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연훈은 변명도 하지 않고 애원도 없이, 곧장 서재 중앙으로 걸어가 상철수를 등지고 외투를 벗어낸 다음 곧게 무릎을 꿇었다. 상철수는 채찍을 손에 쥔 채 소파에서 일어나,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흉터로 가득한 상연훈의 등을 향해 스무 번 이상 채찍을 내리쳤다. 등에 난 크고 작은 상처가 벌어지며 붉은 피가 쏟아졌고 몸 전체가 찢기는 고통에 휩싸였지만, 상연훈은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채찍질을 끝낸 상철수는 손에 든 채찍을 옆으로 던진 뒤 차갑게 상연훈을 바라보았다. “이승하의 뇌 속 칩과 상처에 대해서는 다시는 서유에게 말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스무 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둬.” 상연훈은 고통을 참으며 옷을 걸치고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관련된 일에 더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이미 한 번 할아버지를 배신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 배신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서유가 직접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상철수는 상연훈과의 일을 마무리한 뒤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지금 바로 루드웰로 가자. 내일 아침 6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니, 준비해라.” “예.” 상연훈은 대답하고는 서재 문을 열었다. 마침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유가 그를 발견하자, 그녀가 보지 못한 틈을 타 상연훈은 이마의 식은땀을 재빨리 닦아냈다. 서재의 방음이 뛰어나 서유는 두 사람이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들을 수 없었고, 서재 앞에 보초를 서고 있는 경호원들 때문에 다가갈 수도 없었다. 상연훈이 나오자 서유는 급히 다가가 상철수가 그를 어렵게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검은 양복이 상처를 덮은 상연훈은 웃으며 자기는 할아버지에게 당할 사람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서유가 더 묻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연훈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서유야,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빨리 가봐야 해.” 그가 다급한 모습을 보이자 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유’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이승하의 고요했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어두운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서유의 소식이라니...” 그녀와 그녀의 뱃속 아이는 이미 바다로 가라앉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까? 상철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이승하를 지켜보기만 했다. 기다리던 이승하는 상철수가 말이 없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서 말해!” 상철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소파에 앉았다. “정말로 서유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승하의 눈빛이 급변하며 의문이 서렸다. “만약 서유가 살아있다고 날 속이고 협상을 하려는 거라면, 당장 꺼져.” 연지유와 연중서가 서유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누가 그녀를 구할 수 있으며, 또 누가 구하려고 했겠는가? 그는 믿지 않았고, 상철수는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담배를 가볍게 흔들어 상연훈에게 신호를 보냈다. “영상을 보여줘라.” 상연훈은 휴대폰을 꺼내 친자 확인 만찬에서 촬영한 영상을 열고 이승하 앞에 내밀었다. 영상 속에서 샴페인색 드레스를 입은 서유는 배나무 아래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치맛자락이 살짝 휘날렸다. “이 영상은 오늘 밤 촬영된 거다. 시간 기록도 있으니 확인해 봐.” 이승하는 상철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영상 속 여인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과 표정은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렇다면... 진짜 살아있는 게 맞는 걸까? 이승하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걸 애써 참아냈는데 손끝이 떨릴 정도로 심장이 아파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영상 속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 시도해 보다가 결국 손을 내려야 했다. 그는 차마 영상을 계속 볼 수 없어 시선을 옮겨 휴대폰을 들고 있는 상연훈을 보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묻고 있었다. 두꺼운 마스크 너머로 이승하의 붉어진 눈을 바라보던 상연훈은 잠시 죄
상철수는 이승하의 질문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조건을 제시했다. “너희가 만나더라도 서유에게 절대 말하면 안 돼. 네 자유를 제한한 루드웰 이야기나 네 머리에 있는 칩에 대해선 입 밖에도 내지 마. 강제로 이혼하게 된 이유나 우리가 네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절대 말하지 마라. 평범한 척, 그저 2-9로서의 잠입 신분을 유지하며 서유와 지내면 돼.” 이승하는 1-1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몰랐지만 갑작스럽고 이상한 조건들에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 모든 걸 서유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23일간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유나, 연지유를 통해 강제로 이혼시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승하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상철수의 말에서 무언가 떠오른 듯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쓴 상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혹시 당신 서유의 친척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서유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아는 것을 꺼린다면,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일 수밖에 없었다. 이승하의 날카로운 추측에 상철수는 무릎 위에 얹힌 손이 잠시 떨렸다.“이미 눈치챘다면 숨길 이유가 없겠지.” 상철수는 사실 애초에 그걸 감출 생각은 없었다. 둘이 만나면 금방 드러날 일이었으니까.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승하 앞으로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서유를 CCTV에서 처음 봤을 때, 내 아내와 닮았다는 걸 깨닫고 유전자 검사를 했지. 검사 결과, 서유는 내 외손녀였어.”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승하는 진실을 깨달은 후, 차츰 눈빛이 어두워졌다. “내 머리에 칩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건, 서유가 당신을 미워하는 게 두려워서겠죠.” “역시 똑똑하군.” 상철수는 이승하의 능력을 칭찬했지만, 이승하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간신히 찾은 가족이라면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잔인하게 구는 겁니까?” 그는 서유의 친족이 누구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지만, 서유
“맞아.” 상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령 서유가 내 외손녀라고 해도 우리 사이의 화해는 불가능해. 그러니 이 대표, 서유를 위해 복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서유와 완전히 이별해야 할 거야.” 이승하의 눈빛은 한순간 살벌하게 차가워졌다. “서유가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영원히 적이라 해도 결국 내 편에 설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까??”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밤을 새워 널 만나러 온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널 당장 쏴버리는 게 더 간단했겠지.” 상철수의 어투에서는, 이제 그의 관심이 S의 창립자보다 서유에게 더 기울어졌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를 포착한 이승하는 다시금 길고 섬세한 속눈썹을 내려, 눈빛 속에 잠시 스쳤던 계산을 감추었다.“내일 어디서 만납니까?” “여기.” 이승하는 먼저 조건을 수락하고 다시 움직이려는 듯했지만, 상철수는 한마디로 그의 희망을 무참히 끊어놓았다. “네 머릿속 칩은 다시 프로그램을 수정할 거다. 네가 신의를 저버린다면, 난 기꺼이 네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야.” 늘 그 칩의 위협을 받고 있던 이승하는 눈빛에 슬픔이 스며들었지만, 얼굴엔 무심한 냉소가 떠올랐다. “서유가 당신을 평생 원망하게 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마음대로 해봐요.” 상철수는 이승하의 입가에 서린 조소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서유를 네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면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누가 더 서유를 아끼는지 마음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승하는 상철수보다도 그녀를 더 깊이 아꼈다. 이승하는 서유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까 두려웠고, 그리움에 지쳐 자신을 따라 죽음에 이를까 겁이 났다.결국 이 심리전에서 서서히 밀리고 있는 쪽은 그였다.“서유를 보고 싶어요.”상철수의 예상대로 이승하는 서유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를 보고, 안고, 입 맞추고 싶었다. 그리고 이혼 서류에
이승하가 귀국했다. 그의 베일에 싸인 애인으로서, 서유는 곧바로 8호 맨션으로 보내졌다.계약의 규정에 따라 그를 만나기 전엔 티 없이 깨끗하게 몸을 씻어야 했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를 절대 풍겨선 안 됐다.그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2층 침실로 왔다.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승하는 그녀가 들어오는 기척에 그녀를 흘긋 바라봤다.“이리 와.”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하면서도 차가운 말투가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서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평소에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종잡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그가 혹시나 화가 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그의 앞에 제대로 서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를 와락 안아버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하는 이승하.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부드러움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그저 함께 자고 싶을 뿐이었다.이번에 외국으로 출장 가게 되면서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자를 만지지 못했으니 오늘 밤은 쉽게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어 보였다.그녀가 잠에 곯아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남자는 끝날 기미가 보였다.다시 잠에서 깨어난 서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간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귀의 기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매번 검사를 마치고 나면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 떠나지 않은 걸까?서유는 가까스로 피곤한 몸을 이끌어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착한 고양이 마냥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몇 분 뒤,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남자가 샤워 타워를 두른 채 걸어 나왔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넓은 어깨로부터 쇄골 언저리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가슴골을 따라 부드럽고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복근 위로 미끄러졌다. 치명적일 만큼 유혹적이다. 그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
방을 떠나는 이승하 뒤로 그의 개인 비서 소수빈이 쟁반 위에 올린 약을 들고 나타났다. “서유 씨, 부탁드립니다.”공손한 태도로 약을 건네주며 그가 입을 열었다.피임약이었다.서유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허락하지 않는 이승하였다. 그래서 매번 일이 끝나면 소수빈을 시켜 약을 건네주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먹게 했었다.하얀 알약을 바라보며 서유의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심장이 허약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무정함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숨쉬기가 가빠졌다.“서유 씨…”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가 혹여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봐 소수빈이 다그치듯 그녀를 불렀다.그런 그를 흘긋 보던 서유는 조용히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짝 풀며 소수빈은 가방에서 집문서와 수표들을 꺼내 테이블에 배열했다.“서유 씨, 대표님께서 드리는 보상입니다. 부동산과 고급 자동차 외, 현금 백억 원을 준비하셨습니다.”실로 놀라운 액수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이런 거 필요 없어요.”약간 놀란 듯,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소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성에 차시지 않은 겁니까?”그 말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소수빈마저 내가 돈을 위해서 승하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하니 이승하는 오죽할까. 이렇게 많은 이별 비용을 내는 건 앞으로 더는 돈 때문에 들러붙지 말라는 뜻이겠지?’“이건 승하 씨가 줬던 건데 다시 전해주실래요?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은 건드린 적이 없다고 알려주세요. 지금 주신 돈과 부동산 모두, 전 받지 않을 거예요.”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 있던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며 서유가 말했다.‘5년 동안 대표님께서 주신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건가?’믿을 수 없다는 듯, 소수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그가 믿든 말든 서유는 블랙 카드를 집문서와 수표들
서유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곳은 친구 정가혜가 사는 곳이었다.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곤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둘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고 고아라는 슬픔을 공유한 자매 같은 사이었다.과거 이승하가 서유를 데려갈 때, 정가혜가 그녀에게 말했었다.“서유야, 앞으로 갈 데가 없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바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서유는 이승하가 준 집을 돌려줄 용기가 생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서유를 본 정가혜가 활짝 웃으며 따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우와, 오랜만이네!”하지만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감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가혜야, 나 너한테 얹혀살려고 왔어.”그제야 가혜는 서유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미소가 차츰 굳어졌다.“무슨 일이야?”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유가 멋쩍게 웃었다.“그 사람이랑 헤어졌어.”그 미소가 억지로 쥐어짠 미소임이 가혜는 너무 눈에 선했다.서유의 작은 얼굴은 찬찬히 뜯어보면 야위어서 눈이 움푹 꺼져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했다.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유의 몸은 얄팍한 종잇장처럼 불안해 보였다.가혜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순간 서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두 손으로 가혜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그 말이 그저 위로일 뿐이라는 걸 가혜가 모를 수 없었다. 서유에게 있어 이승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똑똑히 보아왔으니까.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승하에게 돌려줄 2억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서유는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멍청하게도 그리하면 이승하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엔 무정하게 버림받았다.가혜의 기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만약 그때, 서유가 송사월을 위해 몸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승하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서유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엄청난 비밀을 들은 것처럼 원영이 두 팔로 최민지를 흔들며 흥분해서 물었다.“JS 그룹의 그분,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어떻게 여신이 있을 수가 있죠? 게다가 그 여신이 우리 회사에 곧 임명될 CEO란 말이에요?“최민지가 씩 웃으며 원영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저런, 정보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시겠어요? 재벌가에서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면 대표님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시려고 그래요.”그러자 최민지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민지 언니가 한 수 가르쳐 주세요~”그제야 최민지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이 대표님이랑 우리 이사장님 따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 사이였대요. 찌라시긴 하지만, 5년 전에 이 대표님께서 청혼하셨는데 아씨가 학업 때문에 거절했대요. 그 일로 둘 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5년 동안 연락을 끊었대요. 하지만 아씨가 귀국하자마자 이 대표님께서 직접 공항으로 마중 나갔어요. 그럼 이 대표님께서 아씨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이걸로 설명 끝 아닌가요?”원영은 과장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상에나! 완전 로맨스 드라마 같아요!”하지만 듣고 있던 서유는 가슴이 턱 막히며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이승하가 애인 계약을 앞당겨 끝냈던 이유는 그의 여신님께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서 왜 5년 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던 것일까?심지어 하룻밤 자고 나서는 애인 계약을 맺자고 강압적으로 나오기까지 했었다.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잘 믿기지 않았다. 최민지에게 어디에서 들은 소문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대표님 전속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열렸다.이사장의 비서 허민과 몇 명의 고위층들이 먼저 내렸고 깍듯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엘리베이터 안을 향해 말했다.“이 대표님, 연 대표님, 대표님 사무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