녀의 손에 잡히게 되는 거죠. 게다가...”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게다가 아까 서유 씨가 잔꾀를 부린 것을 발견하지
꿈에서 깨어난 순간, 서유는 너무 황당했다. 어떻게 이런 꿈을 꾸었을까?그녀는 손을 뻗어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과 따뜻한 붉은 입술을 만졌다.분명 어제 실수로 그의 얼굴에 뽀뽀해서 이런 창피한 꿈을 꿨을 것이다.지난 5년 동안 이미 그와의 스킨십에 익숙해졌으니 아직 몸이 적응이 안 됐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을 때, 갑자기 김시후의 전화가 걸려 왔다.“김 대표님,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김시후는 그녀의 공적인 말투를 듣고 좀 불편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대답했다.“서유 씨, 오늘 김 비서가 없으니 저와 함께 프로젝트 입찰에 가주셔야겠어요.”‘김시후의 그림자 같은 존재인 김 비서가 없다고?’서유는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입찰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이 생각에 살짝 기뻐진 그녀는 한마디 보탰다.“그럼 기다리세요!”‘이렇게 기뻐한다고?’김시후는 그녀의 감정 변화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급하지 않아요. 입찰은 열 시에 시작하니 아직 일러요.”서유가 시간을 보니 이제 아침 7시였다. ‘설마 그 꿈 때문에 이렇게 빨리 일어난 것일까?’그 꿈을 생각하자 서유는 얼굴이 다시 붉어졌고, 얼른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어젯밤에 기절하다시피 잠이든 후로 줄곧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정가혜가 자신을 찾았을까 봐 급히 카톡을 확인했다.정가혜는 그녀에게 풍경 사진 몇 장과 짧은 동영상을 보냈다.서유는 일일이 확인하고는 답장했다.답장을 마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업무 채팅방에 밀려 아래로 내려간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공백으로 된 그의 프로필 사진은 마치 베일에 싸인 김씨의 신분처럼 추측하기 어려웠다.그녀는 그와의 채팅 기록을 열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답장한 그 메시지에 머물러 있었다.그날 이후로 김씨는 그녀에게 그 어떤 메시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좀 이상했다. 분명 그날에는 미친 듯이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오더니, 그
그녀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멍하니 보고 있자 김시후가 그녀를 가볍게 밀었다.“서유 씨, 저 따라오세요.”서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시후의 뒤를 따라 현대식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로 들어섰다.JS 그룹의 보안 시스템은 아주 엄격했다. 외부인은 반드시 신원을 확인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았다.그들이 하나씩 신원을 확인하고 있을 때, 연지유가 임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그녀는 김시후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그의 뒤를 따라오는 서유를 발견했다.“김 대표님, 제가 서유 씨와 몇 마디 해도 괜찮을까요?”“연 대표님 회사 사람인데 당연히 괜찮죠.”김시후는 연지유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기에는 예의 바르나, 사실 비꼬는 듯한 말투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는 서유에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화진 그룹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김시후가 들어가자, 연지유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했다.“서유 씨, 보아하니 김 대표를 잘 모시고 있나 봐?”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더니, 또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서유를 보았다.“화진 그룹의 입찰은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김 대표가 서유 씨를 데려온 걸 보면 분명 서유 씨를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좋게 보고 있다는 말을 그녀는 일부러 끝소리를 잡아당겨 말했다. 마치 업무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유혹하는 능력을 인정하고 좋게 보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녀의 말에서 비아냥거림을 알아챘지만, 그녀와 더 이상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지유는 서유가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표정이 차가워졌지만 곧 온화하고 대범한 미소를 지었다.“아주 잘하고 있으니 나중에 월급 인상해 줄게.”“월급 인상보다는 사직 신청서만 승인해 주시면 돼요.”서유의 단호한 거절에 연지유는 좀 난처해졌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턱을 치켜올리고는 서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서유 씨, 김
원래는 소 이사가 입찰 발표를 할 예정이었지만 이승하가 온 이상 김시후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이승하는 항상 엄격한 사람이었다. 설명 과정에서 한 마디라도 잘못 말하면 입찰권을 잃을 수 있었다.김시후는 절대 이런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고 임시로 소 이사의 직책을 맡았다.그는 한 시간 안에 모든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서유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늦지 않겠죠?”김시후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우리 순서는 열 번째이니까 늦지 않을 거예요.”서유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묻지 않고 허리를 굽혀 일어나 회의장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녀는 JS 그룹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전부 첨단 기술 제품이었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이 빌딩을 위아래로 여러 군데 찾아다녔지만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탕비실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곳은 곳곳마다 카드를 긁어야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카드가 없었던 그녀는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 JS 그룹의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막 돌아서려는데 이연석이 문밖에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가 입구에서 얼굴을 스캔하자 문이 열렸다.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틈을 비집고 나갈 뻔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이연석은 그녀가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상대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연석, 연석 씨, 잠시만요...”서유는 용기를 내어 그를 불러세웠다.그녀가 감히 자신을 막을 줄 몰랐던 이연석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서유 씨, 뭐죠?”그녀가 이곳에 있는 건 놀랍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막을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목적인지도 알지 못했다.“혹시 어디 커피가 있는지 아세요?”서유는 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자 급히 말을 바꿨다. 커피가
그녀의 눈은 티 한 점 없이 맑았다. 마치 호수 안의 물처럼 차마 해를 끼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이연석은 안색이 약간 굳어져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문 닫고 가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서유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커피를 들고 회의장으로 걸어갔다.입찰은 이미 시작되었고, 대형 스크린만 켜진 상태로 회의장 불은 꺼져 있었다.회의장은 작은 스튜디오처럼 후문 쪽에서 앞으로 가려면 백여 개의 계단을 거쳐야 했다.지금 불이 꺼진 상태로 캄캄해서 더듬거리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의자를 잡으며 천천히 내려갔다.오랫동안 대표 비서를 해온 그녀에게 이정도 작은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그녀는 곧 김시후의 옆에 도착했고 허리를 굽혀 커피를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대표님, 여기 커피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김시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건넨 커피를 받고 웃으며 말했다.“수고했어요.”서유는 고개를 젓고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앞에 앉아 있던 이승하가 갑자기 고개를 젖혔다.서유가 그의 좌석을 잡으면서 부주의로 그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건드렸던 것이다.그녀는 화들짝 놀라 손을 움츠렸지만, 남자는 오히려 고개를 돌려 차갑게 힐끗 쳐다보았다.어두운 빛 아래에서 깊고 진한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치 맹수와 눈이 마주친 듯 두렵기 그지없었다.그런 이승하를 바라보며 그녀는 송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죄, 죄송합니다.”이승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시선을 스크린에 옮겼다.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나른해진 몸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녀의 가슴이 여전히 쿵쾅쿵쾅 뛰고 있을 때 김시후가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유유, 겁먹지 마.”서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김시후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요?”말을 마친 김시후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방금 서유가 이승하와 눈이 마주치고 놀라서 온몸을 떠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
김시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자 미간까지 저절로 올라갔다.그는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마시더니 사회자가 화진 그룹을 부를 때에야 아쉬워하며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김시후가 자신에게 커피를 건네고 바로 무대에 오르려 하자 서유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자료 다 보셨어요?”그녀는 조금 의아했다. 김시후는 자료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이대로 무대에 올라간단 말인가?김시후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자신만만해서 말했다.“한 번 보고 여기에 기억해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그렇다. 한 번 본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그가 어떻게 기억을 잃을 수 있는가?그의 한마디에 서유는 김시후에 대한 얼마 남지 않은 호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김시후는 그저 연기하는 것뿐이다.방금 하마터면 그를 송사월로 여길 뻔했다.서유의 굳어진 얼굴에 김시후는 약간 걱정되어 물었다.“왜 그래요?”서유는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무대 올라가세요.”입찰이 끝나면 앞으로 더 이상 김시후와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김시후는 그런 서유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사회자가 두 번째로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랐다.그가 떠나자 서유는 의자에 푹 쓰러져 무표정한 얼굴로 무대 앞에서 반짝이는 그를 바라보았다.역시나 수재는 남달랐다. 한 번 보고 모든 사로를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소 이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보충했다.‘그래, 이런 남자니까 날 버린 거야. 학력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잖아.’그는 일류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녀는 그저 평범한 대학이었으니 타고난 지력적으로도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오늘 받은 충격은 이승하의 탄탄한 배경뿐만 아니라, 자신과 송사월의 차이도 똑똑히 알게 되었다.서유는 만약 살 수 있다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안타깝게도 세상에 만약이란 없었다. 그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그녀가 죽은 후에 한 줌의 재로 될 것이다.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