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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1화

작가: 알라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01 18:00:00
얼마 후, 이승하가 심장을 움켜쥐며 정신을 차렸다.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픈 가슴을 꼭 감쌌다.

무의식적으로 서유 생각이 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제멋대로 그녀를 쫓아낸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뭔가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엄청난 고통에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뻗어 쇄골 위의 이빨 자국을 만지고 나니 비로소 아픔이 조금은 덜한 듯했다.

서유가 그에게 남긴 흔적이었다. 고독한 마음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남긴 흔적과 함께하니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았다.

다만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옆 방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는 몸을 곧게 펴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고 뒤죽박죽인 모스 코드에서 [내가 넷째 어르신이다]라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는 바로 손가락을 뻗어 벽에 가볍게 두드렸다.

옆쪽 구금실에 갇혀있던 넷째 어르신은 이승하와 암호를 맞춘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들어 계속 암호를 보냈다.

[육성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차가운 눈빛에 음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칩에 의해 통제된 그는 연지유와 봉태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담담하게 벽을 두드렸다.

[8라운드의 게임이 끝난 후 육성재는 죽었습니다.]

벽에 대고 있던 넷째 어르신의 손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벽을 두드렸다.

[알았네.]

이승하는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눈 밑의 감정을 숨긴 채 다시 벽을 두드렸다.

[누나인 김윤주의 자식 아닌가요? 복수 하셔야죠?]

가면을 쓰지 않은 김종수는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잘생긴 이목구비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가 벽에 기댄 채 무심하게 벽을 두드렸다.

[육성재는 내가 무사히 떠나보낼 거라고 했잖아.]

그는 위층 구역에 사람을 진작에 심어놓았었다.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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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건 많지만 1-2는 이례적으로 이승하에게 플레이어 초대자의 신분을 주었다. 비록 칩으로 그를 제어하고 컨트롤러를 봉태규에 맡겼지만 그는 여전히 이승하를 중시했다. 이 일들이 일어났을 때 김종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플레이어들과 짜고 거액의 베팅을 했다고 연지유가 그를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있었던 건 그가 초대인을 픽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지유는 그의 권한을 빼앗고 그가 이끄는 사람들을 빼앗기 위해 몇 번이나 그를 고발하였고 1-2는 S 조직의 멤버 리스트를 위해 그한테 참으라고 했다. 그들이 리스트를 다 토해내면 그들을 제거하겠다고 하면서. 연지유와 봉태규도 똑똑하게 매번 한두 사람의 이름만 공개했다. 그러나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리스트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었고 멤버가 얼마나 있는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잘 대우해야 했고 높은 자리를 줘야 했다. 이승하가 처음 왔을 때, 김종수는 그 고발 때문에 1-2한테 벌칙을 받고 C 구역으로 이동했다. Ace는 사실 이 한 개 구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ABC의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구역마다 또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상, 중, 하 구역으로 구분되었고 이 세 구역의 권한은 모두 잠겨 있는 상태로 모든 층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누구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그들의 규칙은 간단했다. 중간 구역의 초대자는 아래 구역의 플레이어들이 사활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걸 관람하였고 위층 구역의 배후자는 중간 구역의 초대자가 공평하게 베팅했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만약 S 조직의 멤버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화학 구역으로 보내버렸다. 화학 구역은 ABC의 3개 구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 있었고 전문적으로 S 조직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곳의 책임자는 1-3이었다. 1-1은 모든 구역의 프로그래밍과 칩 연구 개발을 담당하였고 1-2는 게임 플레이 프로그래밍과 게임 구역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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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에게 당한 적이 있었던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이승하의 손과 발을 제압하고 그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사실 그가 반격할 생각이었다면 1-2가 들어왔을 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었다. 1-1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임무를 영원히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1-2는 그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승하에 대한 좋은 인상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당신이 아래 구역의 권한을 풀었으니 Ace의 규칙에 따라 그 벌로 전기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나 아무리 해도 당신을 굴복시킬 수가 없어서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어.”1-2가 턱을 치켜들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이승하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칼을 꺼내 소독하고는 이승하의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마스크 아래 1-2의 시선을 따라 칼이 이승하의 옷을 살짝 자르고 옆구리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손발이 묶인 이승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 안에 박힐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지만 칼에 베인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약간 기울인 채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서유가 아이를 가졌고 벌써 5개월이 지났으니 5개월 뒤면 그도 아빠가 될 것이다.아이가 그를 더 닮을지 아니면 서유를 더 많이 닮을지. 누구를 닮든 엄청 예쁠 것이다.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칼을 쥐고 있던 1-2의 손에 힘에 더 들어갔다. 아팠지만 꿋꿋하게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연지유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달래려는데 그녀를 본 순간, 그가 갑자기 싸늘하게 눈을 감았다.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쌤통이다.”짧게 욕설을 퍼붓더니 그녀는 고개를 들고 1-2를 바라보았다.“제가 하겠습니다. 어르신의 손을 더럽히지 마세요.”1-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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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를 밀던 연중서가 그녀에게 끌려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이승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초췌하게 변했고 눈앞이 흐려졌다. 영상 속, 두 사람이 추락한 바다를 쳐다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결국 연중서 혼자만 헤엄쳐 올라왔고 이내 바닷물은 잠잠해졌다.영상이 멈추자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몸에 힘이 풀렸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고 한 가닥의 희망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손을 뻗었지만 벌벌 떨리는 손은 몇 번이나 축 늘어졌고 온 힘을 다해 뻗어보니 마침내 쇄골 위에 새겨진 이빨 자국에 손끝이 닿았다. 연지유가 내 목숨을 가지고 당신을 위협한다면 난 기꺼이 죽어줄 거예요. 당신을 찾아 이곳에 오면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까요. 당신이 살아있다면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이고 당신이 죽었다면 나 또한 죽을 거예요. 약속했잖아요. 죽든 살든 평생 함께하기로. 서유는 그와 함께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 했다. 그런 그녀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그녀를 위한 일인 걸까?그녀에게 좋은 일이었다면 지금 그녀는 왜 바다에 빠진 걸까?예전에도 그녀를 지켜준다고 해놓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줄이야. 이혼 합의서에 강제로 사인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그는 절망에 빠졌고 온몸이 싸늘해졌다. 독단적인 그의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를 쫓아내면 그녀와 아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의 악귀가 그녀를 이리 계속 따라다닐 줄이야. 그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들은 그녀를 갈기갈기 찢고 산 채로 삼키고 시체조차 그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그가 틀렸다. 큰 실수다. 다른 여자와 연기까지 하면서 그녀한테 상처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상처를 준 것도 모자라 그녀 혼자 쓸쓸히 떠나는 걸 지켜만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를 안고 모든 것을 막아줘야 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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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눈이 가늘게 떨리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그녀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턱을 치켜올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부러졌다.툭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가 부러졌다.“아악!”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손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 단번에 부러뜨린 것이다. 아픔을 견디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졸랐다. 숨이 턱턱 막혔고 웃고 있던 얼굴이 불과 1초 만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연지유는 지금쯤 그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쓰러질 때, 그녀는 그 틈을 타 그에게서 탈출했다. 목을 감싼 채 낭패한 모습으로 허겁지겁 뒤로 몸을 옮겼다.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야 비로소 부러진 왼손을 들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자 봉태규가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들은 것인지 그는 그녀를 부축하지 않고 실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도 뭔가 알아차린 듯 얼른 봉태규의 손을 잡아당겼다. “태규 씨, 방금은 그냥 헛소리한 거야. 신경 쓰지 마.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그래?”피식 웃더니 칼을 꺼내 그녀의 앞에 던졌다. “그럼 가서 한번 찔러봐. 나한테 네 마음을 보여주란 말이야.”흠칫하던 그녀는 다친 손을 핑계로 대려 하였지만 그가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태규는 미친놈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승하를 놓지 못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그녀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칼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하의 앞으로 걸어갔다.이승하, 어떻게 이리 내 마음을 몰라? 차라리 죽어.연지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칼을 이승하의 허벅지를 향해 푹 찔렀다. 바닥에 쓰러져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은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까만 눈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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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326화

    한편, 넷째 어르신은 감금 시간이 다 되어서 곧 풀려나게 되었다. 나가자마자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연지유와 봉태규가 방심한 틈을 타 그들이 있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가 벌거벗은 두 사람을 마치 짐승을 다루듯이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가면을 쓴 넷째 어르신은 연지유의 꼴에 기분이 언짢은 건지 그녀를 발로 걷어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그녀는 남자들의 시선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새파래지고 온몸이 떨렸다.무작정 침대에서 끌려 내려온 두 사람은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에게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고 이를 갈며 넷째 어르신을 노려보았다.“넷째 어르신, 저한테 이러면 1-2가 어르신한테 분명 죄를 물을 거예요. 두렵지 않아요?”“무서워.”그녀를 발로 걷어차고는 카펫에 구두 밑창을 문지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주 무서워 죽겠어.”“그럼 당장 우리를 풀어줘요.”넷째 어르신은 피식 웃고는 더 이상 쓸데없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손을 흔들었다.“이 인간들 당장 뱀굴에 던져버려.”연지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넷째 어르신을 쳐다보았다. “저와 태규 씨는 1-2의 측근이에요. 어딜 감히!”“아이고 무서워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넷째 어르신은 자기 사람들을 향해 턱을 치켜올렸다. 두 사람을 붙잡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옷도 걸쳐주지 않은 채 그대로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편 탈출구를 지나칠 때, 봉태규는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남자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그러고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달려드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과 맞서 싸웠다. 어렸을 때부터 S 조직에서 훈련을 받았던 터라 그는 싸움 실력이 뛰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드는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넷째 어르신이 총을 꺼낼 동안 봉태규가 그녀를 잡아당겨 전용 탈출구에 밀어 넣었다.“1-2가 너한테 권한을 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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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327화

    그가 무엇을 할지 대충 짐작되었던 김종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게.”이승하는 피범벅이 된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종수를 따라 프로그램실로 향했다.콘솔 앞에 앉더니 컨트롤러 위의 간단한 프로그램에 따라 빠르게 프로그램을 수정했다.가늘게 뻗은 손가락이 피범벅이 된 채로 빠르게 코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김종수는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10분 남았어. 10분 뒤면 1-2가 A 구역의 프로그램실로 돌아갈 거야.”지금 이 시간에 1-2는 일반적으로 B 구역의 프로그램실에 있었다. 1-2는 시간 관리가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시간대별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케줄이 잘 짜여있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는 예정된 스케줄을 벗어나지 않았고 1분 1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가 프로그램실로 돌아와서 자네가 프로그램을 수정한 것을 알게 된다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는 머리를 통제하는 칩의 프로그램을 바꿔버렸다. 먼저 위치추적 시스템과 도청 시스템을 끄고 빠른 속도로 폭파 기능 시스템을 바꿨다. 화면을 주시하던 넷째 어르신은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승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어쩐지 1-1과 1-2가 모두 이승하를 죽이기 아까워하더라니.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폭파 시스템을 한 번에 제거할 수는 없지만 폭파 시간을 30분 이내로 설정한 것은 진짜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이승하는 또다시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또한 넷째 어르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이승하는 아무 말도 없이 일을 마친 후 컨트롤러를 집어 몸에 숨겼다.넷째 어르신은 그가 대답이 없자 더 이상 묻지 않고 손목시계만 쳐다보았다. “4분이면 충분해. 루드웰을 떠나게 해줄게.”넷째 어르신이 봉태규를 죽이고 이승하의 도피를 도왔다고 해도 그가 루드웰에 처음가입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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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이 세상과 저세상을 가로지른 썩은 나무와 같았다. 넘어가려고 하다가 발길을 멈추고 나무 위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뒤따라오던 하준이는 이승하의 모습을 보고 우산을 쓰고 걸음을 옮겼다.우산의 가장자리로 내려앉은 흰 눈, 긴 속눈썹을 살짝 떨던 그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옆에 있는 나무를 툭툭 두드렸다.“앉거라.”하준이는 그가 눈 맞을까 봐 우산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 팔꿈치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우산을 이승하의 옆으로 기울였다. 오늘의 아버지는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검은 코트에 흰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그는 옷차림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애써 가꾼 얼굴에는 어느덧 이별이 은은히 배어 있었다. “아버지.” 하준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부자간에 할 말은 이미 다 한 것 같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얇은 정장 차림의 이하준을 쳐다보았다. 코트를 벗어 자연스럽게 아이의 몸을 감쌌다. 아이가 다시 코트를 벗어 다시 돌려주려 하자 그가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존재. 하준이는 지금의 마음을 무슨 말로 형용할지 몰랐다. 아버지의 여온이 깃든 옷을 꽉 쥔 채 아이처럼 그의 따뜻한 품을 말없이 느꼈다. 우산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얼마 후, 무거운 이하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아버지, 절 위해 할 수 있는 아직 많아요. 그러니까 절 믿으세요. 제가 반드시 그 칩을 꺼낼 겁니다.”검은 정장 차림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그가 한 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우산을 따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3년을 연구했으니... 네가 이 칩을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는다.”하준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제가 의학 공부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9화

    이하준의 성인식 당일, 눈이 펑펑 내렸다. 예전에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가 깨어나던 날처럼 눈이 펑펑 내렸었다.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깜빡하고 멍하니 창가에 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룸에서 나온 이승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창가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다가갔다. 뼛속 깊이 새겨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햇살 아래, 아름다운 그녀가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낙인처럼 그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번 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고 잊을까 봐 두려운 것이 바로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의 인생은 고작 50년도 채 되지 않았고 하늘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유를 떠나는 게 가슴이 찢어질 뿐이다. 이 몸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고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미련은 그가 떠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가 다시 힘겹게 몸을 이끌고 드레스룸으로 향하더니 퍼 코트를 챙겨와 서유의 몸을 감싸주었다. 자신을 감싸안은 손길에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그 위에 덮었다. “손이 많이 차가워요.”“날씨가 추워지니까 그런 거야.”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까만 눈동자 속에 여전히 잘생긴 그의 얼굴이 비춰지자 그녀는 순간 울컥했다.“당신한테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늦게 떠나면 안 돼요?”그 말에 흠칫하던 그가 천천히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는 그녀의 콧등을 살짝 어루만졌다. “바보. 내가 가긴 어딜 가겠어? 당신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의 손을 잡은 채 발끝을 세우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승하 씨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8화

    그가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연석도 알고 있었다. 그가 오기 전, 이연석은 로봇 앞에 서서 끊임없이 로봇 기능을 체크하고 있었다. 유리창 안, 이연석이 코드를 빠르게 두드리자 그 옆에 있던 로봇이 실제 사람처럼 말을 하였고 그 모습에 이승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연석아...”그의 목소리에 이연석은 행동을 멈추고 옆으로 몸을 돌려 둘째 형을 쳐다보았다.최근 몇 년 동안,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이승하는 고통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바삐 돌아쳤다. 둘째 형이 안쓰러웠던 이연석은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둘째 형보다 능력은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결국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형, 언제쯤 형수한테 보여줄 거예요?”그가 자신을 부축하려는 이연석의 손을 밀치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로봇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손을 뻗어 머리 뒤의 스위치를 누르자 로봇이 그와 똑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고 그 모습에 그가 또다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게 있으면 내가 떠난 후에도 서유가 외롭지는 않겠지...”이승하가 연구 개발한 칩은 미리 앞으로의 10년, 20년 동안의 말을 모두 녹음해 둔 칩이었다. 서유가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싶다면 계속 살아가야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 건 바보 같은 여자가 자신을 따라 죽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가 계속 살기를 바랐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죽기 전에 로봇이 완벽하게 제작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그녀와 함께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서유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안색이 점차 굳어졌다. “내가 떠나면 그때 이 로봇을 서유한테 보여줘. 그리고 하준이를 도와 회사를 꼭 지키거라.”둘째 형의 마지막 당부에 이연석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형, 정말 방법이 없는 거예요?”그동안 유명한 의사를 수없이 많이 찾아다녔고 머리를 바꾸는 수술까지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7화

    어두컴컴한 방안, 이하준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어떻게 그 엄청난 고통을 무릅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지금껏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철이 없었던 그는 아빠를 무시한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한 못된 짓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던 소년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고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온몸이 떨릴 정도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예전에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니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밤새 의학 서적을 뒤적거리며 칩을 꺼내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머리 수술에 관한 모든 서책을 다 뒤져보았다. 윤주원과 조지 그리고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들에게 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결론은 모두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칩을 꺼내는 동시에 그 안의 바이러스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에 이하준은 밤새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조차 없이 깜깜하기만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이하준은 다음날 한결같이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두 분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 건가요? 그래서 더 서로를 소중히 여긴 거 아닌가요?”서유도 이하준처럼 마음이 아팠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니 예전보다는 침착할 수 있었다.“시간이 많든 적든 부부는 서로를 아껴야 더 오래갈 수 있는 거야.”식탁에 앉은 이하준은 굳어진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고개를 돌려 겉으로는 죽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맞은편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빠, 저 의학 공부하고 싶습니다.”의학을 배우고 싶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분명 칩을 꺼낼 때 필요한 강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6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제시카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러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이를 악물고 애써 참았다. 이하준, 이번 생에 절대 내 손안에 떨어지지 마.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감정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이하준은 그녀의 복수심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잠시 후, 연이를 업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준이는 연이가 뚱뚱하다고 투덜댔고 화가 난 연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두 남매는 웨딩카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옥신각신 다투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던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웨딩카의 뒤를 따라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빠가 없는 연이에게 오늘 이승하는 아빠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연이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 그녀의 손을 신랑에게 맡겼다.입장하기 전, 문밖에 서 있던 연이가 곱게 화장한 얼굴을 치켜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이모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모부한테 손도 못 대게 하시더니. 오늘은 어쩔 수 없죠?”검은 정장 차림의 그가 담담한 얼굴로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연이를 내려다보았다.“오늘만이야. 다음은 없어.”연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어쩜 이리 하준이랑 똑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요?”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덕담 한마디 내뱉었다.“우주랑 평생 행복하길 바란다. 이번 생에 이리 네 손 잡고 입장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해...”연이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연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그녀의 손을 심우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조카한테 경고했다.“내 딸한테 잘해.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그 말 한마디에 연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릿한 시선 속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승하의 얼굴이 들어왔다.이모부한테 그녀는 처음부터 딸이었다...감동을 받은 연이는 발길을 돌리려는 이승하를 덥석 끌어안고 낮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5화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연이야, 뒤돌아서 나 좀 봐봐.”화를 참으며 고개를 돌리니 얇은 셔츠 차림에 눈밭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멈칫하던 그녀는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심우주, 나 이제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연이는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의 손을 잡은 채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때, 남자 친구가 허를 찌르는 물음을 내던졌다.“그렇게 귀찮아할 거면서 왜 연락처를 아예 차단하지 않았어?”차단하면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며 한동안 망설이던 연이는 남자 친구 앞에서 심우주의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연이를 찾을 수 없었던 심우주는 2년 동안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문자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연이의 남자 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연이를 차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연이는 오히려 침착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를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다. 그후, 심우주 학교의 퀸카가 그를 미친 듯이 따라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연이는 그제야 남자 친구의 바람에 자신이 왜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우주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누구한테 먼저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 졸업식 당일 밤, 우연히 심우주를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 4년 동안 그가 수없이 몰래 찾아와서 자신을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마음이 변치 않은 그를 보며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날 좋아하지 않았던 애가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된 걸까?그녀의 의혹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진한 키스로 뒤늦게 알아버린 자신의 진심을 쏟아냈다. 그의 고백을 받아들일 때, 연이는 뼛속까지 보수적이었던 자신을 다행으로 여겼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않았기 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4화

    이승하를 따라 차에 올라탄 하준이는 서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엄마, 엄마가 여긴 어떻게...”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몰래 네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얼굴에 찍힌 신발 자국을 보니 서유는 더 마음이 아팠다.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다가 아이가 어색해할까 봐 허공에서 손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러워하는 엄마를 보고 하준이는 예전처럼 무뚝뚝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수척해진 아이의 얼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아들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네가 외국에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았더라면 5년 전에 엄마는 절대 널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야.”아이가 그녀보다 더 큰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평소에는 제가 애들을 괴롭히는 편이에요.”아이가 당하는 꼴을 직접 눈으로 본 서유는 자신을 위로하는 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나름 솜씨가 좋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고요.”말을 마치고 그가 고개를 들어 앞줄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남자를 우러러보았다.“아빠, 방금 절 구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진짜 영웅 같았어요.”옅은 미소를 짓던 이승하는 소수빈이 건네준 수건을 받아 아이에게 건네줬다.“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언제까지 내가 와서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야?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수건을 받아 대충 머리를 닦던 아이는 모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풍당당한 사람인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요?”아이의 말에 차가운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유도 소수빈도 아무 말이 없었고 차 안의 분위기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3화

    비가 쏟아진 그날 밤, 이하준은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쇠몽둥이를 든 외국인 무리와 마주쳤고 그들은 하나 같이 근육질 몸매에 흉악한 얼굴이었다. 가끔 멍청이 같은 사람들이 그를 귀찮게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승하의 말을 명심하고 애써 참았지만 상대의 모함을 받게 되었다. 한 번은 누군가 그가 개발한 약을 교수의 물컵에 넣었다. 다른 친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이하준은 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하루 만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응징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교수가 그를 믿고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 악당들은 교수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질투하고 증오했다. 지금 눈앞의 놈들은 분명 그들이 그를 혼내주려고 부른 사람들일 것이다.학교에 다니면서도 소지섭에게 격투 기술을 배우는 걸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두렵지가 않았다. 우산을 살짝 받쳐 드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드러났고 그 눈 밑에 살의가 가득했다.근육질 남자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고 이하준은 손에 든 우산을 접어 날카로운 한끝으로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게 찔렀다. 싸움 실력이 뛰어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더라도 점점 더 많이 달려오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혼자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교수님과 약속했었지만 수세에 몰리자 그는 어쩔수 없이 허리춤에 있던 금빛 칼을 빼 들고 근육질 남자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어린 나이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몇몇 근육질의 남자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쇠몽둥이를 들어 온 힘을 다해 이하준의 머리를 내리쳤다.이하준의 목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보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면 머리를 쳐야 한다. 바보가 안 된다면 적어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근육질의 남자들은 이하준을 제압하기 위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2화

    그가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을 열었다.“난 죽는 게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당신을 만난 후부터 죽는 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죽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전 서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끝내 얻지 못하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했다. 겁이 난 서유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당신한테는 내가 있고 우리 하준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5년을 버텨온 그는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고 하느님이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이 전해지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통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칩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치고 가야 하는데...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품 안에 있는 여인이 가장 걱정되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깊이 파고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만큼 뜨겁고 짜릿한 느낌, 슬픈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뜨겁게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 두 사람의 아찔한 행위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소중한 물건을 끌어안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유람선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을 빌려 그가 세월의 흔적도 없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다음 생에도 당신이 내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당신의 다음 생은 송사월한테 주기로 약속했었나?”아직 잠들지 않은 서유가 그의 가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생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면 나 절대 당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생에 당신 안 만날 거라고요.”그가 슬픈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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