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가 서유에게 다가가자 꼿꼿한 몸에서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흘렀다.서유는 그가 매우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긴장한 나머지 약간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거리를 벌렸다.남자의 안경 밑 시선은 두 사람의 거리를 재며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서유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서자 남자는 또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그렇게 조금씩 뒤로 물러서다 보니 서유의 허리가 어느새 책상에 닿아 책상에 앉을 뻔했다.서유는 약간 위축된 듯 부드러운 턱선을 들어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당신...”이승하는 몸을 숙이고 그녀를 책상에 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유야, 나 계약하러 왔어.”서유는 다시 몸을 뒤로 젖히고 그를 내려다보았다.“그럼 계약을 체결해야죠. 이렇게 가까이 오면 어떡해요.”이승하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그녀의 몸을 약간 더 눌러 서유의 귓가에 밀착했다.“더 가까운 자세도 우리는 시도해봤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노골적인 말과 매혹적인 호흡이 어우러져 서유는 귀가 따가워졌다.서유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후, 그를 힘껏 밀어내고 책상에서 내려 응접실로 돌아갔다.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김초희의 대표 신분으로 이승하에게 초대하는 자세를 취했다.“이 대표님, 앉으시죠.”그녀는 옅은 흰색 오피스룩에 깔끔한 단발머리를 했고, 밝고 흰 얼굴에는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이승하의 애틋한 눈빛이 그녀의 몸에 떨어져 당장 품에 안고 싶었지만 너무 성급해서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는 서유를 품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이승하가 자리에 앉자마자 서유가 바로 낯선 사람 대하듯 말했다.“심 선생님, 여기 커피 부탁드려요.”심이준이 들어오면 그녀도 그렇게 난처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소수빈에 의해 벽에 눌리고 입이 틀어막힌 심이준은 그의 잘생긴 얼굴만 쳐다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소수빈도 마찬가지로 불쾌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이 물건이 이승하를 방해할까 봐 두렵지 않다면, 그는 절대
이승하는 미안하다고 말한 뒤 서유를 놓아 주고 옷깃을 여미고는 단정하게 앉아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소 비서.”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수빈은 곧바로 심이준을 놓아주고 서류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심이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이 서러움은 반드시 갚겠다고!그는 이를 악물고 맹세하고 따라 들어갔는데, 마침 서유가 헝클어진 옷을 정리하는 것을 보았다.심이준은 무의식적으로 벽의 벽시계를 쳐다보고는 서유의 귓가에 대고 주의를 주었다.“너무 빠른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요? 그래도 잠자리에 관련된 일인데.”서유는 하마터면 사레들 뻔했다.“그게 지금 무슨 소리예요!”심이준은 계속 서유에게 주의를 주려했지만 왠지 차갑고 뜨거운 시선이 자신의 왼손을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심이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마침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자신의 왼손을 노려보고 있었다.이승하가 자신의 손을 보는 눈빛이 어쩐지 낯익어 보였지만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이때 소수빈은 이미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 세 부를 꺼내 유리 탁자 위에 하나씩 놓았다.심이준은 기회를 빌려 왼손을 등 뒤에 숨긴 채 이승하를 향해 대칭적인 웃음을 지었다.“대표님, 계약부터 체결하시죠.”그리고 또 서유를 방패막이로 삼았다.“대표님, 어서 사인하세요.”서유는 심이준을 흘겨보더니 이승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계약서를 들고 위에 적힌 금액을 보고 어리둥절했다.그녀는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보며 말했다.“2천억 원이요?”겨우 설계도일 뿐인데 2천억 원은 너무 과장된 것 같았다.그 액수를 들은 심이준도 덩달아 소리쳤다.“얼마라고요? 2천억?”그는 달려들어 서유가 들고 있던 계약서를 빼앗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0’을 하나하나 세었다.금액을 확인한 심이준은 서유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빨리. 어서 서명해요!”서유는 심이준을 상대하지 않고 이승하를 노려보았다.그와 신분이 대등하지 않다고 말해서
서유는 그들이 작품을 빌려 대회에 참석해 이득을 봤다는 사실에 조금은 걱정이 덜 되었다. 하지만...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이승하를 쳐다보았다.“아직 프로젝트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 빨리 디자인 원고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요.”그는 손을 들어 안경을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얼마든 상관없어. 난 기다릴 수 있으니까.”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서유는 이내 시선을 피하고 펜을 들었다. 그녀가 사인하려는 찰나, 이승하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서유의 이름으로 사인해.”펜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잠시 멈추었고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세계적인 디자이너는 김초희예요. 난 아직 신인이고요.”“내 이름이 적힌 작품을 가지고 대회에 나간다면 상을 받을 수 없을 거예요.”게다가 서유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이승하는 겹쳐있던 늘씬한 다리를 내리고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아 서유의 단발머리를 어루만졌다.“착하지. 내 말 들어.”그는 여자 친구를 달래듯 서유를 달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심이준은 서유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했던 서유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잠시 후, 사인을 마친 그녀는 손도장을 찍고 회사 날인까지 마친 뒤 계약서를 소수빈에게 건네주었다. 눈치가 빠른 소수빈은 계약이 성사된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녀와 이승하에게 서로 악수를 나누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때, 심이준이 먼저 왼손을 내밀었다.“이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소파 위에 앉아 있던 남자는 짙은 속눈썹을 내리드리우며 싸늘한 눈빛으로 심이준의 왼손을 쳐다보았다.그의 눈빛에 심이준은 몸을 살짝 떨었고 내민 손을 거두지 않는다면 왼손도 오른손 신세가 되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약서를 다 쓴 후,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이승하는 조용히 서유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대표
심이준은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서유를 향해 달려갔다.“자그마치 2000억이에요. 이렇게 큰 계약을 성사시켰으니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 말에 서유는 고개를 돌려 심이준을 쳐다보았다.“어떻게 축하하고 싶은데요?”그는 팔짱을 낀 채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정고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가씨가 나이트 레일의 아가씨보다 더 예쁘다고 하던데요. 우리 그쪽 클럽으로 가서 신나게 놀아요.”그런 그의 모습에 서유는 피식 웃으며 장난쳤다.“심이준 씨, 선생님이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심이준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반박했다. “틀렸어요. 난 선생님이 아니에요. 난 뭐 사람도 아니죠. 난 그저 고급 동물일 뿐이에요.”그 말에 서유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정가혜에게 전화를 걸어 고급 룸을 예약했다. 마침 NASA에서 자금이 입금된 후, 심이준이 회사 재무팀을 통해 그녀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였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돈 걱정 없이 신나게 놀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른 그녀는 심이준을 향해 물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 언니 본 적 있을 거잖아요. 혹시 문제 되는 거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심이준은 손을 저었다. “초희 씨는 Y국에 오래 머물고 있었고 거의 귀국한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회사 사람들은 전부 내가 나중에 모집한 사람들이고요.”서유는 그제야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모레 저녁으로 약속 잡아요.”어젯밤에 밤새 설계도를 그리느라 잠을 자지 못해서 많이 피곤했다. 게다가 정가혜의 클럽을 이연석이 3일 동안 통째로 빌렸기 때문에 그 기한이 끝나야만 룸을 예약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심이준이 별다른 의견이 없자 책상 위의 원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두 번째 프로젝트 설계도에요. 스케치만 한 상태이고 나머지는 이준 씨한테 맡길게요. 언니가 맡은 다른 프로젝트들도 최대한 빨리 답사 부탁드려요. 빨리 마무리했으면 좋겠
그녀는 이승하가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고 의심하며 이를 악문 채 그를 노려보았다.“당신은 손 없어요?”귀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나 좀 도와줘.”서유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작은 손을 뻗어 그의 안경을 벗겨주려 했다. 안경을 벗기자마자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입맞춤을 두 번 하더니 이내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하기 시작했다. 키스를 하면서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켰고 간드러진 호흡이 전해졌다. 그녀는 두 손을 그의 가슴에 대고 힘껏 그를 밀어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숨이 막힐 때까지 키스를 하고나서야 그가 아쉬워하며 품에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수없이 그녀의 입술을 맛보았지만 늘 탐하고 싶었고 충족되지가 않았다. 이 여자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서유를 쳐다보며 그는 이번 생에는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한 집착의 눈빛을 드러냈다. “핸드폰 이리 줘봐.”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그녀는 핸드폰을 달라는 말에 신경도 안 쓰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그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내가 잘못했어. 그만 화 풀어. 응?”말로 여자를 달래는 것이 서툰 사람인지라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는 분노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내 핸드폰은 왜요?”이승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단발머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이리 줘봐. 곧 알게 될 테니까.”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핸드폰을 건네받은 그는 잠겨있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비밀번호는?”서유는 비밀번호를 그에게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빼앗아 그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고개를 숙이
남자는 대화창을 내려보다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걱정돼?”나른하고 매혹적인 그의 목소리는 일부러 그녀를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서유는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기만 했다. 그윽한 눈동자에 붉은 핏줄기가 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옅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얇은 입술에 그녀의 립스틱이 더해져 본연의 색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창백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그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그 사람만의 특유한 향기가 몰려오자 서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등이 차창에 부딪히자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끝이 그녀의 뺨을 살짝 스쳐 지나가더니 창문에 내려앉았다. 남자는 그녀를 감싸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대답해.”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그녀는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그의 눈빛과 마주쳤다. 반짝이는 별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므리고 있던 그의 얇은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청량하고 힘찬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떨어지자 마치 마력을 지닌 것처럼 복잡했던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후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그녀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서유는 손을 뻗어 워싱턴에 있을 때처럼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었지만 그에게 다가가던 찰나 갑자기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때, 손을 거두려는 그녀를 보고 그가 잽싸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의 볼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서유, 두려워하지 마.”그를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를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와 다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을 줄 자신이 있었다.
의미심장한 그녀의 대답에 서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주서희의 입에서 그녀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말이 튀어나왔다. “서유 씨, 걱정하지 말아요. 대표님은 아주 건강하세요. 두 분이 아이를 갖는 데는 전혀 문제없어요.”아이 때문에 지금 이러는 게 아니잖아. 그녀가 신경 쓰이는 건...서유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승하를 쳐다보다가 안색이 굳어진 그의 모습에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는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핸드폰을 돌려준 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더니 그녀를 놓아주고는 똑바로 앉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정가혜의 별장 쪽으로 향했다. 달아올랐던 차 안의 분위기는 사라져 버렸고 남자의 쓸쓸한 모습만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그를 슬쩍 훔쳐보았고 그 순간 그가 갑자기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을 떼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길로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손바닥을 가로질러 다시 깍지를 꼈다. 꽉 잡은 두 손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 손으로 운전하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승하 씨...”“당신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야. 꼭 그럴 거라고.”이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좀 전에 그녀에게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를 마주할 용기조차 없어 보였다. 서유는 힘줄이 불끈 솟을 정도로 손을 꽉 잡고 있는 그의 손등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럴 거예요.”그 말에 굳어졌던 그의 잘생긴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내 아이 말이야.”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강렬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서유는 그의 여자이고 그녀의 아이는 그의 아이일 수밖에 없다.그녀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고 쏜살같이 뒷걸음치는 창밖의 경치를 쳐다보았다.대답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잠시 후, 차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나한테 남자는 당신
어두컴컴한 가로등 아래 아름다운 몸매의 남자가 가녀린 여인을 껴안고 미친 듯이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턱을 치켜들고 그의 거친 키스를 받아내며 맑은 눈으로 그를 담담하게 쳐다보았다.“승하 씨.”그가 살짝 입술을 뗀 틈을 타 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뭐 하는 거예요?”눈빛이 희미해진 그가 그녀의 말을 듣고 들끓는 욕망을 가라앉혔다.“미안해.”그는 감싸고 있던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몸을 휘청거렸다. 다행히 등 뒤에 차가 세워져 있어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에 기대었다.며칠 동안 지속된 두통에 그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관자놀이를 문지르려 했다.시선이 눈앞의 여인에게 닿는 순간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던 손이 다시 그녀의 단발머리로 향했다.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차는 당신한테 준 거니까 다시 가져가지 않을 거야. 지금 타고 싶지 않으면 나중에 운전하고 싶을 때 운전해.”말을 마친 그는 재빨리 차 열쇠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에 놓아주었다.“먼저 갈게. 당신도 일찍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데리러 오겠다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이끌고 뒤돌아서서 별장 반대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걸어가더니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탄 그는 재빨리 진통제 한 병을 꺼내 진통제 몇 알을 먹었다. 잠시 후, 진정을 되찾은 후에야 비로소 눈을 뜨고 차창을 통해 여전히 차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른 그는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트렁크 열어봐.]위장을 잘한 것인지 서유는 그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그저 자신이 차를 받지 않을까 봐 그가 빨리 자리를 뜬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서서 그를 쳐다보며 어떻게 차를 돌려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