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이승하가 심장을 움켜쥐며 정신을 차렸다.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픈 가슴을 꼭 감쌌다.무의식적으로 서유 생각이 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제멋대로 그녀를 쫓아낸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뭔가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엄청난 고통에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뻗어 쇄골 위의 이빨 자국을 만지고 나니 비로소 아픔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 서유가 그에게 남긴 흔적이었다. 고독한 마음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남긴 흔적과 함께하니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았다. 다만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옆 방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그는 몸을 곧게 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고 뒤죽박죽인 모스 코드에서 [내가 넷째 어르신이다]라는 정보를 알아냈다.그는 바로 손가락을 뻗어 벽에 가볍게 두드렸다. 옆쪽 구금실에 갇혀있던 넷째 어르신은 이승하와 암호를 맞춘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들어 계속 암호를 보냈다.[육성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차가운 눈빛에 음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칩에 의해 통제된 그는 연지유와 봉태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담담하게 벽을 두드렸다. [8라운드의 게임이 끝난 후 육성재는 죽었습니다.]벽에 대고 있던 넷째 어르신의 손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벽을 두드렸다.[알았네.]이승하는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눈 밑의 감정을 숨긴 채 다시 벽을 두드렸다.[누나인 김윤주의 자식 아닌가요? 복수 하셔야죠?]가면을 쓰지 않은 김종수는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잘생긴 이목구비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벽에 기댄 채 무심하게 벽을 두드렸다.[육성재는 내가 무사히 떠나보낼 거라고 했잖아.]그는 위층 구역에 사람을 진작에 심어놓았었다. 만약
이승하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건 많지만 1-2는 이례적으로 이승하에게 플레이어 초대자의 신분을 주었다. 비록 칩으로 그를 제어하고 컨트롤러를 봉태규에 맡겼지만 그는 여전히 이승하를 중시했다. 이 일들이 일어났을 때 김종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플레이어들과 짜고 거액의 베팅을 했다고 연지유가 그를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있었던 건 그가 초대인을 픽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지유는 그의 권한을 빼앗고 그가 이끄는 사람들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이나 그를 고발하였고 1-2는 S 조직의 멤버 리스트를 위해 그한테 참으라고 했다. 그들이 리스트를 다 토해내면 그들을 제거하겠다고 하면서. 연지유와 봉태규도 똑똑하게 매번 한두 사람의 이름만 공개했다. 그러나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리스트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었고 멤버가 얼마나 있는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잘 대우해야 했고 높은 자리를 줘야 했다. 이승하가 처음 왔을 때, 김종수는 그 고발 때문에 1-2한테 벌칙을 받고 C 구역으로 이동했다. Ace는 사실 이 한 개 구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ABC의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구역마다 또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상, 중, 하 구역으로 구분되었고 이 세 구역의 권한은 모두 잠겨 있는 상태로 모든 층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누구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그들의 규칙은 간단했다. 중간 구역의 초대자는 아래 구역의 플레이어들이 사활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걸 관람하였고 위층 구역의 배후자는 중간 구역의 초대자가 공평하게 베팅했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만약 S 조직의 멤버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화학 구역으로 보내버렸다. 화학 구역은 ABC의 3개 구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 있었고 전문적으로 S 조직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곳의 책임자는 1-3이었다. 1-1은 모든 구역의 프로그래밍과 칩 연구 개발을 담당하였고 1-2는 게임 플레이 프로그래밍과 게임 구역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이승하에게 당한 적이 있었던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이승하의 손과 발을 제압하고 그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사실 그가 반격할 생각이었다면 1-2가 들어왔을 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1-1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임무를 영원히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1-2는 그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승하에 대한 좋은 인상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당신이 아래 구역의 권한을 풀었으니 Ace의 규칙에 따라 그 벌로 전기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나 아무리 해도 당신을 굴복시킬 수가 없어서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어.”1-2가 턱을 치켜들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이승하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칼을 꺼내 소독하고는 이승하의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마스크 아래 1-2의 시선을 따라 칼이 이승하의 옷을 살짝 자르고 옆구리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손발이 묶인 이승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 안에 박힐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칼에 베인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약간 기울인 채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서유가 아이를 가졌고 벌써 5개월이 지났으니 5개월 뒤면 그도 아빠가 될 것이다.아이가 그를 더 닮을지 아니면 서유를 더 많이 닮을지. 누구를 닮든 엄청 예쁠 것이다.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칼을 쥐고 있던 1-2의 손에 힘에 더 들어갔다. 아팠지만 꿋꿋하게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연지유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달래려는데 그녀를 본 순간, 그가 갑자기 싸늘하게 눈을 감았다.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쌤통이다.”짧게 욕설을 퍼붓더니 그녀는 고개를 들고 1-2를 바라보았다.“제가 하겠습니다. 어르신의 손을 더럽히지 마세요.”1-2는
서유를 밀던 연중서가 그녀에게 끌려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이승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초췌하게 변했고 눈앞이 흐려졌다. 영상 속, 두 사람이 추락한 바다를 쳐다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결국 연중서 혼자만 헤엄쳐 올라왔고 이내 바닷물은 잠잠해졌다.영상이 멈추자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몸에 힘이 풀렸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고 한 가닥의 희망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손을 뻗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은 몇 번이나 축 늘어졌고 온 힘을 다해 뻗어보니 마침내 쇄골 위에 새겨진 이빨 자국에 손끝이 닿았다. 연지유가 내 목숨을 가지고 당신을 위협한다면 난 기꺼이 죽어줄 거예요. 당신을 찾아 이곳에 오면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까요. 당신이 살아있다면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이고 당신이 죽었다면 나 또한 죽을 거예요. 약속했잖아요. 죽든 살든 평생 함께하기로. 서유는 그와 함께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 했다. 그런 그녀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그녀를 위한 일인 걸까?그녀에게 좋은 일이었다면 지금 그녀는 왜 바다에 빠진 걸까?예전에도 그녀를 지켜준다고 해놓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줄이야. 이혼 합의서에 강제로 사인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그는 절망에 빠졌고 온몸이 싸늘해졌다. 독단적인 그의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를 쫓아내면 그녀와 아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의 악귀가 그녀를 이리 계속 따라다닐 줄이야. 그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들은 그녀를 갈기갈기 찢고 산 채로 삼키고 시체조차 그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그가 틀렸다. 큰 실수다. 다른 여자와 연기까지 하면서 그녀한테 상처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상처를 준 것도 모자라 그녀 혼자 쓸쓸히 떠나는 걸 지켜만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를 안고 모든 것을 막아줘야 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그의 눈이 가늘게 떨리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그녀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턱을 치켜올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부러졌다.툭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가 부러졌다.“아악!”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손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 단번에 부러뜨린 것이다. 아픔을 견디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졸랐다. 숨이 턱턱 막혔고 웃고 있던 얼굴이 불과 1초 만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연지유는 지금쯤 그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쓰러질 때, 그녀는 그 틈을 타 그에게서 탈출했다. 목을 감싼 채 낭패한 모습으로 허겁지겁 뒤로 몸을 옮겼다.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야 비로소 부러진 왼손을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자 봉태규가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들은 것인지 그는 그녀를 부축하지 않고 실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도 뭔가 알아차린 듯 얼른 봉태규의 손을 잡아당겼다. “태규 씨, 방금은 그냥 헛소리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그래?”피식 웃더니 칼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그럼 가서 한번 찔러봐. 나한테 네 마음을 보여주란 말이야.”흠칫하던 그녀는 다친 손을 핑계로 대려 하였지만 그가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태규는 미친놈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승하를 놓지 못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그녀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칼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하의 앞으로 걸어갔다.이승하, 어떻게 이리 내 마음을 몰라? 차라리 죽어.연지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칼을 이승하의 허벅지를 향해 푹 찔렀다. 바닥에 쓰러져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은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까만 눈동자로
한편, 넷째 어르신은 감금 시간이 다 되어서 곧 풀려나게 되었다. 나가자마자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연지유와 봉태규가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이 있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가 벌거벗은 두 사람을 마치 짐승을 다루듯이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가면을 쓴 넷째 어르신은 연지유의 꼴에 기분이 언짢은 건지 그녀를 발로 걷어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그녀는 남자들의 시선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새파래지고 온몸이 떨렸다.무작정 침대에서 끌려 내려온 두 사람은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에게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고 이를 갈며 넷째 어르신을 노려보았다.“넷째 어르신, 저한테 이러면 1-2가 어르신한테 분명 죄를 물을 거예요. 두렵지 않아요?”“무서워.”그녀를 발로 걷어차고는 카펫에 구두 밑창을 문지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주 무서워 죽겠어.”“그럼 당장 우리를 풀어줘요.”넷째 어르신은 피식 웃고는 더 이상 쓸데없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손을 흔들었다.“이 인간들 당장 뱀굴에 던져버려.”연지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넷째 어르신을 쳐다보았다. “저와 태규 씨는 1-2의 측근이에요. 어딜 감히!”“아이고 무서워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넷째 어르신은 자기 사람들을 향해 턱을 치켜올렸다. 두 사람을 붙잡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옷도 걸쳐주지 않은 채 그대로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편 탈출구를 지나칠 때, 봉태규는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그러고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달려드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과 맞서 싸웠다. 어렸을 때부터 S 조직에서 훈련을 받았던 터라 그는 싸움 실력이 뛰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드는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넷째 어르신이 총을 꺼낼 동안 봉태규가 그녀를 잡아당겨 전용 탈출구에 밀어 넣었다.“1-2가 너한테 권한을 줬으니
그가 무엇을 할지 대충 짐작되었던 김종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게.”이승하는 피범벅이 된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종수를 따라 프로그램실로 향했다.콘솔 앞에 앉더니 컨트롤러 위의 간단한 프로그램에 따라 빠르게 프로그램을 수정했다.가늘게 뻗은 손가락이 피범벅이 된 채로 빠르게 코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김종수는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10분 남았어. 10분 뒤면 1-2가 A 구역의 프로그램실로 돌아갈 거야.”지금 이 시간에 1-2는 일반적으로 B 구역의 프로그램실에 있었다. 1-2는 시간 관리가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시간대별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케줄이 잘 짜여있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는 예정된 스케줄을 벗어나지 않았고 1분 1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가 프로그램실로 돌아와서 자네가 프로그램을 수정한 것을 알게 된다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는 머리를 통제하는 칩의 프로그램을 바꿔버렸다. 먼저 위치추적 시스템과 도청 시스템을 끄고 빠른 속도로 폭파 기능 시스템을 바꿨다. 화면을 주시하던 넷째 어르신은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승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어쩐지 1-1과 1-2가 모두 이승하를 죽이기 아까워하더라니.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폭파 시스템을 한 번에 제거할 수는 없지만 폭파 시간을 30분 이내로 설정한 것은 진짜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이승하는 또다시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또한 넷째 어르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이승하는 아무 말도 없이 일을 마친 후 컨트롤러를 집어 몸에 숨겼다.넷째 어르신은 그가 대답이 없자 더 이상 묻지 않고 손목시계만 쳐다보았다. “4분이면 충분해. 루드웰을 떠나게 해줄게.”넷째 어르신이 봉태규를 죽이고 이승하의 도피를 도왔다고 해도 그가 루드웰에 처음가입한 사
“죄송합니다.”이승하는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김종수를 쳐다보았다. “위층 구역으로 가야겠습니다. 1-2의 머릿속에 반드시 칩을 넣어야겠습니다.”“하지만 나한테는 권한이 없으니 당신의 홍채와 손금을 빌릴 수밖에요.”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던 넷째 어르신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봉태규와 연지유를 죽이는 걸 도와줄 수는 있지만 1-2를 해치는 일에 날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말게.”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이승하는 마치 벽처럼 그를 필사적으로 옥죄고 있었다. 이를 본 프로그래머들은 벌떡 일어났고 이승하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이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달려들어.”말을 마친 그가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차가운 눈빛을 감추더니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넷째 어르신, 저랑 함께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남자는 김종수가 동의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그를 끌고 위층 구역으로 통하는 전용 통로로 빠르게 이동했다.가면 아래, 김종수가 이승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자네는 1-2를 이길 수 없어.”“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습니까?”이승하는 그의 손을 잡아 인증 장치에 가져다 댔고 손금 인증이 된 후 그의 가면을 벗겼다. “CCTV에는 내가 당신을 협박하는 것으로 보이니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손금과 홍채 인증을 제외하고도 얼굴과 몸 전체를 스캔하여야 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련의 비밀번호도 입력해야 했다.이승하는 김종수의 얼굴을 강제로 가져다 댈수가 없었고 반드시 그가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해야 하는 데 김종수가 협조할 리가 있겠는가?“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 누구도 1-2를 해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네.”이승하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협조하지 않으면 난 강제로 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써늘한 기운이 가득 찬 그의 눈에는 집착에 가까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핏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