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는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였고 우람한 체격을 가진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재빨리 공항을 빠져나왔다.고급 차에 올라탄 후, 그가 개인 핸드폰을 꺼내 서유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알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잘생긴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고 눈까지 빨개졌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손을 떨면서 워싱턴에서 병원 원장이 처방해 준 진통제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앞에 앉아 있던 경호원은 치료를 받은 그가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수술하시는 게 어떠합니까?”수술을 한다는 건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수술 후, 무사히 깨어나서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을 그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픔을 참으며 빨갛게 된 눈을 들고 경호원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을 흘려들은 거야?”경호원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국내로 돌아오면 아무도 그의 병세에 언급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대표님의 말이 떠올라 그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죄송합니다.”이승하는 차디찬 시선을 거두고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짚고는 약효가 나타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머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쯤 차는 별장 입구에 멈춰 섰고 그는 힘겹게 몸을 가누며 차에서 내린 뒤 빠른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세수를 마치고는 다시 옷방으로 가서 검은색 양복을 골라 갈아입고 머리 스타일을 다듬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더 이상 창백해 보이지 않고 눈 밑이 더 이상 새빨갛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금고를 열었다.그는 그 안에서 스카프와 사진 그리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 물건들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은 다음 그는 직접 들고 별장을 나섰다. 서유를 데리고 단둘이 F국으로 갈 생각으로 그는 경호원을 동행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제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명한 뒤 직접 차를 몰고 정가혜의 별
경호원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히 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서유 씨가 왜 보이지 않는 거야?그들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손히 대답하고는 재빨리 흩어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승하는 소수빈과 택이한테 서유를 찾아오라고 명할 생각이었다. 그는 차로 다시 돌아와 비행기가 착륙한 후 아직 켜놓지 않은 다른 핸드폰를 꺼내 들었다. 그들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그는 소수빈이 어젯밤 한밤중에 보내온 동영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상 속에 서유가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서둘러 동영상을 클릭했고 마침 소준섭이 발을 들어 그녀의 심장을 걷어차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그의 눈 밑에서 차가운 피로 물든 빛이 뿜어져 나왔다.‘소준섭,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죽고 싶어 환장했군.’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진 그는 서유를 찾은 다음은 소준섭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때, 영상 속에서 소준섭이 송사월을 언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시후가 지난 몇 달 동안 부산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있냐는 그의 말에 이승하는 몸이 얼어붙었다. 영상 속,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서유가 그 말을 듣고 당황해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점차 아프기 시작했다.‘서유, 송사월한테 미안해서 인사도 없이 날 떠난 거야?’ 이건 너무 잔인한 짓이었다. 한 번 또 한 번 이렇게 그를 버리고 가면 그가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는가?그는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고 차 문에 쓰러졌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도 이렇게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마치 혼이 나간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진 그는 고개를 들고 멍하니 그녀가 머물렀던 별장을 쳐다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빛이 절망으로 가득 차 버렸고 빛을 잃어갔다. ‘서유, 나한테 당신은 목숨 같은 존재야. 당신이 떠나면 난 목숨을 잃게 되는 거라고. 설마 내가 죽어도 당신은 아무런
바다 옆의 무인도, 숲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낡은 통나무집. 서유는 의자에 묶여있었고 그녀의 입술에는 몇 겹의 테이프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녀는 혼수상태에서 점점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는 순간, 주변에 스물 몇 명의 흉악한 남자들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키도 크고 위풍당당하게 해 보였고 손에 쇠막대기와 칼 같은 범행 도구를 들고 있었다. 햇빛이 통나무집 틈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 번쩍번쩍하는 칼날 위에 떨어지자 은백색의 빛을 발하였다. 그 하얀 빛들이 그녀의 눈을 찔렀고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있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헛수고하지 말아요. 당신은 도망갈 수 없으니까.”무거운 구두를 신고 있던 흉터남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흉터남을 본 순간, 서유는 그들이 김씨 때문에 왔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녀는 이전에 경찰서에 등록된 김씨가 바로 김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속였었다. 같은 성씨였기 때문에 그날 그녀는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흉터남이 이렇게 빨리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호원들을 피해 그녀를 이곳으로 납치해 올 줄은 몰랐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흉터남을 바라보며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들이 그녀를 납치한 것은 그녀의 입을 통해 김씨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김씨를 본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한 이승하는 안전할 것이다. 이들이 자신을 납치한 목적을 알고 눈치챈 그녀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오히려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칼을 들고 몽둥이를 잡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녀는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분명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어떻게 이 사람들과 협상하여 최대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지에 고민하던 그때...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통나무집의 문이 열렸고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밖에서 들어왔다. 눈을 가려고 있어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그녀를 쳐다보며 연중서는 그녀가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서유, 분명 당신이 경찰서에 남긴 이름과 정보는 김씨인데 왜 김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라고 내 사람들을 속인 건가? 당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사랑하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그 남자를 감싸고 있는 건가?”그 말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고 죽을지언정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 와서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들키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되면 연중서는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인정해야 했다. 그 생각을 마친 그녀는 점차 안색이 돌아왔고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의 사람들을 속인 건 그들이 저한테 달려들어 사납게 예의 없이 굴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왜 진실을 말해야 하나요?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누가 알아요? 그리고 이건 제 프라이버시고 말하든 말든 그건 제 자유예요.”그녀의 말에 연중서는 시가를 입에 물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 참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을 잘하는군.”서유 역시 깔보는 시선으로 연중서를 쳐다보았다.“연 이사장님, 제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니까요.”“그래. 당신이 그 사람을 감싸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알고 싶을 뿐이니까.”그녀는 내색조차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저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요.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만약 그 사람을 찾게 된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이참에 저도 복수 좀 하게요.”그녀가 인정하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듯 연중서는 그저 담담하게 시가를 다시 입에 물었다. “내가 이리 좋게 좋게 말할 때 솔직하게 털어놓지 그래.”생각이 점점 뚜렷해진 그녀는 가장 중요한 점을 떠올렸다.“뭘 자꾸 인정하라는 거예요? 진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면 경찰에 몇 번이나 신고를 하지도 않았겠죠.
그녀가 미처 구체적인 이유를 묻기도 전에 손발을 묶고 있던 밧줄이 연중서의 손에 든 칼에 의해 끊어져 버렸다. 자신을 놓아줄 줄 알았는데 그가 갑자기 칼날이 돌리더니 날카로운 칼끝이 그녀의 목덜미에 부딪혔다.이내 머리 위쪽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이 참 가늘군. 단칼에 잘릴 만큼.”차가운 칼이 피부를 스쳐 지나가자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사장님, 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 절 죽인다고 하더라도 전 할 말이 없어요. 왜 절 난처하게 하는 거예요?”겉으로는 설득하는 척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하기만 했다. 누구든지 그녀의 입에서 김씨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다. 그녀는 그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싶었다. 자신이 위협을 받는다 하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여전히 꼿꼿한 그녀를 보며 연중서는 서유가 자신이 그녀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한사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좀 고생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은 절망의 순간에서 생존하는 걸 선택하게 되어있다. 연중서가 손을 흔들자 흉터남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사람들에게 물이 가득 담긴 거대한 물독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녀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의 뒤통수를 움켜쥐고 물독에 그녀를 밀어 넣었다.숨이 멎을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고 숨을 쉴 수 없었던 그녀는 1분 만에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러나 연중서는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시가를 입에 문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폐활량이 좋군. 이렇게 오래 버티는 걸 보면. 대단해.”서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고 숨을 쉴 수가 없어 거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던 손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기 전에 그녀의 머릿속에 평생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참하고 기
서유는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이승하를 올려다보았다. “당신...”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칼을 든 남자가 이승하의 등 뒤로 재빨리 달려들었다.“조심해요.”이승하는 반응 속도가 예상외로 빨랐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쇠막대기를 들어 등 뒤에 있는 사람을 호되게 가격했다. 복부를 제대로 맞은 남자는 손에 든 칼도 잡지 못한 채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졌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 다 같이 덤비면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오히려 그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는 그녀를 보호하는 한편 쇠막대기에 온 힘을 다 쏟아부으며 달려드는 상대를 모조리 제압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물 흐르듯 움직였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살기가 그의 온몸을 에워쌌다. 멀리 서 있던 연중서는 이승하의 타고난 카리스마를 지켜보며 시가를 한 모금 빨았다. 예전 같았으면 연중서는 이승하의 체면을 세워줬을 것이고 절대 이리 쉽게 그에게 미움을 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하는 딸아이를 닮은 여자 때문에 그의 딸을 버렸고 은혜를 원수로 갚듯이 동아 그룹을 인수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루아침에 오너 일가에서 경영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이 배은망덕한 놈을 다시 받들 수 있겠는가?연중서는 다 피운 시가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불씨를 끄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승하를 노려보았다. 김씨를 못 찾았으니 일단 이승하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그한테는 어차피 둘 다 원수니까. 그는 음흉한 눈을 가늘게 뜨고 흉터남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밖에 있는 애들 다 불러들여.”아무리 싸움 실력이 뛰어난 이승하라고 해도 혼자서는 절대 이 많은 선수들을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통나무집 밖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서유는 순식간에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싸움을 하고 있던 남자는 그녀의 불안을 눈치챈 듯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겁먹지 마.”그 말을 듣고 그
이승하가 한눈을 판 찰나, 쇠막대기가 연이어 그의 등을 내리쳤다.너무 놀란 그녀는 황급히 손을 떼고 그를 대신해 막으려 했지만 정신을 차린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아당겼다. 체력이 바닥난 그는 몸을 돌려 그녀를 문에 대고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보호했다. 그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와서 갑자기 그의 허리를 찔렀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눌렀다. 그녀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조금만 기다려. 누군가 당신을 구하러 올 거니까.” 일 처리가 빠른 택이는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서유를 잘 지키고만 있는다면 그녀는 반드시 안전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다. 우리를 구하러 온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구하러 온다는 말에 서유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온몸이 떨렸다. “승하 씨, 빨리 나 좀 놔줘요.”가슴에 박힌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의 등을 만지려 했지만 그는 그녀를 꼭 껴 안고꼼짝도 못 하게 하였다. 그의 짙은 속눈썹 아래 그녀에 대한 깊은 미련이 가득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쇠막대기 하나가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날카로운 막대기의 끝이 그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붉은 피가 이내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였고 그의 이마를 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선명하고 뜨거운 피가 서유의 머리와 얼굴에 한 방울씩 떨어졌고 그녀는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그의 품에 갇힌 손가락을 간신히 뻗어 그녀는 얼굴에 묻은 피를 만져보았다. 따뜻한 피가 그녀의 신경을 자극한 듯 그녀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필사적으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품에 안겨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보지 마. 당신한테 이런 꼴 보여주고 싶지 않아.”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등에 누군가 또 칼을 휘둘렀다. 갑자기 창백해진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안고 있었고 두 손을
“승하 씨, 승하 씨.”가슴을 찢는 듯한 그녀의 고함소리가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였고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그는 죽어가는 사람처럼 붉어진 두 눈을 들고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힘겹게 입술을 벌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해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시야에서 그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힘들게 버티고 있던 그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닫혔다. ‘당신과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번 생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군. 다음 생에 보상해 줄게.’지현우의 어깨에 강제로 업혀있던 서유는 미치광이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악을 쓰며 반항했다. “현우 씨, 나 좀 놔줘요. 그 사람한테 가야 해요. 그 사람 구해야 한다고요.”목도 쉬고 힘도 다 빠진 외침 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승하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될지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 사람을 구하러 가야 했다.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고 영원히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제발 부탁인데 나 좀 놔줘요. 죽더라도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요.” 그녀는 지금까지 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다시 돌아가면 꼭 그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승하 씨,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어요. 제발 나 혼자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이승하와 함께 죽겠다는 그녀의 말에 지현우의 깊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하였다.“당신은 죽으면 안 돼요.”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쌀쌀하게 말했다.“당신 심장은 내 것이에요.”이번 생에서 이 여자의 삶과 죽음은 모두 그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했다.그 말을 들은 서유는 크게 흥분하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내가 죽는 걸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 좀 구해줘요. 그 사람이 없으면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