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있던 이승하는 혼이 빠진 채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아픈 마음을 숨기며 싸늘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연지유를 쳐다보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서유한테 상처도 줬고 이혼 합의서에 사인도 했어. 그러니까 이제 루드웰로 들어가는 권한을 줘.”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연지유는 그가 이혼 합의서를 찢어버리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건 이승하가 죽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이었고 서유에게 또다시 버림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녀의 뜻대로 됐으니 이혼 합의서를 찢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도 전에 그가 몸을 돌렸다.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을 비볐다.“서유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태규 씨가 이미 처리해 뒀어.”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번호 2-8의 봉태규였다. 한편, 봉태규는 지금 위쪽 프로그램실에 앉아 칩 컨트롤러를 들고 CCTV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연지유를 차갑게 쳐다보던 그가 빠르게 콘솔로 다가갔고 깨져버린 모니터의 녹색 버튼이 루드웰의 출구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루드웰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플레이어들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글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차가웠던 그의 눈빛은 점점 살벌하게 변해갔다. 깨진 유리 조각을 쳐다보던 그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뻗어 한 조각 덥석 손에 쥐고는 다시 9라운드 게임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연지유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콘솔에 기대어 앉아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콘솔 말이야.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는 없지만 생의 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화면에 보이는 지도는 가짜가 아니야. 너랑 한 약속 지켰는데 날 죽일 필요까지 있겠어?”진작부터 그가 배신할 줄 알았던 연지유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유만만한
“이승하의 머릿속에 있는 칩은 1-2가 나한테 넣으라고 했던 거고 이승하를 초대자로 만든 것도 1-2이야. 1-2는 이승하의 능력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몰래 1-1의 권한을 풀어도 이승하를 죽이지 않았던 거야. 1-2한테 이승하는 아직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봉태규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을 이어갔다. “태규 씨, 1-2가 나한테 30분 동안 권한을 준 건 맞지만 우리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자. 이승하는 구금실로 보내고 1-2가 직접 처벌하게 놔둬.”그 말을 듣고 봉태규는 폭파 버튼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떼고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지금 죽이지 않다가 이승하가 나중에 1-2의 신임이라도 얻어서 1-2의 힘을 빌려 우리를 죽이려고 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잊었어? 우리가 이승하의 가장 큰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만약 1-2가 이승하를 중용한다면 그땐 이승하의 신분을 폭로할 거야. 처참히 죽게 할 거라고.”살의가 가득한 그녀의 눈을 보고 봉태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봉태규는 이승하와 함께 S 조직에 들어갔지만 강중헌은 이승하를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직접 이승하를 가르쳤고 어른이 돼서는 리더 자리도 이승하에게 넘겨주었다. 반면, 그는 이승하의 부하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택이와 소지섭 같은 이승하의 심복도 아니었다. 진작부터 이승하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다. 늘 당당하고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승하의 모습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하여 이렇게 루드웰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이승하한테 버림받고 시달리는 연지유를 보며 그는 이승하가 더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연지유를 데리고 루드웰에 의탁하게 된 것이다. 연지유는 그보다 더 이승하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할 기회를 그녀한테 양보했다. 그녀한테 S 조직 멤버의 리스트를 넘겨주고 그녀가 1-2와 거래하여 루드웰의 조작자가 되게 하였다. 그는 기꺼이 뒤로
한편, 생의 문으로 나온 서유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무인도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캐리어와 보너스를 받을 주소가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Ace는 상금을 지정된 장소에 두고 게임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인 것 같다. 그녀는 주소를 잘 챙겨 다시 캐리어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안가로 다가갔다. 배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배는 찾지 못하였고 누군가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녀가 가장 만나기 싫었던 연중서였다. 연중서는 딸 때문에 지금은 루드웰에서 일부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해안가에서 서서 서유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서유, 오랜만이군.”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서유는 바로 도망쳤고 연중서의 손짓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다.빠르게 도망친 서유는 이내 풀숲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키와 비슷한 높이의 풀숲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재빨리 피신할 수 있었다.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가 도망친 길을 따라가면서 칼로 풀숲을 헤집었다.다들 서유보다 키가 컸던 터라 그녀가 움직인 흔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 놀이 삼아 그녀의 뒤를 천천히 쫓았을 뿐. 얼마 후, 인내심이 바닥난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위치를 찾아냈고 검은 주머니로 그녀의 머리를 감싼 다음 그녀를 어깨에 메고 바로 배에 올라탔다. 배가 인적이 없는 깊은 바다로 항해할 때, 연중서는 그제야 그녀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주머니를 벗겼다. 시선이 맑아지는 순간, 서유는 갑판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친아버지인 그가 다른 딸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연중서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미간 사이가 연지유와 많이 닮은 듯했고 그와도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서유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당신 덕분에 언니도 죽었어요.”김영주가 Y국 거리에서 굶어 죽고 김초희가 달동네를 떠돌고 그녀가 고아가 된 건 모두 연중서의 탓이었다. 모질고 잔인한 그로 인해 세 모녀는 헤어지게 되었고 각자 처참한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 연중서의 곁에서 연지유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났다. 연중서는 그녀를 위해 모든 뒷길을 열어주었고 남부러울 것 없이 키웠다. 그녀는 김초희처럼 여기저기 구걸하지도 않았고 서유처럼 비참하게 살지도 않았다. “초희도... 죽었다고?”경악하던 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서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 바다에서 살아났던 사람들이 왜 죽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서유는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걱정하는 척 가식 좀 그만 떨어요. 내 물음에 대답부터 해요. 그 당시 왜 소유진을 도와준 거예요?”그녀는 김영주가 연중서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연중서가 왜 김영주를 도왔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소유진의 정체가 김영주라는 것을 알고 김영주의 엄청난 유산이 탐나서 계획적으로 접근한 건 아닐까?정말 그런 거라면 김영주는 그가 놓은 덫에 걸려 지옥으로 끌려들어 간 것이다. 김영주의 일생이 너무나 가치 없는 건 아닌 건지? 쌀쌀한 서유의 태도에도 연중서는 화를 내기는커녕 차분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때 너희 엄마가 엉망이 된 얼굴을 한 채 Y국 거리를 걸어다니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에 집에 데려와 먹을 것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주고 살아가라고 격려도 해줬었어.”“그 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고 마침 그때 너희 엄마를 공항에서 마주치게 되었었어. 당시 너희 엄마는 이미 성형을 한 상태라 난 알아보지 못했지. 너희 엄마가 먼저 말하는 바람에 알아보게 된 거야. 내가 예전에 도와줬던 여자라는 것을.”“너희 엄마는 고마웠다면서 우리 회사에 투자했고 동아 그룹은 그제야 다시 살아났어. 많이 고마웠어. 그래서 너희 엄
그 순간, 연중서는 난처해졌다.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린 연지유가 즉시 물었다.“아빠, 서유가 아빠한테 뭐라고 했어요? 왜 아빠가 서유 그 여자를 위해 사정하는 거냐고요?”평소에 연중서는 연지유의 부탁이라면 무작정 들어주었다.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따다 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서유 그 여자를 위해 사정을 하고 있다?“설마 서유가 아빠한테 꼬치라도 쳤어요? 정말 뻔뻔하고 천하기 짝이 없네.”“그럴 리가.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런 유혹에 넘어가냐? 그리고 난 평생 너희 엄마만 사랑했어.”그 말에 서유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김영주의 재산으로 연지유 두 모녀를 보살폈으면서 지금 그녀의 앞에서 정부와의 사랑을 운운하고 있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그녀가 비웃고 있는 걸 연중서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가슴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서유가 아무리 사정해도 오늘 반드시 서유를 죽여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라고요.”이런 협박은 어렸을 때부터 잘 먹혔다. 연중서는 고개를 돌리고 서유를 쳐다보았다. 딸이니까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는 서유보다는 오랜 시간 애지중지 키워온 연지유가 그한테는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알았어.”그제야 연지유는 울음을 그쳤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신신당부했다.“손정태한테 동영상 찍으라고 해요. 매일 그걸 보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으니까.”그녀의 요구에 연중서는 뭐든 다 들어주었고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고는 핸드폰을 손정태에게 건네주었다.“카메라 켜고 찍어둬.”말을 마친 그가 서유를 향해 다가갔다.“내 딸이 죽는 걸 난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초아야... 미안하구나.”그 말에 서유는 차갑게 웃었다. 연중서는 그녀에게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그의 팔을 덥석 잡고 그와 함께 배에서 떨어졌다. 도망갈 수 없다면
얼마 후, 이승하가 심장을 움켜쥐며 정신을 차렸다.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픈 가슴을 꼭 감쌌다.무의식적으로 서유 생각이 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제멋대로 그녀를 쫓아낸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뭔가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엄청난 고통에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뻗어 쇄골 위의 이빨 자국을 만지고 나니 비로소 아픔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 서유가 그에게 남긴 흔적이었다. 고독한 마음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남긴 흔적과 함께하니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았다. 다만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옆 방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그는 몸을 곧게 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고 뒤죽박죽인 모스 코드에서 [내가 넷째 어르신이다]라는 정보를 알아냈다.그는 바로 손가락을 뻗어 벽에 가볍게 두드렸다. 옆쪽 구금실에 갇혀있던 넷째 어르신은 이승하와 암호를 맞춘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들어 계속 암호를 보냈다.[육성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차가운 눈빛에 음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칩에 의해 통제된 그는 연지유와 봉태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담담하게 벽을 두드렸다. [8라운드의 게임이 끝난 후 육성재는 죽었습니다.]벽에 대고 있던 넷째 어르신의 손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벽을 두드렸다.[알았네.]이승하는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눈 밑의 감정을 숨긴 채 다시 벽을 두드렸다.[누나인 김윤주의 자식 아닌가요? 복수 하셔야죠?]가면을 쓰지 않은 김종수는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잘생긴 이목구비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벽에 기댄 채 무심하게 벽을 두드렸다.[육성재는 내가 무사히 떠나보낼 거라고 했잖아.]그는 위층 구역에 사람을 진작에 심어놓았었다. 만약
이승하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건 많지만 1-2는 이례적으로 이승하에게 플레이어 초대자의 신분을 주었다. 비록 칩으로 그를 제어하고 컨트롤러를 봉태규에 맡겼지만 그는 여전히 이승하를 중시했다. 이 일들이 일어났을 때 김종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플레이어들과 짜고 거액의 베팅을 했다고 연지유가 그를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있었던 건 그가 초대인을 픽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지유는 그의 권한을 빼앗고 그가 이끄는 사람들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이나 그를 고발하였고 1-2는 S 조직의 멤버 리스트를 위해 그한테 참으라고 했다. 그들이 리스트를 다 토해내면 그들을 제거하겠다고 하면서. 연지유와 봉태규도 똑똑하게 매번 한두 사람의 이름만 공개했다. 그러나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리스트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었고 멤버가 얼마나 있는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잘 대우해야 했고 높은 자리를 줘야 했다. 이승하가 처음 왔을 때, 김종수는 그 고발 때문에 1-2한테 벌칙을 받고 C 구역으로 이동했다. Ace는 사실 이 한 개 구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ABC의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구역마다 또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상, 중, 하 구역으로 구분되었고 이 세 구역의 권한은 모두 잠겨 있는 상태로 모든 층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누구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그들의 규칙은 간단했다. 중간 구역의 초대자는 아래 구역의 플레이어들이 사활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걸 관람하였고 위층 구역의 배후자는 중간 구역의 초대자가 공평하게 베팅했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만약 S 조직의 멤버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화학 구역으로 보내버렸다. 화학 구역은 ABC의 3개 구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 있었고 전문적으로 S 조직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곳의 책임자는 1-3이었다. 1-1은 모든 구역의 프로그래밍과 칩 연구 개발을 담당하였고 1-2는 게임 플레이 프로그래밍과 게임 구역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이승하에게 당한 적이 있었던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이승하의 손과 발을 제압하고 그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사실 그가 반격할 생각이었다면 1-2가 들어왔을 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1-1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임무를 영원히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1-2는 그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승하에 대한 좋은 인상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당신이 아래 구역의 권한을 풀었으니 Ace의 규칙에 따라 그 벌로 전기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나 아무리 해도 당신을 굴복시킬 수가 없어서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어.”1-2가 턱을 치켜들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이승하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칼을 꺼내 소독하고는 이승하의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마스크 아래 1-2의 시선을 따라 칼이 이승하의 옷을 살짝 자르고 옆구리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손발이 묶인 이승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 안에 박힐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칼에 베인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약간 기울인 채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서유가 아이를 가졌고 벌써 5개월이 지났으니 5개월 뒤면 그도 아빠가 될 것이다.아이가 그를 더 닮을지 아니면 서유를 더 많이 닮을지. 누구를 닮든 엄청 예쁠 것이다.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칼을 쥐고 있던 1-2의 손에 힘에 더 들어갔다. 아팠지만 꿋꿋하게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연지유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달래려는데 그녀를 본 순간, 그가 갑자기 싸늘하게 눈을 감았다.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쌤통이다.”짧게 욕설을 퍼붓더니 그녀는 고개를 들고 1-2를 바라보았다.“제가 하겠습니다. 어르신의 손을 더럽히지 마세요.”1-2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