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음이 울릴 때까지 서유는 자신이 이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만약 육성재가 조금만 더 천천히 갔더라면 아마 황천길에서 그와 마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유는 굳어버린 입가를 억지로 올리며 육성재가 남겨준 사과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이번에는 모든 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맞은편의 9호 방, 10호 방, 그리고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문가에 기대어 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수다를 떨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 모두 각자가 선택한 공간에서 죽었을 것이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였을 수도 있고, 다섯 번째 라운드였을 수도 있다. 어느 라운드에서든 결국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서유는 홀로 복도를 걸으며 누군가 나타나, 웃으며 ‘나도 살아남았어’라고 인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서유는 기계음의 안내에 따라 아홉 번째 라운드의 카지노로 향했다. 이곳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제는 온통 하얀색이 아닌 황금빛과 화려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이 방은 마치 Ace의 배후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상징하는 듯했다. 그가 얼마나 부유하면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하찮은 존재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죽는 지를 내려다볼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따위는 없고 오직 장난질만 일삼는 악독한 자였다. 서유는 가슴 가득 분노를 품은 채 조작대 앞에 서서 안내에 따라 아무 버튼이나 눌렀다. 그녀는 규칙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 두려울 것도 없이 무작위로 선택했다. 어차피 무엇을 선택하든 맹목적인 선택일 뿐이고,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엔 죽음이라는 결말뿐이었다. 그녀는 만약 죽음의 문을 선택하면, 두개골을 열고 있던 검은 옷의 사람에게 이승하가 지금 어두운 곳에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생존의 문을 선택하면, 다른 게임 구역을 계속해서 도전하
이승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서유의 손은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옮겨져 그의 옷을 만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셔츠 위에 새겨진 금색 글씨. Ace-Inviter-2-9. 이것은 그가 루드웰에 속하게 되었으며, 평범한 검은 옷을 입은 자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루드웰의 배후에 들어갔고, 서유를 이곳으로 초대한 2-7과 같은 등급에 있었다. 그는 그동안 계속해서 루드웰 있었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서유는 눈물이 마치 끊어진 구슬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조금씩 이승하의 옷을 더 꽉 잡으며,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 어디 다친 거예요? 그래서 집에 돌아올 수 없었던 거죠? 나한테 연락할 수도, 날 보러 올 수도 없었던 거죠?” 그녀의 눈물은 한 방울, 또 한 방울 이승하의 가슴에 떨어졌는데 그를 숨조차 쉴 수 없게 아프게 만들었다. 이승하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야, 내가 약속을 어긴 거야. 미안해.” 서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발끝을 세워 그의 머리를 만지려고 했으나 이승하는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 막았다. 이승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붙잡아 생명의 문 쪽으로 이끌었다. 서유는 그의 뒤를 따르며 그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짙은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었는데 두개골을 연 흔적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유는 눈물로 가득 찬 눈을 들어 침묵하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두운 마음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이승하는 마치 시간이 부족한 듯, 그녀를 빠르게 생의 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두 글자를 말했다. “떠나.” 그 두 글자는, 서유가 들었던 종이쪽지에 적힌 ‘떠나’와 다를 바 없었다. 아주 차갑고, 감정 없이 그녀의 몸과
이승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는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었다. 두개골이 열리고 칩이 이식된 후, 그의 위치와 말은 모두 감시되고 있었다. 방금 그는 아홉 번째 라운드의 프로그램을 수정했고, 1-1이 설정한 프로그램도 해킹하여 권한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 나타나 말을 꺼낸 순간, 1-2는 이미 그가 게임 구역의 프로그램을 변경한 것을 알아챘다. 지금 1-2는 즉시 폭파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고 5분의 카운트다운을 보내며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고 5분 안에 돌아가지 않으면 그의 머리는 폭발하고, 그녀 역시 죽게 될 것이다. 이승하는 서유의 뒷머리에 겨누어진 붉은 사살 레이저를 보며 꽉 쥐었던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그는 재빨리 서유를 안아 생명의 문 안으로 집어넣고,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눌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분간 돌아갈 수 없어. 너는 빨리 떠나.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지 마. 너무 위험해.” 그의 머리는 통제되고 있었으며 루드웰에서 100미터만 벗어나면 자동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이승하는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말을 마치고는, 재빨리 돌아서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서유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걸음을 옮겨 그를 쫓아가려 했고, 그 순간 이승하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말을 그냥 흘려듣더니 이제는 육성재까지 연루시켰어. 그걸로도 부족해?” 그 한마디에 서유의 손과 발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마치 인형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요. 당신이 너무 걱정돼서, 그래서 찾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성재 씨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을 일부러 연루시킨 것도 아니에요...’ 이런 말들이 서유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승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듣지 않았다.
이승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차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연지유가 하이힐을 신은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녀의 뒤에는 조종기를 들고 있는 봉태규와 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승하의 음침한 눈빛은 봉태규의 손에 있는 조종기를 강하게 응시했다. 그는 S 멤버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고, 1-2는 그를 높이 평가해 칩의 조종권을 그에게 맡긴 상태였다. 이승하가 연지유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봉태규는 조종기를 사용해 그를 제어할 것이고, 이승하가 봉태규에게 손을 대면 1-2가 칩의 프로그램을 가동해 그를 고통에 빠뜨리며 복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완벽한 고리로 얽혀 있었다. 그의 뇌에 이식된 칩의 조종이 누구 손에 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유가 떠날 수 있는 권한을 1-2가 연지유에게 넘겼다는 것이었다. 이제 연지유의 손에는 서유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이승하는 차가운 눈빛을 들어 연지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권한을 해제할 수 있는 조작대는 어디에 있지?” 방금 그가 사용한 조작대는 소용이 없었다. 이곳을 통제하는 조작대를 찾아야만 프로그램을 해제할 수 있었다. “1-2가 가지고 있어. 하지만 너는 상구역에 갈 권한이 없어. 보스를 찾을 수 없으니 이곳을 떠나는 프로그램도 해제할 수 없겠지.” 연지유는 매번 이승하 앞에 나섰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에게 제압당하곤 했다. 이번에는 조심해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 죽음의 문에서 이승하를 제압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왔다. 비록 그가 죽음의 문에서 혼자 열 명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수적으로 밀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두개골을 열고 강제로 칩을 이식당했다. 이승하가 머리를 강제로 절개당하고 피가 흘러내릴 때조차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연지유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승하는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위해 검은 옷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이혼 협의서를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떼려 했지만 여러 번 울컥거려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맺힌 물기가 번져나가 점차 눈물을 이뤘고, 그 뜨거운 눈물이 눈꺼풀을 타고 떨어지더니 이혼 협의서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종이를 적셨고 동시에 이승하의 눈가도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유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서류를 그녀의 손에 쥐여준 뒤, 빠르게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한마디를 남겼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차가운 어조 속에 그 떨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인해.” 서유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호했던 그 커다란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결국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기에 심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작은 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 그를 돌려세웠다. 그가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서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생의 문 위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아까 나보고 가라고 했죠.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직 시간이 안 돼서 못 갔을 뿐이에요. 시간 되면 바로 떠날 거예요. 다시는 승하 씨를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이혼만 하지 말아줘요, 응?”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떠나게 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고 게임의 아홉 번째 생의 문 안에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그녀는 떠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식으로 그녀를 떠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서유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몇 년 전,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버렸어요. 이제 나도 알아요. 당신은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나게 하려는 거겠죠.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떠날게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이렇게 매정하게
이미 말을 이렇게까지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그녀를 밀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서유는 자신이 참으로 처참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그럼 이유는요? 최소한 약속을 어긴 이유는 있어야 하지 않아요?” 연지유는 이승하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못 알아차리겠어? 승하 씨는 이제 나랑 함께하려고 해.” 서유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이 당신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함께하겠어요. 날 죽이고 싶으면 그냥 바로 해요. 승하 씨를 더럽히지도 말고 나도 불쾌하게 하지 마요.” 연지유는 그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고 하얀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전엔 나를 싫어했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내가 승하 씨 아이를 임신했으니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이 말에 그동안 간신히 버텨온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한기가 번지며, 이승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라는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유의 시선은 연지유의 득의양양한 얼굴에서 서서히 이승하의 얼굴로 옮겨졌다. “아니라고 말만 해주면 믿을게요.” 이승하는 극심한 두통으로 차가운 땀을 흘리며, 머릿속에서 울리는 빠듯한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었다. 그는 서유의 얼굴을 지나 그녀의 머리 뒤에 겨눠진 붉은 저격선에 시선을 두었다. 그의 눈가에 섞인 붉은 빛은 조명에 반사되며 사라졌다. 이내 그 자리에 차가운 빙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한 그였기에 그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차가운 태도였다. “술에 취해서 실수했어.” 이 한마디는 서유를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수많은 손들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그 순간, 서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
서유의 눈에 담긴 감정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차가움이었다. 마치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한 눈빛. 그런 눈빛을 본 이승하는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과거에도 그는 그녀를 이렇게 상처 입힌 적이 있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이번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서유의 성격상 어떤 이유가 있든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승하는 서유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다른 남자와 그녀가 함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명과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나머진 그 모든 것보다 하찮아 보였다. 그는 서서히 주먹을 풀고 서유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하의 답을 들은 서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결국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만약 이승하가 단지 술에 취해서 실수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면 서유는 그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연지유를 사랑한다고 인정한 순간, 서유는 그가 단 한 번도 연지유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승하는 서유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며칠 만에 다른 여자를 사랑할 리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유는 이런 방식으로 상처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몇 번이고 상처를 받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견뎌온 자신이 마치 바보 같았다. 서유는 그를 붙잡아 보았고 분명히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 맞서 싸우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승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여기 남을 이유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이곳에 혼자 남도록 내버려두자고 그녀는 결심했다. 서유는 이혼 협의서에 꽂혀 있던 펜을 갑작스럽게 뽑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재빨리 서명한 후, 그 협의서를 이승하
한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있던 이승하는 혼이 빠진 채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아픈 마음을 숨기며 싸늘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연지유를 쳐다보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서유한테 상처도 줬고 이혼 합의서에 사인도 했어. 그러니까 이제 루드웰로 들어가는 권한을 줘.”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연지유는 그가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리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건 이승하가 죽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이었고 서유에게 또다시 버림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녀의 뜻대로 됐으니 이혼 합의서를 찢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도 전에 그가 몸을 돌렸다.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을 비볐다.“서유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태규 씨가 이미 처리해 뒀어.”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번호 2-8의 봉태규였다. 한편, 봉태규는 지금 위쪽 프로그램실에 앉아 칩 컨트롤러를 들고 CCTV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연지유를 차갑게 쳐다보던 그가 빠르게 콘솔로 다가갔고 깨져버린 모니터의 녹색 버튼이 루드웰의 출구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루드웰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플레이어들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글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차가웠던 그의 눈빛은 점점 살벌하게 변해갔다. 깨진 유리 조각을 쳐다보던 그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뻗어 한 조각 덥석 손에 쥐고는 다시 9라운드 게임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연지유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콘솔에 기대어 앉아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콘솔 말이야.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는 없지만 생의 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화면에 보이는 지도는 가짜가 아니야. 너랑 한 약속 지켰는데 날 죽일 필요까지 있겠어?”진작부터 그가 배신할 줄 알았던 연지유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유만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