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것이 갑자기 터진 것처럼 그는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서유는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그는 이성을 잃은 채 그녀의 드레스를 마구 찢어버렸다. 튜브톱 웨딩드레스가 찢어지는 순간 서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한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미친 듯이 그녀에게 키스하면서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는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밀착시켰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을 받아내고 있었고 다리가 그의 다리에 짓눌려 도자기 인형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굳게 닫혀 있던 붉은 입술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거침없이 파고드는 남자의 숨결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그를 덥석 물었다. 이승하는 너무 아파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새빨갛게 눈이 달아오른 채, 그가 그녀의 손바닥만 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가 어디까지 더 독하게 굴지 한번 지켜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유는 그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자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이승하는 갑자기 입술을 깨물더니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헛웃음 짓던 그가 실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천천히 놓아주었다. 그가 자신을 놓아주자 서유는 즉시 그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나서 침대 위의 이불을 잡아당겨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두 팔을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경계심이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승하는 또다시 이성을 잃은 듯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해?”엄청난 그의 힘에 그녀의 턱은 거의 탈골될 뻔했다. 그러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침실을 가리키며 쉰 목소리로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이랑 나 이곳에서 5년 동안 함께했어. 당신 몸 중에서 내가 건드리지 않았던 곳이 있었나? 근데 뭐가 경우가 아니라는 거야?”‘그래서 지금 날 여기로 끌고 와 내 허락도 없이 이렇게 날 괴롭히고
“나한테 모자라는 게 과연 그 6천억 원일까? 아니면 송사월의 돈일까? 당신들이 뭔데 돈으로 나한테 모욕을 주는 거야?”“이미 당신을 놓아줬잖아. 근데 왜 그 인간이랑 같이 날 자극하는 건데? 내가 죽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한 거야?”고함을 지르던 이승하는 그녀의 이마를 짚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서유야, 내가 죽어야 당신이 기쁜 거야?”그 말을 들은 서유는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요? 당신이 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썼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워요. 그 돌덩이 때문에 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한테 그 돈을 갚으려고 하는 거예요.”이승하는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나한테 돈 갚는 거 원치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당신뿐이야.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 줘.”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애원했다. 그녀가 예전처럼 얌전하게 ‘좋아요’라고 대답하기를 기대하며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고 담담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승하 씨, 이제 그만 날 잊어요.”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그녀의 싸늘한 눈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답답한 마음이 뭔가에 억눌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가 눈시울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서유야, 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 너한테는 마음이라는 게 없어?”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난 심장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 심장은 진작에 파헤쳐졌고 어딘가에 버려졌는지도 몰라요.”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이승하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깨달았다. 그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고 그녀한테 끊임없이 사과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잘못했어. 날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아.”서유는 그
서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당신이 날 시집보내는 거 난 싫어요.”그녀는 이승하를 밀어내고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 팔을 꼭 껴안았다.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승하는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당신의 결혼식 날, 당신을 맞이하는 신랑은 내가 아니게 되었어. 그래서 말인데 난 적어도 당신을 시집보내는 사람은 되고 싶어. 당신의 결혼식에 내가 빠지고 싶지 않거든.”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난 싫어요.”그의 예쁜 눈망울이 점점 붉어졌다.“서유, 10년 동안 당신을 사랑한 걸 봐서 나한테도 기회를 줘.”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승하 씨, 제발... 날 강요하지 말아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날 선택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야. 난 당신을 울리기만 하는군.”그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갔다.“서유, 미안해. 5년 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당신이 많이 힘들었을 거야.”서유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다. 그녀는 차갑고 자존심이 강한 이승하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사과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속의 방어선은 거듭 그로 인해 무너졌고 그녀를 울부짖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가슴이 아팠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녀의 머리에 턱을 괴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이번 한번 뿐이야. 앞으로 다시는 당신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그의 품에 안겨있는 서유는 마치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떨어졌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을 스스로 삼켜버렸다. 잠시 후, 서유가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그는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당신 드레스를 내가 찢어버렸으니 배상해 줄게.”서유는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아니에요.”씁쓸한 웃음을 짓던 그는
서유는 여전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옷을 들고 들어가자 그녀는 눈꺼풀을 살짝 떨었다. 그녀를 쳐다보던 그는 감히 그녀 앞에 다가가지 못하고 옷만 소파에 올려놓았다. 차갑고 도도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옷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불을 젖히고 옷을 입은 후 침실에 있는 욕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얼굴의 눈물 자국을 깨끗이 씻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나서야 그녀는 방에서 나왔다.그녀는 창가에 서 있는 이승하를 쳐다보았다. 노을이 그를 비추고 있었고 은은한 금빛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인기척을 들은 그가 뒤돌아서서 짙은 눈빛으로 그녀의 치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당신은 역시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군.”그녀는 귀국한 후 줄곧 빨간 치마를 입었었는데 전혀 그녀의 모습 같지 않았다. 어색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에 이승하는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문을 나서려는 찰나 그가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내가 데려다줄게.”“아니에요. 고마워요.”서유는 그를 돌아보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문을 닫고는 그 자리에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맨션 안, 차디찬 문을 바라보던 남자는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는 소파에 쓰러져 텅 빈 방 안을 둘러보았고 그의 마음도 덩달아 한쪽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하느님은 송사월의 손에서 그녀를 빼앗아 그에게 보냈지만 그는 그녀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지금 이런 결과가 있는 건 다 그의 탓이었고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는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소수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화진그룹 인수 건은 어떻게 됐어?”전화기 맞은 편의 소수빈은 한창 선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의 물음에 소수빈은 벌떡 일어나 레스토랑을 나섰다. “대표님, 화
허윤서는 주서희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였고 비교적 뛰어난 외과 의사였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예쁜 사람이었고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근데 사촌 오빠는 밥 먹는 데 정신이 팔려 허윤서를 몇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이렇게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는 또 처음 본다.그러나 허윤서는 그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괜찮아요, 나도 평소에 출근하면 많이 바쁘거든요.”주서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오빠에 의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무슨 말로 풀어야 할지 그녀는 도저히 모르겠다.허윤서는 그녀를 보고는 센스 있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스테이크 하나를 집어 맛있게 먹었다. “아까는 서희 씨 사촌 오빠가 있어서 먹을 엄두도 못 냈었는데. 급히 자리를 떠서 다행이에요. 안 그러면 나 굶어 죽을 뻔했어요.”호탕하게 먹는 허윤서의 모습에 주서희도 덩달아 긴장이 풀렸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소준섭이 어떤 여자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주서희를 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때마침 주서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고 못 본 척 눈을 돌리고 허윤서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화도 내지 않고 묻지도 않는 주서희의 모습에 그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고 일부러 두 사람의 옆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주서희를 쳐다보았다.“주서희, 오랜만이네.”주서희는 그가 평소처럼 자신을 모른 척할 줄 알았다. 근데 뜻밖에도 그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며 그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소 선생님, 서울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소준섭은 무심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내 여자가 보고 싶어서. 하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그 여자 보러 왔어.”그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주서희는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
소준섭은 감출 수 없었던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차를 몰고 교외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돌아가 주서희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미친 듯이 키스했다.며칠 동안 쏟아졌던 그리움이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주서희는 그의 품에 안겨 욕정에 사로잡힌 그를 쳐다보며 그를 떠보듯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랑...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 순간 그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내가 너와 결혼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며 애교를 부렸다.“그럼 당신은요?”흠칫하던 소준섭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난 결혼하고 싶지 않는데.”그 말을 듣고 실망한 주서희는 그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내려놓았다.“나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결혼해야죠.”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말에 소준섭은 심장이 텅 빈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가 화를 내며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경고를 날렸다.“넌 결혼 못 해.”그녀는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나랑 결혼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내가 결혼하는 걸 안 된다고 하는 건데요? 설마 계속 이렇게 당신 곁에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죠?”소준섭은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피식 웃었다.“지금 딱 좋잖아. 각자 원하는 대로 관계 유지하는 거. 왜 굳이 결혼해야 하는 건데?”그녀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난 결혼하고 싶어요.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요. 당신이 줄 수 없다면 우리 이제 그만해요.”안색이 어두워진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던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똑바로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소준섭 씨, 최근에 어떤 의사가 나한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거든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을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당
부산, 가랑비가 내리고 있고 가면을 쓴 사람들이 고급 차를 겹겹이 에워쌌다.차 안의 남자는 대략 50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그는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쁜 여인을 품에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쳐다보며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더욱 절망적인 건 그 남자 아내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친절한 초대로 현장에 와서 이 상황을 보게 되었다. “김태호, 뻔뻔스러운 인간.”그 여자는 으르렁거리며 죽기 살기로 두 사람한테 달려들었다. 택이는 옆에 있던 가면을 쓴 남자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고 그 남자는 이내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갔다. 차 안에 있던 남자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택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때 택이가 문을 확 잡아당기고는 차에서 그를 끌어 내렸다. 그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고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택이가 그의 등을 발로 밟았다.가슴에서 통증이 전해지고 몸이 돌덩이에 눌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가 턱을 치켜들고는 눈을 크게 뜬 채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당신들 도대체 누구야?”택이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당신 와이프가 보낸 사람들.”말을 마친 그가 입고 있던 양복 점퍼를 벗어 차 안에 있던 여자의 몸을 덮어주고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스, 이미 다 가렸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김태호를 에워싸고 있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재빨리 길을 비켰다. ‘날 발로 밟은 사람이 이들의 보스인 줄 알았는데 정작 보스는 따로 있었군.’금동 색 가면을 쓴 남자가 금빛 칼을 들고 다가왔다. 190㎝에 육박하는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엄청난 위압감을 주고 있었고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을 보면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친구로 보였다.‘이리 젊은 걸 보면 기껏해야 길거리의 날라리 놈이겠지.’순식간에 자신감이 생긴 김태호는 그를 향해
그의 눈빛을 보던 김태호는 더는 그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졌다.“너 도대체 누구야?”“1분 더 줄게.”이승하는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고는 인내심이 바닥난 듯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손에 든 칼로 그 계약서를 가리키며 1분 안에 사인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기분에 따라 김태호의 처리할 것 생각이었다. 칼끝이 얇은 종이를 스쳐 지나가자 하얀빛이 났고 그 빛이 눈에 번쩍거리자 김태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승하와 계약서를 번갈아 보면서 한껏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화진그룹은 김씨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온 기업이야. 내가 이 계약을 체결하면 난 화진그룹의 죄인이 될 거다.”인내심을 잃은 지 오래된 이승하는 더 이상 그의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칼을 들어 단번에 그의 어깨를 찔렀다.칼을 찔러 넣은 후 재빨리 빼냈고 그 과정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승하의 독한 기운을 보면 그가 살인을 일삼는 냉혈한 인간 같아 보였다. 김태호는 너무 아픈 나머지 비명을 터뜨렸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이 넓은 야외에서 매우 괴이하게 들렸다. 차에 있던 여자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바로 칼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놀라서 황급히 차 문을 밀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들을 에워싼 가면을 쓴 남자들이 차 문을 막아섰다. 그녀는 외투를 두른 채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공포에 질린 얼굴로 차창 밖에 있는 금동 색 가면을 쓴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충고하는데 빨리 사인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당신 손을 잘라 손도장을 찍기를 기다리지 말고.”말을 마친 택이는 그의 등의 발을 밟고 다시 한번 힘껏 짓눌다. 엄청난 고통에 김태호는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든 그는 이런 고통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펜을 들어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는 서명을 마친 후에야 계약서에 적힌 인수인이 뜻밖에도 김시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