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이 가늘게 떨리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그녀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턱을 치켜올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부러졌다.툭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가 부러졌다.“아악!”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손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 단번에 부러뜨린 것이다. 아픔을 견디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졸랐다. 숨이 턱턱 막혔고 웃고 있던 얼굴이 불과 1초 만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연지유는 지금쯤 그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쓰러질 때, 그녀는 그 틈을 타 그에게서 탈출했다. 목을 감싼 채 낭패한 모습으로 허겁지겁 뒤로 몸을 옮겼다.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야 비로소 부러진 왼손을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자 봉태규가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들은 것인지 그는 그녀를 부축하지 않고 실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도 뭔가 알아차린 듯 얼른 봉태규의 손을 잡아당겼다. “태규 씨, 방금은 그냥 헛소리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그래?”피식 웃더니 칼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그럼 가서 한번 찔러봐. 나한테 네 마음을 보여주란 말이야.”흠칫하던 그녀는 다친 손을 핑계로 대려 하였지만 그가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태규는 미친놈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승하를 놓지 못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그녀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칼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하의 앞으로 걸어갔다.이승하, 어떻게 이리 내 마음을 몰라? 차라리 죽어.연지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칼을 이승하의 허벅지를 향해 푹 찔렀다. 바닥에 쓰러져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은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까만 눈동자로
한편, 넷째 어르신은 감금 시간이 다 되어서 곧 풀려나게 되었다. 나가자마자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연지유와 봉태규가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이 있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가 벌거벗은 두 사람을 마치 짐승을 다루듯이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가면을 쓴 넷째 어르신은 연지유의 꼴에 기분이 언짢은 건지 그녀를 발로 걷어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그녀는 남자들의 시선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새파래지고 온몸이 떨렸다.무작정 침대에서 끌려 내려온 두 사람은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에게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고 이를 갈며 넷째 어르신을 노려보았다.“넷째 어르신, 저한테 이러면 1-2가 어르신한테 분명 죄를 물을 거예요. 두렵지 않아요?”“무서워.”그녀를 발로 걷어차고는 카펫에 구두 밑창을 문지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주 무서워 죽겠어.”“그럼 당장 우리를 풀어줘요.”넷째 어르신은 피식 웃고는 더 이상 쓸데없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손을 흔들었다.“이 인간들 당장 뱀굴에 던져버려.”연지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넷째 어르신을 쳐다보았다. “저와 태규 씨는 1-2의 측근이에요. 어딜 감히!”“아이고 무서워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넷째 어르신은 자기 사람들을 향해 턱을 치켜올렸다. 두 사람을 붙잡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옷도 걸쳐주지 않은 채 그대로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편 탈출구를 지나칠 때, 봉태규는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그러고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달려드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과 맞서 싸웠다. 어렸을 때부터 S 조직에서 훈련을 받았던 터라 그는 싸움 실력이 뛰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드는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넷째 어르신이 총을 꺼낼 동안 봉태규가 그녀를 잡아당겨 전용 탈출구에 밀어 넣었다.“1-2가 너한테 권한을 줬으니
그가 무엇을 할지 대충 짐작되었던 김종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게.”이승하는 피범벅이 된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종수를 따라 프로그램실로 향했다.콘솔 앞에 앉더니 컨트롤러 위의 간단한 프로그램에 따라 빠르게 프로그램을 수정했다.가늘게 뻗은 손가락이 피범벅이 된 채로 빠르게 코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김종수는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10분 남았어. 10분 뒤면 1-2가 A 구역의 프로그램실로 돌아갈 거야.”지금 이 시간에 1-2는 일반적으로 B 구역의 프로그램실에 있었다. 1-2는 시간 관리가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시간대별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케줄이 잘 짜여있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는 예정된 스케줄을 벗어나지 않았고 1분 1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가 프로그램실로 돌아와서 자네가 프로그램을 수정한 것을 알게 된다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는 머리를 통제하는 칩의 프로그램을 바꿔버렸다. 먼저 위치추적 시스템과 도청 시스템을 끄고 빠른 속도로 폭파 기능 시스템을 바꿨다. 화면을 주시하던 넷째 어르신은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승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어쩐지 1-1과 1-2가 모두 이승하를 죽이기 아까워하더라니.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폭파 시스템을 한 번에 제거할 수는 없지만 폭파 시간을 30분 이내로 설정한 것은 진짜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이승하는 또다시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또한 넷째 어르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이승하는 아무 말도 없이 일을 마친 후 컨트롤러를 집어 몸에 숨겼다.넷째 어르신은 그가 대답이 없자 더 이상 묻지 않고 손목시계만 쳐다보았다. “4분이면 충분해. 루드웰을 떠나게 해줄게.”넷째 어르신이 봉태규를 죽이고 이승하의 도피를 도왔다고 해도 그가 루드웰에 처음가입한 사
“죄송합니다.”이승하는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김종수를 쳐다보았다. “위층 구역으로 가야겠습니다. 1-2의 머릿속에 반드시 칩을 넣어야겠습니다.”“하지만 나한테는 권한이 없으니 당신의 홍채와 손금을 빌릴 수밖에요.”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던 넷째 어르신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봉태규와 연지유를 죽이는 걸 도와줄 수는 있지만 1-2를 해치는 일에 날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말게.”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이승하는 마치 벽처럼 그를 필사적으로 옥죄고 있었다. 이를 본 프로그래머들은 벌떡 일어났고 이승하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이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달려들어.”말을 마친 그가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차가운 눈빛을 감추더니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넷째 어르신, 저랑 함께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남자는 김종수가 동의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그를 끌고 위층 구역으로 통하는 전용 통로로 빠르게 이동했다.가면 아래, 김종수가 이승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자네는 1-2를 이길 수 없어.”“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습니까?”이승하는 그의 손을 잡아 인증 장치에 가져다 댔고 손금 인증이 된 후 그의 가면을 벗겼다. “CCTV에는 내가 당신을 협박하는 것으로 보이니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손금과 홍채 인증을 제외하고도 얼굴과 몸 전체를 스캔하여야 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련의 비밀번호도 입력해야 했다.이승하는 김종수의 얼굴을 강제로 가져다 댈수가 없었고 반드시 그가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해야 하는 데 김종수가 협조할 리가 있겠는가?“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 누구도 1-2를 해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네.”이승하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협조하지 않으면 난 강제로 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써늘한 기운이 가득 찬 그의 눈에는 집착에 가까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핏기
한편, B 구역에서 볼일을 보던 1-2는 연지유의 전화를 받고 앞당겨 A 구역으로 복귀했다.전용 통로로 나오는데 총상을 입은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그들을 보며 1-2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젠장!”1-2는 사람들을 데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넘어 곧장 프로그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승하가 소파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늘씬한 다리를 꼬고는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에는 피가 잔뜩 묻은 총을 들고 있었고 총에서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머리를 살짝 소파에 기대고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달려드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가 죽은 사람을 쳐다보듯 차갑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검은 옷은 핏자국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깨와 다리에 총알이 박힌 구멍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증거다. “대단하군. 프로그램실까지 오다니.”1-2는 이승하한테 화를 내기는커녕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Ace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이야. 베짱이 있는 사람, 난 좋아. 하지만...” 박수를 치던 손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그가 이내 총을 꺼내 들어 이승하의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당신이 만약 S 조직의 리더가 아니었다면 당신을 살려줬을지도 모르지.”말을 마치자마자 1-2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총을 쐈다. 안타깝게도 그가 총을 쏘기 전에 이승하가 한발 먼저 총을 쐈다. 1-2의 복부를 향해 총알이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고 한방에 적중했다. 먼저 총을 맞은 사람이 1-2였기 때문에 그가 쏜 총알은 위치를 빗나갔다. 1-2의 총알을 피한 이승하는 빗발치는 총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1-2의 앞으로 돌진했다.총에 맞은 1-2는 복부를 가렸고 그 순간 단단한 팔이 그의 목을 가로챘다. 숨 막히는 느낌에 1-2는 완전히 분노했고
“미친놈, 내 머리에 칩을 넣기만 해봐. 네 가족들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1-2는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며 이승하한테 욕설을 퍼부었지만 이승하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기계가 그의 머리를 풀어주자 이승하는 자리를 떴다. 칩이 놓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무작정 칩 하나를 골라 수술실로 돌아와서는 메스를 받아들고 천천히 장갑을 끼었다.그는 1-2의 머리 뒤쪽에 천천히 걸터앉아 1-2의 뒤통수를 마주했다. 한편, 1-2는 여전히 욕설을 퍼부었고 이승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1-2의 가면을 천천히 벗겼다. 가면이 벗겨진 순간, 이승하는 그제야 1-2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봤지만 이 사람일 줄은 몰랐다.성준모, 성이나의 부친. “젠장, 내 머리를 열기 전에 그것부터 알려줘. 내 딸을 M국에 보낸 S 조직의 멤버가 누구인지.”성이나가 M국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성준모는 한창 Ace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Ace의 일도 내팽개치고 바로 M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건 콩팥이 뜯겨나가고 폐가 뜯겨나간 딸의 모습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영문도 모른 채 S 조직의 손에 죽었다. 한참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단지 S 조직의 소행이라는 것만 알아냈을 뿐, 도대체 누가 그랬는지는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하여 S 조직이 죽도록 미웠다. 이승하가 S 조직의 리더이고 그가 루드웰에 잠입하여 루드웰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걸 듣고 그는 이승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의사인 딸이 손가락이 잘린 채로 M국에서 죽었어. 도대체 누가 그랬는지 말해줘.죽더라도 미련 없이 죽게.”이승하는 메스를 든 채 잠깐 머뭇거렸다. 손을 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성준모의 말을 들으니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이나를 M국으로 보낸 사람은 강세은이었으나 그녀의 죽음은 사실 그와 꽤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인과를 따지자면 성이나가 먼저 일을
“나를 조종하려고 해? 꿈 깨!” 성준모는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이승하의 뜻대로 굴복하지 않았다.이승하도 억지로 성준모를 복종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작기를 들고 고통을 제어하는 시스템의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순간 성준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심장을 찢는 듯한 소리로 칩이 설치된 방 안에 울려 퍼졌는데 꽤 섬뜩했다.성준모는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창백한 얼굴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고 거대한 산처럼 우뚝 서 있는 이승하를 노려보았다. “1-1에게 이미 연락했다. 곧 도착할 거야. 네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이승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성준모 앞에 다가와 그의 늙고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내 말대로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널 죽일 수도 있어.”성준모는 몇 번이나 실신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조작기를 보고 다시 작업대를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자신의 뇌 뒤쪽에 심어진 칩이 이승하의 칩과 이미 연결된 상태임이 나타나 있었다. 이제 성준모가 살아남으려면 이승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승하가 손에 든 조작기로 언제든지 그를 고통 속에 빠뜨려 살면서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1-1이 와서 이승하의 칩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통제권을 다시 회수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1-1이 김해에 있지 않아서 그가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성준모는 이승하의 명령을 따라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성준모는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자존심을 접고 말했다. “전체 구역 통제 버튼을 열어줘. 내가 넷째에게 명령해서 연씨 부녀의 행방을 찾게 할게.”성준모의 굴복에 이승하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작업대로 돌아가 전체 구역 통제 버튼을 찾아내 눌렀다. “말해.”성준모는 고통을 억누르며 이를
두 남자가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칩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이승하는 마치 왕처럼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살짝 돌린 얼굴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듯 차갑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술용 칼이 꽂혀 있었고, 칼에 비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며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1-1과 1-3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소파에 앉은 이승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의 굳센 의지와 거침없는 태도에 두 보스는 어느 정도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이때 1-1이 입을 열었다. “네가 S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더라면, 너 혼자 힘으로 상구까지 올라온 걸 분명 대단하게 여겼을 거야.” 1-1의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으나 그의 말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오랜 세월을 겪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루드웰에서 무엇을 하려는 거야?” 1-1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의자를 하나 끌어와 이승하 앞에 앉았다. 그는 아무런 경계 없이 앉았고, 천천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이승하에게 내밀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이승하는 담배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길고 우아한 손가락을 뻗어 담배를 받았다. 그는 불이 붙은 담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에 가져가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그녀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 시절, 그는 담배로 생명을 이어갔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담배를 끊었지만 이제 그녀가 다시 사라진 지금, 그가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는 느릿느릿 담배를 피우며 흩날리는 연기 속에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했다. 그 피로 얼룩진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1-1은 그를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자신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