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이승하의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결국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이승하는 서유를 먼저 차에 태운 뒤 자신도 그 옆에 타고는 기다란 손을 뻗어 안전 벨트를 매주었다.서유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명함을 쥐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다시 풀었다.“승하 씨.”“왜?”이승하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지현우 엄마가 연이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나한테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알려주겠대요. 그리고...”이승하는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나와 멀리하는 게 좋대?”서유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초간 그를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내가 엄마가 누군지 알면 승하 씨와 결혼 안 할거래요. 당신과 우리 엄마 사이에 큰 원한이라도 있는 듯한 말투였어요.”이승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사실 그는 결혼 전에 이런 방해꾼들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줄곧 조마조마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 나타날 줄이야.그는 서유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더니 바람에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그래서 너는 어떤데?”서유는 손에 든 명함을 꼭 쥐고 그저 고개를 저었다.이승하는 그녀가 심혜진의 말에 흔들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그는 갑자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여전히 답답함이 가시지 않은 건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이미 끊은 지 오래됐지만 지금 갑자기 담배 생각이 떠올랐다.주머니에 담배가 없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차창을 열어 찬바람으로 머리를 식혔다. 그렇게 몇 분간 찬바람을 맞고 나서 정신을 차린 뒤 고개를 돌려 여태 고민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서유야.”그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전과 다를 것 없었지만 다리 위에 올린 손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나한테 원한을 가진 사람은 많아.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도 못하고. 하지만 어머님 나이로 볼 때 원한이 있다고 해도
서유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은 처음이었다.이승하는 놀라는 것도 잠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대로 자신의 다리 위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을 봐서였을까. 이승하의 불안은 점차 사그라들었다.서유는 조심스럽기만 했던 그의 행동이 점점 거칠게 변한 것을 보고는 서둘러 그를 밀쳤다.“여기서는 안 돼요.”이승하는 그녀의 허리를 쓰다듬었던 손을 멈추고 풀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그럼 키스만.”여기서 더 했다가는 절대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다행히 연이와는 다른 차에 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애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뻔했다.서유는 손으로 남자의 입술을 가리고는 말했다.“서울로 돌아가면 우리 혼인신고부터 해요.”아마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그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그 말에 이승하의 눈에 남아있던 욕망이 천천히 가시고 그 대신 놀란 얼굴로 물었다.“혼인신고?”아직 그의 다리 위에 앉아 있던 서유가 시선을 내려 그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싫어요?”이승하는 몇 초간 벙쪄 있더니 서둘러 답했다.“싫을 리가 없잖아.”그렇다. 싫을 리가 없다.이승하는 한시라도 빨리 서유와 결혼하고 싶었으니까.그가 놀란 건 혼인신고 얘기를 그녀가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다.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후에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서유 쪽에서 먼저 혼인신고 얘기를 꺼냈다.초조했던 이승하의 마음이 이제는 완전히 가셨다.차라리 혼인신고부터 하고 먼저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도 좋았다. 그러면 그때는 그 누가 방해하려 들어도 낙장불입일 테니까.이승하는 한 손으로 서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턱을 잡더니 마지막 경고라도 되는 듯 비장하게 말했다.“혼인신고하고 나서 후회해도 절대 안 놓아줄 거야.”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후회 안 해요.”이승하는 그제야 풀어진 얼굴로 그녀의 턱을 놔주었다.“어머님 일은 내가 알아봐 줄게. 연이 넘길 필요 없어.”서유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승
심이준은 Y 국에 남아 지현우의 회사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함께 귀국은 하지 못하고 대신 두 사람 결혼식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조지는 가족도 일자리도 모두 Y 국에 있었기에 그 역시 서울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이제는 연이와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연이야, 앞으로 이모랑 이모부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연이는 두 손을 쫙 펴 조지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았다.“네, 연이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조지는 연이와 인사를 나눈 뒤 서유와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연이 잘 부탁해요.”“나 연이 이모잖아요. 걱정하지 마요.”조지는 서유라면 마음 놓고 연이를 맡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유와 결혼하는 이 남자의 집안이었다. 가뜩이나 신분 차이로 말이 많을 텐데 아이까지 데리고 이씨 가문으로 들어서게 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조지는 그 생각에 이승하와 눈을 마주쳤다. 마주한 이승하의 시선은 마치 자신의 걱정은 하등 쓸모없는 걱정이라고 말하는 듯이 올곧고 또 단호했다.지현우의 복수까지 해준 남자인데 대체 뭐가 걱정일까.조지는 안심한 듯 웃더니 이승하를 향해 눈인사하고 마지막으로 연이를 다시 한번 꼭 끌어안았다.“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할 거니까 꼭 받아야 해, 알겠지? 그리고 연이 생일 때마다 만나러 올 거야.”“네...”연이는 조지의 목을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뽀뽀해주었다.“할아버지, 연이 없다고 쓸쓸해 하지 말고 잘 지내요.”조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준 후 차에 앉았다. 그리고 차창을 내리고 그들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연이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움직이는 차를 따라 한참을 뛰다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서야 걸음을 멈췄다.아이는 이런 헤어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현우처럼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서유는 연이 옆으로 다가와 아이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조지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이모랑 이모부가 언제든지 Y 국으로
윤주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를 돌아보니 큰 기럭지의 남자가 문어 귀에서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댄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조각 같은 얼굴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윤주원은 자신을 경계하며 심지어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승하 때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자신이 대체 뭘 했다고 이러는 거지?어리둥절해 하는 윤주원과 반대로 서유는 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가지고 내려올게요.”서유가 올라가자 1층 거실에는 정가혜, 주서희, 연이 그리고 윤주원만 남았다.윤주원을 제외한 세 명은 이승하가 한기를 내뿜는 사실에 이미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윤주원은 지금 좌불안석이었다. 뭐라고 말하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했다.그리고 더 무서웠던 건 이승하가 이따금 윤주원 쪽을 쓱 훑어본다는 것이었다.윤주원은 서유가 빨리 내려와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그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서유가 물품을 챙기고 드디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승하의 팔짱을 끼고는 별장을 나섰다.윤준원은 두 사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무서운 남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낀 서유가 대단하기도 하고 또 안쓰럽기도 했다.이승하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사람이 곧 부부가 된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모양이다.차량이 구청 앞에 도착해 시동이 꺼지자 이승하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그는 서유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혼인 신고 절차는 그다지 복잡할 건 없었고 서류를 작성하고 하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접수가 완료되었다.보통은 일주일 뒤에야 혼인 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승하가 어딘가에 통화를 하니 금세 처리해주었다.몇 분 뒤, 그는 서유와 함께 혼인 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에야 만족한 듯
이승하는 행여 서유가 결혼을 철회하겠다며 혼인 관계 증명서를 찢기라도 할까 봐 그녀가 보지 못하도록 등으로 가린 뒤에 금고 비밀번호까지 바꿔버렸다.“...”서유는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이 남자는 개인 자신이고 이씨 가문의 재산이고 전부 아낌없이 주면서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증명서는 꽁꽁 숨겼다.“승하 씨, 나 이혼할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요.”이승하는 그 말이 이중 보안이라도 되는 듯 더 안심했다. 그는 비밀번호를 바꾸고 난 뒤 경호원에게 금고를 차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고는 서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부인, 혼인 신고도 했으니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오늘 밤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니 무척이나 야릇하게 느껴졌다.서유는 그를 향해 못 말린다는 듯 웃기만 했다.‘상처도 아직 안 나은 사람이 무슨.’이승하는 그녀의 침묵을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웃었다.“새집 인테리어 다 끝났대. 그쪽으로 갈까?”이승하가 활짝 웃을 때면 눈매가 예쁘게 휘어져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서유는 그 얼굴에 취해 언제 그에게 들어 올려졌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이승하는 그녀를 품에 안고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서유는 그의 상처가 벌어질까 봐 내리려고 했지만 이승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그녀를 안고 차 안까지 데려다주었다.그들을 태운 차량이 움직이자 바로 뒤에 있던 여러 대의 검은색 고급 차들도 천천히 뒤이어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했다.구청에 볼일 보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그 장면을 구경했다.“방금 저 남자 웃는 거 봤어? 나 방금 기절할 뻔했잖아.”“저 여자 너무 부럽다. 앞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저런 남자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 거잖아.”“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저런 남자 꼬셔보든가.”“저런 남자 딱
그 소리에 이승하는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을 다시 거두고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다시 서유의 입술을 탐했다.서유는 아까 움직임이 멈췄을 때 이승하가 그만둘 줄 알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빠르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결국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의 목을 잘근잘근 깨물고 키스할 때 그의 가슴팍을 힘껏 밀어냈다.“일단 문부터 열어요.”“싫어.”지금은 저 문밖에 대통령이 와 있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이승하는 서유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단숨에 그녀를 소파 위에 눕혔다. 그러고는 잔뜩 풀린 눈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춤에 가져갔다.“벨트 풀어줘.”서유는 소파에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상처 벌어지면 어떡해요. 의사 선생님이 과격한 움직임은 안된다고 했어요.”하지만 이미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는 과격한 움직임이라는 말에 더 흥분해서는 서유 쪽으로 몸을 겹치며 말했다.“적당한 운동은 해도 된다고 했어. 그보다 벨트, 안 풀어줄 거야?”그는 흥분한 것치고는 발음이 무척이나 또렷했다. 서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의 눈을 애써 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풀어줄 거예요.”그녀가 이렇게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다 이유가 있다. 매번 이승하와 밤을 보낼 때면 그는 그녀가 이성을 잃을 때까지 몰아붙였고 그럴 때면 그녀는 항상 자기도 모르게 그의 등에 상처를 내고 만다.가뜩이나 상처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지금 만약 또 무의식중에 등을 긁어버리면... 생각만 해도 아플 게 분명했다.하지만 서유는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대로 그를 거절해 실망한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이라 그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보였으니까.결국 서유는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이렇게 해요. 일단 승하 씨는 가서 문부터 열어요. 굳이 지금 찾아온 걸 보면 급한 일 같아 보이는데 일을 다 처리한 뒤에 우리 하던 거 마저 해요. 네?”소수빈과 경호원들이
강세은은 자신의 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는 고집불통의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그냥 내일 다시 오는 거로 해.”건장한 남정네 한 명이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꼴이 꼭 누가 보면 이승하를 짝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그리고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그럴듯해 강세은은 저도 모르게 멜로 드라마 한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어릴 때부터 줄곧 이승하와 같이 트레이닝을 받던 강도윤이 어느 순간 이승하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생겨버렸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줄곧 마음속 깊은 곳이 이 사랑을 숨겨야만 했다.하지만 이승하가 다른 여자와 혼인 신고하는 모습을 보고 이성을 잃어버린 강도윤이 이승하를 뒤쫓아 그들의 신혼집까지 찾아왔다.강도윤은 굳게 닫힌 신혼집 문 앞에 우뚝 서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아내와 뜨거운 밤을 보내는 이승하가 문밖으로 나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봐주길 기다리고 있다...강세은은 강도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망상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때 강도윤이 몸을 홱 돌리고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우산.”강세은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의 망상과 딱 들어맞는 날씨에 속으로 감탄하고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뒷좌석에 있던 우산을 앞 좌석에 앉은 비서에게 건네주었다.“가져다줘. 저 멍청이가 쫄딱 젖기 전에.”가뜩이나 머리가 안 좋은데 비까지 맞으면 점점 더 머리가 안 좋아질 게 분명했다.강도윤은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우산을 쓰더니 또다시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미친 듯이 울려댔다.한편, 이제 막 서유와 몸을 한번 겹치고 다시 한번 그녀를 탐하려던 남자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인상을 잔뜩 구기고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이승하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숨을 한번 내뱉고는 서유의 턱을 들어 이미 퉁퉁 불어버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잠깐만 기다려. 밖에 있는 놈 처리하고
이승하는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강도윤은 잔뜩 언짢은 얼굴로 그를 따라 터덜터덜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서유는 이대로라면 이승하에게 또 밤새 시달릴 게 뻔해 아까 그가 침실에서 나간 뒤 곧바로 옷을 입고 내려왔다.그녀의 윗옷에 달린 단추는 이승하에 의해 진작에 떨어져 나가버려 쇄골 쪽에 남겨진 키스 마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이제 막 안으로 들어온 강도윤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서유의 목과 쇄골 쪽에 남겨진 키스 마크를 보고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설마 둘이 방금...?강도윤은 그제야 강세은이 그에게 내일 다시 오자고 한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어릴 때부터 트레이닝만 받고 자라 여자와는 스킨십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해봤던 터라 이런 면에서 무딜 수밖에 없었다.강도윤이 벙찐 얼굴로 계속 서유를 바라보고 있자 머리 바로 옆에서 총이 겨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고개를 돌려 기가 막힌 얼굴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고작 그의 여자 좀 봤다고 총까지 겨눈다고?이승하는 손에 든 총을 그의 머리통 가까이에 바짝 가져다 댔다.“보지 말아야 할 건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제대로 가려.”서유는 그 말에 고개를 숙여 고작 쇄골 부분이 조금 드러나 있을 뿐인 자신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가릴 생각을 안 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하는 그를 보고는 체념한 듯 옷을 바짝 여몄다.그때, 외골수 기질이 다분한 강도윤이 이승하의 경고를 듣고는 오히려 서유를 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서유 씨 맞죠?”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잠깐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내 머리에 있는 총이 진짜 격발될지 궁금하거든요.”“...”서유는 이 순간 계단을 내려온 걸 후회했다.강도윤은 이승하를 도발하듯 손으로 그의 총을 밀어내고는 서유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서유는 한눈에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의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나면 마치 뭔가서 홀린 듯 그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