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눈물이 마르고 몸이 나른해질 때까지 울었다.정가혜는 그녀를 부축하여 방에 가서 쉬게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소리 없이 거절했다.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아 두 팔을 두르고 머리를 팔꿈치에 파묻었다.잔뜩 움츠린 몸은 세상에 버림받아 홀로 남은 듯 외로워 보였다.정가혜는 그녀의 모습에 차마 방해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물린 후, 몸을 웅크리고 앉아 곁을 지켰다.3년 전, 두 절친이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가혜도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지금의 그녀는 남편에게 배신당해 세상이 무너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그녀는 복수를 해야만 했다. 강은우, 박하선, 연지유 그리고 이승하에게 복수하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런 신념으로 버텨왔지만 살아서 서유를 만날 줄은 몰랐다.서유를 만났으니 절대 서유가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놔둘 수 없었다.지난번에는 그녀의 부주의로 송사월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서유를 지켜야 했다.그녀는 손을 들어 서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러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따듯함을 전해주려 했다.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오기 전까지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정가혜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시종일관 서유에게 향한 것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그에게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남자는 서유에게 다가와 긴 손가락으로 서유의 머리를 밀었다.“열 시예요. 이제 집에 가야죠.”서유는 지현우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지현우는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자 눈살을 찌푸리고 허리를 약간 숙인 다음 인내심 있게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초희 씨, 나랑 집에 가요.”서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들어 지현우를 보았다.“오늘은 돌아가기 싫어요...”서유는 여기에 남고 싶었다. 정가혜와 함께 조용히 자신을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지현우는 그녀의 말에 표정이 바로 어두워지더니 말했다.“다시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의 눈 부신 햇살이 마루 너머로 천천히 쏟아져 들어왔다.서유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주 따뜻했지만 또 낯설었다.자신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정가혜가 따듯한 물을 들고 들어왔다.“서유야, 깼어?”서유는 정가혜를 보고는 이곳이 그녀의 새집이라고 추측했다.그녀는 나른한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어나지 말고 누워 있어.”정가혜는 물을 옆에 두고 서유를 부축해 침대 머리맡에 기대게 하면서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너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기절한 거래...”서유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겨우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가혜야.”정가혜는 손을 들어 그녀 이마의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바보야, 왜 그런 말을 해. 언니로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잖아. 널 돌보는 건 어릴 때부터 내 의무였어...”오랜만에 듣는 따듯한 말에 서유는 차가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고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정가혜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 손바닥만 한 서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서유야, 그만 울어. 그럼 나도 마음이 아프잖아.”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울음을 그쳤다.정가혜는 그녀가 여전히 전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서유가 살아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 인생에 드디어 빛이 생겼어.’정가혜는 물컵을 들고 서유의 입에 건넸다.“물부터 마셔.”서유는 입을 벌리고 조금씩 마셨다. 메마른 목이 점차 촉촉해졌다.“가혜야, 나 사월이 묘지에 데려다 줄래?”정가혜는 물컵을 내려놓고 서유를 바라보았다.“묘지는 없어. 김씨 가문 사람들 말로는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고 했어.”서유는 송사월의 비보를 듣고 곧장 부산으로 향했지만 시신을 볼 겨를도 없이 김씨 가문 사람들은 장례식을 치렀다.정가혜의 말을 듣고 나서 서유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묘지도 없으니 마치 이 세상에 송사월이
열여덟 살 되던 해, 서유는 송사월의 팔을 껴안고 물었다.“사월아, 대체 나랑 언제 결혼할 거야?”책을 읽던 송사월은 펜으로 그녀의 코를 찌르며 말했다.“내가 너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레 말했다.“그럼 언제 능력이 있는 건데?”송사월은 손에 든 책을 집어 들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열심히 공부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너랑 결혼할 수 있어.”서유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때가 되면 나 잊는 건 아니겠지?”그때의 말이 씨가 될 줄이야. 송사월은 결국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녀를 잊어버렸다.다시 생각났을 때, 그녀는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하지만 송사월 그 바보는 그녀가 죽더라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다.서유는 혼인신고서를 가슴에 안은 채 저도 모르게 한바탕 울었다.송사월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서유와 결혼했지만, 서유는 돌아오기 위해 지현우와 결혼했다...두 사람의 엇갈린 인연에 서유는 죄책감이 한없이 밀려왔다.정가혜는 그녀의 팔을 잡고 빨간 눈으로 곁을 지켰다.석양이 질 무렵, 서유는 그제야 마음을 다잡고 가혜에게 물었다.“이 혼인신고서 내가 가져도 돼?”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지. 이거 원래 네 거야.”이것은 송사월이 서유에게 남겨 준 혼인신고서였다.송사월의 혼인신고서는 이미 찢겨 있었다.정가혜가 급히 묘지에 달려갔을 때 찢어진 혼인신고서를 발견했다.그녀는 송사월이 왜 혼인신고서를 찢고 자살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송사월이 아마 이런 방식으로 서유에게 그들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 같았다.서유는 혼인신고서를 움켜쥐고 죄책감과 비참함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억누른 후 천천히 정가혜를 바라보았다.“가혜야, 네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난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때 다시 사월이 찾으러 갈 거야.”송사월은 자신의 짧은 인생으로 서유에게 무한한 따듯함을 주었으니 서유는 그를
정가혜는 순간 표정이 변하더니 곧 혐오스러움이 가득했다.“그 인간 그때 나 고향 집으로 못 가게 한 이유가 뭔 줄 알아?”“혹시 강이설 때문에?”정가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의 일을 낱낱이 말했다.“두 사람 친남매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연인 사이였어. 양가 부모님도 동의했지만 강이설이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강은우 보고 시내의 고급 아파트를 사라고 했대. 그런데 강은우 그 인간이 무슨 수로 서울의 집을 사겠어? 집 때문에 나를 노렸던 거야.”“내가 고아이고 학벌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직업도 술이나 파는 여자였으니 나 같은 사람은 분명 사랑이 부족하고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친절한 척 연기하면서 나한테 접근했어. 결국 내가 그 인간에게 넘어갔고 모든 걸 주었더니 그년과 그런 사이였던 거야.”“네가 심부전이라서 곧 세상을 뜨던 그 날 밤, 둘이 병원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네가 마지막 순간까지 나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던 거야.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너한테 거짓말했어. 그 두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계획해서 날 상대하고 있었어...”서유는 여기까지 듣고 몸을 곧게 펴고는 정가혜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음만 찢어질 듯 아팠다.정가혜가 강은우를 만난 이후로 열심히 일해 돈을 번 것은 전부 강은우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그런데 정가혜가 평생을 의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남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속이고 있었다니!이런 참혹한 진실을 서유가 죽어가고 있을 때 알았으니 당시의 정가혜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서유는 그녀를 꽉 안았다. 마치 포옹으로 정가혜의 상처를 달래 주려는 듯 웃으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괜찮아. 그때 사실을 알고 한동안 힘들었지만 지금은 강해졌어.”“내가 신혼집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두 사람의 치욕스러운 장면을 녹화해 변호사에게 보냈거든.”“소송에서는 이겼지만 그 신혼집은 지켜내지 못했었어. 계약금은 강은우 부모님이 결혼 전에 냈기
서유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정가혜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전화 좀 받고 올게.”서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가혜는 급히 침실을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지난 3년 동안 분명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가혜와 이연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문밖에서 정가혜는 휴대폰을 쥐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 오늘은 친구랑 있어야 해서 못 갈 것 같아요.”와인잔을 들고 있던 이연석은 순간 흠칫했다.“어떤 친구?”정가혜는 대충 얼버무렸다.“여자인 친구가 있어요.”이연석은 와인잔을 내려놓고 실망한 듯 말했다.“괜히 흥 깨졌네.”이어 전화가 끊겼고, 정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실로 돌아갔다.침대에 앉아서 조용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서유를 보며 정가혜는 또 마음이 찔렸다.그녀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몇 번이고 망설이더니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미안해, 서유야. 이승하가 너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내가 이씨 가문 사람이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괜찮아.”서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나 신경 쓸 필요 없어. 너만 행복하면 그만이야. 다만...”서유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이연석은 소문난 바람둥이야.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만났는지 모르는데, 그 사람 옆에 있다가 너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야...”이런 남자와 만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사랑하게 되면 상처투성이가 될 수 있었다. 마치... 옛날의 서유처럼.정가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걱정하지 마. 복수 때문에 그 사람 곁에 있는 거야.”서유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무슨 복수?”정가혜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박하선, 연지유, 이승하 그 세 사람이 널 때려서 빨리 죽게 했으니 당연히 내가 복수 해야지!”서유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데 정가혜가 어떻게 그 세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서유는 몸을 곧게 펴고 정가혜를 끌어당겨 위아래로 몸을 살폈다.“가혜야, 너 어디 다치지 않
정가혜는 옛 추억에서 벗어나 서유를 바라보았다.“서유야, 걱정하지 마. 난 이연석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이 세상에 사월이 말고 좋은 남자는 아마 없을 거야.”“그러니까 나도 전처럼 누가 잘해주면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가치 없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송사월을 언급하자 서유의 눈동자가 다시 어두워졌다.이 세상에 그녀에게 잘해주는 남자는 이미 떠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서유는 눈을 늘어뜨리고 눈 밑의 슬픔을 감추며 감격해서 말했다.“가혜야, 고마워. 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희생을 했는데 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만약 네가 이연석이랑 인연을 끊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정가혜는 웃더니 서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가장 큰 보답이야. 앞으로 어디도 가지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알겠어?”정가혜는 서유의 삶에서 한 줄기 빛으로, 항상 그녀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루만졌다.서유가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더라도 정가혜는 늘 중요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한한 힘을 줄 것이다.바로 지금처럼 정가혜는 아무런 원망도 비난도 증오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서유에게 바치고 있었다.서유는 눈시울을 붉히며 정가혜를 껴안고 약속했다.“내가 돌아왔으니까 앞으로는 내가 너 돌봐줄게.”정가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절하지 않았다.“너 단단히 각오해. 내가 늙어서 못 움직이게 되면 네가 나 밥 먹여주고, 물 따라 주고 휠체어도 밀어주고 똥오줌도 가려줘야 해.”서유는 그녀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야.”정가혜는 서유가 마침내 웃자 더 이상 농담하지 않고 일어나 자물쇠가 채워진 서랍을 열고 밀폐된 봉투를 꺼냈다.그녀는 안에서 물건을 꺼내며 서유에게 말했다.“원래 살던 아파트는 돌아가면 자꾸 옛날 생각날 것 같아서 다시 간 적 없지만 나오기 전에 네 귀중한 물건은 따로 챙겼어.”그녀는 서유가 사용했던 휴대폰을 꺼내 건넸다.“네 휴대폰
[보고 싶다.][돌아올 수 있어?][다시 돌아와 줘. 아직 말 못 한 비밀이 있어.][네 꿈을 꿨어. 나보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더군.][매달리고 싶지 않지만 나도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어.][보고 싶어 미치겠어. 대체 어떻게 하면 다시 너를 만날 수 있는지 제발 알려줘.][다시 돌아오면 안 돼? 제발... 돌아와 줘.][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다시 널 만날 수 있는 거야?][수면제 먹고 너를 만났어. 널 볼 수 있으니까 참 좋다.][환각 속의 넌 사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더군.][그래서 나도 널 품에 꼭 안고 나도 사랑한다고 말했어.][하지만 이건 환각일 뿐이잖아. 네가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어.][네 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있으니, 너를 포기하라고 놓으라고 나 자신에게 수도 없이 말했어.][하지만, 그게 안 돼. 마약처럼 중독돼서 절대 끊을 수도, 잊을 수도 없어.][서유야, 사랑해. 만약 다시 기회가 온다면 내 목숨을 다 바쳐 널 사랑할게.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 줘.]서유는 여기까지 보고 더 이상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 세상에 그녀를 이렇게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범죄자가 있는 줄은 몰랐다.그는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마음을 표현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그녀를 추모하고 있었다.서유는 그의 목적을 알 수 없었지만 수천 개의 메시지에 충격받았다.정가혜는 그녀가 넋이 나간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처음에는 미친 듯이 메시지를 보내니까 내가 너인 척하고 불러낸 적이 있었어. 너에게 못된 짓을 한 적이 있었으니 경찰서에 처넣으려고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누구를 만난 줄 알아?”정가혜는 잠시 멈칫했다. 그날 커피솝에 나타난 남자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이승하처럼 차갑고 무정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서유를 그리워할 수 있겠는가?정가혜는 생각하다가 결국 서유에게 말하지 않았다.“아무튼 그 인간은 오지 않
정가혜가 일어나 창문 아래를 살펴보니 지현우가 서유를 만나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을 기세로 서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서유에게 물었다.“저 사람 네 언니 남자친구 아니야? 왜 자꾸 너한테 집에 가자는 거야?”서유는 정가혜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만 알려주고 자신과 지현우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었다.그녀는 이불을 젖히고 정가혜 옆으로 다가가 아래층의 지현우를 보며 말했다.“가혜야, 나 저 사람이랑 영국에서 결혼했어.”정가혜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뭐?”서유는 아주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난 당장 귀국해서 너랑 사월이를 만나고 싶었지만 귀국하면 언니 심장으로 다른 사람 곁에 있을까 봐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묶어 두었어. 내가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으면 절대 나 돌아오게 하지 않았을 거야.”정가혜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서유야, 그럼 평생 저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서유의 눈 밑에는 암울한 기색이 역력했다.“언니 마지막 유언대로 내 몸에 심장을 넣는 순간부터 난 저 사람이랑 평생 함께할 운명이었어.”즉 서유는 지금 살아 있지만 영원히 자유를 잃게 되었다.정가혜는 걱정이 앞섰다.“서유야, 어떻게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을까?”서유는 무력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심장이 있는 한 절대 나 놔주지 않을 거야.”정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근데 저 사람 제정신 같지 않은데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서유는 지현우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우리 언니를 너무 사랑해서 저렇게 됐겠지.”정가혜는 이 상황이 풀 수 없는 매듭이란 생각이 들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이 주제를 어떻게 계속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그녀가 침묵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정가혜는 서유가 곤란해질까 봐 동의했다.“너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 내일 다시 너 보러 갈게.”서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내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